anonym:

기록/생각 2020. 11. 18. 17: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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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onym:


 이렇게 인상만 찌푸린 채, 눈앞의 다이아몬드도 탄소결정체일 뿐이라고 발로 차듯이 계속 살아가는 것인가. 그런 절망이 스스로의 살과 피에게 부끄러워 술을 마시고 울었다. 차라리 무슨 재앙이나 끔찍한 전쟁이라도 벌어져서 내 본성이, 그러니까 평소의 멋 부리는 행태는 내버리고 꽁지가 빠지게 도망가든 살인자들에게 빌붙어 구차하게 살아가든, 그런 본성이라도 스스로 발견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며 울었으나 결국에는 내 방 의자 위였다. 뒤늦게 울면서도 목소리가 떨리지 않고 조롱하듯이 지껄이기만 했다는 사실이 화가 났다.
 그런데 누구에게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르겠다.

 사춘기 때는 말이야, 그냥 무작정 화가 났지. 무시하고 모욕하고 부수는 짓만 했단 말이야. 학교에서든 집에서든. 어느 날인가 영어 시간에 교사가 수업이랑은 상관없는 말을 했는데, 그게 내게는 교사의 수준 낮은 가치관을 표현하는 것처럼 들렸나 봐. 내가 발작하듯이 비웃으니까 그 젊은 여교사가 왜 웃냐고 물었어. 그때 뭐라고 했더라. 정말로 뭐라고 했는지 기억이 안 나네. 도대체 학교는 어떻게 졸업할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어. 그저 매일 매일, 보건실로 등교해서 자다가 일어나고, 몇 시간이고 보건교사와 대화하다 마음이 내키면 교실로 가고, 수업을 망쳐놓거나 교무실까지 가서 뭔가를 부수고 다시 보건실로 돌아오고.
 그런데 차라리, 그렇게 무분별하고 그렇게 화가 나있는 놈이라면, 그러면 홀로 취해서 끊임없이 끊임없이 벽에 낙서를 하지도, 하루종일 음침한 머릿속을 하고서 담배를 물고 있지도 않겠지.
 지금은 그냥 그때의 여교사에게 사죄가 하고 싶어.

 어떻게든 될 리가 없다.

 도봉로 130길보다 불쾌한 동네가 또 있을까요. 담배를 피우러 나가니 연립주택 어딘가에서 우는 소리가 들립니다. 아무래도 늙은 남자의 우는 소리 같습니다. 시계를 보니 새벽 2시입니다. 골목에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으니 흐느끼는 소리는 끊이질 않습니다. 그 와중에 골목 저편에서 젊은 커플이 싸우고 있습니다. 술에 취한 것 같은데 여자가 아주 화가 났습니다. 내가 친구야, 연인이 아니라 친구냐고. 키가 큰 남자는 아무 말도 없이 멀거니 섰습니다. 어쩐지 웃음이 날 것 같습니다. 저쪽 캄캄한 놀이터에서 또 비명인지 뭔지가 들려오고.
 하지만 생각해보면 어렸을 적 살았던 인천의 어느 골목도, 신정동의 늙은 길바닥도, 신곡동 성당 근처의 언덕동네도 전부 똑같지 않았습니까.

 머리를 감고, 면도를 하고, 이를 닦고, 세수를 하고, 거울을 봤다. 이 이목구비와 눈동자가 익숙했던 일이 한 번도 없는 것 같다.
 내가 모르는 얼굴을 남들에게 보이며 살아간다.

 인생이 숙취와 같구나.

 “그러니까 내가 약을 먹는 것은……”
 열심히 무언가를 설명하고 있는 K의 말을 승훈은 제대로 듣고 있지 않았다. 중간중간 튀어나오는 생소한 외국어나 화학성분명 때문에 더욱 집중하기 어려웠다. 이 친구가 무슨 목적으로 이런 얘기를 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2년 전 만났을 적에 비해 유난히 골격이 돋보이는 K의 얼굴만 초점 풀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또 죽냐?”
 느닷없이 승훈이 내뱉었다. 그러자 K는 흠칫 말을 멈췄다. 그러다가 웃기 시작했다.
 “멍청아, 자살소동은 중학생 때 끝났어.”
 “안주 좀 먹어. 닭에는 손도 안 대고 몇 잔째냐.”
 K는 무기력하게 아아아, 하는 소릴 냈다. 딱히 긍정도 대답도 아무것도 아닌 소리였다. 그리고 내키지 않는다는 듯 기본안주로 나온 땅콩을 좀 집어먹더니 빈 맥주잔에 소주와 맥주를 채웠다. 숟가락으로 잔 바닥을 쳐 섞었다.
 “여하간 공무원시험 합격한 거 축하한다.”
 친구가 내미는 잔에 승훈은 자기 맥주잔을 부딪쳤다. 합격한 것은 1년 반 전이지만, 그때 이후로 K를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K는 또 원샷을 했다.
 “다들 어떻게 지내는지 알아?”
 빈 잔을 내려놓으며 K가 물었다.
 “아니. 난 3학년 1학기 때 전학 갔잖아.”
 “나는 알아. 전부 연락해서 만나고 다녔으니까. 영운이는 벌써 딸도 하나 낳았다.”
 승훈은 감탄했고 K가 소리 없이 웃었다. 제수씨가 아주 예쁘고 친절해, 난 결혼식 때 초대도 못 받았지만, 하고 그가 중얼거리는 것을 못 들은 체 했다. 그리고 그는 중학교 동창들의 소식을 한 명씩, 느릿느릿 설명했다. 잔에 또 소주와 맥주를 섞고 있었다.
 모두가 잘살고 있었다. 혹은 그렇게 퉁치는 설명이 가능할 정도로는 살고 있었다. K는 그 사실이 어쩐지 황당무계하지만 잘된 일이라고 자기 생각을 덧붙였다.
 “네 일은 어때.”
 승훈의 질문에 K는 또 얼굴을 일그러트리듯 웃으면서 대답하지 않았다.
 “화장실 좀 갔다 올게. 맥주 너무 마셨다.”
 질문에게서 도망가듯 일어나며 그는 조금 비틀거렸다. 그리고 들으라는 건지 혼잣말을 하는 건지, 살아있으면 잘 사는 거지, 하고 웅얼댔다. 곧바로 화장실로 향했다.
 승훈은 오늘 이 친구를 만나러 온 것이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북아프리카에 가고 싶다고 13년 동안 생각했다. 그 사이 몇 번이나 외국을 헤매다녔는데 어째서 북아프리카에만 가지 않았던 것인지 요즈음에야 알아차렸다.
 북아프리카에 가고 싶었던 것이 아니다. 북아프리카에서 죽고 싶었던 것이다.

 바보 같기는.

 겨울이 무슨 색인지 아십니까? 나는 그 색깔을 칭하는 단어를 알지 못합니다.
 작문이 문학으로 변하는 경계선을 아십니까. 그것만 알 수 있다면.
 정말이지 그것만 안다면.

 새벽에 길가에서 담배를 피웠다. 사방에서 낙엽들이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소름끼치게 무서웠다. 그런 공포에 제대로 된 이유 같은 것이 있을 리가 없지만, 바닥에 나뒹구는 저 시체들의 목소리 사이로 느닷없이 살아있는 인간의 발소리가 들릴지도 모른다는 것은 위협이다. 그것은 분명히 공포라고 생각했다.

 어렸을 적부터 영화를 보면 반드시 악역에게 몰입했습니다. 대단한 이유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다만 어느 영화를 보아도 그들은 부정당하고 부정당하기만 하다가 패배하고 망각된다는 사실이, 얼굴이 빨개지도록 억울했습니다.

 인디 뮤지션인 가까운 형이 청춘(靑春)이라는 단어는 울림도 한자도 아름답다고 혼잣말처럼 말했다. 별 의미있는 대답은 하지 않았다. 다만 나는 그것이 사어라고 생각했다.
 가끔 일본이나 유럽의 청춘 소설을 보면 타인의 불길한 꿈을 엿보는 기분이다.
 혀를 차면서 깨어날 법한, 그저 그뿐인 꿈.

 만개한 꽃 위에 서리가 내린다.

 괜한 허세나 거짓말도 없이, 그가 당신에게 무언가를 기대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릅니다. 당신이 어둠 속의 빛인지 빛 속의 어둠인지도 구분할 수 없었지만, 분명 무언가 중요한 것을 가지고 있다고 그는 믿었습니다. 짧은 생의 태반을 계속 당신에게로 걸어 내려가며, 아니 걸어 올라갔던가? 여하간 당신이 숨기고 있는 굉장한 것을 찾아갔습니다. 틀림없이 그것은 엄청난 질량을 가진 무엇이겠지, 하고 그는 확신했습니다. 또 다른 확신은 그것이 눈앞에 보이더라도 구원이나 충만 같은 개념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으리라는 믿음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럼에도 그 ‘엄청난 것’을 찾아내겠다는 의지가 애당초 그의 어리석은 성질의 증명이었습니다.
 어라, 아무래도 여기가 바닥인 것 같은데. 아니면 꼭대기든지……. 중유(重油) 속에서 잠수하는 감각으로 그는 얼떨떨해 있었습니다. 한참을 헤엄쳐보니 여기는 바닥도 꼭대기도 아니고, 애초에 당신은 그곳에 살지도, 살았던 적도 없습니다.
 그곳은 수 많은 사람들이 수백 년 동안 당신의 존재를 한사코 맹신하며 쌓은 성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는 시꺼먼 기름을 뚝뚝 흘리며 성 밖으로 걸어 나오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 하고 싶으면 나처럼 하라고. 약을 삼키고 3일간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났어. 다락방에서 나와보니 마침 퇴근한 친척은 저녁 먹었냐는 질문만 했어.
 안드레아스 탕겐은 몹시 짜증이 난다는 듯이, 그러나 한편으로는 자기 자랑을 하는 듯이 전화기에 대고 외쳤다. 상대가 이미 10분 이상 목멘 목소리로 자신의 비극에 대해 한탄하며 자살계획을 떠벌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진심을 다한 한 마디를 믿지 않으니, 백 페이지의 말장난으로 당신을 믿게 만들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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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05

기록/생각 2020. 11. 5. 23:17 |

언젠가부터 지하철에 임산부 배려석이 생겼다.

그것에 대해 문제가 있다는 건 아니다. 애당초 난 사고가 폭주하는 것을 피하려고 모든 정책에 대해 아무런 관심을 갖지 않기로 굳게 다짐했다. 그러나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임산부 배려석의 설치에 대해서는 정말 아무 불만도 없다.

하지만 그 문구 때문이다.

'내일의 주인공을 위한 배려' 였던가.

내가 미친놈인 것이 잘못이다. 내가 정신병질자인 것이 문제일뿐이다.

그 '주인공'이라는 단어 하나가 뇌로 침투하여

맥박이 미친듯이 뛰고, 심장이 구겨지는 것 같고, 머릿속이 온통 헝크러져 생각에 생각에 생각이 날 시꺼멓게 만들고

거기서 눈을 돌려도 하얗게 프린트 된 '주인공'이라는 단어는 집에 도착할 때까지

걸음을 빠르게 만들고 뛰게 만들고 손은 끊임없이 주머니 속 담뱃갑을 돌려대고

길가의 그림자 어딘가에 권총 한 정 떨어져있는 환각까지 어른거리고

뇌수를 저주하고 변연계를 저주하고 대뇌피질을 저주하고

그러나 약을 먹고 눕기만 하면 모든 것이 리셋되고 하루는 끝난다.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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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당신이 세상의 진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데, 다른 사람들이 모두 그것을 무시하거나 모르는 척을 한다면.

당신은 그 기분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 것인가.

예술은 중요한 게 아니다, 그건 그저 가치없는 삶과 사변의 조각을 떼어내 가치있는 것처럼 호소할 뿐이다.

그런데 만약 호소할 의미조차 없다면, 세상의 진실들이라는 것이 무표정하고 '아름답게' 모든 것을

겪어본 적도 없는 미래의 끝에서 가벼운 한숨으로

증오도 사랑도 불행도 행복도 고통도 쾌락도 똑같은 것으로 만드는 한숨을 뿜어내고 있다면.

나는 웃으면서 출혈할 것인가 인간의 기대에 부응할 것인가에 대해서 떨었다.

 

그리고 누군가가 날 염세주의자 따위로 생각한다면 칼날의 방향이 반대로 돌아갈 것에 대해서 생각했다.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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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04

기록/생각 2020. 10. 4. 18:23 |

 죽음에 대한 욕망은 언제나 있습니다. 그러나 무슨 논리나 이유를 갖고서 그러는 것도 아닌지라, 의학계에서 쓰는 '자살사고'라는 단어와의 연관성을 생각하면, 글쎄요, 어떨지 잘 모르겠습니다.

 매번 때가 되면 제가 자살할 수 없다는, 즉 항복할 수 없다는 철학적이고 현학적이고 장황한 글을 쓰곤 합니다. 얼마나 지저분하고 끔찍스러운 삶을 살든 오로지 생명유지만이 생물체의 유일한 의무라고, 자기 자신의 뇌수에 박아넣듯이 말입니다. 쓰면서도 늘 어딘가에 논리를 연결하는 고리 하나가 빠져있다는 느낌을 받긴 합니다만, 사실 별로 중요한 게 아닙니다. 중요한건 어쨌든 살아남아야 한다는 짜증스러운 의무를 논리나 신념의 형태로 만들어서 자신에게 들이미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실존주의의 끝에서 보이는, 변증법이 아니라 차라리 본능이랑 연결된 것이 아닌가 싶은 반항하는 존재와, 과연 진화생물학이 설명하는 유기생명체의 목적이 통합,기능주의적 의식을 가진 개개인의 정신을 완전히 해석할 수 있을 것인가 싶은 의문 같은 것들은, 그런 것들은 실질적으로 중요한 게 아니란 말입니다.

 어느 새벽의 아무도 없는 집에서, 도대체 이유도 근거도 없이 머릿속에서 강철의 실타래처럼 사고가 꼬여 도저히 풀어낼 수도 해석할 수도 없고, 나의 나약한 이성은 그것이 과연 무엇에 대한 생각인지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순간순간 의식이 명멸하고, 마침내 뇌수의 무게가 급증해 두개골과 척추뼈를 부수면서 추락할 것이라는 정신병적인 믿음이 저를 지배할 때, 그런 때에 사실 순간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이렇게 두면 자의든 타의 같은 자의에 의해서든 죽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일이 그냥 진행되는 대로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매번 부엌으로 가 약 15년 전 재래시장에서 샀던 칼을 집어 몸통의 어딘가를 찢습니다.

 아주 불쾌하고 10분 뒤 돌이켜보면 몸에 칼질이나 하는 자신이 한심해서 이번엔 그냥 경동맥을 찌르고서 끝내버리고 싶습니다만, 매번 이러는 것도 사실 경험에 의한 것입니다. 살가죽이 찢어지는 통증과 함께 피가 조금 배어나오면 마법처럼 머릿속이 싹 정리됩니다. 벤조디아제핀제도 이정도로 효과가 빠르고 확실하진 않습니다. 그렇다고 지금 자기 살 찢는 미치광이 짓을 정당화하려는 건 아닙니다만, 효과만은 정말 경탄할만합니다.

 도대체 무슨 광기어린 사고에 짓눌렸던 건지 기억조차 희미하고, 갑자기 머리가 가벼워져 직립보행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절망스럽고 화가나는 상황들조차 어쩐지 한 발짝 떨어져서 그것들을 정리할 수 있습니다. 뭐 문제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만, 정리할 수 있는 것도 대단한 일입니다.

 이르면 매주, 늦으면 매달 반복되는 그 머리통의 질량이 붕괴하는 것 같은 경험 말입니다만, 결국 뻔한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처절하게 죽고 싶지만 처절하게 죽고 싶지 않고, 처절하게 살고 싶지만 처절하게 살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너무 간단하고 근본적이고 해답따위는 나올리가 없는 문제입니다. 에로스와 타나토스니 아니마와 아니무스니 그런 건 의사들에게나 필요한 용어입니다. 저는 건방지게도 모든 이들이 똑같은 딜레마를 갖고 있다고 믿습니다. 아니, 잘 생각해보면 이건 딜레마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여하간, 스스로 죽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는 인간을 만난다면 전 그것이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할 테지요. 반대의 경우는 이미 이 세상에 없을테니 만날 수도 없을 것이고요.

 얘기가 점점 이상한 곳으로 새는 것 같은데, 몇번 반복한 말입니다만 저는 자신의 자기파괴적 행위들을 정당화할 생각이 그리 크지 않습니다. 매번 온갖 정보와 지식을 끌어다가 정당화를 하긴 하지만, 그것이 제가 저한테 사기치고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눈치채고 혼자서 그 사기꾼을 비웃거나 증오하기도 하고... 이런, 이건 분명히 병적인 연쇄네요.

 현실로 돌아오자면 찢어진 피부와 출혈과 깨끗해진 머릿속 그 이후에, 또 한 번 참담한 심정이 찾아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아무리 제가 지난 십 수년간 항상 상의로 가릴 수 있는 곳에만 환자짓을 했다고하더도 결국 같이 사는 사람들이 있으면 결과는 뻔합니다. 저는 실수를 하고, 그들은 흉터를 찾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느끼는 것은 죄책감, 분노, 슬픔, 불쾌함, 의무감, 어쩌고 저쩌고. 그런 그들을 보면서 저는 또 한 번 제 인간으로서의 마음을 적출하는 수술 따위의 환상을 보고, 그들로부터 도망칠 준비나 하고. 에이, 씹.....

 그러니까 계속 본능처럼 죽고 싶어하면서 본능처럼 살고 싶어서 몸부림을 치는 겁니다. 그나마 스스로 비극적 무드라도 만들어낼 수 있으면 자위라도 될텐데, 그런 것도 없이 고통만 생음악처럼 휘휘 돌아다니는 삶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는, 솔직히 과시를 하고 싶기도 하네요. 자랑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냥 족쇄를 끌고 다니는 것처럼, 감추지 않고 꺼내놓고서 거리를 돌아다니고 싶기도 하다는 말입니다. 아니, 그것 자체가 고통에 대한 자랑일 가능성도 충분히 있지만요.

 그거 아십니까. 이 블로그는 몇 년인가 전부터 매일 3명에서 15명 사이의 도무지 무슨 맥락으로 들어온 건지 알 수 없는 방문자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방문자가 있다는 걸 알면서 이런 글을 블로그에 올리는 저의가 수상하네요. 누군지도 모르는 여러분에게가 아니라, 여전히 이 블로그가 자신의 불쾌한 일기장이라고 믿으면서 글을 올리는 제가 수상스럽다는 말입니다.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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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4호의 남자

