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입도 뻥긋하지 못하였다


어둠이 사락사락 소리를 내면서 네온불빛 위에 쌓이는 밤 시간에 나는 시상이 내 영혼 위에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갑작스러우면서도 익숙한 일이라서 나는 혈기도 없는 형광등 불빛 밑에서 담배를 피웠다. 바깥에서는 황달에 걸린 것 같은 가로등 빛이 깜빡거렸다.
그러나 나는 시를 쓰지 아니하였다. 차라리 나는 시상이 무슨 색깔을 하고 있는지에 골몰하였다. 매일 내가 삼키는 십 수 개의 알약들을 오늘 아침 나는 잊어버린 것을 떠올렸다. 그리하여 광증이 내 뇌수 속에서 분열의 소리를 외치며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사실 알아차렸다는 표현은 정당하지 아니하다. 약물이 늘 내 광증을 잊어버리게 만들었던 것이다.
곧 나는 현대의학으로 규정지어진 나의 광증에게 네가 시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묻고 싶어졌다. 붓다의 어떤 가르침이 나에게 말했다. 너는 광증에게 질문할 수는 있어도 광증이 답을 주지는 아니하리라고 말이다. 그래서 광증인지 시상인지 알 수 없는 그것이 말하기를: 나는 그저 시베리아에서 내려오는 바람이 죽도록 그리웠다.
사락사락 쌓이는 어둠 속에 도시의 눈물인 듯 습기의 냄새가 났다. 나는 담배를 태우고 또 담배를 태우면서 새벽이 가까워지는 시간에 여름에는 얼마나 많은 영혼들이 자살을 하느냐고 자문했다. 도시에 사는 영혼들은 네 심장박동을 따라 유감이 핏줄 속을 돌아다닐 때 어떤 면도칼 사이에서 세상을 버리는 방법을 찾아내느냐고.
광증아, 내 광증아 너는 언젠가 내가 타고 갈 비루한 황소 한 마리를 데려오리라. 그러면 나는 양발에서 신발을 벗고 맨발로 황소 위에 올라탈 것이다. 그러면 그 비루한 황소는 위로하는 듯 조롱하는 듯 울면서 계곡을 건너고 강을 건널 것이다. 나는 안녕이라고도 하지 않고, 천천히 썩어가는 세상에게 등을 돌릴 것이다.
나는 시베리아의 여인을 처절하게 사랑했었고 계절은 겨울에서 정지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오히려 산골을 떠나서 내 광증을 낳은 어머니의 피폐한 젖가슴 속으로 돌아왔다. 벽을 보고 걸을 때는 알 수 없었던 것이 깨달음처럼 내 머리를 후려쳤다. 그리하여 나는 이 벽이 미로의 한복판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던 것이다.
나는 담배를 피우고 또 담배를 피웠다. 연기가 내 폐를 가득 채우고 내 가슴을 껴안았다. 불빛은 불행하여 아름다웠다. 비극이라고 이름 붙여진 것들이 밤하늘에서 서로 부딪히며 떠돌았다. 나는 길 가는 행인들의 정수리를 쪼았고 그들은 핏방울마저도 체념이었다. 나는 술을 마시러 가리라고 다짐하였다. 나는 소주병을 나팔처럼 들고 노래하리라고 다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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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골목에서

글/시 2014. 6. 28. 23:39 |
서울의 골목에서


주황색 긴 그림자
가끔 한없이 슬픈 실루엣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곤 한다.
심해에 사는 어류의
눈동자 없는 얼굴을 본다면
필경 그러한 느낌이리라.

병든 마스크들, 그러나 거기에는 발악도
순응도 아닌 포기의 발자국이
검은 빛을 받아 선명히 보인다.

오, 인간이라는 서글픈 아이러니여!
아마도 당신은 찬미하지 않을
그 마지막 순간은
소리 없는 물결처럼 묵직하게
당신의 안으로 스며들어올 것이다.

당신의 흉터를 가려줄 안개조차 없는
이 기괴한 내륙에서
우리들은 분명 삭아 들어가고 있으리라
존재의 마지막 편린에 대해
사고의 귀퉁이로도 잡아볼 수 없을 만큼.

우리가 최후에 맞이하게 될 그 어머니에 대하여
우리는 생각해보아야만 하리라. 아니다!
생각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그녀는
우리의 심장을 힘껏 움켜잡고 있다.
그러나 당신, 점점 퇴색되어가는
텅 빈 표정을 가진 당신……

원망의 아우성들을 듣기에는 너무 늦어버렸다.
다만, 잠자는 괴물 같은 냄새를 풍기는
이 골목에서
우리는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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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노예를 구분하는 개념들


 많은 사람들이 영원을 믿고 싶어 한다. 어떤 영원보다도, 특히나 자기 자신이라는 존재의 영속성을 믿고 싶어 하는 것이다. 그들은 약속을 바랬다. 그리고 운이 좋게도, 그들은 약속을 받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누군가가 정해준 모럴과 계율을 따르기만 하면 영생을 얻으리라고 그들은 두꺼운 한 권의 책이라는 형태로 손가락을 건 것이다. 그리고 <그들> 뿐만이 아니라, 수많은 세속적 신앙들은 하나 같이 약속이라도 한 듯이 영원을 가리키고 있다. 문제는 신앙의 종류가 아니라 인간의 욕망인 것이다. 이 지구를 차지하고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과거에도 그러했고, 현재에도 여전히 자신이 사멸하리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싶어 하지 않는다. 나는 그들을 이해한다. 왜냐하면 나는 그들이, 그들의 소시민적인 삶에서 자유와 환희를 찾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항상 주어진 시간이 촉박하다고 느끼고, 자기 자신이 누군지도 모르는 채로, 그리고 도대체 자신이 무엇을 위하여 살았는지도 모르는 채로 죽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무한이라는 시간이 당신에게 주어진다면, 당신은 그것들을 찾을 수 있을까? 글쎄, 천만의 말씀이다.
 아름다움에 대하여 이야기하겠다. 이것은 다소 나 자신만의 미학론에 대한 서술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내가 자신 말고 누구의 미학을 이야기하겠는가. 말하건대 미(美)라는 것은 일종의 빛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각자 다른 미학관이 있지만, 그들이 보는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항상 빛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러나 빛이라는 것은 항상 형태를 달리하고, 종류 또한 한 가지가 아니다. 어떤 아름다움은 초봄에 새싹 위에 내려앉는 황금빛 비단 같은 온유한 빛이고, 어떤 아름다움은 하늘이 쪼개지는 순간 번쩍여 제대로 쳐다볼 수도 없는 섬광이다. 그런데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정신에서의 무한을 추구하던 이들이 보았던 아름다움은 항상 눈 깜빡 할 사이에 사라져버리는 폭력적인 섬광이었다는 것이다. 내가 믿기로는, 그들은 언젠가 태양이 꺼져버릴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실재하지 않는 권위를 위하여 손을 뻗고 기도하던 이들보다도, 더욱 전신전령으로 무한을 추구하던 이들은 차라리 하늘을 향해 침을 뱉은 이들이었다. 그것이 진실에의 추구에 영혼을 쏟아부어버린 대가였다. 그리고 당신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들이 얻은 것이 절망이었다는 사실을. 그래서 그들이 빛에 눈이 타들어가 미쳐버리고 말았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러나 나는 그들에게 동조할 생각은 없다. 물론 나는 그들을 존경한다. 수만 번도 더 반복된 파괴와 창조 끝에서 인간―사회적 동물이기를 포기한 그들을 존경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는 것이 있다. 문제는 우리들의 절대적인 죽음도, 상대주의와 다원주의로 빨려 들어갈 수밖에 없는 시대적 정신도, 존재자로서 품고 있는 절망도 아니다.
 문제는 바로 아름다움이다.
 태양이 꺼져버릴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라. 하늘이 무너지고 모든 것이 차갑게 식어버릴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라. 그리고 보라. 당신이 밤거리를 걷고 있을 때 돌연 보이는, 노란 가로등 빛이 쓰고 있는 치명적인 마스크를, 저 담장 위에서 당신을 지켜보고 있는 들 고양이의 불신으로 된 눈을, 한순간 들렸다가 멀어지는, 보이지도 않는 자동차의 엔진소리를. 그렇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한 가지 뿐이다. 아름다움은 유한성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 말이다.
 수많은 예술가들의 예술작품은 그 유한성을 포착하려고 한 발버둥이다. 한순간에 지나가버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며, 또 언젠가는 세계와 함께 허무 속으로 잠겨버릴, 어찌 보면 단 한 푼의 가치도 없는 순간. 그것만이 그들이 목숨을 걸어야했던 것이었다. 그들은 탐닉했다. 우리 인간이 <그것>을 대할 때, 선택할 수 있는 행위는 탐닉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 말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탐닉하는 인간에게는 회의주의로 돌아설 여유조차 없었기에! 그리하여 죽음이 찾아오리라는 것을 절망으로 느끼지도 않게 되었기에. 사람들이 그를 광인이라고 부르는 와중에도, 그는 자유와 휘황찬란한 빛 속에 있었기에 말이다.
 만일 무언가가 영원히 지속된다면, 확신컨대 그것은 전혀 아름답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시간과 아무런 관계가 없기 때문에 오히려 시간 속에서 퇴색해갈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을 비켜가는 시간으로 인하여 <본질의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그것은 영속하기 때문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되어버릴 것이다. 그것은 진정한 의미로 소멸일 것이다.
 이야기를 다시 돌리겠다. 영원을 바라는 사람들. 영생을 바라는 사람들. 내가 지금부터 하는 말로 인해 당신들이 나를 오만하다고 불러도 나는 개의치 않고 말할 것이다. 영원히 존재하는 것이야말로 기쁨이라고 믿는 자들, 그들의 정신은 천박하다. 그들은 아름다움이 무슨 개념인지를 모른다. 그저 소시민적 쾌락에서 뚝뚝 떨어지는 안일함의 색깔을 미(美)라고 착각하고 있을 뿐이다. 그들은 눈이 멀었다. 존재의 본질이 어떤 빛살을 내고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그들은 눈이 먼 장님들이다. <Memento mori>. 죽음을 상기하라. 그것은 오직 위협이기만 한 것이 아니다. 더욱이 그것은 약자들이 받드는 권위나 약속 따위와는 아무런 상관관계도 없다. 죽음을 상기할수록 당신의 인생은 순간의 미학(美學)에 가까워질 것이다. 왜냐하면 죽음이야말로 당신의 생명을 더욱 찬란한 생명으로 만드는 유일한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말하건대, 문제는 바로 아름다움에 있다.
 아름다움이라는 휘광은 영원을 부정하는 가장 강력한 상징이다. 그리고 인간은 누구나 아름다움을 발견할 자질을 갖고 태어난다. 인간은 미(美)의 빛을 만난다. 인간은 죽는다. 인간은 어떻게 해야 진정으로 <살다 갈> 수 있을지 갈망한다. 아름다움은 당신의 인생을 스쳐지나간다. <허무주의자들의 무덤을 짓밟고 나아가야한다.> 모든 것이 끝나기 때문에 모든 것에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에는 분명 말로 다할 수 없을 정도의 고통이 동반되겠지. 그러나 당신의 영혼이 파괴될 때마다 그 파괴된 부위에서 더 강하고 명징한 새살이 돋는다. 그리고 모든 생(生)이 고통이라는 사실은 이미 우리가 오래 전에 받아들인 진실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고통의 손을 움켜잡는 것이다. 나는 수도(修道)의 길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한다. 그러나 사람들이 광기라고 부르는 길에서, 그 수도의 길이 가장 가까워보인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러니까 모든 고통들이 어느새 퍼레이드 중 사방으로 흩뿌려지는 금화처럼 보이게 될 때, 환희와 절망이 뒤섞여 당신의 눈동자에서 모든 감정이 사라지고 오직 바닥을 알 수 없는 영혼의 구렁만이 보이게 될 때, 미(美)에 대한 탐닉이 당신의 영혼을 자유롭게 만들고 진리에 대한 통찰이 당신의 머릿속에서 사방팔방에서 터져대는 폭죽처럼 터지게 될 때 말이다.
 영원이라는 개념에 침을 뱉을 때 생명은 비로소 생명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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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무주의자들의 무덤을 밟아야만 한다


달이 뜨지 않은 밤이면 산은
더욱 괴기스러운 모습으로 침묵한다.
나무와 풀잎들 사이사이로 어둠을 머금고
가끔 동굴 속에서 으르렁거리는 밤 짐승처럼
배를 깔고 누워 포식성의
고요를
마치 위협인양
취약한 인간의 영혼 앞에 펼쳐 보인다.

