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부러진 집에서

글/시 2014. 9. 3. 16:59 |
구부러진 집에서


내가 사는 집은 구부러진 집이다
정신이 멀쩡할 때에는 집에 들어올 수 없다
알코올과 니코틴으로 눈동자가 돌아버렸을 때에만
이 집에 들어올 수 있다 그래야만
이 집이 가진 경계선과 면적들이 멀쩡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현관문에 열쇠를 꽂고 돌릴 때에도
남들이 하듯이 똑바로 찔러넣어서는 안 된다
잘못된 위치에 꽂아야만 문이 열린다.

이 집은 구부러져 있기 때문에
소시민들이 쓰는 보통 가구로는 채워 넣을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밤마다 밖으로 나가
다 썩어가는 나무 등걸과
한번 쓰였다가 버려진 못들을 주워 모아
텁텁한 냄새가 나는, 이미 만들어질 때부터 망가진
그런 가구들을 만들어 집에 채워 넣었다.

이 집에 들어오는 햇빛은
구부러진 창문을 통과하는 순간부터
거울에 비치는 달빛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절대로 아침을 맞이할 수 없다. 아침이라는 것은
죽은 태양의 허묘(墟墓)다.
이곳에서는 그림자 진 사물들만이 진실이 된다.
망가진 책장에 꽂힌 책들은 펼쳐보면
문자가 아니라 죽은 시인들의 발광이 소리가 되어
내 입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여기서 독서는 늘 광란이다.

나는 아직도 방문을 나설 때마다
어깨나 머리를 어딘가에 부딪친다 사방이 변색된 핏자국이다
언젠가 내 몸속의 피가 전부 이 구부러진 집에 바쳐질 때
나는 이 집의 일부가 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딱히 그 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나는
다른 집에서는 살 수가 없는 탓이다.

지나가던 아이들이 창문을 두드렸다. 아저씨는 왜 여기에 사나요.
나는 창문을 열고 말한다. 너희 어머니가 이 집 주변에는
오지 말라고 했을 텐데.
맞아요. 이 집에는 구부러진 인간이 산다고 했어요.
그리고 우리 마을 목사님께서
이 집은 마귀가 지은 집이라고 했어요.
내가 묻는다. 마귀가 뭔데?
사람을 나쁜 길로 홀리는 괴물이요.
이 집은 마귀가 지은 집이 아니야. 만약 마귀가 보고 싶다면
마을 중앙에 계신 판사님을 찾아가 보거라.
아이들이 말한다. 거기엔 저번 주에 교수형 당한 사람들이 걸려있어서
가고 싶지 않아요.
내가 말한다. 누가 교수 당했다고?
몇 명의 시인들과 예술가들이었어요. 그들은 죄를 지었대요.
그들도 구부러진 집에서 살았다면
그런 꼴을 당하지 않았을 텐데. 안타깝구나. 그리고 난 창문을
닫았다.

<탕겐! 내 이름은 안드레아스 탕겐이야!> 나는 중얼거리면서
다리가 두 개 밖에 없는 의자에 앉았다.
나는 배가 고팠지만 눈이 붉은 쥐들이 내 음식을 모두 가져가버려서
먹을 수가 없었다. 나는 이 집에 살기 시작한 이래로
단 한 번도 식사를 한 기억이 없다.
탕겐, 내 이름은 안드레아스 탕겐.

그런데 도대체 내 이름이 무엇이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Posted by Lim_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