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게 며칠 꽤 헤매다
기록/생각 2025. 6. 17. 12:43 |요새 니 글을 보면 뭘 위해 쓰는지 모르겠어,
이런 얘기 듣고 한참 생각하다 수렁에 빠지고 헤매고 우왕좌왕하다 또 생각해보니까
깊이에의 강요 이야기랑 똑같네.
요새 니 글을 보면 뭘 위해 쓰는지 모르겠어,
이런 얘기 듣고 한참 생각하다 수렁에 빠지고 헤매고 우왕좌왕하다 또 생각해보니까
깊이에의 강요 이야기랑 똑같네.
유월 하늘은 파랗고 공기는 끈적이고 나는 그냥 여기 이렇게 욕이나 먹다가
그 친구는 늘 그랬다 얼굴만 보면
씨발놈 일 좀 하라고
시발
돌이켜보면 수도 없는 근로계약서니
알바니 계약직이니 정직원이니
면접관의 호의니 시비니
상사의
창고에서 마주한 상사의
움츠러든 어깨와
울며
외치고 발광하는 나와
아아,
첫 출근날 면도도 안 한
밍준씨, 밍준씨는
어찌 그렇게 의도 없이 개차반이고
성실하게 욕먹는, 환자였는지
과거로 눈만 돌리면
나오는 건 욕뿐이라서
옷가게 호객하라고 세워다 놨더니
오로지 나는 작가요
샌드위치 싸라고 봉급 줘도
그저 나는 환자요
아주
끔찍하도록
성실하게
일하고
어긋나고
쫓겨나고,
다 때려치우고 방구석에
구겨져 있으면
시공간을 넘어서라도 씨발, 하고 욕부터 씹으며
일 좀 하라고
외쳐오는
이런 친구가 또 어디 있나
개시키.
그래.
앞날이 구만리라서
행복과 불행과 조건
허섭스레기들 두들기다
소나기 그친 여름 하늘에
원망 좀 뱉다가
뭐라도 좀
해야겠는데
앞날이
텅 비어 창연한
구만리라서.
뭐든지
할 수 있어서, 우리는
승리하는
수밖에
없어서.
순사와 순경과 경찰과 공무원과 그리고 사람과
순사.
주변에 순사도 없으니 상관없지 않느냐고 큰아버지가 말했다. 그 말에 아버지는 어린아이처럼 웃으면서 “순사!”하고 외쳤고, 큰아버지의 팔을 감고 같이 걸었다. 큰아버지는 여전히 담배를 피우며 걸었다. 그는 어린 동생에게 하듯 껄껄 웃었다. 둘 모두 취했고, 머리가 하얗게 센 영감님들이었다. 나는 뒤에서 그들을 바라보았다. 기억에 따르면 작년 추석에 있었던 일이다.
‘나는 도무지 순경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문장이 오늘 느닷없이 떠올랐다. 책장을 뒤져보니 그것은 <이방인>의 뫼르소가 한 말이었다. 우연히 마주칠 때마다 불쾌한 눈빛으로 나를 주시하는 경찰이며 구청 단속반 따위가 생각났다. 내 기억으로, 나는 그들에게 인간으로서 잘못을 저지른 일이 단 한 번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내게, 입은 열지 않지만 줄기차게 거북한 태도를 취하는 것이다. 기분 같아서는 멱살이라도 잡아 도대체 무슨 악감정이냐고 캐묻고 싶지만, 공권력을 뒷배로 둔 놈들과 문제를 일으켜봤자 하등 도움 될 일이 없다. 게다가 생각해보면 어느 친구가 ‘그것들은 조금이라도 비일상적인 사람을 찾아 주시하라고 월급을 받는 사람들’이라고 말한 적도 있는 것이다. 거기에 진압봉 따위도 들고 다니니…….
그래, 누구든 먹고는 살아야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여전히 마주치기 싫은 인종들이다.
아마 오 년이나 육 년 전에, 나는 친구와 거나하게 마시고 캄캄한 새벽 골목을 걷고 있었다. 친구의 집에서 더 마실 계획이었다. 그런데 나는 골목 안쪽 가장 어두운 구석에, 사람 하나가 쓰러진 듯 주저앉아있는 것을 발견했다. 아주 만취한 것 같은 중년 사내였고, 얼굴이 가려 보이지 않는데도 이상하게 서글퍼 보였다. 계절은 한겨울이었다. 다가가 아저씨하고 부르며 상태를 확인했고, 조금 뒤에 친구가 경찰에 신고를 했다. 남자는 깨어나더니 입을 열었는데, 이미 얼굴이 눈물범벅이었음에도 계속 울고 있었다. 20분이 넘도록, 습관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하며, 맥락 없는 하소연을 힘겹게 늘어놓았다. 거의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였으나 그가 슬픔과 좌절과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나는 괜찮을 거라고, 무책임한 위로를 했다. 달리 할 수 있는 말도 없었다. 그래도 그는 울며, 나에게 연신 고맙다고 했다.
경찰차는 20분이나 걸려 도착했다. 경찰 둘이 내렸다. 하나는 젊었고 하나는 50대 초반 즈음으로 보였다. 젊은 경찰이 취객을 일으키는 사이 나는 중늙은이 쪽에 말을 걸었다.
저분이 많이 슬퍼 보이니 잘 부탁드립니다.
그건 저희가 할 일이 아니고, 우린 맡은 일만 하는 겁니다.
순간 나는 그 자식 혀뿌리를 뽑아버리고 싶었다. 품에 뭐라도 있었으면 저 귀찮고 성가시다는 얼굴 한복판에 박아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태울 사람 태우고 출발하려는 참이었다. 그따위 것들에게 사람 하나를 넘겨주었다는 사실 때문에 분노와 죄악감이 용암처럼 혈관을 돌았다. 그러나 차는 이미 떠나가고 있었다.
민중의 지팡이.
그 외에도 경찰 내지는 짭새라 불리는 인간들과의 불쾌한 경험은 하나하나 헤아릴 수도 없을 정도다. 군인이나 치안유지·사회정의 명목으로 움직이며 월급 타는 것들도 포함해서 말이다. 그러나 이야기를 전부 늘어놓아봤자 별 의미도 없다.
그런데 재작년 즈음에 나는 동갑내기 친구 한 명을 사귀었다. 그의 인상은 순박하고 선했으며, 내가 진행했던 작품이나 업무에도 성심성의껏 도움을 주었다. 무엇보다 그도 나에게 친구로서 호의를 가진 것처럼 느껴졌다. 그의 직업이 경찰이라는 것은 나중에야 안 사실이다. 나는 순간 당황스러웠으며, 조금 과장하자면 적지에 서 있는 기분마저 들었다. 그러나 나는 이미 그가 좋은 친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경험을 숨기거나 에둘러 말해야 한다는 생각도 없이, 그간 겪어온 경찰에 대한 좋지 못한 경험이나 내가 경찰을 싫어한다는 이야기를 하나하나 천천히, 그러나 거의 모조리 털어놓았다. 그러자 그는 웃으면서 자기도 ‘경찰’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과 함께, 이런 이야기도 덧붙였다. 자신의 아버지도 경찰이었는데, ‘경찰이란 것들은 믿을 게 못 된다’고 말씀하셨노라고 말이다.
