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에 해당되는 글 142건

  1. 2013.06.11 구원.
  2. 2013.06.04 이 마음 전할 길이 없어 이곳에 담습니다.
  3. 2013.05.25 나는 마침내 지옥에서 끌어올려져 인간이 되었다.
  4. 2013.05.05 나는 어느 누구에게도 들려줄 수 없는 가장 저속한 신음을 흘립니다.
  5. 2013.03.31 관계.
  6. 2013.03.11 <모든 이름 있는 것들에 대한 그의 혐오> 초고 완성.
  7. 2013.03.03 오락. 자유. 즐거움. 광증이 내놓은 답. 1
  8. 2013.01.13 전쟁과 투쟁
  9. 2012.12.05 2012/12/5
  10. 2012.10.08 점검. 고백. 화살표. 비열한 욕망. 1
  11. 2012.09.24 반성
  12. 2012.09.04 기쁨
  13. 2012.03.09 독립된 의식이란 무엇인가.
  14. 2012.01.30 <인간>으로서의 자격. 절망과 죄책감.
  15. 2011.12.26 표류자들과 전쟁에 대하여.
  16. 2011.12.12 생명에 대한 이해와 우리들 영혼의 원초에 자리 잡고 있는 태양과 빛에 대하여.
  17. 2011.11.24 외로움과 계절에 대하여.
  18. 2011.09.04 비영원성. 아주 작은 존재의 의의.
  19. 2011.08.23 2011년 8월 23일 화요일. 1
  20. 2011.07.21 자해에 대하여. 그리고 위대함에 대하여.
  21. 2011.07.03 허무와 열광. 2
  22. 2011.06.25 월말. 작문에 대한 정리.
  23. 2011.05.29 무작위의 진실.
  24. 2011.05.14 창조와 영감과 환희. 2
  25. 2011.04.30 로드 오브 워 (Lord Of War, 2005) 2
  26. 2011.04.09 Brain Damage.
  27. 2011.03.11 어느 모호한 과거와 틀림없는 현재에 대하여. 1
  28. 2011.02.25 볼테르 -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 1
  29. 2011.01.19 나쓰메 소세키 -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1
  30. 2011.01.03 투명한 공기중에서 눈을 뜨고 있는 나는 끝내 내 머리 위로 쏟아지는 가감없는 세계를 견디지 못하고 식도에 기만을 털어넣는다.

구원.

기록/생각 2013. 6. 11. 05:05 |
새벽 다섯시 경
동쪽 하늘의 붉은 구름을
본 일이 있습니까
나는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것들에서
당신의 티없이 맑은
영혼을 발견합니다
그것은 애절하면서도 아름답고
기적적이면서도 평화롭습니다
예전에, 내가 어둠 속에서 살고 있을때
발견했던 섬광들은
한 없이 강렬하고 날카로우며
내 정신을 갈기갈기 찢어놓는
관념의 광증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제 세계의
자비한 미학을
연못의 파문 같은 고요한 울림을
마침내 느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 뻐꾸기 울음소리는
당신과 함께 들었던 그 울음소리입니다
세상 어딘가에서 아침과 함께
명상에 잠겨있을
그대여,
당신이야말로
나의 세계가 되었습니다.
Posted by Lim_
:
 이 마음 전할 길이 없어 이곳에 담습니다. 알고 계십니까? 당신을 만나기 전, 나는 수십년이나 지옥 밑바닥에서 수라처럼 살아왔습니다. 나는 고통과 혼돈밖에 아는 것이 없었고, 내 가슴 속에 있는 것이라고는 모든 살아있는 것들에 대한 증오뿐이었습니다. 심지어 나는 내 자신도 증오했습니다. 나는 다섯 번의 자살시도와, 실패 끝에, 완전한 미치광이의 영역으로 들어서려 하고 있었습니다. 어떤 고통과 불행에도 웃을 수 있고, 타인의 목숨은 물론 자신의 목숨마저도 한 자루 나이프 끝의 섬광으로 유린할 수 있는, 괴물의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나의 가슴에는 수많은 깊은 흉터들이 남았고, 내 입가에는 운명을 조롱하는 실소가 걸렸습니다. 그러나 당신, 갑작스런 인연으로 내 앞에 나타난 당신. 나는 당신을 보았을 때 생애최초로 맛보는 공포와 놀라움에 질렸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의 얼굴은, 거기에서 보여지는 더 없이 순수한 영혼은, 내 세계에서 있을 리가 없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공포와 놀라움 뒤에, 나는 당신의 영혼을 관찰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으로 보는 인간의 얼굴을……. 그리고 나는 순식간에 매료되어버렸습니다. 아니, 매료되었다는 말로는 부족합니다. 당신이라는 존재는 찰나의 순간에 내 세계를 뒤바꿔버렸습니다. 나는 당신에게서 최초로 희망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나를 인간으로 만들었습니다. 아가페와 에로스가 뒤섞인 괴상한 사랑으로 나는 당신을 쫓았습니다. 그리고 나는 천천히 당신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당신이 추운 나라에서 왔다는 것, 당신이 세계를 여행하고 다닌다는 것, 그리고, 당신이 모든 사람과 생명을 사랑한다는 것, 그리고 당신이 비구니스님이 되려고 한다는 것까지……. 나는 어쩔 도리 없는 마음으로, 비애와 기쁨에 젖어 당신에게 다가갔습니다. 상냥한 친구의 얼굴로 분장하고……. 당신은 내게 아름다운 미소와 갈색 눈동자, 깊고 고요한 목소리로 마주해주었습니다. 나는 점점 당신을 더욱 깊이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얼마나 비구니스님이 되고 싶어하는지도 처절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내가 당신의 특별한 사람이 될 수 없다는 노골적인 절망을 깨닫고 괴로움 때문에 뒹굴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여전히 여신과 같은 미소로 웃고 있었습니다. 아, 그대여, 내가 도대체 어떻게 해야 좋단 말입니까? 제발 나에게 희망을 주지 마십시오. 그러나 부디 나에게 희망을 주십시오……. 당신의 입에서 비구니스님이 되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나는 가슴의 통증에 괴로워하며 웃었습니다. 절대 당신에게 슬픈 얼굴을 보여줄 수는 없었습니다. 나는 당신을 축복해줘야만 했습니다. 나는 모든 것에 염증이 나서 죽어버릴까하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당신의 친구로서, 당신과 함께 산을 올랐습니다. 정상에 도착하면 뛰어내려버릴 작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올라가는 길에, 당신은 더없이 아름다운 미소로 내게 함께 인도에 가자고 말했습니다. 나는 순간이지만 허무하고 필멸적인 기쁨에 사로잡혀, 좋다고 말해버렸습니다. 아, 그대여, 그대여, 인도에 간다한들 우리에게 미래는 없을 것입니다. 오직 당신의 미래만이 있을 뿐. 나는 그저, 그저…… 아무런 희망도 없이, 당신을 사랑할 뿐입니다……. 언젠가 당신은 스님이 되겠지요. 언젠가 나는 다시 혼자가 되겠지요. 여전히 나는 당신을 사랑할테지요. 여기 남은 것은 사랑하는 사람이 행자생활을 시작하는 것을 축복해주는 패배자 뿐입니다. 언젠가 나는 내 얼굴에 불을 지를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을 완전히 포기하기 위하여.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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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전히 나는 가끔씩 몰핀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이 고통이 예전만큼 원망스럽지는 않다. 왜냐하면 이것은 숭고한 감정의 증거이기 때문이다. 오, 나의 구원자여, 한 시라도 빨리 당신을 다시 만나고 싶다. 당신의 웃는 얼굴을 보고, 당신의 갈색 눈동자와 마주하고, 당신의 조용하고 깊은 목소리를 듣고 싶다. 당신만이 나의 공허를 채워주고, 나의 고통을 지워주며, 나를 인간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당신 곁에 있으면 심장이 아파온다. 그러나 그 통증은 내 병질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안다. 나는 그 통증마저도 사랑한다. 당신이 준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지 모두 사랑한다.
Posted by Lim_
:
 어머니, 당신의 아들은 미쳐가고 있어요. 세상에 사랑할 것이 아무 것도 없어요. 고독과 적막이 내 영혼을 광기로 물들이고 있어요. 그런데 사실 인간이란 원래 이런 것이 아닐는지요? 그들이 말하는 행복과 사랑이란 전부 위정자들의 기만이 아닐는지요? 그렇다면 당신은 속았습니다. 나를 잉태한 순간 당신은 완전한 사기행위의 피해자가 된 것입니다. 내 혈관 속을 도는 검은 피는 아직 뜨겁지만, 나의 영혼은 점점 90살 늙은이의 그것처럼 굳어가고 있는 것을 느낍니다. 내게는 동정도 연민도 없어요. 나의 눈동자는 밤하늘에 붙들려버렸어요. 차라리 그를 현실에서 지워주세요. 그에게서 현실을 지워주세요. 여기는 어디로 가는 길입니까? 이 골목 너머엔 무엇이 있나요? 나에게는 하수구 속에 빠진 어두운 도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나는 미쳐가고 있어요. 내 눈은 불빛을 잃었어요. 골목 저 끝에서 그가 웃음 짓고 있는 것이 보이시는지요? 그의 송곳니와 손톱이 나의 심장을 먹어치워버릴 거예요. 아! 차라리 내가 아무 것도 알지 못했더라면......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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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

