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 분쟁이 어쩌고저쩌고


 사람들은 멍청하다. 아니, 오해가 없도록 더 정확하게 말하면 자신이 피해자라고 믿고 있는 사람들은 멍청하다. 그들은 항상 모든 인간집단에 대해 적대적이지만, 만일 누군가가, 설령 아무리 보아도 자신들과 동떨어진 성질의 누군가라도, 자신들과 같은 ‘피해자 정체성’의 일부를 공유하고 있다는 실마리만 던져주는 즉시 ‘자신들’의 편이라고 믿어버린다. 일상적인 의구심이나 관찰, 혹은 통찰 능력이 그들에게 없는 것이 아니다. 자신들이 피해자라는 믿음의 근원이 되는 부분에 있는 정체성의 동일성만 보여주면 순식간에 그런 능력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그들의 멍청함은 바로 거기에 있다. 세계를 간단하게 이분화하려는 욕망 말이다. 피해자와 가해자. 피해자 집단과 가해자 집단. 그것으로만 세계가 이루어져 있다고 믿으면 자신이 겪는 인생의 격렬함(고통보다는 차라리 이 단어가 낫겠다)에 대해 굳이 머리 아프게 고민할 필요가 없다. 이건 인류 역사에 항상 있었던 무지함이지만 마르크스가 거대한 사상 덩어리로 만들어 내놓은 이후로 누구든(심지어 공산주의를 증오하는 것이 전제조건인 집단이더라도) 써먹을 수 있는 이념의 형태가 되어버렸다. 프롤레타리아와 부르주아라고 부르든 독일인과 유대인이라고 부르든 여성과 남성이라고 부르든 항상 형태는 똑같다. 부조리한 피해를 받고 있다고 여겨지는 집단이 부조리하게 가해한다고 여겨지는 집단을 공격하고 부수고 전복시키고 마침내 혁명을 이뤄야 한다는 너무나 간단한 구조다.
 그런데 마르크스의 책을 읽다 보면 아무리 뒤져도 도무지 명시되지 않은 부분이 있다. 투쟁과 혁명이 완수된 뒤 도대체 그들의 사회가 어디로 갈 것인가에 대한 점이다. 당장 공산당 선언만 읽더라도 그의 이론대로 혁명이 성공한 이후, 그가 설계한 사회를 만들어낸 뒤, 마르크스는 그 사회가 이미 완벽한, 낙원이나 다름없는 사회이기 때문에 계속해서 잘 굴러갈 것이라는 뉘앙스만을 풍기고 있다. 역사적으로 공산국가들이 결국에는 독재자의 경찰국가가 되거나 경제적으로 패망하거나 국제사회에서 고립됐다는 사실을 살펴보면 그것이 결코 ‘영구히 유지되는 낙원’이 아니라는 건 간단하게 알 수 있다. 그러나 더 큰 문제점은 공산주의가 낙원을 잘못 설계했다는 점이 아니다. 사회가 ‘피해자’와 ‘가해자’만으로 분열되고 그걸 극복하는 방법이 오로지 ‘피해자’ 측의 열광적 혁명활동이라는 점이 제일 큰 문제다. 정말로 ‘피해자 집단’이 혁명을 완수해서 그들이 생각하기에 완벽한 사회구조를 만들면, 아니 정말로, ‘완벽한’ 사회구조라는 게 그들에 의해서 만들어진다면,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낙원은 변하지 않는다. 낙원은 발달할 이유가 없다. 낙원은 고통과 죽음을 겪으며 진화할 이유도 없다.
 무동성(無動性)의 사회에 남은 가능성은 쇠락과 패망밖에 없다. 왜냐하면 이 우주에 영원이라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 옛날 구약성경의 저자들조차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에덴동산에서 거주하는 이들의 결말은 에덴동산으로부터의 영원한 추방밖에 없다. 설령 그러한 신화적 파라다이스가 존재한다고 치더라도, 인간은 자신들이 ‘인간성’이라고 부르는 것에 의하여 ‘완전무결한 사회’라는 개념으로부터 본질적으로 괴리되어있다.

 그리고 사실은 그들보다 자신의 정신상태가 훨씬 엉망진창이라는 걸 알면서도 이런 글이나 쓰고 있는 나는, 점점 더 절박해지고, 초조해지고, 인생에서 구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여기는 나는, 완전한 사상 같은 것이 아니라 THC가 필요하다.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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