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척 팔라닉의 <질식>을 읽었다.
교차로
그는 빌라의 복도에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복도 창문으로 맞은편 건물을 바라보면서 말이다. 맞은편 건물의 한 창문에는 불이 켜져 있었다. 남자의 기억에 따르면 근 몇 달간 그 집은 불이 꺼져있는 날이 없었다. 창문을 통해서 가끔 파자마 차림의 삼십 대 정도로 보이는 여자가 집안에서 돌아다니는 것이 보였다. 그녀는 뭔가를 정리하기도 하고 청소를 하는 것 같기도 했다. 간간히 팬티바람의 남자가 보였다. 그도 역시 삼십 대 정도로 보였다. 남자는 미광이 비쳐 뿌옇게 보이는 눈동자로 그 장면을 그저 쳐다보고만 있었다. 이제 얼마 뒤면 어린 여자아이 하나가 보일 것이었다. 왜냐하면 전에도 매번 그랬기 때문이다. 일곱 살 즈음 되어 보이는 어린 여자아이 말이다. 그리고 그때쯤이면 담배도 모두 타들어가 있을 것이었다. 그렇다. 여자아이가 인형을 하나 들고서 창문 앞을 가로질러가는 것이 보였다. 남자는 다 타들어버린 담배꽁초를 창문 밖으로 던지고서 주머니에 손을 쑤셔 넣었다. 구역질나는 삶의 단면들……. 그는 아마도 그렇게 중얼거렸다. 아니, 중얼거리지도 않은 것 같다. 그저 소리도 없이 입을 뻥긋거렸을 뿐이다. 그래. 이 도시는 그렇다. 자정이 넘은 이 시간, 빌라들이 밀집한 이 어둑한 거리에서, 어딘가에 있는 십대 소녀는 커터 칼로 자신의 손목을 긋고 있을 것이고, 어딘가의 가정에서는 남편이 아내를 두들겨 패고 있을 것이다. 그저 상상일 뿐인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고, 우리가 살고 있는 거리가 바로 그런 모습을 하고 있으니까. 그 자해에 맛이 들린 소녀의 팔목에는 벌써 수십 개도 넘는 흉터가 있을 것이고, 얼굴에 멍이 든 아내는 남편이 출근한 뒤인 낮에는 화장대 앞에서 울면서 도주를 계획하고 있을 것이었다. 지금까지 열 번도 넘게 포기한 그 도주를 말이다. 도주. 도주. 그 단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남자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는 평생을 이런 거리에서 자라온 것이다. 피폐하고 온통 회색조인 삶밖에 갖고 있는 것이 없는, 도시의 빈민들 사이에서 말이다. 그는 입술을 씹으면서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하얀 정제들이 들어있는 사각의 작은 비닐봉투였다. 그는 그 안에서 정제 하나를 꺼내 입에 넣더니 고개를 뒤로 휙 꺾으며 삼켜버렸다. <담배를 피운 뒤가 제일 좋지. 니코틴 때문에 감각이 깨어있거든.> 그리고 그는 십 초 정도 창밖을 계속 내다보았다. 저쪽 창문에서는 남자가 보이지 않을 것이었다. 왜냐하면 남자가 서있는 곳은 전구가 고장 나서 절대 불이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었다. 저쪽에서 보면 남자가 서있는 쪽의 창문은 그저 새까맣게만 보일 것이었다. 이 거리의 하늘보다도 훨씬 새까맣게 말이다.
남자는 계단을 한 층 내려와 자기 집의 현관문을 열었다. 온갖 아로마와 허브들의 냄새가 곰팡이 냄새와 뒤섞여 끈적거리고 지독한 향취를 만들고 있었다. 현관문의 맞은편 왼쪽에 위치한 방문 안에서 <The Grateful Dead>의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 어둑한 집은 그 경쾌한 노래마저도 무엇 때문인지 음산하게만 느껴지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는 슬리퍼를 벗고 음악이 흘러나오는 방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이제 약이 돌기 시작했다고 그는 생각했다. 생각이 둔해지고, 자신의 행동 하나하나가 유난히 크게 느껴진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 방안에 울리는 음악소리에 따라서 눈에 보이는 것들이 온갖 색깔들로 점멸할 것이다. 도주. 도주. 그가 오디오 앞에 깔린 이불에 주저앉으면서 중얼거렸다. 도주. 그 꿈같은 단어. 방에 있는 창문을 통해 뭔가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 날카로운 목소리로 소리 지르고 욕하고 비명 지르는 소리……. 남자는 이미 누워있었다. 천장에 보이는 기하학적 무늬들이 붉은색에서 노란색으로 바뀌며 번쩍이고 있었다. 그는 몽롱한 눈동자로 그 빛들을 쫓으며 머릿속으로 자기 자신에게 묻고 있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섹스를 한 것이 언제였지? 언제부터 여자의 살들이 그렇게 역겹게 느껴지기 시작했을까? 나와 살을 섞는 여자들의 눈동자에서 지옥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끔찍한 구렁텅이들이 보이기 시작한건 언제부터였고? 그러나 천만다행으로 그런 상념들은 곧 잊혀져버렸다. 왜냐하면 남자가 자신의 혈관 속에 오색찬란한 환상이 흐르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도시의 번쩍임이나 돈과 황금의 빛깔과는 전혀 다른, 어쩌면 죽음과 닮아서 은밀하게 번뜩이는 환상이 말이다.
어쩌면 죽음과 닮은 빛. 그러고 보니 딜러가 그런 얘기를 했었지. <이 물건>은 사람이 죽을 때 뇌에서 분비되는 물질과 똑같은 성분으로 되어있다고.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는 눈을 감았다. 눈꺼풀 안에는 수천 가지 빛과 무늬들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더 이상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지금 살아있을 필요도 없었다.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목적이 있어야한다. 목적이 없다면 적어도 동기 정도는 있어야한다. 왜냐하면 목적이나 동기마저 없을 때 우리의 삶은, 그저 기다릴 뿐인 것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미래보다는 덜 비참한 현재가 지나가는 것을 그저 기다리는 것 말이다.
남자는 불 꺼진 방 안에서 벽에 기댄 채 앉아있었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깨어있는 것인지 잠든 것인지도 구분할 수 없었다. 창문을 통해서 바람이 들어왔다. 여름 특유의 끈적거리고 축축한 바람이 말이다. 옆 건물의 환풍기 돌아가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남자는 보일 듯 말 듯 하게 고개를 흔들더니, 한 손에 쥐고 있던 볼펜으로 바닥에 무어라고 낙서를 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쓰는 것을 보지도 않으면서 그는 펜을 놀렸고, 입으로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우리는 노예가 되도록 길러졌어. 언제부턴가 세상은 현실이 아니라 자본주의적 상징이 되어버렸고…….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기다린다. 언젠가 <이> 세상이 끝나버리기를 말이다. 종말의 도래를 외치는 사이비 광신도들은 사회인들을 위한 적극적 대변인이다. 모두가 벌써부터 종말에 익숙해져있다.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불로 된 비가 쏟아져도 사람들은 놀라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그저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아, 이제야 시작됐군.>
남자는 오래 전부터 그것을 알고 있었다. 알고 있었다기보다는 알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그를 길러낸 사회의 모든 것이 남자의 뼈마디마다 체념하라는 글귀를 송곳으로 새겨놓았기 때문이다. 남자는 자신이 삶의 의미라는 것을 믿고 있었던 시절을 기억해내려고 했다. 그러나 기억이 나지 않았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일지도 몰랐다. 어른이 된 뒤에 떠올리는 유년시절의 끝은 언제나 어른을 비참하게 만든다. 기억나는 것은 이미 일찍부터 그가 중독되어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시간을 때우기 위한 모든 것들에 대한 중독 말이다.
