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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5.01.14 그들이 주로 착각하는 것
  2. 2025.01.08 화려한 세상은 개뿔 이게 화려해 보인 역사가 있기는 하냐 1
  3. 2024.12.31 멸종당한 게 아니야 나는 1
  4. 2024.12.24 어느 방 1
  5. 2024.12.21 태양 가라앉은 대학로 뒤켠 창문 열고 텅 빈 탁자 옆 앉아 내다보다가
  6. 2024.12.20 이거 어느 카테고리에 갖다 박아야할지 잘 모르겠어서
  7. 2024.12.13 벌써 이십 년도 넘었는데 거울처럼 그는 나타나
  8. 2024.12.12 꿈속에서 꿈을 짓다 위대해지는 허무함을 보르헤스는 소설로 썼던 것 같은데 나는 아무리 해도 위대해지지는 못하겠고 다만
  9. 2024.12.06 섬과 섬들과 5
  10. 2024.11.29 여기는 어디로 가는 골목이냐고 쿨럭쿨럭 눈밭에 일장기 토하던 그노무 시키는 무슨 대단한 인물도 아니고 그냥 폐결핵 환자였어 환자
  11. 2024.11.21 집에서 집으로
  12. 2024.11.14 비 내린다고 누가 그러기에
  13. 2024.11.10 거리
  14. 2024.10.31 좌절이니 절망이니 그따위 단어들 뱉지 않으려 지랄염병을 떨다보니 결국
  15. 2024.10.26 누구 말마따나, 그럴 수밖에 없으니
  16. 2024.10.17 산속에 사나 굴다리에 사나 마음 고요한 거랑은 별 1
  17. 2024.10.14 밤나무 아래
  18. 2024.10.11 문학상 1
  19. 2024.10.10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어제였다
  20. 2024.10.08 항상휘청이며걷는이는돌부리에걸리지않고
  21. 2024.10.01 이것은 시도 아니고 시의 작법에 대한 것도 아니고 말하고자 하는 것은 1
  22. 2024.10.01 그는 산을 내려왔다
  23. 2024.09.27 아무도 자유에 대해 진실로 알아본 일이
  24. 2024.09.20 그것들에겐 눈꺼풀이 없고 우리에겐 있고 저기 저편 그들에겐
  25. 2024.09.11 이놈의 도시는 매번 만날 적마다 꼭
  26. 2024.09.04 (시집) 지어진 밤길과 그 너머 언덕과 2
  27. 2024.08.30 오전 두 市
  28. 2024.08.24 뭐 이런 게 다 있냐 연못이라는 단어가 왜 연못인지도 몰라?
  29. 2024.08.22 좀 더 빛을, 하던 사람도 애저녁에 죽었고
  30. 2024.08.22 서러워서 못 해먹겠고 또 걱정은 왜 이리

그들이 주로 착각하는 것


 밑바닥에서는 밑바닥을 볼 수 없다.
 가죽 찢는 거친 바닥과 두개골을
 부대껴야 할 어두운 벽에
 함몰되고
 융화되는 수밖에.
 그리고 언젠가 약간의 빛이 당신 자리를 비추면
 그제야, 밑바닥을 보았노라고
 알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보통
 자신이 가장 어두운 바닥에 잠겨있다고
 생각한다
 사방이 꽉 막힌 사무실 안
 더러는 난간도 떨어져 나간
 노가다판 철제 간이
 계단 위에서,
 가끔은
 염증 나는 원고 무더기 속
 한 손에는 펜
 한 손에는
 전동드릴 따위
 들고서

 그런데
 그게 아니다
 그게, 아니라니까

 날이 추워질수록 사람들의 옷차림이 더욱 화려해지는 것을
 당신이 아는지 모르겠다
 겨울바람에 새파랗게 질리고
 어떻게든 자신의 존재를 증명
 하려는
 화려한 사람들의 대낮 사이에서

 느닷없이 밑바닥은 솟구쳐온다.

 내 몸뚱어리 뒤덮은
 어처구니없는 몸뚱어리가 보이고
 온 세상 문명 송두리째 불사르는
 새까만 밤
 이 보이고
 눈 감고 모델처럼마네킹처럼 걷는 사람,
 사람들이, 보이고
 불안이며 공포로 낄낄거릴 준비를 하는
 
 보인다, 보이고,

 그리고, 어느새

 똥칸에서 일보는 인간들 사이
 열린 문으로 들어가 걸쇠를
 잠그고
 구역질조차 나지 않는 공간
 지갑에서 꺼낸 벤조
 두 알
 삼킨다, 그리고
 안다

 여기엔
 입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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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세상은 개뿔 이게 화려해 보인 역사가 있기는 하냐


0.
 타워팰리스며 이름 높은 부촌들 들쑤시다 할리우드 라스베이거스 심지어는 히말라야 산봉우리 올라서서 설산 보며 온 세상 높고 번쩍인다는 곳들 다 뒤지고 다니다 노숙자들 쇼핑카트 끌고 빳빳이 서서 드럼통에 소시지 구워 먹는 바닥까지 굴러 들어가도
 화려하거나 근사한 건
 개미 더듬이만치도
 못 봤다

 눈이 두 개나 달린 사람들이
 대체 뭘 보고 사는 건지
 참으로 궁금해서
 평생 묻고만 살았는데

 제대로 된 대답을 들은 기억이 없다

 여기에 있는 건
 가난하고 절망하는 어느
 추레한 사람과
 부유하고 행복한 어느
 훌륭한 사람이
 아니라

 뻔한 패배가 확정되고
 그 패배를 알거나
 알지 못한 채
 패배 되어가는 사람들이다.

 저기 왕의 황금마차가
 준마들에 이끌려 드르륵드르륵
 드르륵 굴러가는데
 저 궤짝이
 뭐기에
 노동에태만에성실에시기에보수에진보에계급에성취에혁명에전쟁에단두대에계승에생명에
 병마에
 사망에

 대답 좀
 해달라고
 주먹을 써도 답을 안 해주니 묵직하고 중후한
 데스크까지 엎었는데
 인간들 도무지
 말을 안 해주더라.

 어쩌면 내가
 묻고 있다는 사실마저
 몰랐을지도.


1.
 그런데 대답을 들은 일이
 있기는
 있었다.

 너무나 틀림없는
 대답이어서
 그게
 답이라고 알아듣는 데
 13년 걸렸다 아니

 벌써 14년이네.

