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살 위의 정신

글/시 2016. 6. 11. 03:21 |

학살 위의 정신



하늘은 잿빛

그 많던 비둘기들은 모두 자취를 감췄다

새벽의 거리엔 습기가 서리고

하늘로 빨려 들어가 사라져버린 것들에 대해

남자는 추억한다

집 잃은 흰색 개들도

이젠 어딘가에 뼈 밖에 남지 않았으리


오래 전 어린아이가 하나 죽었다.

혹은 최근일지도 모른다

그때 그 아이를 껴안고 눈물 흘리지는 못했을지언정

그 작고 더럽혀진 손이라도 잡아줘야 했을 텐데, 라고

남자는 생각한다, 공포에 질린 채

소름끼치게 뜨고 있던 눈이라도 감겨줘야 했을 것을


장례식은 그 누구의

발도 닿지 않은 대학로의 어느 어두운 골목에서

천천히, 지루하게 진행되었다

새까만 그림자에 모자를 푹 눌러 쓴

검은색 조문객들은 모두 진탕 취해있었다

이봐, 그 아이에게 가족이 있었던가?

나이 많은 형이 하나 있었어, 그러나

지금은 보이질 않는군, 하며 그들은 수군거렸다


동이 트자 조문객들은 사라져버렸다

연기처럼, 혹은 안개처럼 그러나

죽은 아이가 담긴 관은 아스팔트

위에 방치되어 있다가, 어느 친절한 행인에 의해

우표가 붙어 남자에게로 배송되었다


새벽 거리 남자는 줄담배를 태운다

폐가 미치도록 아파…… 그러면서 남자는 웃는다.

어린아이가 죽지 않는 것은 죽는

것보다 더 커다란 비극이고

하늘은 잿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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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 모든 절망을 당신께



그는 담배꽁초를 보지도 않고 내다버린다

저 그림자 뒤의 세월들도 그렇게 내다버려졌으리라

눈길조차 받지 못하고, 검은

나무 그림자에 묻히는 쓰레기처럼

시간이 흐르고 빗방울이 떨어지면

그의 세월도 담배 필터도 물에 불어 그늘

밑에서 비밀스럽게 비대해지리라.


석양이 지기 시작하면 남자는 골목 사이로

천천히 사라진다. 내 눈은 그를 좇다가

결국 눈물처럼 내가 쥔 오래된 시집의 한쪽 한쪽마다

책갈피가 되어 꽂힌다. 나는 중얼거린다,

여보게, 너는 도대체 언제부터 감명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연구하기 위해서

차가운 몸뚱어리가 된 작가들의 책을 읽기 시작했나?

그 차가운 계절에는 도대체 얼마나 되는

책갈피들이 무수히 책장 사이에 꽂혔는지


아직 태양이 떨어지기 전에, 남자가 섰던 자리에

나는 서서 내 그림자를 돌아보았다 그 치명적인

공간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더러는 보이지 않았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나는 금성이 떠오를 무렵에야 길거리에 선 채

기억해냈다. 한 때는 깃발과 창을 높이 쳐들고

세계에게 분노의 목소리로 강론을 하는 것이 필연

이었고 의무였던 때가 있었지

그런데 지금은 모든 잎들이 지고

고엽이 굴러다닐 뿐인 정적의 차도―그 재물들의 사상 위에

정신은 버려지고 혁명은 물론이거니와

반란도 유물이 되었다


내일도 저녁 아홉 시가 되면 병동의 문이 잠길 것이고

나는 불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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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명령하지 않은 세계



누구도 나에게 비참하라고 하지 않았다.

누구도 나에게 고통 받으라고 하지 않았다.

누구도 나에게 절망 속에 살라고 하지 않았다.

누구도 나에게 고독하라고 하지 않았다.

누구도 나에게 싸우라고 하지 않았다.


누구도 나에게 명령하지 않았다

내 갈비뼈를 깎아 단도를 만들라고

눈동자 속에 공허와 혐오를 담으라고

피 흘리는 만큼 피 묻으라고

하얀 피부들 위에 잉크를 새기라고

누구도 나에게 명령하지 않았다.


내 유년기의 거대한 찢어진 흉터도

내 소년기의 추위와 배고픔도

내 청소년기의 방랑과 발작도

내 청년기의 증오와 분노도

오로지 나에 의한 나만의 것이다.


전부 내 것이다. 전부

괴악망측하게 뒤틀린 내 영혼의 끄트머리의 한 조각조차도

아무에게도 주지 않을 것이다.

나는 계몽하지 않는다 나는 설파하지 않는다

나는 공유하지 않는다 나는 교육하지 않는다


누구도 명령하지 않은 내 고독으로

고로 나는 더욱 철저하게 고독해졌다.

누구도 의도하지 않은 내 고통으로

고로 나는 내 일생의 모든 순간에 가장 끔찍하게 고통 받는다.

그리하여 나는 나 혼자만을 위한 거대한 성을 지었다.


내가 나의 복수를 위하여 나의 앙갚음을 하려 들면

당신들은 드디어 내 망할 얼굴가죽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드디어 당신들은 내 웃는 얼굴에 박힌 이빨들과

정신병동에 갇힌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아름다운 이들을 한 없이 증오하는

그들의 목을 졸라 머리를 뜯어낼 내 길고 붉은 혓바닥을 보게 될 것이다.

나는 여러분이 대답하길 바란다. 누구도 너에게 미치라고 하지 않았다고.

옳아, 내가 미칠 리가 없지. 광인이 광기를 선택하여 광인이 되었다는 건

명백한 논리모순이다.


그래, 수많은 정신병원 의사들이 내 손을 잡았었지

그들은 말했다. 장기적으로! 긍정적으로! 어려울 것이지만,

더 낫게! 더는 고통스럽지 않게! 마음을! 사람의 감정을!

영혼의 균형을! 채찍질은 그만! 손을 잡아요! 스스로 구제를!

어린아이의 눈물을! 성인이 되는 법을! 사상의 조율을!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말하자면 이제 경찰과 검사들은 이 세상 모든 이들의 정신병원 진료기록을 체크할 것이다 그리고 유전형질에서부터 스스로 고통스럽다 못해 증오를 품게 될 이들을 찾아낼 것이다 그리고 개방병동에서 격리병동으로 격리병동에서 독방으로 독방에서 형무소로 형무소에서 교수대로 교수대에서 이 세상 밖으로 그들을 이동시켜 마침내 완전무결한 사회를 만들었노라고 청결한 가위로 테이프를 끊고 서로 악수하며 웃고 카메라 앞에 설 것이다 그런데 그러면 그 뒤 우리는? 내가 품고 있는 것은 미래지향적인 것이다. 철저하게. 철저하게 미래지향적인 감정이다.


떨어지는 목들, 뭉개진 눈알, 크게 찢은 복부에 삽입되는 남근,

손톱 끝에서부터 어깨까지 잘게 썰린 고기와 뼈들, 정소를 절개해 꺼낸 정액들,

난소를 절개해 꺼낸 난자, 슬럿지 해머로 다져진 날고기, 혀가 제거된 남자들,

유방이 제거된 여자들, 창으로 벽에 꽂아놓은 고기인형들,

나이프로 벗겨 무두질도 하지 않고 창고에 처박아 놓은 가죽 컬렉션들,

뇌수가 있던 자리에 맴도는 윙윙거리는 날벌레 소리와 부화되는 알들,

자본주의가 들어찬 옆구리 살을 불에 굽는 냄새, 사회주의가 들어찬

두개골이 박살나는 소리, 자신이 인간이라고 믿었던 가죽주머니들이

좍좍 찢어져 안에 담고 있던 잡고기와 내장들을 쏟아내는 소리, 그 냄새,

드디어 나는 생살을 씹을 것이다. 내 치아들은 웃을 것이다.

마침내 나는 아침에도 웃을 것이다. 낮에도 슬퍼하지 않을 것이다.

더는 술에 취해 울지도 않고 담배도 끊을 것이다.

더는 어머니를 미워하지도 아버지를 애닳아 하지도 않을 것이다.

물론 그들도 날 이해하고 창고에 여기저기 흩어져있겠지.

내 유일한 피붙이 동생도, 내게 친절했던 사촌도, 내가 사랑했던 친가 가족들도,

내가 혐오했던 외가 가족들도, 내 몇 안 되는 사랑스런 친구들도,

매일 저녁 출근할 때마다 나에게 웃으며 인사했던 버스기사님도,

매일 술을 사러 가면 먼저 인사를 걸어왔던 마트 점장님도,

길가에서 스쳐지나갔던 모던하게 차려입은 아가씨들도,

멋지게 몸을 키워 자신만만하게 걷던 청년들도, 구청의 공무원들도,

길거리에 누운 노숙자와 거렁뱅이들도,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던 아주머니들도,

내게 한 없이 자상했던 스님들도, 어렸을 때 만났던 신부님들도,

예수님도, 하나님도, 부처님도, 알라도, 무함마드도, 성경도, 불경도, 쿠란도,

이제 막 태어난 신생아도, 죽음이 눈앞에 놓인 노인들도,

잘 생긴 이들도, 못 생긴 이들도, 젊은이들도, 중늙은이들도,

성자도 탕아도 부자도 빈민도 호모섹슈얼도 헤테로섹슈얼도 권력자도 피지배층도

전부 철저하게 분해되어 나의 세계에 피와 면도날을 증명할 것이다.

나는 손을 뻗는 수밖에 없었다. 정말이다 나는 손을 뻗을 수밖에 없었다.

팀 버튼 감독의 가위손처럼, 손가락이 나이프로 되어있다는 것은 죄가 아니다.

물론 그것이 죄라고 말할 사람들은 널려있지만, 곧 그렇지 않게 될 것이다.

나는 더 이상 아스피린을 한통씩 삼키지도 않을 것이다. 쿠에티아핀푸마르, 바이코딘, 바르비투르산, 발리움, 디펜히드라민, 알프라졸람, 클로미프라민, 그 외 내가 알지도 못하는 수 많은 이름의 약들. 그것들을 나는 내다버리고도 멀쩡할 것이다.


아! 사악한 자여. 내가 아는 한, 세계는 나의 것이고

나의 세계는 아름다워질 준비를 하고 있다.

번데기에서 나와 날개를 펼치는

이름 없는 어느 나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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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누스의 노래

글/시 2016. 5. 20. 06:21 |

야누스의 노래



1.

나는 사람들이 가장 혐오하는 것들로 가면을 만들어 뒤집어썼다.

여인들은 비명을 지르며 뒷걸음질을 쳤고,

술에 취한 남자들은 소름끼치게 웃으며 내 어깨에 팔을 둘렀다.

너무 오랫동안 그 가면을 벗지 않아

나는 나의 원래 얼굴이 무엇이었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오, 자아라는 것의 신비스러움이란! 도대체 누가

자신의 원래 얼굴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알 수 있단 말인가?


나는 나의 외로움을 찬송했다.

저주 같은 해가 동쪽에서 떠오르면

나는 야간생활자의 그림자를 품고 햇살 비추는 거리를 걸었다.

그것은 지독하게도 괴로운 것이었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는 건실한 사람들의 얼굴을 보는 것이 두려웠다

만일 내가 그들과 눈을 마주친다면

그들은 나의 파리하고 쑥 들어간 눈동자를 보게 될 것이며

너무나도 당연하게 그들은 날 증오할 것이다.


오 불행이여, 나의 친절한 친구여.

그는 내가 무엇이든 이룰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나는 술병과 연거푸 악수를 나누며

건물의 위태로운 옥상에서 나의 재들을 사람들의 머리 위로 흩뿌렸다.

하하! 그러면 나는 웃었다! 자신의 영혼에 대한 경범죄는

나의 입술을 말려 올라가게 하며, 그것은 동시에 위대한 준비였다.


태양이 군림할 때에 나는 늘 잠을 잤다. 마치 겨울잠을 자는

거북이처럼, 나의 단단한 등딱지 속으로 들어가,

전혀 평온하지도 아름답지도 못한 잠을 잤다.

악몽이라 불리는 것들이 나의 무의식에서 빠져나와

나의 인격에 못과 망치로 조각을 새겨 넣었다.

나는 축제를 맞이하듯이 불경한 시들을 세계에 외쳤다.


나에게는 매일 일어나는 신비로운 사건이 있는데,

그것은 내가 술을 마실 때마다 발현한다.

기억이 날아갈 만큼 술을 마시고 부엌바닥을 길 때,

나는 내가 살아있는 것인지 시체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누군가 나에게 인간이 되라고 했지만

나는 펜을 쥘 수만 있으면 인간이 아니더라도 상관없다고

그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미(美)를 모르는 자들은 고통 받지 않는다!

너무도 오만하고 진부한 얘기지만

나는 정직하다.

나는 나의 광기를 이리저리 끌고 다녔다.

사람들은 내게 침을 뱉었고 오물을 피하듯이 길을 열어주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몇 번이고 충동적으로

경찰서의 문을 열고 들어가고 싶었다.

체포하시오. 부디 나를 체포하시오! 당신들은

어떤 인간을 괴물로 정의하고 목뼈를 부러뜨리기 위해 나라의 녹을 먹지!

그러니 나의 목뼈를 부수고 영광스러운 카메라 앞에 죄인의 시체를 전시하시오.

그러나 그것도 유치한 꿈일 뿐!



2.

나는 나의 낡은 구두를 신고 갈대밭을 항해했다.

갈댓잎들이 나의 팔에 상처를 새겼고

나는 상처에서 흐르는 피를 핥으며 내 생명을 노래했다.

오-랄라! 살아있다는 것은 참으로 위대한 기회로다.


나는 품에서 술병을 꺼내 황금빛 싸구려 럼으로 목을 축인다.


나의 구두는 나 없이도 모든 곳을 돌아다녔지

사막도 황야도 초원도 숲도 해변도

나의 낡은 구두의 밑창은 모두 밟아보았다.

나는 강가의 썩은 통나무 위에 앉아 역사의 신선한 피를 마시니


나는 과연 행운아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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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역(誤譯)을 위하여

글/시 2016. 5. 18. 04:35 |

오역(誤譯)을 위하여



1.