술, 담배, 섹스, 자해, 마약.
요컨대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잊기 위한 모든 것들에 대한 중독.
예수 그리스도도 십자가 위에서 구름들의 숫자를 세며 자신의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겠지.
그렇게 죽음을 기다리다보면 어느 순간 섹스라는 개념이 자신에게서 떨어져나간다. 도파민이 분비되고 오르가즘을 느끼는 순간에 그는 자신이 생물이라는 사실을 새삼 자각하면서 구역질을 하고 토사물을 뱉어낸다. 짧은 쾌락을 위한 도구여야만 하는 것이 <커뮤니케이션>의 성질을 갖고 있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쾌락에 대상이 남아있다는 사실 때문에 그는 간절하게 권총 한 정만을 원한다.
그래서 항상 약이 제일 낫지.
남자는 앉은 채로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작은 비닐봉투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그는 책상의 서랍에서 얇은 직사각형의 종이를 한 장 꺼내더니 비닐봉투의 내용물을 그 위에 직선으로 뿌렸다. 남자는 그것을 돌돌 말더니 종이의 한쪽 끝에 침을 발라 붙이며 마무리했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입에 물고 끝에 불을 붙였다.
연기가 피어오른다. 예전에는 잘 말린 대마 잎을 지금보다 훨씬 싸게 구할 수 있었다. 노후 된 기차역에 가면 반드시 대마를 파는 사람이 있었다. 그러나 규제가 심해진 지금은 보다 시끄럽고 번쩍거리며 음침한 곳으로 가야한다. 품질이 더 나아졌다고 하기도 힘들 것 같다. 남자는 연기를 빨아들이다 콜록거리면서 기침을 한다. 확인한 적은 없지만 그의 폐는 이미 썩을 대로 썩어있을 것이다. 대마초도 담배도 이미 습관이 되어버렸다. 그는 시간과 사고를 함께 묶어 쓰레기통에 처넣어버리고 싶을 때에는 대마를 피우고, 가학적인 현실감을 필요로 할 때는 담배를 피운다. 문제는 그런 순간들이 계속 반복되면서 수도 없이 찾아온다는 것이다.
인간 영혼의 가장 위대한 선구자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이다.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죽음을 더 앞당기는 가장 쉬운 방법을 바로 그들이 발명했다.
문제는 아직도 죽음이 찾아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한 번은 만났었지.” 남자가 중얼거렸다. 그 말대로 남자는 딱 한 번 죽음을 만난 적이 있었다. 추상적이거나 관념적인 의미가 아니라, 구체적인 의미로 말이다. 그건 남자의 혈관에 한창 뜨거운 피가 돌던 무렵, 그러니까 그가 지금보다 더 젊을 때의 일이었다. 그는 히피 음악이 흘러나오는 어두운 방에 누워있었고, 신경안정제와 수면제를 섞어서 한 줌을 집어삼킨 참이었다. 창밖에서는 소란스러운 도시의 소음이 들려왔고, 방안에서는 오디오가 돌아가는 소리뿐이었다. 남자가 비몽사몽간에 눈을 뒤집고 있던 무렵, 창문을 통해서 시꺼먼 무언가가 기어들어왔다. 얼굴도 표정도 형체도 없는 새까만 무언가가 말이다. 그것은 방안에 들어와서 남자의 머리맡을 천천히 기어 다녔다. 남자는 직감적으로 눈치를 챘다. 저것이 죽음이라고. 죽음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그것은 이렇게 말하는 듯 했다. <네가 잠이 들면 데려갈 거야.>
왜?
<왜라니. 너도 바라던 일일 텐데.>
모르겠어.
그는 정말로 몰랐다. 그저 자신을 데려가겠다는 그의 말에, 남자는 자기가 살아왔던 생을 한번 훑어봤을 뿐이었다. 그러니까, 그가 햇빛 아래에서 살던 시절의 일들을 말이다. 얼마나 오래된 과거인지. 어쩌면 그리 먼 과거는 아닐지도 몰랐지만, 남자에게는 너무도 멀게 느껴졌다. 한때 그에게는 부모도 있었던 것 같은데, 이제는 얼굴이 기억나지 않았다. 기억나는 것은 오로지 차가운 골방의 감촉뿐이었다. 아무도 오지 않고, 아무도 없는, 오직 남자 혼자서 주저앉아 음악을 듣고 지루한 듯이 책을 읽던 그 골방의 감촉. 어쩌면 그때부터 죽음은 이미 그를 점찍어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미련을 가져야하는지, 아니면 복수심이라도 가져야하는지, 그것도 모르겠어.
태양 아래서 사는 사람들은 그걸 체념이라고 부를지도 모른다.
남자는 잠들지 않았다. 그는 그저 눈물도 나오지 않는 몽롱한 눈을 희멀겋게 뜨고 새까만 천장을 쳐다보기만 했다. 몇 시간이나 그러고 있었는지는 몰라도, 언제부터인가 창가가 밝아지기 시작했고, 해가 뜨고 있었다. 그러자 죽음은 돌아갔다. 창문 너머로 넘어가, 한적한 도시의 골목에서 흩어지듯이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남자는 그가 한숨짓는 소리를 들었다고 생각했다.
지금이라면 어떻게 할까? 만약 그것이 다시 와서, 자신을 데려가겠다고 말하면, 남자는 어떻게 할까?
그는 알 수가 없었다.
죽어야 될 이유도, 죽지 않아야 할 이유도, 살아야 할 이유도, 살지 말아야 할 이유도.
그는 다 타들어간 대마초를 장판에 눌러 끄면서 주머니를 뒤졌다. 그는 흰색 정제 하나를 비닐에서 꺼내 삼켰다.
당신이 동물을 사랑하고 그들의 자유를 바란다면, 동물원의 철창에 갇혀있는 동물들에게 환각제를 하나씩 나눠줘야 한다.
철창 밖이라고 자유가 있으란 법은 없다.
그때, 그의 몸이 바닥에서 점점 늘어지고 있던 차에 갑자기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남자는 거의 반사적으로 눈을 뜨며 전화기를 찾아 바닥을 손으로 더듬었다. 그러나 잡히는 것은 다 타고 남은 대마초뿐이었다. 전화기는 책상 위에 있었다. 그는 비틀거리며 일어나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전화기 너머에서는 다소 초조한 친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나야. 너 혹시 전에 말했던 <물건>, 아직 갖고 있어?」
그거…… 아마 있을 거야.