 내가 물은 건 아니고 우리
 어머니, 걱정근심 많은,
 어쩌다 이 꼬라지 됐는지 실타래 풀어볼 의욕조차 들지
 않는
 엉망으로 구겨져 흘러내리지도 않는
 흙탕물
 같은 아들을 둔
 어머니가
 그 아들 옆에 앉혀두고 어느 분께 물었다
 이거 도대체 어째야 하냐고.

 이미 이거
 중세 유럽 마녀처럼 생긴 한국, 정신과 의사가
 더는 사고 치지 못하게
 평생 잠재워 놓으려 했고
 자매인가 싶게 똑 닮은 한국,
 정신분석학자가 얼른
 내보내려고
 서류뭉치 떠안겨 병무청 가래서
 군대도 안 갔고
 만나는 이방인마다 눈 피하고 길 피하는
 아주 그런
 그런 거였다.

 그래서
 이거 어째야 하냐고
 어머니는
 정말 절박했나 보다

 대답은
 장미 씨앗은
 지가 뭔 씨앗인지도 모르고 내버려
 둬도
 결국엔 장미 피운다는
 말씀
 이었는데……나는
 창밖의
 잔디밭 뛰어다니는
 송장메뚜기 구경하고 있었다.

 그리고 13년은
 드르륵드르륵 행성 온통 쏠고
 다니느라
 어느새 죄 쏟아져
 패배했더라

 그런데
 그사이 뿌리가 내리고
 줄기가 솟아
 이게 꽃인지
 뭔지는 몰라도
 피긴
 피겠더라.

 덧붙여,
 황금마차는
 그냥 궤짝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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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멸종당한 게 아니야 나는


 멸종되었다
 작품이 컨텐츠가 되고
 창작자가
 소비자를 위한 공급자가 되어
 가는

 아주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수순에 나는 멸종 되었다 석유와 화석과 유령들의 손을 잡고 우리는 놀며 저주하고 더 깊숙이 썩어 망각 되며 히히덕거렸다 친구들은 할리우드를 인터넷 서점을 매스미디어를 증오하고 제2의 러다이트 운동을
 포기했다 참으로
 빙신들이었다
 나도

 그렇게 수도 없이 좌절에 몸을 담그고 병아리처럼 삐약삐약 죽음을 노래하다
 실제로 몇몇이 죽었다.

 예전에, 아마 서너 해 전
 서해안에 텐트 치고 시꺼먼 갯벌 너머 암자색 수평선
 줄곧 바라보다
 바라만 보다가
 어느새 골반까지 뻘 속에 묻혀있었다
 생각도 없이 따라간 듯한데,
 놀라지 않고
 당황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고
 살고자 하지 않고
 미적미적 다리
 며 발을 움직이다
 빠져나왔다.

 철버덕거리며 텐트로 돌아가
 가족들은
 또 무슨 짓을 하다 왔느냐고
 점토처럼 되어버린 하얀 운동화는
 아버지 것이었다.

 하반신이 썩어
 흘러내리고 있었다.

 나는 수백 차례 멸종되었다.

 멸종당했다 믿으며
 오색찬란 알약들을 생명, 으로
 활자에의 갈구를 인생
 으로
 삼으며
 죽음이어느길목에서있을지찾고헤매고그그림자보다가벼운것을등짝에짊어멘채

 나는 수백 차례 멸종되었다.

그런데
 그런 때가 온다.

 사람들의 안구에서 나타나는 빛나고 맑고 흐리고 탁한
 그 색채만이 기억을 온통 뒤덮어 기억
 속이, 그야말로,
 야밤에 전광판 네온사인 술병조각 담배꽁초 카드긁는소리 손흔드는추운여자 욕망으로 부스러져 켜켜이 쌓이는 창동역 1번 출구도 저리 가라 할
 빛깔과 색채의 광란만으로 모든 진실이 가려진
 장소가 되어있음을
 당신들의 표정에 비춰보며

 아, 멸종
 될 만도 하네
 빙신. 하고,

 석유처럼 녹아내리는 몸을 뽑아
 굴러 나와 돌아보고
 수 없는 모든 뻘에
 셀 수 없는 사람들 잠겨
 휘적휘적 죽어 춤추는 모습이
 과연 잘도 보이는
 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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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방

글/시 2024. 12. 24. 16:44 |

어느 방


 날이 점점 더럽게 추워진다
 영원토록 가을도 오지 않을 것처럼
 여름이
 발악을 하더니만.

 가족들은
 그간 쓰던 선풍기들 뒤늦게 닦고
 말려
 커버를 씌워 내 방에 들여놓았다
 그렇게 있었다
 꽤 오래

 어느 겨울날 나는 타자를 치기 전
 화장실에서 방광을 비우고
 의자에 앉아 뭐라도  써보려고
 빈 페이지 들여다보는데
 눈이 침침하고
 헛구역질이 나와
 그냥
 앉아있었다

 문이 열리고, 아버지가 들어와
 커버 씌워진 선풍기들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하여간 장남 방에만 들어가면
 뭐 하나 남아나는 게 없구만.

 몇 개의 커버가
 찢어지고
 터져있었다.

 아버지는 그것들을 보일러실로 옮기고
 나는 아무 말도 없이
 그냥
 앉아있었다

 아버지가 나가고
 내가해야만할일들을적어놓은목록
 을
 확인하고
 각막이 건조해 갈라져 가고
 심박이 멈춰가고
 무언가가
 정지하고
 있어

 움직이도록
 해야 했다.

 살얼음 같은 태양이 어느새 파란 하늘에 쨍하니
 이상했다.

 집 앞 편의점 들어서자
 처음 보는 직원은 인사해 오는데
 젊고 명랑하며
 친절한 목소리였다

 필요한 것도 없어서
 마시지도 않을
 커피 한 캔 사는데
 그녀는 내 눈을 보며 미소짓고 영업 매뉴얼에 따른 
 들을 친절히
 건네고 인사
 했다.

 그래서
 나도 인사했다

 테이블에서 막걸리 마시는 노인네들
 바라보며
 이 아가씨 남아나기나 할지
 생각하며
 수염 지저분한 얼굴
 문지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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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양 가라앉은 대학로 뒤켠 창문 열고 텅 빈 탁자 옆 앉아 내다보다가


 술 끊은 게 작년 6월 9일이고
 지금이
 12월 20일인데, 그러니까
 얼마나 됐냐
 모르겠네
 아무튼 일 년은
 지났다.