나 아직도 꿈을 꾸매

나태에 꿀을 뿌려 벌레들이 갉아먹게 하고

새벽이 가장 짙은 시간에 잃어버린 것들이 몇인가

셈을 하네.


내가 사죄해야할 것이 있으니,

나 신(神)과의 약속을 저버렸네.

아직도 내 목 잘라가지 않는 것에

가장 고통 받는 것은 나 자신이니.


너무 많은 영혼들이 내 추래한 육신에

비좁게 들어차있네.

고로 그것은 자꾸만 나를 가볍게 만들어

나는 전봇대에 묶인 헬륨풍선과 같네.


판사도 검사도 없는 세상은

오히려 정의라는 망치로 사람들의 두부를 깨부수던

그때보다도 숨이 턱턱 막혀

나의 작은 아나키, 내 심장을 파먹는 역병과 같네.


욕망이 없다는 것이 결국에는

가장 비극적인 인간상이라는 걸 깨닫고

나 삶 아니면 죽음에라도 탐닉하려 했건만

이미 모든 게 늦어, 나 모든 이들의 눈에 보이는

환영처럼 되어버렸네.


봄의 창문에 기대 해가 천천히 떠오르는 것을

길가의 아지랑이로 추측하며 나는

그것이 진실임을 알았어.

아지랑이만이 진실임을.


울려라, 태양으로 만든 징아

나 단 한 번만이라도 이 세계의

진짜 소리를 듣고 싶으니, 울려라.

공허 속에 뛰노는 환영인 나를 열파로 태워버려라.


리볼버에서 터져 나온 화약 냄새를 맡았을 때

잠깐이지만 나는 희열을 느꼈어

내가 생명력을 갖고 있다는 착각에

나는 고함치고 싶을 정도로 희열을 느꼈어.


묵직한 총신의 금속성 반동이 내 손에 닿을 때

나는 내가 손을 갖고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고

아무것도 조준하지 않고 초원을 향해 여섯 발을 발사했을 때

상상과는 너무 달랐던 그 화약 냄새에

나는 새삼 깨달았어.


오로지 전쟁만이 날 존재자로 만드는

수단이자 목적이라고.



2.

나는 폭력과 피가 근절된 모던한 도시로 돌아왔지.

사람들은 탄피 대신 금화를 떨어뜨리고

화약 냄새 대신 네온과 메탄가스의 냄새가 나고

탄환 대신 성애를 분출해.


죽은 코요테의 뼈를 내려다보며 석양을 기다리던 곳에서

서류를 전산망에 입력하는 밤의 사무실로 돌아오자

지독한 혼란이 내 뇌를 짓이겼어

그런데도 이곳에서는 여전히, 사람들은 예수를 모시지.


「신은 죽었다. 이제 우리는 초인을 필요로 한다.」

그렇게 말하고 백년. 하고도 16년.


모든 것이 애매하고 중첩된 이 시대에

우리는 입을 꿰매버리는 수밖에 없었지.

지금도 사람들은 눈을 감은 채

또 한 명의 히틀러, 또 한 명의 스탈린을 바라.


아! 그래, 의식적으로 도덕을 믿지 말도록 하자.

수단은 누가 되든 상관이 없어, 오로지

인간들의 영혼이 전쟁상태에 돌입하기만 한다면

우리는 부활할 거야.

진정한 의미의 부활.


신이 아직도 내 목에 낫을 가져다대지 않았으니

나는 이것을 계시로 알고 계시로 삼겠다.

더 고통 받으라고, 더 비참하라고, 더 울부짖으라고,

더 나 자신의 무력한 정신을 저주하며 무엇이든 써내려가라고.


이 시대정신에 필요한 것은 파괴고

붕괴이며

타락과

퇴폐와

소각이다.


루브르 미술관이 불태워질 때

우리의 영혼은 부활할 거야.


가장 아름다운 것들이 가장 추한 것이 되고

가장 추한 것들이 가장 아름다운 것이 될 때

우리의 영혼은 부활할 거야.

역설적이게도, 미래를 위하여.



3.

이 이야기의 논점은

사실 우리는 이미 죽어있다는 것.

이 이야기의 교훈은

사실 우리는 점점 더 자신을 죽이고 있다는 것.


무정부상태라는 것도 사실은 정책의 하나에 불과하고

나는 아직도 꿈을 꾼다.

텍스트로 기술 가능한 모든 것들은 실상 허구이매

그래서 우리는 텍스트를 초월하는 것을 텍스트로 만들려 했다.


인류가 언어를 발명했던 시점부터

전 인류의 정신분열증은 이미 발병하기 시작했었다.

뇌내의 강렬한 환각을 언어로 표현하지 못할 때

나는 가슴을 쥐어뜯으며 비명소리를 냈다.

손톱이 만들어놓은 작은 입에서 핏방울이 흐르면

칼리굴라처럼 슬퍼했다.


내가 과연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을 때는

너무나도 날고기가 먹고 싶었다.

이윽고 감정의 수원지에 연결된 파이프가 터진 것을 보고

뼈가 아프도록 술을 마셨다.


나는 아직도 이상한 꿈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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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혐오했던 것은 어쩌면 나의 거울일지도 모른다



눈물을 흘릴 때 가슴에 칼을 긋는 것은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지.

80만 원짜리 러닝머신 위에서 뛰거나

어느 밤 옥상 위에서 노래를 부르거나

혹은 충분할 만큼 눈물이 나올 수가 없기에.


자신의 피부 위에 핏방울이 송골송골 맺히는 것을

그것을 눈물의 또 다른 형태라고 이해하는 것은

연인을 껴안아도 가슴 속에 공허한 바람이 불고

가족의 손을 잡아도 온기가 느껴지지 않고

줄담배를 피워도 영혼의 아픔이 잦아들지 않기 때문이지.


대낮에 소주에 흠뻑 취해

축축한 장판 위에 나동그라져 있는 것은

그 순간만이 아프지 않기 때문이지.

사실은 내가 술을 먹는 것이 아니라

내가 현실에게 술을 먹이는 것이야.

어쩌면 그럴 때 나는 세상의 비극 속에서 가장 아름답지.


술에 취해 정신을 잃으면 나의 눈물샘에서

에틸알코올 한 방울이 덧없이 떨어지는데

어쩌면 그 장면은 세상에서 가장 역겨울지도 모르지.

숙취 때문에 쪼개질 것 같은 머리로

한 새벽에 신경안정제와 발리움을 찾아 서랍을 뒤지는

그 장면보다 더욱 더.


아주 오랫동안 이성에 의존해 입을 열려고 했지.

그랬더니 그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어.

그래서 나는 이 가슴에 공허와 광기를 키웠지.

너무 지쳤었기에.


기껏 꿰매놓은 가슴의 흉터를 다시 찢는 것은

아무래도 그 안에 무언가가 있는 것 같기 때문이야.

어쩌면 그 붉은 피는 나의 피가 아니라

내 늑골 속에 사는 짐승의 눈물이 아닐까?

꿈틀대는 거대한 기생충의 체액이 아닐까?

동굴 안에 혈거짐승이 살고 있는 것처럼

내 공허 속에 무언가가 살고 있어.


오, 아버지. 어찌 저를 버리지 않으시나이까.

자의적으로 절벽에서 굴러 떨어져

발목이 부러진 채,

나를 못 박을 십자가를 누군가가 가져와주기만을 바라는

나를.


안녕, 여러분. 나는 직장동료를 만나면 웃으며 인사하지.

최근 별 일 없지? 안부를 묻고

그러나 나는 바위에게도 웃으며 인사하고 안부를 물어.

그리고 백일몽 같은 낮이 지나가고

내 영혼이 고요히 우는 새벽 밤이 되면

나는 얼굴 없는 고무인형이 되어

펜을 쥔 채 죽음을 기다리지.


만일 당신이 새벽 세 시에 우리 집 문을 열고 들어온다면

당신은 망가진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있는

인형 같은 이상한 물체를 보게 될 거야……

그것은 코도 없고 입도 없는데

섬뜩하게 눈을 뜨고 축 늘어져있겠지.


놀라지 마. 그것은,

필사적으로 살아남기 위한 발버둥의 잔해인

소위 「인간」이라고 불리우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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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 노바크와 모든 문명에게 바침



1.

나는 말레이 여자 마라를 상상한다.

적도에 세워져 무너진 도시를 상상한다.

해안에 따개비 무리처럼 낮고 빼곡하게

흙으로 지어진 마을들은 아주 조용히 먼지가 되었다.

무너지는 것은 높은 것들이다.


창촉 같은 태양빛이 무작위하게 내려쬐어

높은 건물들은 갈라지고 추락했다.


말레이 여자 마라는

무너져 인동덩굴과 온갖 이끼류로 뒤덮인

거대한 건물들의 폐허 밑에서

표범 토오와 함께 잠들어있다.


2.

문득 나는 일본에서 보았던

아주 촘촘하게 숲을 이룬 침엽수림에 대해 생각한다.

이제 나는 데이비드 소로우가 감자를 심던

작은 텃밭과 오두막을 상상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최저한의 문명도

내게는 아직 달갑지 않다.


3.

나는 너를 상상한다.

청계천 주변 무너진 은행가를 뛰어다니는 노루를

직접 만든 올가미 그물로 잡고

땅 밑에 파묻힌 교보문고와 영풍문고 본점에서 끄집어낸

책들로 불을 피워 노루고기를 익히는 너를.


광화문에 있는 녹슨 이순신 장군 동상에는

햇빛을 잘 받으라고 내장이 제거된 생선들이

주렁주렁 매달려있다.

여름이 끝나기 직전 멧돼지 가죽을 입은 여자들이

충무공을 타고 올라 말린 생선을 모아올 것이다.


어느 순간 적도의 숲에서는 불이 난다.

내가 사랑했던 시에서 말한 것처럼

불길은 광기처럼 타오른다.

나무들이 죄 재가 되고 나면 그것은 양분이 되어

새로운 나무와 풀들을 키울 것이다.

너는 마라와 함께 그것을 본다.


너는 대나무로 깎은 창을 쥐고

갈색으로 변한 의정부 시내의 이성계 동상 옆에서

앉은 채로 낮잠을 잔다.

가끔 야생마들이 갈라진 국도 위를 뛰어가고

성형외과와 아로마테라피 샾의 광고간판으로 번쩍이던

드높은 빌딩들은 허리가 꺾여 영장류들의 집이 되었다.


바다가 보고 싶으면 너는 가을 전에 준비를 한다.

말린 고기들을 돌로 만든 바늘로 꿰어

허리에 감고

고라니 가죽을 덧댄 웃옷으로 바닷바람에 대비한다.

이젠 아무도 없는 주한미군 캠프에서

어렵사리 잭나이프 하나를 찾아내

칼날을 무두질한 돼지가죽으로 감싸고 서쪽으로 걷는다.


네가 서쪽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유일한 증거는

밤하늘의 별이다.

너는 너무나 당연하게도 그것을 알고 있다.


네가 해안에 도착했을 때

너는 이렇게 생각한다. 「여기가 아마도 인천일 거야.」

해안가의 도시들은 이미 쓸려나가

곱고 빛나는 모래가 되어 네 발밑에서 굴러다닌다.

작은 게들이 바쁘게 돌아다니고 구멍이 송송 난 해변에서

수평선을 보면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주 오래전에 가라앉은 유조선이

새까만 석유에 둘러싸여 선체 앞부분만을 수면 위로 내놓고 있다.


여긴 아직도 가솔린 냄새가 나고

깃털에 석유가 들러붙은 채 말라죽은 새들의 시체가

해변 곳곳에 널려있는 것을 너는 본다.

너는 매년 한 번씩 이곳에 온다. 그것은 너를 기쁘게 한다.

그리고 너는 매년 한 번씩 여의도로 가

풀썩 주저앉은, 한때는 황금색이었지만

지금은 암녹색과 녹슨 철근의 색으로 변한 마천루를 본다.


넌 갈대줄기로 화살을 만들고

어린 대나무로 활을 만들고

강북구에서 창을 던져 사향노루를 잡고

간석기로 늑대 가죽을 무두질해 옷을 해 입는다.

너에게는 표범 가죽으로 만든 옷도 있었지만

그걸 입으면 토오가 앞발을 휘두르며 위협하기에

흙속에 묻으라는 마라의 조언을 따랐다.


밤이면 너는 서점에서 발굴한 책들을 태워

모닥불을 피우고

나이프를 쥔 채 그 옆에서 잠든다.

사위는 새까맣고 어디선가 동물 울음소리가 들린다.

밤바람에 나뭇잎들이 바스락거리고

올빼미와 소쩍새 우는 소리가 난다.


그런 너를

나는 상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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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노스탤지어

글/시 2016. 4. 22. 05:03 |

이상한 노스탤지어



과거에는 세상을 정당화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지.

대양이 아름답다면 그건 한 인간에 의해 아름다웠고

삶이 위대하다면 그것도 한 인간에 의해 위대했어.

내가 언제쯤 실패하게 될지 기대되는군.


그러나 태양이 수천 번 떠올랐다 저물었고

나는 일종의 유물이 되었네.

먼지가 뒤덮은 갈색 낡은 마을과

붉은 벽돌을 타오르는 인동덩굴이 아직도 눈에 선한데

내 마음도 광재가 묻은 뿌연 유리창이 되었네.


이 도시의 밑바닥에 앉아 위를 올려다보면

심지어 밤에조차 세상은 세피아 색이네.

아이러니한 일이지. 사실 모든 것이 더

폭력처럼 선명하고 비극처럼 짙게 되었는데.

빛바랜 것은 나의 눈일까?


모든 것이 무가치하다는 사실은

그것을 부정하는 용기 있는 자가 있을 때만

사실이 되지.

온 세상이 꿈의 거품이라는 사실은

태양에 달궈져 지글대는 땅을

맨발로 걸어 다니는 사람이 있을 때만 사실이 되지.

거꾸로 말해도 그르지 않은 진실.