기록/생각 2020. 9. 29. 00:14 |

304호의 남자


 낮이든 밤이든 3층 계단에선 늘 비슷한 목소리가 울린다. 바보처럼 명랑하게, 동시에 비꼬듯이 주절거리는 남자의 목소리거나, 슬픔인지 절망인지에 가득 차서 울부짖는 남자의 목소리다.
 같은 빌라에 사는 처지라 그 남자를 몇 번 마주친 일이 있다. 40대 초반 정도로 보이고 머리를 삭발했으며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뼈가 부러질 것처럼 바싹 말랐다. 빌라 앞에서 담배를 피우다 마주치면 그는 항상 어딘가에서 소주 3병을 봉투에 담아 집으로 가고 있거나 소주를 사기 위해 나가고 있다. 가을이 다 됐는데도 늘 런닝에 츄리닝 바지 차림이다. 밖에서 그가 울부짖거나 희희낙락 지껄이는 모습은 본 적이 없다. 우리 집이 4층에 있어서 오르락내리락 하다보면 3층 계단에서 언제나 그런 소리가 들릴 뿐이다.
 누군가한테 그가 아내와 함께 산다는 소리를 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 여자를 본 적이 없다. 그러나 목소리는 알고 있다. 낮에는 3층 계단에서 늘 남자의 정신 나간 괴성만 들리지만 밤이 되면 분노로 가득 찬 여자의 목소리가 섞여 들린다.
 그 남자에게 직업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겠다. 아마 없겠지. 그러니 낮에도 술에 취해 지껄이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그리고 나도 약간의 거식증 때문에 살이 잔뜩 빠진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그 남자의 체구를 보면, 그러니까 관용구로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로 뼈 위에 가죽밖에 없어서 과연 기능을 하기나 하는 것인가 싶은 몸으로 무슨 일을 하겠는가. 아마 아무것도 먹지 않고 소주에 들어있는 칼로리만으로 생존하고 있는가 아닐까 싶을 정도다.
 불행한 집은 어디에나 있다. 게다가 난 인생의 대부분을 거지 같은 동네에서만 살아왔다. 불행한 집은 수도 없이 보았고 우리 집도 불행한 집 중 하나였다. 그런데 3층의, 304호에서 들리는 목소리―혹은 목소리들―를 무시하며 계단을 오르내리면 그것은 불쾌하게도 흔한 ‘불행한 집’과는 달리 이상한 메아리를 내 가슴 속에 남긴다.
 나는 폭음하는 일은 별로 없지만 술이 무엇인지는 충분히 알고 있다. 친가 사람들 모두가 술을 좋아하지만 유전인지 뭔지 그들 중 누구도 술에 취했을 때 슬퍼하거나 날뛰기는커녕 점점 즐거워하고 친절한 사람이 되었기 때문에, 학창시절까지만 해도 난 알코올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본 일이 없었다. 그러나 내가 술을 마시게 되자 생각이 바뀌었다. 나 역시 친가 쪽 피를 물려받았는지 행태야 비슷했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술에 취하면 괴롭지도 않고 외롭지도 않았다. 그것은 대단한 것이었다. 굳이 날 비극적 인물로 설명할 생각은 없지만 신체·정신적 고통과 끝없는 고립감은 존재의 일부인 것처럼 평생 날 따라다닌 것이었으니까 말이다.
 외가 쪽에 알코올 문제로 인생을 말아먹거나 정신병동에 수감 된 사람이 있다는 것이 그때 기억났는지, 그때쯤 알게 된 건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그 때문인지 어머니는 내가 성인이 된 후에도 끈질기게 날 술로부터 떼어놓으려 했다. 그러나 어찌 되었든 간에 나는 술을 마셨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폭음하는 일은 별로 없었지만, 한 시간에 500ml씩, 몇 시간에 걸쳐 계속 맥주를 마시는 일이 많았다.
 3층을 지나가면 이미 일상이 되어버린 그 남자의 목소리가 계속 들린다. 완전히 술에 꼴아버린, 도대체 누구랑 대화하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발랄하게 누군가를 큰 소리로 비꼬고 있거나 심하게 절망한 소리로 언어조차 되지 않는 외침을 커다란 폭의 높낮이로 반복한다. 내가 불쾌한 건 소음공해 때문이 아니다. 그 목소리가 거울처럼 느껴지기 때문도 아니다. 내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저 남자가 지금 불행하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 물론 불행한 알코올 중독자가 만취해 헛소리나 절규를 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24시간 취해있는 저 남자는 불행하지 않다. 심지어 사람이 아닌 것 같은 소리를 내며 곡을 할 때도, 열 받고 처참한 심정인 아내가 저주를 쏟아부을 때도 불행하지 않다. 그냥 취해있는 거다. 비참한 자아 따위는 이미 술에 익사했고, 절규하는 자기 자신을 볼 수 있을 리도 없으니, 저 남자는 불행한 것이 아니라 그냥 취해있는 거다.
 오늘도 난 멍청한 짓을 저질렀고 그걸 만회하려고 맥주 한 캔을 마셨다. 아니, 순서가 반대였는지도 모른다. 별 상관은 없다. 아무튼 마음은 편해지지 않았고 죄악감과 자기혐오가 물질이 되어 날 찔러댔다. 맥주를 더 사야겠다고 생각해서 밖으로 나갔다. 3층을 지나 내려갈 때 그 남자의 혼잣말 같은 것이 304호 철제문 밖으로 새어 나왔다. 뭐가 걱정되기 시작한 건지는 모르겠다. 내 미래에 재활센터가 보였나? 그런데 내가 정말 그런 걸 걱정하기는 하나? 아마 그리 머지않아 304호에 경찰차나 앰뷸런스가 도착하면서 계단 속의 목소리는 끝나버리겠지. 나는 스스로 내가 고통스럽지 않고 비참하지 않고 고독하지 않기만 하다면 미래에 재활센터가 있든 정신병동이 있든, 심지어 영안실이 있든 아무 상관도 없다고 생각하려 했다. 또 자신에게 거짓말인지 진실인지 진실이라고 생각하고 싶은 수단인지를 말하고 있다.
 이상한 죄악감 속에서 맥주는 사러 가지 않았다. 주차된 차들 사이에서 터질 것처럼 쿵쾅대는 심장을 움켜쥐고 줄담배를 피웠다. 그리고 돌아와서 목요일에 지하철을 타게 될 일이나―바보 같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내게는 요새 하는 일 중 가장 힘든 일이다― 언제 집안에서 싸움이 터질지도 모르는 일이나 의사가 한 충고 같은 건 전부 고의로 무시하고 박하사탕처럼 알프라졸람제를 집어먹었다.
 내가 정말 무서워하는 건 다음과 같은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자신을 관측할 자신을 영구히 잃어버리는 것, 그러니까 이성을, 그러니까 지성을, 그러니까…… 사실 그다지 중요한 것도 내 통제하에 있는 것도 아닐 텐데, 내가 끔찍하게 집착하는 것을 잃어버리는 것 말이다. 어쩌면 너무 간단하게 술에 쓸려나갈지도 모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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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제 20200916

기록/생각 2020. 9. 16. 13:33 |

 도무지 뭐 쓸만한 것이 떠오르질 않네요. 나름 심각한 상황입니다. 요새 하는 일이라고는 6시간도 채 못 자고 호흡곤란을 느끼며 일어나거나, 힘겹게 잠든 지 몇 시간 만에 괴몽을 꾸고 벌떡 일어나 다시 잠들지도 못하고, 하루 종일 이불 위에 卍자로 엎어져서 음악이나 듣는 것뿐입니다. 음악이라는 것도 원래 10년 이상 지속된 확고한 취향이 있었습니다만 지금은 그저 인터넷 음악 서비스 사이트에서 자동재생을 눌러놓고, 스피커에서 뭐가 흘러나오든 듣는 둥 마는 둥 이불 위에서 까딱도 하지 않는 지경입니다.
 그러니까 뭐라도 써야하는 것입니다. 딱히 무슨 생활에 가치를 만들겠다느니 의미를 부여하겠다느니 그런 게 아니라, 가면 갈수록 흉곽이 점점 조여와서 허파고 심장이고 다 터져버릴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아니, 의미니 가치니 하는 게 맞는 얘기일 수도 있겠네요. 흉통이나 절망감으로 상징되는 실존적 고통을 느끼지 않으려면 착각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한컴오피스에 별 시답잖은 얘기나 적어놓고서라도 그게 A4용지 1페이지, 2페이지가 되면 스스로, 아, 내 존재가 뭔가를 기록했다, 하는 착각이라도 느껴야 늑골의 밀도가 점점 감당하기 어려워지는 느낌을 잊을 수 있는 겁니다. 사실 제 삶이 여전히 폐(廢)하고 패(敗)한 상태 그대로라고 해도 말입니다.
 지금은 오전 11시입니다만, 오늘은 오전 3시에 느닷없이 깨버렸습니다. 아마 가을모기 때문인 것 같은데, 신경질적으로 일어나서 모기향을 켜고 보니 더 이상 잠이 올 리가 없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요새는 계절의 구분도 애매해서 9월 모기를 가을모기라고 불러도 좋을지 잘 모르겠네요. 다자이 오사무의 단편 중에 가을모기에 대한 구슬픈 얘기가 있었던 것 같은데, 이젠 소재조차 못되겠네요.
 아무튼 가을모기가 중요한 게 아니고, 깨버렸으니 별수 없이 음악을 틀어놓고 또 산송장처럼 컴컴한 천장만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한 시간인가를 그러고 있다가 어쩐지 갑갑한 마음이 들어서 불을 켜고 주변을 둘러봤습니다. 최근까지 병행해서 읽고 있던 책 세 권이 이불 주변에 흩어져 있었습니다. 한 권은 80년대 한국 시집이고, 한 권은 80년대 영국 신학자의 성경 복음서 비교분석 서적이고, 한 권은 80년대 이론물리학자가 쓴 일반 대중의 신, 생명, 의식에 대한 믿음이 어떻게 현대물리학에 의해 설명될 가능성이 있는지에 대한 교양서적이고……. 80년대. 80년대. 80년대. 십8…… 지금 2020년 아니었나. 스스로에 대한 분노 비슷한 것이 치밀어오르려고 하기에 순간적으로 생각을 멈췄습니다. 부엌으로 나가 냉장고에서 커피 하나를 꺼내 마시고 방으로 돌아와 물리학자가 쓴 책을 집어 들고 벽에 기대앉았습니다. 물질계와 의식계가 분리될 수 있는 것인지, 분리될 수 있다면 시공간 기하학이 어쩌고 양자물리학 이론의 시공간이 형성되지 않는 하부 단위 차원이 어쩌고, 한참을 읽고 있다가 덮었습니다. 책이 재미없었던 것이 아니라 잠을 제대로 못 잔 상태에서 88년에 인쇄된 책을 보고 있으려니 눈알이 터질 것 같아서였습니다.
 몸의 각 부위는 피곤하다고 난리를 쳐대는데 잠을 잘 수도 없습니다. 일단 한 번 깨버리면 17시간 이상 활동(?)하고 저녁 약을 먹어야만 잠에 들 수 있습니다. 피곤해서 죽을 것 같다든지 서너 시간밖에 못 잤다든지 그런 건 제 뇌가 접수해주는 탄원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니 이젠 할 수 있는 게 이불에 늘어진 채로 눈을 감았다 떴다 하면서 머릿속으로 욕설이나 반복하고, 어느새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은 고딕 클래식과 데스메탈을 접합한 심란해야 하는 건지 머리를 흔들어대야 하는 건지 잘 알 수 없는 음악이었습니다.
 아아, 숫제 죽고 싶다. 이런 생각을 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까 이것도 분명히 ‘인간실격’에서 읽은 문장이고. 다자이 오사무 대단히 좋아하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내 정신 깊숙한 곳에 끼어들었는지. 여하간 당장 목매달고 모든 것에 작별을 고할 정도로 행동력 있는 마음가짐은 아니었지만 굉장히 절망스럽고, 절망한 것보다 더 피곤한 상태였습니다. 도대체 며칠 몇 주를 이렇게 보냈는지. 부처님의 수많은 금언 중에 유일하게 제가 온 마음으로 공감하는 것이 있다면 다른 말씀이 아니라 삶이 고해라는 것입니다. 그걸 초월하고 집착을 내려놓는 방법에 대한 말씀은 별로 공감을 못 하는 걸 생각하면 제가 그다지 현명한 인간이 아니라는 건 확실합니다. 여하간.
 고립감, 염세, 절망, 비애, 고통, 무기력. 그렇습니다. 무기력. 이 모든 상황과 저 자신을 해결하려는 의욕조차 생기지 않는 무기력. 마냥 이불에 투신한 채 이러다 갑자기 대동맥이라도 막히지 않으려나, 하는 멍청한 생각이나 하면서 도대체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릅니다.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으리라고 알고는 있지만 이대로 공기도 안 좋은 퀴퀴한 방에 처박혀 있으면 조금씩 무의미와 동화되지 않을까 하는 이상한 기대나 갖고 말입니다.
 그런데 문뜩 이불 옆에 세워놓은 책장에 눈이 갔습니다. 맨날 보는 책장이지만 유난히 눈에 띄는 책이 세 권 있었는데, 다른 이유가 아니라 단순히 사이즈가 거대하고 은박이 입혀진 양장에다가 심지어 세 권 모두 먼지로부터 보호하는 커버까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톨스토이의 ‘인생이란 무엇인가’ 진리, 사랑, 행복편이었습니다. 내가 저걸 언제 샀지? 분명 언젠가 읽은 것 같긴 한데 무슨 내용이었는지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나네. 게다가 저렇게 비싸 보이는 소장본을 말이야.
 사실 어려서부터 러시아의 유명한 작가들 책은 닥치는 대로 다 읽어서 유럽 작가들의 저작보다 더 많이 읽은 것 같습니다만, 이상하게 톨스토이는 기억나는 게 거의 없습니다. 그 구둣가게 앞에서 눈맞고 쓰러져있던 젊은 거지가 사실 천사였다는 소설이 톨스토이 작품이었던가요? 종교색 강한 게 그 양반 맞는 것 같긴 합니다만, 정말 그 정도밖에 기억나는 게 없습니다. 나중에 온 집안의 책장을 다 뒤져보니 ‘전쟁과 평화’, ‘안나 까레리나’, ‘이반 일리치의 죽음’ 등이 나오긴 했습니다만, 읽었다는 사실은 기억하는데 내용은 아무것도 기억나는 게 없습니다. 애당초 이런 책 사놓을 사람이 집안에 저밖에 없는데요.
 찾다 보니 서로 다른 출판사에서 중복되게 산 작품도 꽤 되는 도스토옙스키 전집이 나왔습니다. 도스토옙스키도 20대 초중반 이후로는 읽은 기억이 없는데, 이상하게 이 사람 작품은 내용이 거의 온전하게 머릿속에 남아있네요. 이건 뭐 그다지 중요한 일은 아닐 겁니다.
 여하간 그 은빛으로 반짝이는 커버와, ‘인생이란 무엇인가’라는, 사실 평소 같으면 톨스토이의 음성이든 니체의 음성이든 성격적으로 침을 뱉어버릴 문장에 순간 홀려버렸습니다. 이젠 에미넴이 랩을 하고 있는 음악을 배경으로 천천히 책에 손을 가져갔습니다. 그리고 각 권의 주제로 명기된 진리, 사랑, 행복을 쳐다보다가, 기름칠 안 된 기계가 움직이는 것처럼 진리편을 뽑았습니다. 그때 순간 뇌에서 욕설이 쏟아져나왔던 것 같은데, 익숙한 일이네요. 갑자기 생각난 겁니다만 단테가 신곡의 시작을 지옥편으로 한 건 참 현명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정도 읽고 생각한 겁니다만, 전 이 책이 명언록이라는 걸 완전히 까먹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무튼 계속 읽었고, 또 각막이 폭발해버릴 것 같은 느낌이 들 때 즈음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 뭐라도 쓰자. 언제나 자해보다도 알프라졸람보다도 알코올보다도 효과적으로 내가 안전하다고 느끼게 만들어 주었던 건, 불법적인 일을 빼면 글쓰기밖에 없지 않았나.
 그런데 요즘 이렇게 개판으로 생활을 하는데 뭘 쓰지? 쓸 게 있기나 한가? 소재도 주제도 떠오르는 게 없고, 요즘은 뭔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 일조차 없는데.
 그래서 결국 이렇게 정했습니다. 첫머리는 다음과 같이 하기로. ‘도무지 뭐 쓸만한 것이 떠오르질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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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사비 괴몽

기록/생각 2020. 9. 13. 09:45 |

와사비 괴몽


 며칠 전 오후 3시에 기괴하고 강렬하고 슬픈 느낌에 번쩍 눈을 떴다. 왜 해가 중천을 넘어가는 오후 3시에 눈을 뜨냐고 할 사람이 있을지 몰라 말해두자면 난 그날 아침 9시에 약 먹고 잠들었다. 평소대로라면 오후 6시에 눈을 떴어야 한다. 아무튼 시간이 중요한 게 아니고…….
 악몽을 꾸다가 벌떡 깨는 일이야 가끔 있는 일이지만 그 기괴하고 강렬하고 슬픈 느낌은 악몽의 잔재가 아니었다. 무언가 아주 억울하고 유감스럽고 절망이 가득해서 더는 이런 현실은 못 견디겠다고 꺽꺽댔더니 정말로 그 세계로부터 퍼뜩 깨어나 버린 것 같았다. 그런데 눈을 뜨고 보니 뭔 놈의 꿈이었는지 기억나지도 않고, 그런데 기억나지 않는다고 심장이 뱀마냥 허물 벗는 느낌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60초인가 눈뜬 채 이불 덮고 누워있다가, 니미 견딜 수가 없어서 태아처럼 웅크리고 으악-흐악-하며 울었다. 한 15분 그랬나, 친척들 죽을 때도 친구 부모님 장례식에서도 항상 뭐 잘못 먹은 비둘기마냥 어리바리 돌아다니기만 하던 게 나였는데.
 이유도 뭔지 모르고 목이 막히게 억울하고 유감이어서 이젠 눈으로 곡을 하다가 마침내 밥 지어도 될 만큼 눈물을 쏟고 진정을 했다. 얼굴을 파묻은 이불이 축축해진 게 기분이 더러워서 반대로 누웠다. 그리고 이성이 좀 돌아오자 도무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분명히 어떤 유명한 사람이 인간의 이성은 기억과 경험으로 되어있다고 했는데, 기억나지도 않는 꿈에 꺽꺽 우는 것은 틀림없이 이성적인 것이 아니고, 그러면 감정은 정말로 아무 이유도 근거도 없이 날뛰는 놈이구나.
 또 그런 사변이나 왱알앵알하는 평소의 임명준으로 돌아와 있는데 뜬금없이 무슨 꿈이었는지 기억이 났다. 전부 다 기억난 건 아니지만 울었던 이유는 기억이 났다. 꿈에서 현자인지 오즈의 마법사인지 선지자인지 아무튼 그런 놈이랑 대화를 했는데, 나더러 “사실 당신 가슴 속에 들어있는 건 심장이 아니라 고추냉이라오.”하며 미친 소리를 하는 것이다. 내가 발끈해서 증거를 대라고 하자 놈은 어느 연못에 가면 내 심장이 가라앉아있으니 찾아보라고 했다. 그래서 찾아가 보니까 진짜로 내 심장이 있더라. 전 세계 75억 개가 전부 똑같이 생긴 근육펌프기인데 어떻게 바로 내 것인 줄 알아봤는지는, 꿈이니까 그런가보다 했다. 아무튼 한 손에 심장을 들고 늑골을 벌컥 열어서 안을 들여다보니 거기에는 고추냉이인지 와사비인지가 떡하니 있었다. 아, 이런 썅……, 하는 순간에 잠에서 깬 것 같다.
 왜 하필 와사비지. 내 무의식이 초밥이라도 먹고 싶은가. 그런데 와사비는 그렇다 치고 이건 사실 프로이트니 융이니 하는 사람들 부를 필요도 없이 간단한 괴몽이다. 인간짓 좀 그만두고 싶다, 평생을 노력해도 이미 내가 오함마로 박살 낸 장독대 파편 위에 물 붓는 격인데 차라리 메디컬 닥터 사인 들어간 부품결손 증명서라도 있으면 좋겠다, 감정이고 죄책감이고 양심이고 다 엿 바꿔먹었으면 좋겠다, 아아. 니미.
 그런데 이미 그 감정과 죄책감과 양심을 작동시키는 주요부품이 어디론가 날아가 버리고 그 자리에 광어회에나 발라먹는 초록색 일제 양념이 들어있었다면, 정말로 억울해 미칠 노릇인 것이다. 그 현자인지 오즈의 마법사인지 선지자인지에게로 돌아가 다음엔 뇌를 할라페뇨랑 바꿔야 하냐고 묻고 싶은 것이다. 감정과 죄책감과 양심을 뚝 떼어 북아프리카의 사막 지역으로 멀리멀리 던져버리려면 중추신경계의 몇십 퍼센트를 외산 스파이스로 갈아치워야 하냐고 멱살을 잡고 따지고 싶은 것이다.
 여하간, 어쩐지 그 꿈 이후로 시도 때도 없이 부정맥 비슷한 게 일어나는데 나는 일주일 전 이미 의사에게 기존 대비 절반의 알프라졸람으로도 버틸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해버렸다. 아아. 아아. 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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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 분쟁이 어쩌고저쩌고


 사람들은 멍청하다. 아니, 오해가 없도록 더 정확하게 말하면 자신이 피해자라고 믿고 있는 사람들은 멍청하다. 그들은 항상 모든 인간집단에 대해 적대적이지만, 만일 누군가가, 설령 아무리 보아도 자신들과 동떨어진 성질의 누군가라도, 자신들과 같은 ‘피해자 정체성’의 일부를 공유하고 있다는 실마리만 던져주는 즉시 ‘자신들’의 편이라고 믿어버린다. 일상적인 의구심이나 관찰, 혹은 통찰 능력이 그들에게 없는 것이 아니다. 자신들이 피해자라는 믿음의 근원이 되는 부분에 있는 정체성의 동일성만 보여주면 순식간에 그런 능력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그들의 멍청함은 바로 거기에 있다. 세계를 간단하게 이분화하려는 욕망 말이다. 피해자와 가해자. 피해자 집단과 가해자 집단. 그것으로만 세계가 이루어져 있다고 믿으면 자신이 겪는 인생의 격렬함(고통보다는 차라리 이 단어가 낫겠다)에 대해 굳이 머리 아프게 고민할 필요가 없다. 이건 인류 역사에 항상 있었던 무지함이지만 마르크스가 거대한 사상 덩어리로 만들어 내놓은 이후로 누구든(심지어 공산주의를 증오하는 것이 전제조건인 집단이더라도) 써먹을 수 있는 이념의 형태가 되어버렸다. 프롤레타리아와 부르주아라고 부르든 독일인과 유대인이라고 부르든 여성과 남성이라고 부르든 항상 형태는 똑같다. 부조리한 피해를 받고 있다고 여겨지는 집단이 부조리하게 가해한다고 여겨지는 집단을 공격하고 부수고 전복시키고 마침내 혁명을 이뤄야 한다는 너무나 간단한 구조다.
 그런데 마르크스의 책을 읽다 보면 아무리 뒤져도 도무지 명시되지 않은 부분이 있다. 투쟁과 혁명이 완수된 뒤 도대체 그들의 사회가 어디로 갈 것인가에 대한 점이다. 당장 공산당 선언만 읽더라도 그의 이론대로 혁명이 성공한 이후, 그가 설계한 사회를 만들어낸 뒤, 마르크스는 그 사회가 이미 완벽한, 낙원이나 다름없는 사회이기 때문에 계속해서 잘 굴러갈 것이라는 뉘앙스만을 풍기고 있다. 역사적으로 공산국가들이 결국에는 독재자의 경찰국가가 되거나 경제적으로 패망하거나 국제사회에서 고립됐다는 사실을 살펴보면 그것이 결코 ‘영구히 유지되는 낙원’이 아니라는 건 간단하게 알 수 있다. 그러나 더 큰 문제점은 공산주의가 낙원을 잘못 설계했다는 점이 아니다. 사회가 ‘피해자’와 ‘가해자’만으로 분열되고 그걸 극복하는 방법이 오로지 ‘피해자’ 측의 열광적 혁명활동이라는 점이 제일 큰 문제다. 정말로 ‘피해자 집단’이 혁명을 완수해서 그들이 생각하기에 완벽한 사회구조를 만들면, 아니 정말로, ‘완벽한’ 사회구조라는 게 그들에 의해서 만들어진다면,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낙원은 변하지 않는다. 낙원은 발달할 이유가 없다. 낙원은 고통과 죽음을 겪으며 진화할 이유도 없다.
 무동성(無動性)의 사회에 남은 가능성은 쇠락과 패망밖에 없다. 왜냐하면 이 우주에 영원이라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 옛날 구약성경의 저자들조차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에덴동산에서 거주하는 이들의 결말은 에덴동산으로부터의 영원한 추방밖에 없다. 설령 그러한 신화적 파라다이스가 존재한다고 치더라도, 인간은 자신들이 ‘인간성’이라고 부르는 것에 의하여 ‘완전무결한 사회’라는 개념으로부터 본질적으로 괴리되어있다.