 두통과 죄악감으로 시작되는
 담요는커녕 이불도 없는
 기상, 오후
 관성처럼 뻗은
 창백하고 가는 손에 잡히는
 엎어진 자리끼 같은
 소주병, 더러는 전날 열어둔
 맥주캔
 방문 열고 나서기 위한
 최소한도의
 인간성

 아주 나쁘고
 나쁠 것도 없었다.

 밤새 어떤 이들에게 미친놈처럼 전화를
 걸어댔는지, 알지 못하기 위해
 전화기는 행방불명이고
 흉곽이 우그러지고
 호흡을 막아 왔는지
 그때
 알아차린다

 참으로 나쁘고
 나쁠 것은
 뭐……

 술병을 다 비우고
 마침내 문을 열면
 부엌을 보며
 느껴야만 했다
 얼마나 더 많은 술과
 약이
 오늘이라는 이해할 수 없는 단위를 위해
 필요할지,
 편두통과 흉통과 찢겨진, 의식으로,
 웃고
 웃었다

 주머니에 오로지 소주병과
 담뱃갑만 움켜쥐고
 친구 만나러 가면,
 그래, 승호란 놈이 있는데
 그놈 참 괜찮아
 정말로

 친구새끼 하나는
 적당히 좀 하라고 정신병자 새끼야
 너 나이가 인마
 그러다 죽어 개새꺄
 그러면 승호가 그랬거든
 야, 그만해라 야
 술 안 먹으면
 못 나온다잖아

 술병과 담배만 생명줄처럼 붙들고 나와
 승호 그놈이 대신 내준 택시비만
 총합 오십은 될 거다
 공공교통이란 게
 무너져 잔해만 남은 인간을 위한 게
 아니거든.

 아, 손님 거 좀, 내리고서 드시지.
 죄송함다.
 택시기사랑 똑같은 말만
 몇십 번을 반복했는지.

 더이상 무너질 껀덕지도 없다는 게
 얼마나 유쾌한지
 알 놈들은 알 거야
 그래, 그렇지

 그리고 진실로
 내딛을 발이 없다는 것도.

 집 가는 길 차창에 광란하는
 가로등-빌딩창문-정신나가조급히-악셀밟고-핸들꺾는
 헤드라이트-하이빔 각막 뚫고 들어오는 걸
 넋 나간 채 방치하노라면
 여기가 뭐하는 곳인가 싶었다

 집.
 집?
 니미
 누가 만든 말인지.

 돌아오면 책상에는 늘
 시집 한 권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

 그래서
 6월 9일
 그만뒀다.

 아주 나쁘고
 나쁠 것도
 없었다. 뇌가
 고장 났을 뿐.

 계속 웃고
 쏘다녔을 뿐.

Posted by Lim_
:

행복에 관하여


 시를 쓰는 놈은 시인하지 말아야 한다.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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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이십 년도 넘었는데 거울처럼 그는 나타나


 그게 문병이었던가
 그냥 아버지 따라서
 철없는 꼬맹이 하나가 따라간
 그런 거지.

 내 최초의 기억부터
 할아버지는 언제나 큰댁의
 가장 따뜻한 안방에서
 두텁고 원색 자수를 넣은
 이불 밑에 누워있었다

 목소리를 들은 기억이 없다.

 언제나처럼
 온몸이 술기운으로 활활
 불타오를 때까지
 마시고 기뻐하며 집으로 돌아오다
 그는 빙판에서 미끄러져 버렸고

 부러진 뼈를 수술하고
 마취에서 깨어난 후
 의식만 남고
 정신을
 영영
 잃었다.

 아버지의 말로는 할아버지가
 병원에서 채혈을 받아야 할 때마다
 저 망할
 마녀 쌍것들이
 내 피를 가져다 판다고
 성치도 않은 몸으로 격렬한 광란을 일으켰다고
 한다.

 그는 지금
 납골당에 있는데
 글쎄
 나는 그렇게 생각하진 않는다

 여하튼,
 큰댁에 갈 때마다
 그는 아버지의
 그러니까 막내아들의
 그리고 나의
 그러니까 손주의
 발소리를 듣고

 움직일 수도 없는 완전히 망가져버린 몸을 어거지로 일으켜 세워
 도무지
 알 수 없는
 표정과
 눈빛을
 내게 보냈다

 어린 나는 그것이
 무서워, 가까이 다가가면서도
 도대체가 이해할 도리가 없었다.

 몇 번이나 그
 세상에서 전혀 볼 수도 없는 표정과 눈을 내게 비춘 뒤
 할아버지는 영원히
 표정을 잃었다.

 눈도.

 그리고한겨울이찾아와다시한번창동의어느어두운구석에서낡은패딩으로온몸을감싸고웅크린남자의보이지않는그얼굴을한참이나바라보고, 마침내
 알아차렸다,

 기억 속의 그 눈, 표정, 뒤틀린, 입가와, 주름이, 자글자글해, 왜곡된, 얼굴은,
 다시는 지상에서 찾을 수 없는
 가장 필사적이고
 정신조차 없는
 미소였다고.

 거울을
 닦아봐야겠다고.

Posted by Lim_
:

꿈속에서 꿈을 짓다 위대해지는 허무함을 보르헤스는 소설로 썼던 것 같은데 나는 아무리 해도 위대해지지는 못하겠고 다만


 마침내 잎들이 시커먼 땅으로
 모두 떨어져
 눈 밑에 묻히는 것을 보고

 나는 산을 내려왔다.

 면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는
 붉은 간판등들
 침잠해
 어둡다.

 담배연기 포화된
 낯선 방
 잠들었던 것인지 잠들지 못했던 것인지
 시간은 응결되어

 어느새 창문이 푸르게 침습해온다.
 저장된 기억은 오래 잊고 지낸
 숙취 같다,

 그리고 의자 위
 웅크린 채
 곁눈질로 다시 만난 서울
 미친놈 발광하는 것마냥 푸른 하늘에 쨍쨍
 태양이 발광하는
 서울

 햇빛 아래 빌딩도 주택도 역사도 거리도 사람도 공기도
 송두리째 빛이 바랜
 납덩어리
 납이 지은 도시

 걷고

 다시 부를 수 있을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 그 이름이며
 너무 많은 것들을
 두고 왔다.

아,
 덧붙여야 할 게 있는데,
 전에, 헌책방에
 인생이란 무엇인가 진리 사랑 행복 세 권
 팔아치워 받은 오천 원
 이거
 분명히 용도가 정해져, 있었는데
 잊어버렸다.

 강변역 가로수 타죽은 송장들 같아
 싸늘히 굳은 손가락
 안주머니 지갑을 더듬어보고
 그리고, 또,
 잊어버렸다.

