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 20200916

기록/생각 2020. 9. 16. 13:33 |

 도무지 뭐 쓸만한 것이 떠오르질 않네요. 나름 심각한 상황입니다. 요새 하는 일이라고는 6시간도 채 못 자고 호흡곤란을 느끼며 일어나거나, 힘겹게 잠든 지 몇 시간 만에 괴몽을 꾸고 벌떡 일어나 다시 잠들지도 못하고, 하루 종일 이불 위에 卍자로 엎어져서 음악이나 듣는 것뿐입니다. 음악이라는 것도 원래 10년 이상 지속된 확고한 취향이 있었습니다만 지금은 그저 인터넷 음악 서비스 사이트에서 자동재생을 눌러놓고, 스피커에서 뭐가 흘러나오든 듣는 둥 마는 둥 이불 위에서 까딱도 하지 않는 지경입니다.
 그러니까 뭐라도 써야하는 것입니다. 딱히 무슨 생활에 가치를 만들겠다느니 의미를 부여하겠다느니 그런 게 아니라, 가면 갈수록 흉곽이 점점 조여와서 허파고 심장이고 다 터져버릴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아니, 의미니 가치니 하는 게 맞는 얘기일 수도 있겠네요. 흉통이나 절망감으로 상징되는 실존적 고통을 느끼지 않으려면 착각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한컴오피스에 별 시답잖은 얘기나 적어놓고서라도 그게 A4용지 1페이지, 2페이지가 되면 스스로, 아, 내 존재가 뭔가를 기록했다, 하는 착각이라도 느껴야 늑골의 밀도가 점점 감당하기 어려워지는 느낌을 잊을 수 있는 겁니다. 사실 제 삶이 여전히 폐(廢)하고 패(敗)한 상태 그대로라고 해도 말입니다.
 지금은 오전 11시입니다만, 오늘은 오전 3시에 느닷없이 깨버렸습니다. 아마 가을모기 때문인 것 같은데, 신경질적으로 일어나서 모기향을 켜고 보니 더 이상 잠이 올 리가 없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요새는 계절의 구분도 애매해서 9월 모기를 가을모기라고 불러도 좋을지 잘 모르겠네요. 다자이 오사무의 단편 중에 가을모기에 대한 구슬픈 얘기가 있었던 것 같은데, 이젠 소재조차 못되겠네요.
 아무튼 가을모기가 중요한 게 아니고, 깨버렸으니 별수 없이 음악을 틀어놓고 또 산송장처럼 컴컴한 천장만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한 시간인가를 그러고 있다가 어쩐지 갑갑한 마음이 들어서 불을 켜고 주변을 둘러봤습니다. 최근까지 병행해서 읽고 있던 책 세 권이 이불 주변에 흩어져 있었습니다. 한 권은 80년대 한국 시집이고, 한 권은 80년대 영국 신학자의 성경 복음서 비교분석 서적이고, 한 권은 80년대 이론물리학자가 쓴 일반 대중의 신, 생명, 의식에 대한 믿음이 어떻게 현대물리학에 의해 설명될 가능성이 있는지에 대한 교양서적이고……. 80년대. 80년대. 80년대. 십8…… 지금 2020년 아니었나. 스스로에 대한 분노 비슷한 것이 치밀어오르려고 하기에 순간적으로 생각을 멈췄습니다. 부엌으로 나가 냉장고에서 커피 하나를 꺼내 마시고 방으로 돌아와 물리학자가 쓴 책을 집어 들고 벽에 기대앉았습니다. 물질계와 의식계가 분리될 수 있는 것인지, 분리될 수 있다면 시공간 기하학이 어쩌고 양자물리학 이론의 시공간이 형성되지 않는 하부 단위 차원이 어쩌고, 한참을 읽고 있다가 덮었습니다. 책이 재미없었던 것이 아니라 잠을 제대로 못 잔 상태에서 88년에 인쇄된 책을 보고 있으려니 눈알이 터질 것 같아서였습니다.
 몸의 각 부위는 피곤하다고 난리를 쳐대는데 잠을 잘 수도 없습니다. 일단 한 번 깨버리면 17시간 이상 활동(?)하고 저녁 약을 먹어야만 잠에 들 수 있습니다. 피곤해서 죽을 것 같다든지 서너 시간밖에 못 잤다든지 그런 건 제 뇌가 접수해주는 탄원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니 이젠 할 수 있는 게 이불에 늘어진 채로 눈을 감았다 떴다 하면서 머릿속으로 욕설이나 반복하고, 어느새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은 고딕 클래식과 데스메탈을 접합한 심란해야 하는 건지 머리를 흔들어대야 하는 건지 잘 알 수 없는 음악이었습니다.
