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
나는 세계를 바꾸고 싶었지
아둔함과 오만이라는
구정물이 역류하는 이 도시를
하아얀 사막으로 바꾸듯이.
나는 언어에 탐닉했다네
인류의 정신을 체계화하고
더 나아가 기호화하는
그것이야말로 아름다움을
아무런 정치적 의도도 없이
단 한 번의 정치적인 멋진 필체로
새겨 넣을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
아, 그래, 세계를 바꾸고 싶다는 건
정치적인 것이었어. 아무리 내가
캄캄하고 사람의 손길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없는
어두운 오지로 달아난다고 하더라도
그래, 어느 나라의 정치인이
연단 위에서 어느 위대한 고전문학을 낭독할 때
내 혀가 불타 사라지고 재가 되는 것을 느꼈어.
내 피는 얼어붙어버렸지.
나는 두려워졌어.
단 한 번도
작가가 절필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어.
작가의 절필이라니! 도대체
그게 무슨 의미람? 그것이 가능하기나 한 것인가?
왜냐하면 응당 작가에게 글과 펜대란
그의 초월적으로 무겁고 불안정한 세계를 지탱하는
유일한 것일 텐데!
그런데 모든 텍스트가 불태워지고
말초신경만이 작동하는 끈적거리는 도시의 광경이 눈에 들어오자
내 심장은 덜컥 내려앉아버렸어.
나는 종말을 보았어. 사실은 그곳에서 살고 있지.
나는 엔트로피 수치가 한계에 다다른 우주에
비겁하게 자리 잡은 문명을 보았어.
근대는 갔어. 르네상스도 갔지. 중세도 갔어.
공산주의도 갔어. 자본주의도 갔어. 신자유주의도 갔어.
왕정도 가고. 공화제도 가고. 사회주의도 가고. 민주주의도 갔어.
이제 가지 않은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어.
우리는 문턱에 걸쳐 드러누운 시체처럼
모든 영혼의 끝을 보고 있어.
나는 세계를 바꾸고 싶었지.
그것도 나의 피로.
그 유명한 랭보가 펜을 놓았을 때
그는 한숨도 쉬지 않았겠지.
영속되는 비참은 비참이 아니니까.
아르튀르
랭보
세계에게 절필을 선언하다.
외다리로 죽다.
맙소사, 공포가 통증이 되려고 해……
연단의 그 정치인은 도대체 뭘 기대한 걸까.
뭐가 됐든, 내 목이 잘리는 것을 나는 느꼈지
사방이 완충제로 만들어진 독방에서
끊임없이 키가 자라는 것 같아.
끊임없이. 3미터. 5미터. 10미터. 벽에 머릴 박아도
박아도 붉은 물은 나오지 않고.
우리는 우리의 손톱이
공허를 긁고 있다는 걸 깨달았지
나는 이 신음소리에
온점을 찍지도 못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