기록/생각 2013. 3. 31. 00:54 |
 뭐라 형언할 수 없는 불만족과 슬픔이 가슴 속에서 꿈틀거린다. 나는 계속 실패한다. 남들의 기대와 신뢰를 배반하고 내 몸과 정신을 망가트리기만 한다. 사랑 받고 싶고, 사랑하고 싶다. 그러나 불가능한 일이다. 불가능하다. 절대로 불가능하다. 여기 누구 베라 린이라는 여자를 기억하는 사람 없나요. 그녀가 말했었죠. 어느 화창한 날에 우리는 다시 만날 거라고. 왜 살고 있는지. 그야 분명하다. 내가 살고 싶어하니까. 그러나 만약 내가 더 이상 살고 싶어하지 않아한다면? 아, 나는 모르겠다. 그저 슬플 뿐이다. 병든 자들의 사회. 병든 사회의 병든 사람들. 그들에게 날개가 있었으면. 나에게도 날개가 있었으면. 나는 한때 저 드높은 하늘을 마음껏 날기도 했었다. 나의 지저분한 골방 속에서 그런 환상을 보며 살았었다.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더 이상 배신하는 것은 싫다. 누군가 내게 진실한 인간관계라는 것을 알려주었으면. 그러나 그것도 나의 유아적인 욕구에 지나지 않는다. 유치하다. 너무나 유치해서 스스로도 구역질이 난다. 알고 싶은 것은 스스로 탐구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무엇으로? 도대체 무엇으로. 무엇을 기반으로.
내일이 올 때마다 그는 '안 돼'라고 외친다. 신음소리처럼. 어머니, 창문 밖에서 광인이 나를 주시하고 있어요. 그가 나를 그의 세계로 데려가려고 해요. 나를 구해주세요. 내 손을 잡아주세요. 내가 비록 인간이 되지 못한 괴물이라고 하더라도, 내 손을 잡아주세요. 그것마저 거부하신다면, 차라리 나의 영혼을 길게 찢어주세요. 내 육체에 반쪽의 영혼만 남게 해주세요. 그리고 내 육체마저도 길게 찢어주세요. 내 땅은 항상 지진으로 흔들리고 있어요. 나를 죽여주세요 어머니. 내가 당신을 죽이지 못했던만큼 나를 죽여주세요.
길거리에 불을 지르고 다니는 것은 이제 신물이 난다. 내가 자유라는 것은 이미 수도 없이 증명했다. 굳이 증명할 필요조차 없었다. 나는 완전히 자유였고 지금도 자유다. 그래서 나는 아무도 없는 나락 밑에서 혼자 웃고 깔깔대며 주먹을 휘둘렀다. 무엇을 위해서인지는 나도 모른다. 나는 미친 개처럼 살았다.
미친 개.
언어는 불분명하다. 언어는 너무나도 불분명하고 불완전해서 내 영혼의 출구가 되지 못한다. 나는 항상 되다만 문장들을 끼적일 뿐이다. 내가 말하고 싶어하는 것들은 말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말이라는 것은 표현되지 못하니까. 언어를 연구하는 것은 유령을 연구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유령을 연구하는 것은 미친 사람들이다. 왜냐하면 미친 사람만이 유령과 관계를 가지니까.
어디로 가야하지?
나는 어둠 속을 헤매는 것에 지쳐서 그냥 어둠 속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새우처럼 구부리고 다리를 끌어안은 채 바닥에 누웠다. 내 눈에서는 가끔 눈물이 흘렀다. 그러나 그 눈물은 나의 것이 아니었다. 내 눈물이 아닌 눈물이 내 눈에서 흘렀다. 나는 안된다고 되뇌었다. 안 돼. 안 돼. 안 돼. 그러나 무엇이? 나도 모른다. 내가 어떻게 아느냔 말이다. 나는 아무 것도 모른다. 다만 안 될 뿐이다.
살려 줘. 아니야, 살리지 말아 줘. 아니, 넌 누구지? 넌 누구입니까? 너는 누구길래 내가 당신에게 말을 걸고 무언가를 요구하는 것입니까. 내가 무얼 요구하고 싶어하는 지도 모르는 채로. 내 욕망은 길을 잃었다. 길이 어디였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그냥 한 줄기의 불길이다. 왜 타는지도 모르면서 계속 타기만 하는, 그런 불길이다. 사람들은 나한테 손을 뻗었다가 화상을 입고 물러난다. 내가 그들에게 손을 뻗어도 그들은 화상을 입고 물러난다. 나는 내가 사람들에게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사람을 원하고 있기는 한 건지도 모르겠다.
완결, 종언, 종말. 내가 꿈꾸는 것.
더 이상 누구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서. 
Posted by Lim_
:
 새 장편소설 <모든 이름 있는 것들에 대한 그의 혐오>가 A4용지 87장, 200자 원고지 796.8장으로 초고가 완성되었다. 몇 달이 걸렸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제 퇴고를 해야한다. 그리고 퇴고가 끝나면 조언을 해줄만한 사람들에게 원고를 들고 가야겠다.
 여전히 반사회적인 내용에 비도덕적인 주제, 받아들여질 수 없는 이야기들. 그러나 나는 최선을 다했다. 사람들이 내 소설을 어떻게 평가할지는, 모르는 일이다. 그것은 항상 모르는 일이었다. 내 친구가 말한 것처럼 나는 자기위로적인 글을 쓰고 있는가?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참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어떨는지. 객관적인 시각을 갖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하루 빨리 이 사회 밑바닥 진창에서 벗어나고 싶다.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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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미쳤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몇 가지 행위를 해야만 했다. 나는 그들에게 내 책을 펼쳐서 보여줬다. 나는 말하자면 누구나 읽을 수 있는 펼쳐진 책이다. 마치 도서관에 꽂혀있는, 손떼를 타서 표지가 반들반들해진 그런 책 말이다. 나는 내가 펼쳐진 책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의 미친 글귀들을 모두에게 보여주는 것이 훨씬 편할 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리고 나는 아직도 그렇게 생각한다. 고로, 나는 그 누구와도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없다. 내가 손을 대는 얼굴들은 전부 뭉개지고 윤곽이 사라져서 폭발해버린다. 내 손에는 열 자루의 칼날이 돋아있다. 내가 어느 누구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어떻게 말로 할 것인가?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모두 없애고 싶어했다. 혹은 내 손으로 그들의 생명의 마지막 편린을 맛보고 싶어했다. 어쩔 수가 없는 일이다. 내가 어디로 가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나는 웃는다. 내 얼굴에는 웃음이 문신처럼 새겨졌다. 결국 나의 비참한 희열이 날 죽일 것이다. 어쩌면 다른 누군가가 대신 해줄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것은 희망사항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고독하고 비참하지만 지난 몇 개월간 스스로에게 인생은 유쾌하다고 계속 학습시켰다. 덕분에 나는 웃을 수는 있다. 내 머릿속에 상주하고 있던 끔찍한 기억들을 문 안에 넣고 닫아버리면 된다. 세상은 네온사인의 빛살만큼이나 화려하고 정신나가있으며 즐겁다고 나는 혼잣말을 뇌까렸다. 광기의 벽은 투명하다. 밖에서도 볼 수 있고, 안에서도 밖을 볼 수 있다. 다만 그것은 절대 깨지지 않으며, 두껍고 절대적이다.
 나는 한 자루의 총을 상상한다. 그것은 하나의 허가다. 내가 무엇이든 부수고 파괴하고 죽일 수 있다는 허가 말이다. 내 총의 사정거리가 닿는 모든 것을 내가 죽일 수 있고 부술 수 있다면, 도대체 무슨 이유로 내가 사람들의 손을 잡아야하겠는가? 나는 부서진 세계 이외의 그 무엇도 바라지 않는다. (이렇게 스스로 말했다) 내 손으로 끝장을 내면 모든 것이 더 간단해질 것이다. 그것은 분명한 것이다. 날 떠나거나 내게 상처를 입힐지도 모르는 관계를 지속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하다. 가장 좋은 방법은 부수는 것이다. 한 가닥의 흉터만 깊게 남을 정도로 완전하게 부수는 것이다. 오래된 흉터들은 더는 아프지 않다. 언젠가는 그것들을 보면서 산산히 조각난 과거를 떠올리고 웃을 수도 있다. 시간은 모든 것을 지워버린다. 세계는 모든 것을 망가트리는 방향으로 끊임없이 확장되고 있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나도 마찬가지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부수고 상처입히고 죽이는 것밖에 없다. 그리고 나는 그것으로 만족해야한다. 나는 즐거워야한다. 나는 웃어야한다. 내가 부수고 죽이는 것을 기뻐하며 춤추고 노래불러야한다. 운명은 통제불능이고 세상의 모든 것은 망가지고 부서지고 죽고 사라진다. 나는 한가지 오락을 발견했다. 그것은 어떤 것들이 사라지기 이전에 망가트리는 것이다. 시멘트가 갈라지기 전에 길거리에 불을 지르고 내 사랑하는 누군가가 늙기 전에 그를(그녀를) 죽이는 것이다.
 나는 우울하지 않다. 나는 절대로 우울하지 않다. 그저 약간의 혼란과 편집증세만 있을 뿐. 나는 우울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점진적으로 망쳐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 속에서 내가 무얼 할 수 있는지도 알아냈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은 하나의 퇴폐적이고 파괴적인 게임이다. 내게도 손이 달려있고, 자유의지가 있다. 만일 하늘 위에 있는 위대한 누군가가 내게 명령을 한다면, 그것은 나의 의지를 모조리 사용하여 세상의 혼돈을 가중하라는 명령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즐겁다. 굳이 명령을 듣지 않아도 나는 자발적으로 무언가를 부술 것이다. 말하자면 규칙이나 윤리 같은 것 말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나와 똑같은 현실에 떨어져서 혼란 속에서 공포에 질려 소리를 지르고 뛰어다니는 것을 보면, 그 어떤 관계보다도 진실한 유대가 느껴질 것이다. 그리고 그 유대를 증명하기 위해 나는 살아있는 모든 것을 가위로 자를 것이다.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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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투쟁

기록/생각 2013. 1. 13. 14:01 |
자주 파악하고 이해하라.
정신의 병에 걸려 타인의 의중을 파악하지 못하는 나는 언제나 인간이라는 경계, 그 절벽 끝에서 환상과만 놀며 색채를 잃어간다.
현실이란 하나의 기회인저, 활력을 다하고 생명을 갈구하라.
의식은 꿈의 거품 같은 것이니 현실의 단단함 위에서 쉽게 스러진다.
경계하고 주의하라.
적의 창끝에 피가 묻지 않았다면 그대는 아직 진정한 실존자가 아니다.
그대의 흉기에도 피와 화약 냄새가 깃들게 하라.
전쟁이야말로 인간에의 찬가이며 오름길이다.

어떤 사람들의 내면에는 새의 영혼이 숨쉬고 있다.
육지를 모르고 날갯짓을 계속하는 바닷새의 창백하고 고고한 영혼이
그들 가슴 속에서 날뛰며 요동친다.
휴식은 정신에 대한 죄악이니 결백함을 따른다.
공기를 먹고 바닷물을 마시는 그들의 심장은 마치 전사의 것과 같다.
투쟁하는 영혼이야말로 고귀한 것이니, 근육이 끊어지고 뼈가 부러지는 것을
유쾌해하라.
기뻐하며 절멸하라.
죽음조차 안중 밖인 그대의 눈은 더 높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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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5

기록/생각 2012. 12. 5. 11:57 |
 하늘에서 눈이 내렸다. 노래를 불렀다. 죽고 싶다고 생각했다.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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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에는 어렸을 적의 일이 거의 생각나지 않게 되었다. 이것은 좋은 일인가? 물론 나에게는 좋은 일이다. 그러나 나의 영혼에게는? 내 영혼은 가면 갈 수록 열망의 부족을 느끼고 있다. 책상 밑의 어두운 공기. 긴장감과 증오로 단단하게 엉크러진 소리들. 나의 고독. 나의 공포. 원망의 뒷편에서 이상한 형태로 자라고 있는 소년. 모든 것이 점점 잊혀져간다. 이것은 망각이다. 나태와 일상성 속에서 나의 정신은 점점 둥글어지고 있다. 술과 담배와 약. 나에게 편안함을 주는 것들. 그러나 내가 원한 것은 안식이 아니었다. 내가 원한 것은 불이 되는 것이었다. 강렬한 발화. 소진되는 생명. 날름거리며 탐욕스럽게 뻗어나가는 영혼. 상승. 불꽃의 정상. 아직도 내게는 가슴 속의 통증이 있다. 이것은 아마도 망각으로도 사라지지 않을 것. 그렇다면 나에게도 아직 남은 것은 있다. 고통의 승화. 불을 당겨라. 내 영혼을 둘러싸고 있는 살덩어리에 불을 붙여라. 내 혀는 아직도 가시가 돋혀있고 치명적이다. 내 혀뿌리는 심장까지 닿아있고, 그것은 비인간적이다. 내 혈관 속에서는 썩은 피가 흐른다. 너무나 검게 썩어서, 이것은 마치 석유와 같다. 부싯돌을 당기면 온몸으로 불길이 퍼져나가 나는 불타버릴 것이다.
 나는 어떤 중요한 것을 잊고 있다. 내 일그러진 정신의 시발점이 되는 것.
 내 일그러진 정신. 아, 구역질이 난다. 나는 계속해서 술을 마신다. 내가 그것을 견디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말이다. 내 몸은 예정보다 일찍 죽어간다. 누군가의 고의에 의해서. 나는 어머니의 고통과 아버지의 욕망으로 말미암아 하나의 살덩어리로 태어났다. 나는 누구냐? 나는 날 때부터 패륜아. 나는 구르는 살점. 기회의 집합체. 나는 얼마든지 더 타락할 수 있다. 나는 계속해서 구토한다. 내장을 전부 끄집어내버릴 것처럼, 환자처럼 토하고 눈물 흘린다. 내 조상들은 아마도 내가 태어나리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으리라. 탐식. 탐식. 탐식. 공허.
 이곳에서는 생각보다 별이 많이 보인다. 귀뚜라미들은 나무에 다리를 붙이고 가을을 노래한다. 달은 반쪽이고, 나 역시 반쪽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 심장이 반쪽이다. 잘려나간 단면이 피를 뿜는 것이 느껴진다. 울컥거리며 솟아오르는 혈액. 아물지 않는 상처. 나는 내일이 어떤 형태로 다가올지 전혀 모르겠다. 내가 내일 나의 더러운 이부자리에서 썩은 주검으로 발견된들 무슨 놀라운 일이랴? 내가 아직 죽지 않은 것은 나 자신에게 더욱 고통을 주기 위해서일지도 모른다. 고행하는 수도승의 모습으로 타락하는 것. 내가 선택한 길은 그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점점 더 추한 욕망의 덩어리가 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즐거울지도 모르겠다. 위대한 성인들은 내게 오히려 정반대의 모범을 보여주었다. 아, 사랑하는 선생님이시여. 나는 당신처럼 되고 싶지만, 그러기에 나는 너무 젊고 사악합니다. 내가 손을 대는 것은 모두 엉망이 되고, 부서지고, 무너지고, 타락해버립니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부술 수 없는 것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더 이상 타락할 수 없을만큼 이미 타락한 것을 낳고자 합니다. 만약 운이 좋다면, 거기에서도 위대함은 피어나겠지요. 새빨간 꽃잎처럼.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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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성