어제는 서재에서 오래된 책을 찾아냈네.

파란 표지로 된, 플라톤이 제자와 대화하는 내용의

아주 오래된 책이었는데, 종이가 누렇게 변해버린 것을 보고

가슴이 쓰렸어.

오, 그래. 나에겐 이상한 노스탤지어가 있어.

나의 아버지가 태어나기도 전에 내가 살아있었던 것 같은

이상한 노스탤지어.


시간이 나에게만 교묘한 요술을 쓴 것일까?

나는 모든 시대를 살았었어.

그리고 모든 시대의 유물이 되었지.

그러나 이것도 그저 나의 광증의 일부일까?

아직 살아있는 나의 아버지를 볼 때마다

나는 안도하게 되거든.


세상을 정당화하는 사람들이 살았었지.

그리고 나는 참으로 그들처럼 되고 싶었지.

내가 언제쯤 실패하게 될지

정말로 기대되는군.


그 시간이 덮쳐들고야 만다면

나는 만족한 듯이 철제 의자에서 일어나

곡괭이 한 자루를 들고 털레털레 가리라

카잔차키스가 살았던 갈탄 광산마을로 가리라.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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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하는 후배가 부탁한 글.

제목조차 내가 정한 게 아니다. 그가 제시한 네 개의 낱말을 순서만 맞췄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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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정체성, 비극, 긍정, 광기



 부조리 철학에서 이 우주를 구성하는 것은 크게 세 가지이다. 그것은 인간, 세계, 그리고 부조리다. 여기서 말하는 부조리란 군대에서 이등병이 자살하는 등의, 사회인들이 텔레비전 너머에서 욕설을 내뱉게 만드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설명컨대 인간은 탄생과 동시에 하나의 개인으로서 존재한다. 그리고 인간이 개인이 되는 순간 세계는 인지되어 탄생한다. 그 세계는 개인의 밑이나 그림자 뒤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치 적군이나 원수처럼 개인의 눈동자를 마주보며 거대한 크기로 위협한다. 그러한 시선의 마찰에 불똥이 튀는 순간에 부조리라는 것이 탄생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개인-부조리-세계의 관계는 철저하게 필수적이며 필연적인 것이고 약간의 조정이나 타협은 가능하지만 인간의 영혼이 사멸하는 순간까지 멈추지 않고 존재한다.

 서술을 약간 이르게 시작했다. 그러나 위에서 말한 것들은 근대에 출판된 철학논고들만 읽어도 알 수 있는 부조리 철학의 가장 기본적인 사실에 불과하기에, 굳이 기다란 문장을 만들지는 않았다. 중요한 점은 여기서 시작된다. 인간이 <개인>이 된다는 것은 즉 인간이 자기 자신을 유일한 개체로서 인지한다는 뜻이다. 이것은 아이덴티티라고도 자아정체성이라고도 어떤 특정인의 페르소나의 집합이라고도 설명할 수 있다. 태어난 뒤 막 눈을 뜬 갓난애의 투명한 눈동자가 자신을 포함하고 있는―그러나 자신과는 <다른> 오브젝트를, 즉 세계를 관찰하는 순간 인간은 세계라는 무지막지한 혼돈의 기계에서 떨어져 나와 개별적인 존재로서 자신을 차별화하게 된다.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다는 것은 그리도 쉬우면서 동시에 엄청난 것이다. 인간의 오감 중 하나만 있다면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 세계를 <감지>하고 그것이 <내가 아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것은 개인의 발생이며 동시에 개인-세계라는 통렬한 마주봄의 시작이다. 사실상 인간이 자신의 영혼에 충실하기만 한다면 굳이 발 벗고 나서 자아라는 것을 찾을 일조차도 없는 것이다. 당장 앉아있는 의자의 팔걸이를 손으로 쓰다듬기만 해도 당신은 당신이 세계에서 떨어져 나온 별개의 존재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살아가는 일 하나 하나가 전부 세계에 대한 마찰행위인 것이다. 그 세계에 만족 하는가 불만족 하는가 하는 사고의 영역까지 가지 않더라도, 인간의 존재는 이미 세계를 <적>으로 삼도록 설계되어있다. 왜냐하면 세계는 <내>가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서 탄생하는 것이 앞으로 평생 인간의 영혼을 떨리게 만들 부조리이다. 정리하자면 인간이 개인이 될 때 세계는 인지되어 개인의 적이 되고 그 끝없는 마찰로 말미암아 부조리가 탄생한다.

 사실은 이 처절한 삼자관계가 이미 인간개인의 정체성의 기본이다. 특질이나 개성 같은 것들은 그 위에 건축되는 것이다. <나는 나이다>, <너는 내가 아니다>. 이것만으로 개인은 이미 존재(인지)한다. 그리고 인간이 사고를 시작했을 때, 마찰은 거의 극적으로 속도가 빨라진다. 인간의 기본정신은 논리와 로고스(이것을 신이라고도 부른다)를 탐구하고 추구하는 것으로 청사진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세계는 전혀 논리정연하지 않거나 혹은 인간의 지각능력으로는 전혀 논리정연하게 작동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제3세계에서는 아직도 아이들이 먹지 못해 죽어가고 농장에서는 생물들이 경제동물이라는 이름으로 상품화되고 세상 곳곳에서 아무 의미 없는 전쟁과 학살들이 터진다. 태양은 식어가고 인류의 정신은 열화 되어가고 근거를 알 수 없는 범죄들이 사회를 잠식해간다. 아, 이 시점에서 당신은 <그래도 이 우주는 논리와 수학을 기반으로 탄생하지 않았는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물론 물리학적인 시점에서 보면 세계는 극도로 논리적이고 수학적이다. 그리고 그 극도로 논리적이고 수학적인 학문이 말하기를, 뭐가 어찌 되었든 이 우주는 열역학 제 2법칙으로 말미암아 결국 엔트로피 수치가 최대치가 되어 굳어버릴 것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결말도 인간의 논리에게 수긍할만한가? 바꿔 말하자면, 인간에게 이 세계는 극단적으로 철저하고 논리적으로 무자비하고 무의미하고 무작위한 것이다. 불행과 불안은 비처럼 사람을 가리지 않고 무작위하게 쏟아져 내린다. 모든 일들은 잠입자가 설치한 폭탄처럼 아무렇게나 터져대고 막을 방법도 없다.

 그러나 보통, 이 사회에 살아가는 일반인들은 이러한 사실을, 자신이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세계와 마찰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아차리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들의 기질로 말미암아 그들의 세계와 그들 자신 사이에서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부조리가 그리 대단치 않기 때문이다. 그저 어떤 비극이나 죽음에 몇 번 탄식하고 말 뿐, 일반적으로 그들의 영혼은 부조리와 분노와 고통으로 난도질당해 울부짖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우리는 많은 예시들을 갖고 있다. 굳이 내가 근대 예술가들이나 철학가들의 이름을 논하는 것을 용서해주시기 바란다. 근대 최고의 지성이었음에도 미쳐 격리병동에서 자신의 배설물을 먹던 프리드리히 니체. 100년의 시간을 앞서간 초현실주의 시인이었으며 역사상 가장 천재적인 정신분열병자였던 로트레아몽 백작. 스스로를 인류사회와 격리시키고 미학추구에만 일생을 바치다 정신병동으로 걸어 들어간 빈센트 반 고흐. 프랑스 문단을 뒤집어엎은 작품을 쓰고 고작 21살에 절필을 선언, 아프리카에서 외다리로 죽은 시인 아르튀르 랭보. 신동이라 불렸지만 탄생 십구 년 만에 사망한 소설가 레몽 라디게. 나열하자면 끝이 없을 것이다. 개인이 세상과 마찰한다는 것은 단순 문장으로 설명하기엔 너무나도 큰 영혼의 소모가 필요하다. 병사(病死)로 죽은 것마저 정신의 극적인 피로로 해석하는 것을 비약으로 볼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을 만큼, 그리고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창조하지 않으면 안 되었을 만큼 세상과 삶의 불똥 튀는 마찰은 영혼에 기괴한 흉터를 남긴다. 그리고 이것으로 나는 광기라는 것을 설명하려 한다.

 만일 인간에게 충분한 시야만 있다면 개인은 내가 말한 세상의 무자비, 무의미, 무가치, 무작위, 그리고 잔혹함을 눈 안에 모두 담을 수 있다. 그리고 그 시점에서 갈라지는 것이다. 수긍할 것인가 반항할 것인가를 말이다. 사실 이것은 선택이 아니다. 사람이 타고난 선험적 기질에 의해 결정된다고 보는 편이 옳다. 알베르 카뮈의 평생의 작품 주제이자 동시에 그의 저작 제목이기도한 ‘반항하는 인간’은 만들어지기 전에 이미 태어난다. 긴말이 필요 없이 수긍할 자는 수긍하고 반항할 자는 반항하는 것이다. 게다가 그자가 창조적 특성을 갖고 있다면, 그는 이미 세계에 대항할 한 자루의 짧지만 예리한 검을 쥐고 있는 것이다. 긴 서술에 들어가기 전에, 수긍하는 자들이 어떤 인생을 사는가를 설명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눈을 감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 건강한 일이다! 자신이 부술 수도 변화시킬 수도 없는 세계와 나 사이의 부조리를, 인정하고 눈을 감아버리는 것은 정말이지 그의 정신건강에는 옳은 일이다. 그들은 그저 살아갈 것이다. 한 때 보았던 혼돈과 광기의 아가리를 기억 밑바닥에 묻어버리려 애를 쓰며 <아무것도 아니게 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편안히 잠들 것이다. 사람을 믿고 신을 믿고 법칙을 믿으며, 세계의 부품으로 되돌아갈 것이다.

 그러나 날 때부터 눈동자에 번뜩이는 살의를 품고 있는 자들이 있다. 그들의 지성은 세계를 분쇄하기 위한 것이고 그들의 창조성은 새로운 세계로의 추구를 위한 것이며 그들의 육체는 오로지 익사하기 직전까지 절망적인 헤엄을 계속하기 위한 향일성의 것이다. 그들은 도저히 눈을 감을 수가 없다. 눈앞에 뚜렷이 보이는 세계라는 사랑스러운 적(敵)에게 예리한 단도를 조준할 수밖에 없다. 마찰은 깊고 빨라지고 튀는 불꽃이 반항인의 심장을 지진다. 사방에서 옥죄어오는 부조리라는 현상을 그는 촉각만으로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그는 처절하게 깨닫는 것이다. 자신이 언젠가 죽어 없어질 것이라는 것을. 분명하게도 그는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그런데 그럼에도 그는 허무주의나 염세주의로 빠져들 수 없다. 이미 너무 멀리 왔고,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그의 단도에는 녹이 슬지 않는다. 이제 죽음은 이미 그의 관심사가 아니다. 오로지 삶만이 그의 존재의 주제다. 그리고 삶이란 곧 전쟁이 된다. 오로지 나와 세계라는, 마치 다윗과 골리앗을 방불케 하는 불리하고 패배가 확실한 전쟁이 말이다. 옳아, 승리란 없다. 인간은 죽는다. 세계는 남는다. 이 전투의 끝에는 그저 패배밖에 없다. 그것을 쭈뼛거리며 털이 일어서는 피부로 알고 있음에도 반항인은 전투태세를 풀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만이 그가 할 수 있는, 필멸자의 최선이기 때문이다. 행복도 안정도 안심도 사랑도 희망도 다 목을 그어버리고 마침내 자기 자신이 쓰러질 때까지 전투는 끝나지 않는다. 위버멘쉬(Uebermensch). 그런데 문제는, 인간에게는 죽음 외에도 한계가 한 가지 더 있다는 것이다…….

 이 세계 도처에 존재하는 광기의 아가리는 너무도 크고 흉폭하다. 그에 비해 인간의 영혼은 한정적이고 쉽게 상처 입는다. 아무리 위대한 정신의 소유자일지라도, 들끓는 적개심과 혼돈의 한복판에서 평생을 싸우다보면 영혼은 흉터투성이가 되고 닳을 대로 닳아버린다. 자기의문과 회의, 그러나 돌이킬 수 없는 발걸음, 이제껏 손에 묻히고 마셔왔던 나와 너의 피. 아무리 찌르고 베어도 기만하듯이 내려다보는 거대한 세계. 피폐해진 몸과 마음. 문뜩 손을 보니, 자신에게 있는 것이라고는 굳은 피와 한 자루의 단도밖에 없다. 세상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둔감한 인간들은 도대체 그가 무엇과 싸우고 있는지도 모르고, 이해하지도 못한다. 오직 나에게만 보이는 괴물. 세계, 세상, 부조리, 게다가 인류집단, 그들의 문화. 구원도 도움도 없이 이어져온 이 싸움은 도저히 영웅주의적인 것이 아니다. 이것은 평생을 건 자기파괴다……. 아, 그가 잠깐 떨더니 무릎을 꿇는다. 마침내 그는 패배하고야 말았나? 아니야! 그건 아니야. 왜냐하면 그가 다시 일어섰으니까.

 긍정.