 그리고 사실은 그들보다 자신의 정신상태가 훨씬 엉망진창이라는 걸 알면서도 이런 글이나 쓰고 있는 나는, 점점 더 절박해지고, 초조해지고, 인생에서 구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여기는 나는, 완전한 사상 같은 것이 아니라 THC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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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대화

기록/생각 2020. 8. 26. 16:00 |

(이 친구 한국어가 내 영어보다 못 해서 영어로 진행됐다)

우리 부모님 집에 고양이 두 마리 있던 거 기억해?

그래, 까만 거 두 개 있었지.

그 중에 암컷이 너무 늙어서 미쳐버렸었나봐. 다른 놈을 이유도 없이 공격하고, 사방팔방에 오줌을 갈기고, 시도때도 없이 울어대고.

뭐야, 고양이 알츠하이머 같은 거라도 걸렸나.

아마도. 그래서 아버지가 어떻게 했는 지 알아?

말해 봐, 재밌을 것 같은데.

뒷마당에 삽으로 구멍을 파고, 거기다 간식을 던져두고 고양이가 들어가게 한 뒤에 두 방을 쏴버렸어.

아저씨답네. 그래서 내가 너희 남부사람들을 좋아해.

왜?

블루스테이트 사람들은 너희더러 무식한 레드넥이니 전쟁광 공화당 지지자니 하지만, 가식없고 실용주의적으로 무식한게 온갖 감성이나 권리 지랄에 시달리는 자칭 지식인보다 훨씬 나아.

헤, 아무튼 아버지가 전화로 그러더라고. 그 짜증나는 거 안락사 시키려면 적어도 2백 달러 들어가는데, 총알 두 방은 50센트도 안 한다고.

하! 50센트? 진짜? 그거 아저씨가 늘 뒷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손바닥만한 핸드건에 들어가는 거야?

아니, 구경 약간 더 큰 소음기 달린 자동권총. 정확히 몇 mm인지는 모르겠는데 건샵가서 계산해보면 한 발에 25센트도 안 해.

망할, 이 얘기 뉴욕 같은 데 사는 놈들이 들으면 난리 나겠네. 분명히 게거품 물고 동물권리에 총기문제까지 울부짖으면서 전국적 이슈로 몰고가려고 하겠지.

하, 동물권리.

그러게. 그 단어 처음 만든 놈이 대체 누구야. 젠장, 아저씨 죽기 전에 한번 뵈러 가야되는데. 니 얘기 들으니까 더 보고 싶네.

이 코로나 난리부터 어떻게 되야지.

내 생각엔 일루미나티 애들이 원래 하려던 짓 대신 끝내주고서야 해결이 될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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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26

기록/생각 2020. 8. 26. 00:20 |

 어제 아침에 일어나자 이유를 알 수 없는 통증 때문에 고생했다. 하복부에서 불알까지 연결된 뭔가가 찢어지는 듯한 통증이 한 시간 넘게 지속됐다. 별로 놀랍지도 않다. 이렇게 담배를 태워대고 매일 술을 마시니 어딘가는 망가지겠지. 여하간 그 통증을 겪으면서 담배를 피우러 계단을 내려가는 내가 미련해서 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하루 종일 뭘 했더라. 그렇지, 오후 2시에 은행일을 보러 바람도 불지 않고 찌는 듯한 날씨에 40분을 걸어갔는데, 머리고 셔츠고 땀범벅이 되서 창구의 은행직원과 얘기해보니 굳이 신한은행까지 오지 않더라도 집앞에 있는 지역농협에서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멍청한 새끼. 직원이 ATM에서 처리하면 수수료가 더 싸다고 했지만 거기까지 간 게 아까워서 그냥 수수료 2천원을 내고 송금한 뒤 돌아왔다. 분명 나중에 통장에 2천원만 남아서 4천원짜리 담배를 못 사 손가락을 물어뜯는 일이 발생할 것이다.

 그리고 온종일 방바닥에 늘어져서 아무것도 안 했다. 스피커에서는 병신 같은 라디오헤드 음악만 계속 흘러나왔다. 점점 우울해지고, 점점 끔찍한 기분이 되고, 어딘가에 권총 한 정이라도 떨어져있으면 신을 믿게 될 텐데. 그게 야훼일지 알라일지 심지어는 제우스일지 나도 모르지만.

 어느새 밤이 되서 동생이 사다 놓은 맥주를 마시다가 담배를 피우러 나갔다. 뒷편 빌라에서 어떤 미친새끼가 뜬금없이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 목소리는 전날에도 들었다. 비가 왔는데, 천둥이 칠 때마다 박자라도 맞추는 듯이 고함을 질러댔다. 또 한 번, 놀라운 일도 아니다. 이 동네에 사는 인간들은 죄다 이 모양이다. 고함, 괴성, 욕설, 파괴음. 물론 나도 포함해서 말이다.

 이미 약도 먹어버려서 자려고 건물을 올라오는데, 3층 즈음에서 2주 전부터 이상한 냄새가 난다. 집안에서 된장이라도 띄우는 건지 시체가 썩고 있는지, 하여간에 끔찍한 냄새가 계속 나는데 관리인도 없는 이 건물에서 누구에게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있다 한들 말해서 뭐하겠는가.

 이걸 쓰다보니 어느새 26일이 되었다. 알코올과 약기운 때문에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다. 왜 또 내일이 와야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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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17

기록/생각 2020. 8. 17. 08:09 |

 이제 다 그만두고 싶다. 하지만 자살만은 안 된다. 그것은 항복이기 때문이다. 고통도 불행도 전부 내가 짊어질 일이다. 누가 뭐라고 하든 난 피해자가 되지 않는다. 멍청한 피해의식끼리 연대 하는 것도 거부한다. 그러나 모든 것이 점점 더 견디기 힘들어진다. 고해의 심연에 더 깊게 빠져들어가는 기분이다. 그러나 자살만은 안 된다. 그것은 항복이기 때문이다. 항복만은 안 된다. 생명의 유일한 존엄은 생존하는 것뿐이다. 도덕도 민족도 신앙도 의미도 허구에 불과하다. 생명의 목적도 의무도 권리도 오로지 생존뿐이다. 그러니까 죽음에게 백기를 흔드는 행위야말로 생명이 저지를 수 있는 유일한 죄악이다. 처벌 받지도 용서 받지도 못하는, 자기 자신을 있지도 않은 것으로, 있었던 이유조차 없게 만드는 유일하고 최악의 죄다. 지금껏 살아온 생존의 역사를 모조리 덧발라버리는 극악한 허무고 자기 자신이 우주의 그 무엇보다도 나약하다고 선언하는 주체 없는 자기혐오다. 그러나 모든 것들이 계속해서 견딜 수 없어지고 있다.

 톨스토이는 틀렸다. 일관성 있고 강인한 정신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은 자발적 죽음이 아니다. 일관성 있고 강인한 정신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은 모든 생명의 궁극적 적인 죽음과 영원무구하게 투쟁하는 것이다. 필연적으로 패배할 때까지 투쟁하는 것이다. 필멸성이란 말은 괜히 생긴 것이 아니다. 모두가 알듯이 패배는 결정되어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절하고 비참하고 추악하고 비겁하게 적군을 물어뜯다가 패배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말하자면 유일한 존엄이다.

 이제 다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끊이질 않고, 내가 내 유일한 존엄을 버릴 정도로 상태가 악화될까 두렵고, 우주에서 가장 나약한 정신의 소유자라고 선언할까봐 불안하다.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계속 약을 먹는 것이다. 고통과 불행이 죽음에 대한 증오로 뒤덮이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가장 편한 선택은 언제나 가장 취약한 존재가 되도록 만든다. 그러나 언제나 마음 한켠에서는 無가 되는 것에 대한 갈망이 내 존재의 쌍둥이처럼 서있다. 아마 프로이트는 이걸 두고 타나토스라고 이름을 붙인 게 아닌가 싶다.

 모르겠다. 사고하는 것도 고통스럽다. 이제 약을 먹을 시간이다. 저녁에 일어나면 중추신경이 리셋되서 잠시나마 나아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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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사에게

기록/생각 2020. 7. 31. 07:41 |

팔사에게


 미안하다. 나는 네 이름인지 애칭인지가 팔사였다는 것만 기억할 뿐 이미 성도 기억나지 않는다. 너는 내가 캘리포니아에서 처음 사귄 친구였다.
 웨스트우드에 예약해둔 싸구려 게스트하우스에 들어가 체크인을 하고, 나는 6명이 쓰는 좁은 방으로 들어갔다. 애매한 낮시간이었는지 내 2층 침대의 1층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 젊은 흑인 남자 말고는 방에 아무도 없었다. 나는 구석에 캐리어를 놔두고 바로 공용주방 겸 로비로 나왔다. 거기서 너는 테이블에서 노트북으로 프로그래밍 작업을 하고 있었다. 내가 게스트하우스의 구조를 파악하려고 이리저리 돌아다니자 너는 나를 발견했고, 하던 일을 멈추고 내게 인사를 해왔다.
 우리는 인사를 하고 가벼운 자기소개를 했다. 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영어권 사람들이 내 본명을 도무지 발음하지 못한다는 사실 때문에 MJ라는 이니셜을 이름 대신 쓰고 있었다. 그런데 너는 내게 곧장 한국인이냐고 물었다. 내가 그렇다고 하자 너는 서툰 한국어로 이렇게 말했다. “반갑습니다. 나는 팔사입니다.” 내가 재미있어하며 어디서 한국어를 배웠냐고 묻자, 너는 대학에서 많은 한국인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약간 배웠다고 했다. 또 한 번, 미안하다. 나는 네 국적도 떠오르지 않는다. 네 피부가 인도인을 떠올리게 했으나, 억양은 전혀 인도 억양이 아니었고, 네 영어는 거의 모국어 수준이었다. 네가 어디서 왔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당시 미국 국적을 취득하기 위해 여러 가지 일들을 하고 있다고 네가 말한 것을 기억한다. 그 후에도 가끔 로비에서 노트북으로 프로그래밍 작업이 아니라 그린카드 관련 서류작업을 하던 모습을 기억한다.
 너는 아마도 꽤 오랫동안 게스트하우스에 머물렀던 것 같다. 네가 나를 게스트하우스의 친구처럼 지내는 직원들과 다른 숙박객들에게 소개해주었다. 두 달간 그곳에서 지내면서 어울렸던 친구 중 3할 정도는 네 소개 덕분이었다. 문신이 많은 슬라브계 미인이었던 접수창구 아가씨도 네가 소개해주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녀는 내가 영어로 말하는 방식을 재미있어했고, 몇 주인가 뒤에 UCLA로 함께 산책을 가기도 했다.
 네가 소개해주었던 사람 중 40대쯤 된 이스라엘계 아저씨도 기억한다. 그다지 친하게 지내지는 못했다. 아무래도 그는 굉장한 고학력자였는지 일상회화가 몹시도 고급어휘라서 내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대화가 끊길 때가 많았고, 그것을 답답해했다. 그리고 이것은 그저 그와의 대화라거나 그의 태도 등으로 추측한 것에 불과하지만, 아무래도 그는 자신이 누가 봐도 이스라엘 혈통의 외모를 갖고 있는데 미국에 있다는 것 자체가 여러 정치적, 감정적 이유 때문에 불편한 듯했다. 이것만으로도 내가 그와 그다지 가깝게 지내지 않을 이유가 되었다.
 너는 자신이 소셜 스모커라고 했다. 담배를 피우는 것에 반감은 없지만 능동적으로 나서서 피우지도 않는다고 말이다. 나는 이미 중독자였기 때문에 거의 20분 간격으로 현관과 그대로 이어진 옥상으로 가서 담배를 피웠다. 가끔 다른 흡연자 숙박객들과 셋 정도 모여서 대화를 나누는 널 보았는데, 그들이 모두 담배 연기를 뻐끔거리고 있어도 너는 담배를 피우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게스트하우스의 숙박객 모두가 ‘옥상에 가면 항상 MJ가 있다’고 인지하게 될 때쯤, 너는 가끔 나에게 와서 한 대 빌려달라고 하곤 했다. 피우면서 ‘엄청 독한 걸 피우는군’하는 멘트도 거의 매번 반복되었다. 웨스트우드는 해변과 그리 멀지 않았고 당시의 계절 때문인지 옥상에서는 늘 강한 바람이 불었다. 당연히 너는 라이터를 가지고 있지 않았기에 내가 불을 붙여주거나 라이터를 빌려주었는데, 옥상 난간 밑으로 허리를 숙이지 않으면 불붙이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그래서인지 어느 날 너는 내게 선물이라고 상자 하나를 주었다. 내가 뜬금없이 뭔 선물이냐고 했지만 너는 그냥 웃으면서 열어보라고 했다. 그것은 전기로 충전하는 플라즈마 라이터였다. 당시로써 그건 신기술이었고 그것이 얼마인지 굉장히 신경이 쓰였지만, 나는 그냥 물어보지 않기로 했다. 그냥 고맙다고, 덕분에 우리 둘 다 담배에 불붙이는 일이 쉬워지겠다고 말했다. 사실 속으로 나는 네가 왜 나한테 이런 호의를 보이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미안하다. 그 라이터는 3~4년 가량을 유용하게 쓰다가 네팔에서 귀국할 때, 배터리가 다 떨어져 스파크가 생기지 않길래 별생각 없이 셔츠 앞주머니에 넣고 공항검색대를 통과했는데, 스캔에 걸려서 공항직원이 보여달라고 하기에 ‘켜지지 않는 라이터입니다’하고 건넸더니 공항직원이 스위치를 누르자 플라즈마 스파크가 연결되는 말도 안 되는 일이 생겼다. 당연히 압수당했다. 다시 한 번 미안하다.
 이건 좀 다른 얘긴데, 네팔공항은 그 어떤 승객도 화기를 소유한 채 터미널로 들어갈 수 없게 되어있었다. 그런데 정작 터미널에는 흡연실이 있었다. 흡연실의 그 누구도 라이터나 성냥을 가지고 있지 않은데 다들 담배를 피우는 이상한 광경에 내가 당황해있자, 나보다 먼저 들어 와있던 어느 젊은 백인 남자가 날 보고 웃더니 내게 자신이 피우던 담배를 보이며 손짓을 했다. 나는 바로 알아듣고 내 담배를 문 채 그 남자가 피우는 담배의 불씨를 내 담배로 빨아들였다. 나중에 안 건데 영어권에서는 그걸 ‘Monkey Fuck’이라는 상스러운 비속어로 표현하더군. 아무튼 나는 담배를 피우다가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닫고 그 남자에게 영어로 물었다. ‘도대체 누가 처음 시작할 수 있었던 겁니까?’ 그러자 백인 남자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아무도 모르죠. 그냥 언제 어느 때고 흡연실이 비는 일이 없어서 계속 연결되는 거예요.’ 나는 허탈하게 웃고, 더 이상 생각하기가 귀찮아서 그냥 불교국가의 신비라고 얼렁뚱땅 넘어가 버렸다.
 다시 돌아와서, 그 플라즈마 라이터를 네가 선물한 이후부터, 나는 왠지 모르게 너와 덜 가깝게 지내게 되었다. 내 머리는 항상 그런 일들을 정신분석하려고 하지만, 나는 그러고 싶지 않다. 그저 브라질에서 온 파블리시오나 세르비아에서 온 넴 등 보다 내 말초적 쾌락성향에 어울리는 친구들을 사귀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물론 내 뇌 어딘가는 그게 진실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겠지만. 그래서 나는 계속 미안하다고 하고 싶다.
 너도 기억할 것이다. 내가 게스트하우스에 머물기 시작한 둘째 날부터, 나는 공용 냉장고에 MJ라고 써놓은 맥주의 숫자를 늘 여섯 병으로 유지 시켰다. 나는 항상 아침 7시에 일어나자마자 맥주 한 병을 마시면서 담배를 피웠고, 정오가 될 때까지 로비의 소파에 늘어진 채 나머지 5병을 마시면서 주기적으로 옥상으로 나가 담배를 피우거나 일어나서 로비로 나오는 친구들에게 인사하고 수다를 떨었다. 어느 날 아침 7시부터 맥주병을 비우고 있는 나를 본 넴이 유쾌하게 비꼬는 얼굴로 ‘You are such a beast.’라고 말한 것을 기억한다. 그런 농담에는 이미 한국에서부터 앤드류라는 친구 덕분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리고 정오가 되어 맥주가 다 떨어지면 나는 근처의 대형마트로 가서 6병을 더 사왔다. 아무래도 좋은 이야기지만, 아칸소나 텍사스에 있었을 때도 그렇고, 미국인들은 내가 이미 한참 전에 성인이 된 나이라는 것을 여권을 제시하기 전까진 좀처럼 믿어주질 않는다. 예전에는 심지어 고등학생이 아니냐는 푸에르토리코 출신 캐셔의 말에 당황도 했었다. 하지만 그 뒤에 지역 고등학교 풋볼 경기를 보러 갔을 때 선수들이 헤드기어를 벗은 모습을 보니 납득이 되더군.
 너는 어떻게 생각했을까? 캘리포니아에 발을 들이고 이틀째가 되자마자 나는 24시간 취한 채로 생활했다. 네가 그걸 몰랐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옥상에서 흡연자들이 만드는 서클이 가끔―아니 자주 ‘지금 내가 있는 곳에서는 문제지만 그곳에서는 문제가 아닌 흡연자 모임’으로 변할 때도, 너는 나에게 담배를 빌려 피우면서 내가 담배 비슷한 것을 거의 매일 같이 피우는 것을 너는 보았다. 게스트하우스에서 보내는 두 달 동안 나는 깨어있을 때도 취해있었고 잠을 잘 때도 취해있었다. 나는 너의 웃는 갈색 얼굴만이 기억이 난다. 네가 웃지 않는 얼굴이 아예 기억에 없다.
 나는 애당초 휴가를 간 것도 여행을 간 것도 아니었다. 과거에도 비슷한 글을 썼지만, 나는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으로 도망간 것이다. 그리고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 나 자신도 나를 잊어버릴 만큼 뇌신경의 활동을 있는 힘껏 눌러 죽인 것이다. 유명한 노래에서도 암시하듯이 캘리포니아는 정말 천국 아니면 지옥이거나 그 둘이 형질을 무시하고 혼합된 곳이었다. 거기서 만난 인간들도 모두 천국이거나 지옥의 주민, 즉 존재의 정당성이 구조적으로 불필요한 인간들이었다. 팔사, 너를 제외하고. 너의 그 언제나 친절하게 웃는 얼굴과 호의만 제외하고 말이다.
 내가 게스트하우스에서 지낸 지 한 달하고 반이 지났을 때 너는 슬슬 다른 곳으로 떠나야겠다고 했다. 이제는 네가 말해줬던 이유도 기억나지 않는다. 집을 구한 건지, 그린카드 문제는 어떻게 된 건지, 돈을 벌기 위해 외주작업을 하던 프로그래머 일은 어떻게 됐는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네가 며칠 뒤에 게스트하우스를 떠난다고 내게 말했고, 난 네 짐 싸는 일을 도와주겠다고 했다. 너는 당연히 웃으며 고맙다고 했다. 처음 들어가 본 네 방 역시 6명의 남자가 쓰는 방이었다. 유독 네 침대 주변에만 오랜 생활의 흔적이 보였다. 나중에 처리하기 쉽고 작은 값싼 가구, 몇 개의 포스트, 평소 로비에서 쓰는 것과는 다른 작업용 노트북 또 하나. 짐을 싸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떠나기 전 너는 내 핸드폰의 카카오톡에 네 아이디를 친구 등록하고 작별인사를 했다. 틀림없이 한국 친구가 꽤 되는 것이겠지. 작별인사를 하며 나는 상투적으로 보고 싶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나는 네가 떠나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미안하다. 그러나 악의로는 생각하지 마라. 너도 기억할 것이다. 도대체 언제부터 이 게스트하우스에 있던 것이고 언제까지 있을 것인지 짐작조차 불가능한, 그 키와 덩치가 크고 대머리에 턱수염이 덥수룩한, 안경을 쓴 50대의 백인 남자를 기억할 것이다. 게스트하우스의 모두가 그를 알고 있었지만 사실 그 누구도 그가 누군지 몰랐다. 그는 절대 게스트하우스를 떠나지 않았고, 아침부터 밤까지 계속 건물 안과 옥상을 아주 느린 발걸음으로 돌아다니기만 했다. 나나 누군가가 아침 인사를 하거나 간단한 용무를 물으면 조금 느리지만 친절한 톤으로 대답은 했지만, 그 이상의 대화가 이루어지는 일은 절대 없었다. 사실 나는 항상 그 남자를 머릿속에 담아두고 있었다. 그러나 전혀 궁금증도 의심도 없이, 무엇을 의식했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그는 마치 현상 같았다. 네가 떠난 뒤, 어느 날엔가, 늦은 저녁에 나는 옥상에서 평소처럼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런데 그 남자가 언제나와 같은 아주 느린 걸음으로 다가오더니, 예상치도 못하게 ‘담배 한 대 빌릴 수 있을까’하고 물어왔다. 나는 그에게 담배와 라이터를 건넸다. 그는 ‘Thanks’라고 하더니 담배에 불을 붙이고, 나와 약간 간격을 둔 거리에서 아무 말도 없이, 뭘 보는 건지도 알 수 없는 눈으로 조용히 담배를 피웠다. 나도 말없이 내 담배를 마저 피웠다. 그는 담배를 다 피우고 꽁초를 버린 뒤 뒤늦게 알아차린 것처럼 내게 라이터를 돌려주었다. 그리고 다시 평소처럼 아주 느리게 건물로 들어갔다. 그리고 또 계속 목적도 없이 돌아다녔다.
 보름 정도 뒤 나도 웨스트우드를 떠났다. 그쯤에는 이미 MJ라는 인간은 게스트하우스의 모든 이들에게 해롭지 않은 쾌락주의자, 물 대신 맥주를 마시는 아시아인, 담배 냄새에 찌든 편한 잡담상대 정도로 여겨지고 있었다. 그래서 나도 인디애나로 떠났다. 이미 모두가 MJ라는 인간을 알고 있었다. 마침 그럴 구실과 돈이 생기기도 했고.
 떠날 수 있다는 것이 중요했다. 너도 그랬으리라고 생각하고 싶다. 미안하다. 네가 떠난 뒤 나는 단 한 번도 너에게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내지 않았다. 그래서 미안하다는 것이고, 그래서 나는 지금도 갖고 있는 네 아이디에 절대 메시지를 보내지 않고, 네가 절대 볼 일이 없는 이 글에서 네게 미안하다고 하고 싶다.
 여전히, 그 플라즈마 라이터가 내 손에 있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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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하간, 이태원 기록