기록/생각 2012. 9. 24. 07:54 |
 최근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 시간은 여전히 쏟아져흐르는 강물처럼 목적도 없이 나를 지나쳐가고 있다. 생명은 의미를 찾아야한다. 생명은 아무 색깔도 가지지 못하고 태어나기 때문이다. 나는 어떤 기대를 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희망과는 거리가 멀다. 왜냐하면 나 자신도 그 기대에 기대를 걸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 태어났다는 것은 참으로 기쁜 일이다. 참으로 그렇다. 우리들 눈을 뜬 인격들에게는 기회가 수도 없이 많다. 나는 지구 반대편 어딘가에서 태어난지 하루도 안 되어 굶어죽어가고 있는 어떤 아기를 생각한다. 그러나 그 헛된 생명에게도 탄생은 축복일진저. 왜냐하면 적어도 그는 고통과 빈곤을 알 수 있는 기회를 얻었기 때문에. 만사가 다 잘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나는 썩어가고 있다. 그러나 만사가 다 잘 되어가고 있다. 내가 부패하고 있을 지언정, 실제로는 그러하다. 어떤 남자는 내게 세계의 끝이 이제 거의 다 다가왔다고 말했다. 그는 그 말을 진심으로 믿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그는 하루하루 직장과 교회에 나가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아마도 그는 영생을 믿고 있는 것 같았다. 구원받으리라는 강한 확신이 그에게는 있었다. 나는 아무 표정도 없는 눈으로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게 전부였다. 나는 피안 너머에 있는 세계에 희망을 거는 일은 하지 못한다. 그것이 옳고 그르고를 떠나서, 단순한 성질의 문제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 일을 할 수 있지만, 어떤 사람들은 하지 못한다. 나는 내가 그런 일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말할 수 있다. 최근 나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다. 나는 글을 쓸 때에만 내가 의미있는 존재라고ㅡ그것도 어떤 주관에 의한 것에 지나지 않지만 말이다ㅡ 감각할 수 있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글을 쓴 것이 너무 오래된 것처럼 느껴진다. 나는 최소한 요 한달간 아무런 의미도 없는 시간을 보내왔다. 가치도 없었고, 생산성도 없었다. 그저 그랬다. 나는 가치있는 존재가 되고 싶다. 나 자신이 의미 있는 존재라고 느끼고 싶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쓰고 위대함을 찾고 아름다움을 탐하고 삶을 씹어삼킨다. 그러나 나의 나태가. 나태가. 나태가. 아, 그러나 이 나태는 나의 내면에서 나온 것이 분명한가? 잘 모르겠다. 외부에서 온 나태라는 것이 있을 수 있을까? 불을 꺼라. 불을 꺼. 어둠이 우물에서 샘솟는 물처럼 차오르게 해라. 나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시간 이외의 많은 것들도 필요하다. 그러나, 사치를 부리지는 않는다. 나는 추상의 인격이오. 편집증에 걸린 유령이오. 내일이 오리라. 내일의 나는 생기를 되찾을 수 있을까? 내 머릿속 한구석에서, 밝고 화창한 환상들이 빛으로 만들어진 벌레처럼 뛰논다. 나는 그 환상을 감상해야할지 말아야할지 잘 모르겠다. 한 가지 원하는 것이 있다면, 스스로 위대해지기 위한 의지를 되찾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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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

기록/생각 2012. 9. 4. 03:04 |
 내가 오랫동안 썩고 있었을 때 나는 내가 썩은 오물덩어리가 되어서 눈을 감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 동굴에는 빛이 들지 않았고 말동무라고는 천장에서 나를 내려다보는 커다란 눈밖에 없었다. 그는 가끔 나를 바라보면서 내가 정말로 썩고 있는지, 혹여라도 헛된 희망을 품지는 않는지 감시하곤 했다. 나는 그와 마주보면서 내 육체와 더불어 정신까지 썩은 흙으로 되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나는 오랫동안 썩었다. 정말로 오랫동안 썩고 있었다. 어느 날 동굴의 입구가 오렌지 빛으로 빛나는 것을 보았다. 나는 울음을 터트릴 기운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내 모든 것이 부랑자의 거적처럼 닳고 부드러워져서 인간의 것이 아닌 것 같았다. 옳지. 나는 울 수가 없어서 가끔 웃었다. 나는 널부러진 쓰레기더미 같았다. 그때 나는 완전히 포기했던 것 같다. 그가 말했다: 너는 포기할 것조차도 없다! 하지만 내게도 의식은 남아있었다. 흑연가루를 잔뜩 묻혀놓은 수정 같은 의식이……. 그런데 이제부터 나는 인간애(人間愛)에 대한 이야기를 하련다. 거의 사 년 동안 나는 썩어갔고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내 입꼬리에서는 정기적으로 신음소리가 흘렀는데 그것은 신성모독적이었고 아무런 쓸모도 없었다. 처참하도다! 그런데 그러던 어느 날, 내가 드디어 다 썩어서 부스러져버렸을 때, 내 알맹이가 썩지 않고 남아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그것은 나의 썩은 육신과 정신의 잿더미 속에서 햇빛을 만나 반짝반짝 빛날 순간만을 기대하고 있었다. 오, 그때 내가 느낀 그 감격이라니! 내 알맹이는 그 오랜 시간을 견디면서 빛을 기다려온 것이었다. 오직 빛나는 것만으로 위하여! 순간이라도 좋다. 나는 천장에 들러붙은 그 커다란 눈을 올려다보았다. 그는 이제 동공이 퇴색하여 아무런 색깔도 없었다. 나는 이미 부패하여 조각이 후둑후둑 떨어져내리는 손으로 내 알맹이를 집어들었다. 그것은 깨끗했고…… 그 어떤 과거에도 없던 것이었다. 그것은 아름다움의 전조 같은 것이었다. 나는 죄 썩은 내 몸을 긁어모아서 모양을 만들고 근육을 뭉쳐 사람의 형상을 만들었다. 그리고 내 알맹이를 들고 동굴 입구를 향해 기어나갔다. 바깥에서는 햇살이 폭우처럼 쏟아져내리고 있었다. 하늘은 높았고 태양은 불타는 다이아몬드 같았다. 나는 짜라투스트라가 은둔하던 곳이 어딘지를 알아차렸고, 내가 굳이 저 아래로 내려갈 필요가 없음을 깨달았다. 나는 내 알맹이가 빛나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았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나는 귀중하게 나의 알맹이를 감싸 안고 날카롭고 투명한 공기가 흐르는 지상에서 비틀비틀 두 다리를 딛고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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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증오와 절망은 고통으로 환원되었다. 정신적인 것은 육체적인 것에 귀속되어있고 얼마든지 형태를 바꿀 수 있다. 그 부피와 양만은 유지하면서 말이다. 그리하여 나의 터질 것 같은 <중심>은 세계의 모든 병폐를 닥치는대로 집어삼키고 붙들어 매었다. 사실 개인이 말할 수 있는 세계란 즉 그 개인의 세계 뿐이다. 외계와 연결되어있는 그 접점과 내면의 아노미 뿐이다. 내 정신은 어떻게든 땅 위에 서있다. 두 발로 바닥을 딛고. 그것은 생리적인 희생에 의한 것이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늘 자해를 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그것이 기제이기 때문이다. 세계와 연결되어있는 상태 자체가 나의 신경을 파멸로 몰아넣는다. 그 파멸적 에너지로 말미암아 산출되는 수많은 것들이 내게 위안을 주기는 하지만, 본질적으로 내가 병질의 덩어리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나는 단언할 수 있다. 사실 모든 사람들이-이 복잡계에서 살아가고 있는 고뇌를 안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바라는 것은 완전한 파괴고 종말이다. 그것은 유아적인 욕망이면서도 사실은 가장 명확한 답이다. 파괴. 탄생의 가능성마저 일절 남기지 않는 완벽한 파괴. 그것이 모든 <의식하는 것들>의 근본적인 욕망이다. 그런데 그 많은 사람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았던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파멸에 대한 갈망이 있는가 하면 계속 존재하고자 하는 갈망 또한 있다. 그것은 동전의 양면처럼 우리의 심장 깊숙한 곳에서 혈액과 근육에 뒤섞여 박혀있다. <살기에는 너무 타락했고 죽기에는 너무 젊다.> 그리고 실상 <완전함>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적어도 인간의 세계에서는 존재할 수 없다. 흉터 투성이로 박동하는 심장. 탄환과 탄약. 단 한 발의 충동. 그 정도 뿐이다. 그래서 삶을 <당하는> 사람들은 뛰는 피로 무엇을 하는가? 그들은 구조의 해체를 계속하면서 존재의 본질을 찾아 헤맨다. 목적이 없는 것이 바로 목적인 것이다. 내버려진 존재인 우리들은 <내버려져 있는> 존재성을 더욱 과시하면서 정신적 표류자의 모습을 제시하려 한다. 모든 병폐와 통증을 껴안은 채로 그저 뛰어드는 것이다. 필연이 우리를 부수러 올 때까지. 우리는 가치라는 것이 실존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영원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절대>라는 개념에 대해서는 코웃음을 치고 침을 뱉는다. 실재하는 것은 고통 뿐이다. 고통! 내 온 존재를 꿰뚫는 고통. 그것이 우리가 <알> 수 있는 전부고, 개인의 세계를 실재하는 세계로 감각하게 해주는 주된 근거다. 그것은 증오라는 중요한 감정과도 깊은 연관이 있다. 존재에 대한 증오. 생명에 대한 증오. 구조에 대한 증오. 체제에 대한 증오. 인식에 대한 증오. 세계를 구성하는 의지들에 대한 증오. 증오는 <적>을 발견하게 만든다. 적을 발견하고 증오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우리의 존재성은 한층 더 의식적으로 정립되어간다. 그리하여 우리는 죽은 집단의 불완전한 의식이 만들어낸 체계를 거부하고 자기자신만의 양심-혹은 취향-을 건립하게 되는 것이다. 독자적인 정신의 출범이다. 유일하게 되는 것. 그것은 중요한 일이다. 관습과 체제에 의해 만들어진 인간을 완전히 해체시키고 나면 남는 것이라고는 생물학적인 본능 밖에 없다. 그만큼이나 인간의 신념이나 가치관이란 허황되고 무근한 것인 것이다. 거기서부터 시작해야한다. 존재의 고통을 느끼며, 세계의 내외에 산재하고 있는 병질과 날것 그대로 마주치고, 절대적인 죽음을 인지하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지독히도 비인간적으로 자유로운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때부터 우리의 새로운 의식은 세계를 다시 한 번 파악해나가기 시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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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은 단일 개체로는 존재할 수 없다. 개인주의조차도 집단 속에서만 발현 가능한 것이다. 그것이 인격이든 아니든 개인은 타자의 존재를 필요로 한다. 우리에게는 룰이 있다. 모두가 동일하다면 룰은 필요하지 않다. 그러나 '동일한 것'은 필요하지 않다. 우리는 자신과 다른 것을 필요로 한다. 인간은 모두 결핍되어 있다. 그것은 존재의 필연이다. '완성' 같은 것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다. 결핍상태에서 벗어나려는 갈망만이 실재한다. 관계란 그 갈망에 기인한다. 그러나 우리는 다르다. 게다가 누군가는 반드시 망가져있기 마련이다. 불량품이 있다. 결핍이 많을 수록 갈구는 강해지지만 평균 이상으로 부품이 결핍된 기계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어떤 기준이 있다. 절대다수에 의한 룰이 있다.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놀이상대를 찾을 수가 없다. 그래서 갈망하는 마음들은 가면을 뒤집어쓰고 게임판 위에 오른다. 그러나 불량품들이 있다...... 흉내를 내면 낼 수록 그것은 결국 흉내에 지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절대 서로의 맨 얼굴을 보고서도 손을 잡을 수 없다. 의식하지 않고 룰을 지킬 수 있는 적응자들은 아름답다. 누구나 정도의 차이라고는 하지만, 어떤 경계선이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다. 간단히 부서져버리는 얇고 약한 것. 누가 고독을 말했는가? 나는 뇌가 굳었다. 행복한만큼 의식을 버려야하는 것이다. 쾌락도 환희도, 규칙 따위는 신경쓰지 않고 짐승처럼 쫓을 수만 있다면. 하지만 우리들의 심장은 반쪼가리다. 이상할 정도의 고독감. 나는 생각했다. 너무나도 외로워하는 것은 그것이 바로 부적응의 증명이라고. 내면이 텅 비어있기 때문이다. 내면이? 정확히는 고유성의 알맹이가 말이다. 결국 아무와도 손을 잡을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한참 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래도 탐하고, 욕망하고 갈구하고 체온을 먹어치우고 싶어서 눈이 벌게져있다. 타인의 마음을 집어삼키고 싶어서. 그러나 무용한 짓이다. 무용한 짓! 어떻게 해야 좋단 말인가? 정장을 입고 세련된 가면을 쓴 채로 거리로 걸어나가면 그들과 악수를 나눌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나도 쉽게 부서져버린다. 외롭다고 생각하는 만큼이나 그렇다. 의사 선생님, 당신이 내민 약이 내게 평화를 주었습니다! 제대로 기능하는 인격이란 의식하지 않는 인격이다. 짐승. 짐승이 되면 모든 것이 더 간단하다. 사랑과 포식이 동일한 것이 되어버리니까. 그러나 나는 악인이 아니다. 도덕률...... 그러나 나는 악인이 아니다. 나는 그저 남들보다 조금 더 사회적 구조가 약할 뿐이다. 얼마나 파멸에 가까운지, 혹은 멀리 있는지. 그정도 차이에 의해서 좌우될 뿐이다. 행동이란, 얼만큼 상처주느냐 상처입느냐. 갈증을 해소하는 방법은?
미치지 않은 사람의 웃는 모습은 싫다.
룰에 의해 통제되는 감정들은 하나 같이 나를 화나게 만든다. 그들의 고약한 관계만큼이나.
나는 원초의 것을 보고 싶다.
나는 하얀 빛이 보고 싶다. 더러워진 것은 전부 불타 사라졌으면 한다.
더럽다는 것은 본연에 충실하지 못한 가공된 태도들을 말한다.
가식과 위선에 대한 나의 결벽증. 나의 결벽증.
나의 젊음. 나의 대외적인 혐오와 대내적인 혐오.
우리는 흉기를 든 형제들이다.
나는 내가 사랑했던 것을 산산히 부수고 싶어했다. 그 시절부터 나는 알고 있었다. 사람의 자궁에서 태어난 괴상한 것.
자포자기의 감정도 있을 수 있다. 그저 짐승이 되어버리면 되지 않느냐고 말이다.
그러나 세상은 아름답고 역겹고 또 아름답고 적의로 넘치고 또한 아름답다. 나는 아름다운 것을 사랑한다. 항상 사랑해왔다.
사랑하는 것이 붕괴하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내가 사랑하는 것을 처참하게 찢어놓으려고 했다.
그리고 내 마음에 가득한 증오, 내 갈증, 갈망. 자신이 미치지 않았다고 믿는 사람들에 대한 불 같은 증오.
자신이 미쳤다고 믿고 있는 가엾은 환자들을 눈앞에 둘적마다 느끼는 구토감.
비명과 괴성. 파괴에 대한 향수. 내가 사랑하는 아름다운 세상. 그러나 내가 아는 얼굴들은 얼마나 아름답지 못했던가?
<그 무엇도 태어나서는 안돼.> 영원에 놀아나는 것은 싫다. 나는 증발해버릴 것이다.
수백 번이나 내 머리를 쏘고. 그러나 밉다. 그저 예민할 뿐이었던 어린 나를 망가트린 사람들이.