나는 소리 내 웃었다. 그도 웃었다. 웃는데 거리낄 것은 없었다. 그 자리에는 순사가 없었으니 말이다.
결국, 그 누구의 세상살이도 변한 것은 없지만 아직까지도 나는 웃고 다닌다. 순사들과 같은 길에는 여전히 서지 않는다. 그들이 등불 비추지 않는 어두운 길에선 지금도 사람들의 얼굴이 더욱 또렷하게 보인다.
결말이 맹탕이야.
전에는 안 그랬었는데 말이야
1.
그때는
요기처럼 몸을 뒤튼 채
장판 바닥에서 책을 읽어도
관절이며 근육, 뼈가
고함치는 건
마지막 장을 덮고서야 알았다니까
자판에 빨려 들어갈 것처럼
구부정하게 의자 위 앉아
다섯 시간이고 일곱 시간이고
지칠 줄도 모르고
아무리 담배 연기를
허파에 우겨 넣어도
기침 한 번 하는 일 없이
독무 속에서만 숨을 쉬어도
불편마저 없었고
밤길에 검은 고양이를 만나면
생명이 아니라
포우가 보이는
그런
덧붙여,
술집에서 시비 붙어 흠씬
두들겨 맞아도
고장 난 장난감처럼 깔깔깔깔
깔깔
웃기만 하는
그런 거
였는데.
전에는
안 그랬다니까
2.
순간마다 뼈연골근육심장뇌수가
비명 지르며 의식의 멱살을 잡아
모조리
멈추고
이백만 원짜리 의자 성능
떠드는 소리에
귀가 솔깃하고, 그래도 옛적처럼
지갑은 비었고,
요샌 숨소리에서도
잡음이 나, 목소리가 둘로
갈라지기도 하고
오늘은 검은 고양이가 아니라 새까만
새끼 너구리를 봤어
그놈이
잘 살았으면 싶더만
술은,
무서우니
이제 됐고.
누군가는 내가 온화해졌다 하는데 사실은
바닥없이 지쳤어.
너무 가속해
쇠했어.
3.
더는 만날 일도 없는 바텐더들
저게 누구냐고 하겠네, 저
인형 같이 미소지으며
논알콜 맥주 시켜놓은
저 손님 말이야
사실,
나도 이게
누군지는 모르겠는데,
누군들 알겠어……
그래도 창밖의 밤은 또 들여다보네
어제처럼
엊그제처럼
십오 년 전처럼.
뭐, 이러나, 저러나, 아직도, 자발적으로, 입에
담배 따위 물고 있으니
여러모로 실망은 안 시킬 거야
당신도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쇠락한 몸과 더불어
사실은 여기
그대로라서,
이 동네는 대낮에 태양에게 떠드는 놈들과
새벽 세 시에 불 켜진 창문들도
무진장이라.
물살 흐르는대로 털퍼덕
거리며 몸을 굴려, 이렇게까지
왔어도
장마 오는 계절
언덕에서 쏟아지는 빗물 헤치며
침수된 지하실로 귀가하는
꼬맹이도,
반갑게도,
여기 그대로라서.
예전엔
이러지는 않았는데 말이야.
전혀 변하지 않은 점은 습관처럼 나락 너머로 걸어가는 발걸음이며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은 빛이든 어둠이든 삶이 찬란하게 빛나기도 한다는 것
여러가지 일들이 피륙처럼 얽혀 짜여져나가는 중에도
변화는 얼떨떨하게 습에 제동을 걸며
그럼에도 관성처럼 끌려나가는 저 끝에서의 파열과 불길함을 나는 이미 보고 있다.
가장 신기한 부분은
끝이 좋든 좋지 않든 그다지 개의치도 않고
전진하는 원동력이 무책임인지 믿음인지 알 것도 없이 내딛는 나 자신이다.
기왕 얽어나가는 현재
어디까지 가는지는 딛어봐야지.
종말이 보이든 재탄생이 보이든
클라이막스와 종언을 봐두긴 해야지.
널려있는 망념 속에 단 한마디의 구원이라도 있으면
어제는 끔찍했습니다. 그리 좋은 날은 아니었노라고 쓸 수도 있었겠으나, 결코 그러지는 못하겠습니다. 멈추지 않는 불면과 부서진 우정을 동시에 겪는 것이 ‘그리 좋은 일은 아니’라고 쓰지는 않겠습니다. 숙면은 점점 더 멀어졌습니다. 그리운 이는 갈수록 그리워졌습니다. 가슴에 뚫린 바람구멍에 바람이 본분처럼 난도질을 하는데, 오래 잠들지 못한 의식이 상처를 모자이크로 가려놓은 피고름처럼 여겨, 더더욱 나는 혼란해 아파했습니다.
진심은 왜곡되는 법입니까?
씁쓸한 맛이 방안의 책만큼 쌓이고 별안간 요조의 호리키마저 떠올랐으나 오랜 친구에게 그런 연상을 하지는 않겠다고 나는 펜을 고쳐 쥐었다고쳐 쥐고 같은 문장을 남겨두었다.
그러나 밤은 어떤 위로도 하지 않는다
잠 못 드는 이의 눈꺼풀 속엔 잡념이 빛나며 형이상학을 그리고
눈을 뜨면 밤은 결코 어둡지 않다
구멍을 중심으로 우그러드는 폐부에
사랑을 외치고 시간을 외치다
걸신들려 활자에게로 투신하고 만다
거꾸로 잉크 속에 처박히는 내내
사람들은 잠들어 있다.
동터오는
밤낮없는 마을
새빨간 눈, 앞
책더미에
선물 받은 말마디 하나
충분하다, 고
그래
그러니까
충분
하다고.
시인의 의무가 개폼 잡는 것 말고 또 뭐가 있다고
형식이 내면에서 필요를 잃고
그 누구를 위하지도 못해
녹아버린 후
가끔 이런 말도 듣긴 했다
그렇게 시 잘 쓰던 사람이
왜 욕지거리 집어넣으면서 멋을 부려
아
옘병할,
생각하니까 또 욕 나오는데
뭐
중요한 건 이게 아니고.
담배 쥐고 나간 어젯밤의 어둠에는
늘어진 검은 실처럼 이상한
본 적 없는 선이
허공에
머리 위에서 바람 따라 흔들리고 있었고
잘 보니
전봇대서 떼어온 전선, 옆 빌라
어느 가구에 끌어다 놓고
더 잘 보니
고정하겠다고 가스관에
타이 묶어놨던데
더 자세히 보면
그 연약한 가스관은
삼 년 전 태풍으로 떨어진 간판에 직격
당해
삼 년째 방치된
그 가스관이었다.
아무도 모르게 웃음과 청량한
욕지거리도 터져 나와
아, 염병, 살겠다고 아주
지랄들을
하며 웃고, 그 앞에서
담뱃불 붙이고.
