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에서의 노래

글/시 2012. 12. 25. 01:48 |
지하에서의 노래


나는 눈 오는 날의 개처럼 방 안에서 기뻐하며
그녀와 함께 작은 동굴 속을 뒹구네
내 손에는 작은 그녀가 쥐여있지
어제 내가 잘라낸 그녀의 음부가
나는 기뻐하며 그 살점에게 말을 거네
당신의 이해자는 나뿐이요
사랑하는 이도 나 뿐이요

내가 걸어온 발자국마다 작은 움집이 생겼네
그곳에는 오래된 원시인들이
하얀 불꽃을 켜고 몰토 아다지오의 박자로
춤을 추고 내 이름을 노래하네
그대들은 피그말리온의 비극을 기억하는가?
나는 생명 있는 것으로부터 생명을 앗아오는 방법을
요 몇 년 사이에 고독 속에서 깨달았다

아주 캄캄한 천장 구석에 내 얼굴이 웃고 있네
나도 마주보며 즐거워서 웃고 있다네
오늘은 기쁜 날이요 가죽으로 북을 만들어
북치고 노래하며 새까만 눈물을 흘려라
그 눈물 속에는 한 때 어리고 앙상했던
내 몸이
내 갈비뼈의 흔적들이 남김없이 들어있으니

내게는 도려낸 살점이 있소 그것은 나의
나만의 벗이며 나만의 반려자요
내내 혼자였지, 눈 내리는 무지개 속에서
수십 개의 무지개 속에서 나는 꿈만 꾸었지
피안의 저편에는 누군가가 있을까
거기에는 잡아줄 손도 있고 입 맞출 입술도 있을까
하지만 나는 혼자 서지 못했는걸
나는 끝내 그대를 강간하지도 못했는걸
다만 내게는 그녀의 음부가 있네
내 손에 쥐여진 신선한 고기가 있네

눈을 향하는 곳마다 성스런 빛이 비추고 수 없이 많은 무지개가
내 눈동자 속에 깃들어 신의 꿈을 꾸게 하네
하지만 나는 당신이 필요 없다오, 내게는 이것이 있으니
내게는 고기가 있고 피와 근육이 있으니
자비가 있다면 가죽 하나만 덮어주오
자비가 없다면 그것으로도 좋소.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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