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 人, 人

글/시 2014. 12. 27. 19:45 |

人, 人, 人



매일을 패배를 마시며

살아가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모르는 이들은

땅 끝 저편에나 잠겨있겠지. 고로 나는 말한다.


우리처럼

몸에 털이 많지 않은 종족은

생존에 적합하지 않아

죽어 마땅하다.

빙하기는 언제나 올 것이며 오고 있고

그저 숨죽이고 있을 뿐이다.


음악이 절망의 고성이기를 그만두고

달콤한 쾌락의 유사품이 되도록 만든 이들이

인간을 인간처럼 만들어버렸다……우리는 모두 불임을 유전 받았다.

우리의 정자는 포르노 회사의 작은 기계장치가 되고

결코 자궁이 아닌 곳을 향해

헤엄친다. 익사자처럼.


시대에 대한 분노는 그만! 제발

오로지 야만이어야만 하는데.

나는 몇 번이나 내 머리를

절개하고 나의 뇌를 끄집어낸 뒤 살아가는 것에 대해

상상하다가 좌절해버려 손가락을 잃었다.

오로지 야만이어야만 하는데.


나는 타인에게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지시할 배짱이 없다.

다만 지금도 손톱과 송곳니를 기르고 있다. 그것은 손가락보다

훨씬 명확하며 언어의 바깥에 있으니까.


가난하고 비참하게 산다는 것은

결국 내 영혼을 비대하게 만드는 결과밖에 낳지 못했다.

나는 더 이상 가난하지 않다. 나는 비루한 건물 앞에 서있는

흉측하도록 커다랗고 위압적인 석상이다.


황혼에 나는 소시민의 껍질을 뜯어내며

계속 계단을 오른다 한 걸음씩. 내가 어떤

시간에 눈을 뜨고 비명을 뱉으려다가

입을 틀어막는지 나에게 세어보라고 하며.

차라리 현실은 꿈이다.


내 삶에 필요한 것은

로맨스가 아니라 짐승의 살결이며

나는 오늘도 라면냄비를 씻으며

눈물에 대해 생각해보고 있다.

Posted by Lim_
:
말도로르와 말도로르가 아닌 모든 이들에게


시린 날씨가 돌아왔습니다 나는 전처럼 내가 길거리로 나가 돌을 베고 잠들기를 원합니다.
다음 날 깨어났을 때 내 육체가 얼어버렸다는 것을 알고 하늘로 떠나는 상상을 말입니다.
그러나 나는 떠나는 사람이 아닙니다.
나는 언제나 머물러 떠나보내는 사람이었습니다.

내 영혼의 한 조각을 채워준 사람들을 떠나보낼 때마다
나는 그들이 떠나는 것이 슬픈 것이 아니라
그들이 나를 사랑했다는 것에 슬퍼합니다.
감정이란 손끝과 눈동자의 마주침 사이에서
쏟아져 내리며
언뜻 보기엔 불공평한 비율로 교환되는 것이기에.

나를 사랑하지 마십시오―나는 사랑하지 않습니다.
내가 언제나 골몰했던 것은
상처입지 않기 위해 포식자가 되는
목덜미를 물어뜯기지 않기 위해 송곳니를 기르는
고독 속에서 신성을 얻은 나의 친구가 말하듯이
길게 기른 손톱을 순진무구한 신생아의 심장에 찔러 넣는
괴물이 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마차는 도망>칩니다! 마차는 도망칩니다!
하늘에서 번개같이 떨어져 내린 것이든
사람들의 악수 사이에서 뻗어 나온 끔찍한 손아귀든
왕들의 외침 속에서 생명을 얻게 된 글귀들이든
그것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하여!

마차에서 굴러 떨어진 아이를 짓밟고
그의 머리를 망치로 터트리십시오. 그것이 내가
내가 당신들에 대해 알고 있는 그리고 당신들에게 기대하는
모두에게 승인받은 잔혹성임을 증명하는 일이기에!
내 갑옷을 벗어던지지 않을 최후의 보루기에!
내 튀어나온 뼈들의―그 날카로운 골격을
숨죽이게 하지 않을, 내가 믿는 진실이기에.

언젠가 내가 얼굴을 잃는 일을 기대하십시오.
만일 내가 나의 모든 마스크들을 불태운다면
그것은 분명 당신들을 위해서일 테니.
승리 없는 전쟁에게
건배.
Posted by Lim_
:

시대정신

글/시 2014. 11. 25. 21:18 |
시대정신


현실은 병신이다.
그것도 그냥 병신이 아니라
다리 세 개는 잘려나가고
나머지 하나는 삐걱거리는 테이블만큼
병신이다 우리는
그 테이블에서 식사를 해야 한다.

어른이 되면 자유로워질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내 유년의 최후였다.
자유라니, 도대체 얼마나 왜곡된 개념인지.
지금 내가 자유라고 생각하는 것은
자신도 잃어버릴 만큼 술에 취해서
고꾸라지는 순간의 망각뿐이다.
아무런 공포도 없는, 죽음과 가장 가까운
여름날 거리 곳곳에 너부러져있는
초록색 술병과 움직이지 않는 몸뚱이들.

사랑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그것은 떠나야만 했던
떠나지 않으면 안 될
생명의 한계와 같은 것이었다. 참으로
그래서 내 영혼은 내 인생 전부를 합해
단 세 달만을 살아있었고
아무도 개골창을 흐르는 하숫물을
생수(生水)라고 부르지 않는다.
나는 주로 시체들과 섹스를 한다.
사랑이 떠난
회색 욕망들.

나 자신을 죽이는 것은 유쾌하지 않다
그래서 이따금 칼을 들어보았다.
세상에는 도덕과 윤리를 초월하는 살인이 있다고
어느 법대 학생처럼 생각해보려고 했다.
모든 핏자국이 잉크와 활자로 뒤덮이는 시대에
초월적 정의 같은 것이 굳이 무슨 위용이 있어야 할까.
우리는 침수되고 있고 썩어 가라앉는다.
초원의 사자 같은 이빨이 갖고 싶었다.

우리는 잘못된 방향에 있다.
이것은 변환기가 아닌 침체로 향하는
마지막 골목이다. 바람은 차가워지고 사람들은 옷깃을 여미고
나는 어제 꽃도 피지 않은 나무를 쓰다듬다가
가시에 찔려 몇 방울의 피를 흘렸다.
이제는 슬픔이나 절망이라는 말조차
싸구려가 되어버려 함부로 발음할 수 없다.

마지막 계절
광기조차 파괴되는.
Posted by Lim_
:

밤 속의 폭도

글/시 2014. 11. 23. 15:35 |
밤 속의 폭도


가끔씩 가슴이 난장을 깝니다.

그럴 때면 가슴이 울렁거리고
어째서인지 슬프고
어째서인지
이젠 고장이 나 바싹 마른 눈물샘이
울고 싶다고 발악한다.
그러나 아무 일도 없는데
그러나 누구도 없는데.

그러나 아무 일도 없어서
그러나 누구도 없어서 슬픈 것이다.
오늘도 내가 매일 담배 피우는
그 자리에서 보이는 창문은
열한 시면 불이 꺼지고
비둘기들은 건물 옥상 옆
녹슨 굴뚝 위에서 잠들고.

매일 똑같은
똑같이 슬픈 밤이 오면
나는 그림자 속에 앉아서 연기를 뱉고
매일 이맘때면 나는 이미
눈동자가 녹아내릴 만큼 술에 취해있고
내일이 오리라.
내일도 태양이 뜨리라.

담배 때문인지 점점 숨쉬기가 힘든
가깝고 가까운 미래로 향할수록
나는 잠들 때마다 내일
영원히 눈 뜨지 않을 내일을 상상하고
어둠은 건조한 공기 속에
후두둑 후두둑 떨어져 내린다.

내일도 여전히, 내 흔들리는 척추를
받쳐줄 꿈속의 사랑은 없을 것이며
월요일의 해가 뜨면
나는 나의 술과 담배를 사기 위해
일을 하러 나갈 것입니다.
Posted by Lim_
:

결코 완성되지 않는

글/시 2014. 11. 18. 20:59 |
결코 완성되지 않는


당신에게 한 마디만 남기고 싶었다.
언어로 추락하지 않는 한 마디만 남기고 싶었다.
우리는 같은 시대를 살았지만
서로 다른 시대로
죽어간다.

내 손 끝에 한 방울의 미지근한 물방울이
닿았을 때 나는 그것이 벌써 추억이 되었음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이미 정적뿐인 추억. 나는 지금도 그 때를 기억하고
기억할 때마다 나의 우주에서는 소리가 사라지고
희고 담배연기 색깔을 띠는 뼈로 된 창살 속에서
괴물 하나가 운다.
너무 울어서 이제는 울음소리 대신
폐에서 올라오는 붉은 피가 번져나가는 잉크처럼
비에 맞아 무너지는 찰흙인형처럼
모노톤의 영혼. 괴물은 운다.

연극무대 위에서 과거-현재-미래는 계속 뒤집히고
아니요 나는 사랑하지 않아요.
내가 아는 것은 그것뿐이다.
아니요 나는 살아가지 않아요.
몇 번이나 밤이 오고 유리창에는 달이 비추고
어젯밤 자살을 실패한 사람에게
오늘 또 해가 떠버리고 만다.
고독의 끝자락에 온기가 닿았던 시절 때문에.

누군가의 눈동자에서 빛을 발견했다면
그녀의 눈꺼풀을 닫아 꺼뜨려라.

괴물을 위하여.
Posted by Lim_
:

출국금지령

글/시 2014. 11. 11. 18:16 |
출국금지령


나는 노래하지 않는다 낮에는
수십 개의 알약이 목구멍을 넘어가고
새벽 중 울음소리에 깬 짐승처럼
초점 없는 눈동자가 광야를 돌아도
나는 노래하지 않으련다 꼬깃꼬깃 접한
오천 원짜리 지폐를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저 가난이 주름이 되고 눈동자가 허옇게
뜬 늙은이들이 혀를 늘어뜨리고 걷는
시간에는.