 아아, 숫제 죽고 싶다. 이런 생각을 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까 이것도 분명히 ‘인간실격’에서 읽은 문장이고. 다자이 오사무 대단히 좋아하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내 정신 깊숙한 곳에 끼어들었는지. 여하간 당장 목매달고 모든 것에 작별을 고할 정도로 행동력 있는 마음가짐은 아니었지만 굉장히 절망스럽고, 절망한 것보다 더 피곤한 상태였습니다. 도대체 며칠 몇 주를 이렇게 보냈는지. 부처님의 수많은 금언 중에 유일하게 제가 온 마음으로 공감하는 것이 있다면 다른 말씀이 아니라 삶이 고해라는 것입니다. 그걸 초월하고 집착을 내려놓는 방법에 대한 말씀은 별로 공감을 못 하는 걸 생각하면 제가 그다지 현명한 인간이 아니라는 건 확실합니다. 여하간.
 고립감, 염세, 절망, 비애, 고통, 무기력. 그렇습니다. 무기력. 이 모든 상황과 저 자신을 해결하려는 의욕조차 생기지 않는 무기력. 마냥 이불에 투신한 채 이러다 갑자기 대동맥이라도 막히지 않으려나, 하는 멍청한 생각이나 하면서 도대체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릅니다.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으리라고 알고는 있지만 이대로 공기도 안 좋은 퀴퀴한 방에 처박혀 있으면 조금씩 무의미와 동화되지 않을까 하는 이상한 기대나 갖고 말입니다.
 그런데 문뜩 이불 옆에 세워놓은 책장에 눈이 갔습니다. 맨날 보는 책장이지만 유난히 눈에 띄는 책이 세 권 있었는데, 다른 이유가 아니라 단순히 사이즈가 거대하고 은박이 입혀진 양장에다가 심지어 세 권 모두 먼지로부터 보호하는 커버까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톨스토이의 ‘인생이란 무엇인가’ 진리, 사랑, 행복편이었습니다. 내가 저걸 언제 샀지? 분명 언젠가 읽은 것 같긴 한데 무슨 내용이었는지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나네. 게다가 저렇게 비싸 보이는 소장본을 말이야.
 사실 어려서부터 러시아의 유명한 작가들 책은 닥치는 대로 다 읽어서 유럽 작가들의 저작보다 더 많이 읽은 것 같습니다만, 이상하게 톨스토이는 기억나는 게 거의 없습니다. 그 구둣가게 앞에서 눈맞고 쓰러져있던 젊은 거지가 사실 천사였다는 소설이 톨스토이 작품이었던가요? 종교색 강한 게 그 양반 맞는 것 같긴 합니다만, 정말 그 정도밖에 기억나는 게 없습니다. 나중에 온 집안의 책장을 다 뒤져보니 ‘전쟁과 평화’, ‘안나 까레리나’, ‘이반 일리치의 죽음’ 등이 나오긴 했습니다만, 읽었다는 사실은 기억하는데 내용은 아무것도 기억나는 게 없습니다. 애당초 이런 책 사놓을 사람이 집안에 저밖에 없는데요.
 찾다 보니 서로 다른 출판사에서 중복되게 산 작품도 꽤 되는 도스토옙스키 전집이 나왔습니다. 도스토옙스키도 20대 초중반 이후로는 읽은 기억이 없는데, 이상하게 이 사람 작품은 내용이 거의 온전하게 머릿속에 남아있네요. 이건 뭐 그다지 중요한 일은 아닐 겁니다.
 여하간 그 은빛으로 반짝이는 커버와, ‘인생이란 무엇인가’라는, 사실 평소 같으면 톨스토이의 음성이든 니체의 음성이든 성격적으로 침을 뱉어버릴 문장에 순간 홀려버렸습니다. 이젠 에미넴이 랩을 하고 있는 음악을 배경으로 천천히 책에 손을 가져갔습니다. 그리고 각 권의 주제로 명기된 진리, 사랑, 행복을 쳐다보다가, 기름칠 안 된 기계가 움직이는 것처럼 진리편을 뽑았습니다. 그때 순간 뇌에서 욕설이 쏟아져나왔던 것 같은데, 익숙한 일이네요. 갑자기 생각난 겁니다만 단테가 신곡의 시작을 지옥편으로 한 건 참 현명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정도 읽고 생각한 겁니다만, 전 이 책이 명언록이라는 걸 완전히 까먹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무튼 계속 읽었고, 또 각막이 폭발해버릴 것 같은 느낌이 들 때 즈음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 뭐라도 쓰자. 언제나 자해보다도 알프라졸람보다도 알코올보다도 효과적으로 내가 안전하다고 느끼게 만들어 주었던 건, 불법적인 일을 빼면 글쓰기밖에 없지 않았나.
 그런데 요즘 이렇게 개판으로 생활을 하는데 뭘 쓰지? 쓸 게 있기나 한가? 소재도 주제도 떠오르는 게 없고, 요즘은 뭔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 일조차 없는데.
 그래서 결국 이렇게 정했습니다. 첫머리는 다음과 같이 하기로. ‘도무지 뭐 쓸만한 것이 떠오르질 않네요.’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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