전혀 거리낄 것도
위조할 것도
꾸밀 것도
멋 부리고 개폼 잡을 일도 없는
자연하고 티 없는
웃음에 쌍욕에
가로등도 깜빡이는 창동의 밤에
연기보다 불분명한 군청색 하늘에
전기고 돈이고 삶이고 시간이고 떼갈 건 모조리 떼가야 했던 만사천여 명의 주민들이
안락하고 싶어
잠들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다.
마침
씨발새끼야, 하고,
주택가 그림자 너머 저편
불 밝은 24시간 편의점에서
청명한 쌍소리 들려오니
또 웬 놈이 술 처먹고
또 아침이면 잊어버릴 싸움을
싸우나 보다.
몇 번이나 박차고 나갔던 둥지는
계절은 여름이라는데
얼어붙은 비와
써늘한 밤바람은
어디고 침습해오며
죽은 작가들의 피가
방바닥
켜켜이 적혀
손끝의 잉크가 새긴 말들이며
새까맣게 터진 심부며
소리 없이 새 나온 언어들
좌절했다고
중얼대보니
과연 좌절했다.
냄새를 맡는다.
이곳은 나의
방,
언제고 준비된
중력이 쌓인
냄새가 나는
초봄이 다가온 기척도 없어
잊고 있던 봄코트 꺼내
새벽 네 시
물을 보러 갔다
석유처럼 검은 하천엔 아무것도 비치지 않았다
왱왱거리는 날벌레 무리가 빗속에서 구름까지
만들기에,
돌아오자,
거울에는
삼 년도 더 된
너무 익숙해 꼴도 보기 싫은 그 눈이 비친다.
오는 길 편의점의 새벽 알바생은
손님을 증오하는 눈을 가졌다.
참으로 배운 그대로
마음이 뿌려놓아 비추는 여기에서는
신발 벗고 문을 닫아도
신발 신고 문을 열어
젖혀도
둘러싼 모든 하나가
지옥이다.
펜을 쥐니
냄새가
더욱
끔찍하다
목차
서문
초편
이질감편
빛과소음편
변형과변질편
좌절된본능편
부러진젊음편
폭력과포기편
병원대기실편
왜곡된일상과약물과불균형한뇌내화학물질편
절망과알코올편
광증편
추락편
다시 인간이 되고자 볕으로 나왔으나 이미 뇌손상도 과거도 돌이킬 수 없는 것이었고
편.
그래도
사람과
만나다
편
집필중.
차후 추가 예정.
미안할 줄 몰라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 때 즈음에
어렸을 적, 주변에서는
애정을 품고
사랑할 줄 모르는 이들이 살았다
나는
본성을 뒤틀어놓는 법을 배웠다.
그 뒤
정직과 의문을
위협으로 굴복시키는 이들이 포위해
나는, 모든 位를
적으로 삼는 맛을
입안 가득 채웠다.
머리가 좀 크자
그들이 빛살 비추는 눈동자
반대편에서
어떤 표정을 짓는지 보았다
사람이 서로를 얼간이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알았다.
그렇게
누구도 다가올 수 없게 되자
망령들만 스승이며 동료 되어
나는 곰팡이 핀 과거 밑바닥에
절망에 자기파괴,
위악, 등등
생명의 물인 양 들이켰고
웃음은 내게서 떠날 줄을
몰랐다
벤조디아제핀도
그랬고.
나의 마을은 공포와 원한 경계로 가득 차
퍽
보기에 좋으니
사방 팔방 시방이 고향 땅이며
왕국이었다.
거리낄 것조차 없었지
도대체얼마나오랜세월그밖으로단한발자국도나서지않았는지
지랄
염병할,
그러다 어느 순간 어느 날에 발은 허공을 밟아 머리통도 신발장에 처박게 했고
생명의 물은
비참의 변명이더라.
모든 삶을
거꾸로 뒤집어
전부 쏟아내야 했다
각운 맞추기를 멈추고
병원 냄새 지독한 입안
을, 뱉어, 내고
폭죽 터지며 빛나며 밤하늘로 빨려들던 삶
을, 멈추고
인생을
시작할 때였다.
신발장에 머리 처박고 쓰러져
내려다보는 가족들의 눈빛, 생각하며
웃고
핏덩이로 태어난 이래 처음
공기와
온도를 감각하고
어느 날엔가 동해 바다
파도와 바람과 빛마저 촉식
하고
물을 마시고
그것은 텅 빈 것에 더더욱 노골적이어서, 나는
사랑과
유대와
기쁨과
수전증과
뇌 손상과
말소된 회한을
배웠다,
덕분에
웃었다.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시작의 계절 같은 소리 하네
계절은 봄이고
날씨는
9도쯤
밤이고.
그리고
오늘의 담배를 마치고
개 짖는 소리를 지나쳐, 걸어
올라왔다
꽁초 쥐던 손이 곱았다.
글을 못 쓰겠고
책장을
못 넘기겠다,
봄에,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자멸에의
열락 덕분에, 이 계절 한복판에서 몇 번이나
얼어 죽을 뻔했는지, 세어
보려다
보니까
아무래도
봄은 본래 춥고
멈추어
객사할만하다.
청동 같은 손가락 뻗어
책장을 살피니
이슬 맞아 죽은 송장들만
한가득이다.
지상의 과실은
죄 빨아 마시고.
또
습관처럼
창밖에서 오는 것들을 기다리다
습관보다 깊이
다시 소설을 써야겠다고,
대못처럼 강인하여 운도 행도 없는
활자를
새겨넣어야겠다고
더운물에 손 녹이고
여기 써 붙인다.
거실에서 동생은
밥 먹고
설거지하고
비장하게
트림한다
2025년에도 봄은 오고 꽃은 피는데
아침에 일어나보니
남의 집이고
심장은 허덕이고
넘어져 다친 무릎은
욱신거리고
이불은 없고
햇볕 받아 뜬 눈이
보는 것은
책상 밑판.
그래도, 뭐
상관은 없다
늘 그랬었
으니까
뭐
그래도 올해는,
모르는 집은 아니며
어제를 기억하며
베개도
있다
가방에
칫솔 치약도 있다.
책상 밑에서 햇살을 가만히
마주 보다가, 일어나
보일러를 끄고
아무도 없는 집을
나왔다.
갈 곳은 딱히 없는데
사람들은 살기 위해
회사로 가고 있다.
별 볼 일 없고 끝도 없던 분노를 구두처럼 신고서 얼굴은 웃고서
잭
잭 영감이 바텐더를 하는
잭스 바
거기서 나는
아주 늙고 노년이 보장된
유대인 노인과
자주 마주쳤다
오후 다섯 시부터 계속
나는 취해있었고
그는 이틀에 한 번 정도
밤이 깊으면 나타나
인사하며 옆자리에 앉아
밀러를 시켰다.
나는 항상 웃고 있었는데
언제나 화가
터지기 직전의 가스탱크처럼
치밀어있었다.
그러니까 이제 한국
남쪽, 한국, 남한에서는,
벙어리라는 단어도
못 쓴다니까요
벙어리 장갑도……이런
젠장, 이걸 어떻게
영어로 설명하지
벙어리의 신식
표준어가 뭐더라?
이 따위
두서없는 소리를
아무 때고 끊임없이
길고 강인하고 끈질기고 소용없이
늘어놓았다
노인은,
유대인이고
짧은 머리가 하얗고
밀러 생맥주를 마시며
항상 웃고 있었다.