 이 세계 그 무엇보다도 궤멸적이고 기괴한 긍정. 사람들의 수긍과는 180도 다른 곳에 떨어진 긍정. 다시 일어선 그 반항인의 얼굴은 더 이상 진지한 분노도 고통도 새겨져있지 않다. 그는 웃고 있다! 우주만물이 그저 질 나쁜 농담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허무주의도 아니고, 염세주의도 아니고, 실존주의도 아니야. 이건 ~ism조차 아니야. 더 이상 그의 정신 속에는 비극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비극이란 잘 설계된 블랙 코미디다. 어린 학생들 수백 명이 건물 속에서 불타 죽어도, 독재자와 군벌이 무고한 사람들을 가스실로 밀어 넣고 약소부족을 학살해도, 유조선이 폭발해 태평양이 시꺼멓게 변해도. 이것은 죄다 배꼽을 쥐게 하는 농담거리다. 지금까지 고통과 절망으로 흉이 져있던 그의 영혼이, 이제는 고통과 절망을 이해하지 못한다. 사고의 선(Line)이 방향을 바꾸고 뒤틀려버렸다. 모든 일들이 너무 명증하게 와 닿은 결과, 모든 일들이 아무 것도 아니게 되었다. 이제 그는 고통스럽지도 않고 절망스럽지도 않다. 광기가 치유제가 되었다. 이제 절대로, 그 무엇도 그를 상처 입힐 수 없다. 세상만사가 음담패설 같은 웃기는 일이고, 중요하거나 특별한 것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사람들은 그더러 왜 모든 일에 조소만 하느냐고 하지만, 사실 그건 조소조차 아니다. 당신은 특별하고 소중한 사람이 아닙니다. 당신은 존재조차 아닙니다. 당신은 잠깐 부풀었다 터져버리는 거품방울이고, 파라핀 속에서 연소되는 불꽃같은 현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는 지구라는 거대한 쓰레기통에 버려진, 금세 썩어 부패하고 불이 잘 붙는 가연성 쓰레기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세상만사 심각할 일이 있나.

 이리하여 언젠가 태어나 투사가 되었던 개인이라는 <존재>는 광인이라는 <현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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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병질과 증오를 여기에 선포하네



오, 매끄러운 피부를 가진

젊음의 사람들이여

오, 단 한 번도 태양빛에 타들어간 적 없는

귀족 같은 손의 주인들이여

오, 양잿물로 감아 윤기가 도는

담흑색의 머리칼을 빗는 이들이여.


설마 내 혀가 그대들을 찬송하리.

아름다움과 목탄으로 치장한

그대들의 갈색 눈동자 속에

무엇이 들었는지 나는 알고 있다.


설마 내 혀가 그대들을 찬송하리!

모멸과 하잘 것 없는 도도함과

멸시로 세상을 내려다보는―그 좁디좁은 세상만을!

고결한 모욕이 걸린 입 꼬리로 조소하는

그대들을 말이다.


내 묻건대, 단 한 번이라도 사막의 모래를 쥐어

그것이 쏟아져 내리며 태양과 소금의 성을 짓는 것을

단 한 번이라도 대양의 끝에서

이끼를 뒤집어 쓴 암초와 고고한 빙하 앞에

인간의 왜소함에 몸을 떨며 공포로 세계를 찬탄하는 것을

그대들의 닫힌 눈이 본 적이나 있는가.


우리는 참으로 이상한 종족이지

막 태어난 갓난아이를 우리가 왜 사랑스럽다고 하는지

그것을 고뇌해봐야 한다.

얼굴에 박힌 주름도

쌓여온 고통으로 쑥 들어간 눈도

고된 삶에 온통 못이 박혀버린 손도

없는 순진한 멍청이들을 왜 사랑스럽다 하는지!


세상 끝에 가본 일도 없이

화려한 옷을 입고 빛나는 구두를 신고

젊음을 자랑하며 대로의 한복판을 걷는 이들아.

애욕의 노예가 되어

언젠가 읽었던 값싼 로맨스 소설로 머리를 채우고,

부서진 우상의 조각들과 적개심 가득한

세계의 눈동자가 당신의 영혼으로

꽂혀 들어와야 함에도 불구하고

아하! 그대는 그저

자기 자신이 완벽한 원자결합을 지닌 탄소가 되기를

바라 마지않을 뿐이구나.


내가 사랑하는 것은 삶이요,

고로 내가 사랑하는 것은 젊음이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것은 뼈에 구멍이 뚫려

절뚝거리는 다리요

내가 사랑하는 것은 인간이 가질 수밖에 없는 괴리에

표정조차 보이지 않으려 두 손으로 가린 얼굴이요

내가 사랑하는 것은 시간에 늙고 썩어버려

한치 앞조차 보지 못하는 흐린 눈이요

내가 사랑하는 것은 광산에서의 영원한 곡괭이질에

나무껍질처럼 변해버린 인간의 손이라.


누군가가 그랬지, 너무나도 유명한 누군가가.

젊음은 젊은이에게 주기에는 너무 아깝다고!

아아, 나 차라리 폭풍이 되오리다, 지진이 되오리다, 산사태가 되오리다.

전쟁이 되오리다. 기아가 되오리다. 폭동이 되오리다.

사람들의 머리 위를 목적도 없이 맴도는

너무나도 추상적이고 맹목적인

증오가, 분노가, 혐오가 되오리다.


그러니 내가 펜을 아니 들 수는 없었노라.

고개만 들면 하늘 위에

현대의 거대한 우상들이 포식의 아가리를 벌리고 있으니

나 심장이 으스러져도 펜을 쥐오리다.

언젠가 그것이 녹슨 도끼 되어

그대들의 목을 쩔꺽 하고 자를 테니

내 님들아, 어서어서 오시어

이 나무 받침대 위에 머리를 뉘이시라.


나 아무런 명분도 목표도 없이 녹슨 도끼 내리칠 터이니

내 더러운 손에 더 많은 피가 묻을 때마다

나 감격하여 마른 눈물샘에 눈물 차오르고

내 증오해 마지않는 내 님들 사랑스럽다 하리다.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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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사람

글/시 2016. 4. 6. 03:07 |

아름다운 사람



내 인간으로서의 자격은 반투명한 종이봉투 안에 있다.

밤바다에 생명을 던졌다. 흰색 가운을 입은 이들이 그것을 건져냈다.

유기물과 무기물의 차이를 알 수 없게 되었다. 거리는 모자들로 가득했다.

거추장스러운 몸뚱어리가 내 발목을 붙잡고 늘어졌다.

나는 욕설을 쏟아 부었다. 그러나 벗어날 수 없었다. 내 얼굴에 침을 뱉었다.

니코틴과 카페인이 오랜 세월에 걸쳐 나를 이상한 형태로 만들어놓았다.

햇빛이 두려워 도시의 지하로 기어들어갔다.

그곳에서는 불분명한 그림자들이 말없이 독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우리는 정적뿐인 축제 속에서 행복했다. 누군가가 경외심을 담아

「에-틸알-코올!」이라고 외쳤다. 나는 조소하고 말았다.

그러나 나는 그를 이해했다. 우리들의 혀는 고장 났다.

노란 인공광이 태양을 대신할 무렵 거리로 나왔다. 이제 사람들은 모두

달걀귀신처럼 표정이 없었다. 나는 불이 켜진 카페로 들어갔다.

볶은 커피 원두의 냄새가 내 눈물샘을 자극했다. 나는 쓰러져 울었다.

어깨가 굽은 점원이 나를 일으켜 세웠다. 나는 감격적인 형제애에 다시 울었다.

「우리는 모두 형제입니다.」 나는 꼬인 혀로 말했고,

나는 테이블의 손님들이 끄덕이는 것을 본 것 같았다.

사랑합니다. 모두를 사랑합니다. 세상 전부를 사랑합니다.

내가 말을 마칠 무렵 흰 가운을 입은 이들이

나를 집으로 데려가기 위해 카페 문을 열고 들어왔다.

나는 그들조차 사랑했다. 그들은 나를 인간으로 만든다.

비록 인간이 된다는 것이 끔찍이도 비참하지만.

누군가의 아들로 태어난다는 것도 동일하게 비참하다.

「당신은 실망과 수치만을 세상에 뿌리고 다녔습니다.」 그들 중 하나가 말했다.

옳습니다. 그것이 내가 당신들을 사랑하는 이유입니다.

인격이 내 혈관에 주사되었고 나는 행복감에 눈물 흘렸다.

카페 손님들의 박수갈채 소리가 들렸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이제 집으로 갑니다.

무대에서 퇴장하는 마술사처럼 고개 숙여 인사했다.

오늘 밤에도 깨진 체온계에서 흘러나온 수은처럼

달이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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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리고 여기서부터는 사족입니다만,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저는 문학계에 몸을 담은지 10년이 지났습니다.

10년간 단 한 번의 공모전 수상도, 신춘문예 당선도, 심지어는 약소문예지에서의 데뷔조차 없었습니다.(이 점은 다소 이상한 사건을 포함하고 있는데, 그것은 자신네의 문예지 공모전에 제 시가 당선되었다면서 출판비와 문단 등단비 60만원을 요구했던 것입니다. 물론 거절했습니다.)

저는 오랜 시간을 사회와 자발적으로 격리되어 19,20세기의 유럽문학과 소련문학에만 빠져 살았으며

현시대의 대한민국이라는 인간집단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화말살 행위를 멀찍이서 구경하고 있었습니다.

음악은 자극적이고 말초적인 것에만 집중하고, 미술은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몰이해적 괴물에 잡아먹혀 미술관에 배설물을 전시하는 상황에 처했으며, 문학은 <순수>나 <고전>이라는 단어가 붙는 것들은 모조리 목이 잘리고 국제경제의 위험과 더불어 텍스트가 혁명을 일으키던 시절은 이미 오래 전에 지나가버렸습니다. 사람들은 더 이상 텍스트에 기반하여 혁명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이제 텍스트는 오락행위를 위한 도구이고, 소위 Needs를 충족시키기 위한 공공연한 자위물에 불과합니다.

한때는 고전문학의 부활을 바랐습니다. 가죽자켓을 입은 록커들이 클래시컬 뮤직에서 음악적 영감을 받아 현대적 멜로디로 재해석하고, 미술은 더 이상 몰이해를 자극해 돈을 버는 것을 그만두고 인상파의 근원으로 재탐구해가고, 문학은 그저 오래된 책장에서 잠들어 썩어가는 것이 아니라 실존주의를 비롯한 온갖 문학사상들이 현대에 재해석되어 인간정신의 혁명을 일으키기에 충분할 정도의 권력(니체적 의미의)을 갖는 텍스트가 탄생하기를 바랐습니다.


아! 제가 왜 이런 시시한 이야기를 하는 지 궁금하실 겁니다. 10년이라는 시간을 문학에 쏟아부은 결과, 저는 말그대로 사회적 쓰레기가 되어버렸습니다. 아무도 필요로 하지 않고, 글 쓰는 것 외에는 아무런 사회적 능력도 없는, 돈도 없고 노동력도 없고 시답지않은 정신질환에 휘둘리는 야간활동자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저는 현실이라는 벽 앞에서, 도대체 이 시대에 문학이 무슨 필요가 있는가를 고민하고 10년만에 처음으로 아르튀르 랭보가 어떤 모습으로 펜을 꺾었는지 상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거의 습관처럼 강박적으로 계속해서 작품을 찍어내지만, 그것들 중 어느 것도 현대-한국-독자들의 <Needs>를 충족시키는 작품이 아니었습니다. 섹스와 바이올런스와 드러그와 알코올과 카페인과 온갖 말초적 쾌락으로 이루어져 꿈틀거리는 서울이라는 도시의 한복판에서 저는 제 목을 겨냥하고 떨어질 단두대의 칼날만 기다리는 기분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바로 제가 그 칼날을 희망했기에! 시인 로트레아몽 백작을 아십니까? 천박한 신분 주제에 파리로 올라와 자신을 <로뜨레아몽 백작>이라고 자칭하며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산문시들을 뱉어내다가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하고 자비로 출판한 <말도로르의 노래> 한 권만을 남기고 죽어버린 사람입니다. 그것은 썩어 사라지는 수밖에 없었지만, 놀랍게도 100년 뒤 어떤 초현실주의자가 파리 대도서관에서 그 낡아빠진 책을 발견하고 세상의 등불을 비췄습니다. 죽은지 100년이 넘어 로트레아몽 백작은 불현듯 천재가 되었습니다. 모든 국가의 문학계가 그의 이해할 수 없는 장황한 산문시를 분석하고 공부하고 찬탄했습니다.

제가 왜 이런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일까요. 저도 그들처럼 되고 싶어서? 비록 이 시대가 쾌락만을 바라는 시대이기에 스스로 천재적이라고 생각하는 저의 작품이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죽은 뒤에라도 각광 받기를 바라서? <나는 왜 이렇게 지혜로운가>라는 이름의 책까지 낸 니체가 정신병원에 들어갈때까지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다가 유럽문단이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박수갈채를 보낼 때 정작 프리드리히 니체는 격리병동에서 이식증에 걸려 자신의 배설물을 먹어치우고 있었기 때문에?

설마요. 천재라는 것은 실재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차라리 양자역학적인 시각에서의 입자의 존재와 비슷합니다. 관측자가 입자를 관측했기 때문에 입자가 입자로서의 성질을 가지는 것처럼, 천재 역시 독자가 작품을 읽고 영감을 느꼈을 때 그 작가는 천재가 될 가능성을 얻는 것입니다. 작가는 독자에 선행한다는 틀림없는 물리학적 진실이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작가는 독자에 의해 재창조됩니다. 독자가 없어도 작가는 존재할 수 있지만, 독자가 없으면 작가는 관측자를 잃어버린 입자처럼 파동으로 변해 실재가 아니게 됩니다. 그렇다면 결국 자신의 작품을, 아아! 더이상 작품이라는 거창한 단어를 사용할 것도 없이, 컨텐츠라고, 엔터테이먼트라고, 상품이라고 인정하는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21세기에 와서 구두제작공과 소설가는 똑같은 위치에 서고 말았습니다. 좋은 구두는 신었을 때 발이 편하고 걷기 좋듯이, 좋은 소설은 읽기 편하고 독자에게 스트레스를 주지 말아야 합니다.