정상인 같은 목소리를 내자. 혀가 꼬이는 것에 조심하면서.
왜, 사려고?
「응. 내가 그쪽으로 갈게. 돈은 얼마나 필요해?」 여전히 초조한 목소리였다.
평소에 주던 대로 갖고 와. 너 상대로 돈벌이할 생각은 없으니까…….
그리고 남자는 전화를 끊었다.
수화기 너머에서 친구가 <고맙다>고 하려던 것 같았다. 남자는 전화를 끊자마자 바닥에 쓰러지듯이 주저앉았다. 이런 일은 별로 내키는 일이 아니다. 이차 판매자가 된다는 건 부담이 크다. 자신이 사용하기 위해 물건을 사는 것과 팔기 위해 사는 것은 완전히 죄질이 다르다. 그러나 이런 생각을 해 무엇 하겠는가? 남자는 또 눈앞에서 기하학적 형상을 한 환각들이 굴러다니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타이밍이 안 좋았다. 이 지겨운 세상에서 끊을 것을 다 끊어버리더라도, 죽지 않는 이상 선은 또 연결되기 마련이다.
죽는다면 혼자 있는 방에서 고독사하는 것이 가장 좋다. 누군가가 침대 맡에서 울고 있는 것을 마지막으로 보면서 맞이하는 죽음은 그리 유쾌한 것이 아니다.
인간관계라는 것은 끝자락에 가면 언제나 괴로움 밖에 되지 않는다.
창문에 비치는 옆 건물의 굴뚝이 어둠 때문에 성모상처럼 보인다. 그 어깨에는 금빛으로 빛나는 작은 요정이 앉아있다. 크리스트교 옆의 애니미즘.
방 안에 쓰러져있는 데카당티슴.
상징들의 세계. 가로등 불빛이 비추는 바깥세상에서는 금화와 황금이야말로 인간의 영성이 되어버렸다. 남자는 그 세계에서 자랐다. 그러나 언제부터 쓰러지기 시작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불량품이란 뭘까. 남자는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때 전화가 또 울렸다.
남자는 전화기를 열고 통화버튼을 누르면서 말했다. 여보세요.
「준형이니? 나 고모야.」 늙은 여자의 목소리였다.
아, 고모.
「오랫동안 연락이 없어서 전화 해봤어. 잘 지내니? 일자리는 아직 못 구했고?」
그게, 네. 언제나 비슷하죠. 일자리는……
「됐다. 말 안 해도 돼. 네가 힘들 거라는 거 잘 안다. 고모가 이번 달 생활비 부쳤어. 그림은 요즘에도 그리고 있니? 의사 선생님이 그러셨잖아. 미술활동이라도 계속 하는 게 너한테 도움이 될 거라고…….」
고맙습니다. 고모.
「네 아버지 어머니에 이어 주미까지 그렇게 됐으니, 고모는 네 심정 다 이해한다. 그래도 어쩌겠니. 이제 너도 네 삶을 살아야지…….」
…….
남자는 침묵했다. 그러나 무슨 의미가 있는 침묵은 아니었다. 달리 할 말이 없었던 것이다. 고모라는 여자가 일컫는 아버지니 어머니니, 주미니 하는 이름들은 남자의 머릿속에서 이미 퇴색된 지 오래였다. 이젠 더 이상 그들이 생각나지도 않았다. 남자는 전화를 받으면서도 그저 시야 주변에서 굴러다니는 신비로운 도식들을 눈으로 쫓고 있을 뿐이었다. 비극이라는 단어는 그 의미를 상실한지 너무 오래되었다. 그저 현상들만 있을 뿐. 그리고 가차 없이 연속되는 현재들만 있을 뿐이었다. 마비된 감정과 뒤틀린 지각기능. 이미 재가 되어버린 영혼. 우리의 육체는 어딜 가든 철창 속의 원숭이와 다를 바가 없다. 자유는 환각과, 선택적 광기 속에서만 존재한다. 그리고 도파민과 아드레날린, 내분비샘에서 분비되는 온갖 호르몬들 속에서도.
누군가가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 그 친구일 것이다.
미안해요 고모. 누가 와서 이제 끊어야겠어요.
「그래. 내가 너무 주책없이 떠들었지. 몸 건강히 잘 지내렴. 그리고……」
남자는 <그리고> 뒤에 무슨 말이 붙을지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조용히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그는 천천히 일어나 현관문으로 가서 문을 열었다. 남자보다 키가 조금 작고 갈색 머리에 핼쑥한 얼굴의 사내가 문 앞에 서있었다. “안녕.” 사내가 거의 기계적인 목소리로 인사했다.
들어와.
갈색 머리의 사내가 신발을 벗는 동안 남자는 방으로 들어가 서랍을 열었다. 그는 그곳에서 저금통을 하나 꺼내더니 열어서 안에 들어있던 내용물을 집어 들었다. 투명한 비닐에 들어있는 20개 정도의 작은 캡슐들이었다. 그는 그것을 들고 이미 사내가 기다리고 있는 거실로 나갔다.
돈은?
“여기. 액수 세어봐.” 그러면서 사내는 지폐다발을 남자에게 건넸다.
아마 맞겠지. 물건 확인이나 해봐.
창문 밖에서 어떤 여자의 흐느낌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남자는 그저 소파에 앉은 채로, 갈색 머리의 사내는 비닐을 열고 캡슐 하나를 열어 입술에 갖다 댈 뿐이었다.
이봐.
“응, 좋은 물건이군. 이걸로 됐어.”
전부터 말했지만 난 딜러가 아니야. 본격적으로 물건을 파는 사람한테 가는 게 나한테나 너한테나 더 좋을 거라고.
“미안. 하지만 그쪽 업계 사람들이랑 직접 만나고 싶진 않아.”
그만큼 내 부담이 늘어나는 건 괜찮단 말이지. 남자는 굳이 입 밖으로 내지는 않으면서 그런 말을 중얼거렸다.
영리한 녀석들은 적당한 시점에 발을 빼는 방법을 알고 있다. 그들에게 있어서 관계란 기회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이 올바른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영리하고 영리하지 않고 이전에 자신의 발이 진흙탕에 점점 끌려들어가는 것을 방치하는 인간도 있다. 자신이 어디로 굴러 떨어지든 신경도 쓰지 않는 인간들.
정신과 의사들은 그것을 수동적 자기파괴 행위라고 한다.
건설적 의욕을 가지는 비법은 뭘까?
철창 열쇠를 훔치는 것과 철창 안쪽에 자란 독버섯을 씹어 먹는 것 사이의 차이점은?
저 여자는 아직도 우는군.
“이봐, 혹시 지금 취한거야?” 갈색 머리의 사내가 물었다.
몰라. 왜?
“어두워서 잘 보이진 않지만 너 동공이 풀려있어.”
지금 베란다 문 열려있어?
“베란다? 열려있는데.”
좀 닫아줘.
사내는 그가 시킨 대로 베란다 쪽으로 가 문을 닫았다. “베란다는 왜 닫으라는 거야?”