어머니는 주로 나를 미워하고 아들을 사랑하니까
내 방에 놓고 온 나의 심장도
그녀가 쓸어 담아 집 앞에 내놓겠지.
아아! 집으로 가는 길은 어디입니까 나는
낯모르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흰색 벽지에 양귀비를 그려놓은 붉은
붉은 방을 찾아 헤매고
여기는 생활이 있는 사람들의 땅이야 고로
여기서 마시는 생수에서는 이국의
냄새가 난다 바다가 없고 태양이 없고
달궈진 모래는커녕 유황불 같은 리큐어도

파란 나팔꽃의 작은 씨앗이 어떻게 광증이 된다지
나는 손을 내밀며 묻곤 하는데
나는 사람을 만들지 못한다 나에게는
신을 만들 기술 밖에는 없다.
내 호주머니에 담긴 열쇠는 잠그기만 하는 열쇠
외출할 때 문을 잠궈버리면
들어갈 수가 없다.

너무 많은 고통을 배설했다
아귀가 맞지 않는, 모든 땅과 바다 속에서 끌어 모은
한 사람의 인간이 이런 것들을
단숨에 가지고 있어도 되는 겁니까
그러나 걱정할 필요는 없어 너는 와이셔츠도
입지 않고 심지어 아무도 네 갈비뼈를
마주 잡지 않으니. 모래와 태양의
모래와 태양의 땅으로 가야겠어요 한 척의
낡고 거대한 배를 타고 멀미와 병에 구토하면서.

다 타고 남은 것들만 있는 땅에는
고통도 녹아 기화하고 슬픔은 훤히 드러나
그림자를 잃겠지요 노인들은 나무 장승처럼
잘 타는 땔감이 될 것입니다……
불의 냄새가 나는 벽돌들로 집을 짓겠습니다
그러면 나는.

젠장, 젠장! 도시에서 사는 바람에
도시에서 너무 많은 담배를 피워서
내 폐는 계속 연기를 뱉습니다
저녁에는 영혼의 외침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몇 잔의 술을 마실 것이고요.
그리고 밤에는 기침을 앓으면서
빈 방에서 잠들어야만.
Posted by Lim_
:
사람들은 정육점에 갈 때 울지 않는다


슬픈 냄새들은 언제나 슬프다.
왜 슬픈지도
모르겠다. 그 냄새가 어디에서 왔고
나는 무엇을 추억하고
누가 슬퍼하는 것인지
나는 모르겠다 젠장할 담배연기와
추운 가을 밤.

눈물을 잃어버렸을 때 슬픔은 더 슬프다
배설되지 못한 감정은
막힌 눈물샘으로부터 30cm 정도 밑에 있는
인간성 어딘가에 쌓이다가 결석이 되어
결국에는 아무도 진단
하지 못하는 질환이 된다……감상주의자들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들은 심장이 없으니까.

그 슬픔이라는 것은 어디서 풍기는 냄새인지
가끔은 내 손목뼈 부근에서 피처럼 솟고
가끔은 식당에 들어갈 때 날 멈추게 만들고
가끔은 곰팡이 속에 핀 곰팡이처럼 이불 속에
내린다. 그러나 지하(地下)에서 살 때에는
항상 영혼이 깎여나가 있었기 때문에 눈치 채지 못했다.

그 냄새는 심지어 술에 취해 있을 때조차도
어딘가에서 날 쫓아와 내 술을 죄 도로 가져가버린다. 지랄
같은 것들……그럴 때면 열 살 무렵 내 이마에
성유를 찍었던 신부님에게 찾아가 따지고 싶다.
도망자들이 왜 성당으로 숨어드는지 압니까? 그것은
하느님의 옷자락에는 추억할만한 것이
아무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시발.

생각해보니 난 세례명도 없다.

그런데 너무 오랫동안 괴로워하면
슬픔도 발작을 합니다. 라고 내가 검지와
중지를 들어 올리면서, 거울 앞에 서서 설명했다.
눈물을 기억할 때에는 울고 싶어지고 그리고
운 좋은 사람들은 울게 되지만
슬픔에서 고통으로 직통 열차가 달리게 되면
그리고 너무 오래 달려서
철로마저 습관이 되어 버릇이 되어 반질반질하게
알루미늄 같은 광택을 내면.

우리는 광란한다.
광란한다 우리는. 슬픔이 원래 어떤 색이었는지
점점 기억나지 않고 손목에서는 신선한
샘물처럼 신선한 피가 퐁퐁 솟아나고 상처는 닫히고
손에는 망치와 톱. 당신이 코뮤니스트이든 아니든
우리에게는 상관할 바가 못 된다.
괴로움이 광기의 춤이 되고 외로움이
콘크리트 사이를 메아리치는 웃음소리가 되고

<숲의 화재는 광기다>라고 말한
내 첫 번째 시인, 그 사람이
불붙은 사방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는 암소고기>를
내밀 것이다.

이제는 슬픔을 맡으면
슬픔이 목에 턱 막혀
미처 슬퍼하기도 전에 피 냄새가 난다.
Posted by Lim_
:

도시살이

글/시 2014. 10. 24. 01:41 |
도시살이


나뭇잎이 떨어지고 거리에서는 은행 냄새가 납니다 나는 가끔 친구를 얻고 자주 친구를 잃는 와중에 술을 마시고 담배를 마시고 밤에는 어둠이 긴 것을 슬퍼하고 아침에는 태양으로부터 도망치고 빛이 내리는 모든 광경들을 향해 족히 몇 주는 깎지 않은 나의 길고 슬피 앓는 손톱을 박아 넣습니다 커피로는 성이 차지 않아 카페인과 발광하는 잠들지 못하는 눈 감지 못하는 광증을 심장 깊이 주사합니다 나는 점점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잃어버리는 만큼 새로운 것들을 얻고 있습니다 과거로부터 기어 올라오는 상처의 웃음소리를 오물에서 발견하는 아름다움을 높이 치솟은 건물에서 들려오는 굉음과 지진의 전조들을 밤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종말의 암시들을 나는 제정신을 잃고 있습니다 반쯤은 나의 고의입니다 새벽 중의 강가에서 별과 달을 향해 세계의 법칙을 부르짖었던 것이 언제였나요 모든 것에 천천히 녹이 슬고 있습니다 나의 영혼은 육체를 지겨워하고 있습니다.

내 통장에 참으로 오랜만에 많은 돈들이 웅크리고 있습니다.
나는 가난에만 익숙해진 탓에
차라리 그것이 습관이 된 탓에
다시 가난해지기 위해 지폐들을 개골창에 빠뜨립니다.
가끔 허리가 굽은 사람들이
스스로 작아지며 떠내려 옵니다.

내게 많은 종이돈들이 생겼으니 이제
나는 나의 친구들을 만날 때 아침에도 취한 채로
거리를 걷습니다 그들을 만나러 가는
아침 햇살 번쩍이는 지긋지긋한 도시를
취객의 발걸음으로 관통합니다.
올곧게 걷는 사람들이 모두 나의 적이라고
나는 분노도 없이 말합니다.

인간이 하늘을 날기 시작하면서부터
떠나는 것이 퍽 쉬워졌습니다.
그저 떠나고자 하는, 돌아가고자 하는
그런 사람들을 우리는 묶어두지 못합니다.
나는 최소한의 예의와 존중을 위하여
만취해 고개도 가누지 못하는 몸으로
떠날 이들에게 웃음과 인사를 건넵니다.

나에게 호의를 가진 사람과 만난다는 것은
아직도 내게 가장 큰 미스터리입니다.
내가 누군가를 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은
참으로 생소하고, 나는 아직도
그들이 한 병의 소주도 남겨두지 않고
떠날 것을 대비하여 눈동자로 두 병의 소주를 마시고
놀이공원의 거울에 비친 감정들만을 씹어
후두둑 후두둑 떨어트리며 웃는데.

내가 독백을 하지 않게 되는 때가
마지막일 것이라고 말하겠습니다.
너무 많은 술을 위장과 뇌와 혈관에
부어넣어 기억을 거부하고
절대적인 피로에 짓눌려 바닥에 쓰러질 때
나는 울지도 않고 웃지도 않습니다.
광기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은 고의로 망가지는 것
뿐입니다.

새롭고 동시에 오래된 생활을 시작하면서
나는 내가 고통을 두려워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내가 수 년 동안이나
방 밖으로 나가지 않은 이유였습니다.
나는 내가 충분히 마모되었다고 생각했으나
나는 광석 나부랭이가 아닌 펄떡이는
그러나 한없이 취약하게 펄떡이는
진액과 혈액을 뿜어대는 살덩어리였습니다.

아편이 아니면 권총을, 나는
아직도 꽃이 피고 지는
찰나의 계절에서 살고 있고
한 페이지 한 페이지마다 과잉되어있는
죽은 작가들의 발광과 포효를 견디지 못해
더는 책을 읽을 수가 없습니다.
Posted by Lim_
:

일단은

글/시 2014. 10. 16. 01:38 |
일단은


일단은 살아보고 있다.
가로등이 어둡게 깜빡이는
밤에만 살아있기는 하지만
일단은
살아보고 있다.

자주 꽃과 하루살이들에게 질투한다.
단 며칠만 생명과 생존을 노래하다가
당연하다는 듯이 깊은 충족감과 함께
콘크리트 바닥에 떨어져 썩어가는
그들에게.

오늘은 깨어난 지 다섯 시간이 되었다.
그늘진 거리를 곁눈질하면서 걷다가
몇 개비의 담배를 다 태워 떨어트리고
벌써 피곤해하는 눈동자를 끌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먹을 것이 라면밖에 남지 않았기에
나는 아무것도 먹지 않고 바닥에 엎드려 울었다.
창문 밖에는 벌써 찬바람이 웅웅거리며 울고
내 컴퓨터 스피커에서는
항상 익숙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생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친구는 여자를 만나보라고 거친 조언을 해주었다.
나는 일주일 만에 면도를 하고 거울을 보았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이 아니었다.
정말이지 그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과거에 낯선 침대에서 함께 누웠던
눈빛이 파리하고 몸 곳곳에 문신이 있는
초췌한 위악으로 분장한 여자들을 생각했다.

밤거리에서 손을 잡고 걸어가는 연인들을 보았다.
나는 이름 모를 구역질과 분노를 삼키며
내가 왜 그것을 삼켜야하는 지도 모르며
그들의 웃는 얼굴을 힐끗 보았다.
날고기가 먹고 싶었다.
야만의 세계에서는 가장 먼저 살해당할 내가
지금 이 행성의 어떤 인간보다도
야만의 감각을 갈망하고 있다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주로 환상을 배고 잔다. 그것이 환상인 줄
빤히 알면서도, 나는 아무도 찾지 않는 환상을
내 폐허가 된 가슴에 주사한다.
언젠가 그것이 누워있을 때뿐만이 아니라
도로 위에 불안하게 서있을 때까지 날 끌어안으면
그때는 패배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미치광이가 되는 일도 그리 쉽지는 않다.
나는 꿈꾼다.

