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정육점에 갈 때 울지 않는다


슬픈 냄새들은 언제나 슬프다.
왜 슬픈지도
모르겠다. 그 냄새가 어디에서 왔고
나는 무엇을 추억하고
누가 슬퍼하는 것인지
나는 모르겠다 젠장할 담배연기와
추운 가을 밤.

눈물을 잃어버렸을 때 슬픔은 더 슬프다
배설되지 못한 감정은
막힌 눈물샘으로부터 30cm 정도 밑에 있는
인간성 어딘가에 쌓이다가 결석이 되어
결국에는 아무도 진단
하지 못하는 질환이 된다……감상주의자들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들은 심장이 없으니까.

그 슬픔이라는 것은 어디서 풍기는 냄새인지
가끔은 내 손목뼈 부근에서 피처럼 솟고
가끔은 식당에 들어갈 때 날 멈추게 만들고
가끔은 곰팡이 속에 핀 곰팡이처럼 이불 속에
내린다. 그러나 지하(地下)에서 살 때에는
항상 영혼이 깎여나가 있었기 때문에 눈치 채지 못했다.

그 냄새는 심지어 술에 취해 있을 때조차도
어딘가에서 날 쫓아와 내 술을 죄 도로 가져가버린다. 지랄
같은 것들……그럴 때면 열 살 무렵 내 이마에
성유를 찍었던 신부님에게 찾아가 따지고 싶다.
도망자들이 왜 성당으로 숨어드는지 압니까? 그것은
하느님의 옷자락에는 추억할만한 것이
아무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시발.

생각해보니 난 세례명도 없다.

그런데 너무 오랫동안 괴로워하면
슬픔도 발작을 합니다. 라고 내가 검지와
중지를 들어 올리면서, 거울 앞에 서서 설명했다.
눈물을 기억할 때에는 울고 싶어지고 그리고
운 좋은 사람들은 울게 되지만
슬픔에서 고통으로 직통 열차가 달리게 되면
그리고 너무 오래 달려서
철로마저 습관이 되어 버릇이 되어 반질반질하게
알루미늄 같은 광택을 내면.

우리는 광란한다.
광란한다 우리는. 슬픔이 원래 어떤 색이었는지
점점 기억나지 않고 손목에서는 신선한
샘물처럼 신선한 피가 퐁퐁 솟아나고 상처는 닫히고
손에는 망치와 톱. 당신이 코뮤니스트이든 아니든
우리에게는 상관할 바가 못 된다.
괴로움이 광기의 춤이 되고 외로움이
콘크리트 사이를 메아리치는 웃음소리가 되고

<숲의 화재는 광기다>라고 말한
내 첫 번째 시인, 그 사람이
불붙은 사방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는 암소고기>를
내밀 것이다.

이제는 슬픔을 맡으면
슬픔이 목에 턱 막혀
미처 슬퍼하기도 전에 피 냄새가 난다.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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