나의 동족들아, 같은 피를 마시고 자란
비대하고 결핍된 영혼의 조각들을 가진
같은 어머니 죽음의 치맛자락을 기억하는
동족들아, 너는 분명히
잔혹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저 새까만 침묵을
본 일이 있다.
그리고 너의 마음 한편에는 이상한 분노가
말하자면 오히려 억울함 같은 것이 외친다.
「늙은 자연이여, 이 행성 위에서 당신은 어째서 그리도
우리 나약한 인간들을 향해 적개심 아닌 적개심을,
차라리 공포스러운 장엄함으로 우리의 영혼에
망치질을 하고야 마는가?」

그는 침묵한다! 우리는 그가 입을 여는 것을
단 한 번도 본 일이 없다.
우리가 그와 마주할 때마다 그는
어떤 때는 구부러진 손으로 어둠을 쥐고
어떤 때는 우리의 시각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태고부터 변한 것이 없는 심원한 암흑을
파도소리에 섞어 보낼 뿐이다.

차가운 내륙지방에서 서리만을 먹으면서 자란 인간에게
새까만 밤바다에서 등대 하나에만 의지하여 <길>을 찾으라 한다면
그는 분명히, 차라리 단도를 하나 들어 자신의 목을
찌를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치졸한 에고가
구름 낀 밤중의 산과
은밀하게 그르렁거리는 밤바다를 마주할 때
인간은 자신이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는 치명적인 진실에 영혼이 말라
더 이상 지혜 있는 동물로서의 손과 발도 잃어버리고
도망칠 생각도 못한 채 그 자리에 쓰러져버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의 동족이여,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끝 간 데 없이 펼쳐져 지평선과 하늘마저 뒤섞인
이 황무지 위에서 너희들은 왜 말라버리지 않는가?
공포로 떨리는 비명을 하루 종일 질러대면서
왜 아직도 낮에는 태양을 삼킬 듯이 천공을 향해 입을 벌리고
밤에는 달빛에 맞아 칼자국이 나면서
모래를 그러쥐며 기느냔 말이다.

「우리의 공포는 정당하다.」 그런 말을 하는 너의 얼굴을 내가 보았는데
너에게는 이미 눈동자가 없었다. 푹 파인 구렁 두 개가 있을 뿐이었다.
나는 너희들이 영원을 믿는다고 생각하고
반쯤은 화가 나고 반쯤은 눈물이 날 것 같은 기분으로
네 멱살을 잡아, 들어 올리면서 외쳤다.
「네 아버지가 불타서 모래가 된 것을 기억하라.」
그랬더니 너는 웃는 것처럼 울고, 우는 것처럼
웃으면서 말했다: 「내 관이 비어있어도 나는 괜찮다.」

그런데 이 모든 촌극을 아무 말 없이 지켜보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저쪽에 솟은 모래로 된 산이었다. 그 산은
감정 하나 담기지 않은―그렇기 때문에 우리를 미쳐버리게 하는
그 눈동자로 우리들의 추태를 구름보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우리는 이성을 잃어버릴 뻔 했도다! 내가 말하기를
많은 초월적인 것들은 우리 눈에 거의 절대성으로 비쳐 보인다.
그러면 우리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우리의 초라한 존재성 때문에
우리들은 견딜 수 없는 침묵 속에서
집을 잃고 햇볕 아래 놓인 달팽이처럼 말라비틀어지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돌아버리지 않기 위해, 눈동자 없는 나의 동족이
그대로 산산조각 나서 모래와 재로 변해버리는 것을 막기 위해
그의 칼을 빼앗아서
나의 한쪽 눈알을 도려낸 뒤 그 눈알을 내 동족의 오른쪽 눈구멍에
쑤셔 넣었다.
그리고 나는 피 흘리면서
나의 동족은 내 도려내진 눈에서 흐르는 피를 받아먹으면서
그 모래로 된 거대한 산을 보았다.
그것은 여전히 아무 표정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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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적 예법과 합리주의, 그리고 보리심


 글을 시작하기 전에, 우선 내가 이 글을 쓰기 위해서 많은 양의 진정제와 신경 안정제를 위 속에 털어 넣었다는 사실을 밝힌다.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지금부터 시작하려는 글의 주제에 대하여 나는 이십 년도 넘는 기간 동안 괴물 같은 분노와 증오만을 씹어대면서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분노만으로는 당신의 심장 속 문으로 걸어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증오로 물든 인간의 주장이란 논설이 아닌 차라리 폭력, 그것도 독자의 영혼에 칼을 들이대면서 외쳐대는 폭력인 것이다. 물론 그것만으로 충분했던 시기도 있었다. 당신의 정수리 한복판에 날붙이를 박아 넣을 때마다 뿜어져 나오는 정신의 진액이 내 갈증을 해갈해주었고, 그것만으로 만족했던 시기도 있었다. 그러나 계몽주의나 사회참여문학 같은 이데올로기들은 접어두더라도, 나는 이제 나의 분노들을 문 안에 넣고 자물쇠를 잠가버린 것이다. 항상 증오 때문에 핏발 선 눈동자로 사물을 볼 수는 없다. 내가 앞으로도 계속 글을 쓰기로 길을 정한 이상, 나는 당신들의 얼굴에서 역겨움과 조소, 구역질만을 보고 있을 수는 없는 것이다. 어쩌면 가끔 잠가둔 문이 열리고 이미 내 인격의 일부나 다름없는 그 지옥 같은 감정들이 튀어나올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나중의 일이다. 나는 내가 아는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해야한다.
 지금 이 나라 안에 살고 있는, 어느 정도 나이를 먹고 연식이 생긴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이 사회에서 인간과 인간들의 위치를 결정하는 것은 바로 <예(禮)>라는 것을 말이다. 예절 중에서도 특히 유교적 예법은 우리 사회 가장 깊숙한 곳까지 침투해 사람들의 정신, 그 뿌리 부근에 박혀있다. 아침에 일어나서 밥을 먹고 일을 하고 잠자리에 들 때까지, 그 유교적 예법이라는 것은 단 한 시도 당신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이것은 우리들의 머릿속에 너무 깊이 뿌리를 내려서 이제는 차라리 초자아(Super-ego)의 일부나 다름없다. 그리고 심지어 우리들은 그 예법의 정당성에 대해서 의심조차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 생활의 거의 전부가 그것으로부터 발생한 것이기 때문이다. 길을 걸으면서도 우리는 반대편에서 노인이 걸어오면 지래 겁을 먹는다. 왜냐하면 <반드시> 우리가 길을 비키고 고개를 숙여야하기 때문이다. 술자리에서 넥타이를 풀고 잔을 부딪치면서도 우리는 긴장하고 있어야한다. 겁도 없이 어른보다 잔을 위로 들고 건배를 했다가는 나중에 무슨 해코지를 당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은 퍽도 이상한 일이다. 한민족이라는 민족이 언제부터 이렇게 유교의 지배를 받게 되었는지 생각해보면, 그것은 그리 오래된 일도 아니다. 고작해야 조선시대와 함께 시작된 유교적 문명은 당신들의 민족이 과거에 선택했던 다른 사상적 문명의 유구함을 생각해보면 굉장히 짧고, 또 공허한 것이기 때문이다. 유교라는 것은 끝없는 전쟁으로 피폐하던 당시의 중국에서 통치 이데올로기로서 발생한 것이다. 그리고 모두가 알다시피, 통치 이데올로기라는 것은 위정자들이 우민들을 보다 손쉽게 조종하기 위해 만들어낸 <식(式)>이다. 애당초부터 그들에게 진리나, 사물 혹은 존재의 본질에 대한 탐구심은 없다. 그들이 만들어낸 <-ism>은 사실 사상조차 아닌 것이다. 사상이 사상이 되기 위해서는 우선은 존재에 대한 고찰과 성찰, 그리고 세계를 향한 깊이 있는 통찰이 있어야한다. 그리고 또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는, 바로 <정직>이다. 존재로서의 정직. 인간으로서의 정직. 인식하고 관찰하는 자로서의 정직. 그리고 표현하는 자로서의 정직 말이다. 설령 그 누군가가 아무리 그로테스크하고 잔혹한 사상을 부르짖더라도, 그것이 정직하다면 그 부르짖음에는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시 중국 왕조, 그리고 조선 왕조, 지금에 와서는 우리들의 사회에까지 적용되고 있는 그 유교라는 것에서는 도무지 인간 본연에 대한 통찰이나 정직성을 찾아볼 수가 없다. 그들이 말한 것은 오직 하나다. 그들-즉 더욱 위에 서고 싶은 자들이 인가를 내린 가면만을 뒤집어쓰라는 것이다. 그들이 말하는 예절이라는 것도 굉장한 우스갯소리다. 그 예절의 이름으로 존중받아야할 사람이 된 이들은, 스스로가 타인들보다 우월하다는 주장에 대한 근거가 <피>와 <시간> 밖에 없는 것이다. 왕을 받들어 모셔야하는 이유는 그가 왕가에서 태어났기 때문이고, 어른 앞에서 엎드려야하는 이유는 그가 당신보다 더 많은 시간을 먹어치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유교교리의 얄팍함은, 마치 파시스트처럼 꽉 막힌 사고의 폐쇄성에 있다. 그들은 새로운 발상은 그것이 무엇이든 자라나기도 전에 목을 잘라버린다. 그들은 의문이나 반발 따위는 꿈도 꿀 수 없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목적이다. 그리고 조선왕조 500년. 그들은 역사 속에서 공중분해 되었다.
 그러나 국가가 분쇄되어도 그간 민생들에게 주입되어온 통치 이데올로기는 사라지지 않은 모양이다. 식민지시대와 근대를 거쳐, 그럭저럭 숨통이 트인 현대에 와서도 유교적 사고방식은 여전히 당신들의 미간 한복판에 독을 품은 화살촉처럼 박혀있다. 물론 많은 변화가 있었다. 서방세계의 문물과 문화가 한반도를 뒤덮었고, 젊은이들은 몇 번이나 전투경찰들에게 화염병을 던지며 목소리를 내고 싶어 했다. 그에 힘입어 우리가 사는 국가는 서양에서 온 <합리주의>라는 것을 사회에 적용했다. 몇 계몽주의자들은 더 이상의 허례허식을 붕괴시키기 위해 사람들 앞에서 연설을 하기도 했고 글을 쓰기도 했고 악기를 연주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번 굳게 닫힌 인간들의 사고방식은 쉽게 열릴 수가 없는 법이다. 지금 우리들의 사회는, 늙은 유교적 예법이라는 기반 위에 서양적 합리주의로 페인트칠을 한 것일 뿐인 괴상망측한 모양새가 되었다. 법정 안에서 매일 같이 벌어지는 일들을 관찰해보면 이러한 사실을 더 명확하게 알 수 있다. 그들의 두꺼운 법전이 말하고 있는 것은 분명 합리주의와 자연법에 기초한 사회윤리인데, 그 사회윤리는 한 꺼풀만 벗겨보면 조선왕조 시대의 유교적 교리를 말하고 있고, 심지어 법봉을 내리치는 판사가 내린 판결의 근거는 <오래 전부터 우리의 초자아가 되어버린 유교적 교리에 비추어봤을 때 저 범죄자는 얼마나 싹수가 없는가>에 기반하고 있다. 더 나아가 패륜범죄라도 접하게 되면 상황은 더욱 볼만하다. 검사나 판사들은 이미 오래된 분노로 가득하고, 언론은 <극악무도한 패륜아>라는 문장을 어렵지 않게 사용하며, 그 범죄자에 대한 처벌은 이미 <처벌>이 아니라 <복수>나 다름없다. 도대체 패륜이라는 것이 무슨 뜻인가? 그 범죄자는 다른 범죄자들과 하등 다를 것이 없는 <그냥 범죄자>란 말이다. 이럴 거면 차라리, 마치 어머니의 장례식장에서 밀크커피를 마셨다는 이유로 사형당한 뫼르소처럼, 그 범죄자가 식사시간에 어른들보다 먼저 밥숟갈을 떴다는 죄목도 추가하란 말이다.
 이쯤에서 잠깐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 나는 분명히 분노로 이 글을 쓰지는 않겠다고 다짐했었는데 글을 진행하다보니 어느새 혈관 속에서 피가 끓고 있었던 모양이다. 마음을 다잡고 계속하도록 하자.
 예절의 본질에 대해서 생각해보도록 하자. 그것은 유교적 교리에 있지도 인간들 사이의 거리에 있지도 않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진정한 예절이란 식이나 법 따위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무아, 자비심, 보리심에 진정한 예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거기에는 특별한 규정 같은 것이 없다. 그러나 소위 깨달았다고 하는 스승들의 행위에는 분명히 모든 인간들에 대한 존중과 사랑이 있다. 통치 이데올로기나 철학적 사유에서 나온 규정들보다 더 확실하고 자연스러우며 유연한 것이 거기에는 있다. 모든 인간들을 자비로 바라보고, 타인과 나 사이의 경계가 사라져 한 몸처럼 되고 나면 인간이 자신의 몸을 존중하듯이 타인도 자연스럽게 존중하게 된다. 상대가 불편하면 자신이 불편한 것과 다름없으니 그를 편하게 해주고, 상대가 고통이나 슬픔을 느낀다면 자신이 그런 감각을 느끼는 것처럼 그것들을 해소해주려고 노력한다. 이 사회에 필요한 것은 다른 누군가를 규제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욕망을 먼저 규제하는 것이다. 모든 이들을 자신의 신체일부처럼 여긴다면 그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 걸고 매달려있는 예법이라는 거추장스러운 것이 도대체 왜 필요하겠는가? 나는 부디 당신들이 자유로워지기를 바란다. 처음 태어났을 때부터 갖고 있던 <존재로서의 자유>라는 것을, 부디 다시 발견하기를 바란다. 이 사회에서 너무 오래 살아왔기에 스스로도 눈치 채지 못하고 발목에 족쇄를 달아 스스로 노예가 된 사람들이, 모든 인간은 처음부터 그 누구의, 그 무엇의 노예도 아니었다는 사실을 정신의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느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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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나약함을 정의내릴 수 있는가

