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의 너머는 다시 지평선
글/시 2015. 11. 16. 08:15 |지평선의 너머는 다시 지평선
나는 공공연한 마약밀매상과 같았다. 나와 조금이라도 손끝이 닿았던 이들은 모두 내게서 값도 치루지 않고 비참을 사갔다. 그러나 나는 잃을 것이 없었노라. 그들이 사간 비참은 모두 나의 커다란 광기와 비참이 교미하여 만들어낸 복제품들이었으니. 내가 뱃속에서 키우는 벌레들이 남의 입으로 옮겨가는 것처럼, 비참은 나의 길고 음탕한 혀를 타고 돌아다녔다.
꿈과 현실이 겹쳐 보이고 밤마다 내 눈앞에 목이 잘린 나체의 여자가 나타날 때부터, 나는 나의 선조들에 대해 추측해보았다. 그들도 밤에 활개치고 다니는 끔찍한 환각을 보았을까? 아, 나는 일그러지고 무너진다. 도시의 한복판에 있다는 것은 온 도시가 내 머리를 짓누르는 것과 같다. 짤랑이는 죄악의 은화들과 온 거리를 핥고 다니는 네온의 빛들, 나는 저주한다! 세 번이고 네 번이고 저주한다. 그러나 저주한다고 해서 무얼? 나는 결국 걸쭉한 액체로 변해 하수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말 것이다. 어머니, 어머니. 나는 정말로 어머니가 갖고 싶었다. 그런데 어떤 어머니였지? 아 그래, 내가 갖고 싶었던 것은 어머니가 아니라 숲의 마녀였어. 아직도 애니미즘의 입김으로 나뭇잎들이 흔들리는 늙은 숲의 마녀. 내 지네 같은 혈액으로 말미암아 생각하건데 나의 선조들은 모두 두개골 속에 딱딱한 벌레들을 키우고 있었음에 틀림이 없다.
내가 고뇌에 빠지게 놔둬라! 내 삶은 이미 고뇌로 인해 구겨진 쓰레기 뭉치와 같다. 내 오만을 섣불리 판단하지 마시기를! 나의 시간은 압축되었다. 나는 끝에서 끝으로 끊임없이 오고 갔다. 물론 깨달은 것도 있었다. 이성이 사람의 목을 벤다는 것을 비롯한 독약 같은 진실들을. 나는 아무것도 그러쥐지 않았다-나는 내 손을 부정했다. 비대한 정신은 사회에게 부정당했다. 백석 시인은 지는 것이 아니라고 했지만, 아무려면 어떠리. 그냥 내버려 두어라! 내가 스스로 만든 고통에 왜곡되고 사리분별도 못하는 미치광이가 되어, 익사하도록 내버려 두어라! 나는 결단코 구원을 바라지 않으리라. 차라리 고통이 내게 편안한 것을. 세상에 산재하는 적들은 내가 나의 손으로 만든 적들보다 훨씬 약하며 머릿수도 적다. 그런데 왜 나의 부정당한 손은 바깥으로 뻗고야 마는지? 그리고 왜 사람들은 동정으로 나의 손을 움켜쥐었다가 재가 되어 내 아가리 안으로 떨어지고야 마는지?
날붙이들이 내 귀 안으로 쑤시고 들어올 때 나는 식인종이 되었다. 그것은 증오 없이도 사람을 잡아먹는다. 분노 같은 것은 내 몸과 함께 늙어버렸고, 나는 습관적으로 사람들의 살을 주워 먹었다. 이제 나는 그대들을 증오하고 싶어도 증오하지 못한다. 반복컨대, 나의 시간은 압축되었다! 분노의 함성과 붉은 깃발들이 나부끼는 거리를 보아도 내 눈동자는 피로의 핏발이 선 채로 공허만을 본다. 아아! 나는 당신들을 용서한 것도 아닌데……. 사회라는 이상한 개념은 내 속에서 범주를 잃어버렸다. 소리치지 말라! 아직 아물지 않았다. 아니, 아직이라니? 절대로 아물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아물지 않은 것들밖에는 없다.