나는 단 한 번도
그가 집으로 돌아가는 장면을
기억하지 못한다
아침마다 내 몸은
술과 이슬로 흠뻑 젖어
남의 집 소파에
쓰러져있었다 매일
기억할 수 없는
새 상처를 갖고.
머리가 깨끗하게 벗겨진
잭 영감은
내게 더블샷 럼이나
잭콕을 파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았고
주크박스에서 음악을 틀고
일회성 친구들에게 싸구려
술을 사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다
나는 그에게
항상
웃고 있었다.
잭스 바 손님들은 모두
날 보면 웃었다 나도
그들 모두에게
항상
웃었다.
귀국하고, 떠나고, 또 귀국하고, 또 떠나고, 또 어딘가에서
또 만신창이로 쓰러져 잊어버리고
기억 못 할 상처들만 어리둥절하게
켜켜이 새기고
인디애나도 텍사스도 아칸소도 캘리포니아도 네팔도 인도도 중국도 일본도 아무 곳도
아닌, 오늘, 부모님 집의
내가 점유한
방에서
바닥에서
흰 머리를 줍고
짧은 머리가 희던 유대인
항상 웃던
노인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고
손등의 담배빵 같은 흉터도
오른팔 화상 자국도
기억하지 못하고
어딜 다녀왔는지도.
그러나 잭 영감의 은제 안경테
잭콕 잔에 묻은 폐유
쓰러진 잡초밭에 내리던 우박
들개 냄새가 나는 소파
언제나 열에 들떠
항상 웃고 다니던
표정.
더는 들이키지 않게 된
망각과 분노를 모두.
노인이 밀러를 마시며
성공한
스타디움 사업을 떠들고
내가
남한의 문학 시장판을
떠들었던 것을
모두
기억하고
날 보고
웃었다.
저기 지금 위층에서 강의 중이거든요
그날 나는 계단참에 울고 있는 여인을 정중히 내쫓았고
네 번의 여름이 녹아버리고서야
사람의 눈물을 끌어안고 그 계단이 될 일을
알아차려 울었다
그리고서는 계속
울고만 있다, 계속
눈물이 없는 짐승이며
냉혈동물이며
자세히, 그 눈들, 가까이, 잘, 오래 보면,
단 한 시도
마르지를
않는다
시학
한글에 대문자 따위가 없어서
진심으로 다행이다, 만일 있었더라면
이미 죽은 시인들 무덤도 파내서 죄
사망시키고 다닐 계획을 나는
이미 실행했을 것이다
미학이나 뭐
The 미학이나
그런 명목으로.
여기 나는 그럴듯한 존재가 되기 위한 모든 의욕마저 잃은 것 같으다 그러나 지금이 새벽 다섯 시라는 사실만은 염두에 두어야 하겠다
아직 나는 명확히 기억한다.
단 하루도, 낮도, 밤도, 새벽도, 한시도
고함과 욕설로 조용할 날 없던
술주정뱅이
삼 층 아저씨
빌라 모두가 포기할 즈음
삼 층에 이사 온
희망 넘치던 얼굴의
신혼부부.
경찰이 오고 CCTV 설치되고 언성 높이고
울고
반년 후 이사
떠나고
어느 하얀 낮
열린 현관 틈새
고개 숙인 채, 사회복지사
둘과 마주하던 삼 층
아저씨
언제부터인가 홀로 고요해지고
언제부터인가 이 층에 쌓여 썩어가는
배달물들과 현관을 도배한
우편과 고지서와 광고 전단과
무관심과 또
무관심.
그리고 다시
언제부터인가
새벽 두 시부터 오 분 간격으로 현관문부술기세로여닫아대는
몇 층의
어느 놈.
사 층의 나는 언제부터
덜 미치고 덜 소란해
졌던 건지
새벽 다섯 시
어느 놈이 또
현관 부숴대고
일 층에선 청소기
돌리고.
문 닫히는 기척도
아무 소리도 없이
골목길 끝에
담배 연기 피워올리고
전등 나간
계단 따라
돌아가는
시퍼런
불면의 밤.
여기는 창동
우리는
그들이 모르는 것을
안다.
너무 오래
청소를 하지 않았다
방도, 가방도, 지갑도, 나도,
뭐든 간에.
가방 열자
너무 오래
담아두었던 미래가
우수수 쏟아져 내려
넋 놓고
엉망이 된 방
고개 숙이고
서 있었다.
영수증은 쌓일 대로 쌓여, 지갑은
두툼한 것이 마치
돈다발이라도 들어있는 듯
무슨 장을 이리 자주 봤는지
골라내던 손에
몇 장의 종이가 걸린다
정독도서관 자료안내
청구기호 814.7-ㄹ822ㅅ=2
함께 읽고자 했던
눈이 쓰린 산문들.
책장에는
어느새
내가 사지 않은
많고 귀중한 책들
정작 내 책 몇몇은
대체 어디로 갔는지
너무 오래
청소를 하지 않았다.
못 견디게 가득 찬 몸뚱어리 이끌고
방바닥에 쌓인, 기다란 머리칼들
주워 모으다
주저앉았다
2월의 끝
그래
또다시
봄이 온다.
안뜰의 남자
-바틀비를 바라보던 또 하나
이 짧은 기록을 시작하기 전에 우선 밝혀두고 싶은 것은, 법원에서 검사와 판사가 뭐라고 했든 나는 결코 사악한 동기에 의해 행동한 흉악범이 아니라는 것이다. 스스로를 성자나 현자, 정의 집행자라고 말할 수는 없어도, 나는 지극히 일반적이며 이성적인 사고로 움직이는 시민이자, 나름대로의 지성을 갖춘 교육된 현대인이다.
그러나 실상 아무래도 좋은 일이다. 어쨌거나 나는 지금 툼즈 구치소 독방에 갇혀있다. 위에서 굳이 구구절절한 변명을 늘어놓은 것은, 이제부터 시작하려는 이야기가 변별력과 객관성이 결여된 광인의 일기 따위가 아니라는 점을 여러분에게 이해시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 작은 독방에서 창살문을 등지고 서, 단 하나뿐인 창―네모나고 작으며 창살이 끼워져 있을 뿐이기에 바람조차 막을 수 없는―을 내다보면 구치소의 안뜰이 보인다. 지난 3년간 나는 안뜰에서 사람의 모습은 고사하고 살아 움직이는 짐승조차 본 일이 없다. 그러나 몇 주 전부터, 나는 안뜰에서 두 명의 인물을 매일 확인할 수 있었다.
하나는 깡마르고 키가 큰 남자였다. 아침마다 해가 뜨면 그는 안뜰로 나와, 5분 정도 주변을 서성거렸다. 그리고 붉은 벽돌로 세운 구치소 담장을 향하더니, 해가 질 때까지 미동도 없이 그저 서 있거나, 앉아있을 뿐이었다. 내 독방의 창을 통해서는 남자의 정면을 관찰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가 도대체 뭘 보고 있는지는 전혀 추측할 수 없다. 그러나 그 모습이며 터무니없이 정적인 일과를 한동안 지켜본 내 감상은 이러했다. 망할, 이 미치광이 같은 나라의 폭군이자 사형집행자인 사법부가 마침내 정신과 영혼에 병이 난 사람들까지 잡아서 구치소에 처넣기 시작했구나. 뉴욕을 불사르고 북미의 모든 거짓말을 산산조각 낼 행동가는 여기 독방에서 썩고 있는데 말이지. 희망이라는 이름의 출구는 도대체 어디에서 나타나려는가.
