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다 그만두고 싶다. 하지만 자살만은 안 된다. 그것은 항복이기 때문이다. 고통도 불행도 전부 내가 짊어질 일이다. 누가 뭐라고 하든 난 피해자가 되지 않는다. 멍청한 피해의식끼리 연대 하는 것도 거부한다. 그러나 모든 것이 점점 더 견디기 힘들어진다. 고해의 심연에 더 깊게 빠져들어가는 기분이다. 그러나 자살만은 안 된다. 그것은 항복이기 때문이다. 항복만은 안 된다. 생명의 유일한 존엄은 생존하는 것뿐이다. 도덕도 민족도 신앙도 의미도 허구에 불과하다. 생명의 목적도 의무도 권리도 오로지 생존뿐이다. 그러니까 죽음에게 백기를 흔드는 행위야말로 생명이 저지를 수 있는 유일한 죄악이다. 처벌 받지도 용서 받지도 못하는, 자기 자신을 있지도 않은 것으로, 있었던 이유조차 없게 만드는 유일하고 최악의 죄다. 지금껏 살아온 생존의 역사를 모조리 덧발라버리는 극악한 허무고 자기 자신이 우주의 그 무엇보다도 나약하다고 선언하는 주체 없는 자기혐오다. 그러나 모든 것들이 계속해서 견딜 수 없어지고 있다.
톨스토이는 틀렸다. 일관성 있고 강인한 정신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은 자발적 죽음이 아니다. 일관성 있고 강인한 정신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은 모든 생명의 궁극적 적인 죽음과 영원무구하게 투쟁하는 것이다. 필연적으로 패배할 때까지 투쟁하는 것이다. 필멸성이란 말은 괜히 생긴 것이 아니다. 모두가 알듯이 패배는 결정되어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절하고 비참하고 추악하고 비겁하게 적군을 물어뜯다가 패배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말하자면 유일한 존엄이다.
이제 다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끊이질 않고, 내가 내 유일한 존엄을 버릴 정도로 상태가 악화될까 두렵고, 우주에서 가장 나약한 정신의 소유자라고 선언할까봐 불안하다.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계속 약을 먹는 것이다. 고통과 불행이 죽음에 대한 증오로 뒤덮이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가장 편한 선택은 언제나 가장 취약한 존재가 되도록 만든다. 그러나 언제나 마음 한켠에서는 無가 되는 것에 대한 갈망이 내 존재의 쌍둥이처럼 서있다. 아마 프로이트는 이걸 두고 타나토스라고 이름을 붙인 게 아닌가 싶다.
모르겠다. 사고하는 것도 고통스럽다. 이제 약을 먹을 시간이다. 저녁에 일어나면 중추신경이 리셋되서 잠시나마 나아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