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자신이 살아있다는 사실이 거추장스럽다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가 기다리고 있는 고도의 정체가, 평등한 죽음이라면 좋을 텐데. 그렇게 생각하자 어쩐지 정말 그런 것 같았고, 사뮈엘 베케트의 얼굴표정이 바뀌었다.

 “얼굴 좀 펴. 언제까지 기가 죽어 있으려고.” 아버지는 자러가며 A에게 그렇게 말했다. A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각도에 따라서는 웃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는 표정을 지었다. A는 아버지의 발언에 대해 아무런 의견이 없었다. 다만 그 음색에서 자신의 아들을 걱정하는 감정이 나타났기에, 괜히 울 것 같은 심상이 되었다. 뭔가 할 말이 있지 않으려나 싶었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아무 것도 할 말이 없었다. 사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지 않나, 하고 A는 생각했다. A가 우울과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인생을 허비하고 있을 때, 누군가 걱정해주며 어깨에 가볍게 손을 올리는 정도로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지 않나.
 열어놓은 창문을 통해 바깥에서는 왜인지 휘발유 냄새가 났다. 그것은 주유소마다 붙어있는 변변찮고 낡은 편의점의 야간조명을 떠올리게 했다. A는 인적도 차도 없는 거리의 그러한 야간조명을 볼 때마다 자신의 정서에 장애가 있다는 것을 실감하곤 했다. 그래서 그는 창문 앞에 서서, 초봄의 서늘한 바람이 끌고 온 휘발유 냄새를 맡으며, 오늘 밤에는 죽자고 결심했다.

 널 도와주려는 사람들은, 결국엔 모두 널 증오하게 돼. 응, 네가 더 잘 알지.

 한 2년 전이었을 겁니다. 직장인인 친구가 어떤 여자에게 반했는데, 그 여자가 중증의 기분장애를 갖고 있었다는 끔찍한 상황이 발생한 것은. 저는 몇 번이고 친구를 설득했습니다. 네가 정신과 의사가 아니면 그런 사람들과는 아예 접촉도 하지 말라고 말입니다. 기분장애나 정서장애를 앓고 있는 사람과 유대관계가 되는 건 손잡고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친구는 그 여자를 도와주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거의 조소하다시피 부정했습니다. 그녀가 의존이라는 이름으로 네 영혼에까지 독을 퍼트릴 것이라고 했습니다.
 3개월이나 지났을까요. 친구는 정신이 흉터투성이가 되어서 비로소 포기했습니다. 뭐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는 정상적인 인간관계를 맺을 줄 모릅니다. 자신의 고통에 골몰해서 현실이 도무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누가 우릴 도와주겠다고 다가오면, 항상 익사하기 직전인 우리는 그들의 등과 어깨를 짓밟고 수면 위로 가쁜 호흡을 하러 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를 도와주러 온 사람들은, 상처받고 우리를 증오하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봐, 아카시아 꽃이 피었네, 벌써 봄이야. 어떻게든 또 1년, 살아야겠네.
 꽃들에게 피지 말아달라고 부탁할 수는 없을까.

 A는 골목 구석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다. 사실 담배 같은 걸 살 돈은 없지만, 얼마 전 어머니가 돈을 주기에, 어리석은 곳에 돈을 쓰기 전에 전부 담배로 바꿔버렸다. 그 담배를 피우면서 자신이 사는 음습한 동네를 둘러보고 있다. 몇 달 전인가 동네에 어울리지 않는 신축 멘션이 지어졌다. A는 그 건물을 볼 때마다 어리둥절해하곤 한다. 사방이 붉은 벽돌로 지은 오래되고 지저분한 빌라뿐인 동네에 검은색과 흰색으로 세련되게 지어진 건물이 신기한 것이다. 누군가 들어와서 살긴 살겠지. 보다 돈이 좀 있는 가정이 들어와서, 보다 돈이 좀 있는 다툼과 원망을 건물에다 새겨놓겠지.
 가족들은 전부 자고 있다. A는 새벽마다 담배를 피우면서 골목을 돌아다니는 것이 일과다. 다만 사람들과 마주치는 것은 무섭기 때문에 인적 없는 곳만 골라 다닌다. 술에 취한 젊은이들과 길에서 마주치는 것이 최악의 상황이다. 그들의 발랄하고 활기찬 생명을 목도하게 되면, A는 당연한 듯이 숨쉬기가 힘들어지고 머릿속이 엉망진창이 돼 그대로 굳어버린다. 그러면 젊은이들은 A를 향해 이상한 눈길을 보내고, 그제야 A는 도망친다. 그리고 곱씹는 것이다. 고작 그런 걸로 패닉에 빠지다니, 멍청하게, 그 젊은이들은 날 정신병자라고 생각했겠지…….
 모멸감이 극에 달할 때 즈음이면 집으로 돌아간다. 계단을 한발 한발 올라가면서, 이런 일을 다시 당하느니 차라리 죽어버리자, 중얼댄다. 그러나 아까도 휘발유 냄새 덕분에 자살을 결심했었는데, 이런 결심은 계속 쌓이기만 하는구나. 자학의 마음은 하루하루 깊어진다.
 A는 정신을 마비시키는 약을 한 움큼 삼키고 잔다. 다시 밤이 올 때까지, 강제로 정신병동에 입원당하는 등의 악몽을 꾸며 잔다.

 계속 구르는 바퀴 같은 삶이기에, 이걸 멈추거나 탈출할 방법은 없나, 하염없이 주춤거리고, 결국 생각하는 것은 바퀴를 부수는 일. 바퀴를 부수는 걸 꿈꾸는 일.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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