꽃이 떨어지고 있다.
낙엽들이 쌓일 것이다.
창문들이 닫히고
이윽고 눈이 내리리라.
일단은 살아보고 있다.
Posted by Lim_
:
우리는 신을 잃어도 꿈을 꾼다


가을이 가까워지면 여름 내내 뛰놀던 남국의 혼령들이 자신의 동굴을 찾아 기어들어간다.
나는 낡아가고 있다.

깜빡거리는 도시의 주황색 불빛이
내 동공과 망령을 끌고 다니면
나는 잃어버린 사람들에 대한 생각을 한다.
내가 찾기도 전에 잃어버린
사람들 그들은 다른 행성에서
사막과 태양이 충만한 저쪽 지평선에서
모두에게서 잊혀지는 시간만을
축복으로 알고 휘적휘적 걷고 있다.

항상 밤이다. 도대체 무엇이
나를 밤에만 살아있게 만드는지, 이제
내 위장은 카페인이나 알코올이 아닌 것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내 영혼은
악마처럼 순진하고 잔혹한 피부를
육체 속에 감추어 둔다. 내가 잃어버린 사람들도
분명 무어라고 잔뜩 휘갈겨 쓴 종이와
사랑하는 사람의 온기를 느낄 때의 눈물 사이에서
방황하다가 실종되어 버렸다
고 나는 생각한다.

책을 읽지 말아야만 한다. 반드시
특히 근대 유럽과 소련에서 살던
겨울만을 숨 쉬던 작가들이 써놓은 유품은
너의 생존에 불리하다. 당신은 스스로
낡아 폐물이 되어가면서 점점 높아지는 것을
마침내 한때 짜라투스트라가 살았던 산에서
그 동굴에서 두 눈을 도려내고
혀를 자르고 세상이 끝나는 안식을 얻을 때까지
소리도 나오지 않는 비명으로 느낄 때,
이 지구에서 실종 되어버릴 것이다.

사막에서 태양빛을 마시며 죽어가는 것에 경외를
낡은 장기에 끝없이 너에게 가장 슬픈 독액을 부어넣는 것에
잃어버린 사람들이 잊혀지는 것을 갈망하며
어느 산맥에서도 찾을 수 없는 망자로 화해가는 것에
경외를.
Posted by Lim_
:

밤의 광란과 두 사람

글/시 2014. 10. 8. 04:23 |
밤의 광란과 두 사람


괴로운 과거를 돌이키는 것은
그만 둬, 네 현재를 더 괴롭게 만들 뿐이야, 라고
늙은 어른이 말했다. 그는 아내와 함께
몇 명의 아이들을 갖고 있고, 직장에서 빠짐없이
일하는 것은 아버지가 되어버린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고 당연한 것이라고 중얼거렸다.
늙은 소년은 그의 말을 듣고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과거고
언제부터가 현재이며 미래는 어느 방향에서 오는지
잊어버린 지가 너무 오래됐어요. 생각해보니
전에 만났던 심리치료사가 우리는 당신을
결코 고칠 수 없으니 다른 병원을 찾아보라고
친절한 혀로 말했던 기억이 나는군요. 하지만 나는
머리가 좋습니다. 주로 늙은 어른들과 만나면서
그들의 표정과 낡은 치아 사이로 흘러내리는 타액을
한참이나 연구했었죠.

현대 약학의 노예가 되지 않으려면 네 정신을 개조해야해
너는 슬픔을 떨칠 때 어떤 방법을 쓰지? 늙은 어른이 물었다.
주로 신경안정제와 항우울제, 그리고 알코올입니다.
그때 늙은 소년은 사무실 벽을 재빠르게 기어가는
한 마리의 바퀴벌레를 주시하고 있었다. 십 년 전에는
달랐어요. 그때는 약이나 술을 먹지 않았죠. 그때 저는
우는 방법도 모르는 멍청한 아이였기 때문에
슬픔을 해소하는 방법이 실재하리라는 상상조차도 하지 못했답니다.
사실 슬픔이나 고통이 무엇인지도 몰랐어요. 왜냐하면
그들은 제가 기억하는 가장 깊은 기억 속에서조차도
내 살점과 내장의 일부인 듯 친근하고 항상 당연하게도 뼈를 아프게
만들었거든요. 정말이지 뼈가 썩어 들어가는 것처럼 아팠어요.

네가 기억하는 가장 행복했던 시절을 떠올려봐. 늙은 어른은
마치 늙은 어른처럼 말했다.
늙은 소년은 입을 벌린 채 한동안 멍하니 허공을 쳐다
보았다. 그의 손은 향정신성 약물의 금단증상 때문에
폭발하기 직전의 자동차 엔진처럼 자꾸만 벌컥벌컥 쏟아졌다.
사랑이라고 부를 수 없는 사랑을 했었어요. 늙은 소년이
머뭇거리면서 내뱉었다. 왜냐하면 망가지고 부서진 인간은
망가지고 부서진 인간밖에 사랑할 수 없거든요. 아십니까?
그러므로 제가 겪었던 절망과 희열들은 사랑
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그것은 슬픈 경외였죠. 그는 유난히 형용사를 좋아한다.

시인이라고 해서 꼭 시인처럼 말할 필요는 없어.
물론입니다. 늙은 소년이 고개를 끄덕였다. 밖에서는
창문 밖에서는, 어둠이 엎어지고 구르며
상처 입은 무릎을 이끌고 절뚝절뚝 걷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런 대화를 하고 있죠? 늙은
소년이 갸우뚱거리며 물었다.
글쎄, 사실 난 네 행복에 별 관심이 없어. 넌
나보다 먼저 사라질 테고, 난 너보다 먼저 죽을 거야.
아마도.
사실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굳이 악수를 해야 할 이유
따위는 어디에도 없어요. 다만 나는 당신이
인간이라는 점이 다소 기쁘군요. 나는 혼자 있을
때면 주로 내가 만들어낸 신들을 찬양하는 기도를
중얼거립니다. 그들은 대부분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고
결정적으로 광기로부터 자유롭지 못합니다.

신이 광기에게 휘둘리는 장면을 상상해보세요.
그것이 가능하다면 우리들의 인생은
보다 쉬울 것이고 보다 안심할 수 있는,
지진으로 땅이 갈라지고 하늘에서 불붙은 메뚜기 떼
가 떨어져도 공포를 느끼지 않는,
공포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것이 될 것입니다. 늙은 소년이
꿈을 꾸듯이 말했다. 늙은 어른은 생각했다.
이 소년이 병들어있다고 생각하는 어른들은
몇 명이나 될까?

늙은 소년. 지상낙원이라는 단어는 퍽 멋져요.
늙은 어른. 그래, 많은 학생들이 그 단어 때문에 미쳤었지.
열차가 달리기 시작하는군요.
맞아, 새벽이 끝나가니까.

늙은 소년은 계속 새파랗게 쏟아지는 자신의 한쪽 손을
다른 한쪽 손으로 부여잡으면서 작게 외쳤다.
그럼 이제 잠을 잘 수 있겠군요.

날씨는 점점 추워진다.
Posted by Lim_
:

월석(月石)

글/시 2014. 10. 4. 05:12 |
월석(月石)


바닥을 바라보면 어둠뿐이다.
이 땅에는 달이 내리지 않는다.
사내는 불행으로 기운 구두를 신고 걸었다. 달이 지지 않고
뜨는 땅을 찾아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붉은 건물들의 벽으로 빗방울이 떨어져 터져댔고
조각조각 난 시체들은 바닥에서 검게 번들거렸다.
그는 활과 화살을 가진 몇 명의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은 자신들을 기다리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무얼 기다리고 있습니까? 사내는 모자를 벗으며
정중하게 물었다. 우리는 태양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화살촉을 흔들어보였다.

사내는 그들의 얼굴이 희고 핏기가 없다는 사실에
몇 가지 의문과 수긍을 떠올리며 길을 걸었다.
도둑고양이들이 비를 피해 자동차 밑이나
담을 등진 곳에서 웅크리고 있었다. 그들 중 하나는
얼마 전에 음식물 쓰레기봉투에 담겨진 채 버려진
동족의 시체를 보았다. 그것은 이 행성 곳곳에서
항상 벌어지는 일의 일부분에 불과했으므로
야행성의 노란 눈들은 침묵하며 껌뻑거릴 뿐이었다.
분명 달이 뜨는 곳에서는 비극도 달빛을 받겠지.
사내가 젖은 손으로 젖은 돌들을 주웠다.

더 이상 지구의 냄새가 나지 않았다.
사내는 파란 핏줄이 하얗게 보이는 어둠 속에 서서
호주머니에 넣어뒀던 돌들의 냄새를 맡았다.
그것에서는 스무 살이 되자마자 잠들어버린 채
아직도 깨지 않는 이들이 짓밟아왔던 것들의 냄새가
값비싼 종이로 만들어진 책처럼 읽혀졌다. 희극. 희망.
그는 그것을 산과 계곡을 향해 던져댔다.
자연이 무슨 일을 하는지 나는 모르겠다. 원리라는 것은
사람들이 눈동자에 개편된 영혼을 빛낼 때부터
희미하고 물컹거리며 자주 흩어지는 것으로 변했다.
사내는 아직도 비가 내리는 땅 어딘가에서
모래를 그러쥐며, 허구의 존재들이 입김을 불어대는
대기의 아래 바닥에서 실체를 잃은 숫자들을 센다.

지평선 너머에서는 달이 뜨겠지.
Posted by Lim_
:


불치병에 걸린 자를 동정하는 것은 그만


<착한 사람>처럼 행동하는 병에 걸렸다.
난 더 이상 지나가는 노파의
지팡이를 빼앗아 그녀를 두들겨 패지 못한다.
그것이 순수라고 말했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제
순수라는 단어를 나 자신에게 사용할 만큼
순진하지 못하다. 어린 시절에 나는
학교 창고에서 발견한
새끼 생쥐들이 바글거리는 둥지에
불을 질렀었다. 아이들은 비명을 질렀다.
나는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였고
그것들은 털도 나지 않은 한갓 생쥐였다.
어머니가 나를 도취시켰다. 야생의.

