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사에게
미안하다. 나는 네 이름인지 애칭인지가 팔사였다는 것만 기억할 뿐 이미 성도 기억나지 않는다. 너는 내가 캘리포니아에서 처음 사귄 친구였다.
웨스트우드에 예약해둔 싸구려 게스트하우스에 들어가 체크인을 하고, 나는 6명이 쓰는 좁은 방으로 들어갔다. 애매한 낮시간이었는지 내 2층 침대의 1층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 젊은 흑인 남자 말고는 방에 아무도 없었다. 나는 구석에 캐리어를 놔두고 바로 공용주방 겸 로비로 나왔다. 거기서 너는 테이블에서 노트북으로 프로그래밍 작업을 하고 있었다. 내가 게스트하우스의 구조를 파악하려고 이리저리 돌아다니자 너는 나를 발견했고, 하던 일을 멈추고 내게 인사를 해왔다.
우리는 인사를 하고 가벼운 자기소개를 했다. 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영어권 사람들이 내 본명을 도무지 발음하지 못한다는 사실 때문에 MJ라는 이니셜을 이름 대신 쓰고 있었다. 그런데 너는 내게 곧장 한국인이냐고 물었다. 내가 그렇다고 하자 너는 서툰 한국어로 이렇게 말했다. “반갑습니다. 나는 팔사입니다.” 내가 재미있어하며 어디서 한국어를 배웠냐고 묻자, 너는 대학에서 많은 한국인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약간 배웠다고 했다. 또 한 번, 미안하다. 나는 네 국적도 떠오르지 않는다. 네 피부가 인도인을 떠올리게 했으나, 억양은 전혀 인도 억양이 아니었고, 네 영어는 거의 모국어 수준이었다. 네가 어디서 왔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당시 미국 국적을 취득하기 위해 여러 가지 일들을 하고 있다고 네가 말한 것을 기억한다. 그 후에도 가끔 로비에서 노트북으로 프로그래밍 작업이 아니라 그린카드 관련 서류작업을 하던 모습을 기억한다.
너는 아마도 꽤 오랫동안 게스트하우스에 머물렀던 것 같다. 네가 나를 게스트하우스의 친구처럼 지내는 직원들과 다른 숙박객들에게 소개해주었다. 두 달간 그곳에서 지내면서 어울렸던 친구 중 3할 정도는 네 소개 덕분이었다. 문신이 많은 슬라브계 미인이었던 접수창구 아가씨도 네가 소개해주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녀는 내가 영어로 말하는 방식을 재미있어했고, 몇 주인가 뒤에 UCLA로 함께 산책을 가기도 했다.
네가 소개해주었던 사람 중 40대쯤 된 이스라엘계 아저씨도 기억한다. 그다지 친하게 지내지는 못했다. 아무래도 그는 굉장한 고학력자였는지 일상회화가 몹시도 고급어휘라서 내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대화가 끊길 때가 많았고, 그것을 답답해했다. 그리고 이것은 그저 그와의 대화라거나 그의 태도 등으로 추측한 것에 불과하지만, 아무래도 그는 자신이 누가 봐도 이스라엘 혈통의 외모를 갖고 있는데 미국에 있다는 것 자체가 여러 정치적, 감정적 이유 때문에 불편한 듯했다. 이것만으로도 내가 그와 그다지 가깝게 지내지 않을 이유가 되었다.
너는 자신이 소셜 스모커라고 했다. 담배를 피우는 것에 반감은 없지만 능동적으로 나서서 피우지도 않는다고 말이다. 나는 이미 중독자였기 때문에 거의 20분 간격으로 현관과 그대로 이어진 옥상으로 가서 담배를 피웠다. 가끔 다른 흡연자 숙박객들과 셋 정도 모여서 대화를 나누는 널 보았는데, 그들이 모두 담배 연기를 뻐끔거리고 있어도 너는 담배를 피우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게스트하우스의 숙박객 모두가 ‘옥상에 가면 항상 MJ가 있다’고 인지하게 될 때쯤, 너는 가끔 나에게 와서 한 대 빌려달라고 하곤 했다. 피우면서 ‘엄청 독한 걸 피우는군’하는 멘트도 거의 매번 반복되었다. 웨스트우드는 해변과 그리 멀지 않았고 당시의 계절 때문인지 옥상에서는 늘 강한 바람이 불었다. 당연히 너는 라이터를 가지고 있지 않았기에 내가 불을 붙여주거나 라이터를 빌려주었는데, 옥상 난간 밑으로 허리를 숙이지 않으면 불붙이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그래서인지 어느 날 너는 내게 선물이라고 상자 하나를 주었다. 내가 뜬금없이 뭔 선물이냐고 했지만 너는 그냥 웃으면서 열어보라고 했다. 그것은 전기로 충전하는 플라즈마 라이터였다. 당시로써 그건 신기술이었고 그것이 얼마인지 굉장히 신경이 쓰였지만, 나는 그냥 물어보지 않기로 했다. 그냥 고맙다고, 덕분에 우리 둘 다 담배에 불붙이는 일이 쉬워지겠다고 말했다. 사실 속으로 나는 네가 왜 나한테 이런 호의를 보이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미안하다. 그 라이터는 3~4년 가량을 유용하게 쓰다가 네팔에서 귀국할 때, 배터리가 다 떨어져 스파크가 생기지 않길래 별생각 없이 셔츠 앞주머니에 넣고 공항검색대를 통과했는데, 스캔에 걸려서 공항직원이 보여달라고 하기에 ‘켜지지 않는 라이터입니다’하고 건넸더니 공항직원이 스위치를 누르자 플라즈마 스파크가 연결되는 말도 안 되는 일이 생겼다. 당연히 압수당했다. 다시 한 번 미안하다.