어떤 날이었지. 그날은 어떤 날이었던가.
이태원의 한국인보다 외국인이 더 많은 바에서
독약 같은 술을 흠뻑 마시고 끔찍하게 취해
일부러 인종주의자 행세를 하며 사장에게 시비를 걸다가
가게 옆 쓰레기장에서 바라 마지않게 쥐어 터지고
멍든 얼굴로 심야버스를 타고 귀가하던 날은,

사실 그 시절 나의 친구들은
무지개를 갖다 놓은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피부색이 가지각색이었지
초록색이나 보라색 피부인 친구가 있었다면 정말 놀랄 일이었겠지만.
여하간, 여하간 취하고 추한 모습으로 습기 찬 버스에서
너무 습기 차 창문 밖이 보이지도 않았지, 여하간
나는 발작이라도 일으키는 것처럼 옆자리의
우산을 쥔 채 경계하는 눈초리로 내 멍든 얼굴을 흘낏거리는
그 젊은 여자가 내 옆자리에 앉았다는 게 너무 우스워서
발작처럼 이렇게 말했지: 무슨 일이었는지 설명드릴까요?
여자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니오’라고 즉답했지
그 ‘아니오’는 내게 ‘당신처럼 비일상적인 존재는 나에게 갑자기 말을 걸 자격이 없다’는
그런 뜻으로 들렸고, 아마 어느 정도는 맞았을 거야, 그래서 나는
더 이상 그 ‘일상의 여자’의 심기를 건드리고 싶지 않아서
깔깔대는 웃음을 내장 속으로 삼켜 넣고 조용히 앉아있었지
나중에 결국 그 버스에서 있었던 일을 단편소설로 썼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어쩐지 한숨이 나오고, 어쩐지 지긋지긋하고, 아아, 이런 건 그만두고,
여하간, 버스에서 내리니 그곳은 그야말로 갈림길이었지, 그 순간에는
정말이지 모든 것의 갈림길이었지
정류장에서 600미터만 걸어가면 내 진정제와 수면제를 삼키고 잘 수 있는 집이 있고
반대편으로 500미터만 걸어가면 내 친구가 심야 아르바이트를 하는 편의점이 있었어
아! 광기의 신이라는 게 있다면, 분명 그 순간에 내게 계시를 내린 거야
나는 정말로 친구가 보고 싶었어. 세상에서 가장 지독한 외로움이 날 사로잡은 것처럼.
순식간에 나는 희희낙락하여 춤추듯이 발걸음을 옮기고
결국에는 단 10초도 아깝다는 듯이 편의점을 향해 전력질주를 했지
그런데, 그런데 내가 이미 디오니소스보다도 만취했다는 이야기를 했던가?
취했을 때는 달리면 안 돼. 이건 교훈적인 이야기기도 하다고.
돌부리는커녕 아무것도 없는 콘크리트 바닥에서 나는 나자빠졌고
너무 빨리 달리고 있었기에 얼굴을 바닥에 처박은 채로 30cm 정도를 밀고나갔어
순간 눈앞에서 자동차 하이빔 같은 게 번쩍였는데, 그게 뭔지는 모르겠고
여하간 일어나보니 얼굴의 절반이 화끈거리고 만져보니 피와 시멘트 가루가 묻어나왔지
그런데 전혀 아프지는 않았지, 물론 알코올 때문이야. 피가 나니 기분이 더 고조됐지.
도파민과 아드레날린과 알코올로 뒤범벅인 유쾌한 생물체가 되어,
나는 편의점 문을 열고 들어갔지. 안녕 친구! 일 할만 하냐?
사실 그 친구는 내게 감사해야 했어. 졸업 후에도 일거리가 없어 전전긍긍하던 것을
마침 그 편의점 사장이 나랑 아는 사이였거든. 뭐 나중에 알고 보니
쓰레기 같은 자린고비였지만.
여하간, 그 새벽에 편의점에 있는 건 친구만이 아니었어, 웬 40대 중반의
말쑥한 신사 아저씨 하나가 뭔가를 사고 있더군.
친구는 카운터 안에서 질색인 얼굴로 날 쳐다보고만 있었어, 하긴
그럴 만도 하지. 걘 학생 때부터 내 이런 꼴을 한두 번 본 게 아니거든.
그런데 초면인 신사 아저씨는 놀란 얼굴로 내게 다가왔어, 그리고는
어디서 이렇게 다쳤어요? 얼굴 반이 날아갔네! 그러면서 주머니에서 뭘 꺼내더군
난 친절한 사람들을 좋아해. 친절하며 사회적 책무를 이행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그런 사람이면 더 좋아하지. 나는 그냥,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선생님도 술 취했다가 자기 보신 못해서 다치는 젊은이들 많이 보셨을 텐데요.
무슨 희극 연기자라도 된 것처럼 말이야. 실제로 그때 기분이 굉장히 방방 뜨기도 했고.
여하간 신사 아저씨가 주머니에서 꺼낸 건 반창고였어. 왜 그런 걸 들고 다녔을까.
그리고 내가 괜찮다는 데도 자기 생수로 내 얼굴을 닦아내고 반창고를 붙여주더군.
그때도 똑같은 생각을 했어. 호의는 알겠는데,
이게 손가락에 붙이는 반창고 열댓 개 붙인다고 도움이 되겠냐고.
여하간, 여하간 나는 신사 아저씨에게 감사를 표하면서 생수값이라도 물어드리려고
지갑에서 천 원짜리 몇 장을 꺼냈는데, 결국 받지 않더군, 그는 내게
몸조심하라면서 떠났고, 마침내 카운터 앞에 히죽거리는 얼굴로 도착한 나에게
친구는 질책하는 건지 걱정하는 건지 포기한 건지 알 수 없는 얼굴로
집에 가라. 가서 약 먹고 자고, 아침에 병원 가라. 이러기에
내가 네 얼굴이 보고 싶어서 뛰어오다가 넘어졌다고 하니까 말이야
도대체 왜 술 먹고 뛰냐고 흥분한 기색도 없이 지적하더군
생각해보니까 친구 말이 맞아서 난 교대시간인 오전 6시까지 수고하라고
손을 흔들면서 밖으로 나갔어. 그때 순간 찬바람이 한줄기 불었던 걸 기억하는데
그 순간 얼굴이 감전된 듯 아프더군, 여하간
여하간 난 집으로 갔고, 그때 난 가족들이랑 같이 살고 있었는데,
문을 열고 들어가자 어머니였는지 아버지였는지
둘 중 하나가 기다리고 있었고, 내 얼굴을 보고 말을 못 잇던데
난 여전히 모든 상황이 채플린 영화보다 유쾌하게 느껴지고 있었고
어머니에게 새빨갛게 웃음지어 보인 뒤 내 방에서 약을 먹고 쓰러졌지.

어떤 날이었지, 그 날은 정말 어떤 날이었을까.
그날 난 몇 살이었지? 21살? 22살?
그날 내 뇌하수체에선 무엇이 분비되고 있었을까?
애당초 이태원 따위는 왜 갔었던 걸까?
난 그런 북적이는 유흥가는 태어났을 때부터 거북했는데 말이야.
여하간, 두 달 정도 얼굴 절반을 거즈로 가린 채
바람만 불어도 눈물이 쏟아질 만큼 상처가 아팠고
여하간, 아예 그런 꼴로 밖을 쏘다니니
행인들이 내 외과적 문제 때문에 날 쳐다본다고 생각해서 마음이 편안하고
피해망상도 덜 했는데
여하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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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11

기록/생각 2020. 6. 11. 17:01 |

이건 무슨 저주에라도 걸린 것 같다.

하루 종일 작품에 대해 생각하고 쓰는 것을 멈출 수가 없다. 자려고 누웠다가도 변경해야할 단어나 문장구조가 떠오르면 벌떡 일어나 컴퓨터 앞으로 간다.

카페인을 몹시 조심하고 있다. 카페인 60mg이라도 섭취했다가는 카페인이 아니라 암페타민을 먹은 것 같은 현상이 일어난다. 과거에 하루 드립커피를 대여섯잔 씩 마셨던 것을 생각해보면 우스운 일이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비사코딜이 도움이 된다. 하루 왠종일 정신이 과운동하고 있지만, 형형색색의 칵테일인 아침약과 취침약을 제외하면 내가 하루에 임의로 복용할 수 있는 신경안정제는 자낙스 두 알 뿐이다. 가장 긴급할 때만 써야한다. 안 그랬다가 고통을 겪는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쩐지 비사코딜 10mg이 도움이 된다. 전혀 기작을 짐작할 수 없지만, 그다지 먹는 것도 없는데 장 속을 텅 비우면 신경이 좀 안정된다.

저녁 6시 쯤에는 꼭 자낙스 한 알을 복용한다. 그때쯤 아버지가 퇴근하시는데, 보통 오후 6시까지 난 3~4시간을 쉬지도 않고 글을 쓰느라 뇌에 불이 붙은 상태다. 아버지에게 내 분노문제와 히스테리컬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다. 인간이 생화학적 기계에 불과하다는 내 믿음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그 알프라졸람 제제는 순식간에 날 친절한 가족구성원으로 만들어놓는다. 이후 두 시간 정도 진정한 채 내가 좋아하는 음악과 영상 따위를 즐길 수 있다는 건 덤이다.

나머지 시간은 오로지 집필과 조사, 집필과 조사, 집필과 조사, 그리고 집필과 조사뿐이다.

예전부터 있어왔던 온갖 현실적인 문제들을 뇌가 무시하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지금 내 뇌는 스스로를 혹사시키면서, 동시에 '이번 작품만 완성한다면' 운운하는 희망만을 이상할 정도로 강조하고 있다.

고통스럽지만 행복하고, 분노에 떠밀려가면서도 행복하고, 히스테리컬한 신경증 환자가 되면서도 행복하다.

이건 그야말로 저주에 걸린 것 같다.

하지만 분명 저주는 아니겠지. 왜냐하면 내가 의학사전에서 '조증 삽화'라는 단어를 검색해보았으니까.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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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23 상태 기록

기록/생각 2020. 5. 23. 17:02 |

20200523 상태 기록


 평온하고, 고통은 딱히 없다.
 어머니가 책을 한 권 주었다. 지금 베스트셀러라고 한다. 마음부터 부자가 되면, 부와 행운이 스스로 굴러들어온다는 내용인 것 같다. 읽어보려고 했다. 항콜린 작용 때문에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아 금세 덮어버렸다.
 서맥이 있는 것 같다. 관련이 있는지 아닌지 잘은 모르겠지만, 요 두 달 사이에 걷는 속도가 놀라울 만큼 느려졌다. 육지거북이와 달리기 시합을 해도 내가 지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머릿속에 먹구름이 잔뜩 끼었다. 그러나 그 먹구름이 비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저 항상 둔하고, 바깥세상에서는 전과 같이 쉴 틈도 없이 자극과 정보가 들어오지만, 그걸 연산하는 능력을 잃어버렸다. 얼마 전 뭔가를 구입하기 위해 간단한 산수가 필요했다. 2만을 100으로 나눠야했다. 30초 정도 생각했으나 도무지 계산할 수가 없었다. 결국 친구에게 물어봤다가 저능아 취급을 당했다. 나는 한 박자 늦게, 내가 이런 산수 문제를 못 풀었다니, 약간 놀라면서 실없이 웃었다.
 바보가 되어가는 것이 두려운 것은 아니다. 바보인 채로 죽는 것은 약간 두렵다.
 5kg 내지 6kg의 체중을 잃었다. 겨우 두 달 사이에. 20대 초에 나는 여러모로 유의미한 저체중이었다. 그때 산 바지를 다시 입어보았다. 조금 헐거웠다. 왜 점점 살이 빠지고 있는지는 사실 알고 있다. 단순히 음식을 먹지 않기 때문이다. 체중감량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평생 그런 짓은 한 번도 시도해본 일이 없다. 단지 어떤 음식을 보아도, 그것이 음식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다. 그것을 입으로 넣어서 맛을 음미하고, 씹고, 삼켜서 소화기관에 보내, 육체의 자양분으로 삼아야한다는 인식이 사라졌다. 한 술 더 떠 며칠을 굶어도 허기를 느끼지 못하고, 한때 자랑거리로 삼았던 미각마저 부서졌다.
 얼마 전 부엌에서 동생이 닭고기로 요리를 하고 있었다. 별 이유도 없이 비척비척 다가가 구경했다. 약간의 충격을 받았다. 나는 원래 닭고기를 좋아했다. 돼지나 소보다도 닭이 단연코 내 취향이었다. 그러나 동생이 손질하고 있는 그것이 도무지 닭고기로 보이지 않고, 그저 동물 시체조각으로 보였다. 채식주의 윤리 같은 흰소리랑 연관 지으면 곤란하다. 쌀로 밥을 지어도 그게 밥이라기 보단 단지 아사하지 않기 위해 의무적으로 삼켜야하는 사료로 보이니까 말이다.
 마지막으로 성욕을 느꼈던 것이 언제인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마침 날씨도 따뜻해져 젊은 여자들이 아리땁고 얇은 옷 따위를 입고 활보하는데, 난 이제 그녀들과 걸어 다니는 목각인형의 차이점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사실은
 그저 평온하고, 고통은 딱히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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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골카페 가는 길

기록/생각 2020. 5. 22. 00:06 |

단골카페 가는 길


 5월입니다. 완연한 봄입니다. 가끔씩 내리는 봄비 때문에 느닷없이 추워지기도 합니다만, 봄이 확실합니다. 어떤 날들은 이미 여름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엊그제는 끔찍한 것을 보았습니다. 단골카페에 가기 위해 아파트 단지 안을 걷고 있었습니다. 오후 3시쯤 이려나요. 따뜻한 날씨였습니다만 체질적으로 피부를 드러내는 걸 불쾌하게 여기는 성격 때문에 반팔 티 위에 아버지의 긴팔 후드를 걸치고 있었습니다. 아파트 단지 구석 뒤편에 단골카페가 있었기 때문에 걷는 도로는 음지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톤이 높다고도 낮다고도 할 수 없고, 어떤 기괴한 구절이 반복되면서, 사람이 내는 소리인지 가스통에서 가스가 새는 소리인지도 구별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호기심에 소리의 발원지로 고개를 향하니 100미터 쯤 앞에 사람 세 명이 모여 있었습니다. 남자 한 명과 여자 둘로 보였습니다. 멀리서는 여자 둘이라고 확신하기 힘들었던 것이, 남자와 여자 한 명은 서있는데 나머지 한 명은 시멘트 바닥에 거의 엎어질 듯이 웅크리고 앉아 몸을 흔들고 있었습니다. 괴상한 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그 사람이었습니다. 어차피 그 길로 가야 카페가 나오기 때문에 제가 가까이 다가가는 것은 필연적이었습니다. 얼굴을 못 봐서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만 머리가 길고 풍채가 커다란 여자인 것 같았습니다. 기이한 톤으로 반복되는 구절의 정체는 ‘어떡해, 어떡해.’하며 완전히 상심한 채 절규하는 소리였습니다. 장례식에서의 유난스런 곡소리와 비슷한 것 같기도 했습니다.
 그 여자는 신경질적으로 몸을 앞뒤로 흔들면서 뭔가를 끌어안고 있었습니다. 뭔가 하얗고 붉은 것이었습니다. 시멘트 바닥에는 새빨간 액체가 흥건했고 그것이 경사를 따라 10m 가량 제 쪽으로 흐르고 있었습니다. 남자는 들고 있던 커다란 쇼핑백에서 내용물을 전부 꺼내더니, 텅 빈 백을 웅크린 여자한테 내밀면서 ‘어서 담아!’라고 고함지르고 있었습니다. 그 옆에 서있는 여자는 한 손으로 입을 가린 채 움직이지도 말하지도 않고 있었습니다. 웅크린 여자는 남자의 말을 무시하는 것인지 전혀 듣지도 못한 것인지 똑같은 반복행동만 하고 있었고, 마침내 저는 충분히 가까워져 그녀가 안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피투성이 정도가 아니라 피 웅덩이에 한번 담갔다 꺼낸 것처럼 피범벅인 흰색 개였습니다. 마침 개의 얼굴이 보였는데 눈은 감고 있고,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있었습니다. 남자는 다시 한 번 백을 들이밀면서 ‘빨리 담아! 동물병원에는 가야지!’하며 어쩐지 분노가 섞인 목소리로 고함을 쳤습니다. 소리 지르는 내용을 들어보니 제가 그들을 발견하기 직전에, 어이없게도 그들은 119에 전화를 걸었던 모양입니다. 소방서에서는 와주지 않는다는 둥 그런 얘기를 했습니다.
 카페에 가기 위해 그 길을 걷는 내내 제 발걸음 속도는 일정했고, 피범벅인 개의 얼굴을 봤을 때도 딱히 느려지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아, 무슨 사고인지는 몰라도 끔찍한 일이군,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기도 합니다. 당연하게도 저는 결국 그들을 지나쳤고, 그때까지도 웅크린 여자는 기괴한 절규와 반복행동을 하면서 남자의 합리적인 요구를 완전히 무시하고 있었습니다. 조금 더 걸어 저는 카페에 도착했습니다.
 늘 그렇듯이 카페에는 손님이 저밖에 없었고, 사장님은 우리가 ‘공장’이라고 부르는, 유리벽으로 나눠진 가게 안쪽 공간에서 로스팅을 하고 있었습니다. 원두를 로스팅할 때 나는 소리가 꽤 크기 때문에 문을 열고 들어가도 사장님은 대체로 누군가 왔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합니다. 제가 ‘공장’구역으로 들어가는 열린 문을 두드려야 그는 돌아보면서 인사를 해줍니다.
 저는 ‘카페 구역’에 앉아서 로스팅이 일단락 될 때까지 잠시 멍하니 있습니다. 그 가게에 가면 사장님과 저는 커피를 마시면서 꽤 길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곤 합니다. 가벼운 신변잡기일 때도 있고, 가끔은 신기할 만큼 잣대 없는 마음으로 신이나 우주나 부처에 대한 얘기를 나누기도 합니다. 저는 별 생각 없이 방금 보고 온 피투성이의 이상한 장면에 대해 얘기하려고 하다가 그만 뒀습니다. 사장님이 애견가이고 오래전부터 키우던 두 마리의 개 중 한 마리가 최근에 노환으로 죽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글쎄, 잘 모르겠습니다만, 평범하게 생각하면 아마 그 사실 때문에 말을 않은 것이겠지요. 저는 커피를 마시고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가 해가 기울 때 쯤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것이 엊그제의 일입니다.
 어제도 카페에 갔습니다. 전날의 일은 깡그리 잊어버리고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같은 길을 걸었습니다. 걷다가 길바닥에 뭔가 있어서 보니, 커다란 피 웅덩이가 하루 만에 햇볕과 달빛에 말라 검붉은 핏자국이 되어있었습니다. 잠깐 멈춰 서서 그걸 들여다보았습니다. 그 세 명과 한 마리는 어떻게 되었을까? 어떡해, 어떡해를 연발하던 여자는 만족할 만큼 절규를 하다가 결국 빈 백에 개를 넣었을까? 무슨 관계인지도 알 수 없는 그 세 명의 사람들은 오늘 각각 무슨 감정을 느끼고 있을까? 잠시 그런 생각을 하다가, 사실 나와는 아무 상관없는 일이다, 그렇게 새삼스럽게 깨닫고, 결국 또 커피를 마시러 갑니다.
 오늘도 카페에 갔으나 사장님이 로스팅이니 원두 배달이니 몹시 바빴습니다. 그가 혼자서 ‘공장 구역’과 ‘카페 구역’을 동시에 담당하기가 힘들 때가 있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인사하고, 쌓여있던 생두 가마니가 꽤 줄었네요, 이런 별 의미 없는 말마디를 던지고, 다음에 오겠다고 고생하시라며 가게를 나옵니다. 이럴 때마다 사장님은 제게 미안해하시는데, 사실은 그가 미안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가게 앞 평상에서 담배 한 대 태우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생각해보니 핏자국에 대한 것은 이 글을 쓰기 직전까지 오늘도 깡그리 잊고 있었네요. 누군가가 물청소라도 하지 않았을까요.
 날씨가 본격적으로 더워지면 하는 수 없이 반팔을 입어야할 텐데, 조금 두려운 계절입니다.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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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04