착한 사람처럼 행동하는 병에 걸렸다.
내 청바지는 무릎 부분이
갈기갈기 찢겨있다. 몇 년 전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술을 처먹고
갑자기 친구의 얼굴이 보고 싶어서
그가 일하는 구멍가게로 냅다 달렸다.
나는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 얼굴부터 떨어졌다.
얼굴 오른쪽이 전부 찢겨나갔고
바지도 찢어져있었다. 나는 얼굴에서 피를
뚝뚝 흘리며 웃으면서 구멍가게로 들어갔다.
친구가 날 쳐다보았다. 마침 물건을 사던 손님이
내게 반창고를 주었다. 나는 눈에서
소주를 흘렸다.
반창고는 상처의 십분의 일도 가리지 못했다.

착한 사람처럼 행동하는 병에 걸렸다.
나는 이를 뽑고 머리카락을 잘랐다.
위장에서부터 올라오는 악취는
무슨 짓을 해도 사라지지 않지만
나는 잇몸에 피가 날 정도로 이를 닦는다.
사람들 앞에서는 입을 닫는다.
온갖 장기와 뇌와 영혼에서 스미어 나오는 악취를
그들에게 들킬까봐. 나는 이를 닦는다.
사람들에게 인사를 한다. 처음 보는 노파에게도
시답지 않은 잡담을 건넨다.
그러나 멀찍이서 할뿐이다. 나는
착한 사람처럼 행동하는 병에 걸렸으니까.
가까운 곳에서는
나의 악취를 들키고 만다.

착한 사람처럼 행동하는 병에 걸렸다.
나는 자주 웃는다. 과거에 어머니는
날더러 웃는 연습을 하라면서
입에 볼펜을 물려주었다.
나는 며칠 만에 그 짓을 포기했지만
덕분에 지금 나는 잘 웃는다.
내 흉부에는 수십 개의 흉터가 있지만
옷을 입으면 보이지 않는다. 나는 잘 웃는다.
나는 옷을 세탁하고 머리를 감는다.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담배를 피운다.
술을 마셔도 길가에 주차된 자동차들의
창문을 깨지 않는다.

착한 사람처럼 행동하는 병에 걸리는 것은
생각보다 쉽고
생각보다 아프고
생각보다 쓸쓸하다.
버스가 도로를 달리고 전동차가
사람들을 싣고 철로를 달려도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부서져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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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망자

글/시 2014. 9. 26. 07:26 |

도망자


아침마다 도망치는 사람들을 마주친다.
그들이 무슨 생활을 하는지
내 과거에 비추어본다.
사실 그것은 생활이라고
할 만한 것이 아니다.
그들에게 生은 이미 없다.
새벽마다 병의 이름을 가진 상념과
어둠과 밤과 달의 속삭임과
별들의 혼잣말과 영원히 잠들지 않는
도시의 빛살과 가로막힌 벽들과
근대의 유물이 된 사상과 지껄이는 밤요정들과
너무 무거워진 존재 때문에
빈 집에서 도망쳐 나온 사람들이
그들이다. 그들은 어둠 속에서
구멍 뚫린 흉부에 채워 넣을 무언가라도 찾으려고
밤거리를 배회하다가―그들의 실패는 자명한 것이다―
마침내 아무것도 찾지 못하면 떠오르는
태양의 귀퉁이를 두려워하며
이제는 햇살을 피해 다시 빈 집으로
도망치는 것이다.
이따금 그들은 서로 마주쳐
동류의 냄새를 맡고서 주춤거리지만
서로 말을 섞거나 새침하게 악수를 하는 일은 없다.
서로가 서로에게 얻을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에게 돌아오는 동정과 자괴감과
도무지 불이 붙지 않는 분노와 방향을 잃은 증오와
종말에 대한 허망한 기원뿐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미 알고 있다.
나는 빈 집으로 도망치는 그들을
천박한 언어로 바라본다.
내가 낮에 술을 마시는 이유도 태양이 두렵기 때문이다.
내가 그들에게 말을 걸지 않는 것은
나는 그나마 야간 生活者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사실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과 더불어
원하는 것이 없는 이를 구하는 방법이란 없으며
내가 찾은 구원의 찌꺼기라는 것도 결국
술과 담배와 약물과 詩임을
알고 있음이다.

Posted by Lim_
:
모든 밤에는 잠들지 말자


어둠 속에 앉아있으면
담배연기 뿜는 내 숨소리조차 방해다.
사방이 밤으로 가려진 좁은 내 돌의자 위에서
나는 공간이 무한히 늘어나는 것을
느낀다. 나는 담뱃불을 끄고
해왕성 너머 가본 적도 없는 심연에
내 가죽 하나를 걸치고
종말의 소리를 기다린다.

시간이 멈추는 곳은 도시의 밤이다.
나는 이곳에서 영원히
깨어있는 채로 잠들어있기를 원하지만
또 태양이 뜰 것이다.
아무도 바라지 않는
또 하나의 아침이 시작될 것이다.

빛이여, 빛이여
너는 누구에게도 안식이 아닐 것이다.
너는 숨죽이던 사물들 위에
빛의 가시를 박아 넣고
꿈꾸던 시인들을 깨워
백주의 폐인으로 만들어 놓는다.
풀벌레 우는 적막을
구두 소리로 된 디스토피아로
추락시켜버린다.

새까만 어둠으로 만든 내 요람을
뒤집어 흔들어 깨워
멀리 꿈속의 고향으로 미뤄놓고
근대의 야수들과
욕망과 천한 상념 속으로
날 떨어트리고 빛으로 비추는
너.

차라리 사막의 백야로 보내다오.
리큐어와 눈과 흔들리는 눈동자로
빛을 가리고 혼돈의 춤을 추는
태양의 시체가 사방에 내려앉는
그 사막으로.

얼어붙은 지중해 위를 나는 끝없이 걷고
별들이 가리키는 방위를 나는 찬탄한다.
모든 이들이 목적이라는 것을 잊고
새하얗게 말라버린 채 방황하고
나 홀로 얼음에 죄업을 묻는
그런 밤에.
Posted by Lim_
:

아침은 너무 밝고

글/시 2014. 9. 23. 12:52 |
아침은 너무 밝고


오늘은 또 세상이 왜 이리 또렷한가.
구름을 통과해 비추는 햇살은
왜 이리 맑고 투명하여 도시의 온갖
그늘진 거리와 몰락한 집들을
번쩍번쩍하게 비추는가 말이다.

술을 마시지 않으면 카페인을 과량 섭취하는
내 나쁜 버릇은 도대체 뭘 믿고
탄생한 것인가.
왜 일터에서 돌아와 쓰러져 누워야할 때
하필이면 동두천에서 선생질 하는 친구가 보고 싶고
마누라한테 용돈 타다 사는 백수 친구도 보고 싶고
대머리 벗겨진 기타 치는 친구도 보고 싶고
애인과 함께 툭탁거리며 살고 있을
피라미드 사업하는 친구가 보고 싶어서
결국엔 아무나 불러내서
오전 10시부터 맥주 한 잔 걸치고
아침부터 술 마시고 비틀대기에는 태양에게 다소 죄송하여
그리 저렴하지는 않은 카페에 가서 몇 시간이고 썰 풀며
커피에다 맥주를 말아먹는 기행을 벌이냔 말이다.

자기 손으로 커피콩 볶아 마시는 친구가 말하길
카페에서 파는 커피들 순 가격 뻥튀기라더라
그러나 어쩌겠는가
나는 모든 것의 가격이 천천히 끈질기게
올라가기만 하는 경제대국에 살고 있는 것을.
그래서 이곳에 살면서 가끔
내 가격도 언젠가 조금은 오르지 않을까
그런 기대도 품곤 하는 것이다.

카페인으로 인하여 유리구슬처럼
어릴 때 주워다 상자에 모으곤 했던 유리구슬처럼
맑고 흠집투성이가 된 정신으로 생각해보니
어젯밤 내가 뭘 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질 않는다.
해가 질 때쯤에 출근했던 것은 기억나는데
퇴근할 때까지 15시간 동안 뭘 했는지
정말로 모르겠다. 맨 정신에 필름이 끊겼나.

그나마 육신이 기억하는 것은
담배를 좆나게 피웠다는 것이다.
너무 피워서 폐가 진액을 토할 정도로
담배 피우다 죽을 놈처럼 피워댔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곧 담배 값이
별다방 커피 값이랑 비등비등할 정도로 오른다고 하는데
내가 그 거금을 내가면서 담배를 피울
배짱이 있을지 모르겠다.

아아, 그러나 시바, 담배를 피워야만
시를 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생각해보면
담배를 배우기 전에도 시는 미친 듯 썼었고
담배를 처음 배운 열아홉 살 때부터 지금까지
남들 평생 피울 담배를 다 몰아서 피웠고
허파가 더는 못해 처먹겠다고
붉은 머리띠 매고 파업 들어갈 정도로
흡사 자살시도 하듯이 피워댔으니
이제 그만 피워도 되지 않을까?

그렇다고는 해도 괜히 군인들이 걱정이다
이젠 피엑스에서 담배 면세도 안 해준다는데
죈 종일 흙탕물에서 구르고 담배 살 돈도 없으면
그네들은 어떻게 사나? 이거 또 보나마나
군대 자살률 급상승하게 생겼다.
대통령 각하, 우리 대한건아들은
자기 돈 내고 기관지에 독극물 쏟아 넣을 자유도
없는 것이지 말입니까.

