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해(苦海)
평생에 한 번 뿐인 여인의 살갗을 지나고 나자 고해(苦海)였다.
시간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감각이 새겨진 온몸의 혈액을 빼내야만 한다고
나는 반쯤 미쳐 헌혈소의 의사에게 광란했다.
광란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당신의 피는 마시기만 해도
취할 정도로 약물과 알코올로 포화 되어있습니다.>
나는 이를 악 물고 헌혈소를 빠져나왔다.
스스로 동맥을 끊을 수도 있었지만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자살
이 아닌 혈액의 교체였다 이미 모든 감각과 망각하여야만 할
기억이 살아 흐르는 혈액의 교체.
여인이 영원히 떠났던 날의 깊은 밤
나는 지독한 술에 지독히 취했었고
그 이후로 단 한 번도 그 술과 눈물에서 깨어난 일이
없다. 그 이후로 단 한 번도 눈물을 보인 일이
없다.
기억이라는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날카롭고 노골적으로 자라나
나의 영혼에 뿌리를 내리고 가시를 박아
아아.
아직도 찾아오는 밤의 어둠 밑에서
담배의 역한 연기를 빨아 마실 때.
장마철의 축축한 습기와 비가
내 피부 위에서 동동 떠오르며 부유할 때.
함께 진탕 술을 마신 벗이
택시를 타고 돌아갈 때.
사실은 그런 순간들을
심지어 나열할 수도 없다.
여인과 함께 살던 녹음이 우거진 산에서 도망쳐 나와
이 더러운 콘크리트와 아스팔트의 한복판에서 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웃고 지낸다.> 나는 의사에게 말했다.
나의 친구에게도, 가족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고통의 대양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이 당연했을
때에 나는 고통스러운 만큼만 고통스러웠다.
이 우주가 맹목적이고 무의미하며
무자비하고 무작위하다는 것은
굳이 타인으로부터 설명을 듣거나
증명을 할 필요도 없는 자명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짧은 환희와 희열의 순간이!
최초의 상실. 그래, 그것은 최초의 상실이라고 불리어져야 한다.
왜냐하면 그 <상실한 것>을 제외하면
나는 평생 죽음의 암시 밖에 가진 것이 없었으니까.
고통을 감추기 위한 흉터, 밤의
창밖을 기어 다니는 환영, 갈색으로 빛나는 여러 개의
달과 지하철에 탄 노인의 눈동자에서 보이는
형언할 수 없는 공허의 구렁텅이. 그 마스크.
내 손에 잡힌 펜의 차가운 감촉. 어둠 속의
금화를 뿌려놓은 것 같은 천박한 네온사인의 빛.
무엇보다도 절망은 내게 당연했고 나는 당연히 절망해왔다.
태양을 싫어했기 때문에 내 피부는 회색이었다.(정확히는
이 땅에서 보는 태양은 내게 태양이 아니었다. 나는 항상 열사의 땅으로 가고 싶었다.)
그런데 그 순간은 잊을 것이 못 된다.
나는 나의 고통만큼 희열했다. 결국 잃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에 떠는 것과
현실의 달콤한 꿈에 취하는 것이 동시에 벌어졌다.
나는 그녀와 함께 살던 산의 어느 절벽으로 올라가
떨어져버릴 생각을 하면서도 행복했었다.
미친 감정이여…….
그날 나는 결국 나의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타성과 광기가 덩어리져 침묵하며 들어앉아있는 나의 집으로
그 집으로 가면 나의 끔찍한 상실이 더 높은 목소리로 고함칠 것 같아
그날 밤 나는 가로등도 없는 메마른 골목에서
벽돌담에 기대앉아 잠들었다. 아무런, 아무런 꿈도 없이.
깨어보니 사방이 고해였다. 새벽녘의 분홍빛 태양광선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더러웠다.
여인의 이름은 너무 길었기 때문에
나는 그녀의 본명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유난히도 뚜렷한 윤곽으로 추억하는
초록색 나뭇잎들과, 그 위를 방울져 흐르던 빛살과는 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