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영수증을 사 들고 갔다


 그때가 아마 와인 바틀 팔아먹으며
 수염쟁이 사장 얼굴
 쥐어뜯고 싶어도
 월급은
 받아야
 겠으니
 새벽 세 시까지 가게 지키다 내
 돈으로, 택시 타고 퇴근할 때였나.

 아마 봄이었다, 아마
 그랬다, 반팔 입고 있었으니
 초여름 같기도 한데, 시기상
 그럴 리는 없고.

 강남 와인샾에서 재고 정리하고
 장부 정리
 매출 정리
 가게 정리
 정리라는정리는닥치는대로하며
 30분마다 셀러 들어가
 코르크 깨지거나
 상한 건 없는지
 온도는 맞는지
 그런 참으로 쓰잘데없고와인에간쓸개다빼주는
 그런 노동을 하고 있었는데

 사장이란 놈은 근로기준법 비켜 가겠다고
 점심시간을 3시간 30분으로
 정해놓는 바람에
 셀러에서 코트 덮고 자고
 있었는데

 얼굴에 부티 번들번들
 개기름처럼 빛나는
 웬 아저씨가
 현관 흔들며 종소리 딸랑딸랑
 잠을 깨웠다.

 부은 눈동자로 맞이하니
 개기름 속에 기쁨과 행복이 가득
 했다.

 셀러로 안내하자

 이번에 제 아들이 서울대에
 서울대에 합격을 해서,
 가족들끼리 축하연 하려고, 어떤 와인이
 좋겠습니까?

 돈 깨나 있어보였다.

 우선은 벼락 맞을 놈의, 200만 원, 넘어가는, 5대 샤또와, 유명 도멘느들, 바틀을,
 떨어지지 말라고 셀러에 타이까지 묶어서 고정해놓은
 그런 것들
 소개해주고
 한 마디 붙였다,
 이번에 독일에서 새로 들어온
 70만 원 하는 와인이 있는데요
 밸런스랑 퀄리티는
 250만 원 값어치도 합니다.
 충분히.

 그 양반 무슨 소리를
 하기는 했는데
 웃는 척하느라 못 들었다.
 결국 사 간 건
 샤또 마고
 200만 원,
 빈티지는
 기억도 안 난다.

 영수증을 달라고
 했다.

 그 행복한 양반,
 영수증을
 사 갔다.

 사장님, 샤또 마고,
 팔렸습니다.
 사장은
 기뻐했다.

 대학이 어떻게 생긴 곳인지도 모르는, 나는
 새벽에 찾아올
 만취한 이혼녀와 유부녀들을 위해
 점심시간
 끝나기 전까지,
 더 잤다.

 셀러는 언제나
 더럽게 추웠다.

Posted by Lim_
:

새들이 페루에 가서 뒤지든 사람이 무엇으로 버티든 그게 뭐


행복한 거야, 이 사람들은. 나 같은 멍청이가 이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면 이제 곧 두 사람을 망쳐놓을 거야. 조촐한 행복. 착한 모녀에게 행복을.
-<인간 실격> 中

 조촐한 행복.

 대충 삼십 년은
 그게 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서
 온 대륙과 대양을 태풍이나 재해처럼
 쏘삭거리고 다녔다

 이제 알겠다
 고,
 목장갑 끼고 산밑 내려다보며
 성대하게 착각한 뒤
 로는,

 남의
 조촐하고
 섬세한
 행복
 따위나
 훼방 놓고
 좌절이며분노며치졸한질투며결국에는도망쳐소독약과타르냄새속에뒹구는
 그런 생활.

 조촐한
 행복. 호흡이 엉킬 정도의

 숨이, 쉬어지기를 거부하는

 실제로 찾던 조촐한 것은
 딱히 지하층 호프집이나
 루프탑 바는커녕
 도시에도 산에도 염병할 놈의 들깨밭과 양계장에도,
 비행기 타고 떠나 오물 구덩이를 뒤적여도
 말파리에 쏘여 피를 질질
 흘려도 쥐뿔만치도 안 보였고

 참 이상하게도
 조촐한 사람들에게도
 안 보였다.

 어느새 또 돌아온, 행복이니 안정이니 안심조차 애당초부터
 쓸려나간 자리에
 어느새 또 가을은 높은 빛살과 냉기와
 빈곤만 방안에 뿌려대는데

 어느새 또
 아무것도 못 찾았다고
 타자 두들기는
 사나운 고백만
 이번으로
 약 이십 회쯤,
 되었던가

 무너진 사람
 사이는
 몇십 間
 이더라

Posted by Lim_
:

서정시를 써야만 해서

글/시 2026. 10. 13. 17:27 |

서정시를 써야만 해서


 책상 뒤켠의 곰팡이와
 굳어 단단해진 먼지와
 잠들 수 없는 방안의
 경련하는 그림자뿐 아니라
 인간의 피부 안
 그 안쪽까지
 샅샅이
 뒤져보았는데

 그 무엇도 숨겨진 채로
 놓아둘 수는 없다고,
 서정과 시의
 연료나 되어 타라고.

 그래도 인류의 구정물은
 선명하더라도, 거대해서 괜찮은
 괜찮은 오물이었다.

 다만 인간은.
 서정이 펜을 드는 순간
 도무지 끌어안기 아픈
 핏덩이 섞인 눈물과
 체액 덩어리였다 마실 수도
 없는.

 변기에 위장을 쏟아부으며
 2년의 금주를 비웃고
 거울 없는 상가 화장실과
 거울 잃은 표정들과
 쓸려나갈 것조차 없
 었던, 산사태 난 통장 때문에
 나는 원 없이 웃었다.

 적어도 나는

 내게 증오의 함성을 외치라고 뫼르소처럼 광포할 수도 없이
 그냥 평범하게, 미워 해주면 안 되겠냐고
 변기에게 눈물 흘렸다.

 머저리가 따로 없네.
 자꾸 사랑받기나 하는,
 그런 병신 같은,

Posted by Lim_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