기록/생각 2020. 5. 4. 22:37 |

20200504


 면도라도 합시다. 평이하지 못한 모습으로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것은 충분히 피해망상을 자극할 수 있습니다. 외출이라고 해봤자 새벽에 담배 피우러 집 앞에 나가는 것이 전부기는 하지만, 야밤에도 행인은 있습니다. 츄리닝에 쓰레빠 끌고 아버지 재킷 입은 채로 담배를 피우다 보면 가끔 사람들이 지나가기도 합니다. 어째서인지 대부분 젊은 커플입니다. 저는 본능적으로 숨습니다. 아니, 정확히는 말이죠, 머릿속으로 ‘나는 숨어있다’고 생각하면서 실제로는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습니다. 마치 행인들의 그늘진 얼굴이나 눈동자를 쳐다보지 않고, 지저분한 시멘트 바닥이나 쳐다보면 그들이 나를 발견하지 못할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고 보니 일주일 전인가, 밤을 새버려서 하늘이 밝아오는 오전 6시쯤에 여느 때와 같은 자리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옆 건물 4층의 창문이 열리더니, 아무래도 만취한 것 같은, 런닝차림의 남자가 이상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음정이고 박자고 가사고 도저히 정체를 파악할 수 없는, 노래인지, 아니면 아침이 밝았으니 소음공해로 같은 동네의 모든 사람들을 깨우고자 하는 건지, 그런 괴상한 소리를 내고 있었습니다. 이 남자가 왜 오전6시부터 술에 꼴아있는 건지, 그건 모르겠고…… 사실 생각해보면 여러 가지 추측도 가능하겠지요. 아무튼 이 남자는 한동안 괴성을 내더니 갑자기 이렇게 중얼거리는 것이었습니다. 아이 씨, 담배냄새 나잖아. 그 순간 4층의 창문을 올려다보고 있던 저와 그는 눈이 마주쳤습니다. 아저씨, 거기서 담배 피우지 마세요. 어지간히 혀가 꼬인 말마디였습니다. 평소 같으면 그런 술 취한 명령조의 말투에 짜증이 날 법도 했습니다만, 당시에는 의사가 제 분노장애를 치료하려고 리튬을 하루에 4g씩이나 처방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아무 대답도 없이 조금 위치를 옮겨 내뿜은 연기가 건물 쪽으로 향하지 않도록 했습니다. 위치를 옮기는 도중에도 남자는,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마치 스스로 그렇게 말하는 게 재밌기라도 한 듯, 완전히 조증환자처럼 굴면서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시발, 좀 닥쳐. 입에 담배를 문 채로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게 중얼거렸습니다.

 우울증이 점점 심해져서 상담치료가 필요하다. 그러나 상담치료를 감당할 경제적 여유가 없어서, 아무나 붙잡히는 대로 내 증상을 호소했다. 주변에서 사람이 사라졌다.

 요새 영 정서상태가 극악해서 그런지 떨쳐내려고 해도 뇌를 움켜쥐고 있는 생각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자살에 대한 생각입니다. 처음에야 그냥 어떻게 죽는 것이 간단하고 또한 미니멀리즘하려나 그런 생각이나 하고 있었는데, 생각이란 것이 다 그렇듯 고민의 영역이 점점 넓어지는 것이었습니다. 몇 시간씩 이불 위에서 움직이지도 않고 천장이나 쳐다보다가 한 생각이라 그다지 명료한 사고라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만, 어떤 발상이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자살은 차선책이다. 최선책은 70억 인구를 전부 죽이는 것이다. 지구 위에 혼자 앉아있으면, 딱히 죽지 않아도 모두에게서 완전히 망각된 존재가 될 수 있다. 가치판단도 기준도 완전히 붕괴하여, 행복도 없고 괴로움도 없다. 분명히 존재하지만 전혀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최선책은 물리적으로 거의 불가능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아픔과 출혈과 중독으로 차선책을 선택해서, 차라리 이쪽에서 모두를 망각하는 것입니다. 유심론과 유물론이 마치 계면활성제를 탄 물과 기름처럼 혼탁하게 섞여있네요.
 아아, 인간의 책임이라니. 요즈음은 틈만 나면 맥을 짚듯이 목에서 경동맥을 찾곤 합니다. 만약에 고등학교에 진학했더라면 해부학 수업 비슷한 거라도 듣지 않았을까. 아니, 딱히 경동맥의 위치를 외과의사처럼 명확하게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당장 끊어버릴 생각도 없습니다만…….
 돌이켜보면 그렇습니다. 죽을 만큼 비참하다고 해도, 침울한 상태에서는 아무래도 제가 주변사람들에게 진 빚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런 문장을 수첩에 적는 것입니다. 가장 무서운 것은 아침에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잠에서 깨어났을 때, 침대에서 내 시체를 발견하는 것이다. 그것도 그냥 곱게 죽은 시체가 아니라, 경동맥이 끊겨있고 한 손에는 날붙이가 들린 시체 말이다. 그들에게 도저히 그런 짓은 할 수 없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뭔가에 대해 마구 화가 나고 아드레날린이 분비 되었을 때, 에이, 빚이니 뭐니 무슨 상관이야, 죽어버릴 테다, 살아도 이미 충분히 죄인이란 말이다. 이러면서 자포자기하기도 합니다.
 자낙스를 세 알정도 먹으면 세계의 윤곽이 조금 더 단단해진다는 것을 아시나요. 아주 진절머리가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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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발에 인생을 걸었습니다.」


 「족발에 인생을 걸었습니다.」 축하합니다. 당신이 그 인생이라는 걸 돼지 앞다리에 걸었는지 뒷다리에 걸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여하간 축하합니다. 요식업 종사자가 그런 문구를 자기 가게에 걸어놓을 수 있다는 건 커다란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체질적으로랄까, 선험적으로랄까 그런 발언을 당당하게 할 수 있는 것 자체가 부럽기만 합니다. 아무래도 저는 그런 열정적인 느낌을 주는 문장을 만드는 방법을 잊어버린 것 같습니다. 인생, 인생을 걸다. 아마도 자신의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의미를 그것에 부여했다는 뜻이겠네요.
 족발이 됐든 백신 연구가 됐든, 자신의 인생을 무언가에 거는 사람들은 존경스럽고 사랑스럽고 더없이 무섭습니다. 어떤 대상에 열성적이고 열정적일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그렇습니다. 그런 마음가짐은 저에게 있어 사람들이 말하는 천사의 아름다움 같은 것입니다. 단 한 번도 천사를 만나본 일이 없고, 다른 사람들도 대체로 그럴 것입니다만, 모두가 천사는 아름답다고 말하니 분명 천사는 아름다울 것입니다. 정확히는 아름다워야만 합니다. 그러한 본적도 소유해본적도 없지만 반드시 아름답다고 정해져있는 것에 대하여, 반복합니다만, 그것은 존경스럽고 사랑스럽고 더없이 무섭습니다. 경외라고 할까요. 비유를 위해 하느님이 정말로 존재한다고 가정합시다. 구약신경에 대해서는 그냥 잊어버립시다. 지금 하려는 얘기에 구약신경은 정말이지 도움도 되지 않고, 차라리 방해입니다. 아무튼 그런 완벽하고 아름답고 전지전능하고 초월적이며 상냥하면서도 우리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하는 존재가, 뜬금없이 길거리에 서있는 것입니다. 그럼 당신은 그에게 스스럼없이 말을 걸 수 있을까요. 단언컨대 불가능합니다. 그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황홀경에 빠지고 감당할 수 없는 사랑과 존경이 북받치는데, 그의 완벽함과 초월적인 아름다움 때문에, 당신은 자신의 초라한 존재가 마치 하수구에 사는 해충처럼 느껴질 것입니다. 하느님이 모든 인간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한다고 해도, 그건 별로 중요한 정보도 되지 않습니다. 그의 신령한 옷깃에 인간의 때가 묻을까봐 손을 내밀 수도 없고, 온갖 지저분한 용도로 사용했던 입을 이용해 그에게 말을 걸 수도 없습니다. 자신의 불쾌한 육신의 부품 중 하나인 눈동자로 그를 바라보는 일조차 신성모독으로 느껴질 것입니다. 당신은 무지막지한 공포를 느낄 것입니다……. 그가 무서운 존재여서가 아니라, 그의 완전함이 어쩔 도리도 없이 무섭습니다. 저 같으면 차라리 도망칠 것입니다. 골목거리의 가장 지저분하고 불온한 곳까지 도망칠 것입니다.
 갑자기 웬 천사니 하느님 얘기냐고 의아해하실 수 있는데, 애당초 이건 <무언가에 인생을 걸 수 있을 정도의 열정을 삶에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볼 때 제가 느끼는 심정에 대한 극단적인 비유였습니다. 사실 전 신학도도 개신교도도 아니라서 비유에 오류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만, 하여간에 의미는 전해졌으리라 믿습니다.
 도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균형도 못 잡고 병적인 무기력증에 사로잡혀 살아왔는지. 더 이상 삶에 대한 의욕은커녕 동기도 없고, 저질러왔던 인생은 패악질과 수치, 남은 것은 계속 도주하는 습성뿐입니다. 17살인가 18살 때의 일인데요, 친구가 체스를 두자고 했습니다. 우리는 보드를 펼치고 규칙에 따라 말들을 늘어놓았습니다. 제가 백이라서 먼저 두어야 했습니다. 시작하자마자 킹을 눕히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 네가 이겼어. 농담이 아니었습니다. 정말이지 농담을 할 의도는 추호도 없었습니다. 다만 노력이니 시도니 다툼이니 경쟁이니, 승리하고 패하고…… 아아.
 족발에 인생을 걸었다고 말할 수 있는 당신을 축하하며 질투하고,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당신이 하염없이 무서우니, 당신과 말을 섞는 일은 결코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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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꽃

기록/생각 2020. 5. 2. 22:41 |

붉은 꽃


 아파트 화단에 붉은 꽃이 피었다. 내가 사는 아파트가 아니다. 가깝고 재떨이가 있어서 자주 오는 것뿐이다. 누군가 낡은 접이의자를 가져다놓은 것이 좋다. 요새는 아무것도 안하고 그냥 서있어도 다리가 무너질 것 같다. 아무튼 무슨 꽃인지는 몰라도 아주 새빨갛게 피었다. 해가 넘어갈 무렵이라 사방에 그늘이 졌는데도 꽃은 이질적으로 붉었다. 접이의자에 앉아 느릿느릿 담배를 피우면서, 이렇다 할 의식도 없이 꽃을 보고 있었다. 무슨 연관이 지어졌는지 역사상 유명한 화가들에 대한 생각을 했다. 어쩌면 그들의 시신경은 돌연변이적인 것이 아닐까? 나는 이 꽃을 보고 있어봤자 밤에 핀 붉은 꽃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이것이 딱히 아름답다거나, 미학적으로 가치가 있다거나, 하여간에 무슨 정신적 유희거리라도 되리라는 생각은 전혀 없다. 비단 꽃뿐만이 아니라 세상에 여기저기 뿌려져있는 오브젝트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화가들은 무엇을 보는 걸까? 그들이 그린 그림들에 대해서, 화가들은 아마도 무언가의 아름다움을 발견했기 때문에 그것을 굳이 캔버스에 옮겨놓는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나에게 있어서 이런 행위는 뭐라고나 할까, 정신적이거나 심미안과 관련된 그런 게 아니고, 그냥 그들의 시신경이 남들과는 다른, 난폭하게 말하자면 기형적인 방향으로 형성되어서 보편적으로 보일 리가 없는 화상을 보고 그림을 그리는 게 아닌가 싶은 것이다.
 나는 해바라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아니고, 만약 길거리에 피어있다면 아, 멀대같은 꽃이군, 그런 감상을 하고 그냥 지나쳐버릴 정도의 물건으로 밖에 생각하지 않았다. 4년 전인가 경상남도에 머물 때, 밤에 차를 끓이다가 끓는 물을 오른쪽 발등에 쏟아버린 일이 있었다. 흔히들 입는 화상 정도가 아니라 오른발이 삶은 고기가 되어버렸다. 기절할 정도의 통증이 지속됐지만 나는 즉시 병원에 가지 않았다. 일단 나에게는 자가용은커녕 운전면허도 없었고, 병원에 가려면 같이 사는 노부인을 깨워야했다. 그러나 그녀는 이미 잠에 들어있을 시간이었고, 잠든 노부인을 깨우는 건 민폐라고 생각해 미련하게 끙끙 앓으며 밤을 새웠다. 아침이 돼서야 병원에 갔고, 노부인은 왜 깨우지 않았냐고 타박하고, 심지어 그때 나는 병원비도 없었기 때문에 그녀가 치료비를 전부 내주었다. 한 달 정도 일주일에 한 번씩 노부인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통원치료를 했다. 그녀가 모든 치료비와 약값을 내주었다. 그때부터 그녀와 대화하게 되면 어쩐지 의기소침하게 되었던 것 같다. 지금도 오른발은 흉터가 흉측하고 만지면 감각이 없다.
 1년 전에 나는 이미 서울로 돌아와 있었다. 노부인에게서 소포가 왔는데 한 상자 가득한 책들이었다. 책장 정리를 하다 보니 내가 좋아할만한 책들이 보여 선물로 보낸다는 노부인의 카드가 함께 들어있었다. 그 중에는 빈센트 반 고흐의 화집도 있었다. 언제 어디서 구매한 건지 텍스트가 전부 영어로 되어있는, 영국이나 미국의 출판사에서 낸 화집이었다. 해바라기 그림이 아름다웠다. 꽃 주제에 비현실성과 괴물성을 표현하며 비극적인 아름다움을 갖고 있었다. 즉시 나는 현실의 해바라기도 좋아하게 되었다. 해바라기를 볼 때마다 이미 죽은 반 고흐의 시각소자를 빌려와 꽃을 보는 것 같았다.
 그들의 시각은 분명히 이상하다. 이상하다고 할 정도는 아닐지 몰라도, 적어도 나와는 전혀 닮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반 고흐가 황시증과 이비인후과적 질환을 앓았다는 얘기를 어디서 본 것 같기도 하고……. 여하간 나는 꽁초를 쥔 채 이름 모를 붉은 꽃을 보면서, 누군가는 이 물체를 보고 아름답다고 여기겠지, 내가 그렇게 여기지 못한다는 것이 유감일 것도 없지만 유감으로 느껴졌다.
 그렇게 앉은 채로 죽은 인간마냥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아파트 건물에서 30대 쯤 되어 보이는 남자가 나왔다. 큰 소리로 통화를 하기 시작했다. 맥락을 들어보니 자신의 어린 조카와 통화를 하는 것 같았다. 목소리만 들어도 그가 자신의 조카를 티 없이 맑은 마음으로, 커다랗게 사랑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미지근한 봄바람과 남자의 생기 넘치는 목소리가 날 우울하게 만들었다. 담배는 이미 다 탔다. 빈맥이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납덩이를 삼킨 듯한 마음으로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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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의 효용성과, 이상한 이야기


 아주 뻔한 일본 애정극이었습니다. 스토리는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누가 누구를 흠모하고, 누가 누구를 흠모하는지 흠모하지 않는지 당황해하고, 사랑하거나 배신하고……. 이런 식이니 뭐가 기억날 것도 없습니다. 다만 아름다운 여주인공의 머리칼이 거의 무슨 사상표현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짧았고, 그녀 역시 누군가를 흠모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함께 놀던 쾌활한 남자였습니다. 그러나 그 남자는 여주인공의 친구에게 마음이 있었습니다. 자, 어떻게 봐도 뻔한 구도에 치정극으로 분량을 늘릴 속셈마저 은근히 엿보입니다만, 어쩐지 특정 장면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 것입니다.
 머리가 짧은 여주인공은 다리 위에서 남자에게 자기 마음을 고백합니다. 물론 남자는 부정합니다. 그야 이미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니까요. 남자는 사죄를 하고 다리를 떠납니다. 떠나고 나서야 여주인공은 울기 시작합니다. 왜 우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하여간에 울고, 울고, 사정을 알아챈 친구가 데리러 올 때까지 웁니다. 친구가 집까지 데려다주는 와중에도 웁니다. 자기 침대 위에 쓰러져서도 계속 눈물을 흘립니다. 흑흑, 거리면서 도무지 멈출 생각을 않습니다.
 작품이야 어찌 되었든 간에 이 장면이 인상에 남습니다. 아, 나도 저렇게 운다면 기분이 좀 나아지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예전에 어딘가에서 읽은 바로는 울면 눈물을 통해서 스트레스 성분이 배출된다고 합니다.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 것인지 그냥 미신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자세히 조사해보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인간이 몸 안에서 뭔가를 뱉어내는 경우는 죄다 더 이상 몸에서 쓰일 일이 없는 폐기물들을 배출하는 것이니까, 눈물도 그렇지 않을까 하고 막연하게 납득했던 것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누군가에게 애정을 가지고,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슬퍼하며 눈물 흘릴 수 있는 것일까요. 저도 나름대로 일생일대의 사랑이라는 것을 해보기는 했습니다만, 일이 어긋났을 때 저에게는 ‘슬프니까 운다’는 발상이 전혀 없었습니다. 제가 한 일이라고는 산에서 가장 높은 절벽에 기어 올라가서, 떨어지면 곤죽이 되어 죽을 것이 분명한 높이를 내려다보며, 떨어진다, 떨어진다, 떨어지면 슬픔도 고통도 이 복잡한 상황도 전부 무(無)가 된다, 하며 자살놀이나 하던 것이 전부입니다. 등 뒤에 신라시대에 새겨진 것으로 추정되는 지장보살이 한심하게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제 얘기는 그렇다 치고.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스트레스가 가면 갈수록 심화된다고 하는데, 눈물이 스트레스 성분을 배출하는 게 사실이라면, 자주 우는 사람이 더 건강하지 않을까요. 무슨 이상한 감성주의나 자기비관 같은 건 다 집어치우고, 어떤 울게 만드는 약 같은 거라도 처방해서, 주기적으로 눈물을 흘리면 그것이야말로 신세대의 링거 주사 같은 게 아닐까 싶습니다. 아마 스트레스 성분이 배출된다는 건 머릿속의 망념들을 좀 정리 정돈할 여유도 생긴다는 것이겠지요. 오거나이징(Organizing). 이 영단어는 의미도 의미지만 발음이 재미있어서 좋아하는 단어기도 합니다.
 이야기의 발단이 된 애정극 말입니다만, 끝까지 보고 나니 저 같은 사람이 소비하라고 만든 게 아니었습니다. 실연의 슬픔에 빠져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하는 여주인공을, 그녀의 친구가, 그러니까 그 쾌활한 남자가 흠모하는 여자가 말입니다, 겁간합니다. 아니, 여주인공이 저항하는 묘사가 없었으니 겁간이라는 단어는 좀 이상하군요. 수동적 쌍방합의 하의 성관계라고 할까요. 단어가 길어지는군요. 뭐야 이거,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당황하고 있는 사이에 극이 끝났습니다. 그러고 보니 프랑스 영화에도 이런 맥락을 파악할 수 없는 동성 간의 섹스 장면이 낭만주의적 필터를 친 채 자주 나오기도 하지요. 이상한 이야기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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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기록/생각 2020. 4. 28. 01:45 |

가족


 밖에 나가는 것이 두렵다.
 행인들이 있기 때문이다.
 방안에서 담배를 피우고 싶다.
 그러나 여긴 내 집이 아니다.
 어머니가 쓰러졌다.
 병원에 입원해있다.

 늑골이 참을 수 없이 아프다. 그러나 별 도리가 없다. 늑골인지 가슴인지는 14살 때부터 끊임없이 아파왔다. 흉부외과에서는 아무런 이상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들은 날 신경정신과로 보냈다. 성모병원 신경정신과의 여의사는 내게 엄청난 양의 약을 줬다.