저는 집단도 다수도 공권력도 국가도 사회도 인류도 아닙니다. 그냥 개인입니다. 개인의 필터로 개인의 사실을 개인의 진실로 만들어서 개인의 작품을 펴내는, 약하디 약한 개인입니다. 더군다나 인류의 문화적 종말은 멀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이 극단에 달해있고 말초적이 되고 만개한 꽃처럼 위태위태합니다. 다음 수순은, 분명히도 종말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무슨 상관이란 말입니까? 저는 돈을 벌고 싶습니다. 제 이름을 남들이 알기를 원합니다. 저의 멋있는 한 순간의 필치로 사람들이 감명을 받았으면 합니다. 고전문학의 부활? 아, 이미 손을 떠난지 오랩니다. 그것도 모두의 손에서요! 너무 장황한 글이 되었군요. 한가지는 확실합니다. 중학교 1학년 때, 알베르 까뮈의 <이방인>을 읽고 느꼈던 빛의 덩어리 같은 충격, 그리고 알베르 까뮈의 미완유작 <최초의 인간>을 읽으며 보일러도 들어오지 않는 다락방에서 흐느껴 울었던 것. 그 과거들은 이미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산산조각. 인류문화의 멸망이 가깝기 때문에 더 이상의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태어나지 않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자본주의 시장에서 처참하게 찢겨 죽었고, 다자이 오사무는 <중2병>이라는 손가락질에 지쳐 미치고 돌아버려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릴 것입니다.

제 난도질 된 영혼의 값을 매겨주십시오.



항상 귀사의 번영과 성공을 기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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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

글/시 2016. 2. 26. 06:01 |

절망



나는 세계를 바꾸고 싶었지

아둔함과 오만이라는

구정물이 역류하는 이 도시를

하아얀 사막으로 바꾸듯이.


나는 언어에 탐닉했다네

인류의 정신을 체계화하고

더 나아가 기호화하는

그것이야말로 아름다움을

아무런 정치적 의도도 없이

단 한 번의 정치적인 멋진 필체로

새겨 넣을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


아, 그래, 세계를 바꾸고 싶다는 건

정치적인 것이었어. 아무리 내가

캄캄하고 사람의 손길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없는

어두운 오지로 달아난다고 하더라도


그래, 어느 나라의 정치인이

연단 위에서 어느 위대한 고전문학을 낭독할 때

내 혀가 불타 사라지고 재가 되는 것을 느꼈어.

내 피는 얼어붙어버렸지.

나는 두려워졌어.


단 한 번도

작가가 절필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어.

작가의 절필이라니! 도대체

그게 무슨 의미람? 그것이 가능하기나 한 것인가?

왜냐하면 응당 작가에게 글과 펜대란

그의 초월적으로 무겁고 불안정한 세계를 지탱하는

유일한 것일 텐데!


그런데 모든 텍스트가 불태워지고

말초신경만이 작동하는 끈적거리는 도시의 광경이 눈에 들어오자

내 심장은 덜컥 내려앉아버렸어.

나는 종말을 보았어. 사실은 그곳에서 살고 있지.

나는 엔트로피 수치가 한계에 다다른 우주에

비겁하게 자리 잡은 문명을 보았어.


근대는 갔어. 르네상스도 갔지. 중세도 갔어.

공산주의도 갔어. 자본주의도 갔어. 신자유주의도 갔어.

왕정도 가고. 공화제도 가고. 사회주의도 가고. 민주주의도 갔어.

이제 가지 않은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어.

우리는 문턱에 걸쳐 드러누운 시체처럼

모든 영혼의 끝을 보고 있어.


나는 세계를 바꾸고 싶었지.

그것도 나의 피로.


그 유명한 랭보가 펜을 놓았을 때

그는 한숨도 쉬지 않았겠지.

영속되는 비참은 비참이 아니니까.

아르튀르

랭보

세계에게 절필을 선언하다.

외다리로 죽다.


맙소사, 공포가 통증이 되려고 해……

연단의 그 정치인은 도대체 뭘 기대한 걸까.

뭐가 됐든, 내 목이 잘리는 것을 나는 느꼈지

사방이 완충제로 만들어진 독방에서

끊임없이 키가 자라는 것 같아.

끊임없이. 3미터. 5미터. 10미터. 벽에 머릴 박아도

박아도 붉은 물은 나오지 않고.


우리는 우리의 손톱이

공허를 긁고 있다는 걸 깨달았지

나는 이 신음소리에

온점을 찍지도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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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과 아름다움

글/시 2015. 12. 3. 19:50 |

고통과 아름다움



겨울에, 다리 밑의 얼어버린 강가처럼

언어로 말할 수 없는 유랑자의 심정을 말하기 위해

나는 미학이라는 것을 끌어안았다.

이윽고 그것은 내 영혼의 틈과 갈라진 계곡 사이로

녹인 쇳물처럼 흘러들었고,

나는 언어가 감당하지 못하는 언어를 입으로 쓸 수 있게 되었다.


오, 그러나 그것은 광기의 대가였다.

용접한 듯이 굳어버린 영혼의 파편들은

누울 풀섶도, 취해 쓰러질 모래사장도 찾지 못하고

도시의 언저리에서 여전히 방황했다.

그것은 이전보다도 내 뼈를 너무도 아프게 했다.


사람들은 봄에 인간이 정신을 잃는다고 하지만

사실은 꽝꽝 얼어붙은 시베리아의 바람이 부는 계절에

사람은 두꺼운 코트 안에 좁은 어깨를 끌어안고

단 한 순간의 열기만을 찾아

술집에서 술집으로 침울하게 이동한다.

마치 게구멍을 찾아 돌아다니는 작은 꽃게처럼

사람은 제대로 걷지도 못했더라.


「뼈가 아파 죽겠어……」 술이 깨면 깜깜한 뒷골목에서

더욱 자신을 끌어안으며 원시의 모습으로 죽으려는 이들.

바람은 송곳처럼

결국 영혼을 깨트리고야 만다.

광기는 녹지 못해 움츠리고

고통은 뇌에서 흘러나오는 분비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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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한 남자의 노래

글/시 2015. 11. 28. 05:30 |

취한 남자의 노래



누군가 외쳤지. <섹스는 지저분하고 지겨워.>

아하, 참으로 그렇지. 그런데 그는 오직 남자와만 섹스를 해본 남자 이성애자였어.

우리는 제대로 된 음식을 먹을 자격이 없어. 우리 손엔

피 한 방울 묻지 않았으니까. 나가, 나가. 날고기들이 부르고 있어.

보이지 않는 피가 더 무섭다는 걸

모든 혈흔을 보는 사람은 알고 있지. 그러니까 우리는 멍청하고 순진해.

언제부터 사람들이 움직이는 고기인형으로 보이기 시작했을까? 언제부터?

<아무도 현명해질 수 없어!> 산골짜기에서 사는 염세주의자가 외치네.

그는 자연조차도 사랑하지 않아. 그의 동굴 주변에서는 풀도 자라지 않아.

매년 하나씩 자신의 손가락을 자르고, 마지막 하나가 남았을 때에는

도끼를 쥘 수가 없어. 안녕! 부디 내가 지옥에 가기를 기도해주시오!

왜냐하면 영원한 고통이야말로 진실한 평화니까. 게다가 말이지,

게다가 지옥에서 함께 유황불에 불타며

울부짖는 사람들을 보면

나는 정말 기분이 유쾌해질 거야. 나는 목젖을 다 드러내고 깔깔거리며 웃겠지.

그래, 나는 그 그리스 수도자가 존경스러워. 그는 자신이 절대로

성욕을 뿌리까지 없애버릴 수는 없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손도끼로 자신의 남근을 끊어버렸거든. 다소 멍청한 짓이었지만,

일단은 최선의 선택이었지. 섹스는 멍청하고 더러워. 그래서 난 내가 태어났다는 사실에도

구역질이 나. 내 아빠, 엄마는 섹스를 하지 않았지만, 내 아버지, 어머니는 섹스를 했지.

사실 난 차라리 교미라는 단어가 더 어울린다고 생각하지. 그 단어에는

이유 모를 역겨움이 묻어있거든. 나는 잘못 착상되었어.

어린 시절 과학 시간에, 사마귀 암컷은 교미 직후 수컷을 잡아먹는다는 사실을 배우고

많이 울었지. 수컷은 왜 반격조차 안 했을까? 왜 자신의 정자로 들어찬

암컷의 배를 찢어버리지 않았을까?

아, 그냥 신경 꺼! 네 혈관에 헤로인이라도 주사하도록 해.

정말로 눈을 뜨고 세계를 본다면 도무지 말도 안 되는 것들 투성이니까,

그냥 네 현금카드로 코카인 가루나 곱게 다지도록 해. 그것도 일종의 수음행위지.

혼돈 속에서 혼자 제정신을 차리고 있으니까 괴로운 거야. 하늘을 봐, 하늘을 봐,

운명이라는 카오스가 아무렇게나 광기를 던져대고 있어.

<네 뇌를 설득시켜. 세상만사가 켜졌다 꺼지는 불꽃이라는 걸 알고 나면, 비극도 비극으로 보이지 않을 거야. 살인마들은 살인을 하는 게 일이고, 강간마들은 강간을 하는 게 일이고, 지금도 바깥사람들이 울고 외치고 지랄하며 바닥에 뒹구는 이유가, 애들 소꿉장난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될 거야.> 점화! 그런데 내 양심은 어딜 간 거야?

―처음부터 없었어. 바보 같으니!

아! 노래를 하니 기분이 좀 낫군. 음악이라는 것도 지금에 와서는 오물투성이가 되었지.

빌어먹을,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 우리는 모두 혼자고, 누구와도 연결될 수 없어.

만일 네가 누군가와 연결된다면, 그건 네가 누군가에게 침입하거나, 혹은 침입 당했다는 얘기야. 무슨 소린고 하니, 즉 죽음에 이른다는 말이지.

세계는 그냥 세계야. 아무 의미도 없지.

우리가 기억해야할 단어는 세 가지 뿐이야.

무작위.

무자비.

무의미.

그거 세 가지면 너도 세계를 만들 수 있어. 개미굴에 물을 붓듯이.

저 소리가 들려? 대천사들이 나팔을 부는 소리야. 이천 년 전부터 계속 말야. 웃어! 웃어!

이 세계에선 모든 게 다 싸구려 농담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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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하여 자살을 꿈꾸나



폐가 타는 듯이 담배를 갈망할 때는 담배를 피우는 수밖에 없다.

밤거리의 미광이 눈에 비쳐 들어올 때라든가

누군가가 아련한 목소리로 밥 딜런을 부르는 골목이라든가

수많은 모자와 머리카락들의 행렬을

좁디좁은 창문으로 내려다보고 있을 때

내 가슴은 독을 원한다.


강박증은 모든 것을 개념화한다.

버스정류장에서 잠깐 스쳐 지나간

얼굴에 하얗게 분칠을 한 젊은 여자의 입술만 보아도

나는 그 퇴폐에 구역질을 하며 눈물 흘린다.

그리고 나는 보도블록에 엎드려 중얼거리는 것이다―「나는

다시는 여자의 몸에 손을 얹지 않을 거야. 다시는.」

젊음에게 저주를.


왜 항상 사고의 끝은 파괴에서 멈출까?

바위로 된 해변에서

밤을 맞아 새까맣게 된 대양을 볼 때마다

나는 어서 그것이 오기를 바란다.

운명론자들이 날 조롱하고

휴머니스트들은 날 혐오하고

나는 칼로 찢은 것처럼 새빨간 입술로 웃는다.

「변화라는 건 없어.」 그 말이 심장 한 구석에 늘 도사리고 있다.


한때, 내가 사람의 살을 먹어치우는 짐승이었을 때,

나는 젊은 인간이라면 가리지 않고 뜯어먹었다.

나의 남근은 나의 송곳니였고 나는 그 송곳니를 사람의 피부에

푹 찔러 넣었다.

그것이 사람이었는지 피가 찬 가죽부대였는지 사실 잘 모른다.

나는 항상 다 토해냈다. 언제부터인가 거리를 돌아다니는 것들은

전부 움찔거리는 가죽부대였고, 추한 것은 혐오스럽다.

추한 것은 혐오스럽다.


그리하여 나는 두 번째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인다.

그러나 이런 것은 내가 원한 것이 아니다. 종소리가 들리고

사람들이 교회로 가는 일요일에, 나는 하얀 담배를

멀리 보이는 교회 지붕과 겹쳐보았다.

내 갈비뼈 안에 무언가 살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늘 굶주리고 목이 죽도록 마르며

몸부림치면서 사방에 몸을 부딪혀대는

벌레 같은 무언가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벌레 같은 것에게 매캐한 독 연기를 뿌리는 것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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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의 너머는 다시 지평선

 

 

 나는 공공연한 마약밀매상과 같았다. 나와 조금이라도 손끝이 닿았던 이들은 모두 내게서 값도 치루지 않고 비참을 사갔다. 그러나 나는 잃을 것이 없었노라. 그들이 사간 비참은 모두 나의 커다란 광기와 비참이 교미하여 만들어낸 복제품들이었으니. 내가 뱃속에서 키우는 벌레들이 남의 입으로 옮겨가는 것처럼, 비참은 나의 길고 음탕한 혀를 타고 돌아다녔다.

 꿈과 현실이 겹쳐 보이고 밤마다 내 눈앞에 목이 잘린 나체의 여자가 나타날 때부터, 나는 나의 선조들에 대해 추측해보았다. 그들도 밤에 활개치고 다니는 끔찍한 환각을 보았을까? 아, 나는 일그러지고 무너진다. 도시의 한복판에 있다는 것은 온 도시가 내 머리를 짓누르는 것과 같다. 짤랑이는 죄악의 은화들과 온 거리를 핥고 다니는 네온의 빛들, 나는 저주한다! 세 번이고 네 번이고 저주한다. 그러나 저주한다고 해서 무얼? 나는 결국 걸쭉한 액체로 변해 하수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말 것이다. 어머니, 어머니. 나는 정말로 어머니가 갖고 싶었다. 그런데 어떤 어머니였지? 아 그래, 내가 갖고 싶었던 것은 어머니가 아니라 숲의 마녀였어. 아직도 애니미즘의 입김으로 나뭇잎들이 흔들리는 늙은 숲의 마녀. 내 지네 같은 혈액으로 말미암아 생각하건데 나의 선조들은 모두 두개골 속에 딱딱한 벌레들을 키우고 있었음에 틀림이 없다.