Posted by Lim_
:

섬과 섬들과

글/시 2024. 12. 6. 21:24 |

섬과 섬들과


 누구나 그럴 테지만
 온갖 영감님들이 내 삶에 들어왔고
 너무 빨리 떠나기도 했다

 데이브 아저씨는, 그리 자주
 만나거나
 제대로 대화를 나눈 일도 없지만
 그래, 그 양반 늘
 이쑤시개 입에 물고
 남부 사투리로 중얼대는 바람에
 대화를
 해도
 도대체 뭔 소릴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
 는데…… 어째, 아버지만큼이나
 사라지질 않는다.

 늘 청바지 뒷주머니에 작은 권총을
 넣어두고 살던 그 양반은 어느 날
 10년을 함께 산 고양이가
 치매 때문에 생물로서
 기능조차
 할 수
 없게 된 그 날
 뒷마당에 삽질을 하더니
 소구경 권총을 꺼내 고양이의
 머리에 두 방을 쏘고
 그대로 묻었다
 그리고 말했다.

 동물병원 말이다, 거기 데려가니, 안락사 시키려면
 이백 달러 내놓으라더라
 봐, 이 총알
 한 발에 25센트야.

 아저씨를 전부, 명확히, 이해한, 일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망할,
 이쑤시개.

 그토록 생물의 시체가
 안온
 해 보였던 적은, 그때가
 최초였다.

 그는 하나의 섬이었고
 나도
 마찬가지였고
 아저씨의 아들이며
 나의 친구인
 앤드류도
 섬
 축 늘어진 고양이도
 그랬다

 멀어 보일 때도 있었지.

 바닷고기에게 묻고 싶었다
 눈 감을 줄 모르는 너희는
 섬과 섬들이
 바다 밑에서
 모두 땅과 땅, 대륙으로,
 이어져 있는 걸
 볼 수 있느냐고
 해수면도 육지의 존재도 필요 없는
 너희에겐
 어떤 시야로 그것이 이해, 되느냐고

 수면 위에서
 인류와 국가, 민족, 등등이
 분노와 정의와 복수로 파열할
 것
 같은 밤
 나는 꿈도 없이 잤다.

 우리는 평화로이 일어났고
 같은 잠과 심해를 공유한
 섬은
 더 노골적이어 친근한
 절망과지겨움과향수와인간
 인간애
 를
 차분히 적어 이쪽 섬에
 실어 보냈다

 그 글귀와 음성으로, 바다 밑에서 보는 수면, 어느 군도의 혼란은
 더더욱 대단할 것 없었다

 무슨 큰일 났나 본데
 응
 겨울 산 보러 가자
 겨울바람이랑

 밤이 되고, 내 오래되어 포화된
 책장 앞, 결단은 서고
 짊어 멘 가방은
 언제나처럼 무거웠으나 그리 무겁다고 할 것도 없었다.

 가벼운 걸음은 헌책방으로
 아름답고 품위 있게 은박이 입혀진
 톨스토이
 또다시 팔아치우며
 이번에야말로
 다시 살 일은 없으리라
 감사하며
 진리, 사랑, 행복,
 총합, 오천 원.

 겨울밤에도 섬들은 분주히 급박히 돌아다니며 경계하고 시야를 좁히고
 가방은 오천 원
 보다, 가볍다, 한 장의 지폐만큼.

 아저씨가 바다 깊은 곳으로 쏘아 보낸
 50센트만큼.

 잘 보이지 않는
 심해 밑바닥
 우리만큼

 그래 뭐
 충분하다.

Posted by Lim_
:

여기는 어디로 가는 골목이냐고 쿨럭쿨럭 눈밭에 일장기 토하던 그노무 시키는 무슨 대단한 인물도 아니고 그냥 폐결핵 환자였어 환자


 눈 뜨고 시계 보니 오래도 잤다.

 알람이고 벨이고 다 꺼놓은
 핸드폰, 전원 넣자
 눈 왔다고 대설 특보라고
 연락이 얼마나 쌓인건지
 공공기관 부서들, 각각, 참,
 친절도 하지

 커튼 걷어봐도 창문이 방풍재로
 불투명해서
 그만뒀다.

 쌓일 것들은 알아서
 계속
 쌓이겠지.

 이불 위 핸드폰은 울리는데
 아마 누가, 아니, 십중팔구,
 눈 내린다고
 차 막힌다고
 출근에 퇴근에 지하철에 버스에 온갖 불편이 이렇고 저렇고
 그런 걸 테고.

 이미 불편하다.

 정적 깨지는 초침 소리 듣고 있자니
 안구와 각막 눈꺼풀이, 갈라지고, 멈춰버릴 것, 같아
 다시 누워, 의식, 을
 멈추고

 어느새 눈 뜨니 그 누구도 없는 와중에
 시계만 홀로 전투적으로 질주하며
 하염없이 원
 원을
 그리고 있었다

 다시, 핸드폰에, 전원 넣고
 올해 첫눈이 내렸다고
 보내진 글귀를 읽는다
 듣는다

 지금도 첫눈이라는 말은 내리는가 보다.

 갈라져 멈추려던 것들에는 수액, 차오르고, 흘러내려 집 찾은 미아처럼 펑펑
 함박눈 펑펑 내리는 것 마냥, 펑펑
 진득하게도 울었다.

 지금 이렇게
 불편함에도
 그래, 올해 첫눈 보러 가자, 세수하고, 담뱃갑 쥐고서

 배기가스 공해로 첫눈은 이미 질척대는 잿빛
 담뱃재 떨궈도
 티도 안 난다.

 연기만 폐부에 들락날락
 멍하니 니코틴이며 타르 흩어지는 모습
 보고 있자니
 시뻘겋게 부었던 눈두덩도 가라앉고,

 허파서부터 숨과 체액과,겨울날어미잃고다죽어가는새끼고양이마냥
 으르렁거린다 너무 오래
 불편했다

 병원에서는
 병력이 있으셔서 자세히 봤는데요
 결핵은커녕 천식도 아니구요
 내장 상한 곳도 한 군데도 없으신데요

 예.

 돌아서자
 탁하게 가래 끓으며
 기침만 두어 번
 터졌다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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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집으로

글/시 2024. 11. 21. 23:02 |

집에서 집으로


 창동역
 역사 나오자마자
 노인이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다
 도봉구소유공공쓰레기통
 을

 열고 뒤져
 어딘가에 갖다 팔아 돈 될 만한
 그러니까 캔이든 병이든
 그런 것을
 자루에 담고 있다.

