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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10.29 몇 가지 가능했던 일들 중 하나 1

몇 가지 가능했던 일들 중 하나


 독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내게 독자라 할 사람은 아무도 없음을 알고 있는지라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지난밤에는 겨울비가 살짝 내렸습니다. 빗방울이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할 무렵 마음이 들떠 밖에 나가, 혹시 내가 중랑천에 닿을 때쯤이면 폭우로 변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 내쳐 걸었습니다. 폭우에 사납게 변해 사람이고 자동차고 전부 집어삼킬 듯 발광하는 강이란 참으로 매력적인 것입니다. 보고 있으면 스스로의 마음과는 상관없이 뛰어들고 싶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중랑천에 도착했을 무렵 겨울비는 이미 그쳐있었고, 그 시답잖은 내천은 소리도 내지 않고 조용히 흐르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실개천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광경이었습니다. 자전거를 타거나 뜀박질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잡아먹기는커녕 그런 일은 자신의 소관이 아니라는 듯 치졸하게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때 생각한 것입니다만, 실개천이 광천狂川이 된다한들 도무지 혼자서는 못 뛰어내리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생각해볼 것도 없이 별 것 없는 인생이었습니다. 수치와 민폐로만 가득한 삶이었습니다. 정말로 우연히 한반도에 내동댕이쳐진 내 목숨은 누구도 그다지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나름대로 사랑도 받아봤고 사랑도 해봤습니다만, 그런 것은 지나고 나면 별달리 중요할 것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요컨대 그냥 지나가버리는 바람 같은 것이었다는 말입니다. 바람이야 맞부딪힐 때는 시원하기도 하고 광풍 같아 두렵기도 한 것입니다만, 실제로 바람에 맞아 온몸이 산산조각이 났다든가 하늘로 날아가 버리는 사람은 없지 않습니까? 지나가는 것은 결국 지나가버리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삶의 의미니 가치니 아름다움이니 하는 것을 찾겠다고 광란하여 흔히 문학이라고 하는 활자의 지옥에서 활개를 치고 다녔습니다만,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과로 지옥에는 고통과 절규만 있을 뿐 구원 같은 일은 없었던 것입니다. 돌이켜보니 스스로 지옥에 빠져 광란하는 동안 현세의 저는 주변인들에게 민폐와 상처만 주고 있었던 모양으로, 이미 이마에는 생활무능력자라는 빛나는 이름이 박혀있고 사람들은 벌레 쫓듯이 저를 쫓아내고 있었습니다. 유감이라면 유감일 일이지만, 저는 그저 아 그렇구나, 하고 납득해 버렸던 것입니다.
 산꼭대기의 절벽이나 능선 간의 흔들다리나 비에 불어 요동치는 강을 찾아다니게 된 것은 당연한 일로, 수치스러운 삶을 살았다면 스스로에게도 수치스러운 바, 사과를 해야 하는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그리하여 비가 내리거나 뉴스의 기상정보에서 폭풍이라도 온다고 하면 마음이 들뜨고 마는 것입니다. 굳이 죽을 자리를 찾고 있다는 뻔한 이야기는 하지 않으렵니다. 정확히는, 죽을 자리를 찾는다기보다는 죽음이 들쥐를 채가는 매처럼 저를 채 가주지 않을까 꿈을 꾸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미 말씀드린 바와 같이 어제도 겨울비에 이끌려 중랑천에 갔습니다만, 반복하건데 도무지 혼자는 죽을 수가 없더라는 것입니다. 욕해주십시오. 매도하고 발로 걷어차 주십시오. 아직까지 고독이라는 이기심을 품고 있다는 점을, 부디 영원만세 십자가 위에 매달고 비웃어주십시오. 사랑도 받아봤고 사랑도 해봤다고는 말씀드렸습니다만, 제 소견으로 그것들은 아무래도 사랑이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그러니까 사랑이 뭔지는 사실 모릅니다. 그러나 앙드레 지드가 좁은 문에서 피워놓았던 그런 사랑이 세상 어딘가에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만은 있습니다. 그게 무엇인지 찾기만 하면 제 저주받은 영혼도 충만감을 갖고 고독에서 벗어나지 않을까요? 그러나 또 제가 알고 있는 진실은, 제행무상 성자필쇠라고, 현세에 영원한 것 따위는 어디에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해야 할 일은 자명합니다. 그 사랑이라는 것을 찾기만 하면, 다정하게 손을 잡고 곧장 울부짖는 강물로 가야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부디 호운을 빌어주시되, 제 이기심과 뒤틀린 정신을 욕하는 것도 잊지 말아주십시오. 단 한 번도 독자를 가져본 일이 없는 이 작가 나부랭이는 마침내 방랑하는 인생의 답을 찾은 기분입니다.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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