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서울

글/시 2014. 9. 8. 09:37 |
여기는 서울


오늘은 퇴근도 일찍 했건만
왜 이리 발치에는 울증이
푹푹 쌓이고 아침에 퇴근하는 내 몸은
비몽사몽하여 피곤마저 초월하여
지상을 걷는 것인지 구름 위를 거꾸로
걷는 것인지 어깨 위에서 덜렁거리는 내 머리는
아무리 어깨를 꼿꼿이 펴고 있어도
바닥도 없는 늪에 천천히 잠겨가는 기분이다
사실은 기분만 그런 것이 아니라 내 귀와 코와
입으로 태초부터 썩어온
시간이라는 뻘이 기어들어오고 있다.

백석 시인은 가난하여도 나타샤를 사랑하고
나타샤를 기다리면 나타샤가 안 올 리 없었다는데
가난한 나는 기다리는 사람도 없고
날 기다려주는 사람도 없고 그런 것은 일체
기대조차 하지 않으리라고 소주잔에 눈물 빠트리고
술 퍼먹다가 우는 것이 쪽팔려서 소주를 얼굴에 부어대고
그리하여 만취한 내가 거리로 나와서
집으로 돌아가려니 지갑에는 천 원 짜리 한 장 없고
사실 천 원이 아니라 만 원이 있어도 내 가난뱅이 근성으로는
절대 저 주황색 택시를 탈 일이 없다는 말이다 그리하여
백석 시인이 나타샤와 흰 당나귀 타고 갈 때
나는 흔들리는 지하철을 흔들리는 발걸음으로 잡아타고
뻔히 아는 사실로는 지하철은 절대 응앙응앙 우는 법이 없다.

오늘은 퇴근도 일찍 했건만
아침 댓바람부터 혜화동 구석진 곳에 문 열고 있는 술집
Bar 우드스탁의 존 레논 닮은 사장님한테 맡겨둔 글랜피딕 십오 년짜리만
자꾸 생각나고 지금 나는 술도 마시지 않았는데
눈앞이 부예 만물이 다 두어 개 씩으로 나뉘어 보이고
줄담배로 썩어가는 내 허파는 야 인마 힘을 내라
조금만 더 피우면 이제 돌이킬 수도 없을 것이다, 하고
미필적 고의로 내 폐암을 앙망하는 것이다
지랄, 폐암에 대해서는 내가 잘 알지 못한다만
암이 영어로 캔설이라는 것은 알고
한자로 내 이름이 폐인이라는 것은 안다.
고로 나는 잠 때문에 만취한 상태로
휘청휘청 담배 피우고서 자러 갈 것이다. 이 아침 댓바람에.
Posted by Lim_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