하지만 내 정당한 분노는 그렇다 치고, 남자는 그 괴이하며 아무에게도 영향력을 미칠 수 없는 일과를 밤낮으로 반복했다. 그리고 두 번째 인물이 나타났다. 그는 점심과 저녁 식사 시간마다 안뜰에 모습을 보였다. 쉽게 잊을 수 없는 인물로, 정육점에 걸린 커다란 고깃덩어리에 앞치마를 입히고 사람 얼굴을 붙여놓은 것 같은 거친 인상의 사내였다. 나는 죄수들이 그를 ‘사식업자’라고 부르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식사 시간마다 그들은 잠시 만났다가, 사식업자 쪽이 안뜰에서 사라지곤 했는데, 여느 때처럼 창문에 바짝 붙어 귀를 기울이던 어느 날 나는 그들이 평소보다 가까운 곳에서 대화를 시작하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저녁이 준비되었습니다요, 나리.
지금은 식사를 안 하고 싶습니다.
아니, 나리는 도대체 언제쯤 식사를 하고 싶어질 예정이오?
낮은 톤에 점잖지만, 억양이랄 것이 전혀 없어 차라리 유령이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의 주인, 키 크고 깡마른 남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사식업자는 불만스러운 듯 씩씩거리면서 커다란 몸동작으로 안뜰에서 퇴장했다. 유령 같은 남자는 반응도 없이 담장으로 천천히 걸어가, 평소처럼 완벽하게 움직임을 멈췄다.
그들의 짧은 대화를 엿들었을 뿐이나, 나는 그 유령 같은 남자를 향해 강렬한 동지애가 불타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는 동료다, 그는 반항하는 사람이로구나! 그는 부정하는 자다! 그는 거룩한 진실로 거짓을 깨부수는 자다! 그렇지, 그러니 저 자가 음식을 먹을 리가 없지. 특히나 이런 시대의 이런 나라에서라면 말이야. 음식을 먹는다면 그것이야말로 거짓과 기만에게 패배당하는 것이니 말이야!
감옥살이 때문에 오래간 잊고 지내던 혁명과 진리에의 갈망이, 내면에서 지옥 불처럼 타올랐다. 그날 이후, 나는 매일 흥분한 채로 동료의 모습을 단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자 노력했다. 나의 동료는 매일 안뜰에 있었다. 그는 말하지 않았고, 만나지 않았고,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는 오로지 정지한 채, 담장 어딘가를 바라본 채, 선 채, 앉은 채, 철저하게 반항하고 있었다. 그의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더더욱 전율했다. 그는 결코 먹지 않았다! 점점 더 말라가는 창백한 얼굴은 이제 거의 비인간조차 아닌, 비실체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것이야말로 내가 불태우고 부수고 무너트린 것들이, 처음부터 품고 있던 공허를 드러낼 때 마침내 마주할 수 있는 표정이 아니었던가. 나는 스스로의 행운에 감사했다. 이곳에서 실로 나보다 높고 진실한 동료를 만난 것이다. 어쩌면 그는 내가 추구해온 모든 것이며, 단 하나의 진리일 수도 있었다. 신도 사람의 형상을 했으며 그 아들도 사람의 형상을 했다고 한다. 그러니 모든 거짓을 파괴하고 나타나는 것이 사람의 형상을 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있겠는가. 아침 저녁으로 복도를 거니는 간수가 나에게 말을 걸거나 걱정하는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지만 그런 것은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날이 왔다. 나의 동료, 나의 친구, 나의 스승인 그는 어느 저녁 차가운 돌 위에 머리를 뉘이고 웅크렸다. 나는 끊임없이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해가 저물어 가고, 안뜰이 보이지 않는 습기로 젖어갔다. 눈 한 번 깜빡이는 일도 안 하고 싶었다. 도대체 얼마만큼의 시간이 지났는지, 사식업자, 교도관, 그리고 처음 보는 신사 한 명이 나타났다. 태도를 보아하니 신사는 나의 친구와 가까운 사이인 듯싶었다. 그가 누워있던 친구의 눈에 손을 댔다. 아! 나는 아무도 모르게 신음했다. 이 먼 곳에서도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곧 그들이 나의 모든 것을 짊어지고 안뜰에서 걸어나갔다.
그날 밤 나는 잠들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오로지 실루엣만 판별할 수 있는, 구치소 담장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것은 높다란 담장이기도 했고 아무것도 아니기도 했으며, 그냥 벽돌 무더기이기도 했고 성상(聖像) 같은 무지막지한 상징이기도 했다. 그것에 새벽빛이 비칠 때 비로소 나는 밤이 지나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등 뒤에서 익숙한 발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것은 매우 파악하기 힘든 어조로 내게 말했다.
당신 괜찮소?
철창 너머에 있는 간수에게로 시선을 향하며, 의도치 않았던 질문이 입에서 새어 나왔다.
형은 언제쯤 집행됩니까?
나는 그냥 간수요. 그런 것 까지는 모르는데.
더 이상 기다릴 게 단 하나도 없게 되었군.
나는 그들에게 종이와 펜을 요구했다. 그들은 곤란해했으나 이틀 뒤에 종이와 목탄을 제공해 주었다. 덕분에 이렇게 친구이자 스승에게서 배운 진실을 남길 수 있었다.
그들은 내가 도시에 불을 질렀다고 하는데, 전부 거짓말이다. 저지른 건 ‘의무[need]’라는 이름으로 전미에 출몰하는 유령이다.
비둘기들
야 밍준아 이렇게 내가 어 사랑하는 친구들 이거 이렇게 사진으로 담을 수 있는 게 너무 기쁘다 행복하다 야
신곡동 엘피빠에서 우리 다섯은
술 마시고 크게 오래
떠들었다 나는
같이 함께
외치듯이
떠들었다
비둘기
비둘기가 모이 쪼듯
구구구구 위스키 서너 잔 쪼더니
니콘인지 캐논인지
대포 같은 카메라 꺼내
춤을 추고
허덕이고 기뻐하며 미친 듯이
사진을 찍었다.
또 몇 잔을 삼키고 사진을 찍고
광란같이 즐거워 욕지거리하고
사장님한테
쿠사리 먹고
표정 죄 풀려 세상 다 가진 것 같아서는
지가 계산한 거 기억이나 하는지.
비둘기는
노래부르고 날뛰고 친구 어깨 위로 무너지고
마주 오던 여대생
같은 아가씨, 뛰듯이
우리를 스쳐, 지나가고
요새 줄담배 안 피워 인마
야내가어밍준이니찍을라고카메라까지꺼냈는데어한대더피워새꺄불붙이고여기보지말고평소있는그대로의너의모습을보이라고어
비둘기를
먼저 보내야 했다.