 ■ 항상 사회에 남아 그들이 군대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것을 관망하고 있는 나로서는, 군대에서 그들이 배워온 것, 그리고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규격화된 정신을 가지게 된 것에 대해서 수많은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어떤 친구들은 내게 <피터 팬>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그들이 보기에 나는 온몸, 온정신을 다하여 어른이 되는 것을 거부하는 유별난 청년으로 보이는 모양이다. 아, 그들의 통찰을 너무 안일한 것이라고 비난할 자신감이 나에게는 없다. 그리고 군대라는 2년간의 사회인이 되기 위한 스파르타식 교육을 마치고 돌아온 그들에게, 내가 다소 가엾은 인간으로 보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대하여, 나는 반박할 의지조차 없다. 그렇다, 사실 나는 아직도 이 세상의 온갖 것들에 반항하며 소모적 투쟁을 치르고 있다. 이 사회를 지탱하는 이들이 철썩 같이 믿고 있는 유교적 예법, 조직사회의 규율, 부조리에 대해 아무런 감정도 갖지 않는 삶, 과잉된 합리성과 실존적 인간조건에 대한 회피. 내가 어머니의 살점과 분리되었을 적부터 나의 심장 속에 살고 있는 그 피투성이의 야수는, 분노와 증오라는 이빨로 아직까지 나의 가슴을 물어뜯고 있다. 그러나 이제 막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 나의 친구들은 나의 흉터를 이해하지 못하며, 거기서 흘러나오는 찐득찐득한 피를 객기라고마저 칭한다. 나는 그들을 탓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반박의 말조차 꺼내지 않는다. 이런 위험한 전쟁 중에 입으로 내뱉는 말들은, 언어라는 것이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에서 굉장히 피상적인 것밖에는 표현할 수 없다는 진실에 힘입어, 나 자신의 어리석음을 증명하는 것밖에는 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나는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 순순히 털어놓겠다. 내가 발견한 어른이 되지 않는 방법은, 그 누구에게도 애정이나 신뢰를 주지 않는 것이었다. 나는 사람들과, 심지어 내 절친한 친구들과도 정신적으로 깊은 관계를 맺지 않는다. 만일 나의 오래된 고독이 머리를 내밀거나 상대가 나에게 어떠한 종류의 매력을 느껴, 내가 그어놓은 선이 침범 당하려하는 기색만 보여도 나는 불안 때문에 뒤죽박죽이 된 눈동자로 멀리 도망친다. 나의 가장 절친한 친구조차도 내게는 그저 목의 갈증을 교우관계에서 해갈하기 위한 한 순간의 쾌락을 위한 마네킹이고, 내일 그가 차에 치여 죽는다고 하더라도 나는 그의 장례식조차 가지 않을 것이다. 말하건대 나는 모든 인간관계에서 공포를 느낀다. 내 심장을 시꺼멓게 물들인 것들은 분노와 증오, 불신과 비밀스러운 조소다. 누군가를 짊어지고 그 무게를 감당한다는 책임으로부터 영원히 도망치고 있는 나는, 어쩌면 정말로 <피터 팬>, 팅커벨이 없어 날지 못하는 피터 팬일지도 모르는 것이다.
 이쯤 되면 이 산문은 이미 나 자신에 대한, 나 자신을 향한 고해나 마찬가지다. 스스로도 아직 확신하지 못하는 것이지만, 내게 있어 문학이란-예술이란 어떤 위대함이나 고결함도 없는 단순히 비겁한 도주로인 것일지도 모른다. 추악함과 퇴폐 속에서 자유와 미학을 찾겠다고 제 발로 세상의 밑바닥까지 내려간 것은, 밝은 세계에서 얼굴을 들고 다니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오로지 문학과 미학에 온 생애를 바치겠다고 다른 그 무엇도 짊어지거나 손을 마주잡지 않은 이유는, 인간으로서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내게는 너무도 힘든 일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인간을 사랑하기를 그만두겠다고 내 고독의 목에 쇠사슬을 감아놓은 것은, 내게 사랑스러운 존재가 생긴다는 것을 감당하기에 나는 너무 취약한 영혼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쯤에서 나는 자조 섞인 목소리로 말한다. 독자여, 도대체 무슨 영광을 얻겠다고 당신은 내가 나 자신이 불량품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글을 읽고 있는가? 이것은 패배주의와 퇴폐주의에 빠진, 보는 것만으로도 구역질이 날법한 인간의 고백록이 아닌가. 그리고 이런 글을 쓰는 내가 사실은 그 어떤 종류의 도움도 거절한다는 것을, 무엇보다도 당신이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내가 어른이 되기를 거부하는 이유가 어른이 되어 짊어져야할 책임들이 두려운 것인지, 아니면 여전히 이 세상의 긍정할 수 없는 수만 가지 부조리들과 짐승 같은 싸움을 벌여야하는 것 때문인지 분간할 수도 없다. 어쩌면 둘 중 하나일 것이고, 어쩌면 두 가지가 혼재하고 있을 수도 있겠지.
 아, 그런데 심지어 나는 더 이상 스스로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 방법까지 발견해버렸다! 그것은 이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들 가운데 무엇보다도 간단하고 손쉬운 방법이다. 그것이 무엇인가 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당신의 본성 속에 숨어있는 광기의 문을 찾는 것이다. 그리고 그 흉측스러운 문을 열고, 당신의 고민, 고통, 슬픔, 기쁨, 절망과 희열까지 모조리 다 그 문 안에 처넣어버리고 문을 걸어 잠그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당신은 더 이상 고통 받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한다. 광기의 문 속에서 온갖 감정과 현상들은 진흙탕처럼 뒤섞이고 부글부글 끓다가, 결국 내놓는 것은 당신을 포함한 이 세상 전부가 수준 낮은 농담이라는 결론이다. 그렇게 되면 무슨 일에도 웃을 수 있고, 그 무엇도 당신을 상처주지 못한다……. 심지어 당신의 오만가지 괴로운 과거들도 더는 명확하게 보이지 않을 것이다. 과거가 없는 인간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당신은 당신 스스로가 어떤 분명한 존재가 아니라, 그저 가스가 떨어지면 사라지는 라이터 불꽃이라는 사실을 너무도 자연스럽게 믿어버린다.
 이것은 조언이 아니다. 나는 누군가에게 조언을 하기에는 너무 낮은 위치에 있는 인간이다. 나는 스스로 절벽 밑바닥에 떨어져서, 기어 올라가려는 노력을 하기는커녕 그 밑바닥에서 오히려 더 깊은 구멍을 파고 있는 인간이다. 심지어 나는 가끔 나의 늙은 분노가 이끄는 대로 들고 있던 삽을 휘둘러 사람들의 목을 벤다. 나는 아직 내 본성 어딘가에 자비심과 찬란한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고 너무도 작은 목소리로 외치고 있는 희망, 그 희망의 입에마저 재갈을 물려버렸다. 이제 내게 절망과 비참은 나의 인격이나 다름없게 되어버렸다.
 그러나, 아, 선량한 독자들이여. 지금 하늘에는 너무나도 밝고 고요한 달이 떠있다. 담배연기와 이유를 알 수 없는 우울 속에서 그 달빛과 마주하자 내 눈에서는 이미 말라버린 줄 알았던 눈물이 흘러나올 뻔했다. 나도 슬픔을 느낀다. 어른이 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 나임에도, 이런 밤이면 나의 나약함과 스스로 만들어낸 비참이 눈동자 앞에서 흔들거린다. 완전히 미쳐버린 광인들이여, 부디 그 광증 밖으로 나오지 말라. 광기와 이성의 경계선에서 세상을 본다는 것은 심장이 수천 조각으로 썰리는 것 같은 고통을 당신에게 선사할 것이다. 부디 괴물로 살아가다가 죽음을 맞기를 바란다. 그것이 당신들의 평화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말의 전부다. 그리고 그들과는 정반대의 극점에 있는 어른들, 선량한 사회의 소시민들이여. 고흐가 말했듯이 철학과 사색은 당신을 비극적인 죽음으로 몰고 갈 것이다. 부디 그대들의 사랑스러운 가정과 안전한 직장에 몸을 담는 것을 그만두지 말라. 존재에 대한 고민은 다른 불쌍한 사람들에게 맡겨버려라. 철학자들의 논문을 불태우고 그대들의 일상을 지키는 일에만 골몰하라.
 스님께서는 내게, 모든 이들의 자성 속에 부처가 있다고 하셨다. 그의 말씀대로라면 이렇게 엉망진창으로 망가진 나조차도 본성 속에서 자비와 평온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나는 그의 말을 믿고 싶다. 그러나 너무 오래전부터 나는 희망의 입에 재갈을 물려놓았다. 나는 그 성직자의 자비심 넘치는 말에도 심장을 칼로 난도질당하는 것 같은 고통만이 느껴졌다.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거렸다. 모른다. 언젠가 이 분노와 증오가 사라진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그때 나는 그의 가르침을 믿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 당신은 그의 가르침을 믿을 수 있기를 바란다. 사실 나는 얼굴도 모르는 당신을 한없이 증오하지만, 동시에 당신이 내가 있는 이 끔찍한 구렁텅이에 빠지지 않기를 바라기도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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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대 앞에서