나, 나, 나! 제발 그만! 부디 철두철미한 정신을!
그렇다. 내가 경외한 것들은 그런 강철 같은 우상들이 아니었던가? 우습지도 않은 일! 나는 피가 줄줄 쏟아지는 가죽부대가 되고 말았다. 전염병이 되고 말았다. 독벌레가 되고 말았다. 대양의 무게에 무너져가는 심해어가 되고 말았다. 자기연민이 없을 때 자기 자신은 더욱 연민스러운 꼴을 보인다! 젠장, 아무도 없는 전방을 향하여 건배! 건배! 또 한 잔의 술을! 이글이글 불타오르는 독주를! 그러나 아무리 마셔도 나는 목이 말라 죽을 지경이고, 저주 받은 몸은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 않는다. 심지어 해머로 내 머리를 갈겨도 나는 또렷하게 사고하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왜곡과 분열에 대한 사고를, 그 끔찍한, 답이 없는 수식을 나는 이성으로 풀고 있을 것이다. 어라, 그렇다면 나는 미친 것이 아닌가. 그런데 나의 광기는 왜 이리도 명증한가? 모든 것에 그림자가 질 때 사물의 본질은 더욱 분명해진다. 내 시선은 분명하다. 나는 나의 광기 속에서 필사적인 이성으로 광기를 계산한다. 내 육신에는 이미 경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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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차가워진 바람이 내 옷깃을 스칠 때마다 나는 경련한다. 나는 갈대밭에 쓰러지는 환각을 느낀다. 태양을 품어 냉랭한 갈댓잎들은 내 손과 얼굴에 온화한 상처를 새긴다. 그러나 눈을 감았다 뜨고, 손을 짚어 일어나보면 시멘트와 콘크리트, 도시 사람들이 털어낸 담뱃재뿐. 나는 너무도 저주하다보니 이제 명확히 무엇을 저주하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저 죽은 나무 옆에 앉아 담배나 한 대 태우고 싶을 뿐인데, 이곳에서는 풀 냄새는커녕 피 냄새도 나지 않는다. 분명 이 도시 사람들은 벽돌과 철을 먹으며 살겠지. 나는 그들을 이해할 수 없다. 단 한 번도 이해해본 역사가 없다. 나는 눈의 자유를 뺏겼다. 태양이 보고 싶어 죽겠다. 이 땅의 동쪽에서 떠오르는 것은 기계장치로 된 발광패널이다. 나는 진실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것은 내가 왜 더 이상 교미할 수 없는가에 대한 훌륭한 근거이다. 리비도는 인간에게나 있는 것이다.
에로스를 잃으면 죽음의 환영이 펼쳐진다. 피부 위로 드러난 뼈, 연기 색깔 가죽, 벌린 입 속의 잘린 혀…… 기타 등등. 나는 아침에 눈을 뜨는 일이 없다. 나에겐 아침조차 없다. 쾌락은 색깔을 잃어버리고 퇴폐 속에 침잠한다. 모든 것이 흑백사진으로 보이는 방 안에서 나는 춤을 출 기력도 잃었다. 내 혈관 속에 진짜 피가 돌았던 시절을 기억하는데, 그 기억에도 희뿌옇게 안개가 끼고 말았다. 젊음이여. 젊음이여. 젊음이여. 나의 시간은 압축되었다.
여인들을 볼 때 내 손에는 항상 나이프가 쥐여있다. 나는 약리학의 법칙에 따라 가죽과 고기로 된 남근을 잃어버리고 강철 날붙이와 가죽이 둘러진 손잡이로 된 남근을 쥐고 있다.
진리는 병자들에게 있다!
오, 나는 진리를 이야기했다. 혼돈! 무목적의 아나키즘, 분열된 사고, 왜곡된 감각, 무슨 수를 써도 부정할 수 없는 궤변, ism을 철저히 짓밟아 죽이는 Anti-ism! 세계는 전진한다! 앞으로 갓! 아무런 근거도 없이-앞으로, 갓! 모든 모럴은 절멸하리라.
그래, 증오의 시계가 한 바퀴 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