너도 조심해. 약에 취하려면 그 전에 베란다부터 닫아놔.
“어째서?”
본드 불다가 베란다 밖에 용이 있다면서, 그 용에 올라타려다 떨어져 죽은 친구를 하나 알거든.
“하. 그거 재미있는데.” 갈색 머리 사내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같이 본드 불던 다른 친구 말로는 그 용이 얼른 타라고 했다더군.
무의식의 자살교사.
남자는 모두의 정신 속에 그런 <용>이 있다고 믿는다.
“아무튼 물건 받았으니까 가볼게. 다음에 술이나 한잔 하자고.” 사내가 현관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면서 말했다. 남자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는 소파 위에 늘어져있었다. 한쪽 팔을 눈 위에 올리고.
여자는 여전히 울고 있었다.
남자는 불빛이 희끄무레하게 비추는 방 안에서 캔버스 앞에 앉아있었다. 얼마 만에 보는 것인지, 씁쓸한 그리움이 느껴질 정도의 화구들도 전부 꺼내놓았다. 남자는 의자에 앉아서 캔버스의 하얀 표면을 그저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미술활동. 뭔가를 창조하는 것. 남자는 중얼거렸다. 그러다가 그는 주머니에서 대마초를 꺼내 입에 물었다.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는 정체모를 초조함을 느끼면서 대마초에 불을 붙였다. 마지막으로 그림을 그린 것이 언제였더라?
마지막으로 누군가가 내 그림을 보았던 건 언제였지?
남자는 물감도 짜놓지 않은 팔레트를 왼손에 들고 오른손에는 붓을 들고 있었다. 그 앞에 놓인 흰 캔버스는 공포였다. 실로 공포였다. 타고 남은 찌꺼기와 사람들이 뱉어낸 오물로 가득한 이 시대에, 이 과잉의 시대에 무얼 더 창조해야한단 말인가? 한밤중 24시간 편의점의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느낄 수 있는, 본질의 색깔을 잃은 채로 과잉된 자본주의와 마주할 때의 그 느낌. 이제 개념들은 더 이상 발붙일 곳이 없다. 개념들은 유령처럼 도시의 상공을 배회하며 언젠가 인간들에게 완전히 잊혀 지기만을 기다린다. 남자는 밤하늘을 보면서 그것들이 서로 부딪히고 부대끼며 부유하는 것을 본다.
아무도 찾지 않는 무덤을 보는 것과 흡사하다.
미술관에 변기가 전시되면서부터 예술가들은 자신들이 어떤 시대에 어떤 처지로 태어났는지 인지하기 시작했다. 이제 우리는 창조할 것이 없다.
이제 우리에게 허락된 행위는 파괴와 부정, 쇠락밖에 남지 않았다.
남근들은 거세당하지도 않았는데 이미 그 의미가 불투명하게 흐려져 가고 있다.
예술가들은 건재하지만 예술은 멸종해가고 있다.
이런 시대에는 예수도 정장을 입어야한다. 사실, 그렇게 하더라도 조롱거리밖에 되지 않겠지만. 그러니 성당 밖으로 나오지 않는 것이 그를 위한 최선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이 모든 것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우고 있다고 말하고 싶지만, 남자는 자신이 비평가로 오인당하는 것이 더욱 두렵다.
나는 비평가는 물론이고 예술가도 아니야. 그는 기분이 몽롱해지는 것을 느끼면서 말린 대마가 타면서 내뿜는 연기를 들이마신다. 그가 무엇을 바라고 먼지 쌓인 다락에서 캔버스와 화구들을 꺼내왔는지 그도 잘 모른다. 분명한 것은 무엇을 그리든, 그리지 않는 것보다 못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무차별적 행동주의. 과도한 액션. 어쩌면 그런 것들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특히나 이런 시대에는 말이다. 그러나 남자는 자신의 리비도가 어디로 가버렸는지도 모른다. 추측조차 하지 못한다. 오늘 오후에도 젊은 피들은 서울 시내에서 횃불 혹은 촛불을 들고 거리를 행진했겠지. 아하, 그러니까 리비도란 이상주의자들의 전유물일지도 몰라. 그가 중얼거린다.
영혼에서 섹스를 도려내고 나면 사실 남는 것이 별로 없다.
내 나쁜 버릇은 나 자신을 계속 관측한다는 거야. 남자의 말이다. 그러니까 그 관측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계속 약에 취해있는 거고. 남자가 중얼거린다.
로보토미 수술을 받은 살바도르 달리가 불현 듯 떠오른다.
아마 면도도 하게 되겠지.
사회가 어째서 위험한 야생동물들을 보호하는 지에 대해 의문을 가져본 일이 있는가? 그 답은 사실 명백하다. 야생동물들을 그냥 방치했을 때, 그 결과 사회가 그들과 충돌하게 될 때, 그들은 반드시 송곳니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드러낸 적 없는 가장 날카롭고, 이미 그 자신의 피로 피범벅이 되어있는 송곳니를 말이다.
그러니 약물이란 양심을 교육받은 야생동물들이 선택하는 최후의 방법이다.
아무도 상처 입히지 않기.
야만적인 영혼을 환각 속으로 밀어 넣기.
남자는 거의 다 타들어간 대마 꽁초를 캔버스에 지져버린다. 까맣고 가끔 빨갛게 점멸하는 재가 캔버스의 흰 천에 짓뭉개진다. 손을 놓자 꽁초는 떨어지지도 않은 채 캔버스에 달라붙어있다. 남자는 극심한 피로를 느끼면서 의자에서 굴러 떨어지듯이 내려왔다. 그는 눈동자가 풀려있었고, 그의 눈에 비치는 것들은 전부 뿌옇게 흐려져 있었다.
과거는 너무 날카로워. 남자가 중얼거린다.
시야에 굴러다니는 환각들 사이로 어떤 영상들이 보인다. 교수와 평론가들 사이에서 그림을 그리는 남자의 젊었을 때의 모습.
플래시.
작업실에서 돌아오면 맞이해주던 여동생. 그녀는 웃고 있다.
플래시.
지네발 같은 환각의 가지들이 영상을 뒤덮는다. 붉은색에서 보라색으로, 보라색에서 주황색으로. 이건 질 나쁜 여행이야. 남자가 중얼거린다.
상패들로 가득한 거실에서 늦은 저녁밥을 먹는 남자와 그의 여동생. 그때는 창문으로 노을빛이 들어왔었다. 그러나 그 빛의 색깔이 더는 기억나지 않는다.
플래시.
플래시.
경적소리.
디젤엔진이 발명된 뒤로 모든 것이 다 너무나 빨라졌다. 인간의 죽음마저도 말이다. 옛날에는 침대에서 죽던 이들이 지금은 차도 위에서 곤죽이 되어 굴러다닌다.
로드 킬 당한 비둘기와 수많은 벌레들의 영상.
온몸의 뼈가 가루가 되어버린 고깃덩어리들. 우리는 먹지도 않을 짐승들의 죽음을 위해 매일 값비싼 기름 값을 내고 있다. 세금이 붙은 석유들.