 빛이 모든 것을 씻어내줬으면 좋겠다. 활활 타오르는 불꽃처럼 모든 오물들을 정화시켜줬으면 좋겠다. 내 손으로 불을 당길 수 있다면 좋겠다. 혐오해야할 적들은 불꽃에 타버리고, 증오해야할 적들은 갈기갈기 찢어놓는 것이다. 강렬한 것. 열렬한 것. 안팎으로 산발하는 감정. 표현되지 않는 문장. 나의 증오만큼이나 세계에 대한 애정도 내 가슴속에서 흘러넘치고 있음을 당신들이 확인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그래도 우리는 손을 잡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정상의 흉내만 내다가 포기할 것이다. 나는 그저 아름다움을 쫓기만 하면 된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당신에게는 항상 미안한 마음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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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여! 우리 내버려진 사람들이여. 희망은 어디에 있는가? 희망은 내가 전력을 다해 거부했던 바로 그것이 아니었던가. 나는 가짜 사탕발림에 속아넘어가 있었던 것이다. 나는 너무 들떠있었다! 세계는 아무런 법칙도 갖고 있지 않다. 그것은 인간과 마찬가지다. 아무런 법칙도, 평등한 수치를 제공해주지도 않는다. 우리는 그저 내버려진 채로 절망을 친구 삼아 살아가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씹는 담배처럼 이빨 사이에 고통을 넣고 그 쓰디쓴, 인생에서 맛볼 수 있는 오직 하나뿐인 그 맛을 언제까지고 우물거려야만 하는 것이다. 그 많은 목사와 선생들이 우리에게 희망과 규율을 말했다. 그들은 자기 자신마저 속이고 있는 기만자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세상에 점 찍혀 있는 단 하나의 진실을 보아야 한다. 아무런 법칙도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그 진실을 말이다. 떨어진 새가 다시 날 수 있으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세계의 자비라는 것은 사람의 약한 마음이 만들어낸 희망사항일 뿐이다. 우리는 바다 한복판에 내버려진 표류자들이고, 파도는 우리의 사정에 상관하지 않고 제멋대로 덮쳐오거나 수그러든다. 원래 그렇게 생겨먹은 세상인 것을! 다만 우리가 자유라는 점 만은 사실이다. 아무것도 약속되지 않은 만큼이나 우리는 자유다. 그러나 고통 또한 진실이다. 자유로운 사람은 자유로운 만큼 고통스러워야한다. 우리는 사실 희열보다는 절망을 더 많이 만나게 될 것이다. 그것이 전쟁이다! 전쟁에서 얻을 수 있는 기쁨이라는 것이 도대체 얼마나 되겠는가? 그러나 전쟁이야말로 삶의 본질이고 실체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원망하려면 우리가 의식하고, 제각각의 취향을 가진 동물로 태어난 것을 원망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한단 말인가? 도대체 어떻게 해야 좋단 말인가. 자, 형제여, 우리는 울 수도 있고 몸부림 칠 수도 있다. 전쟁 상태에 몰입하는 것을 그만둘 수도 있고 아니면 차라리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도 있다. 지금 내 눈에는 혹독한 전쟁터만이 보인다! 우리는 어떤 약속도 없이 내버려진 채로 서로를 향해 흉기를 휘두르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대지를 뒤덮은 시체와 웃는 모습이 가증스러운 부당한 자들도 보인다. 부당? 물론 그것은 내 적임을 뜻한다! 우리는 항상 우리의 적들을 찾아내며 살고 있는 것이다. 나는 내 마음이 끝없이 희열을 갈구하던 시절에 내 손을 잡아줄 아군을, 동료를, 형제를 얼마나 애타게 찾아 헤매었던가. 그러나 전쟁이여, 우리는 모두 칼을 든 형제들이다.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정신의 약자가 되지 않기 위해 희망도 기대도 거부하고 치루는 이 전쟁의 끝에는 과연 무엇이 있단 말인가? 사실 고개를 돌리면, 태도를 바꾸기만 하면 인생은 하나의 달콤한 과실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쪽 면이 진실인 것만큼이나 이쪽 면도 진실이다! 우리가 자유라는 것, 우리가 고통스럽다는 것, 우리가 쾌락을 향유할 수 있다는 것, 우리가 절망할 것이라는 것. 모두가 진실이다. 나의 마음은 고통스럽고 혼란하다. 그러나 나는 아무리 가슴이 아프더라도 나의 흉기를 쥐고 있으련다. 위대해지는 것만이 단 하나의 목적인데, 전쟁을 포기하는 것으로는 위대해질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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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란한 감정. 나는 시멘트 속에 빠진 생쥐 같다. 내게는 사고들을 늘어놓고 그것들의 특징을 판단하여 분별해놓을 공간과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내 영혼의 정상적인 기능의 대부분이 약효에 의지하고 있다는 것을 거듭 깨닫는다. 나는 마침내 인생을 손에 쥐었다고 자신만만하여 외쳤지만 사실 그 인생을 잡고 있는 손은 신경약리학을 근거로 하여 만들어진 것이었던 것이다. 나는 흐르는 벽돌로 된 미로 속에 갇힌 기분이다. 그러나 적어도 미로에는 출구가 있기 마련이다! 내가 갇힌 곳은 목적도 결과도 없이 정신의 혼돈만을 조장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원형 공간이다. 나는 사물들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곳에서 흔들거리고 있는 것을 본다. 그것들에는 내 손이 닿지 않는다. 사물들의 표면 위로 피어오르는 희멀건 안개 같은 것을 나는 볼 수 있다. 모든 것의 본질이 흐려지고 아무것도 뚜렷하지가 못하다. 나는 충분한 시간과 공간이 필요하다. 나는 생각을 할 때면 주로 같은 곳을 계속해서 돌며 걷곤 한다. 나는 그저 더 작거나 큰 원을 그릴 뿐이다. 나는 생각들을 입 밖으로 꺼내어 놓는다. 그리고 다시 살펴보다가 침을 뱉듯이 땅 위에 내던져버린다. 나는 깨끗한 것이 보고 싶다. 명확하고 번쩍거리는, 투명한 것이 보고 싶다. 나는 너무 혼란한 곳에 있다. 나의 언어들도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입술 위에서 비틀거리다가 쓰러져버린다. 나는 손을 뻗어 잡고 싶다. 단단히 무언가의 손을 쥐고 싶다. 나는 인생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인생은 과연 자유로운 것이었다. 그것은 우리에게 그냥 주어진 것이었다. 아무 대가도 없이 말이다. 언젠가 죽음이 다시 우리들에게서 그것을 가져가버리긴 하지만, 그것은 틀림없는 자유의 기회다. 우리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신이 없는 땅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우리도 죽어서 바람에 닳아 모래가 될 것이다. 그 전까지는 자유다! 우리는 완전한 맨몸뚱이로 갑자기 나타났다. 우리에게는 신도 없고 도덕도 없다. 햇살이 쬔다. 바람이 불고 모래가 휘날리고 하늘이 흐르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볼 수 있다. 우리는 나뭇잎 위에 흐르는 태양빛을 만져볼 수도 있고 땅 위에 고인 샘물을 마실 수도 있다. 우리는 살 수도 있고 죽을 수도 있다. 죽음조차 삶의 일부다! 그것은 삶의 종언을 특정하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완전한 사생아다. 나는 완전한 사생아다. 나는 아무 전통도 짊어매지 않고 태어난 것이다. 내 머릿속에서 도대체 무엇이 기어다니고 있는 것인지 형언하기가 힘들다. 나는 어떤 거대하고 불투명한, 물렁물렁하고 흐릿한 사상 덩어리의 존재를 느낀다. 그것은 살아있고 지네처럼 발이 많다. 그것은 기어다닌다. 내 머릿속에서 어떤 금속성도 갖추지 않고 흘러다닌다. 나는 빛이 필요하다. 맹렬하고 건조한 빛을 쬐어야한다. 나는 가끔 웃기도 한다. 그것은 사회적인 만족의 표시다. 그것은 나의 불확정성을 더욱 강하게 만든다. 나는 모든 것을 씻어내고 싶다. 빛으로, 빛으로 만물을 씻어내고 싶다. 의무 같은 것은 죽었다. 족쇄는 허상이었다. 나는 사막에 가고 싶다. 내 몸과 정신에 불을 붙이고 싶다. 나는 어쩌면 축축한 땅밑에서 태어난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내 삶에서 언제나 빛과 열을 갈망해왔다. 갈망이란 무릇 그것을 갖지 못했을 때 나타나는 감정이다. 나는 정신의 강자가 되고 싶다. 나는 빛을 쬐고 싶다. 나는 독과 물에 흠뻑 젖은 내 사고를 불꽃으로 태워버리고 싶다. 그런데 자유라니? 자유는 무서운 것이다. 과거에도 이런 말을 했던 기억이 있다. 자유는 우리를 아무 것도 없는 허공으로 집어던지는 무자비한 손과 같은 것이다. 삶에는 지정표가 없다. 우리는 자유다. 우리는 내버려져있다. 그래서 창조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땅바닥의 모래를 긁어모아 무언가를 지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하늘에 태양이 있는 것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직 태양 뿐이었다. 빛이 모든 것을 일깨웠다. 허무에서, 빛이 쬐고 우리는 허무 속에서 사물을 발견하고 아름다움을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그저 보았다... 그리고 종종 감동했다. 우리의 영혼은 태양이 만들어놓은 것이다. 나는 빛을 어떻게 하고 싶은 것일까? 빛을 만들고 싶은 것일까? 그것을 다시 비춰보이려는 것뿐인가? 태양으로 되돌아가고 싶은가? 나는 어쩌면 불타 죽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삶은 놔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너무 어리석은 짓이다. 수지 타산을 할 줄 아는 자라면 삶이라는 기회를 그냥 버릴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어떻게 해야할지 잘 모르겠다. 삶은 여전히 가능성으로 넘치고 혼란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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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이 왔다. 빛이 투명해지고 공기에서 북쪽의 어떤 선명한 냄새가 나기 시작하는 계절이다. 나는 태양에 점령당한 땅에 대한 소설을 쓰고 있다. 내 영혼은 언제나 빛을 향하여 머리를 향하고 있기 때문에 빛에 대한 이미지가 부족해지는 일은 없다. 나는 언제나 눈이 부시다. 나의 촉각들은 늪의 뻘을 느낀다. 내 심장이 담겨있는 새까만 늪을 나는 보지는 않는다. 그러나 나의 감정과 고독은 내가 어디에 파묻혀 있는지 똑똑히 알고 있다. 나는 이곳에서 혼자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아직 죽음을 논하기에는 너무 이르지 않느냐는 의견도 있지만, 삶의 그 어느 순간도 죽음을 논하기에 이른 때일 수는 없다. 나는 외로움을 느낀다. 외로움. 오래되고 깊은 외로움은 나의 인격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는 대단한 것이다. 늙은 부모님에 대한 생각을 했다. 그들에게 고독에 대해 물어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으나 그러지 않았다. 나는 너무 오랫동안 홀로 살아와서 인생을 누군가와 나누는 방법에 대해서 전혀 아는 바가 없다. 어린시절의 기억들이 떠올랐다. 억울하고 슬픈 감정들. 그러나 더는 그러한 기억에 상관하고 싶지 않다. 어쩌면 모든 것이 다 잘되어 가는 중일지도 모른다. 최근의 나는 이따금 조증에 걸린 사람처럼 자신만만하여 인생을 낙관하는 때가 있다. 내가 쉽게 절망하는 만큼이나 쉽게 만족할 수 있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나는 부나 영광을 바라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극도로 닫힌 인간이다. 내가 기쁨을 느끼는 데에 필요한 것은 외부의 조건도 아니었다. 무언가를 소유하게 되는 일도 아니었다. 모든 것이 주관에 의해 판단되는 것이었다. 나는 미치광이여도 괜찮은 것이었던 것이다. 연대에 대한 욕망은 사라지지 않지만, 그것은 꿈을 꾸는 자의 욕망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꿈 속에서도 충분히 충족될 수 있다는 뜻이다.
 얼마 전에 나쁜 일이 있었다. 나의 충동성과 불행에 대한 억하심정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나는 여전히 원한감정으로 가득한 슬픈 짐승이다.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믿는 와중에도 과거에 발이 묶여있다. 그러나 도무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해결할 수 없는 과거를 어떻게 해결해야 좋단 말인가? 잊거나 둔감해지는 방법밖에 없다. 스스로와 타협하는 것이다. 그리고 과거와의 절연. 관계자의 죽음. 완전히 망각하는 방법. 이상한 말이지만, 나를 과거의 나로 인지하는 시각들만 사라지만 과거의 나도 사라져버리는 것이다. 영원히 망각의 땅 속에 묻어버릴 수 있다. 그리고 나는 꼬리를 잘라낸 도마뱀처럼 살아갈 수 있다. 사랑할 수 있을 만큼 증오하는 사람들의 존재가 나를 슬프게 만든다. 그러나 나는 아무와도 손을 잡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이제 시간이 흐르고 나면, 모든 것이 나의 선택권 밑으로 들어오게 되는 날이 올 것이다. 지드의 사생아. 모든 사람이 원하기만 한다면 스스로 사생아가 될 수 있다. 부모라는 이름의 전통(전통이라는 이름의 부모)을 살해하는 것으로 말이다. 그러면 완전히 스스로의 책임만으로 이루어진 자유로운 인간이 될 수 있다. 사람은 모두 시간에 묶여 죽는다. 홀로 살아남은 사람은 죽은 인간이 하지 못했던 일을 할 수 있다. 생명은 곧 가능성이다.
 계속해서 잠을 자고 계속해서 꿈을 꾼다. 엄청난 양의 꿈들. 엄청난 양의 환상들. 나는 살아가는 일에서 쾌락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점점 더 많은 잠을 잔다. 사회적으로 아무런 지위도 갖지 못했다는 것은 완전히 사회적이지 않은 인간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나는 환상에 낭비되는 시간들 속에서 방종을 즐긴다. 오늘과 내일의 경계선은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희미하다. 내가 무엇이 될 수 있을까? 겨울에: 나는 삶을 좋아하지 않는다. 자기파괴와 포기. 그러나 나는 삶을 포기하지도 않을 것이다. 내가 가진 것이라곤 오직 삶 밖에 없기 때문이다. 누구나 그러하다. 누가 영원을 말하는가? 인간은 죽음이 놓여진 삶 밖에 가질 수 없다. 오해하지 말라. 우리가 맛 볼 수 있는 과실은 영원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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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사실은 아주 적은 편이다. 그것들을 한 손으로 꼽아볼 수도 있다. 나는 할 수 있는 일이 그리 많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또 글을 써야한다. 달리 가능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무능력과 무기력과 더 없이 작은 존재를 느낀다. 언제나 그래왔다. 단 한 번도 변한 적 없는 사실이었다. 변한 것은 내 환상의 크기였다. 나의 모래 알갱이 같은 실재는 언제나 작게 수축되어있었고 건조했던 것이다. 어떤 날을 경계선으로 하여, 나는 그것을 똑똑히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그 이전보다도 더욱 글을 쓰는데 열중했고, 그것이 유일하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대단한 것은 어디에도 없다. 빛이라는 것도 얇고 예리할 뿐인 한점의 입자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에 만족하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받아들이기는 해야한다. 그것이 사실이고, 실재라고 말이다. 나는 영광을 찾는 것이 아니다. 어떤 초월을 목적하는 것도 아니다. 나는 내가 무의미하고 작은 존재라는 것을 안다. 그러나 무엇은 안 그렇겠는가? 모든 것이 그러하다. 크고 작다는 것은 비교에 의하여 탄생하는 개념인데, 사실 큰 것은 어디에도 없다. 작은 의미들이 모이고 모여서 그것이 마치 하나의 거대한 덩어리처럼 보이는 것일 뿐이다. 그리하여 크고 작다는 개념도 결국 허구로 밝혀진다. 하늘이 없는 사막. 오직 모래알 뿐. 그러나 분명히 해야할 것은, 그렇다고 하여 감상주의적인 허무로 빠져드는 것이 허용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모래 알갱이가 하나 있다. 그것은 실재한다. 아주 미세하고 쪼그라들어있으며 약간의 비대함이나 풍부함도 가지지 못했지만, 그것은 실재한다. 나는 손으로 그 모래 알갱이를 집어들어 바람에 깎여나간 면들과 모서리를 손끝으로 느껴볼 수도 있다. 그렇다, 그것은 그리도 분명하게 존재하는 것이다. 의미도 가지지 못하고 미래를-희망이라는 물감으로 칠해놓은, 우리에게는 허구에 지나지 않는 신들의 미래를- 품지도 못했다. 그리고 이 세계의 모든 것이 그러하듯이 결코 영원하지도 못할 것이다. 그러나 존재한다. 그래서 나는 내가 글을 써야한다는 것을 안다. 허무라는 것도 문자로 표현되기에는 너무나도 광대한 개념이다. 허무. 그렇게 말로 떠벌리자면 나는 허무에 잠겨있기도 하고 동시에 허무를 거부하고 있기도 하며 허무를 부정하기도 하고 허무를 신뢰하기도 한다. 도무지 '이러하다'고 말할 수가 없는 것이다. 언젠가 까뮈가 말했던 것처럼, 우리는 '이러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이러한 사람이 아니라고 말할 수는 있다'. 그래서 나는 나의 공허하고 목적없는 역할에, 그러하더라도 내 삶을 송두리째 바칠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내 머릿속에서는 그것도 언젠가 스러지고 마는 것이라고 회의적인 목소리를 던지지만, 그것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절대적인 것만큼 인간에게 있어 무의미한 것도 없지 않은가. 절대라는 것은 즉 인간의 손이 닿지 않고, 눈에 보이지도 않으며, 들을 수도 없는 것이라는 뜻이다. 우리는 그것을 조작할 수 없다. 절대는 우리의 머리 위에서 끊임없이 내리쬐지만, 우리는 그것을 향해 눈을 향할 이유가 없다. 그것은 인간의 것이 아닌 것이다. 오직 알고만 있으면 된다. 우리가 절대 밑에서 살아가고 있는 절대를 알지 못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말이다. 글을 쓴다는 것이 그런 것이다. 내가 인간일 유일한 이유. 내가 인간으로써 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역할. 건조한 명백성. 사멸하는 가치야말로 가치다. 애당초 사멸하지 않는 가치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게 인간은 태양 아래서 스러지는 것에 목숨을 바치고, 자신의 온 존재를 인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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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 썼다.
 4개월이 좀 넘는 시간을 들여서 A4용지 51페이지, 200자 원고지 456 매 분량의 초고 완성. 이제 다듬고 깎아내는 작업만 남았다. 제목은 아직 고민중이다. 가제를 붙여놓기는 했는데 완벽하게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하지만 머릿속에 떠돌아다니는 다른 단어의 조합들도 마찬가지로 내용에 비하여 조잡하게만 느껴진다. 수정을 마치고 나면 공모전이나 출판사 따위를 좀 돌아다녀 보아야겠다. 이것이 내 개인의 역사에 있어서 어떤 작품이 될지 아직은 그저 불투명하기만 하다. 약간의 기대만 있을 뿐. 하기사 언제나 그랬다. 무엇이 과정이고 무엇이 결과일지 현재로서는 전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블로그에 게재하는 것은 발표 과정이 일단락 된 뒤에 생각해봐야겠다. 우선은 지금의 탈력감과 만족감을 충분히 만끽한 뒤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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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도한 감정에 빠져들어서는 안된다. 고뇌에 취해버려서도 안된다. 차라리 그것을 하면서 웃어버릴 수 있을 정도의 태도를 가져야 한다. 어떤 방식을 택하든 고통은 따라오기 마련이다. 그리고 동시에 행위의 근거에도 또한 고통이 있다. 과도해서는 안되지만, 사실 미리부터 행위는 과도하게 흘러넘치는 감정 때문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포화 이후의 절제. 기묘하고 애매한 균형이 있다. 언어화 할 수 없는 언어처럼.
 사실은 그 누구와도 만나고 싶지 않다. 사람을 만날 때마다 내가 병적인 결핍상태에 있다는 것을 묵묵한 침묵 속에서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고독과는 조금 다른 것이다. 차라리 일종의 병에 전염되는 것과 비슷하다. 형태지어진 타인이라는 존재는 내 존재성 속에 퍼지는 독극물 같다. 달팽이는 자신의 연하디 연한 살을 딱딱한 껍질 속에 감춰두고 산다. 병을 두려워하는 탓이다. 감상주의자들의 불쾌한 내면과 접촉하는 것이 싫다. 그들의 정신은 독과 같고 전염병처럼 추하다. 자기자신의 구역질나는 체액에 잠겨 천천히 익사해가는 그들을 향하여 나는 증오와 혐오의 문장들을 수도 없이 써낼 수 있을 것이다. 사방으로 손을 내밀어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스스로의 병증에 취하여 만족해버린 익사자들. 나는 그들의 따귀를 때리고 그들이 반드시 있어야 할, 깊고 깊은 바닷속에 처넣어버리고 싶다. 당신들의 손은 역겹다. 당신들의 끈적거리는 외로움만큼이나.