 옆에선
 웬 놈이 인도 한복판에서 담배 태운다.
 7년 전쯤 저러다가 구청 직원한테 팔만 원이나
 뜯겼는데
 겪어 봐야 알지 뭐

 서울 중심지에 있을 때만도 바람이 꽤 써늘했던
 것
 같은데

 춥지는 않다.

 담배 한 대 피우고 집으로
 걷는다 한쪽 발만 새하얀, 회색
 줄무늬 고양이가 밤길을 가로지른다
 집으로

 평생 집에서는 못 할 짓만 했는데
 무슨 이유였는지
 현관 앞 화병들 전부 추락시켜 깨뜨리고
 칼과 펜으로 문과 벽지에 빼곡히 뭔가를
 야밤에 소리 지르며 누군가,
 무언가를 좇아대고

 그래
 좁아터진 서울 외곽 곳곳 곳곳, 곳
 으로, 가족들, 계속 쫓기며, 이사만 전전해야 했던
 이유도, 나
 때문일지도 모르고.

 그렇게 집 나와
 집으로 간다

 어깨에 멘 가방이
 무겁기는 하다.

 여하간 집은
 집이라고,
 명시되어 있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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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 내린다고 누가 그러기에


 우산 들고 나왔는데
 비는
 얼굴 한 방울 때리더니
 멎었고
 낙엽이 더 내린다

 지금이 십일월이랜다
 누가 그랬는지는
 모르겠고.

 낮에도 침침한 골목구석
 이제는 해도 가라앉았고
 편의점 우산 들고 어슬렁어슬렁
 돌다가
 마침 저 벤치 처마도 있겠다
 앉았다

 뭐하러 나왔더라,

 모르겠고,
 여기 놀이터는 어느새 새단장 했는지
 모래도 없고 놀이기구도 죄다
 신식이네, 아무도 안 다치고
 안 놀겠네.

 세련되고 모던하게 한쪽에다 세워놓은 장식용 벽
 에는, 특별순찰구역, 떡하니 붙어있고
 낙엽은
 가로등 주변에만 내리는가
 빛에서 눈 돌리니 사방팔방 다 내리고
 애들 하나 보이지 않는 놀이터에
 할머니 둘만 빙글빙글, 타원
 그리며 걷고

 우산은 왜 들고 왔더라
 그러고보니,
 어제까지만 해도 여기
 접근금지 테이프 쳐놨던데

 웃으려는데
 기침이 난다.

 그래 뭐
 다 좋은데
 놀이터 입구
 최첨단, 같은,
 씨씨티비
 지 혼자 뱅뱅 돌고 번쩍번쩍
 정말
 참
 더럽게
 빛난다.

Posted by Lim_
:

거리

글/시 2024. 11. 10. 20:02 |

거리


 여기부터 거기까지 수도 없는 건조물만 펼쳐 놓였다.
 어느 것 하나 우리 집이 아니다.

 이 자리에서 그 자리까지 헤쳐내야 할 일들만 수미산이다.
 수천만의 삽이 닳아 없어졌으나 산자락조차 변함없다.

 마침내 마주쳐도 나는 눈동자, 속, 빛에,
 목이 탄다,

 피부와 근육과 뼈와
 내장기관을 뜯고 열어
 심부
 深部,
 心府를,

 심장까지 해체한들
 그 어떤 마주 잡을 손도 표정도 눈빛도 없다.

 이 길이
 아니다

Posted by Lim_
:

좌절이니 절망이니 그따위 단어들 뱉지 않으려 지랄염병을 떨다보니 결국


 아무도 나에게 그 무엇도 강제하지 않았다.

 오전 한 시 사십일 분
 이곳은 밤이 아니다
 밤의 빛깔조차
 없다 정확히는
 어느 빛과 어둠조차 판별할 수
 없다.

 혼미한 가로등 불빛은
 그렇다치고
 하늘을 보아도
 저게 뭔가 싶다 저것은
 어느 무언가조차 아니다
 저런 색에는 이름이 붙은 역사가 없다

 명줄 깎아먹는 연기만 줄기차게 피어오르고
 니미럴
 아무도 죄를 말하지 않았으나
 습관처럼 생명에 벌을 주고

 내가 뭔가 하고 있기는 했던가
 하지 않고 있기는 했던가
 화를 입고
 화를 쏟아내
 입혀
 버리고……

 스스로 망가트려 기능을 마비시키는 습
 관은
 어디로 간 일조차 없었다.

 몸이, 존재가, 연기가
 더럽게 무겁다
 이건 죄책감이나 후회가 아니라
 주체 없는 증오야, 그러자

 좀 쉬어라, 제발, 좀,
 친구는 말했다.

 발목에는
 스스로 채운 족쇄만 보인다

 아무도 나에게 그 무엇도 강제하지 않았다.

 잠들 수 없어
 결말을 쓸 수 없다

 시간이
 끔찍이
 멀다.

Posted by Lim_
:

누구 말마따나, 그럴 수밖에 없으니


 밤이 유독 밝다
 빛은 없는데
 밝다.

 어느새 내일이 되었다
 새벽 숲속에서 잡풀과 잎들의
 색, 색을 보며
 이미 몇 까치의 꽁초를 떨어뜨렸다

 마음은
 약리학의 힘으로 마비되었다
 어둠이 형형색색 선명히, 보이는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모두가 자고 있다
 무언가가 끌고 다니는 이 송장 덩어리도
 자고 있다 죽어 있다 다만
 무언가가 줄곧, 깨어있다
 빛깔도 없이.

 내일이 오고 있다고 중얼거렸다, 이미
 내일이다
 고작 이름, 단어, 언어,
 중얼중얼, 중얼,
 대체 뭘 하고 있는 건지……

 하늘에 나타나 번쩍이던 별이
 오래 보니
 인공위성이다.

 방으로
 사무실로
 돌아갈 수밖에

 문을 닫고
 밤을 끈다.

Posted by Lim_
:

산속에 사나 굴다리에 사나 마음 고요한 거랑은 별


 맞은편 산중턱 골프장 누군가 나이스 샸 외치고.

