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자살하지는 않겠죠. 그것은 추잡하니까.

 우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인지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얼굴들이 분열되어 있고 각각의 조각이 타인, 그리고 다른 조각들을 위한 것이라고 알아차리는 순간 존재라는 상태는 참을 수 없이 모순되어 있고 그 어떤 정당성에도 부합하지 않는 것이 되어버린다. 그것은 진실이 민낯을 드러내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아편중독자가 되기 전에는 금단증상이 보여주는 세계를 직시할 수 없는 것과 비슷하다. 지드가 나타나엘에게 가르치려 했던 것은 '쓸모없는 진실'을 만들어내지 않는 방법이었을 것이다. 현실은 이미 현상들만으로 충만해있고 내재된 실재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한 인간의 영혼이 무너질 때 느닷없이 생겨난 장막이 걷어지고, 그것이 감당할 수 없는 공허와 부조리, 무질서, 황폐함을 몰고 오는 것이다. 현상의 뒷면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자하는 강박이야말로 이미 완성되어있던 인간의 정신을 부수고 썩게하는 독약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저주처럼 독약을 마시며 성장해야만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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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의식은 세계에 대항하고자 채식주의를 바라지만
내 무의식은 한 조각의 맛좋은 고기를 달라고 울부짖네
어떻게하란 말인가.>

주인공 중 한명인 '작가'의 독백.
작품 내내 이어지는 작가의 대사들은 대화상대가 분명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혼잣말이나 다름이 없다.
자기자신만의 고뇌와 갈등에 갇혀 세계와 마음을 터놓고 대화하는 것이 불가능한, 완전한 '작가적 인물'.
가장 대사가 많은 그의 말들은 주로 카메라를 응시하며 내뱉어진다.

<내가 그곳에 들어갔다고 쳐
천재가 되어서 세상으로 돌아가는 거지
작가가 글을 쓰는 이유는 의혹과 번뇌 때문이야
늘 자신과 세상에게 끊임없이 증명하려는 거지
그 자신이 가치롭다는 것을 말야
만약 내가 천재라는 걸 확신하게 된다면?
글을 뭐하러 쓰겠어?
이유가 도대체 없잖아.>

그곳에 들어간 자의 소원을 들어준다는 '구역'에 자신이 들어가 영감을 얻고 천재가 되는 상황을 상정하며 자신의 패러독스를 고백하는 작가.
고백. 그는 계속해서 고백한다. 말상대인 '교수'가 그의 혼잣말 같은 고백들에 질려 짜증을 부려도 그는 멈추지 않는다.
애당초 그에게 말상대란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분명 그의 고백과 그의 작품들은 무척이나 닮아있을 것이다.
글을 쓰는 작가에게 독자란 실존하는 인간(귀와 입)이 아니다.
그것은 가정(supposition)이다.
어떻게 보면 그는 작가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대화상대가 눈앞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독백을 읊는 것일지도 모른다.
까뮈의 <전락>의 화자인 클라망스를 떠오르게 한다.

<그리하여 여름은 갔다/기념비 하나 남기지 않고서
태양은 따사롭지만/여전히 충분치는 않도다
모든 진실이 이루어졌도다
마치 손바닥에 오므려 접은/다섯 손가락의 솜털인양
충분하지 않을 뿐
그루갈이 끝에도/악마는 물러가지 않았다
세상은 축제처럼 흥청거리나/그것도 충분치는 않다
영원한 삶이 나를 먹이고/보살피고 웃게 하고 있었다
나는 행운아였다/그러나 충분치는 않았다
잎사귀들은 하나도 마르지 않고/사지는 하나도 부러지지 않고
유리처럼 마알간 한낮/그러나 충분치는 않았다.>

일행이 전부 멀쩡히 '구역'에 도착하자 기쁘다며 다소 흥분한 모습을 보이는 '잠입자'.
죽은 '멧돼지'의 동생이 지었다는 시를 암송한다.
'잠입자'의 떨리는 목소리가 만들어내는 운율이 인상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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