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기록/생각 2020. 4. 28. 01:45 |

가족


 밖에 나가는 것이 두렵다.
 행인들이 있기 때문이다.
 방안에서 담배를 피우고 싶다.
 그러나 여긴 내 집이 아니다.
 어머니가 쓰러졌다.
 병원에 입원해있다.

 늑골이 참을 수 없이 아프다. 그러나 별 도리가 없다. 늑골인지 가슴인지는 14살 때부터 끊임없이 아파왔다. 흉부외과에서는 아무런 이상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들은 날 신경정신과로 보냈다. 성모병원 신경정신과의 여의사는 내게 엄청난 양의 약을 줬다.

 새벽에 거실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 나가봤다. 어머니가 거실바닥에 쓰러진 채로 구토를 하고 있었다. 일으켜 세워 변기까지 옮겨놓았다. 열 번인가 구토를 했다. 몸을 움직일 힘도 없는 듯 변기를 얼싸안고 있었다. 한참동안 어머니의 등을 쓰다듬었다. 내가 상황에 적합하지 않은 얼굴표정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깐 방으로 가서 의사가 긴급용으로 준 신경안정제를 꺼내먹었다. 15분 정도면 내 얼굴표정에 강박을 가지기보다는 어머니를 걱정하게 되겠지.
 어머니를 거의 짊어 매다시피 해 이불에 뉘였다. 어두운 방 안에 누워 환자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마 나도 환자의 얼굴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어머니가 누워서 불규칙한 호흡을 하는 동안 그녀의 손을 잡고 있었다. 창밖에서 비치는 빛에 어머니의 얼굴 어딘가가 반짝거렸다. 자세히 보니 눈물이었다. 아무 절망도 슬픔도 없이 오랫동안 어머니의 손을 잡고 있었다.
 아침에 아버지가 출근하는 길에 어머니를 부축하고 병원으로 갔다.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거의 아버지한테 온몸을 맡기고 있는 어머니를 보았다. 이제 좀 자야겠다고 생각해서 수면제를 먹고 잠에 들었다.
 어머니가 큰 병원으로 옮겨지는 동안 나는 수면제에 취해 아버지 전화도 받지 못했다.

 “너 얼굴이 누렇게 떴어. 죽으려는 듯이…….” 일주일 전인가 어머니가 내게 한 말이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위장병 때문에 두 달 정도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않았다. 하루에 먹는 식사라는 것이 밥 한 숟가락 정도였다. 엄청난 속도로 살이 빠졌다. 어느 날 아버지는 술기운에 화를 냈다. 굶어죽을 셈이냐고. 가만히 앉아 꾸지람을 들었다. 그러나 어떤 음식이든 입안에 넣으면 불쾌한 이물질처럼 느껴지는 것이 내 잘못은 아니다. 잘못? 아, 잘못이라. 다시 생각해보면 분명 내 잘못이겠지. 심신이 건강하지 못하다는 것은 죄악이다. 자신의 몸이고 정신이고 최악의 결과에 도달하리라는 것을 짐작하면서도, 그저 흘러가고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두는 것은 죄악이다. 스스로의 존재를 책임지지 않는 일은 온 사회로부터 지탄받을 끔찍한 죄악이다.

 새벽에 화장실에서 거울을 보았다. 어릴 때는 총명하게 잘 생겼다는 얘기를 수도 없이 들었다. 지금은 그 얼굴이 광대뼈 밑에 깊은 그늘이 파였고, 눈두덩은 미치광이처럼 툭 튀어나와있다. 추악한 얼굴이라고 생각한다. ‘추악’에 惡이라는 한자가 들어가는 걸 생각해보면 과연 그렇다. 거울에 대고 조소할 용기도 없다.

 가족.
 이보다 더 비극적인 명사가 따로 있을까. 계속 사랑하며 계속 배신한다. 의지로 그러는 것도 아니고, 그냥 그렇게 설계된 인간군집이다. 당신을 사랑하지만 당신을 증오하고, 당신이 사라졌으면 좋겠지만 정말 사라진다면 견딜 수가 없다.

 다섯 알의 노란 정제가
 거품처럼 식도를 타고 내려간다.
 이제 나는 분노하거나 원망하는 방법을 잊어버려
 당신을 바보처럼 행복한 눈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불행한 눈동자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설령 초면이더라도 함께 죽으러 가지 않겠냐고 묻고 싶어 견딜 수 없다.

Posted by Lim_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