 새벽에 거실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 나가봤다. 어머니가 거실바닥에 쓰러진 채로 구토를 하고 있었다. 일으켜 세워 변기까지 옮겨놓았다. 열 번인가 구토를 했다. 몸을 움직일 힘도 없는 듯 변기를 얼싸안고 있었다. 한참동안 어머니의 등을 쓰다듬었다. 내가 상황에 적합하지 않은 얼굴표정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깐 방으로 가서 의사가 긴급용으로 준 신경안정제를 꺼내먹었다. 15분 정도면 내 얼굴표정에 강박을 가지기보다는 어머니를 걱정하게 되겠지.
 어머니를 거의 짊어 매다시피 해 이불에 뉘였다. 어두운 방 안에 누워 환자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마 나도 환자의 얼굴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어머니가 누워서 불규칙한 호흡을 하는 동안 그녀의 손을 잡고 있었다. 창밖에서 비치는 빛에 어머니의 얼굴 어딘가가 반짝거렸다. 자세히 보니 눈물이었다. 아무 절망도 슬픔도 없이 오랫동안 어머니의 손을 잡고 있었다.
 아침에 아버지가 출근하는 길에 어머니를 부축하고 병원으로 갔다.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거의 아버지한테 온몸을 맡기고 있는 어머니를 보았다. 이제 좀 자야겠다고 생각해서 수면제를 먹고 잠에 들었다.
 어머니가 큰 병원으로 옮겨지는 동안 나는 수면제에 취해 아버지 전화도 받지 못했다.

 “너 얼굴이 누렇게 떴어. 죽으려는 듯이…….” 일주일 전인가 어머니가 내게 한 말이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위장병 때문에 두 달 정도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않았다. 하루에 먹는 식사라는 것이 밥 한 숟가락 정도였다. 엄청난 속도로 살이 빠졌다. 어느 날 아버지는 술기운에 화를 냈다. 굶어죽을 셈이냐고. 가만히 앉아 꾸지람을 들었다. 그러나 어떤 음식이든 입안에 넣으면 불쾌한 이물질처럼 느껴지는 것이 내 잘못은 아니다. 잘못? 아, 잘못이라. 다시 생각해보면 분명 내 잘못이겠지. 심신이 건강하지 못하다는 것은 죄악이다. 자신의 몸이고 정신이고 최악의 결과에 도달하리라는 것을 짐작하면서도, 그저 흘러가고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두는 것은 죄악이다. 스스로의 존재를 책임지지 않는 일은 온 사회로부터 지탄받을 끔찍한 죄악이다.

 새벽에 화장실에서 거울을 보았다. 어릴 때는 총명하게 잘 생겼다는 얘기를 수도 없이 들었다. 지금은 그 얼굴이 광대뼈 밑에 깊은 그늘이 파였고, 눈두덩은 미치광이처럼 툭 튀어나와있다. 추악한 얼굴이라고 생각한다. ‘추악’에 惡이라는 한자가 들어가는 걸 생각해보면 과연 그렇다. 거울에 대고 조소할 용기도 없다.

 가족.
 이보다 더 비극적인 명사가 따로 있을까. 계속 사랑하며 계속 배신한다. 의지로 그러는 것도 아니고, 그냥 그렇게 설계된 인간군집이다. 당신을 사랑하지만 당신을 증오하고, 당신이 사라졌으면 좋겠지만 정말 사라진다면 견딜 수가 없다.

 다섯 알의 노란 정제가
 거품처럼 식도를 타고 내려간다.
 이제 나는 분노하거나 원망하는 방법을 잊어버려
 당신을 바보처럼 행복한 눈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불행한 눈동자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설령 초면이더라도 함께 죽으러 가지 않겠냐고 묻고 싶어 견딜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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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426

기록/생각 2020. 4. 26. 22:37 |

20200426


 하늘을 온통 뒤덮은 것이 구름인지 스모그인지 알 수 없다. 푸른색은 보이지 않는다. 잠에서 깨자마자 아버지에게 꾸지람을 받았다. 도무지 뭘 먹질 않으니 아사하려는 것이냐고 화내는 것 같았다. 어쩐지 화가 나는 듯 수치스러운 듯, 대충 옷을 걸치고 밖으로 나왔다. 병적으로 식욕이 없으면 담배도 맛이 없는 것인가. 두 모금 빨고 버렸다. 이제 곧 5월이라 길거리에서 겨울 코트를 입고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심지어 반팔을 입고 다니는 남자도 있었다. 어이없는 발상이지만 내가 약한 인간이라는 기분이 들어서 기척을 내지 않으려고 숨듯이 걸었다. 약한 인간, 사실은 맞는 말이지. 여하간 아무 생각 없이 동네를 돌아다니는데 당연하다는 듯 발걸음이 카페에서 멈췄다. 커피를 마셔도 될까요. 이런 물음이 머릿속에 자리 잡았다. 의사들은 내가 커피를 마시면 안 된다고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의사들’이란 의학박사 두 명이다. 내과 의사와 신경정신과 의사. 내과 의사야 내가 위장병 때문에 아무것도 못 먹는 중이니 속 깎는 커피 같은 건 먹지 말라는 것이고, 신경정신과 의사는 아예 카페인 자체가 내 분열증을 악화시키니 완전히 그만 두라는 것이다. 한참 카페 현관 앞에서 멍하니 있다가 뒤에서 누군가가 입장하려고 하면 비켜주는 일을 반복했다. 그래, 알았어, 알았다고, 젠장, 염병할. 각성효과가 있는 허브 티 같은 건 없나. 왜 차에 쓰는 허브들은 하나같이 진정효과 밖에 없는 거야. 신체기능이 진정되면 반드시 끔찍한 우울감이 몰려온다. 게다가 이미 하루에 한주먹씩 삼켜대는 향정신성약물 때문에 생활이 안 될 정도로 항상 멍하고 졸린 상태다.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카페에 들어갔다. 이 카페는 예전에도 몇 번 와봤는데, 원래 인적 없는 골목에서 장사를 하다가 대단히 성업이었는지 행인이 많은 교차로로 자리를 옮겼다. 커피나 차보다는 차라리 ―그들의 광고 문구에 의하면―프랑스에서 재료를 수입해와 만드는 전문가의 프랑스풍 빵들과 디저트가 주요 상품인 것 같다. 밀가루나 설탕에 프랑스고 한국이고 도대체 무슨 차이인가 싶지만, 그런 광고가 효과가 있으니 지속하는 거겠지.
 주문대 앞에 서서 상당히 머뭇거렸던 것 같다. 여자 종업원은 내가 주문을 했는데 자기가 못 알아들은 거라고 생각했는지 상체를 앞으로 숙이며 다시 주문해달라고 했다. 나는 결국 쫓기듯이 말했다.
 “얼 그레이 한 잔 주세요.”
 아아, 결국 카페인 음료를 시키고 말았다. 홍차 같은 건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데. 그래도 커피 원두 갈아서 짜낸 것 보다는 위장에 덜 나쁘지 않을까. 근거는 없지만 말이다. 계산을 하니 진동벨을 주었다. 울리면 차를 가지러 오라는 것이다. 나는 진동벨을 들고 최대한 가게 구석에 있는 테이블로 가서 앉았다. 내가 앉은 자리에서 2m 쯤 떨어진 곳에 젊은 남녀 세 명이 나처럼 진동벨이 울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무언가에 대해 발랄하게 떠들고 있다.
 “범준이 자살한대.” 청일점인 남자가 유쾌한 어조로 말했다.
 “왜?” 여자 중 한 명이 물었다.
 “인생이 힘들어서.” 대답하면서 웃었다. “이 의자 딱딱하네. 저기 앉아야지.” 같은 테이블의 마주보고 있던 빈 의자로 옮겨갔다.
 듣고 싶지 않다. 이런 대화는 정말로 듣고 싶지 않다. 순식간에 기분이 가라앉고 헛구역질이 나왔다. 저들은 아마도 대학생일 것으로 보인다. 같은 테이블에 앉아있으면서도 각자 핸드폰에 몰두해서, ‘범준이’가 자살할 것이라는 둥 자기 자신도 별로 신경 쓰지 않는 얘기를 테이블 위에 내던진다. 내가 아는 ‘인간’의 정의와 개념이 심하게 시대착오적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래도 나는 저런 ‘인간’들을 모른다. 모르는 인간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것은 두렵다. 나는 두 손으로 진동벨을 붙잡고 어서 벨이 울리기만을 필사적으로 바랐다.
 벨이 울렸을 때는 이미 옆 테이블의 이상한 담화를 듬뿍 들어버린 뒤였다. 삶의 의욕이란 것이 대가리에 총을 맞은 듯 절망적인 기분이 되었다. 내가 젊은 사람들, 특히 대학생 쯤 되는 사람들을 두려워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카운터로 가니 왠지 사람이 많아서 “잠시 비켜주시겠어요.”라고 말했다. 목소리가 이상했던 것이 분명하다. 앞에서 길을 가로막고 있던 젊은 여자가 화들짝 놀라면서 어깨를 움츠리고 급하게 길을 비켜주었다. 이미 그런 것에까지 일일이 상처받을 상태가 아니었다. 덩그러니 카운터에 놓여있는 얼 그레이를 가지고 자리로 돌아왔다.
 아무 맛도 나지 않았다. 위장병을 앓으면서 식욕이 없어짐과 동시에 미각도 부서졌다. 예전에는 소믈리에 실기시험에서 최고점을 받을 정도로 자부심이 있었던 미각이다. 그러나 별 수 없다. 애당초 무슨 맛과 향기를 기대하고 얼 그레이를 시킨 것도 아니었다. 커피를 시켜서 두 의사들에 대한 죄악감을 짊어지기는 싫었고, 하지만 다리가 세 개밖에 없는 의자 같은 생활이라도 유지하기 위해 카페인이 필요했던 것이다. 할 수만 있다면 단숨에 들이키고 자리를 뜨고 싶었다. 그러나 홍차가 너무 뜨거웠다. 세 명의 대학생은 계속 옆 테이블에서 의미를 파악할 수 없는 대화를 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내 남동생도 저 나이 또래 인데, 대학은 가지 않았고, 집에서 군대 갈 준비나 하고 있다. 요새 어머니와 몹시 사이가 안 좋아 눈 뜨자마자 밖으로 나가서 오후 11시쯤에나 돌아온다. 뭘 하고 다니는지 모르겠다. 우리 가족의 뭔가에 대해 퍽 기분이 상했는지, 누가 말을 붙여도 대답을 하지 않는다.
 가게를 나와 집으로 향하는 길을 걸었다. 그래, 결국엔 돌아가는 수밖에 없지. 어디 달리 갈 곳이 있겠느냔 말이야. 중얼중얼. 카페에서 모든 기력을 잃어서인지 걷는 속도가 거북이 뺨친다. 담배를 피울까 싶어 주머니를 뒤지다가 지금은 담배 맛도 못 느낀다는 것을 생각해냈다. 그냥 주머니에 손을 넣어둔 채, 갑자기 모습 자체가 푹 꺼질 사람처럼 걸었다.
 집에 도착하니 왜인지 문들이 죄다 닫혀있었다. 아버지는 나한테 화가 난 거지 어머니랑은 문제가 없을 텐데. 아차 싶었다. 아, 젠장, 또 나라는 문젯거리 때문에 부부싸움이라도 했을 공산이 크다. 제기랄, 제기랄, 제기랄. 이젠 아주 존재 자체가 사람들한테 민폐구나.
 점점 분노라는 게 무슨 감정이었는지 잊어가고 있다. 누군가 나에게 화를 내면 가만히 앉아 듣는다. 설령 그것이 부당하다고 해도, 무슨 할 말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입을 열면 더 피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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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한 글쓰기

기록/생각 2020. 4. 24. 04:27 |

악한 글쓰기


 저에게는 어떤 통제되지 않는 커다란 악의가 있는 것일까요. 오랫동안 수많은 글들을 써왔습니다. 시, 희곡, 에세이, 소설 등 닥치는 대로 써왔습니다만, 대부분 소설이었습니다. 바로 일주일 전 단편소설을 하나 완성했습니다. 사방이 막다른 길인 암담한 골목에 갇힌 것 같은, 한 생활무능력자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거의 사소설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문학이라는 것은 독자가 없으면 성립되지 않는 것이니, 독자를 찾아다녔습니다. 어쩌다보니 중학생 시절 동창에게 원고를 건네려고 마음을 먹고 연락을 했습니다.
 “아니, 이제 네 글은 읽지 않을래.” 동창의 말이었습니다.
 “어째서?” 제가 적잖이 당황해 물었습니다.
 “뭐라고 해야 하나, 네가 쓴 걸 읽고 있으면 나까지 불행해져.”
 말문이 막히는 대답이었습니다. 그야말로 아무 것도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 동창은 2년인가 3년 전 제가 마침내 단행본을 하나 출간할 때 저에게 보태 쓰라며 돈까지 쥐어주던 친구였습니다. 이제 그도 더 이상 나의 불쾌한 활자들을 읽을 여유가 없는 것이로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불쾌한 활자들. 그것은 정확한 표현이었습니다.
 쓴 것을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모든 페이지에 걸쳐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빈곤한 생활을 하는 주인공이 문단마다 죽음을 다짐하고, 자살을 위한 정당성을 찾고 있었습니다. 놀라울 정도로 생활에서 발견하는 모든 현상에 대해 절망하고 있었습니다. 결국에는 ‘집에 가자’며 청산가리를 넣은 물을 마십니다. 텍스트 속에 미래에 대한 기대나 희망 같은 건 단 한 줌도 없었습니다. 게다가 다시 읽어보니 이 소설의 주인공은 이름이 없습니다만, 분명히 제 이름을 가지고 있을 것이었습니다.
 “잘 쓴 글이지만 읽는 사람을 엄청 불쾌하게 만들어.” 제가 스승으로 모셨던 스님께서 반년인가 전에 했던 말입니다. 당시에는 아, 그런가, 하고 말았지만, 그것이 시간을 넘어와 비수처럼 박혔습니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 쓰는가. 한 가지 짐작이 가는 바가 있습니다. 과거에도 작문이란 내게 정신진통제 같은 것이다, 하며 써놓은 별 가치 없는 일기랄까 기록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사실 하루에도 몇 번씩 이렇다 할 이유도 없이 절망감과 불안감에 휩싸여, 늑골 안쪽이 온통 타르 같은 끔찍한 액체로 가득 차 허파와 심장이 익사하는 느낌을 받는 것이 저의 평소 생활입니다. 그럴 때면 무슨 판단이 서기도 전에 반미치광이처럼 빈 페이지를 꺼내 뭐라도 써야합니다. 주제나 소재 같은 건 뭐라도 상관없습니다. 몇 페이지인가의 절박한 작문이 끝나면, 가슴 속의 타르는 어딘가로 빠져나가버리고 없습니다.
 아마 작품을 만드는 것도 이런 식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이건 아무래도, 가슴 속에 있던 그 ‘타르’를 하얗게 아름다운 빈 페이지에 쏟아부어버리는 게 아닐까요. 만약 그렇다면 작품이 완성된 뒤에 문학은 독자가 있어야 성립되는 것 운운하면서 독자에게 원고를 건네는 일은, 이건 그야말로 악의적인 행위라고밖에 할 수 없습니다. 아무도 제게 괴로운 일이 있다면 털어놔봐, 이런 친절을 보이지 않았는데, 제가 일방적으로 고통과 절망을 사람들에게 집어던지고 있는 꼴입니다.
 왜 자각도 못하고 이런 악랄한 짓을 하는지, 아아, 새삼 수치스럽다. 그러나 멈출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앤드류라는 친구가 있습니다. 이래저래 9년 정도 함께 술을 마시며 어울린 친구입니다. 한국어 능력은 일상회화 수준에서 머물러있습니다. 당연히 제가 쓴 소설이니 수필이니 하는 것들도 절반 정도밖에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그는 항상 제 글들을 출력해서 가방에 넣고 다닙니다. 여유가 있을 때마다 꺼내서 한영사전과 함께 읽어본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평생을 통틀어서 이 앤드류라는 한국어 능력도 명확하지 못한 외국인이 제 문학의 가장 큰 독자인 것 같습니다.
 “네 글엔 한자어가 너무 많아. 빌어먹을 한자.” 이렇게 매번 하는 소리를 영어로 중얼거리다가, 어느 날 앤드류의 자택에서 함께 지독하게 취해있을 때, 그가 가방에서 꺼낸 몇 년은 족히 됐을 제 단편소설 인쇄본을 흔들며 이런 말을 한 것입니다. “넌 세상에 대고 고함인지 비명인지를 지르고 있는 거야. 그렇지?”
 예상치도 못하게 웃어버렸습니다. 그런가, 그럴지도, 젠장, 그런 거겠지. 너밖에 독자가 없으니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다. 어쩐지 평생에 처음인 것 같은 가벼운 마음으로 술을 마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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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트우드 기록