 이쪽
 고요하지도 적적하지도 않던 절간에
 느닷없이 미친
 무당년놈들
 쳐들어와
 동생 내놓으라고
 지랄
 아주 쌩, 지랄
 절간 문 벌컥벌컥 열어
 제끼고
 사람 붙잡아다
 시비털고

 염병도 그런 염병을

 보다가
 두개골 속
 틱 틱 틱,
 틱.
 초침
 부서져 가는
 소리
 들으며
 보다가

 지랄병, 스며 나와, 도져, 눈깔 허옇게, 돌아가서,
 세상, 어느, 미친, 광인, 보다, 더욱, 미친, 광증, 터트리며, 고함, 발작, 숨
 넘어가는, 웃음, 정신
 깎아먹는, 웃음, 아니, 웃는, 병증
 되어
 돌진,

 하면서 생각하기를 어째 이거 사라지질 않냐 꽤 가라앉은 줄 알았는데……

 하여간,
 지들보다 더
 미친, 토치로
 지져놓은 것 같은
 광태에, 욕지거리며 시비도발
 어쩔 거냐고
 니 새끼야말로 어쩌고싶은건지직접한번보자고응마침공사중이라저쪽에연장도많네종류별로다가착착다늘어놨고어디까지어쩌고싶은건지보자고이기회에서로서로가슴열고솔직담백한진심보여줘보자고사람이아주쪼다에핫바지로보이지어재밌지흥미롭고덕분에웃음도멈추지를않네고마워서어떡하면좋아어디서잡신들려가지고여기까지왔는지는모르겠는데

 가래침 뱉고
 슬금슬금
 돌아
 다니더니

 떠나고
 떠났는데,

 여전한 분노에 혐오
 깊숙이 눌어붙어
 썩은 내 나고
 어깨 잡고 흔들어 떨게
 하고 무겁게
 주저앉히고

 마침내 적적한
 야밤.
 산중.

 맞은편 산중턱
 누군가
 아 싸장님 나이스 샸
 캥캥
 외친다

Posted by Lim_
:

밤나무 아래

글/시 2024. 10. 14. 16:22 |

밤나무 아래


 밤나무 이파리들 사이 비가 내린다
 하늘이 투명하지 않고
 애당초 투명했던 일도 없다.

 수십 그루의 밤나무들이
 숲을 이루어
 위를 보니
 층층이 얽힌
 밤잎들이
 잘못되고
 찢어진
 녹색 우산 같다.

 이마며, 안경, 어깨에
 빗방울 부딪친다.

 육중히
 썩는
 심폐
 그저 연기 따위로
 밤나무 가지 이파리, 그, 살아, 키가 자라, 피어, 열매 맺어, 생존, 번식, 하려는, 것들에

 토하고

 방금 통화했던 이의
 혼란한 전파와, 이지러진
 앓는
 목소리
 를

 앓으며
 아프지 않은, 말
 말을
 애쓰던
 목소리를.

 경계도 없는 이 자리에만
 밤송이 열리지도
 떨어지지도 않는다

 그래도 아주
 나쁜 목소리는 아니었어, 홀로
 중얼중얼구시렁구시렁
 담배를 끈다

 여기서만 도대체
 몇백 까치의
 담배를
 태웠는지

 앞으로
 밤은
 열리기나
 하려는지.

Posted by Lim_
:

문학상

기록/생각 2024. 10. 11. 10:53 |

명성을 얻은 텍스트가 인류사회는 둘째치고,
독자 개인의 사고방식과 가치관에 얼마나,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치명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는 지에 대해 늘 생각만큼은 해두어야한다. 스스로 상기시켜놔야만 한다.
그렇게 감화된, 동질화된, 오해된, 좀먹힌 개인이 다른 개인들과 접촉하며 결국에는 공동체적, 사회적, 집단적, 즉 인류 전반의 정신구조를 변질시키는 것도
당연히.

Posted by Lim_
: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어제였다


 눈이 붉다.
 흰자에 온통 핏발 섰다.

 거울 속이 피로하고
 파리하다
 화장실 전구가 맑지 않다.

 아무 때고 성내며 증오스럽던
 얼굴이
 여기엔 비치지 않는다.

 이것은 몹시 지쳐있다, 생각하고
 물기 없는 유리의 표면을
 문지르고
 여러 알의, 딱딱한 수면을 삼키고
 안정도 휴식도 없을 자리에
 눈꺼풀을 닫고

 몸에는 얇은 이불이 덮여있었다
 동생의 목소리가 들렸던 것
 같다.

 비좁은 집, 방,
 창문은 모조리 새까맣고
 시계가 보이지 않는다
 부엌도 거실도 방도 아닌
 여기를, 헤매고, 목적도,
 의사나, 의지도, 없고
 128페이지짜리 책을, 하나, 집어,
 들고,

 아주 익숙한 필체로 거기에는
 혈관이 터진 눈동자들
 수두룩이
 새겨져

 무언가를 계속
 계속, 웅얼웅얼, 비명,
 비명 지르고 있는데

 지면이 붉다

 사람
 인간은 그만 됐고,
 사람이 보고 싶다

 페이지가
 시뻘겋다

Posted by Lim_
:

항상휘청이며걷는이는돌부리에걸리지않고


 걷는데
 산길에서 누군가
 넘어졌다.

 늙고
 노쇠하고
 머리가 벗겨졌다.

 나는
 본다.

 크게
 다치지는 않았다
 다소
 당황, 혹은
 창피한 듯하다

 다시 일어나
 오른다.

 사실
 그가 넘어지기도 전부터
 나는 그의 걸음을
 살피고 있었다 아니
 그저,
 인지
 하고 있었다.

 그는
 올곧게 걸었다, 똑바로
 넘어져
 일어난 후에도
 반듯이
 바르게

 그래서 그는
 넘어졌노라고
 생각했다.

 균형 잡히지 않은, 산길, 걷는,
 내, 걸음, 몸체를, 보고서
 친구가 말했다

 그렇게 마구, 내딛지 마
 땅을, 잘, 봐,
 저건
 뜬돌일 수도 있어……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Posted by Lim_
:

이것은 시도 아니고 시의 작법에 대한 것도 아니고 말하고자 하는 것은


 너는 시를 써야만 합니다.

 그러나
 그 어떤 시인에게도
 선생에게도, 가르침에도, 규칙, 문법, 맞춤법, 형식, 운율, 리듬, 감각, 영감, 그리고, 역사며, 미학, 문학, 철학, 언어학, 분석, 비평, 독자, 등등,
 에게도
 너는

 결단코 의지하지 않으며
 광대한 어둠 속을
 더듬어 나가듯
 네 내면의 불이든 빛이든 아무튼 그것이 무엇이든 그
 작용에 의해

 너는 시를 써야만 합니다.