짐승의 죽음과 인간의 죽음도 경계가 애매해져버렸어. 남자는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마구 엉클어뜨린다. 사람들이 비극이라고 부르는 것을 남들처럼 받아들이는 방법을 너무 오래 전에 잊어버렸다.
그는 세상을 다시 낳으려다가 낙태해버렸다.
산부에게 심각한 후유증이 발생했습니다.
예술이란 게 그런 거지.
남자는 바닥에 엎드린 채로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는 환각과 몽상 속으로 잠수했다. 과거들은 색이 바래 모노톤의 먼지더미처럼 어둠 한 구석에서 흔들거렸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은 것은 처음 각성제를 코로 흡입했을 때부터이다. 삶의 방향에 대해 고민하고 키를 돌리려 노력하는 것은 젊었을 때뿐이다. 모든 이들이 그렇다. 아마도 모든 이들이 그렇다. 이 시대는 더 이상 아무것도 창조하지 않는 시대이고, 나이를 먹은 소년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타성의 노예가 되어 살아간다. 아니,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삶을 <당하는> 것이다. 그런 사실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소수의 철학자들조차도 사실은 답을 갖고 있지 않다. 삶의 문제에 대한 답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미 오래 전에 죽은 작가와 예술가들이 유산으로 물려준 불만족을 입에 물고 손톱으로 벽을 긁어대며 미쳐가고 있다. 발광. 목적 없는 발광. 귀를 자르고 유화물감을 짜먹은 고흐처럼. 정신병원에서 자신의 대변을 먹어치운 니체처럼. 물론 그만큼 위대한 <광증>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우리는 발광하고 있다. 그리고 미치지 않는 방법은 미쳐버리는 것뿐이다. 미치지 않는 방법은 미쳐버리는 것뿐이다. 도파민 금단현상. 관측과 인지의 혼선. 세로토닌 결핍. 그러니까 남자는 고의적으로 광란하기 위해 약을 집어먹고 폐에 유독물질을 집어넣는다. 미치지 않는 방법.
어렴풋이 빗소리가 들려왔다. 장마가 시작되려는 모양이었다.
비는 이틀이 넘게 내리 내렸다. 남자는 층계에서 비가 내리는 것을 창문으로 관망하며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담배를 피우면 폐부가 찢어지는 것처럼 아팠다. 그러나 그는 담배를 끊지 않았다. 끊을 이유가 없었다. 육체의 고통이라는 것은 고마운 것이었다. 신체적 통증에 집중할 때면 사람은 모두 머릿속을 하얗게 비우게 되니까 말이다. 탐닉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다. 자기 자신으로부터 잠깐이나마 정신을 몰아내는 방법은 탐닉이다. 고통에 대한 탐닉, 약물에 대한 탐닉, 섹스에 대한 탐닉, 쾌락에 대한 탐닉. 구분하여 말하기는 했지만 사실 이것들은 모두 똑같은 괄호 안에 있다.
사람들이 퇴폐라고 부르는 것이, 정말은 어떤 의미일까?
<이건 내가 원하던 삶이 아니야>라고?
그럼 도대체 인생에게 무얼 기대했단 말인가?
인생은 우리의 삶에 멋대로 난입해 들어와 마구 도끼를 휘두르고 다닌다. 당신은 그의 도끼를 뺏거나 그와 싸울 수도 있지만…… 글쎄, 남자는 그저 길가에 앉아서 그가 행인들의 머리를 깨부수는 것을 구경할 뿐이었다. 더 이상 길에 나다니는 사람들이 없어지면 도끼는 자연스럽게 남자의 머리를 향할 것이다. 그냥 그뿐이다.
내가 살아있는 것이라면 나한테서도 피 정도는 나오겠지. 그는 중얼거렸다.
남자는 담배를 벽에 지져 끄고 계단을 내려와 집으로 들어갔다. 그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찬장과 서랍, 냉장고 등을 뒤지더니 작게 욕설을 뱉었다. 그리고 그는 전화기를 집어 들고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나야. 오늘도 집에 있나? 좋아. 십오 분 안에 그리로 가지.
그는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남자는 부엌으로 가더니 작은 과도를 꺼냈다. 그는 그것의 날을 왼손 엄지손가락에 세우더니 그대로 그어버렸다. 엄지손가락의 살은 하얗게 벌어지더니 금세 붉은 피를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남자는 부엌 바닥에 핏방울이 떨어지는 것을 한동안 쳐다보고 있었다. 붉은 피. 그러고 보니 남자는 여동생의 피를 한 번도 본적이 없었다. <살아있을 때 미리 봐둘 걸 그랬어.> 남자가 중얼거리면서 엄지손가락을 입으로 가져갔다.
치명적인 사건들은 항상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곳에서 일어난다.
우리는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모든 것에 대해 재난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그렇다면 우리는 탄생과 삶 또한 재난이라고 불러야만 한다.
철분의 맛이 났다.
에이즈처럼 정신병도 체액에 의해 전염되는 것이라면 좋을 텐데.
그렇다면 남자는 섹스를 사랑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싱크대의 수도를 틀어 피를 닦았다. 남자는 서랍장 쪽으로 가서 서랍을 열고 그 안에서 돈뭉치를 하나 꺼내 주머니에 쑤셔 넣은 뒤 현관으로 향했다. 현관에는 검은색 장우산이 하나 있었다. 그는 그것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건물계단을 내려가는 동안 밖에서는 계속 비가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가끔 창문을 보면 노란색 가로등 불빛이 빗줄기를 비추고 있었다. 이런 때면 도시는 가면을 벗고 자신의 진짜 얼굴을 드러낸다. 음침한 빛과 물줄기로 번들거리는 검은색의 이해할 수 없는 얼굴을 말이다. 이런 도시에서 살면서 미치지 말라는 것은 무리한 요구다. 도시 디자인 설계사들은 미치광이들을 양산하기 위해서 봉급을 받고 있다. 어디선가 또 어린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건물 밖으로 나와 우산을 펴자 우산 위로 빗방울들이 투덕거리며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거리는 비와 어둠 때문에 한적했고, 이런 공간에서 산책을 하려는 미치광이는 아무도 없었다. 남자는 한손으로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이며 걸었다. 가끔 헤드라이트를 켠 차들이 물을 튀기며 지나갔다. 조금만 더 가면 밤에도 네온사인들이 번쩍거리는 교차로가 나올 것이었다. 인간과 돈이 만들어낸 영원히 밤이 오지 않는 거리. 인공적인 빛들이 짤랑거리며 비추고 사람들은 알코올과 황금만능주의에 취해 비틀거리며 걸어 다니는 자본주의의 놀이동산. 그 뒤쪽에 남자가 향하는 곳이 있었다. 네온사인의 뒤쪽은 평범한 밤보다 훨씬 어둡다. 온갖 전기적인 소음이 쌓이는 그 뒷거리는 말하자면 사회적 쓰레기매립지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아무도 행복하지 않고, 행복을 추구하려는 어리석은 짓은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도덕 교과서에 쓰여 있는 행복추구권이라는 단어.
말하자면 민중의 아편.
사람들은 대부분 속는 것을 기뻐한다.