독극물 하니까 말인데
오래 전에 키우다 시골 보낸 우리 개새끼
친동생보다 이쁜 우리 개새끼 
시골집에서 어디 쥐약 주워 먹고 죽은 것 아닐까
그것이 걱정이다.
쥐약 먹고 죽은 개로는
개장탕도 못 끓이는데.
Posted by Lim_
:

썩은 몸과 썩지 않는 눈동자와 마비된 사상


존재의 과잉 때문에 삶이라는 것이 더럽게 퍽퍽합니다. 사실 나는 어릴 때부터 닭 가슴살을 싫어하지 않았던가요. 그런데 어른이 되어 담배를 물고 술병을 물고 약통을 물다보니 어느새 내 영혼부터가 닭 가슴살보다도 수분이 하등해진 것입니다. 이놈의 인생을 매끄럽게 굴리려면 기름이라도 쳐야할 텐데, 기름을 치기 이전에 나사들은 사이즈가 안 맞고 엔진은 이십사 시간 과열상태입니다. 어려서부터 길가에 버려진 고철들을 보면 모조리 주워서 내 가슴에 담아둔 탓입니다. 나는 도무지 길가에 버려진 작고 커다란 고철들을 내버려둘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들도 누군가에게 버려진 것이 아니었겠습니까. 그리고 그 고철들을 내버린 사람들이 보기에 나는 살아 움직이는 고철 그 자체였을 것입니다. 버려진 것이 버려진 것들을 어떻게 또 버릴 수 있겠습니까. 쓰레기와 녹의 냄새가 나는 팔에라도 담아 끌어안아야지요.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있습니다. 항상 고철들과만 피와 고기로 교감을 나누다보니 살아있는 것들에 대해서는 이상하리만치 냉담해진 것입니다. 이것도 패배주의가 낳은 부작용일까요? 나는 항상 손가락이 서너 개 잘리고 흉터를 가진 손들과만 악수를 한다는 것입니다. 하얗고 깨끗하게 다듬어진, 대리석으로 만든 것 같은 고귀한 손들은 가까이만 닿아도 소름이 끼칩니다. 그래서 내가 잡았던 소녀의 손에는 담뱃진이 눌어붙어 있었고, 눈동자에 젖과 꿀과 ―당연하게도―눈물이 흐르던 여인의 손은 오랜 절망과 신에 대한 고뇌로 깎여나가 있었습니다. 내 눈동자에는 술이 머금어져있었고 희망을 만나면 거의 반사적으로 경계부터 했었습니다. 내가 여인들의 손에 눈물을 떨구었던 것은 행복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고독을 부채질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생각됩니다. 그놈의 고독, 고독, 고독. 참 쉬운 말이고 쉬운 단어입니다. 그런데 고독의 뒷면에는 주체가 과잉되어 손가락마저 불어터져 아무 것도 잡을 수 없는 서러운 마스크가 있습니다. 고독은 우리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흘러들어오려고 오는 것입니다. 나는 과잉되어서, 술을 마시면 토하고 담배를 피우면 허파를 쥐어짜고 약을 먹으면 정신을 사방으로 뿌려대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내가 이용할 수도 없는 부풀어 오른 개념들은 여전히 나에게는 너무 많은 것입니다. 존재의 과잉이 나를 짓눌러 죽이고 있다고 외쳐왔습니다. 아니 그것은 나를 죽이지는 않지요. 사실은 죽이지도 살리지도 않고 영원한 경계선의 한복판에 거적처럼 걸쳐놓는 것이지요. 나는 행동주의자가 되기에는 너무 녹슬었고 이론 속에 파묻히기에는 너무 뜨겁습니다. 내 피는 쓸모없는 것들의 용광로처럼 되어버렸습니다. 현실에 배설 당했으나 공기보다 가벼운 두 발 때문에 항상 어설픈 고도에서 거꾸로 부유합니다. 음식을 먹으면 항상 토하고 싶은 것도 내가 거꾸로 떠다니기 때문일 테지요. 이박삼일을 자도 술이 깨지 않는 것은 뇌에 피가 몰렸기 때문일 테지요. 한때는 니체에 미쳐 칼을 쥐고 다니고, 카뮈에 미쳐 무감각의 마을에서 피를 찾아다니기도 했는데, 사상이라는 것도 오만가지 이유에 의하여 삭아버리는 것이었습니다. 배부른 기득권층도 분노하는 혁명가도 될 수 없도록 아주 애매하고 미묘하게 삭아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존재의 무게가 점점 과잉되도록 아주 적절하게 삭아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언젠가 존재의 무게가 아니라 존재의 쪽팔림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만, 다른 쪽으로 생각해보면 이 지랄 맞게 과잉된 상태가 최종국면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애매하고 어디로 향할 수도 없는, 철로에 덜컥 발이 끼어버린 상태가 내가 가고자 했던 길과 어쩔 수 없이 가야만 했던 길이 합쳐진 행로의 결말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나, 그래서 나는 철로에 덜컥 발이 낀 채로, 부디 철마 하나 달려와 주기를 뻔뻔하게 기원하는 것입니다.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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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가는 길

글/시 2014. 9. 20. 09:25 |
우리 집 가는 길


담배연기가 초승달을 쓰다듬는다.
저 달은 지금까지
새벽에 잠 못 이루고 니코틴과 타르로
쨍쨍 얼어붙은 가슴 녹이는 사람들의
체취와 연기 낀 한숨을
모조리 숨 쉬어 주었다.

달나라에는 폐암이 한창이겠지
사람들이 도시에 살기 시작한 이래로
네온사인과 가로등 불빛이
밤을 비추게 된 이래로
달나라에는 항상 폐암이 유행하겠지.

그러니 아픈 사람들아
그 아픈 피와 고기와 살거죽과
손톱과 발톱과 고드름 돋은
뇌수까지 전부 버리고 가자
그러나 뼈는 남겨두고 가자
평생 아파 본 일 없는 사람들이
그 쉽사리 부서지는 뼈를 보고
입 꼬리나마 일그러트릴 수 있도록.

아파 본 일 없는 사람들은
항상 병과 죽음 그것이 걱정이더라.
그런데 우리는 병이 자신인지
자신이 병인지 아니면 병이라는 것이
자궁 속에서도 함께하던 형제인지
알 수가 없지 않던가. 우리는 그저
아픔과 사는 것이 체질이라고
흉터 위에 흉터를 덧씌우지 않았던가.

바닥에서 위를 쳐다본다.
그리 깊지도 않은 바닥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보면
하늘에는 청록빛 파도가 출렁이고
발밑에선 구름들이 찢어진 채 흐르고
날개가 커다란 새들 몇몇은
뒤집어진 채 날고 있다. 사방에
초록색 불꽃이다.

창공의 어느 골목으로 들어가야
한 번도 문을 열어본 적 없는 우리 집일까?
이불 위에 잔디가 돋은
파랗고 어둡고 높은
아무도 문 두드리지 않는 내 집일까.
사다리 타고 내려가는 길에
너무 고독해서 헌혈하러 가는 사람들을 위한
막걸리 공장 하나 있는
그런 집이면 좋겠다.

달나라에 있는 오두막에
무화과나무 하나 심고
달이 한 번 돌 때마다 무화과 하나 먹으면
음식도 술도, 서러운 가슴에 채워 넣을
담배연기도 필요 없는
그런 집에서 살면
좋겠더라.
Posted by Lim_
:

술잔에 잠긴 조롱

글/시 2014. 9. 17. 22:20 |
술잔에 잠긴 조롱


밤이 딸그락 딸그락 소리를 내면서
허파에 들어차는 시간이면
나는 옛날 애인들을 생각하고
희극이란 것을 겪어본 일이 없는
내 연애사를 생각하고
삼류 통속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그런 꿈을 꾼다. 뜬 눈으로.

뜬 눈으로 나는
내가 자학하며 내쫓았던 그 소녀를 생각하고
사랑이 무엇인지도 몰라서
사랑하고자 해도 사랑할 수 없었던
어린 날의 유사연애를 조롱하고,
그러나 지금에야 조롱할 수 있는 것이다
과거의 나는
항상 현재의 나에게 비굴하니까.

뜬 눈으로 나는, 세상
어느 곳보다 추운 곳에서 자랐기에
오히려 내 추위를 가시게 만들었던 그녀에게
몇 편의 시와 엽서를 보내고
내 수첩에
생경한 희망의 구절들을 머뭇거리며 끄적이게 만든
그녀 앞에서 오로지 경계하는
들짐승이었던 나를 생각하고
파르르 떨리는 침묵에 잠기는 것이다.

뜬 눈으로 꿈을 꿀 때
나는 온갖 옛날 연인들이 뒤섞인 여자를
사랑하고 애원하였는데
유감스럽게도 그녀는 레즈비언이었다. 이제는 꿈마저
삼류 신파극이다. 나는 비극이
코미디가 되어가는 와중에 있나.

그 외에도 수많은
몇몇은 이름은 기억하고
몇몇은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흡사한 윤곽과 색깔을 지닌 소녀와 여인들이여

그래서 나는
한 달에 한 번은 이름마저 기억나지 않는
그녀들을 위하며 술을 마시고
또 한 달에 한 번은
이름은 기억나는 그녀들을 생각하며
술을 마시는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통속 연애 시로 바글거리던
머릿속을 알코올이 깨끗이 지우고
그 자리에 흰 공백과 휘발성의 향기를 남겨두면
나는 희희거리며
또 실패할, 차라리 실패하기 위해
연애라는 장난을 향해 손을 뻗고
다른 한 손에는, 사랑이라는 코미디를 위한
한 잔의 독한 술을 들고 있는 것이다. 건배.

아. 포도주가 왜 이렇게 단가.
아무래도 냉장고에 있던 것은
포도주 병이 아니었나보다.
Posted by Lim_
:

매독적 정신

글/시 2014. 9. 15. 23:38 |
매독적 정신


오늘은 지하철 타고 집에 가다가 광고판에
<청춘의 고민은 취업>이라고 쓰인 것을 보았다.

겨울도 아직이건만
왜 이 땅덩어리에 사는 사람들은
하나 같이 가슴에 서리가 끼었나
얼마나 추우면 혈액이 얼음과자처럼
살얼음 섞인 채로 혈관 속을 돌기에
벌써부터 청춘의 고민이 취업 밖에 없나.

내가 편두통 달고 사는 머리로
장시간 고뇌한 결과 청춘의 고민이 상대해야할 것은
마땅히 매독이다. 청춘의 고민은 매독이어야만 한다.
모든 세대와 국경을 넘어
전 세계 청춘들의 고민은
처음 보는 여자와 함께 누워있던 이불에서 일어날 때
여전이 술병 앓는 영혼이 조곤거리는
높고 쓰라리고 고독한 죄악감이어야만 한다.

양심 가진 젊은이들이 많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왜냐하면 그 말인즉슨
곧 양심을 뿌리 채 뽑아 버려버릴
악(惡)의 詩를 찬미할 청춘들이
많으리라는 것이니까.
매독을 고뇌하고 매독을 사랑하여서
매독의 사랑을 노래하고 매독의 아픔을 이로 씹고
모차르트처럼 발광하여 죽어갈 이들의 눈빛이
내 눈에 속속히 보인다.

마땅히 죽어야하지 않겠는가? 앞으로!
앞으로! 니체를 읽은 순진한 대학생이
겁 모르는 전사가 되어 죄 없는 적군의 심장을
총칼을 이용하여 처음으로 찌를 때
니체마저 그림자가 되는 그 순간을 넘어, 앞으로!
우리는 추락할 것이다. 추락하며
만개하고 휘날리는 꽃일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추락하며 활짝 필 것이다.

