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사랑하는 선한 사람들에게 나는 사죄밖에 할 게 없다
기록/생각 2020. 4. 20. 04:16 |나를 사랑하는 선한 사람들에게 나는 사죄밖에 할 게 없다
반드시 유쾌해져야합니다. 발랄하고 경박해져야합니다. 마음 따위는 없는 듯이, 차라리 몸 안에 혈액이라고는 한 방울도 흐르지 않는 듯이 유쾌해져야합니다. 생명의 무게 같은 것은 사람을 미치게 하는 것인데, 그것도 아주 고약하게 우울과 비참을 뒤집어쓴 미치광이로 만드니 절대 그 무게를 느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얼마 전인가 몇 년 전인가, 나라에서 제일가는 재벌가의 딸이 자살하는 사건이 벌어졌었습니다. 처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아무런 이렇다 할 생각이 없었습니다만, 나중에 동창과 술자리를 가질 때 그 얘기가 나온 것입니다. “뉴스에서 봤어? 말도 안 되지. 만약 나라면……” 저는 그때 동창에게 무슨 대답을 하기 보다는 그저 술이나 따라주며 맞장구나 쳐줬습니다. 첫째로 그 자리에서 전 술값을 지불하기엔 지갑사정이 너무 빠듯했고, 둘째로 제가 무슨 얘기를 하든 그것은 분명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하게 알고 있는 것이 있었습니다. 만일 누군가 저에게, “누구누구 씨 좀 봐, 가정이며 교우관계며, 분명 행복하겠지?” 따위의 것을 묻는다면, 아니, 아니다. 그럴 리가 없다. 이 세상에 불행하지 않은 인간은 없다. 인간이니까 불행할 수밖에 없다. 하고 못을 박을 것을 저는 스스로 알고 있었습니다.
학생 때부터 저는 친구들 사이에서 말하자면 ‘유쾌한 미치광이’로 통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무슨 일이든 저에게는 다 농담거리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고, 심지어 도덕이나 정의 같은 경건한 단어들조차도 제게 걸리면 유흥가 골목거리에 뿌려진 퇴폐업소의 찌라시에나 찍혀있을 법한 단어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모독적인 농담이나 우스갯소리를 즐겨 했고, 친구들이 역시 저놈은 정신이 어떻게 되었단 말이야, 하고 즐거워하면 일부러 더 거의 패륜에 가까운 이야기를 희극조로 했던 것입니다. 그것이 제가 은근히 눈치를 보며 친구를 만드는 방법이기도 했습니다만, 동시에 제가 생존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들 중 하나였던 것입니다. 생명의, 존재의 무게에 짓눌려 폭발한 고기더미처럼 되지 않기 위해.
무슨 수를 써도 광인일 수밖에 없다면 침울한 광인보다는 차라리 경박한 광인이 낫다. 어제는 담배를 피우려고 현관문을 열고 나갔는데 공기에서 묵직한 봄비의 냄새가 났습니다. 그 순간 저는 누군가가 해머로 제 가슴을 후려쳐서 늑골이고 심장이고 전부 박살이 난 것 같은 기분을 느꼈습니다. 밑도 끝도 없이 흠뻑 절망하여, 더는 살아갈 수 없다, 살아간다고 해서 나아질 리가 없다, 하고 계단참에서 발이 묶여버린 것이었습니다. 한참 목각인형처럼 서 있다가 밖에서 담배를 피운 뒤에도 그 처참한 심정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마치 구원처럼 친구에게서 전화가 온 것이었습니다. 여보세요, 하니.
“내과는 갔다 왔어?”
그렇다고 했습니다. 친구는 제가 요즘 위장병을 심하게 앓는 중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의사가 뭐래?”
“약을 좀 주던데. 며칠 뒤에 다시 오래. 나아지지 않으면 위궤양일 수도 있다고……”
“궤양! 지난 가을엔 폐결핵에 걸리더니.”
“차라리 이번에야말로 암 같은 거면 좋겠네.”
그러자 친구는 큰소리로 웃었습니다. 분명 평소의 농담이라고 생각한 것일 터입니다만, 애당초 친구에게는 제가 늘상 그런 위험한 농담을 하는 인간으로 정해져있는 것입니다. 친구의 웃음소리를 들으니 저도 신이 나서 덩달아 웃었습니다. 기분이 나는 김에 불치병에 대한 판타지는 말이지, 더는 아무 것도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 있는 거라고, 하고 덧붙이며 실실거렸습니다. 비 냄새를 맡았으니 죽자고 생각하던 자신은 어느새 저 멀리 사라져있었습니다. 빠개졌던 늑골과 심장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습니다.
계기가 필요한 거겠죠. 악랄한 농담을 빌어 자기 자신마저 길거리에 떨어져있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나사 한 조각처럼 무가치하다고 느끼기 위해서 말입니다. 무가치한 것에는 무게가 없습니다. 무게가 없는 것에 대해서는 진중해질 수 없습니다. 그편이 좋습니다. 만일 무언가에 대해 진중하게 된다면, 인간이라서, 인간이니까, 기필코 불행해지니까요.
온 세상 온 인류가 허섭스레기에 불과하다는 저열한 농담만 일생 반복하다보면, 그것이 진실이 됩니다. 가장 즐거운 것은 불행도 세상의 일부이니 그것마저도 아무런 진실성이나 슬픈 느낌을 갖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 봐도 경박하고 비겁한 조롱이나 뿌리고 다니는 저는, 유쾌하게, 존재의 중량에 찌부러지지 않아도 되는 것이고요.
그러나 전혀 예기치 못한 순간에 맡게 되는 공기 중의 비 냄새 같은 것은, 새벽에 의자에 앉아있을 때 악령처럼 덤벼드는 공허감은, 전깃불의 색채가 불현 듯 끄집어내는 수치에 수치를 더하는 인생의 기억들은, 그런 것들은 정말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죽음을 제한 모든 것을 영원히 보류하는 방법은, 그런 것은 없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