 내가 고뇌에 빠지게 놔둬라! 내 삶은 이미 고뇌로 인해 구겨진 쓰레기 뭉치와 같다. 내 오만을 섣불리 판단하지 마시기를! 나의 시간은 압축되었다. 나는 끝에서 끝으로 끊임없이 오고 갔다. 물론 깨달은 것도 있었다. 이성이 사람의 목을 벤다는 것을 비롯한 독약 같은 진실들을. 나는 아무것도 그러쥐지 않았다-나는 내 손을 부정했다. 비대한 정신은 사회에게 부정당했다. 백석 시인은 지는 것이 아니라고 했지만, 아무려면 어떠리. 그냥 내버려 두어라! 내가 스스로 만든 고통에 왜곡되고 사리분별도 못하는 미치광이가 되어, 익사하도록 내버려 두어라! 나는 결단코 구원을 바라지 않으리라. 차라리 고통이 내게 편안한 것을. 세상에 산재하는 적들은 내가 나의 손으로 만든 적들보다 훨씬 약하며 머릿수도 적다. 그런데 왜 나의 부정당한 손은 바깥으로 뻗고야 마는지? 그리고 왜 사람들은 동정으로 나의 손을 움켜쥐었다가 재가 되어 내 아가리 안으로 떨어지고야 마는지?

 날붙이들이 내 귀 안으로 쑤시고 들어올 때 나는 식인종이 되었다. 그것은 증오 없이도 사람을 잡아먹는다. 분노 같은 것은 내 몸과 함께 늙어버렸고, 나는 습관적으로 사람들의 살을 주워 먹었다. 이제 나는 그대들을 증오하고 싶어도 증오하지 못한다. 반복컨대, 나의 시간은 압축되었다! 분노의 함성과 붉은 깃발들이 나부끼는 거리를 보아도 내 눈동자는 피로의 핏발이 선 채로 공허만을 본다. 아아! 나는 당신들을 용서한 것도 아닌데……. 사회라는 이상한 개념은 내 속에서 범주를 잃어버렸다. 소리치지 말라! 아직 아물지 않았다. 아니, 아직이라니? 절대로 아물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아물지 않은 것들밖에는 없다.

 나, 나, 나! 제발 그만! 부디 철두철미한 정신을!

 그렇다. 내가 경외한 것들은 그런 강철 같은 우상들이 아니었던가? 우습지도 않은 일! 나는 피가 줄줄 쏟아지는 가죽부대가 되고 말았다. 전염병이 되고 말았다. 독벌레가 되고 말았다. 대양의 무게에 무너져가는 심해어가 되고 말았다. 자기연민이 없을 때 자기 자신은 더욱 연민스러운 꼴을 보인다! 젠장, 아무도 없는 전방을 향하여 건배! 건배! 또 한 잔의 술을! 이글이글 불타오르는 독주를! 그러나 아무리 마셔도 나는 목이 말라 죽을 지경이고, 저주 받은 몸은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 않는다. 심지어 해머로 내 머리를 갈겨도 나는 또렷하게 사고하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왜곡과 분열에 대한 사고를, 그 끔찍한, 답이 없는 수식을 나는 이성으로 풀고 있을 것이다. 어라, 그렇다면 나는 미친 것이 아닌가. 그런데 나의 광기는 왜 이리도 명증한가? 모든 것에 그림자가 질 때 사물의 본질은 더욱 분명해진다. 내 시선은 분명하다. 나는 나의 광기 속에서 필사적인 이성으로 광기를 계산한다. 내 육신에는 이미 경계가 없다.

 

-

 

 매일 아침 차가워진 바람이 내 옷깃을 스칠 때마다 나는 경련한다. 나는 갈대밭에 쓰러지는 환각을 느낀다. 태양을 품어 냉랭한 갈댓잎들은 내 손과 얼굴에 온화한 상처를 새긴다. 그러나 눈을 감았다 뜨고, 손을 짚어 일어나보면 시멘트와 콘크리트, 도시 사람들이 털어낸 담뱃재뿐. 나는 너무도 저주하다보니 이제 명확히 무엇을 저주하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저 죽은 나무 옆에 앉아 담배나 한 대 태우고 싶을 뿐인데, 이곳에서는 풀 냄새는커녕 피 냄새도 나지 않는다. 분명 이 도시 사람들은 벽돌과 철을 먹으며 살겠지. 나는 그들을 이해할 수 없다. 단 한 번도 이해해본 역사가 없다. 나는 눈의 자유를 뺏겼다. 태양이 보고 싶어 죽겠다. 이 땅의 동쪽에서 떠오르는 것은 기계장치로 된 발광패널이다. 나는 진실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것은 내가 왜 더 이상 교미할 수 없는가에 대한 훌륭한 근거이다. 리비도는 인간에게나 있는 것이다.

 에로스를 잃으면 죽음의 환영이 펼쳐진다. 피부 위로 드러난 뼈, 연기 색깔 가죽, 벌린 입 속의 잘린 혀…… 기타 등등. 나는 아침에 눈을 뜨는 일이 없다. 나에겐 아침조차 없다. 쾌락은 색깔을 잃어버리고 퇴폐 속에 침잠한다. 모든 것이 흑백사진으로 보이는 방 안에서 나는 춤을 출 기력도 잃었다. 내 혈관 속에 진짜 피가 돌았던 시절을 기억하는데, 그 기억에도 희뿌옇게 안개가 끼고 말았다. 젊음이여. 젊음이여. 젊음이여. 나의 시간은 압축되었다.

 여인들을 볼 때 내 손에는 항상 나이프가 쥐여있다. 나는 약리학의 법칙에 따라 가죽과 고기로 된 남근을 잃어버리고 강철 날붙이와 가죽이 둘러진 손잡이로 된 남근을 쥐고 있다.

 진리는 병자들에게 있다!

 오, 나는 진리를 이야기했다. 혼돈! 무목적의 아나키즘, 분열된 사고, 왜곡된 감각, 무슨 수를 써도 부정할 수 없는 궤변, ism을 철저히 짓밟아 죽이는 Anti-ism! 세계는 전진한다! 앞으로 갓! 아무런 근거도 없이-앞으로, 갓! 모든 모럴은 절멸하리라.

 

 그래, 증오의 시계가 한 바퀴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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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에 대하여

글/시 2015. 11. 6. 03:09 |

고통에 대하여



1.

어둠 속에 성상이던 것들은

햇빛 아래서 늘 벽돌더미거나

깨진 바위거나 망가진 고철들이다.

그늘이 만드는 것은 환각이나 유령이 아니라

차라리 본질이다 성스러움에 대한

경외에 대한.


우리는 도시에 산다 고로

우리는 달빛조차 필요 없다.

삼백육십오 일 우리는 금화가 짤랑이고

네온사인이 영혼의 빛깔을 대신하는

우리가 새로이 만든 모더니즘적 지옥에서

기꺼이 알코올이 섞인 하수를 들이킨다.


나는 딱히 화를 내려는 것이 아니다 나는

심지어 화를 낼 수조차 없다.

절망이 일상이 된 이 도시에 알레르기를 일으킨

나의 몸에서는 피가 자글자글 끓고

이곳의 공기가 폐에 맞지 않아 호흡기를 달 듯이

새벽담배를 피운다.


나는 강가로 내려가 담배연기만을 숨쉬며

물로 된 근육들이 서로 부딪히며 흘러가는 소리를 듣고

울었다. 한참을 앉아 울었다.

사람들은 동정과 은화를 던져주었다.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나는 숲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이곳에는 숲의 침묵과는 다른 새로운 위대함이 있다.

그 위대함은 모두의 머리를 무겁게 짓누르고

절망에 둔해지게 만들며 눈물을 마르게 하고

결과적으로 빌딩 꼭대기에서 몸을 날리게 하는

악의로 입술이 뒤틀린 신이다.


사람들은 이제 고통과 허무를 섬긴다.

사람들은 지옥에 가는 것이 너무나 무서워서

직접 지옥을 만들고 즐거이 그곳에서 산다.

가끔 내가 어디에 있는 것인지

잘 알 수가 없다.


밤에 나는 항상 성상이 눈을 감은 자리에 가서

담배를 피우며 구원에 대해 생각해본다.

아침 해가 뜨면 저 성상은

다시 벽돌더미로 화할 것이고

구원은 어디에도 없다. 사실은

돌아갈 숲조차 이미 없다.

어디를 가든 나는 죽은 것에 그림자가 드리우면

거기서 우상을 볼 것이고

울고 있는 내게 아무도

왜 우느냐고 묻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실로 감사할 일이다.



2.

독자들이여! 내가 그대들에게 보여줄 것들은 그대들의 삶에 하등 쓸모가 없는 것들뿐이다. 나는 주로 죽음과 무의 안식을 노래하며, 증오로 바싹 날이 선 혀로 저주를 뿌리고, 그대들의 존재와 정신이 얼마나 경멸 받을만한 것인지를 논증한다. 나의 천성적으로 광폭한 성질에 말미암아 말 하건데 나는 이 노래를 쓰지 않았다면 구름조차 달을 가린 새까만 밤, 잘 벼린 단도를 하나 들고 직접 그대들의 침실로 숨어들어갔을 것이다. 예술과 중범죄가 한끝 차이라는 사실을 내가 말할 때마다 사람들은 질겁한다! 오! 그러나 독자들이여, 세계를 증오하지 않는다면 무슨 이유로 새로운 세계를 종이 위에 만들기 위해 영혼까지 팔아넘길 것인가? 내 삶에서 단 한 번도 갈증이 풀어진 일이 없다. 그것은 그대들이 서로를 죽이고 잡아먹으며 인간의 처절한 본성을 나타낼 때에만 풀어질 것이다. 나는 너무 오랫동안 참아왔다. 독충들이 드글거리는 것 같은 그대들의 세상에서 나는 양심이라는 한 올의 거미줄만도 못한 끈을 잡고 지금까지 참아왔다. 여러 번 나는 나의 눈물에 대해 논했다. 그러나 사실은, 나는 슬픔에 의한 눈물을 흘린 역사가 단 한 번도 없음이라. 나의 눈물은 항상 분노, 증오와 함께 삐그덕삐그덕하는 소리를 내며 흘러나왔다. 그대들은 모두 나의 원수여라! 삽으로 흉부를 후벼 파는 듯한 통증을 수반하는 나의 지병도, 그대들의 훌륭한 작품이다. 나는 그대들의 얼굴만 보아도 안구의 실핏줄이 터져버린다. 그 경멸, 조소, 비겁함, 악의, 기회주의, 자신이 죄인임을 모르는 그 떳떳함, 무지, 에고이즘이라니! 만일 내가 왕이었다면 내가 가장 먼저 내릴 명령은 전 국민에게 가스실로 모이라는 것이었을 터, 그러나 나는 왕이 아니다. 나는 이 사회라는 집단에서 가장 약하고 무가치한 글쟁이다. 보름의 금주로 나는 새로이 깨달았다. 나는 그대들을 한 없이 증오하지만, 그대들의 손가락질 한 번으로도 나는 죽어버린다. 껍질을, 더 단단한 등껍질을! 내가 숨은 채로 펜만 놀릴 수 있는 좁고 어두운 껍질을! 사실은 끝까지 숨어있어야 한다. 몇 번의 자살시도로도 이루지 못했던 죽음을 그대들에 의해 맞이하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지금 지껄이고 있다. 내가 얼마나 그대들을, 그리고 그대들의 세상을 경멸하는지를 지껄이고 있다. 왜 그대들이 밤의 대양에 빠져 죽어야만 하는지, 숲속을 활보하는 오래된 신에게 잡아먹혀야 하는지, 곡식과 석유가 떨어질 때 서로의 넓적다리 살을 찢어 먹어야 하는지! 선포하건데 나는 지쳤노라! 아름다운 문장과 시적인 메타포로 나의 증오를 가리는 일에 지쳤노라! 나는 증오한다. 나는 분노하고 저주하고 고통스럽다! 독자들이여, 나는 그대들이 정말로 싫다. 내 글을 읽어줄, 그리고 읽어주지 않을 인간들이 너무나도 저주스럽다. 부디 오늘 밤에는 눈물로 담뱃불을 꺼트리지 않기를. 나는 아직도 온 세상이 불타는 광경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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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리감옥

글/소설 2015. 10. 12. 09:28 |

2015/10/5 완성


1. 쓸 때는 신나게 썼다.

2. 완성하고 보니 만족할 수도 불만을 가질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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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해(苦海)

글/시 2015. 7. 13. 07:41 |

고해(苦海)

 

 

평생에 한 번 뿐인 여인의 살갗을 지나고 나자 고해(苦海)였다.

시간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감각이 새겨진 온몸의 혈액을 빼내야만 한다고

나는 반쯤 미쳐 헌혈소의 의사에게 광란했다.

광란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당신의 피는 마시기만 해도

취할 정도로 약물과 알코올로 포화 되어있습니다.>

나는 이를 악 물고 헌혈소를 빠져나왔다.

스스로 동맥을 끊을 수도 있었지만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자살

이 아닌 혈액의 교체였다 이미 모든 감각과 망각하여야만 할

기억이 살아 흐르는 혈액의 교체.

 

여인이 영원히 떠났던 날의 깊은 밤

나는 지독한 술에 지독히 취했었고

그 이후로 단 한 번도 그 술과 눈물에서 깨어난 일이

없다. 그 이후로 단 한 번도 눈물을 보인 일이

없다.

기억이라는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날카롭고 노골적으로 자라나

나의 영혼에 뿌리를 내리고 가시를 박아

아아.

 

아직도 찾아오는 밤의 어둠 밑에서

담배의 역한 연기를 빨아 마실 때.

장마철의 축축한 습기와 비가

내 피부 위에서 동동 떠오르며 부유할 때.

함께 진탕 술을 마신 벗이

택시를 타고 돌아갈 때.

사실은 그런 순간들을

심지어 나열할 수도 없다.

 

여인과 함께 살던 녹음이 우거진 산에서 도망쳐 나와

이 더러운 콘크리트와 아스팔트의 한복판에서 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웃고 지낸다.> 나는 의사에게 말했다.

나의 친구에게도, 가족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고통의 대양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이 당연했을

때에 나는 고통스러운 만큼만 고통스러웠다.

