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 모든 절망을 당신께
글/시 2016. 6. 10. 21:36 |이 세상 모든 절망을 당신께
그는 담배꽁초를 보지도 않고 내다버린다
저 그림자 뒤의 세월들도 그렇게 내다버려졌으리라
눈길조차 받지 못하고, 검은
나무 그림자에 묻히는 쓰레기처럼
시간이 흐르고 빗방울이 떨어지면
그의 세월도 담배 필터도 물에 불어 그늘
밑에서 비밀스럽게 비대해지리라.
석양이 지기 시작하면 남자는 골목 사이로
천천히 사라진다. 내 눈은 그를 좇다가
결국 눈물처럼 내가 쥔 오래된 시집의 한쪽 한쪽마다
책갈피가 되어 꽂힌다. 나는 중얼거린다,
여보게, 너는 도대체 언제부터 감명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연구하기 위해서
차가운 몸뚱어리가 된 작가들의 책을 읽기 시작했나?
그 차가운 계절에는 도대체 얼마나 되는
책갈피들이 무수히 책장 사이에 꽂혔는지
아직 태양이 떨어지기 전에, 남자가 섰던 자리에
나는 서서 내 그림자를 돌아보았다 그 치명적인
공간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더러는 보이지 않았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나는 금성이 떠오를 무렵에야 길거리에 선 채
기억해냈다. 한 때는 깃발과 창을 높이 쳐들고
세계에게 분노의 목소리로 강론을 하는 것이 필연
이었고 의무였던 때가 있었지
그런데 지금은 모든 잎들이 지고
고엽이 굴러다닐 뿐인 정적의 차도―그 재물들의 사상 위에
정신은 버려지고 혁명은 물론이거니와
반란도 유물이 되었다
내일도 저녁 아홉 시가 되면 병동의 문이 잠길 것이고
나는 불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