 나의 세계 안에서도 오만가지 시각들이 있다. 그중 어떤 눈은 나를 보지 못한다. 그는 나라는 존재를 세계에서 발견해낼 수 없다. 그에게 있어서 내가 너무나도 작기 때문이다. 그 누구에게도 영향력을 끼칠 수 없는 나는 광막한 세계 속에서 간절히 바란다. 내가 세계의 일부의 일부의 일부라도 통제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되기를. 그러나 개인이라는 것은 늘 시간 속에서 패배해왔다. 염세주의나 패배주의에 근거하지 않더라도 분명하게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개인은 늘 시간 속에서 패배해왔다. 승리하는 개인이란 필연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모든 개인은 패배한다. 그 자신이 그러한 결말을 알고 있든 알지 못하고 있든, 아무튼 간에 개인의 종말에는 패배밖에 놓여있는 것이 없다.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설령 내가 가는 길의 끝에 허무와 사멸이라는 진실밖에 존재하지 않더라도, 나는 꾸준히 발걸음을 옮겨야만 한다고. 그 누구도 결과적으로 승리할 수 없는 세계에서-승리하는 것은 언제나 세계뿐이다-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할지, 내가 언어를 알기도 전부터 그 의문은 항상 내 존재를 지배해왔다. 그런데 보라, 나는 위대함을 알지 않는가? 위대함이라는 단 하나의 빛줄기를 알고 있지 않은가. 허무주의자들이 말한다. 모두가 패배하는데 위대함 같은 것에 도대체 무슨 가치가 있느냐고. 상관 없는 일이다. 소유와 무소유로만 사물의 상태를 인지하는 것은 안될 일이다. 위대함은 가지는 것도 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그저 향하는 것이다. 나는 길 아닌 길을 발견한 것이다. 끝에 가서는 결국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완전하게 사멸해버린다고 하더라도, 절망적인 반항의 얼굴로 나는 위대함을 향하여 걷는다. 필멸자인 내가 가질 수 있는 최대한의 갈구란 바로 그것이다. 나도 죽음을 보았다. 이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사람 중 하나인 그가 죽는 것도 보았다. 그의 존재가 사라지고, 갈망해왔던 모든 가치들로부터도 외면당하고, 마침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서 미래도 과거도 없는 멸망으로 끌려들어가는 것을 나는 보았다. 그가 아무리 죽음에 반항하며 삶을 향해 손을 뻗어도 죽음이 그를 집어삼키고야 말았다. 그것이 결말인 것이다. 아무것도 갖지 못한 채 사라지는 것. 그런데, 이것 외에 무엇이 있을 수 있겠는가? 영원? 아니다. 영원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어떤 관찰자도 영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의 실제 구조와는 상관 없이, 영원은 우리들의 눈과 귀로 말미암아 사라지고 만다. 내가 본 것은 필멸자의 위대함이었다. 죽어 없어질 수밖에 없는 자가 반항의 몸짓으로 허무 속에서 끄집어낸, 한없이 순수하고 명백한 공허. 세차게 이마를 때려대는 햇빛과도 같은 감각뿐인 존재. 한순간뿐인 열파. 폭발하는 순간 태어나서 곧바로 사라져버리는 먹먹한 실재. 흔적도 남기지 않고 순식간에 왔다가 가는 계절. 그것이 바로 진실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세계가 우리들에게 넌지시 알려주는 유일한 삶의 방법인 것이다. 인생은 소모하는 것. 생명은 한순간의 불꽃을 위한 연료나 다름없다. 그리고 명백함과 광막함으로 이루어진 폐허 속에서 섬광으로 번뜩이는 것. 도착할 수 없는 목적지. 열광의 활주로. 위대함으로 가는 길.
 그는 죽었다. 그리고 위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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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무와 열광.