기록/생각 2020. 4. 22. 10:10 |

웨스트우드 기록


 웨스트우드의 유난히 숙박비가 싼 게스트하우스에서 머물렀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그 건물은 언덕을 깎아낸 듯한 평지에 심지어 도로로부터 등을 돌리고 있어서 찾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나중에야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처럼 숨어있는 것 같은 건물이라, 안심하고 머물 수 있는 거라고 말입니다. 당시 제가 비행기 티켓 값을 치루고 나니 최소한의 식비와 별로 의미가 없는 여윳돈밖에 없었는데도 그곳에서 두 달 가까이 지냈으니, 숙박비는 참 신기할 정도로 저렴했던 것입니다.
 여행의 동기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아니, 애당초 여행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저에게는 <아무도 내 이름을 모르는 곳>에 대한 동경이랄지 처참한 갈망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외국에 가면, 특히 외국의 아무런 연고도 없는 곳은 말입니다, 제가 낡은 츄리닝 차림으로 길거리를 멍하니 어슬렁거리고 있어도 그 지방의 사람들은, 아, 아시아인이 있군, 하고 더 이상의 관심을 끊어버립니다. 한국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한국이랄까, 누구에게나 조국에서는 단순히 길을 가다 스쳐지나가는 사람이라고 해도, 이상한 판단이 서고 마는 것입니다. 지나가는 사람의 표정이나 눈동자 같은 것을 곁눈질하고, 이곳에 사는 사람인가, 어떤 사람이지, 불길한 인간인지 안전한 인간인지 알아야만 한다. 이런 것들이 전부 무의식처럼 순식간에 머리를 훑고 지나갑니다. 어쩌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정말 아니라면 이런 건 전부 제 병약한 머릿속에 있는 피해망상이고 오히려 제가 그런 짓을 하는 거겠지요. 그러나 적어도 서울에서 5~6년을 사는 동안 저는 같은 건물 1층에 사는 부부와 마주칠 때마다, 매일 새벽 아내와 악을 쓰며 싸우는 소리를 내는 창문 건너편의 남자로 추정되는 노인을 골목에서 볼 때마다, 심지어 5년 쯤 전에나 알고 지내던 사람이 전화를 해서 받을지 말지 고민하던 때, 모두가 모두에 대해 관찰하고 있다고 느꼈던 것입니다.
 아무도 내 이름을 모르는 곳. 어쩌면 저 자신도 스스로의 이름을 까먹는 곳. 그러한 장소에 대한 갈망은 분명히 ‘도망치고 싶다’는 감정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여하간 돈이고 뭐고 어떻게든 수를 내서 도망쳤습니다. 분명히 관광은 아니었습니다. 두 달 내내 절대 웨스트우드로부터 멀리 벗어난 적이 없으니까요.
 제 방은 2층 침대 3개를 놓아 여섯 명이서 쓰는 방이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에 제가 알게 된 것은, 제가 가격만 보고선 멋모르고 선택한 이 게스트하우스에는 그야말로 도주자들 밖에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제 침대 맞은편 왼쪽 침대의 1층을 쓰는 중년의 남자와 어쩌다보니 대화를 트게 됐습니다. 좀 대화를 해보니 그는 딸이 하나 있는 상황에서 부인과 이혼소송이 벌어졌는데, 부인의 변호사가 엄청난 실력을 발휘해 남자의 양육권부터 개인재산까지 전부 동결시켜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집까지 뺏긴 그는 어떻게든 긁어모은 소액의 돈으로 이 게스트하우스의 침대 하나를 빌리고, 아침마다 차를 타고 출근하곤 하는 것이었습니다. “넥타이를 가져올 여유도 없었어.” 그렇게 말하며 침대 기둥에 줄을 달아 새것인 것 같은 넥타이를 걸고 있었습니다. 그 중년남자의 본래라면 전형적인 건강한 백인처럼 생겼었을 얼굴은, 얼핏 봐도 패배주의가 덩어리 채로 들러붙어있었고, 누가 살짝 밀기만 하면 온몸이 사금파리처럼 깨질 것만 같다는 느낌을 주었습니다. 저는 한동안 그 남자와 친하게 지냈습니다만, 어쩐지 뭐라고 대화해도 기가 빠지는 기분이라 결국 그만두었습니다.
 맞은편 오른쪽 침대의 1층은 안경을 쓰고 살집이 있는 백인남자였습니다. 저는 거기 지낼 때 물보다 오히려 맥주를 더 많이 마셨습니다만, 사온 맥주를 좀 나눠주니 금세 친해질 수 있었습니다. 원래는 자연과학자라고 했습니다. 과학자 일을 할 때도 자연보호 운동에 관심이 있었다는 모양인데, 어쩌다보니 우선순위가 바뀌어 본업보다는 자연보호 운동에 더 힘을 썼다는 것 같습니다. 뭐, 그러다보니 연구소에서는 제명되고, 자신도 차라리 이게 낫다 하며 환경운동에 몰입했던 모양입니다만. 자세한 얘기는 듣지 못했으나 환경보호 운동에서 뭔가 엄청난 회의를 느꼈다고 합니다. 가장 원론적이고 해결할 수 없는 부분에 모순과 회의감을 느껴 더는 기력도 없고, 결국에는 남은 재산도 없게 되어 운동단체에서도 탈퇴한 채, 어느새 이 게스트하우스에 있게 되었다는 얘기였습니다. 제 기억에 그는 로비에 나오는 일도 거의 없이 하루 종일 자기 침대에만 누워있었습니다. 가끔 씁쓸한 마음이 들어 규칙을 어기고 맥주 두 병을 방에 가지고 들어가서 그에게 한 병을 나눠주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는 늘 고맙다고 하며 마셨는데, 마치 인생에 남은 일이 맥주를 마시는 것밖에 없다는 듯한 그의 침울한 표정 때문에 흥이 깨지곤 했습니다.
 자주 얼굴을 보다보니 친해지게 된, 요리사가 직업인 흑인 아주머니가 있었는데, 저는 그녀를 장난삼아 블랙마마(Blackmama)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당시 할리우드 근처에서 공연하던 매직마마(Magicmama)라는, 풍채가 엄청난 흑인 여배우가 주연인 연극에서 따온 별명이었습니다. 웨스트우드에서 할리우드까지는 사실상 걸어갈 수도 있는 거리여서, 여기저기 매직마마의 포스터가 붙어있었습니다. 아무튼 그녀도 그 전 과학자가 하루 종일 침울해서는 아무것도 안 먹는다는 얘기를 들었는지, 자기가 공용부엌에서 요리를 할 테니 룸메이트인 당신이 좀 데리고 와주지 않겠느냐, 하고 청했습니다. “불쌍한 아이(그녀는 나이가 꽤 있어 30줄인 사람들도 아이, 즉 Kid라고 부르곤 했습니다), 우리가 뭔가 도와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런 얘기를 하곤 했습니다.
 저는 늘 멍하게 있었습니다. 잠에서 깨면 주로 로비에 있는 소파에 앉아 맥주를 마시다가, 담배든 뭐든 피우러 잠깐 주차장에 나가고, 다시 들어와 앉는 것을 해가 질 때까지 반복했습니다. 음식은 3일에 한 번 쯤 먹었던 것 같습니다. 어느 날인가 블랙마마가 평소처럼 죽은 동태눈깔을 하고 앉아있는 저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여기서 걸어서 5분이면 UCLA야. 거기 정원이 정말 아름답지. 네 소재가 될 지도 몰라.” 당시 저는 누군가가 한국에서 무슨 일을 하느냐고 집요하게 캐묻는 것이 아니면 자신이 글쟁이라고 말하는 것을 꺼렸습니다. 기껏 아무도 내 이름을 모르는 곳에 와서 또 신분을 가진 인간이 되는 것이 싫었던 것입니다. 제가 글을 쓴다는 것을 아는 건 블랙마마와 브라질 청년 파블리시오 밖에 없었습니다. 파블리시오에 대한 얘기는 나중에 하겠습니다. 아무튼 그렇게 권하기에 햇살이 따스한 오후 2시쯤 UCLA로 갔습니다. 비척비척 캠퍼스 안을 둘러보다가 넓은 정원으로 들어갔습니다.
 저는 자연에 대한 미의식이 전혀 없는 걸까요. 분명 나무가 울창하고 꽃들이 알록달록 피어있고, 도심 속의 멋진 녹음이었습니다만, 그뿐이라는 생각이었습니다. 나무가 있다, 풀이 있다, 꽃이 있다. 다만 그뿐. 만약 기다린다면 무슨 기적적인 아름다움이라도 찾게 되지 않을까. 10분 정도 멀거니 서서 기다렸습니다. 그냥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돌아가는 길에 담배가 거의 다 떨어졌다는 것을 생각해냈습니다. 방향을 틀어 마트로 갔습니다. 그 구역에서 담배를 파는 곳은 랄프스라는 대형마트밖에 없었는데, 거기가 아니면 해변 쪽으로 한참 가서 담배와 시가를 파는 작은 가게에 가야했습니다. 가끔씩 차라리 그곳으로 가버릴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담배야 어디서 사든 똑같지만, 랄프스에서는 담배를 구입하기 위한 절차가 너무 복잡했습니다. 담배가 전부 자물통이 걸린 진열장 안에 들어있고, 점원에게 담배를 구입하겠다고 하면 먼저 신분증이나 여권부터 제시해야합니다. 그리고 충분히 나이를 먹은 것이 확인이 되면 점원이 자물통을 열어서 담배를 꺼내고, 그걸 또 여권과 함께 무인판매대로 가져가 이상한 인증작업을 합니다. 그리고 비로소 돈을 지불하고 담배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비싸기는 또 얼마나 비싼지. 어째서 진보적인 주가 보수적인 주보다 담뱃값이 비싼지 여러 번 생각해봤습니다만, 별 수 없는 일이려니 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고약한 농담 같은 과정을 거쳐 담배를 사고,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왔습니다. 현관으로 가기 위해서는 주차장을 지나쳐야하는데, 마침 한쪽 구석에서 파블리시오가 액상전자담배 같은 것을 피우며 햇볕을 받고 있었습니다. 구불구불한 장발에 수염이 덥수룩한 그가 제 발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렸습니다. 그는 저를 보고 환하게 웃었습니다. 도무지 얼굴에 근심걱정 같은 것은 없고 아이 같이 웃는 것이 그의 특징입니다. 그의 침대는 그 이혼소송 중인 남자의 2층입니다. 방도 같은 방이고, 파블리시오는 도대체 뭘 하는 놈인지 이놈도 24시간 게스트하우스를 떠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진작 친한 사이가 되었습니다. 저는 담배 한 개비를 꺼내서 불을 붙이며 그를 향해 걸어갔습니다.
 “이봐, MJ, 이따가 역사박물관 갈래?” 거리가 가까워지자마자 뜬금없이 그가 물었습니다.
 “이따가 언제? 어딘데 거긴?”
 “한 30분 뒤에. 세르비아 형제 중 동생도 갈 거야. 우버 타고 20분이면 간대.”
 “아침부터 맥주 마셨더니 좀 피곤한데.”
 “그러지 말고, 잠이야 살아있는 동안에 계속 자겠지만 박물관 가는 건 아니잖아.”
 이렇게 막무가내로 맞는 소리를 하는 게 그입니다. 이쪽 의사는 신경 안 쓰고 억지로 권하는데, 그것이 이상하게 불쾌하지가 않습니다. 곧 박물관에 가리라는 사실이 어찌나 기쁜지 표정에 다 드러나는 이 얼굴을 보고 있으면, 불쾌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알았어, 알았다고. 그런데 너 손에 쥔 거 피웠지. 취한 채로 전시품 보는 게 의미가 있어?”
 “오히려 더 좋아.” 이러면서 만면 가득히 웃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말입니다. 파블리시오와 친구가 된 뒤로 막연히 생각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전 인류가 그가 피우는 걸 항시 피우게 된다면, 아마 문명이야 정지하겠지만, 이 세상에 전쟁이니 다툼이니 하는 것은 아예 없어지지 않을까.
 아무튼 박물관에 대해서는 별로 기억나는 게 없습니다. 저도 아침에 깨서부터 UCLA에 갈 때까지 줄기차게 맥주를 마시고 있었던 차라 좀 취해있었습니다. 전시장 안에 웬 100년은 족히 됐을법한 퀼트 공예품들이 걸려있었고…… 사실 전시장보다는 박물관 외부의 조형물들이 차라리 기억에 남았습니다. 벤치들 사이에 금속으로 만든 죽은 나무들이 쭉쭉 뻗어있는 조형이 있었는데, 그걸 보니 왠지 서울이 떠올랐던 것 같습니다. 물이 흐르는 길이 있는데, 따라 가다보면 장미가 만발한 정원이 나왔습니다. 너무 시뻘게서 눈이 아플 정도였습니다. 돌아다니면서 세르비아 형제의 동생 쪽은(안타깝게도 이름이 기억나지 않습니다. 형 쪽이 ‘넴’이라는 이름이었다는 건 기억합니다) 계속 저와 파블리시오, 풍경 등을 카메라로 찍고 있었습니다.
 돌아올 때 고생을 좀 했습니다. 전화를 받은 우버 운전자가 꽤 오랫동안 위치를 파악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웨스트우드에서의 마지막 날을 정확히 기억합니다. 이대로 미적거리다가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나, 차라리 불법체류라도 해버릴까, 그러고 있던 차였습니다. 예전에 한국에서 같이 어울렸던 미국인 친구네 집에서 조금 더 버티기로 했습니다. 인디애나로 가야했습니다. 국내선은 생각보다 저렴했습니다. 비행기를 타기 전날, 밤이 되자 혼자 거리에 나왔습니다.
 술을 마실 생각으로 나온 것입니다. 웨스트우드의 서쪽은 밤이 되어도 은근히 조명이 밝아서, 미국답지 않게 밤에도 걸어 다니는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어슬렁어슬렁 밤거리를 걸어 주점이 많은 블록을 돌아다니다가, 유난히 왁자지껄한 스포츠 바에 들어갔습니다.
 기다란 바 뒤쪽 벽에 커다란 TV들이 붙어있고, 하나 같이 미식축구 중계. TV 볼륨이 크니 손님들도 술을 마시면서 큰 소리로 대화하고 있었습니다. 혼자 온 사람은 저밖에 없는 것 같았습니다. 사실 게스트하우스의 누군가에게 함께 마시지 않겠냐고 권유할 수도 있었지만, 어쩐지 그런 기분이 아니었고, 게다가 내일이면 떠날 텐데, 무슨 소용인가 싶어 혼자 온 것입니다. 만취할 생각도 없었기 때문에 그냥 마지막 날 주점이나 들러볼까, 했던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시끄럽건 말건 바테이블에 앉은 채로 보일러메이커 3잔인가 4잔을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계산을 하고 밖에 나오자 바람이 미지근했습니다.
 이제 돌아가서 잘까, 하는데 누군가 저에게 손을 내밀었습니다. 새까맣고 관절이 울퉁불퉁한 마른 손이었습니다. 뭐야, 하면서 보자 아주 늙고 머리가 새하얀 흑인 노숙자였습니다. 이빨이 안 좋은 것인지 우물거리면서 말했습니다. “조금의 자비를.” 조금의 자비를. 영어를 사용하다보면 가끔씩 놀라게 되는데,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이따금 말도 안 될 정도로 노골적인, 번역해 놓으면 가슴을 후벼 파는 말들을 사용합니다. 마음에 혼란이 왔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티내지 않고 배낭과 봉투 따위를 바리바리 짊어 매고 있는 늙은 거지를 바라보았습니다. 따뜻한 날인데도 왜인지 빨간 목도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식사 하셨습니까.” 저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은 이것이었습니다.
 “아니요. 오래 굶었어요.” 캘리포니아에서 쓰는 악센트가 아니었습니다.
 “이 근처에 괜찮은 식당 있나요?”
 “두 블록만 가면…….” 이때까지도 노인은 제가 뭘 하려는지 파악하지 못한 것 같았습니다. 저는 식당까지 안내해 달라고 했고, 노인은 어리둥절하면서도 비틀비틀 걷기 시작했습니다. 도착한 곳은 정확히는 모르겠으나 일종의 멕시코 음식점 같았습니다.
 “두 개 고르세요. 오늘 먹을 것과 내일 먹을 것. 포장해달라고 하세요.”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그러면서 노인은 카운터 직원에게 뭐라고 주문을 했습니다. 제가 계산을 했습니다.
 음식이 나올 동안 저와 노인은 가게 구석의 의자에 앉아있었습니다.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제가 물었습니다.
 “조나단.”
 “조나단, 어쩐지 익숙한 이름인데.”
 “선생님은?” 그 늙은 노숙자는 계속 저 같은 새파란 애송이를 Sir라고 부르고 있었습니다.
 “영어 쓰는 사람들은 MJ라고 부릅니다.”
 음식이 나왔습니다. 조나단은 그걸 받아서 두 개 다 배낭 안에 차곡차곡 넣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거리로 나왔습니다. 조나단은 연신 저에게 고맙다고 감사를 하며, 피부색과 대비되 더욱 하얗게 보이는 이를 드러내며 웃었습니다.
 “저기, 조나단.” 저는 거의 중얼거리는 것처럼 말을 걸었습니다. “행운이 있기를 빕니다.” 말해놓고도 이 영어문장은 기괴한 구석이 있다,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조나단은 계속 무어라고 감사인지 축복의 말인지를 반복하다가 깜깜한 거리 너머로 사라졌습니다. 애당초 자세히 듣지도 않았습니다. 그때 제 귀는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술기운 때문에 약간 삐딱하게 서서, 뭔가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이곳은 아무도 내 이름을 모르는 곳이 아니게 됐구나.
 아마 다시는 오지 않게 되겠지.
 다음날 사람들과 작별인사를 했는지 안했는지, 그건 기억나지 않고, 저는 인디애나로 가는 비행기를 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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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사랑하는 선한 사람들에게 나는 사죄밖에 할 게 없다


 반드시 유쾌해져야합니다. 발랄하고 경박해져야합니다. 마음 따위는 없는 듯이, 차라리 몸 안에 혈액이라고는 한 방울도 흐르지 않는 듯이 유쾌해져야합니다. 생명의 무게 같은 것은 사람을 미치게 하는 것인데, 그것도 아주 고약하게 우울과 비참을 뒤집어쓴 미치광이로 만드니 절대 그 무게를 느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얼마 전인가 몇 년 전인가, 나라에서 제일가는 재벌가의 딸이 자살하는 사건이 벌어졌었습니다. 처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아무런 이렇다 할 생각이 없었습니다만, 나중에 동창과 술자리를 가질 때 그 얘기가 나온 것입니다. “뉴스에서 봤어? 말도 안 되지. 만약 나라면……” 저는 그때 동창에게 무슨 대답을 하기 보다는 그저 술이나 따라주며 맞장구나 쳐줬습니다. 첫째로 그 자리에서 전 술값을 지불하기엔 지갑사정이 너무 빠듯했고, 둘째로 제가 무슨 얘기를 하든 그것은 분명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하게 알고 있는 것이 있었습니다. 만일 누군가 저에게, “누구누구 씨 좀 봐, 가정이며 교우관계며, 분명 행복하겠지?” 따위의 것을 묻는다면, 아니, 아니다. 그럴 리가 없다. 이 세상에 불행하지 않은 인간은 없다. 인간이니까 불행할 수밖에 없다. 하고 못을 박을 것을 저는 스스로 알고 있었습니다.
 학생 때부터 저는 친구들 사이에서 말하자면 ‘유쾌한 미치광이’로 통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무슨 일이든 저에게는 다 농담거리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고, 심지어 도덕이나 정의 같은 경건한 단어들조차도 제게 걸리면 유흥가 골목거리에 뿌려진 퇴폐업소의 찌라시에나 찍혀있을 법한 단어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모독적인 농담이나 우스갯소리를 즐겨 했고, 친구들이 역시 저놈은 정신이 어떻게 되었단 말이야, 하고 즐거워하면 일부러 더 거의 패륜에 가까운 이야기를 희극조로 했던 것입니다. 그것이 제가 은근히 눈치를 보며 친구를 만드는 방법이기도 했습니다만, 동시에 제가 생존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들 중 하나였던 것입니다. 생명의, 존재의 무게에 짓눌려 폭발한 고기더미처럼 되지 않기 위해.
 무슨 수를 써도 광인일 수밖에 없다면 침울한 광인보다는 차라리 경박한 광인이 낫다. 어제는 담배를 피우려고 현관문을 열고 나갔는데 공기에서 묵직한 봄비의 냄새가 났습니다. 그 순간 저는 누군가가 해머로 제 가슴을 후려쳐서 늑골이고 심장이고 전부 박살이 난 것 같은 기분을 느꼈습니다. 밑도 끝도 없이 흠뻑 절망하여, 더는 살아갈 수 없다, 살아간다고 해서 나아질 리가 없다, 하고 계단참에서 발이 묶여버린 것이었습니다. 한참 목각인형처럼 서 있다가 밖에서 담배를 피운 뒤에도 그 처참한 심정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마치 구원처럼 친구에게서 전화가 온 것이었습니다. 여보세요, 하니.
 “내과는 갔다 왔어?”
 그렇다고 했습니다. 친구는 제가 요즘 위장병을 심하게 앓는 중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의사가 뭐래?”
 “약을 좀 주던데. 며칠 뒤에 다시 오래. 나아지지 않으면 위궤양일 수도 있다고……”
 “궤양! 지난 가을엔 폐결핵에 걸리더니.”
 “차라리 이번에야말로 암 같은 거면 좋겠네.”
 그러자 친구는 큰소리로 웃었습니다. 분명 평소의 농담이라고 생각한 것일 터입니다만, 애당초 친구에게는 제가 늘상 그런 위험한 농담을 하는 인간으로 정해져있는 것입니다. 친구의 웃음소리를 들으니 저도 신이 나서 덩달아 웃었습니다. 기분이 나는 김에 불치병에 대한 판타지는 말이지, 더는 아무 것도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 있는 거라고, 하고 덧붙이며 실실거렸습니다. 비 냄새를 맡았으니 죽자고 생각하던 자신은 어느새 저 멀리 사라져있었습니다. 빠개졌던 늑골과 심장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습니다.
 계기가 필요한 거겠죠. 악랄한 농담을 빌어 자기 자신마저 길거리에 떨어져있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나사 한 조각처럼 무가치하다고 느끼기 위해서 말입니다. 무가치한 것에는 무게가 없습니다. 무게가 없는 것에 대해서는 진중해질 수 없습니다. 그편이 좋습니다. 만일 무언가에 대해 진중하게 된다면, 인간이라서, 인간이니까, 기필코 불행해지니까요.
 온 세상 온 인류가 허섭스레기에 불과하다는 저열한 농담만 일생 반복하다보면, 그것이 진실이 됩니다. 가장 즐거운 것은 불행도 세상의 일부이니 그것마저도 아무런 진실성이나 슬픈 느낌을 갖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 봐도 경박하고 비겁한 조롱이나 뿌리고 다니는 저는, 유쾌하게, 존재의 중량에 찌부러지지 않아도 되는 것이고요.
 그러나 전혀 예기치 못한 순간에 맡게 되는 공기 중의 비 냄새 같은 것은, 새벽에 의자에 앉아있을 때 악령처럼 덤벼드는 공허감은, 전깃불의 색채가 불현 듯 끄집어내는 수치에 수치를 더하는 인생의 기억들은, 그런 것들은 정말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죽음을 제한 모든 것을 영원히 보류하는 방법은, 그런 것은 없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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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술하게 입은 인간거죽이 오히려 인간이 되는 일에 방해가 된다


 딱히 당신을 갖고 싶다는 게 아니다. <내가 당신을 가질 가능성이 있는 세계>를 갖고 싶다는 것이다. 써놓고 보니 오해하기 쉬운 문장이다. 세계의 조건에 대해 성을 내고 있는 게 아니다. 애당초 당신 자체도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내가 가장 큰 문제다. 당연한 얘기지만 나도 세계의 일부다. 나는 <타인에 대해 감정을 가지고, 애정을 기반으로 행동하기도 하는> 인간이 나인 세계에서 살고 싶다.

 몇 달 전부터 누군가가 음식을 먹고 있는 장면을 보면 구역질을 참을 수가 없다. 혐오도 아니고 분노도 아니고 무슨 이상한 윤리관 때문은 더욱 아니다. 단순히 요즘 내가 물만 마셔도 구역질이 나오는데, 타인의 섭식장면이 내가 음식을 먹을 때의 느낌을 재현하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위장이 이상한 것 같다. 병일 수도 있다. 그러나 병원은 가지 않겠다. 의학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사람들은 자기 주변인이 괴로워하거나 사라지는 것에 공포를 느낀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더할 나위 없다. 나카하라 츄야의 시처럼 “죽어도 괜찮아.”라고 말할 사람은 어딜 가야 찾을 수 있을까. 아마도 그런 사람이 더없이 소수이기에 찾기 힘든 것이겠지. 얘기가 샜는데, 아무튼 병원에 갈 일은 없을 것이다. 병원으로 걸어 들어가 접수대의 간호원에게 아무래도 소화기가 이상한 것 같으니 검사해주십시오, 라고 말하는 것이 싫다. 병원에 가기 위해 필요한 돈을 가족에게 꾸는 것이 싫다. 건강하게, 오래 살기 위해 적극적인 행동을 하는 것이 싫다. 내 육체에 대해 책임감을 갖는 것이 싫다.

 주로 의자에 앉아, 책장에 꽂혀있는 책들의 표지를 보는 일로 하루를 보내고 있다. 대부분 오래 전에 두어 번은 읽은 책들이다. 특별히 좋았던 책은 여섯 번이나 읽기도 했다. 그러나 요새는 읽지 않는다. 그저 표지를 가만히 보다가 다시 꽂아놓을 뿐이다. 의미를 느낄 수 없게 되었다. 15살 때 처음 대표작을 읽게 되었고, 20대 초에는 거의 숭상하며 없는 돈을 모아 전집을 구비한 알베르 카뮈. 표지에서 거의 알아볼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담배를 물고 있다. 고전적인 미남의 얼굴을 하고 있다. 자살중독의 사소설가인 다자이 오사무. 만년의 표지에서 유카타를 입고 원고를 살피고 있다. 그렇게도 아름다운 소년이었다는 아르튀트 랭보의 시집. 흑백사진이지만 그 고운 얼굴에 광기가 서려있다. 등등……. 이들은 모두 내 방에 상주하는 유령들이다. 아주 오랫동안 이 유령들이 나를 건축해놓았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나는 그들을 가구처럼 여기게 되었고, 그들도 더 이상 내게 말을 걸지 않는다. 밤새 유령들과 이야기하고 의논하던 시절엔 적어도 외롭지는 않았다.