이건 좀 다른 얘긴데, 네팔공항은 그 어떤 승객도 화기를 소유한 채 터미널로 들어갈 수 없게 되어있었다. 그런데 정작 터미널에는 흡연실이 있었다. 흡연실의 그 누구도 라이터나 성냥을 가지고 있지 않은데 다들 담배를 피우는 이상한 광경에 내가 당황해있자, 나보다 먼저 들어 와있던 어느 젊은 백인 남자가 날 보고 웃더니 내게 자신이 피우던 담배를 보이며 손짓을 했다. 나는 바로 알아듣고 내 담배를 문 채 그 남자가 피우는 담배의 불씨를 내 담배로 빨아들였다. 나중에 안 건데 영어권에서는 그걸 ‘Monkey Fuck’이라는 상스러운 비속어로 표현하더군. 아무튼 나는 담배를 피우다가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닫고 그 남자에게 영어로 물었다. ‘도대체 누가 처음 시작할 수 있었던 겁니까?’ 그러자 백인 남자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아무도 모르죠. 그냥 언제 어느 때고 흡연실이 비는 일이 없어서 계속 연결되는 거예요.’ 나는 허탈하게 웃고, 더 이상 생각하기가 귀찮아서 그냥 불교국가의 신비라고 얼렁뚱땅 넘어가 버렸다.
다시 돌아와서, 그 플라즈마 라이터를 네가 선물한 이후부터, 나는 왠지 모르게 너와 덜 가깝게 지내게 되었다. 내 머리는 항상 그런 일들을 정신분석하려고 하지만, 나는 그러고 싶지 않다. 그저 브라질에서 온 파블리시오나 세르비아에서 온 넴 등 보다 내 말초적 쾌락성향에 어울리는 친구들을 사귀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물론 내 뇌 어딘가는 그게 진실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겠지만. 그래서 나는 계속 미안하다고 하고 싶다.
너도 기억할 것이다. 내가 게스트하우스에 머물기 시작한 둘째 날부터, 나는 공용 냉장고에 MJ라고 써놓은 맥주의 숫자를 늘 여섯 병으로 유지 시켰다. 나는 항상 아침 7시에 일어나자마자 맥주 한 병을 마시면서 담배를 피웠고, 정오가 될 때까지 로비의 소파에 늘어진 채 나머지 5병을 마시면서 주기적으로 옥상으로 나가 담배를 피우거나 일어나서 로비로 나오는 친구들에게 인사하고 수다를 떨었다. 어느 날 아침 7시부터 맥주병을 비우고 있는 나를 본 넴이 유쾌하게 비꼬는 얼굴로 ‘You are such a beast.’라고 말한 것을 기억한다. 그런 농담에는 이미 한국에서부터 앤드류라는 친구 덕분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리고 정오가 되어 맥주가 다 떨어지면 나는 근처의 대형마트로 가서 6병을 더 사왔다. 아무래도 좋은 이야기지만, 아칸소나 텍사스에 있었을 때도 그렇고, 미국인들은 내가 이미 한참 전에 성인이 된 나이라는 것을 여권을 제시하기 전까진 좀처럼 믿어주질 않는다. 예전에는 심지어 고등학생이 아니냐는 푸에르토리코 출신 캐셔의 말에 당황도 했었다. 하지만 그 뒤에 지역 고등학교 풋볼 경기를 보러 갔을 때 선수들이 헤드기어를 벗은 모습을 보니 납득이 되더군.
너는 어떻게 생각했을까? 캘리포니아에 발을 들이고 이틀째가 되자마자 나는 24시간 취한 채로 생활했다. 네가 그걸 몰랐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옥상에서 흡연자들이 만드는 서클이 가끔―아니 자주 ‘지금 내가 있는 곳에서는 문제지만 그곳에서는 문제가 아닌 흡연자 모임’으로 변할 때도, 너는 나에게 담배를 빌려 피우면서 내가 담배 비슷한 것을 거의 매일 같이 피우는 것을 너는 보았다. 게스트하우스에서 보내는 두 달 동안 나는 깨어있을 때도 취해있었고 잠을 잘 때도 취해있었다. 나는 너의 웃는 갈색 얼굴만이 기억이 난다. 네가 웃지 않는 얼굴이 아예 기억에 없다.