반항이라는 말을 쉬이 입에 담지 말라.
내가 벌였던 피와 폭력의 반항들마저도
이미 오래 전에 썩어 한 권의 책이 된 작가들의
어리숙한 흉내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고로 피와 폭력은 반항의 껍질만을 깨는
삶 전체의 시동(始動)이었던 것이다.
정신의 눈동자를 슬며시 열리게 하는
젊은 날의 나팔 소리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그 뒤로 나는 항상
정신의 무게를 현실로 만들어낼
정신의 피와 정신의 폭력을 찾고 있다.
그것은 새벽 중 자주 울리는 영혼의 비명소리와 흡사한 것 같다.

뇌수가 병으로 앓는 일에 전념하여야 한다.
사랑하지도 않는 여인의 늑골을
치아로 긁어대다가
신문으로 가려놓은 창문에 저주 같은 햇빛이
새어들어 올 때,
모든 것이 또 시작 된다는 세계적 강압에 마주할 때
네 영혼이 비명횡사하려고 할 때
젊은이는 마땅히 매독을
고민하여야만 한다.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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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인일기

글/시 2014. 9. 14. 14:41 |
폐인일기


잠도 못 자는 새벽이라서 나는 시를 써야겠다.
잠을 자려면 못 자는 것도 아니다만은
내 일이라는 것이 새벽에 깨있는 대신
한 달 술값을 받는 일인지라 어쩔 수가 없다.
게다가 편두통이 뇌수 옆구리를 펜촉으로다가
푹푹 찔러대는 와중에 싸구려 인스턴트 커피를
네 잔 하고도 한 잔을 더 마셨으니
누가 자라고 해도 못 잘 것은 아마도 뻔하다
그것은 죄 내 탓이다. 생각해보면
내게 벌어진 모든 악운들이 다 내 탓인 것이다.
예를 들자면 출근하는 날 깨자마자 머리는
누가 망치로 후두려까는 듯이 아프고
물만 마셔도 구역질이 나오고 일어서면
어지럽고 누워있으면 연기 섞인 기침이 나오고
그것은 내가 어제
오늘 출근해야하는 줄 알면서도
내가 술 마시자고 전화하면 만사 다 제끼고
찾아오는 앤드류 브레들리…… 시바 걔 성이 뭐더라,
아무튼 풀 네임이 기억 안 나는 알코올 중독 양키 친구랑
둘이서 소주잔 기울이다가
<나 안 취했어 시바야>라는 대사를 영어로 궁구하다가
마침내는 겁나 시끄러운 바에 가서
럼주까지 마셔댄 탓인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예로는 다음 날 아침부터 나갈 일이 있어
새벽 두 시 전에는 잠들어야 하는데
작심하고 글 좀 써보겠다고 편의점에 가서
한 캔에 커피 일곱 잔의 카페인에 필적하는
에너지 음료(이거 두 캔만 마시면 멀쩡하던 사람도 정신분열증 환자가 된다. 퍽도 편리하다.)를 사다가 마시고 카페인의 가호 하에
시 한 편 완성하고 뿌듯해하며 자리에 누웠는데
아침 여섯 시까지 잠을 못 자서, 폐인 꼴로 외출하여
정작 중요한 일로 만난 사람 앞에서 꾸벅꾸벅 졸던 것도
생각해보면 죄다 내 탓인 것이다. 한 마디로 나는 병신이다.
병신! 생각해보면 나는 내 친구들을 수도 없이
그들을 병신이라고 불렀다. 그들은 딱히 부정도 하지 않았는데
내가 추측하기에 그것은 그들이 내 동료이기 때문이다
고로 나와 내 친구들은 모두 병신이며
서로를 병신이라고 불러대는데 가끔 술 들어간 채로
<이 중에 누가 가장 병신인가>를 투표하면
백이면 백 내가 당선된다. 압도적이다.
말하자면 나와 내 친구들이 모이면 모두가 병신인 가운데
나 홀로 병신의 중심에 있다. 그런데 내가 언제까지고
어른이 되지 못해, 팅커벨이 바닷물에 잠수하다가 익사해서
요정의 가루가 없어 하늘을 날기는커녕
흙탕물에서 빌빌거리는, 한 보름 정도 면도 못 한
피터팬인 와중에 내 친구들은 어른이 되어간다. 그 놈들은
두 다리로 똑바로 서는 방법을 몰래몰래 찾아다니고 있고
언제까지고 절름발이로 사는 것은 원하지 않는 듯싶다. 쓰벌.
위에서 언급한 앤드류 뭐시기 같은 경우에는 이미 어른이다
당장이라도 재활센터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가야 할 정도로 상태 후진 놈이
영어 교사하면서 돈은 존나게 잘 번다. 아마 조만간
결혼도 할 듯싶다. 자기 술값뿐만 아니라
애인 술값까지 벌게 되면 드디어 어른인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애인들에게 술을 사주기는커녕
오히려 얻어먹고 삥 뜯고 다녔으니
안치환의 <위하여> 틀어놓고 방구석에서
빌린 돈으로 산 소주 혼자 들이키며
푸른곰팡이를 벗 삼아 취중진담 하고 앉았으니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짧은 것은
어머니 자궁 박차고 나올 때부터 그러하였습니다. 안치환 씨.
아무튼 그리하여 나는 오늘도 빌빌댄다.
술값 벌려고 새벽에 잠 안자고 깨어있는 지금도
나는 좆나 빌빌댄다. 사방이 시꺼먼 철로 밑을
담뱃불만 쳐다보고 휘청휘청 걸어 다니는데
들리는 풍문으로는 조만간 담뱃값이 오른다고 한다.
이천 원이나 올려서 한 갑에 사천오백 원으로 만들어
폐암과 병과 죽음과 고독과 절망과 자학과 가난을
평생 직업으로 삼고 사는 사람들 모가지를 졸라댈
예정이라고 한다. 씨부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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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서울

글/시 2014. 9. 8. 09:37 |
여기는 서울


오늘은 퇴근도 일찍 했건만
왜 이리 발치에는 울증이
푹푹 쌓이고 아침에 퇴근하는 내 몸은
비몽사몽하여 피곤마저 초월하여
지상을 걷는 것인지 구름 위를 거꾸로
걷는 것인지 어깨 위에서 덜렁거리는 내 머리는
아무리 어깨를 꼿꼿이 펴고 있어도
바닥도 없는 늪에 천천히 잠겨가는 기분이다
사실은 기분만 그런 것이 아니라 내 귀와 코와
입으로 태초부터 썩어온
시간이라는 뻘이 기어들어오고 있다.

백석 시인은 가난하여도 나타샤를 사랑하고
나타샤를 기다리면 나타샤가 안 올 리 없었다는데
가난한 나는 기다리는 사람도 없고
날 기다려주는 사람도 없고 그런 것은 일체
기대조차 하지 않으리라고 소주잔에 눈물 빠트리고
술 퍼먹다가 우는 것이 쪽팔려서 소주를 얼굴에 부어대고
그리하여 만취한 내가 거리로 나와서
집으로 돌아가려니 지갑에는 천 원 짜리 한 장 없고
사실 천 원이 아니라 만 원이 있어도 내 가난뱅이 근성으로는
절대 저 주황색 택시를 탈 일이 없다는 말이다 그리하여
백석 시인이 나타샤와 흰 당나귀 타고 갈 때
나는 흔들리는 지하철을 흔들리는 발걸음으로 잡아타고
뻔히 아는 사실로는 지하철은 절대 응앙응앙 우는 법이 없다.

오늘은 퇴근도 일찍 했건만
아침 댓바람부터 혜화동 구석진 곳에 문 열고 있는 술집
Bar 우드스탁의 존 레논 닮은 사장님한테 맡겨둔 글랜피딕 십오 년짜리만
자꾸 생각나고 지금 나는 술도 마시지 않았는데
눈앞이 부예 만물이 다 두어 개 씩으로 나뉘어 보이고
줄담배로 썩어가는 내 허파는 야 인마 힘을 내라
조금만 더 피우면 이제 돌이킬 수도 없을 것이다, 하고
미필적 고의로 내 폐암을 앙망하는 것이다
지랄, 폐암에 대해서는 내가 잘 알지 못한다만
암이 영어로 캔설이라는 것은 알고
한자로 내 이름이 폐인이라는 것은 안다.
고로 나는 잠 때문에 만취한 상태로
휘청휘청 담배 피우고서 자러 갈 것이다. 이 아침 댓바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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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사 중(壞死 中)

글/시 2014. 9. 6. 01:42 |
괴사 중(壞死 中)


세존께서 오시려면 수십만 년도 더 남았단다.
나는 그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내 썩은 몸뚱이로는
도무지 그분을 맞이할 수가 없는 탓이다.
앙굴리말라는 차라리 미치기라도 하였지, 미친다는 것은
죄의식도 자문도 버리고 광란한다는 것으로
오히려 수행길 들려면 어떻게든 미쳐야하는 것이다.
바야흐로 정신병원 대기실에 앉아있으면
온갖 병자들의 온갖 병증이 공기를 통해 전염되는
그리하여 진료실 문 열고 들어갈 때쯤이면
어엿한 미치광이가 될 수 있는 편리한 시대다.

아흔아홉 개의 손가락만 모으면 세존께서
내 앞에 오시지 않을까 싶어 밤새 술 마시며
칼인지 펜인지를 숫돌에 존나게 갈았다.
이빨 사이에 욕지거리 물고 갈았다.
그것은 오래전에 이미 수십 번이나 피맛을 보았다.
내 좁디좁은 가슴에서 심장이 발악하며
바깥으로 뛰쳐나가려 할 때마다 나는 출구나마 만들어보려고
복장뼈를 부수고 늑골을 여는 방법에 골몰하였다.
그러나 칼날인지 펜촉인지는 주로 살점만을 뚝뚝 열어제끼고
핏줄기 묻은 채로 방치되었다. 그래서 시방 내가 갈고 있는
이 칼인지 펜인지도 남의 손가락을 절단하기는커녕
아, 쓰바, 석가세존 만나도 할 말이 없으니
불문학으로 꽉꽉 들어찬 책장에 끼워 넣고
나는 잠이나 잘 듯 싶다.
한여름에 동면이나 할 듯싶다.