글/에세이 2014. 5. 1. 19:18 |
교수대 앞에서

 한국에서 사형은 다음과 같은 순서로 이루어진다. 우선 검사가 피고가 죽어 마땅한 이유를 목청 높여 부르짖는다. 그는 이러한 말들을 한다. 우리 사회의 규율과 양심, 국민이 지켜야할 절대적 질서, 법의 고결함, 그리고 검사 앞에 선 불쌍한 불량인자가 이 공동체에서 제거 당해야할 정당성. 그런 것들 말이다. 사실 이 검사라는 인간은 퍽도 호감이 가는 생김을 하고 있다. 그가 가진 인간적 매력이라는 것은, 그에게 흔들림 없는 신념이 있음에 기반하고 있다. 그는 인간의 사회 안에 사는 사람인 것이다. 크리스천들이 성경을 갖고 다니듯이 그 검사는 법전을 들고 다니며, 그 법전의 성스러움을 믿고, 심지어 자신의 영혼을 책갈피처럼 그 두꺼운 책의 책장 사이에 끼워두기까지 한다. 아무튼 그는 범죄자에 대하여 사회적 인간이 가져야할 건전한 분노를 사정없이 발산한다. 게다가 그는 자신의 그러한 분노에 자부심마저 느끼는 것이다. 왜인가 하면, 사회라는, 더 나아가 국가와 집단의식이라는 우상(Idol)께서 그의 분노를 인정해주었기 때문이다. 이 검사라는 인간은 도무지 망설일 이유가 없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그 매력적이고 분노 가득한 목소리로, <국가>께서 이 더러운 범죄자에게 내리라고 말씀하신 처벌은 바로 죽음이라고 마침표를 찍는다. 피고의 변호사는 손짓발짓을 다 써가며 형량을 낮춰보려고 노력하지만, 공동체의 세례를 받은―마치 신부(神父)와 같은 검사의 지엄한, 살인에 대한 명령을 어떻게 흔들어볼 여지가 없다. 사실은 이 변호사조차도 자신이 변호해야할 범죄자에게 왠지 모를 역겨움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저런 공방이 오간 뒤에, 판사는 몇 가지 생각을 한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그의 사고는 <살인의 본질>에 대해서는 완전히 빗겨 가있다. 그는 그저 법전과 사회적 윤리에 비추어보아 검사와 변호사 중 누구의 말이 더 그럴듯하게 들리는 지를 고민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무로 만들어진 망치가 세 번 내려쳐진다. 옳거니, 그들 생각에 저 범죄자는 이 사회에서 하등 쓸모가 없으므로, 목을 매달아 죽인들 누구 하나 불쾌하게 생각하는 이가 없을 것 같은 것이다.
 판결이 내려진 후 검사는 오늘도 사회의 일부로서 열심히 일을 했다는 만족감을 느끼며 돌아선다. 검사는 저 범죄자를 죽이라고 말했고, 판사가 그 주장을 입증해주었으니, 이제 저 범죄자는 대롱대롱 목이 매달려 죽을 것이다. 검사와 판사가 할 일은 여기까지다. 그들은 이제 집으로 돌아가 사랑스러운 가족들을 껴안고 먹음직스런 식사를 한 뒤에 기분 좋은 피로를 느끼며 잠에 들 것이다. 아하, 그것 참 신통한 방법이다.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도 한 사람을 죽일 수 있으니 이 얼마나 훌륭한 사회란 말인가. 식탁에 돼지고기를 올리기 위해 돼지의 멱을 따고 온몸의 피를 묻히며 찢어지는 돼지 울음소리를 듣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퍽도 마음 가뿐한 일이다.
 여하간 변호사는 그 흉악한 범죄자에게 찝찝한 목소리로 사과 한 마디쯤은 했을 것이다. 이제 피고는 교도소로 옮겨지고, 화장실만한 감옥에 갇혀 거의 모든 행위가 제한된다. 그 비좁은 감방에서 제한된 자유만을 가지고서 이제 그가 기다려야하는 것은 한 번의 사인이다. 나라의 녹을 먹고 사는 훌륭한 정치가가 사형집행을 위한 서류에 사인을 하기만을 기다려야하는 것이다. 그리고 한 주, 혹은 몇 개월이 지난 뒤에 서류에 인가가 내려진다. 우리는 도대체 그 서류에 사인한 사람이 어떤 낯짝을 하고 있는지 상상도 할 수가 없다. 왜 자신이 굳이 이런 서류에 사인을 해야 되는 가에 대해서 그 누군가는 약간의 불쾌감을 느꼈을 수도 있겠지. 그러나 아무튼 일은 일이다. 그는 사인을 한 뒤에 도장을 찍고 만다.
 날이 정해지면 이제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그리고 어느 날 새벽에 간수들이 사형수를 감옥에서 꺼내더니 머리에 자루를 뒤집어씌우고 어딘가로 끌고 간다. 사형수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 길인지 정도는 예측하고 있다. 그러나 도무지 반항할 틈새도 없을 정도로 모든 일이 기계적으로 진행된다. 간수들은 교수대 앞으로 그를 데려가 목에 밧줄을 건 뒤에 사라진다. 그들이 할 일은 거기까지이다. 그리고 이제 새로운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세 명의 공무원이 바로 그들이다. 그들에게 내려진 명령은 아무도 살인을 저지르지 않고서 그 사형수를 죽이라는 수수께끼 같은 것이다. 만약 당신에게 그런 명령이 내려진다면 아마 당신은 방편을 찾기 위해 꽤나 고심할 것이다. 그러나 아무 걱정 없다. 우리들은 수 천 년 전부터 그 방법을 찾아내왔다. 그리하여 그들이 하는 일은, 목에 밧줄이 걸린 사형수를 내버려두고 다른 방으로 들어가, 세 개의 버튼 앞에 각자 서는 것이다. 그리고 호흡을 맞추기 위해 숫자를 세고, 동시에 버튼 세 개를 누른다. 그 세 개의 버튼 중 하나가 무작위하게 작동하여 사형수 밑의 발판이 덜컹하고 떨어진다. 그 사람은 이제 목뼈가 분질러져 죽었다.
 이것 좀 보시라. 기가 막히지 않는가? 아무도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는데 한 남자가 살해당했다. 사형이라는 절차에 가담한 사람들 중 아무도 손에 피를 묻히지 않았다. 아무도 죄책감이나 살생을 저질렀다는 지저분한 감정을 느낄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아무도 그 사형수를 죽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지혜라는 것도 참 대단하지 아니한가? 과거에는 사람을 죽이려면 주먹이든 칼이든 도끼든, 무엇이든 쥐고서 직접 손을 휘둘러야했다. 그러나 아시다시피 사람이 사람을 죽인다는 것은 아무리 이유가 명확하다고 해도 기분이 더러운 일이다. 그래서 인간들은 이 사회의 편의를 위해서 책임이라는 것을 국가나 집단 같은 기묘한 추상성에 전가하고 마지막에는 빨간색의 작은 버튼이라는 형태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심지어 이제는 누가 그 사형수를 죽인 건지 분간조차 할 수가 없다. 옳거니, 그래서 당신들의 사회라는 것은 더 이상 존재에 대한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기로 결심한 것이로군…….
 그런데, 나는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당신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의혹에 빠질 것 같다는 사실을 추측할 수 있다. 뭔가가 분명하지가 않은 것이다. 그 사형수의 죽음을 멋진 논리로 부르짖던 검사는 지금 어딜 갔지? 사형 집행 서류에 사인을 한 그 신사는 왜 코빼기도 보이지 않느냔 말이야? 글쎄, 만약 당신이 그런 의혹을 느낀다면, 지금이라도 당신의 손을 유심히 보기 바란다. 그리고 당신의 지갑에 들어있는 반짝거리는 지폐들도 말이다. 당신들이 작당하여 거울로 된 미로에 파묻어버린 것, 그것이 바로 거기에 있다.
 당신들의 손과 지폐에 묻어있는 신선하고 끈적거리는 피가 보이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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굽어진 높이에 대한 노래

 어느 날 남자가 방에서, 그러니까 철학자들의 논문과 몽상가들의 일기가 즐비하게 널려있는 그의 방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갑자기 자신이 계시를 받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방의 천장에는 지금까지처럼 벽지와 벌레의 시체가 쌓여있는 형광등이 아닌, 구형의 우주가 불경하고 혼란스러운 혼잣말을 외면서 돌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심장에 단도가 박힌 것처럼 찬탄했다. 그의 방에 쌓인 서적들만큼이나 수가 많은 그의 가면들이 일제히 입을 닫은 것이었다. 그리고 대양을 헤엄치는 한 마리의 위대한 고래처럼 묵직한 진실이―그것을 진리라고 불러도 오만한 일이 아니다!― 그의 영혼 속에서 근엄하고 단조로운 노래 가락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매일 아침 그렇듯이 그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아 졸도했다가 더러운 진창에서 깨어난 기분이었는데, 그것이야말로 그가 받은 계시의 중요성을 뒷받침하는 감각이었다. <보라! 이 세상은 거대한 구렁일지어다. 구렁 밑바닥에서 보는 밤하늘에는 신의 핏방울 같은 별들이 수학을 만들고 그들의 완전한 질서를 초월적인 목소리로 노래한다……. 그런데 우리들은 칼을 쥐고 태어난 형제들이어라. 말하건대 초인(Übermensch)은 이 전쟁에서 영원히 승리할 수 없다는 운명에 승리한 자일지어다. 그는 날 적부터 갖고 있던 뾰족한 단도로 독생자의 심장을 찔러버렸다! 모든 우상이 죽어버렸다. 모든 신들의 목은 낫에 베여 뎅그렁 뎅그렁 소리를 내면서 떨어져버렸다. 그런데 저 불경한 우주 한복판에서 끔찍스러운 웃음소리로 숨넘어갈 듯 웃고 있는 저 의지는 무엇인가?> 그는 벌떡 일어나서 자신의 발치를 내려다보더니 다시 천장에서 회전하고 있는 구형의 우주를 보았다. 그리고 그는 경외하는 눈동자로 외쳤다: 권태의 왕이여! 그대가 거기에 있다는 것을 나는 알 수 있다. 왜냐하면 내가 잠들어 있을 때, 그대가 그대의 독이 묻은 손가락으로 내 영혼의 머리를 건드렸기 때문이다. 그 독은 살점을 파먹는 나병균처럼 순식간에 나의 영혼을 점령해버렸다. 그리하여 내 혈관 속에는 그대의 신적인 독액이 돌았다. 덕분에 내 정신은 빼내어진 토끼의 눈알처럼 맑고 투명해졌다. 그래서 나는 결국 그대의 무시무시한 이름을 알아버리고 만 것이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그는 마치 신들린 무당처럼 책상으로 뛰어가더니 노트를 펼치고 그곳에 비밀스럽게 방금 알아낸 <권태의 왕의 이름>을 적었다. 이렇게 해두자! 그리고 어느 누구에게도 이 노트를 보여주지 말도록 하자. 왜냐하면 이것은 무시무시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자의 이름이 이것이라는 사실은 너무나도 무서운 사실이라서 만일 순한 양들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면 그 양들의 뇌는 수천 조각으로 깨져버리고 말 것이다. 그래서 그는 노트를 덮고 책상서랍 가장 깊은 곳에 넣었다. 그의 눈동자는 마치 방금 천사를 죽인 인간의 것처럼 초조함으로 번뜩이고 있었다. 그 천사의 피는 이상한 색깔이었다! 그는 갑자기 화가 나서 손에 쥐고 있던 만년필을 집어던지더니, 자신의 육체를 저주하기 시작했다. <오, 이 기적이여! 이루 말할 수 없는 호르몬의 화학작용으로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는 육신이여! 그대는 기적적이도다! 그리고 그대는 저주일지어다. 모든 인간들이 열 개의 손가락과 두 개의 눈을 갖고 있다는 진실은 인간존재의 진보를 속박해버렸다. 내가 방금 이루어낸 발견을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아이러니란 말인가? 나 또한 인간의 몸에서 태어났다. 나도 열 개의 손가락과 두 개의 눈을 갖고 있는 필멸하는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내 영혼은 그의 손가락이 내 머리에 독을 묻힌 순간 수천 개의 머리를 갖고 만 개의 눈동자를 갖고 있는 메두사처럼 되어버렸다. 보라, 지금 몇 개의 목들이 답답한 육신을 견디지 못하고 내 입을 통해 밖으로 나오려고 한다……. 이제 내 육신과 영혼은 도무지 짝이 맞지 않는다. 내가 토한 토사물에서는 괴물들이 태어나 기어 다니며 인간들에게 저주받은 복음을 전파할 것이다. 심지어 이제 나는 그러한 사실에 슬픔조차 느끼지 못한다!> 천상의 빛이 닿지 않는 곳으로 굴러 떨어진 그는 광포한 비명을 지르면서 자신의 방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그가 방문을 닫을 때 땅이 무너지는 소리가 났고, 회전하는 구체의 우주는 방 안에 갇혀버렸다. 진리를 본 대가가 이런 것이라면 이 세계는 그야말로 조악한 농담과 같다! 손가락 끝으로 개미를 눌러죽이며 노는 어린아이의 작은 마당처럼, 이 마당은 개미들에게 결코 행운만은 아닌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여, 그대의 다섯 손가락으로 쥘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그것뿐이다. 불경스러운 피리소리가 울려 퍼지는 천상을 그대는 그저 경외하고 존경하며 두 손을 모아 기도할 수밖에! 그리고 저 권태의 왕에게 어떠한 종류의 믿음이라도 있을 것이라고, 그대는 절대로 기대하지 못할 것이다.
 남자가 더럽고 좁은 거리로 뛰쳐나갔을 때 하늘은 밤이었다. 그는 쫓겨 다니는 사람처럼 불안하고 견딜 수 없는 심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는데 그곳에는 공을 가지고 노는 한 귀여운 어린아이가 있었다. 갑자기 지독한 생각이 남자의 머리를 번갯불처럼 스쳐지나가고 그는 주먹을 쥐며 웃었다. 내가 무슨 짓을 하든지 나도 인간이라는 한계를 벗어나지는 못할 것이다! 그는 자신의 머리털을 정리하더니 아이에게로 다가가 말했다.
 얘야, 즐거우냐?
 예.
 그렇다면 너에게는 분명히 훌륭한 부모님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니?
 맞아요.
 그리고 네 부모님은 그들이 자신들의 부모님으로부터 태어났다고 너에게 가르쳤을 것이다. 그래서 너는 인간이 어떻게 생명을 보존해가는 지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너는 지금 공을 가지고 놀고 있는 네 아동기가 전광석화처럼 지나가고 언젠가는 일종의 흉터로 네게 남을 것이라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은총을 받았어요.
 너는 마치 신부처럼 이야기한다! 그런데 내가 너의 갈색 눈동자를 보니, 네가 모든 이들이 갖고 있는 막연한 불안을 품고 있다는 사실이 빤히 보인다. 그리하여 너도 나와 똑같은 인간인 것이다! 너의 살은 아직 부드럽고 약하며 근육은 실낱같다. 그리고 너의 영혼은 무구하지만 아직 악(惡)에 익숙하지 않아 앞으로 수많은 칼과 창들이 네 영혼에 박힐 것이다.
 그것은 무서워요.
 그렇다면 나는 너에게 축복을 내리는 기분으로 말해주겠다. 너는 신의 이름을 알아야 한다! 너의 부모의 부모의 부모의 부모를 낳은 왕의 이름을 알아야 한다. 이것은 굉장한 비밀이지만, 너는 어린아이의 순진한 영혼을 갖고 있기 때문에 나는 너에게 그 이름을 알려줄 것이다.
 그리고 남자는 아이의 귀에 대고 그 이름을 속삭였다. 그랬더니 아이의 얼굴은 새파랗게 변하고 딸꾹질을 하는가 싶더니 그는 들고 있던 공을 놓쳐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하얗게 질린 갈색 눈동자로 외마디 비명을 지르려다가 입을 막고, 길 저편으로 도망쳐버렸다. 도망쳐버렸다! 자, 달려라, 도망쳐라. 너는 이제 사흘 밤을 앓다가 일어서서 너의 부모에게, 친구에게 가서 그 이름을 말할 것이다. 너의 손톱은 갈퀴가 될 것이고 송곳니는 나이프처럼 날카로워질 것이다. 자, 달려라, 도망쳐라. 나는 이 더러운 골목거리에 서서 네가 도망치는 것을 보고 있다. 나의 목구멍에서는 사악한 웃음이 솟아나오고 눈에서는 내가 이종(異種)으로 변해버렸다는 사실에 대한 눈물이 흘러나온다. 그는 웃고 울면서 골목거리에 서 있다가 주머니에서 면도칼을 꺼내더니 자신의 혀를 끊어버렸다. 그때 달빛이 찬란하게 번뜩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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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의 끝자락에서