이 우주가 맹목적이고 무의미하며

무자비하고 무작위하다는 것은

굳이 타인으로부터 설명을 듣거나

증명을 할 필요도 없는 자명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짧은 환희와 희열의 순간이!

 

최초의 상실. 그래, 그것은 최초의 상실이라고 불리어져야 한다.

왜냐하면 그 <상실한 것>을 제외하면

나는 평생 죽음의 암시 밖에 가진 것이 없었으니까.

고통을 감추기 위한 흉터, 밤의

창밖을 기어 다니는 환영, 갈색으로 빛나는 여러 개의

달과 지하철에 탄 노인의 눈동자에서 보이는

형언할 수 없는 공허의 구렁텅이. 그 마스크.

내 손에 잡힌 펜의 차가운 감촉. 어둠 속의

금화를 뿌려놓은 것 같은 천박한 네온사인의 빛.

 

무엇보다도 절망은 내게 당연했고 나는 당연히 절망해왔다.

태양을 싫어했기 때문에 내 피부는 회색이었다.(정확히는

이 땅에서 보는 태양은 내게 태양이 아니었다. 나는 항상 열사의 땅으로 가고 싶었다.)

그런데 그 순간은 잊을 것이 못 된다.

나는 나의 고통만큼 희열했다. 결국 잃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에 떠는 것과

현실의 달콤한 꿈에 취하는 것이 동시에 벌어졌다.

나는 그녀와 함께 살던 산의 어느 절벽으로 올라가

떨어져버릴 생각을 하면서도 행복했었다.

 

미친 감정이여…….

 

그날 나는 결국 나의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타성과 광기가 덩어리져 침묵하며 들어앉아있는 나의 집으로

그 집으로 가면 나의 끔찍한 상실이 더 높은 목소리로 고함칠 것 같아

그날 밤 나는 가로등도 없는 메마른 골목에서

벽돌담에 기대앉아 잠들었다. 아무런, 아무런 꿈도 없이.

깨어보니 사방이 고해였다. 새벽녘의 분홍빛 태양광선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더러웠다.

 

여인의 이름은 너무 길었기 때문에

나는 그녀의 본명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유난히도 뚜렷한 윤곽으로 추억하는

초록색 나뭇잎들과, 그 위를 방울져 흐르던 빛살과는 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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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선포한다

글/시 2015. 7. 1. 05:26 |

나는 선포한다

 


몇 번이나 자살을 기도했던 바
나는 죽음을 맞이하지 아니할 것이다.
내 자멸의 순간들에 부디 비극의 색깔을 칠하지 말라.
희망을 짓밟은 토양에서 자라는 깨달음처럼
내 몸에는 끓는 듯한 피가
혈관의 벽들을 태우며 흐르고 있다.
감상이 사멸한 불행의 인생에서
나는 내가 죽지 않을 것이라는 노골적인 암시를 보았다.
사형수들이 목 매달리고
소녀들이 손목을 절개하는 유쾌한 시대에
길게 빼 물린 혀와 교복의 스커트를 결합하여
혈액이 방울져 뚝뚝 흐르는 에로스를 모두에게 선고하라.
이것은 너무나도 진지한 농담이다.
이것은 프로이트가 선포한 농담이다.
그 이후로 모두가 뇌수를 달구며 매달려왔던 농담이다.
자기(그는 분열되었고)
자신의(그는 왜곡되었고)
판단력도(그는 이성理性의 범위를 측정할 수 없게 되었고)
신뢰할 수(그는 가상이 뜻하는 바를 잊어버렸고)
없게(그는 실재와 비실재의 경계를 잃어버렸고)
되었나니(그는 다원주의 속에서 영원히 방황하게 되었다.)
내 묘비는 어디에도 세워지지 않을 것이고
내가 보는 여름의 환영들은 감히 환영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아아, 아아! 나는 노래 부르고 싶다. 나는 비명
지르고 싶다. 더 깊은 땅굴 속으로.
신과 악마는 필요성을 상실했다. 그것들은 이제
신비주의자들의 노스탤지어에만 존재한다―사실은 신비주의자들이야말로
노스탤지어의 파편에 지나지 않는다.
샹그릴라도 유토피아도 지상낙원도 무릉도원도 천국도
결국은 생물학의 위장 속에 있었고
우리는 이제 물리학의 이름으로 공허를 관측한다.
곧, 나는 죽지 아니하니 나의 묘비를 깎지 말라.
실상은 그 누구도 죽지 아니하고―죽음이라는 개념조차 죽지 아니한다.
그 미스터리, 모든 지독한 농담의 수원지로 말미암아
최선은 항상 광기의 지팡이를 들고 휘두르며
불행을 불행이 아닌 불행으로
절망을 절망이 아닌 절망으로
오로지 삶에 들러붙어 노래를-노래를-노래를---
인류 역사상 최고의 발명품으로 인해
인류는 모조리 미치광이가 되게 생겼다.
지구가 칠십억의 분열증 환자로 가득 차게 될 것이라는 말에
반론하지 말라. 이것은 가장 낙관적인 예측이다.
언어철학이라니…….
여인이여, 그대가 낳은 것들은
생도 사도 아닌 광기의 부품이라오.
그러니 부디
내가 살아있었다는 생각조차 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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꼽추의 노래

글/시 2015. 6. 22. 08:22 |

꼽추의 노래



1.

당신의 맨 밑바닥에 분노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나면 어떻게 행복해질 것인가?


2.

경멸과 조롱의 팡파르가 울리오.

추한 곱사등이의 몸뚱이로 거리를 맴돌면

날아오는 돌멩이와 욕설이 차라리 즐겁다고 내 굽은 등은 웃으오.

아! 그런데 나 하나 모호한 것이 있오.

언제부터 내가 곱사등이의 몸이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으오.


나 어느 밤 사람들 몰래 어린아이 하나를

마대자루에 잡아넣고 내 소굴로 달렸오.

굴속에서 나는 아이를 꺼내

<이것보아. 이것이 행복해지는 약이야.>하며

알약 하나를 먹였오.

고독과 오래 살다보면 자연히 약학과 친해지고

어둔 굴속은 정신의 연금술이 태어나는 곳이오.


나 램프로 밝힌 굴속구석에서

손톱이나 물어뜯으며 아이의 눈동자를 보았오.

눈에 황금색 고리가 돌았고

속에서는 이죽거리는 멸시가 보였오.

낙타 혹 같은 내 등이 키들거렸고

당췌 내게 뭘 바라겠오?


여기가 반대편이오. 와서 무엇이든 좋으니

붙잡고 찬미하시오.

병신 몸뚱이밖에 가진 것 없는 내가

당신들 눈동자와 지저분하게 흘러내린 입꼬리를 볼 때

무슨 생각을 하든지 그것이 무어 중요하오?

나는 진흙으로 여러 번 사람도 빚어보았오.

그 뒤에 전부 짓이겨버렸오.


이제 나 햇빛 찬란한 날 거리에 나가면

아이 잡아먹는 꼽추라고 매질을 당하오.

나는 수그리고 엎드려 돌팔매질을 당하며

저쪽에서 돌 던지는 아이를 보며 웃으오.

매질이 끝날 때까지 나는 남들 몰래

행복의 알약만 두알 서알 삼켰오.


나는 늘 웃소. 와서 같이 웃으시오.

나 아무도 찬미하지 않고

나 아무도 손잡지 않고 웃으오.

나 가지가 모두 잘린 나무를 보았오.

푸른 풀밭에서도 그것만이 살아있는 것처럼 보였오.

불구에 상처 받은 것들만이 생명을 노래하오.

흑사병에 걸린 환자가 더욱 빛을 찾듯이.


부디 모두 행복해지시오. 그럼 나는

당신들 행복한 이들의 사회를 어두운 밤에만

골목골목을 전전하며 곁눈질로 찾겠오.

내 주머니에 수북한 행복의 알약은

당신들이 삼킬 때에만 내게 의미가 있오.

나 길게 기른 손톱과 굽은 등으로

그림자 진 가로등 뒤에서,

웃는 채로 굳어버린 내 혐오스런 얼굴을

태초의 표정으로 돌려놓을 신선한 물줄기를

공허하게 기다리고만 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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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타는 것들

글/시 2015. 5. 23. 05:48 |

불타는 것들

 


보헤미안의 모습으로 도시 뒷골목을 거닐 때
하늘에는 태양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반쪽짜리 달이 뭔가를 외쳤고
나는 알아듣지 못하여 더 가까이
더 가까이 건물들의 잔해를 헤치며
하늘로 올라가는 계단을 찾아 헤맸다.

 

자유를 추구하거나 자유밖에 알지 못하거나
거추장스러운 것은
손목과 발목에 채워진, 굳은 피로 만든
두꺼운 사슬이었다.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은
이미 사형수의 피로 채워진 늪에
빠져버려
그들의 완전한 사회를 노래했다.

 

달이 또 한 번 무언가를 외쳤고
내륙의 도시에서 자란 나는 아프리카의
뜨거운 열기가 마시고 싶어
가본 적도 없는 고향의 노스텔지어를 울부짖었으나
아, 눈물은 다 말라있었다.
내 심장의 피조차 말라있었다.

 

이 건조한 도시에서 도대체 무엇을 만들 수 있담?
나는 의문하면서도, 커다란 캔버스에
불타는 숲을 그렸고
뛰쳐나오는 짐승들과 가죽이 타버린 갈색 여인들을 향해
손을 뻗고, 옳아, 그때서야 나는 울었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에서
낡은 술병에 담긴 독주를 꿀꺽꿀꺽 삼켰다.
왜냐하면 나에게도 평화가 필요하지 않았겠는가?

 

아니야! 그렇지 않다. 결코
평화는 필요하지 않았다. 나는 더 많은
더 독한 광기를 향해 혀를 뻗었다!
의사들의 알약과 불이 붙는 술잔들 그리고
감금 되어 등이 굽은 자들의 희열, 그런 것들이
나를 썩히고 있었고, 나를 썩히는 것은 희망과 평화였다.
<네가 앙드레 지드의 단말마를 잊을 리가 없다.> 존경해 마지않는 사탄이여.

 

달이 또 한 번 소리 질렀다.
그때 나는 그것을 이해했다. 달은 도망치라고 외치고 있었다!
그것은 계시였다. 또 한 번의 엑소더스가 필요했다.
그러나 오로지 한 명 만을 위한, 하나의 영혼만을 위한
바다로, 바다로! 지구는 둥글기 때문에
나의 항해는 끝이 없어야할 것이다.
바다가 뒤집어지는 파도와 해일을 마주할 때
불타는 물과 익사자들의 시체가 나의 작은 나룻배 안으로
쏟아져 들어올 때
나는 나의 죽은 형제들을 위해 환희의 비명을 지를 것이고
적그리스도라는 거창한 이름을
기뻐하며 내 몸에 낙인을 찍겠노라.

 

세계의 폭력과 미친 남자가 존재하는 한
세상은 아름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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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직서

글/소설 2015. 4. 22. 22:58 |

2015/4/17 완성.

 

1. 나는 나의 문학을 사랑한다.

2. 설령 내가 문학이라는 것의 정의를 내릴 수 없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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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의 환각

글/시 2015. 4. 17. 09:20 |

지중해의 환각



그리스의 바위를 씹어 삼킬 때

나는 신이 필요 없었던 신화를 보았고―그 황금빛 하늘은 엄격하지 않았다!―

나는 바다로 쳐들어가

필시 이길 수 없었던 대양에게 익사를 거부하는

추한 인간의 표현을 하였다. 그러나 환희, 즉 고결한 절망은

내 입에서 뿜어 나오며 노을 걸린 하늘의 화주가 되었다.


나는 그것을 모조리 삼켜버렸다. 내 식도와 위장이 지글거리며

이제 나는 사람의 영혼 밖에 먹지 못하리라고

나는 오만하고 충동적으로 입을 쩍 벌려보였다.

나는 꿈을 꾸었다! 가죽부대를 나이프로 쭉 찢으면 포도주가

콸콸 쏟아져 나왔고 해변에는 내 손에 그을린 여자들이

내가 완전히 버림받음으로서 깔깔 웃고 뛰어다녔다.


흔들리는 배를 타고 대양으로 나갈 때 나는 심하게 앓았다.

독을 탄 악몽이 잠든 내 뇌수를 조금씩 괴사시켰고

나는 바다를 향해 토하고 눈물도 토했다-태양이 흐려지는 것을 보았다.

그 악몽은 절대 떠올리고 싶지 않은 것이었다!

내륙에서의 침잠, 전날 밤의 비바람에 온통 지저분하게 떨어져 죽은

꽃잎, 노란색의 좁은 방에 빈틈없이 들어찬 담배연기, 그리고 최악의 술……

거의 죽어가는 듯 누렇게 뜬 달. 그녀는 지금쯤 죽었음이 분명하다.


내 삶은 나를 믿지 않았다.

현실은 틀림없이 방해가 된다. 그러나 유일하게 마주 싸워야할 것은

현실뿐이다. 칼과 망치를 들고, 나는 칵테일 잔 위에 앉은 요정들을

짓이겨 죽이고, 눈동자에 딜레탕트의 시가 담긴 젊은이들을, 그들의

목을 칼로 무자비하게 찔렀노라. 나는 아름다움을 꿈만 꾸었던 것이다!

나는 피투성이의 시체조각들을 품에 안고 짐승처럼 울부짖었다.


오오, 그만. 그 끔찍한 도시에서의 잠들, 양식화된 석양, 죽은 마스크들……

그만! 나는 꽃핀 것들을 증오했고 질척거리는 늪의 주민들도 증오했다!

나는 괴물 위에서 살고 있었다. 절대 모습이 보이지 않기에

그 무엇보다도 두렵고 사악한 괴물 위에서. 나는 공포를 모르고

하여 한껏 취해 활개치고 다녔지만, 옳아, 이상한 방탕이었고 영혼의 사멸이었다.


나는 사막에 도착해 배에서 내렸다.

