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혐오했던 것은 어쩌면 나의 거울일지도 모른다
글/시 2016. 5. 10. 04:48 |내가 가장 혐오했던 것은 어쩌면 나의 거울일지도 모른다
눈물을 흘릴 때 가슴에 칼을 긋는 것은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지.
80만 원짜리 러닝머신 위에서 뛰거나
어느 밤 옥상 위에서 노래를 부르거나
혹은 충분할 만큼 눈물이 나올 수가 없기에.
자신의 피부 위에 핏방울이 송골송골 맺히는 것을
그것을 눈물의 또 다른 형태라고 이해하는 것은
연인을 껴안아도 가슴 속에 공허한 바람이 불고
가족의 손을 잡아도 온기가 느껴지지 않고
줄담배를 피워도 영혼의 아픔이 잦아들지 않기 때문이지.
대낮에 소주에 흠뻑 취해
축축한 장판 위에 나동그라져 있는 것은
그 순간만이 아프지 않기 때문이지.
사실은 내가 술을 먹는 것이 아니라
내가 현실에게 술을 먹이는 것이야.
어쩌면 그럴 때 나는 세상의 비극 속에서 가장 아름답지.
술에 취해 정신을 잃으면 나의 눈물샘에서
에틸알코올 한 방울이 덧없이 떨어지는데
어쩌면 그 장면은 세상에서 가장 역겨울지도 모르지.
숙취 때문에 쪼개질 것 같은 머리로
한 새벽에 신경안정제와 발리움을 찾아 서랍을 뒤지는
그 장면보다 더욱 더.
아주 오랫동안 이성에 의존해 입을 열려고 했지.
그랬더니 그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어.
그래서 나는 이 가슴에 공허와 광기를 키웠지.
너무 지쳤었기에.
기껏 꿰매놓은 가슴의 흉터를 다시 찢는 것은
아무래도 그 안에 무언가가 있는 것 같기 때문이야.
어쩌면 그 붉은 피는 나의 피가 아니라
내 늑골 속에 사는 짐승의 눈물이 아닐까?
꿈틀대는 거대한 기생충의 체액이 아닐까?
동굴 안에 혈거짐승이 살고 있는 것처럼
내 공허 속에 무언가가 살고 있어.
오, 아버지. 어찌 저를 버리지 않으시나이까.
자의적으로 절벽에서 굴러 떨어져
발목이 부러진 채,
나를 못 박을 십자가를 누군가가 가져와주기만을 바라는
나를.
안녕, 여러분. 나는 직장동료를 만나면 웃으며 인사하지.
최근 별 일 없지? 안부를 묻고
그러나 나는 바위에게도 웃으며 인사하고 안부를 물어.
그리고 백일몽 같은 낮이 지나가고
내 영혼이 고요히 우는 새벽 밤이 되면
나는 얼굴 없는 고무인형이 되어
펜을 쥔 채 죽음을 기다리지.
만일 당신이 새벽 세 시에 우리 집 문을 열고 들어온다면
당신은 망가진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있는
인형 같은 이상한 물체를 보게 될 거야……
그것은 코도 없고 입도 없는데
섬뜩하게 눈을 뜨고 축 늘어져있겠지.
놀라지 마. 그것은,
필사적으로 살아남기 위한 발버둥의 잔해인
소위 「인간」이라고 불리우는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