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무주의자들의 무덤을 밟아야만 한다


달이 뜨지 않은 밤이면 산은
더욱 괴기스러운 모습으로 침묵한다.
나무와 풀잎들 사이사이로 어둠을 머금고
가끔 동굴 속에서 으르렁거리는 밤 짐승처럼
배를 깔고 누워 포식성의
고요를
마치 위협인양
취약한 인간의 영혼 앞에 펼쳐 보인다.

나의 동족들아, 같은 피를 마시고 자란
비대하고 결핍된 영혼의 조각들을 가진
같은 어머니 죽음의 치맛자락을 기억하는
동족들아, 너는 분명히
잔혹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저 새까만 침묵을
본 일이 있다.
그리고 너의 마음 한편에는 이상한 분노가
말하자면 오히려 억울함 같은 것이 외친다.
「늙은 자연이여, 이 행성 위에서 당신은 어째서 그리도
우리 나약한 인간들을 향해 적개심 아닌 적개심을,
차라리 공포스러운 장엄함으로 우리의 영혼에
망치질을 하고야 마는가?」

그는 침묵한다! 우리는 그가 입을 여는 것을
단 한 번도 본 일이 없다.
우리가 그와 마주할 때마다 그는
어떤 때는 구부러진 손으로 어둠을 쥐고
어떤 때는 우리의 시각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태고부터 변한 것이 없는 심원한 암흑을
파도소리에 섞어 보낼 뿐이다.

차가운 내륙지방에서 서리만을 먹으면서 자란 인간에게
새까만 밤바다에서 등대 하나에만 의지하여 <길>을 찾으라 한다면
그는 분명히, 차라리 단도를 하나 들어 자신의 목을
찌를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치졸한 에고가
구름 낀 밤중의 산과
은밀하게 그르렁거리는 밤바다를 마주할 때
인간은 자신이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는 치명적인 진실에 영혼이 말라
더 이상 지혜 있는 동물로서의 손과 발도 잃어버리고
도망칠 생각도 못한 채 그 자리에 쓰러져버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의 동족이여,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끝 간 데 없이 펼쳐져 지평선과 하늘마저 뒤섞인
이 황무지 위에서 너희들은 왜 말라버리지 않는가?
공포로 떨리는 비명을 하루 종일 질러대면서
왜 아직도 낮에는 태양을 삼킬 듯이 천공을 향해 입을 벌리고
밤에는 달빛에 맞아 칼자국이 나면서
모래를 그러쥐며 기느냔 말이다.

「우리의 공포는 정당하다.」 그런 말을 하는 너의 얼굴을 내가 보았는데
너에게는 이미 눈동자가 없었다. 푹 파인 구렁 두 개가 있을 뿐이었다.
나는 너희들이 영원을 믿는다고 생각하고
반쯤은 화가 나고 반쯤은 눈물이 날 것 같은 기분으로
네 멱살을 잡아, 들어 올리면서 외쳤다.
「네 아버지가 불타서 모래가 된 것을 기억하라.」
그랬더니 너는 웃는 것처럼 울고, 우는 것처럼
웃으면서 말했다: 「내 관이 비어있어도 나는 괜찮다.」

그런데 이 모든 촌극을 아무 말 없이 지켜보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저쪽에 솟은 모래로 된 산이었다. 그 산은
감정 하나 담기지 않은―그렇기 때문에 우리를 미쳐버리게 하는
그 눈동자로 우리들의 추태를 구름보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우리는 이성을 잃어버릴 뻔 했도다! 내가 말하기를
많은 초월적인 것들은 우리 눈에 거의 절대성으로 비쳐 보인다.
그러면 우리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우리의 초라한 존재성 때문에
우리들은 견딜 수 없는 침묵 속에서
집을 잃고 햇볕 아래 놓인 달팽이처럼 말라비틀어지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돌아버리지 않기 위해, 눈동자 없는 나의 동족이
그대로 산산조각 나서 모래와 재로 변해버리는 것을 막기 위해
그의 칼을 빼앗아서
나의 한쪽 눈알을 도려낸 뒤 그 눈알을 내 동족의 오른쪽 눈구멍에
쑤셔 넣었다.
그리고 나는 피 흘리면서
나의 동족은 내 도려내진 눈에서 흐르는 피를 받아먹으면서
그 모래로 된 거대한 산을 보았다.
그것은 여전히 아무 표정도 없었다.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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