 아니,
 시든, 소설이든 희곡이든 음악이든 미술이든 영상이든 설치든 행위든 심지어는 뭐 반달리즘이든 사상이든 신념이든 인생이든 삶이든 죽음, 이든, 아니, 그러니까 니가 뭘 하든 아무 상관 없이 여하간 요점과 요지와 정확하게 알아두어서 해야 하고 하고 싶은 말하고자 하는 그것은

 이미 상술한 대로
 하고,

 다만,
 좀스럽다고
 좀스럽게 여겨지는 일은
 좀스러운 만큼만
 그것도
 할만큼은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라고.

Posted by Lim_
:

그는 산을 내려왔다

글/시 2024. 10. 1. 18:29 |

그는 산을 내려왔다


 밤이었고, 버스터미널에는 외국인, 노동자, 들이, 한국인의 갑절은 있었고, 일곱 시 십오, 분이 되자 어두운 듯 가로등 불빛에 산만한, 듯, 사람들은 쭈뼛거리며 버스, 에 올라탔고, 버스 기사, 는 옆얼굴만을 보이며 하나, 하나, 티켓을 받아들었다, 곧 어느, 좀 더, 큰, 터미널에서 버스는 멈추었다가, 다시, 출발하며, 차내의 불이 꺼졌다, 전혀 어둡지는 않았고, 에어컨이 돌아가는 소리, 소리가 윙윙대며, 차라리 엔진 소리나 바퀴 마찰음보다 더 크게 울렸, 다, 머리 한쪽을 유리창에 기대고, 그는, 전혀 바뀌지 않는 듯하면서도 무언가가 계속 바뀌어 가는 풍경을 육안에 담았다가 그것이 신경까지 가지도 않고 그저 흘러나가는 것을 내버려 두고 있었, 는데, 유독, 잘 보인 것은, 어느 국제적 도넛 회사의 생산, 생산 공장, 그 간판, 네온인지 엘이디인지, 아무튼, 아주 상징적이고 깔끔하여, 이 도넛이 위생, 적이고 의롭, 고 정당한 법과 규율에 의하여 만들, 어져, 판매되어, 지고 있다는, 듯한, 메시지, 이미지, 메시지, 를, 전면에 내세우는, 희게 빛, 나는 간판, 과, 그 너머의 그늘이며 그림자 속에서 그야말로 동물의 사체라도 잔뜩 쌓아놓은 것이 아닌가 의심스러운 을씨년스러운 생산, 공장, 과…… 고속도로에 들어서자 차들이 많아졌던 것, 과, 저 멀리 마을, 인지 도시, 인지 알 수 없는, 인간과 인간의 인공물의 집체, 에, 홀로, 높이 솟아, 벽면을 모조리 번쩍거리며 발광, 하는, 총천연색을 거꾸로 뒤집어, 사람의 시야, 시야에 발악하는, 저 무인모텔의 정직함, 등을, 그는 느리게 생각, 하였고, 차들은 계속, 가끔, 인간도, 계속, 득시글득시글, 밤 같지도 않은 밤, 어둠 같지도 않은, 애매모호한, 희미함 속에, 늘어나고, 버스는, 어느새, 알아차리지도 못, 한, 사이, 에, 서울의, 버스, 정류장, 터미널, 이었, 고, 기사에게 감사 인사를, 그리고, 내리자, 하늘, 은, 부옇고 검은 안개로밖에는 보이지 않, 았고, 오히려 터미널의 인공광이, 새까맣게 타고 마른 그의, 사나운, 몸뚱이를, 비추고, 그는, 그 어떤 눈동자 있는 것의 얼굴도 보지 않으려 성심성의껏 정성을 들여 노력, 하며, 걷기 시작, 하려, 할 때, 어쩔 수 없이, 필연적으로, 피하려 해도, 피할 수 없이, 도무지, 방법도, 없는, 사실로 말미암아, 그의, 육안에는, 온갖 사람들이 모두 넋이 나가 정神마저 없는 것이, 보이고, 말았, 고, 수도 없이 눈꺼풀을 깜빡거리며, 발을 옮길 때, 그는, 발을, 옮긴 적조차, 없었는데
 나는 서울에 있었다.

 그리고
 모두가 알다시피
 그는
 산으로
 돌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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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도 자유에 대해 진실로 알아본 일이


 그리깊지도않은산속오후다섯시삼십육분의하늘로부터숨어서올려다보는하늘은희고푸른,얼룩,사이사이,미세히,붉게,달아오른,듯한,금빛
 박혀있고

 나는 숨어
 그 황동빛
 금쪼가리를 보고

 숨을 수 없고

 숨는다 한들
 의미도 없고

 저기 높은 곳에서는
 그저 바람 따라
 온갖 것들이 기울어
 색을
 바꿔나갈 뿐이고

 내
 허파의 빛을 담은
 흰
 담배 연기는
 저 하늘을 칠할 수 없고

 어느새 금빛이었나 싶던
 그것들은
 높아지거나 무너지거나
 하며
 빛깔 속으로 되돌아가기나
 할
 뿐이고

 성주괴공이며,
 등등등등

 아름다워 마음
 끄는
 것들이며
 황금이며
 등등
 등
 등……

 바지 위에 담뱃재 떨어진다
 손은 털어낸다
 시선은 움직인다
 시간도
 발 딛은
 땅도

 움직인다.

 금빛은커녕
 윤곽도 없는
 검고 두터운 자색 하늘

 가늘다 널리 퍼지는 흰 연기 덧바른다
 빛은 밤에 더욱 밝게 보인다고
 사람들은 흔히 뱉어댔다

 탁 트인 산중에서
 점차 높아지며,
 여기
 밤의 안쪽에서는
 어둠이
 더욱
 짙게
 명백히
 보인다고

 홀로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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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들에겐 눈꺼풀이 없고 우리에겐 있고 저기 저편 그들에겐


 수면에 둥근 원들이
 생기고
 넓고 얇아져
 사라지고
 생긴다

 계속
 사라진다
 계속
 산발적으로 불규칙하게 여기저기서 마구잡이로 그러나, 균일한, 크기, 넓이, 속도, 형태로, 파동, 난립하며,
 소멸한다

 때때로
 겹친다

 밑에서
 금빛 은빛 검은빛 잉어들
 노닐고 몰려 생존하고 다니며 쫓고 찾고
 보고,
 가장 진원(眞圓)과
 가까운 것
 들을
 보는 듯도
 한데

 비가 내린다.

 한 친구는 말했다
 이것들은 사람 그림자만 보면 밥 주는 줄 알고 몰려온다고
 그렇게 쭈그리고 들여다보다간
 빠지겠다고,
 또

 그것들은
 비를 볼 줄 모른다

 나는
 수면 밑의 삶
 을
 볼 줄 모른다.

