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노스탤지어
과거에는 세상을 정당화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지.
대양이 아름답다면 그건 한 인간에 의해 아름다웠고
삶이 위대하다면 그것도 한 인간에 의해 위대했어.
내가 언제쯤 실패하게 될지 기대되는군.
그러나 태양이 수천 번 떠올랐다 저물었고
나는 일종의 유물이 되었네.
먼지가 뒤덮은 갈색 낡은 마을과
붉은 벽돌을 타오르는 인동덩굴이 아직도 눈에 선한데
내 마음도 광재가 묻은 뿌연 유리창이 되었네.
이 도시의 밑바닥에 앉아 위를 올려다보면
심지어 밤에조차 세상은 세피아 색이네.
아이러니한 일이지. 사실 모든 것이 더
폭력처럼 선명하고 비극처럼 짙게 되었는데.
빛바랜 것은 나의 눈일까?
모든 것이 무가치하다는 사실은
그것을 부정하는 용기 있는 자가 있을 때만
사실이 되지.
온 세상이 꿈의 거품이라는 사실은
태양에 달궈져 지글대는 땅을
맨발로 걸어 다니는 사람이 있을 때만 사실이 되지.
거꾸로 말해도 그르지 않은 진실.
어제는 서재에서 오래된 책을 찾아냈네.
파란 표지로 된, 플라톤이 제자와 대화하는 내용의
아주 오래된 책이었는데, 종이가 누렇게 변해버린 것을 보고
가슴이 쓰렸어.
오, 그래. 나에겐 이상한 노스탤지어가 있어.
나의 아버지가 태어나기도 전에 내가 살아있었던 것 같은
이상한 노스탤지어.
시간이 나에게만 교묘한 요술을 쓴 것일까?
나는 모든 시대를 살았었어.
그리고 모든 시대의 유물이 되었지.
그러나 이것도 그저 나의 광증의 일부일까?
아직 살아있는 나의 아버지를 볼 때마다
나는 안도하게 되거든.
세상을 정당화하는 사람들이 살았었지.
그리고 나는 참으로 그들처럼 되고 싶었지.
내가 언제쯤 실패하게 될지
정말로 기대되는군.
그 시간이 덮쳐들고야 만다면
나는 만족한 듯이 철제 의자에서 일어나
곡괭이 한 자루를 들고 털레털레 가리라
카잔차키스가 살았던 갈탄 광산마을로 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