춤추듯 휘청거리다 수그러들어
엘리베이터, 육면체, 안쪽
비둘기는, 점점
작아지더니
현관문 너머에
사라져
버렸다
네 명
또 마시고
기뻐하고
한 놈 한 놈
맛이 가고
택시 부르고
이제 겨우 새벽
그렇게.
돌아가는 길
비둘기의 온통 풀린 몸체며
한 점 경직된 기억도 없던
얼굴
따위를 생각하고
당신들 타고 갔던 전철에
손잡이잡고빳빳이서서,
고관절이 아프다
우리 학창시절은 반짝이며
찬란했을 것이다.
사진들은 깨끗하고 예뻐
아름다울 것이다.
스스로 글을 써놓고도 이게 어떤 구조와 맥락으로 구성한 것인지 파악할 기력이 딸려서 결국에는 대충 내놓고만다.
정신적이고 학구적인 보강 이전에 신체적인 강화가 절실하다.
지금 육체와 정신의 연결선을 무언가가 틀어 막고있다.
아주 즉물적이고 자명한 것.
아마 음식이나 건강 같은 거.
생존을 축하한다고 물질과 활자들이 우박처럼 쏟아져 내리는데 그 와중에 이건 또
요새는 뭘 했다고 이렇게 피곤한지
생각해보면 피곤해하느라
지쳐 나가떨어져 있던 게
전부였는데
그래서, 마침내, 집에서 방에서
아무 때고 습격당하는 혼자만의
공간에서 멍하니
내가 뭘 하는 사람이었더라
허공만 쳐다보다
결국 초점 맞춰진 곳에
언젠가부터 도무지 정리 안 되는 책장
보고 있자니 몇 권이
빠져있는데.
그래
그 자식,
책 빌려 간 채로 절교선언한
돈 잘 벌고 친절하고 문학적으로 빛이 나던 어느새 결혼해 딸까지 낳았던, 그
친구였던
그 자식
독일 영화감독이, 그린, 만화책, 빌려, 도주한, 그 자식,
베르너 엔케 있을 자리가
비어있잖아.
아니지
아니야, 그 뒤에 분명 샀었는데
집도 분열하고 방도 분열하고 책장도 자리도
있을 곳도 시방으로 분열해
팔도강산 곳곳으로 흩어져버려서
뭐가 어디에 있는지
흩어진 파편들은
어떻게 그러모으는지
옘병……
좀,
타의적으로 안락을 강요하는 손과 팔과 36.5도가량의 눈물겨운 종족적 애정, 좀
제발 내게 몰아쳐
며칠만
피로로부터
잠들었으면.
해야만 했던 일들
리스트로 붙여놓은 벽 위의 선반 위의 파편 같은 간이책장 위의 빈공간만
멍청히 쳐다보는
의식도
이제 제발 좀,
그 자식
어차피 행복하게 잘 살고 있을 거
뻔히
알면서
빈공간도
어차피, 활자와 집착으로
다시 채워질 거
지긋지긋하게, 틀림
없으면서
뭐를 또
회의하고 있는지
회의할 거면서
말이야.
하늘에서도 땅에서도 성가시게 금속 부대끼는 소음만 나기에
음악 끄고
티비 끄고
전기 끄고
시각도
청각도촉각도뭣도끌수있는건일단다꺼놓자
제발좀
세상이 어떻니 나라가 어떻니 사람
사람이 어떻니
아주 정신 사나워서
자꾸
빠루 들고
기계 앞에
입 달리고 귀 달린 얼굴들 앞에
서게 되는데
이 짓거리도 좀 꺼보려고
오체투지인지 줄 끊어진 꼭두각시
인지, 송장인지
바닥에 퍼져서 꺼져있으면
야 인마 너 어쩌려고 그래
백수 생활도 하루 이틀이지
뛰어 새꺄
벽에는 압핀 먹여놓은
시간 단위 백수 생활 스케쥴표
체크박스 채워져 있고
옆에는 빠루
바닥
보일러 도는 바닥에는,
낄낄 장판 끌어안으며
너는 어쩔라고 그러냐
우리 같이 좀
꺼지자
그리고서 뭣이 나타나는지
가만히 좀
보자. 어? 그거 또 다시 틀지 말고.
새꺄.
백수짓도 하려면 계획적으로 해야지
문자화할수도없는혼란한정신속
에서더욱침잠하거나혹은
잠깐깨어나거나
돌풍이 불든 낙뢰가 치든
머저리처럼 나아가는 오토 파일럿
항공기처럼
눈동자에 불을 끄고
좌절을 제쳐놓고 정지
한 채
여러가지 속수무책으로 가며
시간도 갔다.
이천이십오년 이월 칠일 영 시 이십팔 분.
써도 읽어도 이게 뭔지 이해도
안 되고
욕지거리할
기력도 없다
내가 기억하는 한, 이, 삶에서,
시계란 것들은 늘 폭력적인
사기꾼들이었다
지금도
담배 피우러 나갔다 하늘이 미친 것마냥 눈을 쏟아내고 대설경보가 울리고
그제야 계절이
여전히 굴러가고 있었다고
알아차리고
눈이 소리를 먹고 사방이 고요해
돌아볼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도망에서 도망하고 도주하고 아주
체질인가 봐, 백수
백수 체질
해서
도망치지 않을 방법도 없었고 도망친 길도 길이라고 중얼중얼
입속말하다 담배는
피우지도 않고
돌아왔다
말이야 맞는 말이지
낮이고 밤이고 하늘이 뱀장어 껍질 같네
그러고 보니 의사는, 지금쯤
내가 외국에 있는 줄 알 텐데
그런 도주 계획이
있기야 있었지
여기에 있긴 하다만
아.
벌써 내일이 되고,
안녕
벽시계는 분침이 12를
가리키기 직전
세 번의 작은 불빛을 내
방에 앉아 마주 보면
상당히 자주 빛나.
꺼진 형광등 올려보며 나는
별 이유도 없이 무고한
멕시코인
타자기로 후려갈겼던
불행한 작가를 생각하고 있어
그 미친
못생긴 영감탱이
방 건너 잡음이
거슬렸다지.
이불 깔기도 전부터 방안
보일러 돌아가는 소음
가득 흘러넘치고
결국 이곳밖에 누울 자리는 없네.
안녕
나는 오래
찾아 헤매던 답을 알아냈으나
답이 되지는
못했어.
여기는 오전
세 시 십구 분
별 의미도 없는
나열될 가치도 없는
수치 덩어리
다만 당신에게 읊어줄 수는 있겠네
불면이 불러오는 건
의식을 제외한
모든 마비
그리고 내밀어진 희귀한 손들과
사람의, 감정, 감사는,
몹시 신비스럽고 예측할
도리조차 없는 일이었지
꽤
괜찮은 일이라니까.
너무도 익숙한 병증과
믿기 힘든 변화며 새로움은
이때쯤 거대하고 단단하여 무딘 빛의 동상이 되어
얼어 죽을 제비 한 마리
은근히
기대하고는 있는데……
그래도
걱정할 건 없어
마비됐다고
증명할 것도 없고
불 꺼도 형광등에 미광은 남고
보일러는
그만 됐어.