 가끔 번개는 형형한데
 천둥이 들리지 않는다

 저 위에서
 이것저것
 떨어진다

 오늘이 금요일이고
 9월의 20일임을
 확인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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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놈의 도시는 매번 만날 적마다 꼭


 왜

 서울에만 오면

 때아닌 폭염에 도시는 삶아지고
 예측될 수 없는 비가 쏟아지고
 건물이 없어졌나 싶더니
 도시 구획을 순식간에 갈아
 세우고
 포크레인 톱날에 깨진
 보도블럭
 콘크리트 밑
 생살밖에 없던
 구더기가 잘려 또 생살을
 내보여야만 하고
 936만 개의 꿈질거리는
 생살들이 역류하는 하수에 휘
 말려 휩
 쓸리고

 나는 유쾌하고
 증오스러운지

 왜

 현관 밀고 들어가는 순간부터

 명준아아
 밥은 먹었냐아아아아
 아아아
 아아

 아……

 밥은
 안 먹었고

 그보다
 날갯죽지가 염병하게
 맹렬하게 아픈 게
 아무래도 뭔가
 돋을 것
 같은데……

 왜
 왼쪽만
 이리 아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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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소개라는 것들이 보면 다 작가 자랑이던데
살면서 자랑할 것이 술 끊은 일밖에 없습니다.

서점 및 인터넷 서점에서 판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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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전 두 市

글/시 2024. 8. 30. 02:25 |

오전 두 市


 팔월이 끝나간다
 밤공기 더는 뜨겁지 않다
 매미들 모조리 낙하하고
 죽었다
 귀뚜라미가, 운다 더러는
 지저귄다
 서울에만 오면 길을 잃는다
 밤이 너무 밝아
 발걸음을 뗄 수가 없다
 약은
 휴식을 보장하지 않는다
 고독을 잃고 나니 눈앞의
 길이 보이지 않는다
 나는 타는 심장의
 자라나는 분노와 그 불길
 을 쓰다듬으며
 산중의 적적한 소란을
 생각하려 애를
 쓴다

 여기는 집이
 아닌 듯하다.

 하여 예술 인문학 쏟아내려 바닥이 꺼지고 벽이 무너져 오로지 깊은 어둠만이 한량없이 펼쳐진 그 드넓은 심원한 어디에도 출구입구 없는 역사와 생이 수평선 없이 일렁이는, 백형의 방, 생각하고 그곳에 자생하는 실어, 속에서의 망각을 그리워
 하고 이제는
 석유 웅덩이 같은 창밖의 연못
 지나쳐 야밤에 모자 쓰고 오르는 언덕 위의 산신각과 연초와 기도
 터져 붉은 눈을 생각하고.

 한 달 사이 매미들은 무엇을 벗었고
 미소 지을 줄 아는 이들은
 대체 무얼

 팔월은 끝나가고
 밤은 깊어가고
 밖은 여전히
 밝고

 서울 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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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 이런 게 다 있냐 연못이라는 단어가 왜 연못인지도 몰라?


 연못에 갓 피어난
 흰
 연꽃이
 꺾였다

 맨발로 휘청거리며
 빠질 듯 안
 빠질 듯
 돌 밟고
 연못
 청소
 하던

 내 손에

 흰 연꽃이
 꺾였다

 여기 돌 위에서 내다보는 산사의 흑청색 기왓장 하나하나는 아주 적막과 고요와 정적과 원망과 분노와 증오와 시기와 질투와 불만 탐욕 분별 시비 내 입장 니 입장 아무 소리도 없이 외치면서 누구는 내키는 대로 절 생활을 한다느니 누구는 내키지 않는 대로 절 생활을 한
 다고
 그러는데,
 이거 다
 조용한 거라고
 평화라고 한다
 화합이고

 몇 번
 대충 여덟 번 정도
 빠질 뻔 했는데
 빠지진
 않았고

 제대로 걸려 넘어져
 흙탕물에 코박은 놈이 하나
 있기는 있는데
 청소는
 계속 해야겠고

 잘 보이지도 않는
 위를 보고

 구름 더럽게 두텁다
 햇빛도 안 쬐고
 좋네.

 아무튼,
 내가
 흰
 연꽃을
 꺾었다고.
 꺾였다고.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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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빛을, 하던 사람도 애저녁에 죽었고


 밤비 느닷없이
 쏟아진다

 양철지붕 때리는
 하늘
 무너지는 소리에
 잠,
 이루어지지 않고
 누워
 검은 천장
 바라보고
 뛰쳐나온다

 달이 보이지 않는다

 건물들의 창을 닫는다
 그것들은,
 처마가
 없다.

 꿈속에는
 몸,
 폭삭
 젖어있다

 어두운 꿈속
 까만 비에

 앞이 보이지 않는다
 앞이,
 보이지를 않는다.

 비는 내리고 산속은
 괴괴히
 적막하고

 잠들 수 없고
 깰 수
 없고

 결과,
 2,500원짜리 펜과
 묵묵히
 난동이며 폭동
 중.

 뇌수
 몸에 대한 원망
 은,

 너무 오랜
 지겨운
 성가심.

 앞이
 달이 보이지 않는다

 새까만 산속으로
 비척 비
 척
 올라서
 연초에 불 당기자

 새빨간
 불똥만
 보인다.

Posted by Lim_
:

서러워서 못 해먹겠고 또 걱정은 왜 이리


 그 사람은

 라면을 끓여
 전망이 탁 트인,
 은행
 나무
 밑에서

 라면을 먹었다.

 퍽
 야위었다.

 눈은
 냄비 뚜껑에
 그러나 풍광은
 볼 수 없이.

 사람이 없어
 사방이 고요한
 것
 같은데
 딱히 그렇지도 않다

 여기 작은 산 중턱
 작은
 세상
 맞은편에는
 화려한
 골프장

 뒤돌면
 남의 주방.

 그 사람은
 바삐 설거지를 하고 환기를 시키고 아무 흔적도 남지 않도록 주방으로
 떠난다

 나는
 곧 떨어지기 시작할 은행열매와
 낙엽을
 생각,
 아니,
 근심
 한다

 돌좌탁이 뜨겁고
 슬슬 바람에서는
 가을비 냄새나고
 싸리비 멀쩡한 놈 몇이나 남았더라

 뒤편에서
 설거지 소리 들린다.

Posted by Lim_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