 딱히 당신을 갖고 싶다는 게 아니다. 우선 당신이 누구일지조차 설정되지 않았다. 나는 당신을 일종의 보수용 시멘트처럼 생각하고 있다. 나는 결함투성이의 여기저기 부품이 빠진 인형인데, 빠진 부분에 당신을 부어넣고 굳히면 뭐든 간에 나아지지 않을까, 그런 파렴치한 생각이나 하고 있다. 방금 조소했다. 당신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만일 있다한들 나는 당신에게 다가가지 않는다. 당신과 만나면 내가 보다 인간다워질 수 있을지,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지, 오히려 더 큰 자기혐오라는 결과가 돌아올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그런 건 문제조차 되지 않는다. 나는 이미 오래전에 의욕을 잃었다. 두려운 것도 초조한 것도 불안한 것도 아니고, 그저 의욕을 잃었다. 과거에 몇 번인가 어떤 당신의 손을 잡아본 적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운이 좋았는지 당신은 대체로 나를 도와주고 싶어 했다. 내가 항상 어디서 온 것인지도 모를 고독에 몸부림치는 이상한 인간이었던 것을 당신은 기억할 것이다. 그러나 이제 와서 고백하는 것인데, 당신의 손을 잡은 채로 고독에 발광하던 때에, 나는 거의 본능처럼 당신이 내 고통을 덜어 주리라는 단 한 점의 기대도 하지 않았다. 내 사랑스러웠던 당신이여, 당신은 언제나 나에게 철저히 타인이었다.
 그런 경험 뒤에는 이제 의욕이고 동기고 없는 것이다. 내 외로움은 스스로 뒤틀려 만들어낸 고통이고, 이렇다면 외로워할 이유도 목적도 없다. 이유도 목적도 없는 고질병이나 체질처럼 되었다.

 몇 년 전인가, 지하철에서 같은 칸에 타고 있던, 목발을 짚은 장애인이 쓰러지는 것을 보았다. 무슨 생각을 하기도 전에 나는 웃었다. 집에 도착해서야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어라, 분명 장애인이 쓰러졌었지. 기묘한 불안을 느꼈다. 잠시 후에, 불안을 느꼈다는 것을 안도할 수단으로 쓰면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이 단락에서 삼십 분 정도 멈춰있었다. 무엇을 누구에게 서술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어서. 그리고 스스로 정의하거나 비유한 것들이 내 머릿속에서조차 독안개처럼 흐릿하고 유해해서. 백 마디의 말이 더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지쳤다. 확실한 것은 내가 나를 증오한다는 것이다.
 부연설명 붙일 것도 없이, 증오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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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409

기록/생각 2020. 4. 9. 19:28 |

20200409


 그런데 호의를 바라고 있는가? 가족들에겐 미안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에겐 선택여부가 없었다. 그들은 나에게 호의를 가지도록 설계되어있었다. 세상에게 배신당하고 지치길 반복하다 결국 도망치듯이 그들에게로 돌아가면, 그들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날 받아주었다. 그들에겐 분명 불안도 있었을 것이다. 세계 어디를 가도 결국 상처와 외로움만 짊어지고 돌아오는 내가, 그들이 사라지고 난 뒤 과연 생존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그런 불안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난 미래를 생각해보는 능력을 잃었다. 밤새 몸이 차갑게 식은 채 이불에서 일어나, 어쩐지 이상하게 뛰고 있는 심장을 더듬어보다가, 내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깨닫고 호흡곤란에 괴로워하는 아침이 반복되면 미래에 대해 생각해볼 능력을 잃는다.
 그런데 유대를 바라고 있는가? 어쩌면 36.5도짜리 발열기만 있으면 해결될 문제인 것은 아닌가? 아아, 모르겠다. 의사는 내 발작적인 고독에 로라제팜을 증량 처방했다. 15년간 나는 약으로 살아왔다. 약으로 살아왔다는 표현은 조금 이상하다. 병원에 가서 내 인간조건을 사왔다고 하는 편이 오히려 적합하다. 외로움을 명목으로 길 가는 누군가의 심장을 꺼내 먹거나, 스스로의 얼굴 가죽을 실리콘 마스크처럼 벗겨내지 않기 위해, 나는 15년간 신경정신과 대기실의 공기에 너무도 익숙해져왔다. 손목에 붕대를 한 여고생들이 휘적휘적 걸어 다니고, 웅크린 채 자기 자신과만 대화를 하는 사람들이 앉아있는 현실에서 떨어져나간 공간.
 방금 약 봉투에서 약을 꺼내다 커다랗게 슬퍼했다. 기름종이로 밀봉해놓은 봉투를 뜯고 한줌의 약을 꺼내는데, 뜯겨나간 기름종이가 팔랑팔랑 바닥으로 떨어졌다. 말이 안 나오는 슬픔에 중력을 저주했다. 그런데 도대체 왜? 공중에서 춤을 추며 추락하는 그 종이 쪼가리를 보고 나는 무엇을 연상했나? 내가 정신분석가도 아니고, 알 도리가 없다. 그저 그 현상이 너무 슬펐고, 절망해서, 중력에 악의를 느끼며, 각막이 바싹 마르는 것을 느꼈다. 더 이상 살아봤자 무어 기대할 일도 없겠다. 그런 생각을 했다.
 집밖에 나가면 자주 보이는 고양이가 있다. 흰색과 검은색 얼룩무늬 고양이인데, 어쩐지 걷는 자세가 이상하다. 우연찮게 가까운 곳에 있기에 관찰해보았다. 왼쪽 앞다리 관절이 완전히 접혀서 발등으로 걷고 있다. 아마 곧 죽겠지. 마침 옆에 있던 동생은 안타까워했다. 내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다른 고양이들보다 고통스럽게 살다 죽겠지. 불구 고양이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고, 사실은 뭔가를 해줄 의욕도 없다.
 막다른 골목.
 결국에는 잠을 자러 가는 것이다. 수면은 중요한 도구다. 자는 동안에는 내가 존재한다는 것을 까먹게 되니까 말이다. 모든 고통과 불행이 다 존재에서 나온다. 그것을 까먹는다는 것은 안심되는 일이다. 그러나 깨고 보면 나의 뇌하수체에서 분비하는 것들이 바로 지옥의 설계도다. 다시 잠들고 싶어 몸부림치고, 그러나 다시 존재를 시작해야한다.
 일생을 가을모기처럼 살았는데
 겨울이 온다고 죽는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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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신이 살아있다는 사실이 거추장스럽다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가 기다리고 있는 고도의 정체가, 평등한 죽음이라면 좋을 텐데. 그렇게 생각하자 어쩐지 정말 그런 것 같았고, 사뮈엘 베케트의 얼굴표정이 바뀌었다.

 “얼굴 좀 펴. 언제까지 기가 죽어 있으려고.” 아버지는 자러가며 A에게 그렇게 말했다. A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각도에 따라서는 웃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는 표정을 지었다. A는 아버지의 발언에 대해 아무런 의견이 없었다. 다만 그 음색에서 자신의 아들을 걱정하는 감정이 나타났기에, 괜히 울 것 같은 심상이 되었다. 뭔가 할 말이 있지 않으려나 싶었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아무 것도 할 말이 없었다. 사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지 않나, 하고 A는 생각했다. A가 우울과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인생을 허비하고 있을 때, 누군가 걱정해주며 어깨에 가볍게 손을 올리는 정도로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지 않나.
 열어놓은 창문을 통해 바깥에서는 왜인지 휘발유 냄새가 났다. 그것은 주유소마다 붙어있는 변변찮고 낡은 편의점의 야간조명을 떠올리게 했다. A는 인적도 차도 없는 거리의 그러한 야간조명을 볼 때마다 자신의 정서에 장애가 있다는 것을 실감하곤 했다. 그래서 그는 창문 앞에 서서, 초봄의 서늘한 바람이 끌고 온 휘발유 냄새를 맡으며, 오늘 밤에는 죽자고 결심했다.

 널 도와주려는 사람들은, 결국엔 모두 널 증오하게 돼. 응, 네가 더 잘 알지.

 한 2년 전이었을 겁니다. 직장인인 친구가 어떤 여자에게 반했는데, 그 여자가 중증의 기분장애를 갖고 있었다는 끔찍한 상황이 발생한 것은. 저는 몇 번이고 친구를 설득했습니다. 네가 정신과 의사가 아니면 그런 사람들과는 아예 접촉도 하지 말라고 말입니다. 기분장애나 정서장애를 앓고 있는 사람과 유대관계가 되는 건 손잡고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친구는 그 여자를 도와주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거의 조소하다시피 부정했습니다. 그녀가 의존이라는 이름으로 네 영혼에까지 독을 퍼트릴 것이라고 했습니다.
 3개월이나 지났을까요. 친구는 정신이 흉터투성이가 되어서 비로소 포기했습니다. 뭐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는 정상적인 인간관계를 맺을 줄 모릅니다. 자신의 고통에 골몰해서 현실이 도무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누가 우릴 도와주겠다고 다가오면, 항상 익사하기 직전인 우리는 그들의 등과 어깨를 짓밟고 수면 위로 가쁜 호흡을 하러 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를 도와주러 온 사람들은, 상처받고 우리를 증오하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봐, 아카시아 꽃이 피었네, 벌써 봄이야. 어떻게든 또 1년, 살아야겠네.
 꽃들에게 피지 말아달라고 부탁할 수는 없을까.

 A는 골목 구석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다. 사실 담배 같은 걸 살 돈은 없지만, 얼마 전 어머니가 돈을 주기에, 어리석은 곳에 돈을 쓰기 전에 전부 담배로 바꿔버렸다. 그 담배를 피우면서 자신이 사는 음습한 동네를 둘러보고 있다. 몇 달 전인가 동네에 어울리지 않는 신축 멘션이 지어졌다. A는 그 건물을 볼 때마다 어리둥절해하곤 한다. 사방이 붉은 벽돌로 지은 오래되고 지저분한 빌라뿐인 동네에 검은색과 흰색으로 세련되게 지어진 건물이 신기한 것이다. 누군가 들어와서 살긴 살겠지. 보다 돈이 좀 있는 가정이 들어와서, 보다 돈이 좀 있는 다툼과 원망을 건물에다 새겨놓겠지.
 가족들은 전부 자고 있다. A는 새벽마다 담배를 피우면서 골목을 돌아다니는 것이 일과다. 다만 사람들과 마주치는 것은 무섭기 때문에 인적 없는 곳만 골라 다닌다. 술에 취한 젊은이들과 길에서 마주치는 것이 최악의 상황이다. 그들의 발랄하고 활기찬 생명을 목도하게 되면, A는 당연한 듯이 숨쉬기가 힘들어지고 머릿속이 엉망진창이 돼 그대로 굳어버린다. 그러면 젊은이들은 A를 향해 이상한 눈길을 보내고, 그제야 A는 도망친다. 그리고 곱씹는 것이다. 고작 그런 걸로 패닉에 빠지다니, 멍청하게, 그 젊은이들은 날 정신병자라고 생각했겠지…….
 모멸감이 극에 달할 때 즈음이면 집으로 돌아간다. 계단을 한발 한발 올라가면서, 이런 일을 다시 당하느니 차라리 죽어버리자, 중얼댄다. 그러나 아까도 휘발유 냄새 덕분에 자살을 결심했었는데, 이런 결심은 계속 쌓이기만 하는구나. 자학의 마음은 하루하루 깊어진다.
 A는 정신을 마비시키는 약을 한 움큼 삼키고 잔다. 다시 밤이 올 때까지, 강제로 정신병동에 입원당하는 등의 악몽을 꾸며 잔다.

 계속 구르는 바퀴 같은 삶이기에, 이걸 멈추거나 탈출할 방법은 없나, 하염없이 주춤거리고, 결국 생각하는 것은 바퀴를 부수는 일. 바퀴를 부수는 걸 꿈꾸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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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인킬러

기록/생각 2020. 3. 23. 18:34 |

페인킬러


 글쓰기는 항상 나의 진통제였다. 타인의 삶을 살아본 일은 없지만, 같은 또래의 친구들과 함께 자라면서 느낀 것은 내가 너무도 고통스러워한다는 것이었다. 비슷한 상황에 처해도 나는 남들보다 더 커다란 고통을 느꼈던 것 같다. 그것은 대체적으로 고통과 전혀 상관없다고 여겨지는 대상이나 상황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나의 삶이란 노을을 보면서 행성의 운행을 저주하고 새벽녘에 자살을 바라는 식으로 반복되었다. 한강 다리의 난간에 붙은 자살방지문구들은 내게 더 없는 분노와 절망을 안겨주었다. 내게 세상은 고통과 슬픔으로만 가득 찬 악의적인 연극무대였다.
 그러니 무언가 필요했던 것이다. 무슨 음식을 입에 넣어도 모래를 씹는 것 같고 숨만 쉬어도 폐부가 난도질당하는 것 같은 삶에, 당장 이 모든 것을 끝내지 않기 위한 방편이 필요했다. 왜 삶을 지속해야하는 지는 잘 모른다. 다만 나는 내게 깃든 생명이 내 관리 하에 있는 것이 아니기에, 이것이 억지로라도 나의 인생을 지속시키려한다는 사실만은 안다. 어느 끔찍하게 절망스러웠던 15살의 밤에 자리에 누워, 어둠에게 내가 자살하지 않아야 할 이유를 세 시간이나 지껄이던 것이 내 혀가 아니라 생명력의 혀였다는 것을 아직도 기억한다. 왜 살아야하는 지는 모른다. 다만 살아가도록 설계되었다.
 그러니 더욱 진통제는 필요했다. 독서에 미쳐 살던 10대에 읽었던 문학작품들의 대부분이 어느 누구도 행복한 결말을 성취하지 못하는 내용이었던 것을 기억한다. 그런데 그것이 오히려 위안이 되었다. 기계장치에서 내려온 신 따위는 그 어디에도 없고, 인간은 부조리와 비극에 처참하게 압도당한다. 세계는 혼란스럽고 무작위하다. 그런 이야기들을 하는 책들이 내 마음을 가라앉혀주었다. 왜였을까? 아마도 그런 세계관이야말로 이미 나의 세계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행복 따위를 결코 기대하지 않는 것이 나 자신의 정신을 방어하는 방법이었을 법하다. 아직도 행복한 환경에서 건강한 정서로 자라는 아이들을 보면 증오와 절망을 동시에 느낀다. 그것은 내가 아는 세계에 포함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왜 글을 쓰게 되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처음부터 나의 이야기들은 구원도 희망도 없는 이야기들이었다. 10년 넘게, 나는 아주 불쾌한 글들을 써왔다. 원리적으로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사람들이 보고 싶지 않아하는 세상의 불행과 비극, 존재의 존재성 자체로 인해 발생하는 고통, 잘못 태어나버린 인간들…… 그런 것들이 주로 나의 소재였다. 특히 인간사회에서 아무도 바라지 않고 배척할 뿐인 괴물성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들에 대하여, 아무에게도 그 생명을 축복받지 못하지만 거의 악의적으로 생존하고 있는 존재들이 있다는 것을 독자들에게 강조하곤 했다. 천부인권이라는 것은 계약조건에 맞는 인간에게나 내려지는 것이 아니냐고 분노하고 소리 질렀다. 항상 타인에게서 거부당하거나 기괴한 인물로 인식되던 내 경험이 더욱 그렇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확실히 진통제로서의 효과가 있었다. 호흡곤란이나 심인성 흉통이 올 때마다 나는 신경안정제보다 먼저 글쓰기를 찾았다. 당장이라도 경동맥을 뜯어내버리고 싶다는 충동도 글을 쓰고 있다 보면 잦아들었다. 그것이 10년 15년, 그러다보니 어쩐지 나는 글을 <잘> 쓰게 되었다. 많은 독서량으로 마구잡이로 쌓아둔 작문 지식들이 십년 넘게 괴팍한 글들을 쓰는 동안 정리된 것이다. 그런데 그러자 이젠 다른 문제가 생겼다. 글을 <잘> 써야 한다는 문제였다. 나 자신의 진통을 위해서 신경계를 마약성 진통제로 융단폭격 하는 것 같은 글은 세련되거나 그럴싸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제 나는 <좋은> 글을 써야한다. 물론 이것은 좋은 일이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마침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은 것과 같다. 독자의 정신 상태를 불쾌하게 만드는 글들은 이미 충분히 써버렸다. 나는 지금 오랫동안 손에 익은 도구는 들었지만 난데없이 사막 한 복판에 버려진 기분이다. 무엇이 좋은 글일지, 그 누가 알겠는가. 다만 경험으로 알게 된 것인데, 증오와 절망에서 솟아난 글들은 오로지 증오와 절망을 전달할 뿐이다. 최근 과거에 읽었던 문학작품들을 다시 읽어보았다. 아무리 끔찍하고 혼란스러운 내용에 처절한 결말을 담은 글들이라 해도, 공통점이 있었다. 그것은 타당한 인류애였다.
 인간에 대한 사랑이 보이지 않는 책은, 단 한 권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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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19

기록/생각 2020. 3. 19. 02:58 |

20200319


 삶의 궁극적이고 선험적인 문제들이 언젠가는 해결되리라는 느낌을 받아본 일이 없다. 존재함으로서 시작된 고통스럽고 끝이 보이지 않는 문제들이 확실히 있다. 그것은 존재 자체에서 기인한 문제들이기 때문에, 인식하고 고통 받게 되면 제일 먼저 존재의 소멸에 눈이 가게 된다. 그러나 생명체로 태어나서 생명을 쉽사리 버릴 수 있는 인간이 몇이나 될까. 그리고 더 나아가자면, 존재와 생명이 동일한 것인지도 우리는 여러 가지 이유로 확신할 수 없다. 만일 대들보에 목을 매달아 이 불쾌한 사대육신이 전부 흩어져버린다 하더라도, 혹시라도 어딘가에 <나>라는 존재가 남아있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감.
 죽고 싶은 것이 아니다. 소멸하고 싶은 것이다.

 요 몇 주간 자리에만 누우면 하지불안 증후군이 심해서 도통 잠을 잘 수가 없다. 주치의가 안정제를 늘리거나 대체약물을 처방하는 등 여러 가지 시도를 하고 있지만 효과가 없다. 2년에 걸쳐 약물 용량을 5분의 1까지 줄이는 와중에 몸의 약물에 대한 반응이 어쩐지 꼬인 것 같다. 잠을 잘 수 없게 되니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밤에 침대 위에서 세 시간 네 시간을 몸부림치다가 벌떡 일어나 앉아 아무도 모르게 울곤 한다. 낮에는 멍하니 앉아 이 끔찍한 존재의 굴레를 어떻게 해야 할지 당혹에 빠져있다. 바보 같은 생각을 하기도 한다. 목의 경동맥을 잘라내면 다음 생에는 향정신성약물이 필요 없는 몸으로 태어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아무 근거도 없는 기대다. 무엇보다 <다음 생> 같은 건 정말이지 가지고 싶지 않다.

 14살 때 의정부 성모병원에서 진찰을 받았습니다. 신경정신과의 의사는 아주 늙은 여자였습니다. 안경 너머의 눈동자가 구덩이처럼 깊이 파여 있어, 도대체 무슨 생각과 감정을 가지는지 파악할 수 없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여자는 굉장히 단순한 질문만을 제게 던졌는데, 당시 고통과 불안이 몸의 용량을 벗어나 밖으로 뛰쳐나올 것 같은 상태였던 저는, 미친 듯이 내 고통을 알아달라고 지껄였던 것 같습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는 일도 없었고 얼굴은 마치 실리콘으로 만든 가면 같았습니다. 그 늙은 의사가 준 약들을 먹기 시작하자, 저는 하루에 20여 시간을 자게 되었습니다. 3년 뒤 중학교를 졸업하면서 되돌아보니, 3년간의 기억이 전혀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차후에 당시 친구들에게 얘기를 들어 기억을 짜 맞출 뿐이었습니다.
 기억나지도 않는 3년은 기행과 폭력으로 점철되어 있었습니다.

 아스팔트가 회색인 사실에 대해서 참을 수 없이 슬퍼하는 것이 실마리가 아닌가 싶다. 20년 전에도 10년 전에도 아스팔트는 여전히 회색이었다. 그리고 20년 전에도 10년 전에도 나는 삶이 불행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라고는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다. 긴장과 좌절과 분노만이 자취를 남기고 있는 과거에, 아스팔트는 항상 회색이었던 것이다. 언젠가 아스팔트가 파란색이나 청록색이 되리라는 생각은 전혀 없다. 그야 그럴 리가 없는 것이다. 존재의 항상성이라고 생각한다. 맨 처음 어디서 어떻게 조건이 맞춰진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다소의 변화를 겪더라도 계속 유지되는 것이다. 아스팔트는 회색이다. 나는 그것이 못 견디게 슬프다.
 아스팔트는 언제나 회색이어야만 하는 것인가.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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