 모든 것이 변하지 않는 것 같으면서도 계속해서 변해가고, 변하는 것 같으면서도 변하지 않는다. 어제 왔던 봄이 어느새 여름과 가을을 거쳐, 북풍과 함께 몰아치는 겨울로 나타난다. 새로운 한 해를 얼마 남기지 않은 지금, 우리는 신년이라는 것이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돌았을 뿐이고, 과거에도 수도 없이 그래왔으며 앞으로도 오래도록 그럴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자신의 인생에 대해 회고해야만 한다는 의무감을 느낀다.
 앙상하게 뼈대만 남은 나무들 사이로 얼음송곳 같은 겨울의 빛살이 비추기 시작하면 나는 언제나 고요한 죽음을 떠올린다. 모든 것이 잠에 들고 죽는 계절, 이 추위 속에서는 인간들마저도 말이 없어지고 돌과 불꽃으로 쌓은 자신의 방패 밑으로 기어들어간다. 사방에 죽음이 만연해있고 여름에는 그렇게도 수다스러웠던 태양이 이제 대지를 주시하는 하나의 거대한 눈동자 같은 모습으로 절망적인 침묵을 지키고 있다. 이런 계절에야말로 사람은 삶을 사유한다. 황금색 비단 같은 햇살의 물결이 나체의 싱그러운 피부를 감싸 안고 파도 속에서 생명의 호흡을 느끼며 수영하던 여름에는 사유할 시간이 없었다. 그때는 모든 이들이 생명을 소진하느라 바쁠 뿐이었다. 그러나 이 추운 계절에 우리는 눈앞에 펼쳐진 광대한 죽음의 그러데이션을 마주하고 생각에 빠질 시간이 얼마든지 있다. 콘크리트 도로 위를 굴러다니는 시멘트 조각마저도 잠에 빠져있는 것 같은 시간에, 오히려 우리는 우리의 삶에, 변화무쌍하면서도 한결 같은 세상 어딘가에 영원의 흔적이 남아있는 것 같다고 느낀다.
 영원의 흔적, 그것은 수천 년이나 젊은이들의 영혼을 괴롭혀온 것이었다. 우리는 만물의 한계성을 알고 있다. 태어난 것은 죽고, 만들어진 것은 망가진다. 그런데도 젊은 예술가들의 영혼은 이 반복되는 계절 속에서, 피와 흙으로 다져진 땅의 역사와 하늘의 광활함 때문에 혼란하고 마는 것이다. 그것은 무한에 대한 갈구이다. 이 위대하고도 위험한 갈구는 어째서인지는 몰라도 인간의 본성처럼 모두의 마음속에 뿌리를 박고 있다. 바로 그것 때문에 인류는 종교를 만들었고 영원불멸하는 영혼의 존재를 증명하려고 애를 썼으며 절대자의 허무한 발자국을 찾아 헤매었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충분히 지혜로운 이들은 누구나 알고 있다. 이 세상에 무한한 것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적어도 인간에게는, 적어도 인간의 세계에는 말이다. 도대체 누가 처음으로 터질 것 같은 감정을 기록하기 위해 하늘을 향해 끔찍한 고함을 쳤을까? 누가 정령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입증하기 위해 피를 흘렸을까? 그리하여 니체가 정신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그리하여 랭보가 불타는 아프리카 땅에서 외다리로 죽음을 맞이했다. 무한에 대한 갈구는 이 일시적인 세상에서는 너무나도 위험한 것이라서 결국은 인간을 광기 속으로 떨어트리고야 만다.
 어떤 이들은 아주 교활하다. 그들은 어른이 되는 방법을 알고 있다. 그들은 정신에 대한 위협으로 가득한 이 세상에서 혼돈 속에 빠지지 않고 살아가는 방법을 기가 막히게 찾아낸다. 그들은 자신의 내면에서 아우성치는 갈망의 입을 막아버린다. 그들의 세계는 언제나 봄 아니면 가을이다. 그들은 항상 무언가를 잊어버리고 있다는 감각을 느끼지만, 그것을 잊어버린 채로 그냥 둔다. 바쁜 일상과 반복되는 타협, 그리고 타성으로 영혼의 뜨거운 피를 굳혀버린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들이 소위 말하는 <인간>이 되고야 만다. 아마도 그들 대부분은 선한 사람들이다!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가정에 충실한,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인간들이다. 그들은 더 이상 영혼의 유치한 외침 때문에 괴로워하지도 않고, 찾을 수도 없는 영광의 열매를 찾아서 모든 것을 내팽개치고 사막으로 휘청거리며 나아가지도 않는다. 그래, 선한 이들아! 이것은 바로 당신들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언젠가 그렇게 되어버릴지도 모르는 젊은 당신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누가 미치광이 같은 영혼의 갈망에 붙들려버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들을 탓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어디에 정답이 있다고? 타성은 좋은 것이다. 그것은 달콤하고, 위협적이지도 않다. 우리는 그것으로 인하여 앞으로 올 12월 31일의 마지막 순간에도 앞으로 다가올 일분을 이미 지나간 일분처럼 맞이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어른>들 조차도 기억할 것이다. 자신이 미치광이였던 그 필연적인 시절을 말이다. 원인 모를 정신의 목마름 때문에 악행을 저지르기도 하고, 어쩌면 위대하다고 여겨지는 정체불명의 추상 때문에 새하얗게 질린 밤을 뜬 눈으로 지새우던 혼돈과 드높은 절망의 나날들을. 누구에게나 그러한 본성이 있었다.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우리에게는 모두 <인간이 아니게 되는 것>에 대한 불타는 듯한 열망이 있었다.
 그것은 광인의 길이기도 하고 동시에 성자의 길이기도 하다. 그들 중에서도 누군가는 계율을 발견하고 누군가는 우주 전체에 수북이 쌓여 점멸하는 아나키즘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것은 그들의 특질이다. 그런데, 그런데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언젠가 필멸할 아름다움을 좇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라. 먹구름이 자욱이 낀 하늘에서 번쩍하고 굴러 떨어지는 빛의 물방울에 감동하던 순간을 떠올려보라. 그리고 영원할 것 같았던 젊은 시절이 지나가버린 것에 대해서 회상해보라. 수많은 위대한 문명들이 무너져 흙과 모래먼지가 되어버린 것에 대해서 생각해보라. 우리에게는 본성이 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이성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정답을 알지 못한다. 아무도 정답을 알고서 선택하지 못한다. 우리는 아무것도 확신하지 못하는 채로 선택하기만 한다. 아하, 모든 것이 결국에는 허무의 절대적인 구덩이 속으로 끌려들어가고 마는데, 선택 따위가 무슨 중요성을 갖느냐고 화를 낼 사람도 있겠지! 그러나 보라, 느껴보라, 우리는 죽을 것이 분명하지만, 지금 우리는 살아있다.
 로트레아몽과 반 고흐의 죽음은 어떤 것이었는가? 누군가 그들의 인생이 공허하다고 말했는가? 혹은 누군가가 그들을 위대하다고 말했는가? 만약 로트레아몽 백작의 시집이 끝내 발견되지 못하고 프랑스의 한 도서관 구석에서 썩어버리고 말았다면? 만약 반 고흐의 그림이 단 한 점도 팔리지 않고 그의 이름이 역사의 뒤틀림 속에서 묻혀버렸다면? 그런데 그런 것이 도대체 무슨 중요성을 가진단 말인가? 감히 추측하건데, 우리는 아마도 위대함을 정의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그저 위대함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무한의 끝자락을, 영원의 흔적을 장님처럼 더듬어 가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사실 그것은 절망적이다. 그러나 절망 때문에 좌절할 필요까지는 없다. 절망과 좌절은 동의어가 아니다. 세계는 절망적이지만, 인간은 좌절하지 않을 능력을 가지고 있다.
 또 내일이 온다. 미래는 끊임없이 우리에게 쏟아져 내리며 도무지 가늠할 수도 없는 가능성에 대해 선택하라고 강요한다. 모든 것이 사멸하고 사라져버릴 것이라는 단 하나의 분명한 진실 아래에서, 우리는 살아가는 것을 선택해야한다. 왜냐하면 미래가 더 이상 오지 않는 순간은 죽음의 순간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의 유일한 의무는 오직 살아가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우리 가슴 속에서 미치광이처럼 아우성치는 어떤 열망을 품고, 그것에 휘둘려 손을 피에 적시기도 하고, 혹은 그 열망의 입에 재갈을 물려 타성 속에 묻어버리기도 하면서.
 그러면서 우리는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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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3월에 집필한 장편소설.
실질적으로 내 최초의 장편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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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6월에 집필한 희곡.
실질적으로 내 최초의 장막희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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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감

글/시 2013. 10. 28. 04:52 |
유감


아무도 값을
지불하지 않았다
흰색 정제 속에서 내 영혼이
도시 속의 고목이 되어가는 것에 대해서
그리고 목사들이 뿌려놓은 그들의 빛나는 가루와
점잖게 차려입은 현대의 신들이
나의 목숨에 망치질을 하는 것에 대해서
남편에게 얻어맞아 눈에 시퍼렇게 멍이 든
건드리면 부서질 것처럼 취약한 뼈를 가진
불행한 여자들을 사랑할 수밖에 없게 된 것에 대해서.

