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가깝고 먼 여인

글/시 2014. 9. 2. 12:12 |
가장 가깝고 먼 여인


그녀는 내게 번역일을 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하였다
그녀는 늘 내게 술을 마실 때는 안주도 함께 먹으라고 하였다
그녀는 내게 제발 진통제를 몰아서 먹지 말라고 하였다
그녀는 언제나 내게 담배를 그만 끊으라고 하였다
그녀는 내게 하루에 두 끼 이상은 식사를 하라고 애원하였다
그녀는 내게 약은 정시에 정량을 맞춰 먹으라고 부탁하였다
그녀는 내게 신문에 칼럼이라도 써보는 것은 어떠냐고 물었다
그녀는 내게 새벽에 정처 없이 몇 시간이고 혼자 걷는 것은 그만두라고 하였다
그녀는 내게 언제까지 아파할 것이냐고 다그쳤다
그녀는 내게 토할 때까지 술 마시는 것은 그만두라고 외쳤다
그녀는 내게 시인 같은 것은 그만 둘 수 없느냐고 물었다.

행복으로 가는 길은 어디에 있지요? 나는
그녀가 더 이상 그녀가 아니게 된 뒤에도
곰팡이 핀 나의 소굴에 홀로 웅크리고 있을 때면 여전히
그녀의 잔소리가 들린다. 그녀의 눈물도 기억한다
그 원망이 방울져 흐르는 모습을
빠르고 날카로운 눈물이 그녀의 볼을 베는 모습을
내가 욕설과 함께 던진 유리잔이 사금파리가 되어
그녀 발바닥에 박혀 송골송골 피가 맺히는 장면을

아픔을 그만 두는 방법은 뭘까? 그런 것은 모른다
그녀가 울 때마다 내 심장에도 쩍쩍 금이 갔다 그러나
내 심장은 그녀의 눈물샘과 달라서 피는커녕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내 심장에 그어진 금에서는
그저 가솔린 냄새만 풍겨댔다 에틴알코올이 섞인

이맘때면 나는 대체로 나의 곰팡이 핀 소굴에서
옆으로 누워 태양이 떨어지는 시기만 셈해보고 있다 그리고
거리에 미광 흐르는 어둠이 깔리면 나는 밖으로 나간다
오늘도 나는 마신 술을 나무 둥치에 죄다 토해놓고
시뻘겋게 달아오른 눈동자로 담배에 불을 붙인다
그녀 이름은 이제 기억나지 않는데 오로지 그
잔소리하던 서글픈 목소리만 기억난다.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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