기록/생각 2011. 7. 3. 23:24 |
 포기를 위한 감정. 안식에 대한 욕망. 어서 모든 일을 끝내버리고 싶다. 나는 늘 언제까지 살아야하느냐고 누군가에게 묻는다. 조금만 더 하면 될 것이다. 단 하나라도 좋으니 네 삶을 완결지어라. 사고에 마침표를 찍어라. 만약 내가 아주 잠깐이라도 위대함의 정상에 다다를 수 있다면, 그 뒤에는 그저 영원히 깊어지기만 하는 계곡 사이로 굴러떨어져도 좋다. 그러니까 어서 정상에 올라 울고 소리쳐야한다. 결말을 위하여. 나는 끝을 원한다. 그러나 늘 남는 것은 미련 뿐이다. 복수심과 미련. 나의 가장 지저분하고 추잡한 인간성. 누군가 나를 도와주었으면. 진심으로 내 심장에 체온을 나누어준다면. 만일 내가 행복하다면. 사실 나는 내가 감상을 갖는 것도 혐오스럽다. 달리 어쩔 도리도 없으면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자살하듯이 잠드는 것 뿐이다. 왜? 죽지 않겠다고 말해버렸으니까. 어떤 시기까지는. 세계와 자주 마주칠수록 발밑에 도사리고 있는 허무주의가 점점 더 뚜렷한 윤곽을 갖는다. 의사는 그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내가 통제권을 손에 넣어야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한발짝만 더 나서면 허무주의에게 갈기갈기 찢겨 죽어버리지는 않을까, 그것이 두렵다. 내가 더 이상 의지조차 가지지 못하게 되고, 아무것도 만들지 못하고, 패배주의적인 울부짖음 속에서 서서히 흐려지다가 결국에 가서는 완전히 지워져버린다면?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내가 무언가를 바래야한다는 것은 또 무슨 법칙인가. 이제는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다. 나는 무언가를 잃어버렸다. 그것이 내게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기도 전에. 나는 무언가를 잃어버렸다. 나는 그만두고 싶다. 전부 다. 뭐 하나 만족스럽지가 못하다. 무엇을 기대해야하는지? 아무것도 모른다. 그냥 굴러 떨어졌을 뿐. 죄악이 무엇이라고? 웃기지도 않는 소리다. 죄 같은 것은 없다. 그 어떤 법칙도 기준도 좌우도 상하도 없다. 그것들은 그저 이 모든 엿 같은 것들이 지속되기를 바라는 음흉하고 배부른 돼지들의 공작으로 만들어진 허구다. 우리는 맨몸뚱이고 벌거벗었으며 가진 것이라고는 피와 고기밖에 없다. 그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를 가진단 말인가.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한다. 그저 무작위하고 가차없는 우연에 의해 여기에 서있을 뿐. 마치 필연적인 것처럼. 우리는 뭐든지 할 수 있다. 아무것도 가지지 못했으니까. 우리는 세계를 송두리째 거부할 수도 있다. 애당초 그것이 우리의 것이 아니었으니까. 우리는 죽을 수도 있다. 그것만이 자의로 움직일 수 있는 유일한 스위치니까. 존재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 오직 그뿐. 위대함은? 글쎄, 너무도 멀고 막연하다. 그것에 목매어있는 만큼, 그것은 동시에 공허하고 가끔은 증오스럽다. 나의 인생을 유지시키는 단 하나의 것. 그것만 없었더라도 나는 일찌감치 그만 둘 수 있었을 텐데.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허무의 한복판으로 뛰어들어 순식간에 사라질 수도 있었을 텐데. 단 하나의 빛줄기. 나는 그것을 갈망하고 사랑하고 찾아헤매고 증오하고 원망하며 포기하지 못한다. 사실은 그것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는데. 도대체 언제쯤에야 나의 영혼이 자유를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죽을 수 있다. 죽음만은 내가 내 의지로 선택할 수 있다.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에 대한 갈망. 안식. 영원한 휴식. 영원한 잠. 깨어날 필요가 없는 꿈. 그러나 나는 아직도, 무언가를 찾고 싶어한다. 햇빛은 손에 쥘 수도 먹어치울 수도 없는데. 섬광은 간직할 수도 끌어안을 수도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그것에 목이 매어있고, 자살하지 못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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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달이 조금 안되는 시간동안 30페이지의 글. 이전과 비교해보면 아주 만족할만한 속도이다. 툭하면 관념적인 표현으로 특정한 분위기를 조성하지만 사실 나 자신은 그런 방식을 싫어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니멀리즘에 대한 경외감. 그러나 나의 문장은 그렇지 못하다. 최근에는 하루가 너무 바빠져서 작문에 오랫동안 집중하고 있기가 어렵다. 나는 퇴행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있다. 내가 가진 시간들을 가능한만큼 전부 작문에 쏟아부으려고 하지만 분량에 대한 집착이 오히려 문장들의 단결성을 해치기도 한다. 핵심을 짚어내라. 상징적인 사건들. '글쓰기'의 이전부터 존재하고 있던 이미지들에 대하여. 잊어서는 안된다. 적어도 그것을 완성시킬 때까지는 변화해서도 안된다. 회의주의는 실천적인 행위들이 끝난 뒤에나 나타나야 한다. 그것이 물질이 존재하는 세계에서, 그 세계에 대한 영향력을 가진 개인으로 있을 수 있는 비결이다. 그러는만큼 내 결백함은 점점 흐려지겠지만, 아무도 죄를 묻지 않을 것이다. 죄라는 것도 간단히 입밖으로 낼만한 표현이 아니다. 나는 그저 '어떤 인간'이 되려고 발버둥치는 것뿐이다. 애매모호함을 받아들이지 말라. 아무리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것을 완전히 정리하고 나의 사상이라는 책장 안에 꽂힌 한 권의 깔끔한 책으로 만들어내야한다. 모호한 정신과 모호한 관념으로 쓰는 글은 자연히 모호해질 수밖에 없다. 정신의 흔적을 쫓으며 분석하고 성립시켜야할 일이다. 언제나 되뇌는 말이지만, 감성에 너무 기대서는 안된다. 내가 가져야할 것은 명백함이다.
 뇌를 녹아내리게 하는 한여름. 나는 격렬한 우울과 낮게 일렁이는 분노 사이에서 발을 질질 끌며 살아가고 있다. 나의 오감은 언제나 당장이라도 폭발할 듯한 태세다. 모든 감각이 너무 날카롭게 날이 서있어서 스스로의 신경 때문에 기절해버릴 것 같다. 광기의 한복판. 나는 여전히 이성을 가진 광인이다. 섬광을 쫓는다는 것. 미치지 않은 미치광이의 상태를 유지해야한다는 것. 죽은 예술가들의 꿈. 오직 개인만을 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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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작위의 진실.

