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담

글/시 2014. 8. 27. 19:00 |
진담


좆나게 취한다고 해서 친구가 생기는 것은 아닌가봅니다 술집 닫을 새벽 무렵 비틀거리며 어둔 밤거리를 걸을 때 내 심장은 어찌나 발광을 하였는지 발광하여 혈액 대신 알코올이 도는 혈관에는 어찌나 쓰라린 고독이 돌았는지 눈물로 된 나뭇잎을 하늘거리는 나무 밑에서 나는 나무뿌리에 몇 번이고 새빨간 토사물을 뱉었습니다 럼주는 분명히 사탕수수로 만든다는데 왜 이렇게 지독하여 마치 독액과 같은지 의문하면서도 나는 밑 빠진 독처럼 그 독액을 위장에 쏟아 넣고 쏟아 넣고 쏟아 넣은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술기운에 달아오른 고독이 온갖 가시와 칼들로 무장한 채 몸속에서 일어나 난도질하는 때에 나는 왜 내 옆에 친구 하나 없는지 이미 말도 듣지 않는 손으로 휴대전화를 꺼내어 닥치는 대로 통화버튼을 눌렀으나 이 어두운 밤에 해가 뜨기 직전의 새까만, 하늘에 장막을 친 것 같은 밤에 깨어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던 것입니다.
목소리, 목소리 부디 내가 어느 골목으로 들어가야 할지를 알려줄 목소리 한 줌만 주시오 나는 중얼거리면서 내 온몸의 땀구멍에서 알코올의 냄새가 올라오는 것을 느끼고 헛구역질을 했습니다 아버지가 말씀하시기를 네 어머니도 널 낳기 전에는 술꾼이었어 아하, 그렇다면 내가 어머니의 자궁을 차고 나올 때 어머니의 술에 대한 갈망도 전부 가지고 나온 모양입니다 왜냐하면 어머니는 이제 맥주 한 잔만 마셔도 머리가 아프다고 누워버리는 것에 반하여 나는 일주일에 한번만 술을 마시지 않아도 내 인생 전부를 분쇄기로 철저히 갈아 음식물쓰레기수거함에 처넣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한껏 술에 취한 뒤에는 내 인생 대신 나 자신을 분쇄기에 집어넣고 싶기 때문입니다 돈이 없을 때에는 소주가 좋지요 그리고 시인이라는 족속들은 하나같이 돈 만지는 법을 모르지요 그러나 나는 아직 일터에서 쫓겨날 때가 되지 않았기에 가끔은 럼주 같은 사치도 부리고는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호프집에서 2차로다가 맥주를 마시며 혼자 앉아 마시며 누군가의 시집을 읽는 것입니다 모두가 커피숍에 가서 멋 부리며 다리 꼬고 에스프레소 잔 옆에 시집을 덮어놓을 때 나는 맥주병 주둥이와 담배를 번갈아 입으로 가져가며 점점 흐려지는 눈으로 제정신으로 살기 위해 정신을 잃고 시를 썼던 누군가의 시집을 읽는 것입니다.
내가 단골로 있는 바의 사장님은 내 지저분한 장발도 좋아하고 핏기 올라 번쩍이는 내 눈동자도 좋아하며 더러는 내 시를 좋아하기도 하기에 술에 취하면 나도 그에게 시 한 장 써서 건네는 것 아니겠습니까 노란색 포스트잇에 자신의 심장을 꺼내먹어 심장과 위장이 가까워지게 해야만 한다고 써갈겨서 건네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나는 손님이요 그는 사장인 가운데 내가 술푸며 슬픈 얘기를 조롱하듯이 하면 그는 또 웃고 경청하는 것입니다 그 순간만은 퍽도 좋습니다 너무 좋아서 양주 서너 병을 한큐에 삼키고 급성알코올중독으로 쓰러졌던 신해철이처럼 쓰러져 영영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것입니다―그러나 신해철이는 죽지 않았지요 그는 머리를 깎고 일어섰지요― 하지만 내 지랄 같은 봉급으로 술값을 계산하고 나오면 거리는 한산합니다 어둡고 한산하여 고적할 뿐입니다 나는 또 비틀비틀 비틀거리며 순경이 순찰하기도 포기한 더러운 뒷골목으로 걸어들어가고 집으로 가는 길만은 뚜렷하게 기억합니다 아무리 취해도 아무리 정신이 나가도 내 둥지만은 기억합니다 아무리 돌아가고 싶지 않아도 그대로 달에게로 날아가 달을 배고 눕고 싶어도 내 슬픈 몸은 집에 가는 길만은 기억합니다 그러나 걷는 길이 너무도 고적하고 내 영혼은 또 달아올라 오밤중에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 내 휴대전화에는 절대로 전화 한 통 걸려오는 법이 없고 나는 울면서 전봇대 둥치를 끌어안고 오바이트를 쏟고 쏟는 것입니다.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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