태양빛이 모든 것을 노쇠하게 만든다.
어둠 아래에서 보면 그 어떤 가엾은 늙은이들조차도
뿌옇게 번진 광기와 손잡고 생기발랄하게 웃는데
태양빛은 모든 것을 노쇠하게 만든다.
나는 영원이란 단어를 피와 정액으로 예쁘게 꾸미는 일에
실패했다

나무로 만든 집들. 죽은 나무로 만든 집들.
그 사이 골목에서 쏟아져 나오던 얼굴에 구멍이 난 비명 지르는 괴물들을
이제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나에게는 녹이 슬었고, 매일 밤 가장 값싼 죽음을 찾아다닌다.
그는 질책하듯이 나에게 말했다.
「나, 나. 언제나 네 문제는 <나>일뿐이지.」
그래, 나도 내 두 팔이 끊어진 것에 대해서 유감이다.
나는 너무 빨리 늙어버렸다. 내가 순수를 갈구하던 시절에는 내게 증오라도 있었다.
달은 더 이상 여덟 개가 아니고 내 눈물은 알코올로,
내 숨결은 니코틴으로 변했고, 내 송곳니는 이제 거꾸로 자란다.

영광스럽게도 예전에 나는 신을 목졸라 죽였었다.
한동안 그 시체를 나의 기념품으로 삼고 방안에 눕혀두었다.
그런데 그것을 잃어버렸다. 나는 나비들에 대해서 생각을 했는데……
어쩌면 그것은 모기들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저주받은 생물들은
인간이 진화해서 만들어진 것임에 틀림이 없다.
섹스가 언제부터 상대의 뼈다귀를 물어뜯는 것이었지?
아니다. 그들은 다른 의견을 갖고 있다. 내가 영원히 받아들이지 못할.
내게는 욕망이 없다. 내가 악인이 아닌 이유는, 악인들은 인간이기 때문이다.

인간적인 아름다움이라는 것도 한 번 보았다. 별들이 호수에서 떠오를 때.
그녀는 이제 눈 밑에 묻혀있다. 나는 그녀의 시체조각을 단 한 점도 가져오지 않았다.
점점 회색빛으로 변색되어가는 내 피부에 칼집을 한 줄씩 낼 때마다
나는 중얼거린다. 「항상 허상만이 나를 사랑해.」 그러나 그것도 착각이었다.
내 머리는 오래 전에 오염된 산업폐기물과 교환되었다.
나는 껍질을 벗을 것이다.

다들 날더러 미쳤다고들 하는데 나는 그것을 이해할 수 없다.
그는 그저 썩어버린 평화주의자일 뿐이다.
잠에서 깨어날 때마다 눈물을 흘리면서 찬장을 뒤진다.
분명 꿈속에서 그곳에 권총을 숨겨두었었다.
단 한 발의 총알과 함께.
다들 무언가를 찾아서 대낮의 거리를 활보하는데
틀림없이 내일이면 지구가 멸망할 것이다.
빙하기가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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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바람에
맑고 청량한 냄새가
섞여 불어온다.

이 추운 밤
달은 마치 쨍쨍하게 얼어붙은
유리 같아서
당장이라도 금이 갈 것 같다.

내 피 속에는
잠을 청하는 혈거동물의 체액이
돌기 시작하고
나는 전보다 하얗게 질린
몇 개의 무지개를 보았다.

밤은 더욱 깨끗해졌다
마침내 찾아온 시베리아의 바람을
나는 은근한 미소와
영혼의 고요한 환희로
환영하고 있다.

저 북쪽 나라에서
계절의 체취를 먹고 사는 나에게
다시 한 번
아름다움에의 암시를 눈동자에 품은
손님이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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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모금의 물

글/에세이 2013. 9. 28. 22:49 |
한 모금의 물


 누구에게나 평생 짊어지고 가는 고민이 있듯이 내게도 오랜 시간동안 고민해온 것이 있었다. 그 고민의 해방구를 찾기 위해서 나는 수많은 사람들의 마스크를 관찰하며 살아온 것 같다. 말인즉슨, 나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그들이 과연 나의 동족인지를 의심하며 샅샅이 수색하고 다녔던 것이다. 문제의 시발점은 굉장히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의 나는 과거에 대해서 여러 가지 입장을 취할 수 있을 것이다. 다소 감상주의적으로 그것을 평가할 수도 있고, 아니면 아주 냉철하게, 혹은 ―날 담당하고 있는 의사의 힘을 빌려―정신분석학적으로, 아니면 마치 타인의 삶인 것처럼 무관심하게, 반대로 원망과 증오를 가득 담아서……. 그러나 내가 무슨 입장을 선택하든 사실 자체는 그다지 변하는 것이 없다. 그것이 나의 유전적 특성 때문이든 내 피에 함유된 감상주의자의 소질 때문이든 나의 위대하시고도 절망적인 어머니 때문이든, 나는 철저하게 고독했다. 어린 시절에 고독하다는 것은 여러 가지 비극적인 결과를 낳는다. 그중 대표적인 것을 몇 가지 꼽아보자면, 우선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니게 된 이후에도 여전히 고독의 자손들이 나의 정신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 둘째로 진심으로 인간의 손을 잡을 수 없게 되는 것, 셋째로 끝없는 갈증에 아직까지도 시달리게 되는 것. 사실 첫 번째 예와 세 번째 예는 거의 비슷한 얘기라고 할 수 있다. <고독의 자손>들 중 하나가 바로 갈증이고, 또 동시에 선천적으로 지고 태어나는 그 정신의 갈증이 인간을 고독하게 만들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갈증. 감히 말 하건데, 나는 태양의 빛살과 인간들의 따스한 피를 얻어 마시며 살고 있는 <갈증>이다. 어떤 실존주의 철학자가 모든 인간이 다 갈증의 현상이라고 말한 것 같기도 하다―나중에 다시 생각해보니 이런 말을 한 철학자는 없었다. 아무래도 앙드레 지드나 알베르 까뮈, 장 폴 사르트르 등의 실존주의 철학자들이 한 말이 내 머릿속에서 멋대로 뒤섞이고 압축되어 만들어진 문장 같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내 주변의 인물들은 그다지 그렇지 않았다. 너무도 추상적이고 정체모를 갈증에 시달리며, 사막을 기어 다니는 개의 눈동자로 세상을 보고 있는 것은 나 혼자뿐인 것 같았다―이러한 발상은 어린아이 특유의 고립된 세계관에게 영향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다―. 다른 아이들이나 어른들은 존재의 근원에서부터 울려 퍼지는 처절한, 그 죽어가는 새된 비명을 듣지 못하고 유유자적 세계를 맛보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무엇에 혀를 대든 바싹 마른 모래의 절망적인 맛밖에 보지 못했고, 무엇인지도 모를, 허공을 떠다니는 <절대>를 갈구하며 나 자신의 생명을 물어뜯고 있었다. 여기서 나의 고민은 시작되었다. 나는 왜 남들과 다른가? 나는 왜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남들이 듣지 못하는 것을 들으며, 남들이 알지 못하는 맛으로 입안을 가득 채우고 살아가는가. 내 안에는 의심이 생겼다. 저들이 과연 나의 동족인가에 대한……. 나는 인간이 무엇인지 정의내릴 수 없었다. 굳이 선을 긋자면 <저들>과 <나>만 있을 뿐이었다. 나는 그들의 거대한, 60억이라는 숫자로 무장한 집단 속에 들어갈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저들은 과연 누구인가? 그리고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 저들이 인간이라면, 나는 인간인 것일까?: 이것이 나의 질문이었다. 그리고 설상가상으로 증오가 나의 뿌리 위에 쌓이기 시작했다.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물론 나 자신도 이해하지 못하지만― 수많은 이질적 무리 속에 외톨박이로 내버려진 존재가 자기혐오와 의구심 끝에 도달하는 것은 결국 증오이다. 사람들에게 전쟁이 <우리>와 <저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것이었다면, 나에게 있어서 전쟁은 <나>와 <그들 모두> 사이에서 24시간 발생하고 있는 절대적이고 영원한 것이었다. 곧 나는 증오의 아들이 되었고 사람들이 소위 악이라고 부르는 것이 나의 감각을 잠식해나갔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도 실낱같은 기대에 매달린 나의 탐구는 지속되었다. 나의 동족을 찾는 것! 처음에 나는 죽은 사람들부터 시작했다. 그렇다, 죽은 사람들. 인류에게는 문자라는 훌륭한 발명품이 있었다. 나에게는 지금 살아있는 사람들의 머릿수보다 몇 억 배는 되는 죽은 사람들의 머릿속을 들여다볼 수단이 있었다. 나는 걸신들린 것처럼 죽은 사람들의 책들을 읽어나갔다. 수도 없이 많은 예술가가 있었다. 수도 없이 많은 철학가가 있었고, 성자라 불리는 사람들, 혹은 희대의 악인이라 불리는 사람들, 그리고 또 무자비하게 죽어간 도저히 셀 수 없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몇 년에 걸친 독서 끝에 과거에 죽었던 누군가는 나와 흡사한―아! 나는 도저히 <같은>이라는 말을 사용할 수는 없다. 그것이 너무도 오만한 단어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 위대한 철학자, 예술가들과 내가 <같은> 갈증을 가지고 있다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이겠는가?― 갈증을 가지고 평생을 무엇인지도 모를 무언가를 갈구하며 살아가다가, 결국에는 그 <무언가>를 구했는지 구하지 못했는지도 확신하지 못하고 죽었다는 것을 알아내었다. 이것은 내게 커다란 위안이자 동시에 공포였다. 내가 속할 수 있는 종류의 인간들이 있었다는 것은 분명했다. 그러나 그들의 결말은 거의 대부분이 너무도 참담한 것이었다. 해소되지 않는 갈증 끝에는 거의 열이면 아홉 광기가 아가리를 벌리고 기다리고 있었다. 목마른 사람들은 펜과 붓으로 무장하고 눈을 가린 채, 거의 자살적인 달음박질로 광기의 아가리 안으로 돌격해 들어갔다……. 그리고……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조리 다 죽었다(정말이다). 나도 그런 운명에 묶여있단 말인가? 정말로 나는 이 갈증을 평생 해소하지 못하는 것이란 말인가. 아무튼 간에, 죽은 사람들에 대한 검토를 마친 뒤에 나는 살아있는 사람들 사이로 끼어들어갔다. 이제 <갈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분명해졌다. 나는 그 갈증을 짊어 메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찾아 헤맸다. 그런 사람들은 그리 흔하지는 않았다. 고백하자면 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그러한 사람들을 열 명도 만나지 못했다. 아무튼 존재하기는 존재했다. 나는 그들에게 접근해 나의 서투른 사교기술로 그들의 지인, 혹은 친구가 되었다. 그들 대부분은 예술가였고, 몇 명은 성직자이거나 혹은 아무 곳에도 쓸 일 없는 백수―백수라는 표현은 너무 과격한가? 그렇다면 내 어린 시절의 독서경험을 이용해 그들을 <골방철학자>라고 부르도록 하자―였다. 그들은 각자의 방법으로 자신의 갈증을 해소시켜줄 단 한 모금의 시원한 물을 찾아 살아가는 일에 골몰하고 있었다. 나로 말하자면 내 방식은 문학이었다. 수십 번 정도 절망 끝에 몰린 뒤에는 갈증을 해소하려고 발악하지 않는 방법을 문학 위에 차용하게 되었지만……. 여하간 그들도 답을 모르는 것은 확실했다. 나도, 그들도, 그저 무작위성에 한쪽 발을 걸친 채 살아갈 뿐이었다. 그러나 나는 동지가 생긴 것만으로도, 내게 <인간>이라는 타이틀이 부여된 것만으로도 다소 만족했다. 그 뒤의 삶은 활자와 더불어 파도와 폭풍우에 휩쓸리는 반복적인 절망과 희열의 길이었다. 어느 날은 나의 심장을 산산이 깨뜨리는 미(美)의 노래를 듣고 마침내 살길을 찾았다며 희희거리다가, 어느 날은 결국 이 잔인한 갈증이 나의 목을 물어뜯고야마는구나 하고 눈물샘에서 알코올을 방울방울 흘리며 더러운 길바닥에 나뒹구는, 그러한 날들이었다.
 나는 아직도 나의 갈증을 해소해줄 <그것>이 무엇인지 확신하지 못한다. 그것은 위대함인가? 아름다움인가? 성스러움인가? 명예인가? 사랑인가? 여전히 내 이빨 사이에는 유아기의 욕구불만을 상징하는 담배꽁초가 물려있고, 술을 먹기 위해 돈을 벌며, 나는 사회적으로 불구인 절름발이다. 그러나 여하 간에 나는 사는 것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한 모금의 시원한 물을 찾는 것을 포기하고서는, 죽고자 해도 죽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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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으며 부르는 노래