교차로로 나오자 점점이 우산을 쓴 사람들이 보였다. 차들은 계속 달리고 있었고,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엔진소리로 거리를 가득 매우고 있었다. 24시간 패스트푸드점과 술집, 세련된 재즈카페와 바(Bar)들. 달리는 자동차들이 흩뿌리고 지나가는 차가운 섬광들. 핸드폰의 불빛으로 자신의 얼굴을 비추며 걷는 이들과 술에 취해 콧노래를 부르는 중년 남자들. 그런 것들로 교차로는 번쩍이고 있었다. 우산을 쓰고 습기로 젖은 머리를 늘어트린 채 걷는 남자는 도시 속의 이방인, 아니 오히려 길을 잘못 든 짐승처럼 보였다. 집으로 가는 길을 잃어버린 야생동물.
자신의 굴이 어디인지 잊어버린 혈거짐승.
경찰들은 주로 그런 짐승을 잡아다가 새로운 굴속에 가둬넣는 일을 한다.
그들은 말한다. <우리들의 완벽한 세상을 어지럽히지 마.>
남자에게는 <그것>이 누구를 위한 완벽인지 의문을 제기할 의욕도 없었다. 그는 그저 횡단보도 앞에서 청신호를 기다렸다. 옆에서 함께 청신호를 기다리는 어떤 청년을 보고 남자는 갑자기 자신이 삼 주가 넘게 면도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의 집에는 면도칼이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면도칼을 사놓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에게 면도칼이 있을 때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지를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면도칼이라는 것은 말하자면 약에 취해있을 때 보는 문이 열린 베란다 같은 것이다. 그러나 면도칼이 위험한 것은 오히려 정신이 멀쩡할 때이다.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어둡고 칙칙한 방을 직시하게 될 때. 장판에 흩어진 대마초 꽁초들과 텅 빈 약봉지, 그리고 아무데나 써 갈긴 이해할 수 없는 문장들과 몇 년 째 청소하지 않은 자신의 집이 눈에 들어올 때. 그리고 더 이상 갈 수 있는 길이 없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될 때. 그때 면도칼은 제멋대로 빛나기 시작할 것이다.
부엌에 있는 칼들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것들은 충분히 날카롭지 못하기 때문에 동맥에 닿기 전에 힘줄에서 칼날이 걸려버린다. 끔찍한 고통은 느낄 수 있지만 해결책이 되지는 못한다.
사실 <해결책>이라는 단어는 경제학자들이 만들어낸 허구의 개념일지도 모른다.
청신호. 남자는 터덜터덜 건너편으로 걷기 시작한다. 차들은 멈추고 빗줄기가 도로 위에 떨어지며 파문을 만든다. 새까만 포도(鋪道) 위에 석유가 흐르는 것처럼 보인다. 분명히 어떤 인상파 화가의 그림에서 이런 장면을 보았던 것 같다. 남자는 그렇게 생각하며 흔들리는 눈동자로 거리를 훑어보았다. 새삼스럽지만 밤이었다.
빗물이 손가락의 베인 상처에 튀여 쓰라렸다. 우산의 어딘가가 새는 모양이라고 남자는 생각했다. 빗방울이 우산을 때리는 소리 때문에 남자의 정신은 점점 단조롭고 규칙적인 것으로 가라앉아갔다. 분명 여름밤의 습기 찬 공기의 냄새도 한몫 했을 것이다. 여름의 밤이라는 것은 절망과 굉장히 비슷한 냄새를 갖고 있다. 적어도 남자에게는 그랬다. 남자의 가장 오래된 기억 속에서, 다섯 살이나 되었을까 싶은 그는 여름밤의 끈적거리는 공기와 가로등의 노란색 빛 밑에서 혼자 울고 있었다. 더위가 밤의 서글픈 침묵을 더욱 농밀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남자의 부모가 승용차 안에서 덤프트럭에 밀려 다진 고기가 되었던 것도 여름이었던 것 같다.
확실하진 않지만, 기억이라는 게 다 그런 거지.
그 시절에 대한 생각을 하는 것도 굉장히 오랜만이라고 남자는 생각했다. 그러자 왠지 웃음이 나왔다. 어쩌면 이것도 니코틴 때문이겠지. 그가 중얼거렸다. 그는 횡단보도를 건너 사거리의 북서쪽 블록으로 들어갔다. 건물 사이의 샛길로 들어가자 네온사인과 가로등의 빛들은 등 뒤로 점점 멀어졌다. 그리고 발을 한 발짝씩 내딛을 때마다 어떤 형언하기 힘든, 썩은 음식물 쓰레기와 수많은 인간의 체취가 섞인 것 같은 냄새가 진하게 코를 찔렀다. 그는 거의 미끄러지듯이 점점 더 어둠 속으로, 어둠 속으로 들어갔다. 더 이상 가로등은 없었다. 담벼락 위에 덩치 크고 새까만 고양이가 비를 피하고 있었다. 그 짐승은 번뜩이는 눈동자로 남자를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나쓰메 소세키는 고양이가 철학적 자살을 맞이하는 소설을 썼었지.
그런 것이다. 지금 같은 시대에는 짐승들마저 인간에게 물들어 자살을 한다.
실종된 야만성에 대한 유감.
샛길을 계속 걷자 남자 앞에 갑자기 조금 트인 주차장이 나타났다. 주차장에는 가로등이 없었지만 그 공간을 사각으로 둘러싸고 있는 건물들에서 나오는 빛이 조명이 되어주고 있었다. 남자는 우산을 접고 주차장 한쪽에 있는, 어떤 건물로 이어진 비상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철제로 되어 난간조차 제대로 없는 그 계단은 걸음을 뗄 때마다 철커덩거리는 소리가 났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이런 위험천만한 계단에서 실수로 떨어지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사람들은 오히려 안전장치가 철저한 곳에서 주로 떨어져 죽는다.
생명에 대한 심리적 리액턴스.
쉽게 말해 자기 자신에 대한 반란. 여기서 혁명이라는 단어를 써도 되는 걸까?
어찌되었건 <자기 자신>이라는 개념은 조금만 고삐를 풀면 금세 <집단>, <사회>, <정부>, <국가>, <세계>까지 포함해버린다. 그만큼 우리들은 절대적으로 독자적이지 못하다. 그만큼 우리들은 <개인>이기 어렵다.
하지만 자신의 머리에 총구를 겨누고 방아쇠를 당기는 것만으로 <세계>를 파괴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게 된 것은 일종의 보상이다.
남자는 7층에서 멈췄다. 그는 건물 안쪽으로 비상구를 열고 들어갔다. 복도로 들어서자 노란색 형광등이 켜졌다. 그는 한손에 우산을 들고 터벅터벅 복도로 걸어 들어갔다. 704호. 남자는 철로 된 그 현관문을 두드렸다. 얼마 뒤에 누군가가 문을 열었다. 스포츠 컷에 턱수염을 기른 30대 중반 정도 되어 보이는, 어딘가 인상이 음탕해 보이는 남자였다. 그가 남자를 보고 말했다. “조금 늦었군.”
미안.
