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하여 자살을 꿈꾸나
글/시 2015. 11. 25. 04:10 |누구를 위하여 자살을 꿈꾸나
폐가 타는 듯이 담배를 갈망할 때는 담배를 피우는 수밖에 없다.
밤거리의 미광이 눈에 비쳐 들어올 때라든가
누군가가 아련한 목소리로 밥 딜런을 부르는 골목이라든가
수많은 모자와 머리카락들의 행렬을
좁디좁은 창문으로 내려다보고 있을 때
내 가슴은 독을 원한다.
강박증은 모든 것을 개념화한다.
버스정류장에서 잠깐 스쳐 지나간
얼굴에 하얗게 분칠을 한 젊은 여자의 입술만 보아도
나는 그 퇴폐에 구역질을 하며 눈물 흘린다.
그리고 나는 보도블록에 엎드려 중얼거리는 것이다―「나는
다시는 여자의 몸에 손을 얹지 않을 거야. 다시는.」
젊음에게 저주를.
왜 항상 사고의 끝은 파괴에서 멈출까?
바위로 된 해변에서
밤을 맞아 새까맣게 된 대양을 볼 때마다
나는 어서 그것이 오기를 바란다.
운명론자들이 날 조롱하고
휴머니스트들은 날 혐오하고
나는 칼로 찢은 것처럼 새빨간 입술로 웃는다.
「변화라는 건 없어.」 그 말이 심장 한 구석에 늘 도사리고 있다.
한때, 내가 사람의 살을 먹어치우는 짐승이었을 때,
나는 젊은 인간이라면 가리지 않고 뜯어먹었다.
나의 남근은 나의 송곳니였고 나는 그 송곳니를 사람의 피부에
푹 찔러 넣었다.
그것이 사람이었는지 피가 찬 가죽부대였는지 사실 잘 모른다.
나는 항상 다 토해냈다. 언제부터인가 거리를 돌아다니는 것들은
전부 움찔거리는 가죽부대였고, 추한 것은 혐오스럽다.
추한 것은 혐오스럽다.
그리하여 나는 두 번째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인다.
그러나 이런 것은 내가 원한 것이 아니다. 종소리가 들리고
사람들이 교회로 가는 일요일에, 나는 하얀 담배를
멀리 보이는 교회 지붕과 겹쳐보았다.
내 갈비뼈 안에 무언가 살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늘 굶주리고 목이 죽도록 마르며
몸부림치면서 사방에 몸을 부딪혀대는
벌레 같은 무언가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벌레 같은 것에게 매캐한 독 연기를 뿌리는 것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