기록/생각 2011. 5. 29. 04:46 |
 나는 춤을 춘다. 나는 춤을 춘다. 내가 춤을 추노라. 내 목소리를 들으려면 어디로 가야하나? 누가 내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누군가의 입에서 나의 언어가 튀어나오는 것을 보고 싶은가? 아니, 사실은 그다지 바라지 않는다. 그저 어딘가에 완벽하게 만들어진 내 밀랍인형이 있다면! 모든 것이 잘 되어가고 있도다! 나는 희망이 충만하고...희망은 충만하지 않다. 희망은 거부당했다. 그렇더라도 괜찮다. 그것은 애당초부터 거절당할만한 것이었다. 나는 내 손을 뜯어먹는다. 내 유일한 가치를 씹어 삼킨다.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접시가 비워진다. 내 가죽, 내 살덩이, 내 뼈. 내 목소리. 내 목소리를 내는 내 표정들. 사방으로 떠들어대는 얼굴들. 나는 춤을 춘다. 들어본 적도 없는 리듬에 스탭을 밟는다. 그런데 내가 만일 그들에게 빚이 있다면? 나는 그들에게 빚이 있는가? 그런데 나는 누구에게도 원한 살만한 짓을 하지 않았다. 나는 결백하고 유쾌하다. 그러나 완전하지는 못하다... 충분하지 않다. 그래도 잘 되어가고 있다. 나는 잿가루가 뿌려진 기쁨을 들이삼킨다. 커다란 잔에 그것을 담고 마시며 심장이 타들어가는 것을 느낀다. 통증이야말로 나의 뿌리가 아니던가. 춤추자! 기쁘니까 춤을 추어야한다! 나는 꿈 속에서 나의 집을 갖는다. 나는 내 집의 가장 안전한 방의 가장 깊숙한 안락의자에 머리꼭대기까지 파묻혀 있다. 나는 또 소리내면서 웃는다. 무엇이 우스운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냥 내가 도망쳤다는 사실이 유쾌하다. 나는 완벽하게 도망쳤다. 그러나 일시적인 도망이다. 다시 목이 묶여 끌려갈 것이다. 그러면 나는 또 내 집으로 도망치기 위해 내 목을 자를 것이다. 머리가 떨어져 내린다. 내 손해다. 소리내서 웃자. 나는 믿는다. 어떤 길거리에서, 사람이 한 명도 다니지 않지만 사람의 그림자가 시야를 스쳐지나가는 어떤 길거리에서 나는 겁에 질린 만큼이나 편안하다. 내 몸에서는 웃음이 체액처럼 뚝뚝 흐른다. 잘린 머리. 잘린 머리. 잘린 남근. 잘린 영혼. 잘린 정신. 잘린 자아. 유명한 단어들... 너무도 값싼, 너무도 고귀한. 누구나 먹어야 산다. 그 어떤 고명한 철학자들도 마찬가지다. 생명을 탐하자. 걸신들린 것처럼. 뜯어 먹자! 나는 잠을 자겠다. 내 통제를 벗어난 다리와 함께. 어떤 주관의세상은 아득하게 멀어지고 연기로 둘러싸여 있다. 내일. 연속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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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내가 상당히 괜찮은 소설을 구상하고 있고, 그야말로 멋지다고 침이 마르도록 칭찬할만한 소재와 부품들을 구했다고 확신하고 있다. 텅 빈 페이지를 직시하고 있을때 돌연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온갖 발상과 생기를 머금은 대사들이 내게 얼마나 큰 즐거움을 주는지! 물론 나는 아직 단 한 줄의 문장도 완성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순전히 내 의지로 인한 것이다. 나는 아직 이 이야기를 형태화시키고 싶지 않은 것이다. 나는 내 두개골 안에서 기분좋게 굴러다니는 가공의 인물들을 다소 흥분한 마음으로 관찰하곤 한다. 보라! 나는 곧 걸작을 써낼것이다! 그러면 내 모든 수치와 내 발치에 놓여 나를 노려보는 경멸의 시선들도 전부 산산조각나 사라질 것이다! 얼마나 기쁜 일인가? 이렇게 나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공상 속에서 갖게 된 성공을 빛에 비춰보이고 또 자랑한다. 그리고 나는 또 내 마음의 많은 부분을 꽉 물고 떨어지지 않는 나의 적들을 향해 사납게 소리를 지르는 것이다. 내가 그렇게 말했지 않은가! 바로 내가 옳다고! 너희는 모두 글렀다! 이제 내가 위대함에 더 가까우니 당신들의 지식과 교양이라는 것은 전부 시체조각과도 같다! 당신들은 이제 나의 적조차도 아니다! 그저 무덤 아래에서 신음하는 덜 죽은 주검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다가 나는 다시 곰곰히 생각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내가 쓰려는 이 이야기조차 어딘가의 책에서 따온 흔해빠진 것은 아닐까? 나는 정말로 당당하게 자랑해보일 글을 쓰려는 것인가? 이 과잉의 시대, 이 21세기에서 나는 독창성을 찾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 창조력이라는 것은 순식간에 빛이 바래고 낡아빠진, 추잡하고 비웃음이나 살만한 것이 되어버리고 말리라. 흠! 그러나! 전보다는 덜 자신만만하지만, 나는 내게 좋은 글을 쓰기 위한 조건과 능력이 충분히 있으리라고 추측한다! 달리 믿을 것이 무어 있겠는가. 내게는 그것밖에 보이지가 않는데.
 어쩌면 이런 흥분된 마음과 즐거워하는 입술도 다음달, 혹은 다다음달, 어쩌면 이 텅 빈 페이지를 완성하게 되는 그 날이 오면 송두리째 나락 아래로 떨어져내릴지도 모른다. 실상 그것이 몇번이나 겪어왔던 일이고 사실이었다. 이전까지 나는 도무지, 내 영혼의 눈 앞에서 번쩍이는 그 섬광들을 완벽한 형태로 옮겨오는 것에 서툴렀던 것이다. 그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선과 면을 따라 길가에 놓인 바윗덩이를 완벽한 예술품으로 깎아내는 것과 같다. 이 일에는 요령이라는 것도 없고, 그저 언제 거머쥐게 될지 알 수 없는 성공을 위해 그 반석으로 수많은 실패들을 쌓아올리는 일만이 필요한 것이다. 그 사실 때문에 가끔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도 하지만, 이것은 안도를 위한 사실이 아니다. 오히려 실패들을 짓밟고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만 하리라! 단 한 번의 휴식도 없이, 나는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섬광에 가까워져야한다! 지금 내가 열에 들뜬 정신으로 뒤쫓고 있는 이 이야기는 과연 성공을 위한 과정이 될 것인지 혹은 결정적인 성공이 될 것인지. 나도 확언하지는 못한다. 그도 그럴 것이 아직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았다! 나는 마치 눈밭 위에서 눈덩어리를 굴리듯이, 조심스럽고 또 최적의 방식으로 나의 아이디어들을 부풀려야한다. 덧붙이고, 깎아내고 자르고 또 색을 칠하거나 지우기도 하며, 작업을 진행해야한다. 몇 번이나 반복하여 고백하건데, 나는 기쁘다! 나는 절망스러울 정도로 기쁘다! 내가 글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창조란 얼마나 아름다운가? 얼마나 유일하고 또 얼마나 특별하며 환희로 가득한가! 단 한 줄기의 빛! 천지사방을 까맣게 메우고 있는 어둠 때문에 그 빛줄기는 더욱 선명하게 보인다. 어쩌면 그 빛을 제외한 모든 어둠이란 그 빛줄기가 더욱 더 선명하고 날카롭게 빛나는 것만을 위한 무대장치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충분히 살 수도 있지 않겠는가? 나는 마치 빛에 취한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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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ain Damage.

