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04

기록/생각 2020. 10. 4. 18:23 |

 죽음에 대한 욕망은 언제나 있습니다. 그러나 무슨 논리나 이유를 갖고서 그러는 것도 아닌지라, 의학계에서 쓰는 '자살사고'라는 단어와의 연관성을 생각하면, 글쎄요, 어떨지 잘 모르겠습니다.

 매번 때가 되면 제가 자살할 수 없다는, 즉 항복할 수 없다는 철학적이고 현학적이고 장황한 글을 쓰곤 합니다. 얼마나 지저분하고 끔찍스러운 삶을 살든 오로지 생명유지만이 생물체의 유일한 의무라고, 자기 자신의 뇌수에 박아넣듯이 말입니다. 쓰면서도 늘 어딘가에 논리를 연결하는 고리 하나가 빠져있다는 느낌을 받긴 합니다만, 사실 별로 중요한 게 아닙니다. 중요한건 어쨌든 살아남아야 한다는 짜증스러운 의무를 논리나 신념의 형태로 만들어서 자신에게 들이미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실존주의의 끝에서 보이는, 변증법이 아니라 차라리 본능이랑 연결된 것이 아닌가 싶은 반항하는 존재와, 과연 진화생물학이 설명하는 유기생명체의 목적이 통합,기능주의적 의식을 가진 개개인의 정신을 완전히 해석할 수 있을 것인가 싶은 의문 같은 것들은, 그런 것들은 실질적으로 중요한 게 아니란 말입니다.

 어느 새벽의 아무도 없는 집에서, 도대체 이유도 근거도 없이 머릿속에서 강철의 실타래처럼 사고가 꼬여 도저히 풀어낼 수도 해석할 수도 없고, 나의 나약한 이성은 그것이 과연 무엇에 대한 생각인지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순간순간 의식이 명멸하고, 마침내 뇌수의 무게가 급증해 두개골과 척추뼈를 부수면서 추락할 것이라는 정신병적인 믿음이 저를 지배할 때, 그런 때에 사실 순간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이렇게 두면 자의든 타의 같은 자의에 의해서든 죽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일이 그냥 진행되는 대로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매번 부엌으로 가 약 15년 전 재래시장에서 샀던 칼을 집어 몸통의 어딘가를 찢습니다.

 아주 불쾌하고 10분 뒤 돌이켜보면 몸에 칼질이나 하는 자신이 한심해서 이번엔 그냥 경동맥을 찌르고서 끝내버리고 싶습니다만, 매번 이러는 것도 사실 경험에 의한 것입니다. 살가죽이 찢어지는 통증과 함께 피가 조금 배어나오면 마법처럼 머릿속이 싹 정리됩니다. 벤조디아제핀제도 이정도로 효과가 빠르고 확실하진 않습니다. 그렇다고 지금 자기 살 찢는 미치광이 짓을 정당화하려는 건 아닙니다만, 효과만은 정말 경탄할만합니다.

 도대체 무슨 광기어린 사고에 짓눌렸던 건지 기억조차 희미하고, 갑자기 머리가 가벼워져 직립보행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절망스럽고 화가나는 상황들조차 어쩐지 한 발짝 떨어져서 그것들을 정리할 수 있습니다. 뭐 문제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만, 정리할 수 있는 것도 대단한 일입니다.

 이르면 매주, 늦으면 매달 반복되는 그 머리통의 질량이 붕괴하는 것 같은 경험 말입니다만, 결국 뻔한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처절하게 죽고 싶지만 처절하게 죽고 싶지 않고, 처절하게 살고 싶지만 처절하게 살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너무 간단하고 근본적이고 해답따위는 나올리가 없는 문제입니다. 에로스와 타나토스니 아니마와 아니무스니 그런 건 의사들에게나 필요한 용어입니다. 저는 건방지게도 모든 이들이 똑같은 딜레마를 갖고 있다고 믿습니다. 아니, 잘 생각해보면 이건 딜레마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여하간, 스스로 죽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는 인간을 만난다면 전 그것이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할 테지요. 반대의 경우는 이미 이 세상에 없을테니 만날 수도 없을 것이고요.

 얘기가 점점 이상한 곳으로 새는 것 같은데, 몇번 반복한 말입니다만 저는 자신의 자기파괴적 행위들을 정당화할 생각이 그리 크지 않습니다. 매번 온갖 정보와 지식을 끌어다가 정당화를 하긴 하지만, 그것이 제가 저한테 사기치고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눈치채고 혼자서 그 사기꾼을 비웃거나 증오하기도 하고... 이런, 이건 분명히 병적인 연쇄네요.

 현실로 돌아오자면 찢어진 피부와 출혈과 깨끗해진 머릿속 그 이후에, 또 한 번 참담한 심정이 찾아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아무리 제가 지난 십 수년간 항상 상의로 가릴 수 있는 곳에만 환자짓을 했다고하더도 결국 같이 사는 사람들이 있으면 결과는 뻔합니다. 저는 실수를 하고, 그들은 흉터를 찾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느끼는 것은 죄책감, 분노, 슬픔, 불쾌함, 의무감, 어쩌고 저쩌고. 그런 그들을 보면서 저는 또 한 번 제 인간으로서의 마음을 적출하는 수술 따위의 환상을 보고, 그들로부터 도망칠 준비나 하고. 에이, 씹.....

 그러니까 계속 본능처럼 죽고 싶어하면서 본능처럼 살고 싶어서 몸부림을 치는 겁니다. 그나마 스스로 비극적 무드라도 만들어낼 수 있으면 자위라도 될텐데, 그런 것도 없이 고통만 생음악처럼 휘휘 돌아다니는 삶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는, 솔직히 과시를 하고 싶기도 하네요. 자랑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냥 족쇄를 끌고 다니는 것처럼, 감추지 않고 꺼내놓고서 거리를 돌아다니고 싶기도 하다는 말입니다. 아니, 그것 자체가 고통에 대한 자랑일 가능성도 충분히 있지만요.

 그거 아십니까. 이 블로그는 몇 년인가 전부터 매일 3명에서 15명 사이의 도무지 무슨 맥락으로 들어온 건지 알 수 없는 방문자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방문자가 있다는 걸 알면서 이런 글을 블로그에 올리는 저의가 수상하네요. 누군지도 모르는 여러분에게가 아니라, 여전히 이 블로그가 자신의 불쾌한 일기장이라고 믿으면서 글을 올리는 제가 수상스럽다는 말입니다.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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