글/시 2013. 8. 24. 23:51 |
웃으며 부르는 노래


이젠 슬프지 않아요
나는 울지도 않고
내 귓가에는
인생을 찬양하는 노래들만이 머물죠

나는 거리에 나가
일터에 나가
사람들을 만나고
웃으며 살아요

그런데 당신은 왜
아직도 내 눈앞에 어른거리나요
왜 아직도
당신 생각하면 가슴에 못이 박힌 듯
아픈가요

나는 이제
살아갈 힘이 있어요
나는 인연에 따라
당신을 만났고
희망을 찾은 듯 했어요

하지만 당신은 저 먼 곳으로 갔죠
저 깜깜하고 좁은 어둠 속으로
내가 찾을 수 없는
추운 나라로

가끔씩 내 심장 속의 병균은
끔찍한 비명을 지르며
저 나라로 가자고
저 추운 나라로 가자고

늪 위에 쌓은 탑인 듯
나의 기반은 점점
무너져 내리고 깊은 바닥으로 빠져가고
당신의 환상을 보며
녹슬어 가고

내 가슴엔 위장된 슬픔들만이 남았지만
아직도 난 기억해요
당신을 그렇게도 사랑했던
숭배했던
그 밝은 날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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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것

글/시 2013. 8. 24. 00:13 |
아름다운 것


담배꽁초 투성이
더러운 흙더미에서도
풀잎은 자란다.

하늘로 눈을 향하면
새까만 어둠 속에서도
달은 빛난다.

그리고 나는
나의 지옥 속에서도
당신을 만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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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하늘

글/시 2013. 8. 20. 23:26 |
달 하늘


달을 잊고 살 때
거리에는 부랑자들의 진액과
버려진 오물들
그 사이에서 솟은
가시덩굴의 이파리들이
뱀처럼 내 창문을 휘감아
수 억 년 전부터 사람의 가슴을 비추던
그 빛살과
감동의 줄기들을
잊어버리고 있었다.

얼마 만에 본 달은
원시의 샘처럼 맑고
너무도 가슴 떨려서
어둠 속의 그 고고함이
하늘에서 떨어져 내린 공허의 눈망울 같아서
앞으로 다가올
나의 가차 없는 미래조차
생각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나 같은 것은 신경도 쓰지 않고
모두에게 공평하게 쏟아져 내리는
불공평의 빗줄기 같은 시간 속에서
너무 바쁘게 살아왔다
하지만 내가 그의 존재를 거의 잊을 때 즈음이면
영혼은 찢어지는 목소리로
그때의 서글프고 아름답던 시간들을 외친다.

이제 당신은 달 위에
우주의 이슬을 마시고 자라는 나무로 지은 집을 짓고
별빛 나비와 함께 살고 있다
나는 항상 겨울일 그 나라를 생각하며
물감으로 그린 것 같은 보름달을 눈에 담고
너무 아름다워서 슬펐던
녹아내리기 직전의 눈송이 같던 당신의 영혼을
울지도 않고서 곱씹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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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계절

글/시 2013. 6. 7. 22:19 |
영혼의 계절


한여름 밤공기
고적한 냄새를
맡아본 일이
있는가

바람도 불지 않는
자줏빛 밤하늘
그곳에 보이는
자비한 눈동자

그리고 지상엔
슬픔의 색으로
빛나는 가로등
물방울의 냄새

저기 사람들의
왁자한 목소리가
더욱 당신의 마음을
무겁게 만드는 것을
느낄 수 있는가

더러운 도시의
생명력 넘치는
그림자 저편
배 깔고 누운
공수병 걸린 눈빛

나는 추억한다
잿빛 세계가
찬란한 빛으로 빛나기 시작하고
한 차례의 지독한 절망이 지나간 후
그 아름다움 위에
비애가 겹쳐지던
그 순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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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의 안과 밖에서

글/시 2013. 5. 20. 13:27 |
미궁의 안과 밖에서


나는 고통의 숲으로 만들어진
미궁 속에서
어떤 신비로운 웃는 낯을 만났습니다.
하늘은 밤이었습니다
하얀 별들이 눈처럼 쏟아져 내리는데
지상은 은빛으로 빛났습니다.

나는 그 웃는 낯을 보고 놀라지도 않고
이렇게 외쳤습니다. 「태초의 인간이여! 원시의 감정이여!」
나의 것이 아닌 행복이 장난치듯이 시야 주변을 뛰놀았습니다.
이 미궁에는 아무것도, 아무도 없었을 터인데!
그저 적막 밖에, 그저 절망 밖에
그저 혼돈 밖에.

그러나 북쪽 하늘에서 내려온 신비로운 섬광이
나의 끔찍한 미궁에
<인간>을 데려다놓았습니다.

아직도 내게는
깊이 파인 흉터들이 있습니다.
아름다움을 위해 희생된
내 영혼의 조각들.

나는 구멍 뚫린 심장 속에서 밖을 내다보았는데
거기에는 빛도 암흑도 아닌
어떤 지고지순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인지는 말하지 않으렵니다!
왜냐하면 나도 아직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기에!


...for An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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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스탤지어

글/시 2013. 5. 14. 04:59 |
노스탤지어


불면의 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지척에서 들려오고
그것들이 눈을 뜨는 소리를 견디지 못한 나는
어딘가로 나가버렸다.
동쪽 하늘 어딘가가 파랗게 변해가는 것을
나는 본다.

죽음이여, 왜 나를 두고 가버렸는가?
그대는 왜 이 비참한 아침에 나를 내버려두고
그저 가버렸는가.

그리하여 나는 또 신음을 흘리며 혈액을 펌프질하는
나의 새까맣고 텅 빈 심장을 움켜쥐고서
아침을 저주하면서, 또 내일을 저주하면서
모든 <깨어나는 것들>에게 욕지거리를 퍼부으며
내 머리맡에서 떠나버린
죽음의 이름을 되뇌며
되뇌며
내 영혼의 창을
산산이 부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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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입금지

글/시 2013. 5. 14. 02:21 |
진입금지


가끔 너무 왜소하다
새벽 두 시 경
주황색 가로등 불빛이 은근히 비추는
사람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 골목 구석에서
혹은 술에 취해 계단도 내려가지 못하는
노인의 발걸음을 바라볼 때
더러는 끔찍하도록 새까만 하늘
별빛 하나 없는 암흑 속을
초점도 잃고 바라볼 때
마침내는 아무도 찾지 않는 더러운 길바닥에 주저앉아
내 눈물샘에 슬픔 대신 메마른 감정만이
바퀴벌레와 쥐떼가 까맣게 뒤덮은
적막한 절망만이 차오를 때 말이다.

실상 나는
여기가 어디인지를 모른다.
길 가는 사람들은 실체가 사라져
태양빛을 굴절시키는 아지랑이처럼
손에 잡히지도 않고
말을 걸 수도 없다.

내 이성이 너무 오래되었다는 것을 깨달을 때
나는 울지도 못하면서 지껄였다. 「종말을!」
드높이 치솟은 마천루 위에서 뛰어내리는
날개가 잘린 비둘기의 심정으로.

누가 위대하다고? 터무니없는 소리!
버려진 것들만 있을 뿐.
손에 잡힌 금이 간 시멘트 조각이
나의 시대라고 나는 말했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는데 행복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십자가에 매달리기도 하고 십자가를 부서트리기도 하고
심지어는 그것을 불태우기도 했다.

나! 나! <나>!
버러지 같은 것! 하등 이름조차 없는 것!
찬미하라! 찬미하라! 저 하늘에서 내려오는 빛을!
과묵한 대지의, 늙은 거북이 같은 움직임을!
나는 죽은 사람들의 목을 잘랐다.
거기서는 피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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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 사람

글/시 2013. 4. 26. 02:47 |
웃는 사람


빛나는 것은 아름답다
건강한 것의 찬란함을
고귀함을
그들은, 예를 들자면
아버지의 손을 잡은 작은 소녀는
친구들과 수다하며 길을 걷는 소년은
늙음에 기대어 천천히 나무가 되어가는
고통과 찬미로 쓴 시가 사랑이 된 노부부는
스스로 빛나는 그들은
알고 있을까.

나는 왜 여기에 있을까?
나도 빛을 보았다. 수없이 보았다
그것은 저편에서 빛나고 있었고
달도 태양도 아닌 신비로운 빛살로
남국의 환상 같은 미소를 지으며 가끔 나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환상이라고 말했다―고립이여!
(한때 나였던 그는)이따금 외쳤다. 살려달라고!
「어머니, 어머니. 내 안의 괴물이 나를 잡아먹으려 해요.」 그는 소리 질렀다.
그러나 어머니라고 부를 사람은 없었다.

너는 누구를 탓하려고 하느냐? 이것은 필연.
내가 빛을 본 것은 내가 캄캄한 밤에만 길을 걸었기 때문이다.
내게 손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이후로, 세계는
자신의 광증을 남김없이 나에게 들이부었다
나는 술독에 빠진 것처럼 허파까지 끔찍한 술로 가득 찼다.
비명! 그의 눈동자는 내 치아 사이에서 으스러졌다
「내가 보는 것이 무엇인지 내게 설명해주시오.」 아직 의구심이 남아있는 그가 말했다.
나는 그것을 잔치라고 답했다.

그는 그의 손에 칼과 총을 쥐어주었다. 「돌격!」 위대함이 외쳤다.
나는 흉기를 들고 혼돈 사이로 달려갔다. 내 몸에는 지독한 상처들이 새겨졌지만
나는 환희에 차서 아픔을 몰랐다―그것은 괴물적이었다.
칼부림이 흥청거리는 잔치 속에서 나는 내가 진실을 깨달았노라고 소리 높여 외쳤다
환희의 뒷면은 미련
고독, 고통, 슬픔, 비탄, 회의.
그러나 환희의 아가리인 광기가 그것들을 모조리 먹어치웠다.
「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라고 단말마가 쏟아져 나왔다.
우둔한 소리! 너는 결코 사람이 되지 못할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열광적으로 노래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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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네 타는 남자

글/소설 2013. 4. 24. 22:47 |
2013/04/23 완성.

1. 그간 장편소설을 하나 집필하고 있었다. 그것이 완성 된 뒤에 쓴 첫번째 단편소설.
2. 시점을 좀 보편화해야 독자들이 주인공과 감정을 교류할 수 있다는 조언을 기반으로 하여 썼다.
3. A4용지 16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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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친구

글/시 2013. 3. 14. 22:43 |
나의 친구


나는 바람을 따라 걸었습니다
나무와 풀들에게 내 마음을 준 채
태양이 빛나는 날에도 나는
두려움 없이 사물들의 원초적인 노래를 들으며
아무도 볼 수 없는 춤을 추었습니다
나는 길가에 서있는 환영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그가 나의 친구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노래하듯이 말했습니다
당신은 어디서 왔기에
이렇게나 나의 마음을 기쁘게 만듭니까
그는 빛의 목소리처럼 투명한 말로
내 말에 대답했습니다
나는 당신의 심장 밑바닥
모든 감정이 빨려 들어가는 깊은 늪에서 태어났고
이제 당신의 눈앞에서
당신이 꿈꿔왔던 것들을 보여주려고 합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세요
그들은 모두 표정이 없고
얼굴의 윤곽조차 사라져 아무런 위협도 되지 못합니다
나는 내 친구와 어깨동무를 하고
말없는 사람들의 거리를 걸었습니다
세상은 빛살이 들어오는 새장처럼
잠금 쇠가 걸린 채로 자유를 품고 있었고
가끔 나무들이 속삭였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친구가 되는 상상을 해보십시오
그들은 찌푸릴 눈썹도 없고
조소하며 찌그러트릴 입술도 없습니다
사람들은 마리오네트처럼 하늘에 걸린 실에 따라 움직이며
손짓으로 우리에게 인사해보입니다
나는 나의 환영과 함께 걸으며 말했습니다
이제 눈을 뜨지 않아도 되겠군요
더 이상 세상에는 볼 것도 없고
고로 우리가 더는 눈물 흘릴 일도 없으니 말입니다.