기록/생각 2011. 4. 9. 03:09 |
 타인의 말에 공격받지 않는 방법으로는 자멸적인 퇴폐 뒤로 도망치는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다. 우리는 항상 아무도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울면서 길을 걷지 않는가. 콘크리트와 시멘트 따위로 만들어진 포장도로는 도시인들의 비웃음만큼이나 무뚝뚝해서 아무리 눈물을 떨어트려도 우리를 위해 웃어주지 않을 것이다. 애당초 그들에게는 온기라는 것이 없다. 어머니 자궁 속의 한조각 살점이었을 때부터 줄기차게 갈구해왔던 그 온기. 아니면 우리가 그들을 공격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겠지만, 우리는 남들과는 다르게 흉기를 갖추지 못하고 태어났다. 태어난 순간부터 계속 맨몸뚱이였던 것이다. 카메라 앞에서 세련된 웃음을 지어보이는 그들은 언제나 흉악한 무기를 손에 쥘 수 있었는데 말이다. 나는 정갈한 감정이라는 것도 다 싫다. 내가 슬플 때 운다고 누가 내 눈물을 받아주겠는가. 나는 차라리 눈물샘에서 알코올을 흘릴 것이다. 정신나간 휘발성 액체가 달큰한 냄새를 풍기면서 흘러나올 것이다. 그러면 모든 일들이 조금 더 우습게 보일 것이다. 물론 아직 나는 웃지는 않고 있다... 내 마음에는 속물적인 부분들이 없잖아 있다. 그래서 나는 승리자들을 부러워하고 명예와 권력을 향해 혀를 낼름거리기도 하는 것이다. 나는 내가 흑백사진으로 인쇄된 밀랍인형과 닮아있기를 바라는데, 현실의 나는 그것보다 훨씬 지저분하고 들쭉날쭉하다. 그런데 하여간, 내게는 패배주의의 속성도 있다. 나는 아마 내가 질투하는 그것들을 손에 쥐지 못할 것이라고 미리 짐작하고 제발로 더 깊은 낭떠러지로 몸을 던지기도 한다. 친구는 날더러 영리하지 못하다고 지적한다. 옳다. 그는 참으로 항상 옳다. 벌집이 밀랍으로 만들어진 것을 알고 있는가? 나는 밀랍이라는 단어가 좋다. 그것은 깨끗하고 탄력있어보인다. 그리고 우윳빛의 광채를 낸다. 너무 화려하지는 않지만, 내면에서부터 흘러나오는 듯한 광채 말이다. 나는 아마도 승리하지는 못할 것이다. 나는 경쟁도 싫다. 나는 경쟁도 싫어서 전부 그만 둬버렸다. 나는 남을 이기기 위한 무기가 없다. 어쩌면 잘 찾아보면 그것이 내게도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그다지 내 무기를 쓰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다 관둬버렸다. 잘못된 선택들, 장기적인 안목이라는 것도 전부 내버렸다. 나는 현재밖에 살줄 모른다. 아니, 더 솔직하라. 나는 현재조차도 제대로 살 줄을 모른다. 나는 공포와 함께 산다. 내 이불 속에 그것이 꿈틀거리면서 살아있다. 아프고 울고 싶지만 그러한 사실들은 아무런 도움도 안된다. 내 고백을 도대체 누가 좋아라고 들어주겠는가? 그런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나는 돈을 내야한다. 나는 돈을 필요로 하지 않는데 돈이 필요하다. 내 친구의 말마따나, 그것이 돈이 아니라면 누가 그런 숫자가 인쇄되어있을 뿐인 종이조각들을 피처럼 아끼겠는가? 그는 현명하다. 그러나 나는 반 자본주의자도 아니다. 그런 사상을 가질만큼 단정적이지 못하다. 나는 결론이나 판결을 내리는 것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나에게 누군가를 평가하라고 지시한다면 난 그 지시자를 목졸라 죽이는 것을 선택할 것이다. 우리들은 너무 오랫동안 가치를 가질 것을 강요 받아왔다. 누가 그랬을까? 아마 나도 그랬고 남들도 그랬고 또 세상 또한 그랬을 것이다. 무의미한 일이다. 땅에는 이미 봄이 피었는데 나는 너무 춥다. 모든 일어난 일들은 이미 형태지어져있다. 성형수술과 성전환수술. 그리고 나는 피 묻은 메스가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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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도 내일도 없이, 그저 낮과 밤이라는 기계적 순환으로만 시간의 흐름에 경계선을 긋던 그때를 나는 어떤 표정으로 기억하는가? 나는 몽상과 환각으로만 하루를 빼곡히 채색했다. 미래라는 것은 마치 시체처럼 창백하고 기력없는 모습으로 저 멀리에 서서 내게 오는 것을 주저하고 있었으며, 나 역시 미래 같은 것은 바라지도 않았다. 시간은 단단히 문이 닫혀있었고, 내 방의 공기는 두텁게 얼어붙어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박제된 시체처럼, 나의 작고 문이 잠긴 방은 시간으로부터 벗어나 있었던 것이다. 나는 방 바깥의 살아 움직이는 것들과는 접촉하지도 손을 잡지도 않았다. 그리하여 나의 고형화 된 공간은 꼭 홀로 영원할 것처럼 나를 감싸 안았던 것이다. 그 마음 편한 추위 속에서 나는 외로움도 몰랐다. 환상은 현실보다 컸고, 완벽했으며, 또 외롭지 않았다. 나는 곰팡이 핀 벽지에 둥글게 만 몸을 기대고 웃는 법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그것을 보지 않고 있더라도 시간은 흐르고 상황은 변하는 법이었다. 나는 벌거벗겨진 채 햇살 찬란한 텅 빈 거리로 끌려나왔고, 갑작스런 위협에 얼떨떨해진 채 겁에 질린 눈동자를 굴렸다. 내가 아무리 일상의 굴레라는 것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몽상으로 내 존재의 목을 축이더라도 영원이라는 것은 도무지 있을 수 없는 것이었던 것이다.
 지금 나는 내가 자신으로부터 한발짝 떨어져나왔다는 것을 느낀다. 이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일이다. 나는 내게 익숙한 표피를 벗어버리고 세찬 겨울바람이 휘몰아치는 거리에 서있는 내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이곳에는 진정으로 위안이 없다. 나태는 사실 단 하나의 달콤한 꿈이었는데─정말이지 그것은 꿈이라고 밖에 말할 도리가 없다─, 나는 과거로부터 미래에 향하는 시간과 만나고 나태의 가능성마저 빼앗겨버린 것이다. 이것은 어떠한 도덕적 잣대로도 평가할 수 없는 일이리라. 나태와 비슷한 의미를 가진 말로는 포기라는 것이 있다. 이것도 언젠가 이야기했던 관념이다. 무언가가 바뀌었다. 커다란 변화라고 말할 수 있다. 나는 더 이상 산산조각난 나의 시체를 보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생명이 흐르는 나의 비극적인 살과 근육들을 내려다본다. 나는 외로움을 느낀다. 예전보다도 훨씬 깊게, 더 본질적인 의미의 외로움을 말이다. 나는 구원이 없는 땅에 발을 디디고 있다. 아주 오랜 옛날부터, 아마도 태초부터 이 땅에는 확신이라는 것이 없었다. 그것도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다. 그러나 달라진 점은, 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어야한다는 것이다. 어떤 미래들이 어떤 사건의 모습을 하고 내 코앞으로 쏟아져내릴지 나는 참으로 손톱만큼도 알지 못한다. 나는 스스로를 위로하고 힘을 북돋아줄 어떠한 도구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런데도 나는 인간의 감정을 가슴 한가득 안고 이 황폐한 대지 위를 기어야하는 것이다. 나의 단단한 방 속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을 적에는 세상의 광막함에 굳이 시선을 붙이고 있을 이유가 없었다. 그때의 나는 언제든지 죽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많은 것들이 변했다. 나는 우울에 만족하지도 못하고, 이미 한계까지 차오른 눈물샘을 짓누르며 소리를 지르고 싶다. 아우성치고 비명을 지르고 싶다. 내 속에 생명이, 열망이 흐르기 때문이다. 또 내가 멈춤 없이 기어야하기 때문이다. 이 끔찍한, 그리고 필연적인 고통을 도대체 어떻게 표현해야 가장 완벽한 표현이 될 수 있을까? 나는 내가 도대체 뭘 가지고 있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목표해 마지않는 것을 향하여 사지를 움직여야하는 것이다.
 이 새카만 밤에, 나는 정말이지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고 싶다.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얼굴조차 본 적이 없는 누군가에게 내 손을 잡고 나를 일으켜달라고 진심을 다하여 부탁하고 싶다. 그러나 나는 혼자다. 이것은 절대적인 사실이다. 나는 혼자다. 그리고 혼자인 채로 살아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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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 장과 문장들의 호흡이 매우 짧고 읽기에 편리하다. 내용 자체는 이렇다할 특이성이 없지만 사건들을 엮고 적절한 대목에 등장시켜 역겨운 불행과 끔찍한 고통들을 한낱 우스개소리로 만들어버리는 풍자 기술은 몹시 교묘하고 참고할만 하다. 본문이 진행되는 내내 활자들 속에서 끊임없이 벌어지는 추악하고 소름끼치는 사건들은 그것이 전혀 대수로운 일이 아니라는 듯이 늘어놓는 미니멀리즘한 문장에 의하여 희화화 되어버린다. 그것이 다소 과도한 경향이 없잖아 있기도 하지만, 과도한 미니멀리즘이라는 것부터가 이미 아이러니한 코미디와 다름 없는 것이다. <이야기>의 측면에서 보면 이것은 그저 삶에 대한 순진한 긍정을 갖고 있는 인간이 노골적인 경험주의로 말미암아 회의에 빠져버리는─그 회의마저도 마지막에는 맹목적인 노동으로 억지로 잊어야만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회의에 대한 회의'로 내버려지고 말지만 말이다─ 내용에 지나지 않지만, 이 책 자체가 이야기의 진행에 무게를 두고 있다고 말하는 것부터가 무리한 일일 것이다. 오히려 이것은 체념을 학습한 인간이 때때로 느끼는 의문과 흡사한 면이 있다. 그런 것을 나타내기 위하여 쓰여졌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처음부터 짐작 했듯이, 결국 결론은 나오지 않는다. 전 세계의 불행들을 일주한 캉디드와 그의 일행들은 더 이상 행복이라는 환상을 좇지도 않는다. 그들은 이제 지독한 불행에 빠지지 않는 대가로 권태를 얻었고, 권태를 잊기 위해 노동을 하며 존재의 목을 가까스로 축이기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캉디드의 머릿속에서는 그 치명적인 믿음과 기대의 이름인 '낙관주의'가 가끔씩 발작하는 의문처럼 고개를 들기도 하지만, 그는 설탕에 절인 레몬을 입에 넣고 밭을 갈러 나가야 한다.

<마르틴은 인간이란 원래 그런 것이라고, 걱정과 번민 속에서 허우적거리거나 그렇지 않으면 권태에 빠질 수밖에 없도록 생겨 먹었다고 한마디로 잘라 말했다. 캉디드의 생각은 달랐다. 그렇지만 잠자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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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빌려온 첫날과 이튿날 쉴 새 없이 400쪽 가량을 읽어냈는데 잠시 덮어놓고 보니 어느새 일주일이 지나있었다. 아차 싶어서 일주일만에 나머지 100쪽 가량을 읽고 보니 독후의 감상이라는 것이 머릿속에서 몸통이 썩뚝 잘려나간 느낌이다. 처음에는 살고 싶다고 야옹야옹 울어대던 고양이가 2년이 지나고 나서는 물독에 빠져 몇 번 헛발질을 해보다가 체념하여 <죽어서 태평을 얻는다> 운운하다 담담하게 죽는다. 이것은 근대의 인간에게서 죽음을 의식하는 방법을 배워서 그런 것임에 틀림이 없다. 짐승마저도 인간에게 물이 배면 자살을 본다. 책 맨 뒷장의 작가연보를 읽어보니 이 사람도 퍽이나 아픈 인생을 살았다. 비록 병으로 죽었으나 자살을 생각해본 일이 분명 한두번은 아닐 것이다. 근대 이후부터는 개인의 죽음이 어떤 형식이든 반드시 자살의 냄새가 나기 마련이다. 어쩌면 학자나 지식인, 혹은 작가나 예술가라는 족속들만 그런걸지도 모르겠다. 생물 실격.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가장 먼 짐승이 된 이유는 자신의 죽음을 상상하는 능력에 있을는지도 모른다. 인간을 닮은 짐승이란 보고 있으면 너나 나나 처량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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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안과 고통. 불안과 고통. 우리는 태어났다. 우리는 어쩔 도리도 없이 태어나버렸다. 차가운 공기가 폐를 덮치고 강간하던 순간을 우리는 불타는 적개심과 증오로 기억하고 있다. 우리는 사방으로 폭발하는 공기 한가운데에 버려졌다. 우리는, 우리는, 나는 아직도 태아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아직도 태아의 모습을 하고 있다. 내 몸은 도마뱀처럼 끈적거리고 역겨운 모습으로 구부러져있다. 나는 꼬리를 배에 가져다댄다. 머리를 내 갈비뼈 안쪽으로 끌어당긴다. 새빨간 태아. 탯줄이 끊긴 태아가 땅 위에서 굴러다니는 것이다. 바람은 날카로운 바늘처럼 피부를 찌르고 말초신경의 끝자락마다 흉터를 남기고 간다. 나는 배신당했다. 나는 배신당했다. 나는 그들에게 배신당했다. 나는 내 유일한 친구에게 배신당했다. 나는 그를 증오한다. 내가 투명한 물속에 빠져 허우적거릴때 그는 나를 버리고 갔다. 나의 둥글고 투명한 안구. 친구. 나는 손을 원했다. 나는 다섯개의 곧게 펴진 손가락과 그것을 싸고 있는 피부와, 그 속의 근육과 뼈와 골수를 원했다. 달그락거리며 악수를 나누는 뼈로 된 손들. 나는 손을 원했다. 직관적인 표현. 직관적인 비유. 나의 심장. 근육과 피들, 선명한 피. 새빨갛고 어찔어찔하다. 도움을 청한다. 나는 허공에서 떨어져내리고 있다. 언젠가 바닥에 닿는다. 내 손은 구름을 헤집고 내 기도에는 새파란 하늘이 가득하다. 꿀럭거리며 거품들이 피어오른다. 코로 물을 삼키듯이. 아프다. 모든 기관들이 산소중독에 걸린 것처럼 아프다. 말하는 것은 공포스럽다. 나를 도와주세요. 그리고 나는 끊임없이 당신들을 증오한다. 내 친구를 증오하는만큼. 당신들을 한명한명 잡아 찢어발기고 부수고 터트리고 싶다. 내가 울때 그들은 무얼하고 있었나? 나는 그들도 고통을 받았으면 좋겠다. 나는 전 세계 사람들이 모두 울고 고함지르다가 바스라졌으면 좋겠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내 손과 당신들의 손에 흉악한 흉기가 쥐여져있다. 죽여라, 두들겨 패고, 휘두르고 깨트려라. 모래들이 쏟아져내린다. 우수수. 무거운 질량이 가루가 되어 쏟아져내린다. 사랑하고 싶다. 체온과 심장박동을 사랑하고 싶다. 또 운다. 나는 소리를 지르지 못한다. 내 목에는 단단한 자물쇠가 잠겼다. 목에서부터 심장과 폐까지, 전부 단단히 잠겨있다. 나의 뇌수 한가운데에서 바늘뭉치가 헤엄치고 있다. 그것은 빙글빙글 돌며 두개골의 안쪽 벽을 스친다.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 당신의 아들은 당신이 낳았습니다. 당신의 아들이 뜨거운 양수와 끈적거리는 점액 속에서 태어났습니다. 세모꼴의 시각. 누가 죄인이라고? 태어났었습니다. 숨을 쉴 수 없다는 사실에 집중한다. 내 모든 감각과 손과 발과 치아 하나하나가 나의 질식에 포커스를 맞추고 그것을 물어뜯는다. 아무리 씹어도 삼킬수가 없다. 어떻게 해야 좋은가? 좌절당했다. 감정들. 감정들. 급진적인 발들. 진공 속에서 비명을 지른다. 성대가 터지고 피를 삼킬 정도로 비명을 지른다. 하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언젠가 산산조각이 날 것이다. 사방에 피와 살점과 골수를 튀기면서. 그것을 믿는다. 언젠가 정말로 모든 것이 끝날 것이다. 그러나 세계는 부조리하고 나를 향한 원한으로만 가득하기 때문에, 어쩌면 영원히 아무것도 끝나지 않는 구조로 되어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언젠가는 정말로 모든 것이 끝났으면 좋겠다고 나는 생각한다. 희망사항. 희망.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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