나는 사생아였다가 아내 없는 남편이 되었고

내 반쪽짜리 자식을 증오하다가 아비 없는 아들로 돌아갔다.


태양, 태양! 그 불의 구(球)를 찬양하라! 그것이 오로지 신과 닮았다!

태양은 이곳에서만 진실한 열기를 보였다. 그것은 미친 남자를 재로 만들었다.

모든 것이 명백해지는 소리가 들리는가? 그것은 당신의 귀가 아닌

눈과 코로 들릴 것이다. 한 잔의 독한 술로 담긴 태양의 진액과

열로 말미암아 쩍쩍 갈라지는 소리가 나는 사막의 모래를

나는 기필코 집어삼키고야 말았다.


새까만 대양과 흰색 태양과 소금의 사막이 한자리에 모였다.

나는 아버지의 시체를 한복판에서 태웠다. 불길은 나에게까지 번졌다.

온몸의 가죽이 타들어가고 나서야 나는 진짜 비밀을 알아차렸다!

그것은 공허였다! 그것은 인간으로부터의 탈피였다! 그것은 파열(破裂)이었다!

그것은 창조된 파괴였다! 그것은 야수의 삶이었다! 그것은,

그것은 인간이었고, 인생이었고, 죽음이었고, 우상의 시체로 만들어진 건축물들이었으며

그것은 불의 신이었고 그것은, 그것은.

아아, 너 언어여! 네 뒤틀린 유한성이여! 염병할! 나는 침을 뱉는다.


고통이 네 죄를 씻어 내릴지니! 지고의 숨결이 나를 꿰뚫었고

지옥이란 사실 시인들의 세계라는 것을 나는 깨달았다.

그리하여 내 눈동자는 유황색으로 타올랐다……


그러나 모조리 환각이야. 욕설을 씹으며 머리를 뒤흔들자

나의 두개골 안에서는 딸깍거리는 이상한 소리가 났고

연기 가득한 회색 방에서 나는 곰팡이 핀 이불을 덮고

손에는 나이프와 알약 한 줌이 쥐여있었다.

방 한 구석에 구르는 담배 파이프를 보고

나는 그만 웃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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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색의 갈증

글/시 2015. 4. 5. 05:49 |

갈색의 갈증

 


염세주의를 피하려고
두 눈을 지웠다
젊은 쾌락의 아이들이
놀고 간 자리 같은 세상에 앉아
시베리아의 밤을 꿈꿨다.

 

낮에도 어둠이 손에 잡히는
도시의 변방에서
밤은 어느 나라에나 공평하게 내리지만
태양을 못 본지가 너무 오래되었다
내 몸은 균사와 게으름으로 뒤덮여
습기 찬 바닥 위를 기고

 

태양이 내 병을 낫게 해줄 것이다.
이 땅의 푸르죽죽한 태양보다
훨씬 뜨겁게 훨씬 강렬하게 작열하는
지옥의 유황불보다도 오히려 흰색의
고통과 정화의 창이 내 영혼을 꿰뚫어야만
아, 이 축축한 콘크리트의 행성에서

 

내 환상은 사막을 굴러다니고 있다
갈라진 땅의 틈새로 호흡하는 열기와
지평선이 시작되려는 곳에 파도치는
공포스러운 대양이 날 기다리리라고
백일몽을 보는
해골 한 구가

 

어머니, 비명을 질러주세요, 어머니
새벽 공기로 가득 찬 내 가슴에서는
유독성의 연기만 피어오릅니다.
술도 담배도 여자도 가로등 밑에 버리고
오로지 태양 하나만 삼키고 싶다는
그런 갈증에
나는
너무 오래되어버렸다.

 

Posted by Lim_
:

명백함에 대하여

글/시 2015. 4. 2. 08:37 |

명백함에 대하여


 내 애절함은 닳고 닳아 불경한 집착이 되었다. 애당초 사랑이란 없었노라. 모든 성애(性愛)가 성욕(性慾)으로 변모하면서 나는 태어났다. 피를 가득 담은 가죽주머니라면 무엇이든 상관없었다. 이 나라에서 네온사인이 가장 밝게 빛나는 곳에는, 자신의 등에 일종의 날개가 달려있다고 상상하는―누구의 깃털이든 밟기 위해 혈안이 된 소년들이 담배연기로 자신의 메마른 몸을 감추며 걸어 다닌다. 나는 그늘에 숨어 술병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마셔버렸다. 바다 건너의 일 따위 나는 모르오! 나는 외쳤다. 변명거리가 필요했고 입안에 머금은 것은 온통 핑계뿐이었으므로. 정직을 추구하기 위해 흰 것들에게는 모조리 잉크를 부어주었다. 비단 바다 건너뿐만이 아니라 오만 지평선들의 너머에 있는 것들은 송두리째 모른다고 욕설을 퍼부었다. 돌아오라. 부디 돌아오라. 그대의 죄악이 모두, 죄악이라고 부르고 싶은 것들은 모두 죄악이 되어 끈적거리는 선혈로 웅덩이 진 곳에. 여인들은 잉태하고, 여인들은 손톱을 세우고 잉태한다. 나는 당신의 아내를 사랑하지 않는다. 누구의 아내도 사랑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값싼 단어들은 새로이 만들어져야한다. 그러나 우선은 내리쳐 산산이 박살내어야한다. 나의 잔혹한 욕망들을 말로 만들어내기만 해도 너무 많은 눈물들이 쏟아져 내린다. 오, 부디 나를 동정해주시기를! 너무 많은, 너무 많은 언어들에 잠겨 나의 언어는 목이 졸렸다. 봄 햇살 밑에서 가볍고 얇은 옷을 입고 활보하는 여인들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혀를 깨문다. 흉기를 품고 사는 것이 나 자신인지 당신들인지, 광기는 투명해질수록 그 밑으로는 혼돈과 모순을 뚝뚝 흘려댄다. 마침내 모순이 더 이상 모순이 아니게 될 때까지 광기는 깨끗해진다. 발작하는 방법을 모르는 간질 환자처럼 잉크를 퍼부어주었다. 내 병에는 다시 잉크가 차올랐고 나는 마셔버렸다. 나는 시학에 대해 말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미학에 대해서도 말하고 싶지 않았다. 내 수첩 페이지를 먹은 염소는 죽어버렸다. 그래서 나도 남은 조각을 집어삼켰다. 갈증을 참을 수 없어 술집으로 도망쳤다. 생각해보니 매일같이 반복하고 있는 일이었다. 나는 내가 지상의 인간의 손을 붙잡고 있다고 믿고 있었는데! 그는 눈부시지 않은 황혼과 같아 위대했고 그 황혼에서는 가끔 날벼락이 쳤다. 그러나 매일 찾아오는 침묵의 새벽이여. 너는 광란이었고 미치광이들의 어머니―차라리 어머니의 치맛자락이다. 나는 그 손을 붙잡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오로지 그 이글거리는 것을 경외하는 추한 범죄자였다. 시꺼멓게 중독된 내 심장을 나는 꺼내 바친다. 그 독의 이름은 시(詩)다. 그 중독은 타인의 영혼을 머리 째 집어삼키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이 땅에서, 나는 불유쾌하게 부유하거나 늪 위를 걷듯 천천히 침수되거나 하였다. 그리하여 나는 왕이 되었다…….
 짐이 선포하노니 이 땅에 더 이상의 자비나, 혹은 자비라고 착각되는 것은 없을 지어다! 가신들이여, 짐은 왕정을 부정하노라. 왕정뿐만이 아니라 신정을, 공화제를, 민주제를, 모든 정부를 부정하노라! 오로지 야만만을 행하라고 짐은 명령할 것이다. 폭력과 테러와 반달리즘이 법이며, 또한 아무것도 법이 아닐 지어다! 유일한 지침인 아름다움은 피와 살점과 뼛조각 속에 있으며, 그것을 찾아내 내게 바치는 자는 칭송받을 것이다. 갓 태어난 자신의 새끼를 베개로 눌러 질식시켜 죽이는 어미에게는 짐이 눈물로 키스할 것이다. 약자를 구타해 죽이고 그 살점을 모닥불로 구워먹는 잡배들이 더 많은 식인을 행하도록 보조하라. 아버지를 죽이고 선생을 죽이고 짐에게마저 송곳니를 드러내는 소년에게, 짐은 기꺼이 목을 내어줄 것이다. 부디 모든 것을 원시의 혼돈으로 돌아가게 하도록 하라……. 그것은 그리도 아름다웠노라. 심지어 내가 왕이 아닐 때에도 그랬노라. 내가 거지에게 주머니를 털어 가진 것을 모두 내어주었을 때, 나는 미치도록 나 자신이 혐오스러웠다. 왜인지는 몰랐다. 영원히 모를 것이다. 나는 영원히 부랑하는 왕일 것이다. 종말은 오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나는 무언가에게 패배했으나 절대로 패배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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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비참

글/시 2015. 2. 18. 03:11 |

삶과 비참



세상은 잠들어있고 나는 내 살들을 물어뜯고 있다.

―그런데 누가 세상을 세상이라고 불렀는가?

잠든 이들이 가득한 영안실이나

서랍 속에 죽어있는 개미떼들이나

<세상>이라는 개념을 다르게 이해하는 데에는

언제나 죽음이 필요하다.


비참. 구토하고 싶어도 구토할 수 없는

나는 카페인을 왼쪽 팔에

모르핀을 오른쪽 팔에 주사하면서

입으로는 흰색의 중추신경억제제를

한줌씩 삼키고 있다. 비참함을 위하여.

내일도 내 눈에 어둠은 없을 것을

새벽이 가면 나는 비명 지르고 아파할 것이다.

도대체 왜 태양이 떠야하는지 소리치며 저주할 것이다.


모든 무게들이 타들어가고

남은 재로 만든 새벽 두 시의 밤공기는 참으로 좋았지!

그대로 나는 별나라로 걸어 올라갈 수도 있었겠다.

화학과 신경약리학이 만들어낸 몸뚱이는

검은 나무 밑에 눕혀두고.


거울을 보면 눈이 붉은 포식성의

늙은 야수가 보인다. 담배를 문, 포기의 낯을 한.

심지어 내 영혼은 아직까지도 하늘만을 보고 있다.

<살아가고 싶지 않다>와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다>가

다른 의미를 가지는지 아닌지

오로지 폐에 니코틴만을 꾸역꾸역 밀어 넣다보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문제가 되어버린다.

세상은 한때 아름다웠는데


자살하는 자를 비웃고 살아가는 자를 경멸하고

냉소주의는 나에게도 칼을 들이댄다.

아무도 특별할 수 없다. 아무도.

때가 되어 안구출혈이 일어나면 나는 성당으로 향해

해머로 하얀 성모상을 때려 부수고

사랑을 설파했던 어느 가엾은 남자의 손과 발에서 못을 뽑아

십자가에서 내려 껴안고 울어줄 것이다.

우리는 모두 버림받은 뒤부터 살아가는 것이라고

목수의 아들에게 눈물로 속삭일 것이다.


아프다. 모든 것이 정말로

더럽게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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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한 마리 들개였더라면



내가 이 도시의 한복판에 서있을 때

계절은 항상 밤이다.

무감각의 마스크를 가진 사람들이 이따금

발소리도 없이 스쳐지나가고

내가 달이 아름답노라고 울부짖어도

달은 귀 기울이지 않는다.

그럴 때 나는 내 영혼을 사납게 물어뜯고

피 흘리는 그것을 부둥켜안고 울고 우는데

아, 보라, 울음도 웃음도

모두 감상주의자들의

사치품이 되어버렸다…….

나의 집이라는 것은

오래 전부터 죽은 자들의 책으로 가득차고

나의 반쯤 감긴 눈동자를 분석하려는

정신의학자들의 목청 높은 언변과 메스가 굴러다녀

이 한 몸 뉘일 곳도 없다.

한때 딜레탕트들을 그렇게 증오했노라.

내 뭉그러진 이빨을 세우고 살기를 품고

미학은 망가지고 무너져 가면서도

어떻게든 두 발을 지상에 딛고 있는 이들의 것이라고 아, 세상에!

모든 것이 다 굳게 닫힌 빈방에 울리는

메아리 같은 것이었다.

내 생명은 그저 변명거리를 찾아다녔다.

눈동자에 총기가 있는 사람들을 마주할 때면

나는 겁먹고 불안 속에 잠겨 인간의

흉내를 냈다.

심장이 스스로 찢어지고 영혼이 독을 삼켜 비명 지르는 와중에

마스크만은 깨지지 않았다 아아, 니미럴.

인간의 피는

짐승에겐 맹독이다.


차라리 한 마리 들개였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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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어디까지 포용하는지



별이

뜰 리가 없는 곳에

별이 뜬다.

당신은 믿겠는가

그곳에 별이 뜬다는 것을.


나는 믿는다

나는 한없이 믿는다

단 한 번도 별이 뜬 적이 없는 곳에

별이 뜬 것을.

나의 새빨간 심장을 흔드는

뒤흔드는 그 인공적이고

믿을 수 없는 섬광을.


나는 한껏 취해

내 혈관을 도는 알코올과 환희와

누구도 비춘 적이 없는 어둠에

고고하게 빛나는 신성을

비명 지르며 맞이한다.


소리쳐라! 비명질러라!

마치 당신에게

아직은 오지 않겠다고 약조한

죽음이 찾아온 것처럼.

노래해라, 백마가 밤하늘을 달려와

당신에게 노래하듯이.


우리는 하늘을 바라보며 산다.

우리는 하늘에 맺힌 이슬을

빨아 마시며 산다. 저 하늘의

인간의 짧디 짧은 인생을 웃으며 내려 보는 듯한

혈액이 흐르지 않는 불가해의 얼굴을

손에 거머쥐기 위해 빌딩 꼭대기에서 발을 구르며

뛰어내리면서.


언제 내일이 찾아올지

부디 셈하지 마십시오.

우리의 피는 삶만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고

현자가 되지 못해

산꼭대기에 영혼들을 심어놓은

그리고 세상의 모든 색깔들을 빨아 마신

그들이 이야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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