한여름인데도 내 난도질당한 영혼은 간질 환자처럼 발광이다.
춥고 시려서 돌아가시겠으니 당장이라도 악업 쌓고
지옥 유황불꽃에 따뜻해지자고 발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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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부러진 집에서

글/시 2014. 9. 3. 16:59 |
구부러진 집에서


내가 사는 집은 구부러진 집이다
정신이 멀쩡할 때에는 집에 들어올 수 없다
알코올과 니코틴으로 눈동자가 돌아버렸을 때에만
이 집에 들어올 수 있다 그래야만
이 집이 가진 경계선과 면적들이 멀쩡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현관문에 열쇠를 꽂고 돌릴 때에도
남들이 하듯이 똑바로 찔러넣어서는 안 된다
잘못된 위치에 꽂아야만 문이 열린다.

이 집은 구부러져 있기 때문에
소시민들이 쓰는 보통 가구로는 채워 넣을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밤마다 밖으로 나가
다 썩어가는 나무 등걸과
한번 쓰였다가 버려진 못들을 주워 모아
텁텁한 냄새가 나는, 이미 만들어질 때부터 망가진
그런 가구들을 만들어 집에 채워 넣었다.

이 집에 들어오는 햇빛은
구부러진 창문을 통과하는 순간부터
거울에 비치는 달빛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절대로 아침을 맞이할 수 없다. 아침이라는 것은
죽은 태양의 허묘(墟墓)다.
이곳에서는 그림자 진 사물들만이 진실이 된다.
망가진 책장에 꽂힌 책들은 펼쳐보면
문자가 아니라 죽은 시인들의 발광이 소리가 되어
내 입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여기서 독서는 늘 광란이다.

나는 아직도 방문을 나설 때마다
어깨나 머리를 어딘가에 부딪친다 사방이 변색된 핏자국이다
언젠가 내 몸속의 피가 전부 이 구부러진 집에 바쳐질 때
나는 이 집의 일부가 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딱히 그 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나는
다른 집에서는 살 수가 없는 탓이다.

지나가던 아이들이 창문을 두드렸다. 아저씨는 왜 여기에 사나요.
나는 창문을 열고 말한다. 너희 어머니가 이 집 주변에는
오지 말라고 했을 텐데.
맞아요. 이 집에는 구부러진 인간이 산다고 했어요.
그리고 우리 마을 목사님께서
이 집은 마귀가 지은 집이라고 했어요.
내가 묻는다. 마귀가 뭔데?
사람을 나쁜 길로 홀리는 괴물이요.
이 집은 마귀가 지은 집이 아니야. 만약 마귀가 보고 싶다면
마을 중앙에 계신 판사님을 찾아가 보거라.
아이들이 말한다. 거기엔 저번 주에 교수형 당한 사람들이 걸려있어서
가고 싶지 않아요.
내가 말한다. 누가 교수 당했다고?
몇 명의 시인들과 예술가들이었어요. 그들은 죄를 지었대요.
그들도 구부러진 집에서 살았다면
그런 꼴을 당하지 않았을 텐데. 안타깝구나. 그리고 난 창문을
닫았다.

<탕겐! 내 이름은 안드레아스 탕겐이야!> 나는 중얼거리면서
다리가 두 개 밖에 없는 의자에 앉았다.
나는 배가 고팠지만 눈이 붉은 쥐들이 내 음식을 모두 가져가버려서
먹을 수가 없었다. 나는 이 집에 살기 시작한 이래로
단 한 번도 식사를 한 기억이 없다.
탕겐, 내 이름은 안드레아스 탕겐.

그런데 도대체 내 이름이 무엇이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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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가깝고 먼 여인

글/시 2014. 9. 2. 12:12 |
가장 가깝고 먼 여인


그녀는 내게 번역일을 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하였다
그녀는 늘 내게 술을 마실 때는 안주도 함께 먹으라고 하였다
그녀는 내게 제발 진통제를 몰아서 먹지 말라고 하였다
그녀는 언제나 내게 담배를 그만 끊으라고 하였다
그녀는 내게 하루에 두 끼 이상은 식사를 하라고 애원하였다
그녀는 내게 약은 정시에 정량을 맞춰 먹으라고 부탁하였다
그녀는 내게 신문에 칼럼이라도 써보는 것은 어떠냐고 물었다
그녀는 내게 새벽에 정처 없이 몇 시간이고 혼자 걷는 것은 그만두라고 하였다
그녀는 내게 언제까지 아파할 것이냐고 다그쳤다
그녀는 내게 토할 때까지 술 마시는 것은 그만두라고 외쳤다
그녀는 내게 시인 같은 것은 그만 둘 수 없느냐고 물었다.

행복으로 가는 길은 어디에 있지요? 나는
그녀가 더 이상 그녀가 아니게 된 뒤에도
곰팡이 핀 나의 소굴에 홀로 웅크리고 있을 때면 여전히
그녀의 잔소리가 들린다. 그녀의 눈물도 기억한다
그 원망이 방울져 흐르는 모습을
빠르고 날카로운 눈물이 그녀의 볼을 베는 모습을
내가 욕설과 함께 던진 유리잔이 사금파리가 되어
그녀 발바닥에 박혀 송골송골 피가 맺히는 장면을

아픔을 그만 두는 방법은 뭘까? 그런 것은 모른다
그녀가 울 때마다 내 심장에도 쩍쩍 금이 갔다 그러나
내 심장은 그녀의 눈물샘과 달라서 피는커녕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내 심장에 그어진 금에서는
그저 가솔린 냄새만 풍겨댔다 에틴알코올이 섞인

이맘때면 나는 대체로 나의 곰팡이 핀 소굴에서
옆으로 누워 태양이 떨어지는 시기만 셈해보고 있다 그리고
거리에 미광 흐르는 어둠이 깔리면 나는 밖으로 나간다
오늘도 나는 마신 술을 나무 둥치에 죄다 토해놓고
시뻘겋게 달아오른 눈동자로 담배에 불을 붙인다
그녀 이름은 이제 기억나지 않는데 오로지 그
잔소리하던 서글픈 목소리만 기억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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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류 시인의 노래

글/시 2014. 9. 1. 01:18 |
삼류 시인의 노래


1.
내 연애 이야기를 듣는다면 당신은 웃을 것이오.
요즘엔 삼류 드라마 작가들도 그런 이야기는 쓰지 않소.
즉 내 인생에서 무엇보다도 강렬했다고
보석보다 아름다웠다고 시원찮은 말을 흘리는
바로 그 이야기가 삼류도 못 된다는 이야기가 아니겠소.
바텐더는 내가 사랑 때문에 울었다고 할 테지만
나는 내가 술 때문에 울었다고 해야 할 것 같소.
사랑 때문에 우는 것은 삼류요.
사실은 사랑이라는 단어를
함부로 사용하는 것조차도 삼류요.
고로 내가 그 호박빛 럼주의
빨간 라벨을 보고 울었다고 해야
시인으로서의 위신이 서는 것 아니겠소.
바야흐로 인간의 감성이라는 것이
송두리째 싸구려가 되어버린 시대요.
보들레르도 이제는 숨을 쉴 수가 없소.
니체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대학생들에게
멍석말이를 당할 듯싶소.
그러나 기왕 삼류도 못 되는 연애를 했으니
적어도 삼류는 되는 이야기를 좀 해야겠소.

2.
나는 배낭 가득 책 짊어지고
얼어붙은 잎사귀들 굴러다니는 거리 위에서 헤맨다
헤매었다고 한다. 하늘은 보랏빛으로 두근거리고
내 심장에는 피가 아닌 이상한 것이 펌프질 당한다 그것은
말하자면 불안과 고독과 유황지옥 같은 불길과
내가 죽어가는 소리의 하모니다. 그것은 새까만 석유처럼
휘발성의 지독한 냄새가 난다.

그까짓 책들 다 불질러버리라는 스님 말씀도 무시하고
나는 북쪽으로 북쪽으로 걸었다 눈 대신 비가 내리는 겨울
아래서. 그 겨울 하늘 아래서
결국 내 어깨는 더 이상 걸어갈 수 없을 정도로
주저앉았고 발은 썩어가고 있었다 동상과
극심한 화상 때문에.
나는 글 쓰는 방법도 잊어버렸다
너무 오래된 기대 때문에.

가장 무거운 것은 키에르 케고르였다. 그 다음은
사드였다. 그 다음은 니체였다. 그 다음은 프레이저였다.
누군가가 얼른 책들을 버리고 불을 붙이라고 외쳐댔다
그 누군가는 그리스인 조르바였다. 그러나 그조차도
책 속에서 만난 인물인지라 나는 실소했다.
나는 얼어붙은 땅 위에 주저앉았다
그러나 나의 상체는 간신히 무릎에 의지하여
북쪽을 향한 채 일어서있었다. 누군가를 기다려야했다.
무언가를 기다려야했다. 그것이 무엇이든
나는 기다려야 했다. 그러나 희망이 아니다. 그것은 희망이 아니다.
그것은 희망이라고 부를만한 종류의 것이 아니다. 차라리
그것은 사람들이 절망이라고 부르는
그런 색깔의 것이었다.

나는 근처의 절로 기어들어갔다. 왜냐하면 절에는
문지기가 없기 때문이다.
문지기가 있는 곳으로는 갈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내 육체는 이미 모두가 혐오하는
죄악으로 물들고 방탕에 썩어가는 것 같은
그런 꼴이 되어있었기 때문에.
마당에서 쓰레기 썩는 냄새가 나기 시작하자
법당에서 스님 한 분이 나오셨다. 나는 스님에게
이렇게 말했다 「스님, 담배 있으십니까?」
스님은 내게 담배 한 개비를 주셨다. 나는 라이터도 달라고 하였다.
스님은 라이터도 주셨다. 나는 배낭을 매고 바닥에 늘어진 채
도대체 몇 백 년 만인지 모를 담배를 달게 피웠다.
나는 니코틴과 일산화탄소 때문에 눈동자가 돌아가는 것을 느끼면서
스님에게 다시 물었다 「스님, 여래께서 오실까요?」
스님께서는 내 어리석음 때문에 웃으셨다.