살아온 중
최고라니까
정말로
쓰러져 바라보는
천장과 벽지의 무늬는,
그래
하얗고 작은 빛이
또 세 번
점멸하네
그러니
안녕
위악도 아니고 자기파괴도 아니고 체념은 더더욱 아니고 이름 붙이고 싶지도 않고 이름이 붙기나 하는 건지
지금 여기 새벽 4시
의자 위에 들러붙어 손가락 끝까지 뻗어있는 놈.
이놈 죽을 때까지 날
따라다닐 것이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공멸하려 마지막까지 달라붙어 있는 것이
이놈의 유일한 생존이다
이건
살고자 하질 않는다
밤길 건너오는 고양이나 창밖의 시선과는
달리
이건
흐트러지고
망가지고 통제권을 벗어나 산산조각 되고 싶어
온갖 수를 써댄다
망할 것이 어느 순간 감겨와서는
수없이 불행하고 가장 고통스럽기를
열렬히 바라고 한결같이 욕망하고 실천
한다
떨어지지도 않고.
더 큰 문제는
가끔 이게 나한테 붙어있는 건지
내가 이놈에게 붙어있는 건지
헛갈린다는 것이다
과거 나를 걱정하던 몇몇
사람들이
말버릇처럼 하던 얘기가 있는데
세상의 온갖 고통 혼자 다 짊어지고 있냐는
구박이었다 그리고 최근
자신이 생겼다, 그렇다고,
당당히 대답할 수
있다고,
전봇대 위 날개와 커튼 뒤의 그림자는 그저 가만히
시기를 기다릴 뿐인데
이건,
오만 비참 모조리 어깨에 메도록 아주 친절하고
효율적으로, 나를 움직인다.
정신 차려보면
어이가 없다.
대체 왜 이래놨는지.
어느 놈이 이딴 걸 원했느냐고 따져보려 해도
손가락이 밖을 향할 수가
없다.
도무지
이해는 할 수 없지만
빨간불에 악셀 밟는 맨정신인 사람들
너무 많이 만났다.
당연히 그들도, 도무지
이 꼬락서니
한순간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죽음이 형체로 나타나는 때가 있다고
이야기들, 자주 들었고
사실 마주치기도 했다
그런데 이놈은
훨씬 지긋지긋하고
손을 놔줄 수가 없다
그저
부디, 누구도 만나지 않기를.
만나 이해하려면
이놈은 벌써 당신일 테니.
그들이 주로 착각하는 것
밑바닥에서는 밑바닥을 볼 수 없다.
가죽 찢는 거친 바닥과 두개골을
부대껴야 할 어두운 벽에
함몰되고
융화되는 수밖에.
그리고 언젠가 약간의 빛이 당신 자리를 비추면
그제야, 밑바닥을 보았노라고
알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보통
자신이 가장 어두운 바닥에 잠겨있다고
생각한다
사방이 꽉 막힌 사무실 안
더러는 난간도 떨어져 나간
노가다판 철제 간이
계단 위에서,
가끔은
염증 나는 원고 무더기 속
한 손에는 펜
한 손에는
전동드릴 따위
들고서
그런데
그게 아니다
그게, 아니라니까
날이 추워질수록 사람들의 옷차림이 더욱 화려해지는 것을
당신이 아는지 모르겠다
겨울바람에 새파랗게 질리고
어떻게든 자신의 존재를 증명
하려는
화려한 사람들의 대낮 사이에서
느닷없이 밑바닥은 솟구쳐온다.
내 몸뚱어리 뒤덮은
어처구니없는 몸뚱어리가 보이고
온 세상 문명 송두리째 불사르는
새까만 밤
이 보이고
눈 감고 모델처럼마네킹처럼 걷는 사람,
사람들이, 보이고
불안이며 공포로 낄낄거릴 준비를 하는
내가
보인다, 보이고,
그리고, 어느새
똥칸에서 일보는 인간들 사이
열린 문으로 들어가 걸쇠를
잠그고
구역질조차 나지 않는 공간
지갑에서 꺼낸 벤조
두 알
삼킨다, 그리고
안다
여기엔
입구가 없다.
화려한 세상은 개뿔 이게 화려해 보인 역사가 있기는 하냐
0.
타워팰리스며 이름 높은 부촌들 들쑤시다 할리우드 라스베이거스 심지어는 히말라야 산봉우리 올라서서 설산 보며 온 세상 높고 번쩍인다는 곳들 다 뒤지고 다니다 노숙자들 쇼핑카트 끌고 빳빳이 서서 드럼통에 소시지 구워 먹는 바닥까지 굴러 들어가도
화려하거나 근사한 건
개미 더듬이만치도
못 봤다
눈이 두 개나 달린 사람들이
대체 뭘 보고 사는 건지
참으로 궁금해서
평생 묻고만 살았는데
제대로 된 대답을 들은 기억이 없다
여기에 있는 건
가난하고 절망하는 어느
추레한 사람과
부유하고 행복한 어느
훌륭한 사람이
아니라
뻔한 패배가 확정되고
그 패배를 알거나
알지 못한 채
패배 되어가는 사람들이다.
저기 왕의 황금마차가
준마들에 이끌려 드르륵드르륵
드르륵 굴러가는데
저 궤짝이
뭐기에
노동에태만에성실에시기에보수에진보에계급에성취에혁명에전쟁에단두대에계승에생명에
병마에
사망에
대답 좀
해달라고
주먹을 써도 답을 안 해주니 묵직하고 중후한
데스크까지 엎었는데
인간들 도무지
말을 안 해주더라.
어쩌면 내가
묻고 있다는 사실마저
몰랐을지도.
1.
그런데 대답을 들은 일이
있기는
있었다.
너무나 틀림없는
대답이어서
그게
답이라고 알아듣는 데
13년 걸렸다 아니
벌써 14년이네.
내가 물은 건 아니고 우리
어머니, 걱정근심 많은,
어쩌다 이 꼬라지 됐는지 실타래 풀어볼 의욕조차 들지
않는
엉망으로 구겨져 흘러내리지도 않는
흙탕물
같은 아들을 둔
어머니가
그 아들 옆에 앉혀두고 어느 분께 물었다
이거 도대체 어째야 하냐고.
이미 이거는
중세 유럽 마녀처럼 생긴 한국, 정신과 의사가
더는 사고 치지 못하게
평생 잠재워 놓으려 했고
자매인가 싶게 똑 닮은 한국,
정신분석학자가 얼른
내보내려고
서류뭉치 떠안겨 병무청 가래서
군대도 안 갔고
만나는 이방인마다 눈 피하고 길 피하는
아주 그런
그런 거였다.
그래서
이거 어째야 하냐고
어머니는
정말 절박했나 보다
대답은
장미 씨앗은
지가 뭔 씨앗인지도 모르고 내버려
둬도
결국엔 장미 피운다는
말씀
이었는데……나는
창밖의
잔디밭 뛰어다니는
송장메뚜기 구경하고 있었다.
그리고 13년은
드르륵드르륵 행성 온통 쏠고
다니느라
어느새 죄 쏟아져
패배했더라
그런데
그사이 뿌리가 내리고
줄기가 솟아
이게 꽃인지
뭔지는 몰라도
피긴
피겠더라.
