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살 위의 정신

글/시 2016. 6. 11. 03:21 |

학살 위의 정신



하늘은 잿빛

그 많던 비둘기들은 모두 자취를 감췄다

새벽의 거리엔 습기가 서리고

하늘로 빨려 들어가 사라져버린 것들에 대해

남자는 추억한다

집 잃은 흰색 개들도

이젠 어딘가에 뼈 밖에 남지 않았으리


오래 전 어린아이가 하나 죽었다.

혹은 최근일지도 모른다

그때 그 아이를 껴안고 눈물 흘리지는 못했을지언정

그 작고 더럽혀진 손이라도 잡아줘야 했을 텐데, 라고

남자는 생각한다, 공포에 질린 채

소름끼치게 뜨고 있던 눈이라도 감겨줘야 했을 것을


장례식은 그 누구의

발도 닿지 않은 대학로의 어느 어두운 골목에서

천천히, 지루하게 진행되었다

새까만 그림자에 모자를 푹 눌러 쓴

검은색 조문객들은 모두 진탕 취해있었다

이봐, 그 아이에게 가족이 있었던가?

나이 많은 형이 하나 있었어, 그러나

지금은 보이질 않는군, 하며 그들은 수군거렸다


동이 트자 조문객들은 사라져버렸다

연기처럼, 혹은 안개처럼 그러나

죽은 아이가 담긴 관은 아스팔트

위에 방치되어 있다가, 어느 친절한 행인에 의해

우표가 붙어 남자에게로 배송되었다


새벽 거리 남자는 줄담배를 태운다

폐가 미치도록 아파…… 그러면서 남자는 웃는다.

어린아이가 죽지 않는 것은 죽는

것보다 더 커다란 비극이고

하늘은 잿빛.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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