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319

기록/생각 2020. 3. 19. 02:58 |

20200319


 삶의 궁극적이고 선험적인 문제들이 언젠가는 해결되리라는 느낌을 받아본 일이 없다. 존재함으로서 시작된 고통스럽고 끝이 보이지 않는 문제들이 확실히 있다. 그것은 존재 자체에서 기인한 문제들이기 때문에, 인식하고 고통 받게 되면 제일 먼저 존재의 소멸에 눈이 가게 된다. 그러나 생명체로 태어나서 생명을 쉽사리 버릴 수 있는 인간이 몇이나 될까. 그리고 더 나아가자면, 존재와 생명이 동일한 것인지도 우리는 여러 가지 이유로 확신할 수 없다. 만일 대들보에 목을 매달아 이 불쾌한 사대육신이 전부 흩어져버린다 하더라도, 혹시라도 어딘가에 <나>라는 존재가 남아있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감.
 죽고 싶은 것이 아니다. 소멸하고 싶은 것이다.

 요 몇 주간 자리에만 누우면 하지불안 증후군이 심해서 도통 잠을 잘 수가 없다. 주치의가 안정제를 늘리거나 대체약물을 처방하는 등 여러 가지 시도를 하고 있지만 효과가 없다. 2년에 걸쳐 약물 용량을 5분의 1까지 줄이는 와중에 몸의 약물에 대한 반응이 어쩐지 꼬인 것 같다. 잠을 잘 수 없게 되니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밤에 침대 위에서 세 시간 네 시간을 몸부림치다가 벌떡 일어나 앉아 아무도 모르게 울곤 한다. 낮에는 멍하니 앉아 이 끔찍한 존재의 굴레를 어떻게 해야 할지 당혹에 빠져있다. 바보 같은 생각을 하기도 한다. 목의 경동맥을 잘라내면 다음 생에는 향정신성약물이 필요 없는 몸으로 태어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아무 근거도 없는 기대다. 무엇보다 <다음 생> 같은 건 정말이지 가지고 싶지 않다.

 14살 때 의정부 성모병원에서 진찰을 받았습니다. 신경정신과의 의사는 아주 늙은 여자였습니다. 안경 너머의 눈동자가 구덩이처럼 깊이 파여 있어, 도대체 무슨 생각과 감정을 가지는지 파악할 수 없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여자는 굉장히 단순한 질문만을 제게 던졌는데, 당시 고통과 불안이 몸의 용량을 벗어나 밖으로 뛰쳐나올 것 같은 상태였던 저는, 미친 듯이 내 고통을 알아달라고 지껄였던 것 같습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는 일도 없었고 얼굴은 마치 실리콘으로 만든 가면 같았습니다. 그 늙은 의사가 준 약들을 먹기 시작하자, 저는 하루에 20여 시간을 자게 되었습니다. 3년 뒤 중학교를 졸업하면서 되돌아보니, 3년간의 기억이 전혀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차후에 당시 친구들에게 얘기를 들어 기억을 짜 맞출 뿐이었습니다.
 기억나지도 않는 3년은 기행과 폭력으로 점철되어 있었습니다.

 아스팔트가 회색인 사실에 대해서 참을 수 없이 슬퍼하는 것이 실마리가 아닌가 싶다. 20년 전에도 10년 전에도 아스팔트는 여전히 회색이었다. 그리고 20년 전에도 10년 전에도 나는 삶이 불행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라고는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다. 긴장과 좌절과 분노만이 자취를 남기고 있는 과거에, 아스팔트는 항상 회색이었던 것이다. 언젠가 아스팔트가 파란색이나 청록색이 되리라는 생각은 전혀 없다. 그야 그럴 리가 없는 것이다. 존재의 항상성이라고 생각한다. 맨 처음 어디서 어떻게 조건이 맞춰진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다소의 변화를 겪더라도 계속 유지되는 것이다. 아스팔트는 회색이다. 나는 그것이 못 견디게 슬프다.
 아스팔트는 언제나 회색이어야만 하는 것인가.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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