덧붙여,
황금마차는
그냥 궤짝
맞았다.
멸종당한 게 아니야 나는
멸종되었다
작품이 컨텐츠가 되고
창작자가
소비자를 위한 공급자가 되어
가는
아주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수순에 나는 멸종 되었다 석유와 화석과 유령들의 손을 잡고 우리는 놀며 저주하고 더 깊숙이 썩어 망각 되며 히히덕거렸다 친구들은 할리우드를 인터넷 서점을 매스미디어를 증오하고 제2의 러다이트 운동을
포기했다 참으로
빙신들이었다
나도
그렇게 수도 없이 좌절에 몸을 담그고 병아리처럼 삐약삐약 죽음을 노래하다
실제로 몇몇이 죽었다.
예전에, 아마 서너 해 전
서해안에 텐트 치고 시꺼먼 갯벌 너머 암자색 수평선
줄곧 바라보다
바라만 보다가
어느새 골반까지 뻘 속에 묻혀있었다
생각도 없이 따라간 듯한데,
놀라지 않고
당황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고
살고자 하지 않고
미적미적 다리
며 발을 움직이다
빠져나왔다.
철버덕거리며 텐트로 돌아가
가족들은
또 무슨 짓을 하다 왔느냐고
점토처럼 되어버린 하얀 운동화는
아버지 것이었다.
하반신이 썩어
흘러내리고 있었다.
나는 수백 차례 멸종되었다.
멸종당했다 믿으며
오색찬란 알약들을 생명, 으로
활자에의 갈구를 인생
으로
삼으며
죽음이어느길목에서있을지찾고헤매고그그림자보다가벼운것을등짝에짊어멘채
나는 수백 차례 멸종되었다.
그런데
그런 때가 온다.
사람들의 안구에서 나타나는 빛나고 맑고 흐리고 탁한
그 색채만이 기억을 온통 뒤덮어 기억
속이, 그야말로,
야밤에 전광판 네온사인 술병조각 담배꽁초 카드긁는소리 손흔드는추운여자 욕망으로 부스러져 켜켜이 쌓이는 창동역 1번 출구도 저리 가라 할
빛깔과 색채의 광란만으로 모든 진실이 가려진
장소가 되어있음을
당신들의 표정에 비춰보며
아, 멸종
될 만도 하네
빙신. 하고,
석유처럼 녹아내리는 몸을 뽑아
굴러 나와 돌아보고
수 없는 모든 뻘에
셀 수 없는 사람들 잠겨
휘적휘적 죽어 춤추는 모습이
과연 잘도 보이는
때가
어느 방
날이 점점 더럽게 추워진다
영원토록 가을도 오지 않을 것처럼
여름이
발악을 하더니만.
가족들은
그간 쓰던 선풍기들 뒤늦게 닦고
말려
커버를 씌워 내 방에 들여놓았다
그렇게 있었다
꽤 오래
어느 겨울날 나는 타자를 치기 전
화장실에서 방광을 비우고
의자에 앉아 뭐라도 좀 써보려고
빈 페이지 들여다보는데
눈이 침침하고
헛구역질이 나와
그냥
앉아있었다
문이 열리고, 아버지가 들어와
커버 씌워진 선풍기들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하여간 장남 방에만 들어가면
뭐 하나 남아나는 게 없구만.
몇 개의 커버가
찢어지고
터져있었다.
아버지는 그것들을 보일러실로 옮기고
나는 아무 말도 없이
그냥
앉아있었다
아버지가 나가고
내가해야만할일들을적어놓은목록
을
확인하고
각막이 건조해 갈라져 가고
심박이 멈춰가고
무언가가
정지하고
있어
움직이도록
해야 했다.
살얼음 같은 태양이 어느새 파란 하늘에 쨍하니
이상했다.
집 앞 편의점 들어서자
처음 보는 직원은 인사해 오는데
젊고 명랑하며
친절한 목소리였다
필요한 것도 없어서
마시지도 않을
커피 한 캔 사는데
그녀는 내 눈을 보며 미소짓고 영업 매뉴얼에 따른 말
들을 친절히
건네고 인사
했다.
그래서
나도 인사했다
테이블에서 막걸리 마시는 노인네들
바라보며
이 아가씨 남아나기나 할지
생각하며
수염 지저분한 얼굴
문지르며
태양 가라앉은 대학로 뒤켠 창문 열고 텅 빈 탁자 옆 앉아 내다보다가
술 끊은 게 작년 6월 9일이고
지금이
12월 20일인데, 그러니까
얼마나 됐냐
모르겠네
아무튼 일 년은
지났다.
두통과 죄악감으로 시작되는
담요는커녕 이불도 없는
기상, 오후
관성처럼 뻗은
창백하고 가는 손에 잡히는
엎어진 자리끼 같은
소주병, 더러는 전날 열어둔
맥주캔
방문 열고 나서기 위한
최소한도의
인간성
아주 나쁘고
나쁠 것도 없었다.
밤새 어떤 이들에게 미친놈처럼 전화를
걸어댔는지, 알지 못하기 위해
전화기는 행방불명이고
흉곽이 우그러지고
호흡을 막아 왔는지
그때
알아차린다
참으로 나쁘고
나쁠 것은
뭐……
술병을 다 비우고
마침내 문을 열면
부엌을 보며
느껴야만 했다
얼마나 더 많은 술과
약이
오늘이라는 이해할 수 없는 단위를 위해
필요할지,
편두통과 흉통과 찢겨진, 의식으로,
웃고
웃었다
주머니에 오로지 소주병과
담뱃갑만 움켜쥐고
친구 만나러 가면,
그래, 승호란 놈이 있는데
그놈 참 괜찮아
정말로
친구새끼 하나는
적당히 좀 하라고 정신병자 새끼야
너 나이가 인마
그러다 죽어 개새꺄
그러면 승호가 그랬거든
야, 그만해라 야
술 안 먹으면
못 나온다잖아
술병과 담배만 생명줄처럼 붙들고 나와
승호 그놈이 대신 내준 택시비만
총합 오십은 될 거다
공공교통이란 게
무너져 잔해만 남은 인간을 위한 게
아니거든.
아, 손님 거 좀, 내리고서 드시지.
죄송함다.
택시기사랑 똑같은 말만
몇십 번을 반복했는지.
더이상 무너질 껀덕지도 없다는 게
얼마나 유쾌한지
알 놈들은 알 거야
그래, 그렇지
그리고 진실로
내딛을 발이 없다는 것도.
집 가는 길 차창에 광란하는
가로등-빌딩창문-정신나가조급히-악셀밟고-핸들꺾는
헤드라이트-하이빔 각막 뚫고 들어오는 걸
넋 나간 채 방치하노라면
여기가 뭐하는 곳인가 싶었다
집.
집?
니미
누가 만든 말인지.
돌아오면 책상에는 늘
시집 한 권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
그래서
6월 9일
그만뒀다.
아주 나쁘고
나쁠 것도
없었다. 뇌가
고장 났을 뿐.
계속 웃고
쏘다녔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