“들어와.” 그의 말에 남자는 따라 들어갔다. 그 집에서는 언제나 정액과 대마초 냄새가 났다. 은근히 병원의 소독약 냄새가 풍기기도 했다.
거실로 들어가 턱수염을 기른 남자는 소파에 주저앉았다. 남자는 그의 맞은편에 서서 주변을 힐끔거렸다. 안쪽의 불 꺼진 방에서 란제리 차림의 여자가 자고 있는 것이 어렴풋이 보였다. 어쩌면 란제리 차림의 남자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래, 찾는 게 뭐야?” 턱수염의 남자가 어느새 담배를 피우며 물어왔다.
코카인, LSD, 그리고 DMT. 양은 평소대로.
턱수염의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는가 싶더니 앉은 채로 소파 뒤에 있는 서랍장을 향해 손을 뻗었다.
아, 그리고 혹시 아편이나 모르핀 있나?
“아편은 있지만 모르핀은 없어. 모르핀은 구하려면 <약사>한테 가야지. 그것들은 왜?”
진통제로 쓰려고. 그것들 진통제잖아?
“그렇긴 하지.” 그가 비웃는 것처럼 말했다.
아편도 줘.
“대마는 필요 없나?”
아직 많이 남았어. 난 담배나 대마초는 집안에 쌓아놓고 피우니까.
남자의 말에 턱수염을 기른 남자는 끄덕이더니 서랍장에서 몇 개의 종이봉투를 꺼냈다. 그리고 그는 그것들을 숫자별로 정리하는가 싶더니 다탁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면서 남자에게 손을 내미는 것이었다. 남자는 호주머니에서 돈뭉치를 꺼내더니 그대로 건넸다. 턱수염의 남자는 갑자기 눈을 크게 뜨더니 건네받은 돈뭉치를 세기 시작했다.
“이봐, 이거 자네가 내야하는 값보다 30만원은 더 많아.”
그래? 몰라. 그냥 가져.
남자는 이미 종이봉투들을 까만색 비닐봉투에 담고 있었다. 그런 남자를 보면서 턱수염의 남자는 잠시 침묵하더니 말을 꺼냈다.
“도대체 자네 같은 다 죽어가는 젊은이가 어디서 이렇게 돈을 가져오는 거야?”
옛날에 일할 때 벌어둔 돈이야. 오래 전에 친척한테 맡겨놔서, 매달 조금씩 나눠서 받고 있어.
“일이라니? 무슨 일?”
글쎄.
그러면서 남자는 등 뒤를 향해 손을 살짝 흔들더니 우산과 비닐봉투를 챙겨 현관문을 나가버렸다. 턱수염의 남자는 현관문을 열고 나가는 그의 뒷모습을 쳐다보더니, 담배연기를 한 모금 삼키고 뿜어내며 재떨이에 꽁초를 지졌다.
남자는 비틀거리며 비상계단을 도로 내려가, 여전히 검은 고양이가 쳐다보는 샛길을 지나 교차로로 나왔다. 그리고 네온사인의 빛에 눈부셔하면서 횡단보도를 건너고 가로등이 점점이 켜진 골목을 지나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건물계단을 오르면서 지친 목소리로 John Denver의 <Take Me Home, Country Roads>의 가사를 중얼거렸다. 어느새 밖에서는 태양이 뜨려는 기색이 보였다. 그는 자신의 현관문 앞에 도착해 다소 서두르며 문을 열고 들어갔다. 집으로 들어가자마자 이미 오래 전부터 익숙해진 곰팡이와 허브의 냄새가 그를 반겼다. 남자는 우산을 현관에 세워두고 신발을 벗은 뒤 비닐봉투를 거실에 내려놓았다. 그는 세수를 하고 싶었다. 비오는 날의 습기 찬 공기 때문에 얼굴이 끈적거렸다.
하지만 화장실에는 거울이 있잖아. 남자가 중얼거렸다.
그는 비닐봉투 안에서 묵직한 종이봉투를 하나 꺼냈다. 그리고 그것을 들고 소파 앞에 있는 다탁으로 가져갔다. 종이봉투를 열자 비닐에 싸인 흰 가루들이 나타났다. 남자는 비닐을 열고 가루를 티스푼으로 한 스푼 정도를 퍼낸 뒤에 다탁 위에 쌓고, 스테인리스스틸로 된 책갈피로 그 가루들을 잘게 부수기 시작했다. 책갈피의 상하운동에 의해 마치 수음 할 때처럼 규칙적인 충돌음이 거실에 퍼졌다.
마스터베이션(Masturbation)은 <자신에게 유익한>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신체적으로 유익한. 정신적으로 유익한. 영혼에게 유익한.
영혼에게 유익한 일은 항상 몸에 나쁘다.
가루가 충분히 곱게 부서지자 남자는 그 부서진 가루들을 직선모양으로 모았다. 그리고 엄지로 한쪽 코를 막고 몸을 기울인 뒤 다른 한쪽 콧구멍으로 재빠르게 가루들을 흡입했다.
남자는 잠시 멍청하게 소파에 앉아있더니, 눈동자 주변의 근육을 경련하면서 소파 위로 몸을 눕혔다. 상념과 개념의 가시들이 남자의 뇌를 휘젓고 있었다.
그는 모든 것을 흙탕물 속에 처넣는 기분으로 눈을 감았다.
사고(思考)는 인간을 피폐하게 만든다. 고흐는 자신의 동생 테오에게 보내는 편지에 이렇게 썼다. 당시 프랑스에서 유행하고 있던 철학에 빠져들지 말라고. 그것은 너의 생명을 가져가버릴 것이라고. 그러나 인간은 사고하는 동물이다. 뇌가 곤죽이 되어버리기 전까지는 생각을 멈출 수 없다. 의도적으로 저능해지지 않으면, 모든 인간들은 정신이 이끄는 대로 정신분열증을 향해 길을 걷는다. 그리고 의도적으로 저능해지기 위해, 생각을 멈추기 위해 인간이 선택하는 것들.
술과 담배, 마약, 섹스. 짐승이 되기 위한 방법들.
남자는 방안에서 바닥에 웅크리고 있었다. 공격당하는 동물처럼, 몸을 둥글게 만 고양이처럼. 그는 엎드린 채 몸을 말고 있었다. 그는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그는 원망하고 있었다. 무엇을 원망해야할 지도 모르는 채로. 남자의 손에는 낡은 사진이 한 장 들려있었다. 그것은 다락에서 캔버스를 꺼낼 때 딸려 나와, 한동안 방바닥에 엎어져있던 것이었다.
남자는 아무 말도, 신음도 없이 웅크리고 있었다.
이럴 때 보통 사람들은 어떻게 하지?
빛바랜 사진 한 장이 그동안 지어왔던 무감각의 동굴을 뒤흔들어 버리려고 할 때.
건강한 사람들은 무엇으로 자신을 지킬까?