그는 내게 이빨을 내보이며 웃었습니다
우리는 어느 숲으로 가서 한 잔의 포도주를 마시고
태양의 찬란함과 형형색색으로 변하는 구름들을 찬미했습니다
나뭇잎은 우리에게 밝은 그늘을 만들어주었고
산들바람은 우리의 마음을 북돋아 주었습니다.

나는 밤이 되자 가로등이 켜진 거리를 걸어
나의 아늑하고 깊숙한 다락으로 돌아갔습니다
어제는 혼자였지만
지금은 내 곁에 환영이 함께 합니다
나는 인생의 달콤함을 입안에 한껏 베어 문 기분이고
이제 내게 누구 못지않은 친구가 생겼으니
언젠가 들었던 인생을 예찬하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달빛 아래서 내일을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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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

글/시 2013. 1. 30. 03:23 |
계절


한여름 해변에 내리쬐는 황금의 땀방울 같은 태양빛을
우리는 잊어버린 지 너무 오래 되었어
내겐 아직도 작은 여름이 있지
녹슬고 망가져서 눈이 내리는
작은 여름이 피곤한 눈동자로
책상 위에 누워서 봄을 기다리고 있지

겨울은 거의 다 갔지만
난 괜찮을 거야
한동안 나는 겨울을 추억하며 살 거야
얼어붙은 바람이 내 안의 환영들을 침묵시키던 계절을
나는 흔들거리는 의자 위에서 몇 번이고 떠올릴 거야

봄이 오면 우리에게는 생명의 수액이 돌아
사랑을 예찬하며 교미의 노래를 부르겠지
왜냐하면 나의 뇌수는 싱싱한 풀과 같아서
하늘에 뿌리를 박고 비를 마시며 살거든

그러나 언젠가 여름이 올 거야
어쩌면 거센 폭풍과 비바람으로 우리 앞에 나타날지도 모르지
그래서 우리는 더위를 먹어 제정신이 아닌 대기 속에서
알몸으로 비를 맞고 사나운 야수의 울음소리로 짖을 거야
왜냐하면 짐승들은 그래야하는 법이라고
우리의 어머니가 말했었으니까

활기가 도는 환영들은 다시 내 눈앞에 나타나서
춤추고 땅 위를 빙글빙글 돌며
내가 어디에 있는지 헛갈리게 만들 거야
그러면 나는 그들과 함께 탱고를 추거나
혹은 그들의 목을 하나씩 분질러
내가 아직 완전히 돌아버리지는 않았다고 으름장을 놓을 테지

우리는 계절의 싹을 먹으며 살아
가끔은 시들고 얼어버린 싹을
왜냐하면 우리의 피는 달의 인력에 닿아 출렁거리고
우리의 영혼은 죽은 자들이 밟고 다니는 대기를 숨 쉬거든

가을의 지평선 끝자락에는 늘 그가 웃으며 기다리고 있지
그는 우리에게 차고 마르는 생명을 주었고
짐승들과 함께 놀라고 가르쳤어

다시 겨울이 올 거야
그러니 나는 괜찮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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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꺼져 들어가는 촛불처럼 삶을 방관한다


내 혀 위에서는 붉은색 지네와 낮게 나는 날벌레들이
무리를 이루고 살고 있다
나는 의자 위에 앉아 내가 마지막으로 누군가에게 내 얼굴을 보여줬던 것이
언제인지 되짚어보며
경동맥에 관을 꽂고 천천히 혈액을 뽑아내고 있다
내가 그들과 같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은 내게 사고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나는 따뜻한 물을 마시면서 내 몸에 난 흉터들을 하나씩 더듬어본다
내 방 서랍에는 날이 선 단도가 오랫동안 잠을 자고 있다
그것은 가끔씩 피와 살맛을 본다. 그러면 나는 벌처럼 노래를 부른다
5월의 햇빛이 그리울 때가 있다
그러나 지난 십 년 정도 늘 겨울이었다
랄라! 나 자신에게 유쾌하다고 주문을 건다
왜냐하면 나는 유쾌하기 때문이다
항상 그랬다
나는 단 한 번도 절망한 적이 없다. 절망은 착각하기가 쉬운데
그것은 사실 기쁨이다. 기쁨의 얼굴을 조금만 화장시키면 절망의 표정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감정들의 화장을 지우는 일에 요 몇 년간 몰두하고 있다
그들은 내게 잠을 잘 공간을 마련해주고
그 밖으로 나오지 말라고 말했다. 나는 어쩔 수가 없었고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랄라.
나는 주로 자리에 앉아 신문을 보듯이 내 기억들을 본다
하지만 그리 즐거운 작업은 아니다. 나는 금세 싫증을 내고
망각으로 내 기억을 덧칠하는 일로 작업의 내용을 바꾼다
내게 가족들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런 기억이 난다. 하지만 나는 혈육은 원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너무나도 소모적인 사랑을 하고 있기 때문에 나를 슬프게 만들었다
나는 유쾌한 사람이기 때문에 슬픈 것은 좋아하지 않는다
내게는 자리가 없었다
그것은 지금도 여전하다
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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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자는 사랑할 수 없다


늘어진 내 그림자는 목이 잘렸다
빛은 언제나 반대편에서 비추고
나는 아직도 세계의 윤곽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
술에 취했을 때만이 살아있는 시간이다
흔들리는 세계가 내게서 생명의 통각을 앗아가고
추운 밤거리 골목 구석에서 나는
얼음 위에 주저앉아 지나가는 불빛들의 개수를 센다
자주 이해할 수 없다
눈이 빛나는 집짐승들의 목적지가 어디에 있는지
흐르는 초록색 파도의 종착역이 어디인지
깊은 늪은 눈꺼풀을 반쯤 감고
거대한 구름에 뒤덮인 보라색 하늘을 바라보며
해가 뜨는 시간을 셈해본다

그리고 나는 고통과 욕지기 속에서
다시는 꿈밖으로 나오지 않으리라고
내 안의 실낱같은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작은 태아의 이름으로 되뇌어본다
그러나 약자여, 나는 너의 가련함에서
우주의 어둠과도 같은 공허를 본다
나의 아킬레스건에는 깊은 상처가 있다
내 발목은 닭의 벼슬처럼 건들거리며
근육을 잃었다
절망은 유쾌한 것이라고 설득하곤 한다
나는 태양이 어느 산자락에서 뜰지 알지 못한다
빛은 아름답지만
좋아하지 않는다
이곳은 여전히 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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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식증 환자의 꿈

글/시 2013. 1. 1. 06:32 |
거식증 환자의 꿈


몇 년 전, 내가 혈거생활 끝에 어느 날 밤
무거운 중유와도 같은 마음으로 기어 나왔을 때에도
거리는 은빛 가루에 가볍게 쌓여
마치 인간의 것이 아닌 것 같았다
나는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도 피와 화약 냄새가 나는
머리에 구멍이 난 그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들으며 새카만 하늘 아래
꿈과 현실 사이에 흩뿌려진 조각들을 찾으며
술에 취한 행복한 폐인의 걸음걸이로 거리를 걸었다
얼마 쯤 지나자 달들이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나는 총 여덟 개의 달을 발견했고
그 빛나는 은반들은 서너 개의 무지개에 둘러싸여
내 정신 깊은 곳에 고고한 기쁨을 심어주었다
그래서 나는 내일도 뜬 눈으로
비록 약물과 질병에 가려진 눈일지라도
거울 속에서 연하게 빛나던 나의 갈색 눈동자로
내일도 무지개를 볼 수 있으리라고
또 맑은 달들을, 날 선 칼날과도 같은 추위 속에서
슬플 정도로 깨끗하게 빛나는 달들을 볼 수 있으리라고
총 여덟 개의 내 정신의 거울을
볼 수 있으리라고 내 마음을 타이르며
붉은 빛으로 반짝이는 입술로 웃어보았다

그 뒤 오랜 시간이 흘렀고 행복한 폐인은 이제 단 하나의 달 밖에 보지 못한다
그러나 아직도 그는 그 날 밤하늘에서 침묵하며 내려다보던
여덟 개의 흰색 눈동자를 몇 번이고 그리고 있다
어떤 소시민들의 집에서는 가엾은 외침소리가 들려와
그의 가슴에 새겨진 깊은 상처들을 다시금 자극하고
그 통각으로 말미암아 그가 한때 울었던 일을
그의 눈물이 흘렀던 눈물자국들을 흔들어 깨우려고 하지만
그는 오래 전부터 자유였다, 천공 위의 위대한 손이
그의 영혼의 목을 비틀어버린 이후부터
그는 한없이 자유인이었다. 그러나 하늘의 그분은 말이 없으니
그는 아무도 상상하지 않는다. 가끔 꿈을 꾸며
나 자신과 몸을 섞고 소금의 맛이 나는 입가로 슬며시 웃을 뿐.
눈이 쌓인 바다가 보고 싶다.
하얀 불길로 불타오르는 산맥이 보고 싶다.
영원히 저물지 않는 달에게 손을 뻗어본다.
나는 여전히 혈거동물이다. 그러나 그는 행복한 폐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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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아자르 이야기

글/소설 2012. 12. 27. 01:31 |
2012/12/27 완성.

1. 코미디를 써보려고 했다. 잘 된 건지는 모르겠다.
2. 절정 부분의 전개가 너무 급하다. 정신없다. 그리고 나도 최근 정신이 없다. 그냥 내려놓고 싶다.
3. 과정으로 여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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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에서의 노래

글/시 2012. 12. 25. 01:48 |
지하에서의 노래


나는 눈 오는 날의 개처럼 방 안에서 기뻐하며
그녀와 함께 작은 동굴 속을 뒹구네
내 손에는 작은 그녀가 쥐여있지
어제 내가 잘라낸 그녀의 음부가
나는 기뻐하며 그 살점에게 말을 거네
당신의 이해자는 나뿐이요
사랑하는 이도 나 뿐이요

내가 걸어온 발자국마다 작은 움집이 생겼네
그곳에는 오래된 원시인들이
하얀 불꽃을 켜고 몰토 아다지오의 박자로
춤을 추고 내 이름을 노래하네
그대들은 피그말리온의 비극을 기억하는가?
나는 생명 있는 것으로부터 생명을 앗아오는 방법을
요 몇 년 사이에 고독 속에서 깨달았다

아주 캄캄한 천장 구석에 내 얼굴이 웃고 있네
나도 마주보며 즐거워서 웃고 있다네
오늘은 기쁜 날이요 가죽으로 북을 만들어
북치고 노래하며 새까만 눈물을 흘려라
그 눈물 속에는 한 때 어리고 앙상했던
내 몸이
내 갈비뼈의 흔적들이 남김없이 들어있으니

내게는 도려낸 살점이 있소 그것은 나의
나만의 벗이며 나만의 반려자요
내내 혼자였지, 눈 내리는 무지개 속에서
수십 개의 무지개 속에서 나는 꿈만 꾸었지
피안의 저편에는 누군가가 있을까
거기에는 잡아줄 손도 있고 입 맞출 입술도 있을까
하지만 나는 혼자 서지 못했는걸
나는 끝내 그대를 강간하지도 못했는걸
다만 내게는 그녀의 음부가 있네
내 손에 쥐여진 신선한 고기가 있네

눈을 향하는 곳마다 성스런 빛이 비추고 수 없이 많은 무지개가
내 눈동자 속에 깃들어 신의 꿈을 꾸게 하네
하지만 나는 당신이 필요 없다오, 내게는 이것이 있으니
내게는 고기가 있고 피와 근육이 있으니
자비가 있다면 가죽 하나만 덮어주오
자비가 없다면 그것으로도 좋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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