나는 애당초 휴가를 간 것도 여행을 간 것도 아니었다. 과거에도 비슷한 글을 썼지만, 나는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으로 도망간 것이다. 그리고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 나 자신도 나를 잊어버릴 만큼 뇌신경의 활동을 있는 힘껏 눌러 죽인 것이다. 유명한 노래에서도 암시하듯이 캘리포니아는 정말 천국 아니면 지옥이거나 그 둘이 형질을 무시하고 혼합된 곳이었다. 거기서 만난 인간들도 모두 천국이거나 지옥의 주민, 즉 존재의 정당성이 구조적으로 불필요한 인간들이었다. 팔사, 너를 제외하고. 너의 그 언제나 친절하게 웃는 얼굴과 호의만 제외하고 말이다.
내가 게스트하우스에서 지낸 지 한 달하고 반이 지났을 때 너는 슬슬 다른 곳으로 떠나야겠다고 했다. 이제는 네가 말해줬던 이유도 기억나지 않는다. 집을 구한 건지, 그린카드 문제는 어떻게 된 건지, 돈을 벌기 위해 외주작업을 하던 프로그래머 일은 어떻게 됐는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네가 며칠 뒤에 게스트하우스를 떠난다고 내게 말했고, 난 네 짐 싸는 일을 도와주겠다고 했다. 너는 당연히 웃으며 고맙다고 했다. 처음 들어가 본 네 방 역시 6명의 남자가 쓰는 방이었다. 유독 네 침대 주변에만 오랜 생활의 흔적이 보였다. 나중에 처리하기 쉽고 작은 값싼 가구, 몇 개의 포스트, 평소 로비에서 쓰는 것과는 다른 작업용 노트북 또 하나. 짐을 싸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떠나기 전 너는 내 핸드폰의 카카오톡에 네 아이디를 친구 등록하고 작별인사를 했다. 틀림없이 한국 친구가 꽤 되는 것이겠지. 작별인사를 하며 나는 상투적으로 보고 싶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나는 네가 떠나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미안하다. 그러나 악의로는 생각하지 마라. 너도 기억할 것이다. 도대체 언제부터 이 게스트하우스에 있던 것이고 언제까지 있을 것인지 짐작조차 불가능한, 그 키와 덩치가 크고 대머리에 턱수염이 덥수룩한, 안경을 쓴 50대의 백인 남자를 기억할 것이다. 게스트하우스의 모두가 그를 알고 있었지만 사실 그 누구도 그가 누군지 몰랐다. 그는 절대 게스트하우스를 떠나지 않았고, 아침부터 밤까지 계속 건물 안과 옥상을 아주 느린 발걸음으로 돌아다니기만 했다. 나나 누군가가 아침 인사를 하거나 간단한 용무를 물으면 조금 느리지만 친절한 톤으로 대답은 했지만, 그 이상의 대화가 이루어지는 일은 절대 없었다. 사실 나는 항상 그 남자를 머릿속에 담아두고 있었다. 그러나 전혀 궁금증도 의심도 없이, 무엇을 의식했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그는 마치 현상 같았다. 네가 떠난 뒤, 어느 날엔가, 늦은 저녁에 나는 옥상에서 평소처럼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런데 그 남자가 언제나와 같은 아주 느린 걸음으로 다가오더니, 예상치도 못하게 ‘담배 한 대 빌릴 수 있을까’하고 물어왔다. 나는 그에게 담배와 라이터를 건넸다. 그는 ‘Thanks’라고 하더니 담배에 불을 붙이고, 나와 약간 간격을 둔 거리에서 아무 말도 없이, 뭘 보는 건지도 알 수 없는 눈으로 조용히 담배를 피웠다. 나도 말없이 내 담배를 마저 피웠다. 그는 담배를 다 피우고 꽁초를 버린 뒤 뒤늦게 알아차린 것처럼 내게 라이터를 돌려주었다. 그리고 다시 평소처럼 아주 느리게 건물로 들어갔다. 그리고 또 계속 목적도 없이 돌아다녔다.
보름 정도 뒤 나도 웨스트우드를 떠났다. 그쯤에는 이미 MJ라는 인간은 게스트하우스의 모든 이들에게 해롭지 않은 쾌락주의자, 물 대신 맥주를 마시는 아시아인, 담배 냄새에 찌든 편한 잡담상대 정도로 여겨지고 있었다. 그래서 나도 인디애나로 떠났다. 이미 모두가 MJ라는 인간을 알고 있었다. 마침 그럴 구실과 돈이 생기기도 했고.
떠날 수 있다는 것이 중요했다. 너도 그랬으리라고 생각하고 싶다. 미안하다. 네가 떠난 뒤 나는 단 한 번도 너에게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내지 않았다. 그래서 미안하다는 것이고, 그래서 나는 지금도 갖고 있는 네 아이디에 절대 메시지를 보내지 않고, 네가 절대 볼 일이 없는 이 글에서 네게 미안하다고 하고 싶다.
여전히, 그 플라즈마 라이터가 내 손에 있었으면 하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