남자는 자신이 마지막으로 울었던 것이 언제인지도 기억나지 않았다. 그는 중얼거렸다. <이제 그만 쉬게 해줘.> 그는 손에서 떨어트리듯이 사진을 놓아버리고, 느릿느릿 거실로 기어나갔다. 그는 부엌 서랍에서 주사기와 노란 고무 끈을 꺼냈다. 거실에는 전에 외출했을 때 들고 온 비닐봉투가 그대로 있었다. 남자는 그것을 뒤적거리더니 아무 라벨도 붙어있지 않은 작은 유리병을 하나 꺼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왼쪽 팔뚝에 손과 이빨을 사용해 어설프게 고무 끈을 묶고, 유리병의 뚜껑에 주사기를 찔렀다.
투명한 액체가 주사기 속으로 빨려 올라왔다.
<구원>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남자는 유리병 안에 있던 액체를 전부 주사기로 뽑아낸 뒤에 왼쪽 팔을 펼쳤다. 끈으로 팔뚝을 묶어둔 덕분에 팔꿈치 안쪽의 혈관이 툭 불거져 나와 있었다. 그는 수전증의 증세가 보이는 손으로 주사기의 바늘을 혈관에 찔렀다. 바늘이 피부를 뚫고 들어갈 때의 통증에 마음이 편해졌다.
가톨릭 수도사들이 채찍으로 자신의 등을 때리는 장면.
남자는 주사기의 뒷부분을 눌러 천천히 그 액체를 혈관 속으로 흘려 넣었다.
머릿속이 투명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이제 곧 혼돈의 모습을 한 안식이 찾아올 것이었다. 감각들이 서로 뒤섞이고, 생각은 흩어지며, 생명도 모습을 감추는 시간이 말이다. 그렇게 되면 그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닌, 뒤엉킨 감각의 덩어리가 되어버린다. 마치 기름에 불을 붙이는 것처럼, 그저 타오르고 꺼지는 불꽃같은 현상이 말이다. 그리고 파란 장미와 붉은 백합들이 눈앞에 피었다.
그는 무의식중에 팔뚝의 고무 끈을 풀었다.
남자는 눈물을 흘렸다. 자신이 눈물을 흘린다는 것을 인지하지도 못한 채로. 그리고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는 감격하고 있었다. 무엇에 대한 감격인지는 그도 몰랐다. 그는 그저 눈에서 눈물을 쏟아내며 자신의 영혼이 비워져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시야가 흔들리고 목이 탔다. 남자는 비척거리며 방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여태 대마초 꽁초가 들러붙어있는 하얀 캔버스가 방치되어있었다. 남자는 자조적으로 웃으면서 연필을 하나 들어 캔버스 밑에 무어라고 문자를 적었다.
그는 중얼거렸다. 종말이 올 때까지 빌어먹을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이 세계를 지배하기를.
그는 자신이 무엇을 하는 지도 모르면서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빛을.
남자는 웅얼거렸다. 그는 어둠 속에서 계단을 내려갔다. 몇 번이나 계단에서 구를 뻔했지만 넘어지기 직전에 난간을 잡을 수 있었다. 그는 거리로 나왔다. 한밤중의 가랑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빛을. 남자가 쥐어 짜내듯이 말했다.
언제나 밤과 비밖에 없는 내륙지방에서 빛을 갈구하는 혈거짐승.
시야 한편에 아파트 단지 사이에서 불쑥 솟은 굴뚝이 보였다. 그것은 붉은색과 흰색 페인트로 칠해져있었다. 남자는 그것을 보면서도 눈물을 흘렸다. 이미 오래 전에 잊어버린 온기라는 단어가 눈앞에 어른거렸다. 도시 한복판에 치솟은 굴뚝.
불. 인간 문명의 시발점.
인간으로서의 생활을 보증하는 도시의 남근.
빛을. 남자는 비틀거리면서 거리를 걸었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점점 밝은 곳으로 향하려고 하고 있었다. 그의 발과 다리는 더 이상 <그>의 것이 아니라, 그의 <영혼>의 것이 되어있었다. 그는 걷고 또 걸었다. 비틀거리면서, 몇 번이나 울타리와 담장에 몸을 부딪치면서 말이다. 가로등들이 번뜩거렸다. 노란 빛이 남자의 시야에 환각적으로 내려앉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외쳤다. 아니야. 그는 계속 걸었다. 이런 빛이 아니야.
왜 이 도시는 항상 밤일까.
그러나 태양도 오래전에 식어버렸다.
남자는 밝은 곳으로 걸었다. 형형색색의 빛들이 눈앞에서 뛰놀았다. 그러나 그것들은 빛이 아니었다. 그것들은 빛이 아닐 터였다. 남자는 걸었다. 교차로가 나올 때까지. 가랑비는 그의 옷과 머리를 천천히 적셨다. 타는 듯이 목이 말랐다. 그러나 아무 것도 마시고 싶지 않았다. 교차로로 나오자 폭력적인 소음들이 남자의 귀로 밀어닥쳤다. 약에 취해있을 때는 유난히 소리들에 대해 더 민감하게 되고, 심지어는 청각이 시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남자는 어지러웠고 쓰러질 것 같았다. 자동차들이 마구 내달렸다. 그러나 그는 쓰러지지 않고 비척거리면서, 혼자서 외쳤다. 빛을. 그는 이제 영혼의 외침에 취해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거리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좀 더 빛을.
식어버린 태양보다도 더 강렬한 빛을 다오.
내 썩어가는 영혼까지 재도 남기지 않고 불태울 소름끼치는 하얀 빛을.
그때 경적소리가 들리더니, 남자의 눈앞에 난생 처음 보는 섬광이 번뜩거렸고, 그 뒤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미지근하게 식은 눈물이 한 방울 포도(鋪道)에 떨어졌다.
그것은 금세 빗줄기에 쓸려가고 말았다.
장례식이 치러졌고 신문에도 기사가 실렸다. 물론 뉴스에서도 남자의 이름을 볼 수 있었다. 수 년 전에 잠적해 지금까지 소식이 없던 젊은 천재화가가 변사체로 발견. 경찰은 그가 사망당시 환각제를 투여한 상태였고, 가택에서는 대량의 각성제와 환각제, 그리고 아편과 대마초 따위를 발견했다고 보고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뉴스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비평가들에게도 수익이 있었다. 그들은 남자의 방에서 대마초 꽁초가 지져진 캔버스를 하나 발견했다. 그들은 포스트모더니즘 적 예술론에 입각해 그것을 작품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그들은 꽁초가 캔버스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보존액을 뿌려 미술회관으로 가져왔다. 그 뒤에 그 <그림>을 사겠다는 사람들이 잇따라 등장해, 결국에는 경매에 붙여 그 캔버스를 팔아치웠다. 돈은 화가의 유일한 유족인 그의 고모와 몇 명의 미술평론가에게로 돌아갔다.
그 <캔버스>는 정말 말도 안 될 정도의, 엄청난 가격으로 팔렸다.
그들은 그 <작품>의 이름에 대해 다소 고민했지만, 이내 캔버스 아래쪽에 흔들리는 필체로 쓰인 문자들을 발견했다. 그래서 그들은 그 문장을 그대로 타이틀로 붙였다.
타이틀.
<나, 너, 그리고 우리.>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