3.
별은 호수에서 뜬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때 내 눈앞에 호수가 있었기에 그리고 그때 하늘엔 밤이 찾아왔기에 밤인데도 불구하고 내 가슴은 빛을 품고 사방을 경계하며 울려댔기에 나는 그 밤을 기억한다 어둠 속에 뜬 연꽃잎과 건조한 나무 냄새와 내일이면 다시 태양이 뜨리라는 것을 인생에서 처음으로 기쁘게 발음했던 것 따위를 기억한다 지장보살 지장보살 지장보살 지장보살 나는 한 시인에게 전화를 걸었더랬다 한참 오래전에 그는 나에게 인간을 사랑하느냐고 물었었다 나는 그때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인간 따위는 모조리 증오한다고 대답했었다 그는 그 대답을 어리석은 것으로 치부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의 까만 눈빛이 그것은 결여라고 말했던 것 같다 그렇게 느꼈다 아무튼 나는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걸기에는 너무 뜨거운 날씨였다 그러나 그는 전화를 받았다 나는 감사하다고 말하며 그에게 드디어 찾아냈노라고 말했다 나는 풀숲을 뛰어다녔고 산속을 활보했다 태양이 뒤집어진 것 같았다 달이 거꾸로 뜬 것 같았다 나는 앞으로 시베리아에서 오는 모든 차갑고 시린 것들을 사랑하리라고 공중에 외치고 외쳤다 자꾸만 외쳤다 그때가 여름이었던가? 아니면 겨울이었던가? 그렇다 계절마저 엉망진창이었고 아무 의미도 없었다 중요한 것은 인간뿐이었다 남은 것은 감각뿐이었다 그러나 모든 희극은 비극으로 돌아간다 아니면 희극도 비극도 아닌,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할 수 없는 부조리극으로 혹은 절대 인간을 위한 것이 아닌 블랙코미디로 돌아간다 아하 지금 내 머릿속에는 웃음만이 남았다고 할 수 있겠다 광소만이 남았다고 할 수 있겠다 왜냐하면 기억하려고 해도 기억할 수 없는 그리고 기억하려고 하기는커녕 절대 기억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단골술집에서 보았던 바카디151의 빨간 라벨 때문에 그 빨간 라벨에 울었던 것 때문에 울면서 웃었고 웃으면서 울었고 어떻게 해도 내 감정이 제자리로 돌아가지 않아 뱃속에 럼주만 끝없이 채워 넣었던 그 새까만 기억 때문에 나는 만개하는 꽃이었다가 시들어가는 봉오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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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담

글/시 2014. 8. 27. 19:00 |
진담


좆나게 취한다고 해서 친구가 생기는 것은 아닌가봅니다 술집 닫을 새벽 무렵 비틀거리며 어둔 밤거리를 걸을 때 내 심장은 어찌나 발광을 하였는지 발광하여 혈액 대신 알코올이 도는 혈관에는 어찌나 쓰라린 고독이 돌았는지 눈물로 된 나뭇잎을 하늘거리는 나무 밑에서 나는 나무뿌리에 몇 번이고 새빨간 토사물을 뱉었습니다 럼주는 분명히 사탕수수로 만든다는데 왜 이렇게 지독하여 마치 독액과 같은지 의문하면서도 나는 밑 빠진 독처럼 그 독액을 위장에 쏟아 넣고 쏟아 넣고 쏟아 넣은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술기운에 달아오른 고독이 온갖 가시와 칼들로 무장한 채 몸속에서 일어나 난도질하는 때에 나는 왜 내 옆에 친구 하나 없는지 이미 말도 듣지 않는 손으로 휴대전화를 꺼내어 닥치는 대로 통화버튼을 눌렀으나 이 어두운 밤에 해가 뜨기 직전의 새까만, 하늘에 장막을 친 것 같은 밤에 깨어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던 것입니다.
목소리, 목소리 부디 내가 어느 골목으로 들어가야 할지를 알려줄 목소리 한 줌만 주시오 나는 중얼거리면서 내 온몸의 땀구멍에서 알코올의 냄새가 올라오는 것을 느끼고 헛구역질을 했습니다 아버지가 말씀하시기를 네 어머니도 널 낳기 전에는 술꾼이었어 아하, 그렇다면 내가 어머니의 자궁을 차고 나올 때 어머니의 술에 대한 갈망도 전부 가지고 나온 모양입니다 왜냐하면 어머니는 이제 맥주 한 잔만 마셔도 머리가 아프다고 누워버리는 것에 반하여 나는 일주일에 한번만 술을 마시지 않아도 내 인생 전부를 분쇄기로 철저히 갈아 음식물쓰레기수거함에 처넣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한껏 술에 취한 뒤에는 내 인생 대신 나 자신을 분쇄기에 집어넣고 싶기 때문입니다 돈이 없을 때에는 소주가 좋지요 그리고 시인이라는 족속들은 하나같이 돈 만지는 법을 모르지요 그러나 나는 아직 일터에서 쫓겨날 때가 되지 않았기에 가끔은 럼주 같은 사치도 부리고는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호프집에서 2차로다가 맥주를 마시며 혼자 앉아 마시며 누군가의 시집을 읽는 것입니다 모두가 커피숍에 가서 멋 부리며 다리 꼬고 에스프레소 잔 옆에 시집을 덮어놓을 때 나는 맥주병 주둥이와 담배를 번갈아 입으로 가져가며 점점 흐려지는 눈으로 제정신으로 살기 위해 정신을 잃고 시를 썼던 누군가의 시집을 읽는 것입니다.
내가 단골로 있는 바의 사장님은 내 지저분한 장발도 좋아하고 핏기 올라 번쩍이는 내 눈동자도 좋아하며 더러는 내 시를 좋아하기도 하기에 술에 취하면 나도 그에게 시 한 장 써서 건네는 것 아니겠습니까 노란색 포스트잇에 자신의 심장을 꺼내먹어 심장과 위장이 가까워지게 해야만 한다고 써갈겨서 건네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나는 손님이요 그는 사장인 가운데 내가 술푸며 슬픈 얘기를 조롱하듯이 하면 그는 또 웃고 경청하는 것입니다 그 순간만은 퍽도 좋습니다 너무 좋아서 양주 서너 병을 한큐에 삼키고 급성알코올중독으로 쓰러졌던 신해철이처럼 쓰러져 영영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것입니다―그러나 신해철이는 죽지 않았지요 그는 머리를 깎고 일어섰지요― 하지만 내 지랄 같은 봉급으로 술값을 계산하고 나오면 거리는 한산합니다 어둡고 한산하여 고적할 뿐입니다 나는 또 비틀비틀 비틀거리며 순경이 순찰하기도 포기한 더러운 뒷골목으로 걸어들어가고 집으로 가는 길만은 뚜렷하게 기억합니다 아무리 취해도 아무리 정신이 나가도 내 둥지만은 기억합니다 아무리 돌아가고 싶지 않아도 그대로 달에게로 날아가 달을 배고 눕고 싶어도 내 슬픈 몸은 집에 가는 길만은 기억합니다 그러나 걷는 길이 너무도 고적하고 내 영혼은 또 달아올라 오밤중에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 내 휴대전화에는 절대로 전화 한 통 걸려오는 법이 없고 나는 울면서 전봇대 둥치를 끌어안고 오바이트를 쏟고 쏟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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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님

글/시 2014. 8. 26. 20:38 |
손님


흔치 않게, 아직 살아있는 시인의 시집을 읽었다
읽고 있었다. 그가 아직 살아있는 것을 보았다.
어쩐지 그 시집에서는 죽음의 냄새가 나지 않는다고
미리부터 생각하고 있었다.
불쾌한 손님이 찾아왔다.
초인종도 누르지 않고 찾아온 그 손님은
내 손에 들려있는 시집을 먹어 치워버렸다.
나는 그의 눈동자가 유난히 새까맣다고 생각했다.
그는 아직도 배가 고프다고
내 심장에서 상당량의 혈액을 빨아마셨다.
그의 입이 내 심장에 닿을 때
살아있는 것에 진력이 났다 그래서
어딘가로 떠나버리고 싶었다 세상을 버리고
버리고 죄다 버리고 그저
영원히 새벽인 거리에서 그저 걷고
그저 어둠을 향해 혼잣말을 지껄이던
말하건대 내가 혼자뿐인 나라의
이단의 왕이라도 된 듯 도취하여
지독히 도취하여 달에게
히틀러의 <R> 발음을 도용하여 연설하던
그 때처럼 버리고 떠나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그 불쾌한 손님의 눈동자는
새까매서 내 달마저 먹어치우겠다고
폭언하는 듯하였다.
나는 진저리를 쳤다
분노 비슷한 것이 맴돌았다 내 핏발 선 눈동자 속에서
나는 달빛 비추는 정상에 오를 것이라고
나는 불쾌한 손님의 여린 목을 손으로 잡아 뜯었다.
사방이 피였다.
닭고기가 먹고 싶었다.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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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의 이름

글/시 2014. 8. 17. 23:44 |

난민의 이름


내가 얼마 되지 않는 내 봉급에도 마음 주는 일 없이
깜깜한 창밖만 내다보며
종이를 앞에 두고 게으름에 뒹구는데도
형광등은 오로지 낮이라고 빛난다 그것은
버러지의 시체들로 그림자놀이를 하며
창백하게 내 눈동자를 깨우며 흔드는 것이다

오히려 내 눈동자는 피로해 눈앞이 벌겋고
다음 달에도 봉급은 많을 일 없을 것이다
그것은 내 소관도 아니며 나는 그저 버리고
가끔 전철에 몸을 싣을 때 보면 반드시 눈 보이지 않고
다리 성하지 않은 사람들이 비렁질 바가지 들고 있을 때
나는 주머니를 뒤지며
내 봉급을 꺼내는 것이다 그저 그 짤그랑 소리 들으려고

날씨는 미쳐 벌써 긴팔을 입지 않으면
차라리 소주를 마셔 혈관을 데워야 하고
전철에 탔을 때 내 옆에 앉은 동무는
하모니카 불며 구걸하는 저 장님이 돈푼 받을 자격이 있느냐고
누구에 대한 것인지 모를 노기 섞인 목소리로
그러는 것이다 돈푼 받을 자격이느냐고

모른다 나는 알 도리가 없다
오히려 이유가 있노라면 돈 많고 부자인
그런 사람들을 내가 만날 일이 없는 까닭이고
나는 소주 한 병과 담배만 있으면
밥이 없고 옷이 없어도 서글퍼본 적이 없는 까닭이고
가난이라는 것이 이미 내 심장에 쐐기를 박아
가난이 싫을 수도 없는 까닭이다

나는 어릴 때 아버지가 하모니카 불었던 것을 기억하고
또 늙으신 할아버지는 딱 저 절름발이 걸음으로 걸었던 것을 기억하고
목을 못 가눠서 슬픈 저 바보는 우리 어머니 동생과
똑 닮은 눈을 하고 있는
그런 것들을 기억하는 까닭이다.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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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차로

글/소설 2014. 8. 13. 22:05 |
2014/8/4 완성.

1. 척 팔라닉의 <질식>을 읽었다.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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