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당한 게 아니야 나는


 멸종되었다
 작품이 컨텐츠가 되고
 창작자가
 소비자를 위한 공급자가 되어
 가는

 아주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수순에 나는 멸종 되었다 석유와 화석과 유령들의 손을 잡고 우리는 놀며 저주하고 더 깊숙이 썩어 망각 되며 히히덕거렸다 친구들은 할리우드를 인터넷 서점을 매스미디어를 증오하고 제2의 러다이트 운동을
 포기했다 참으로
 빙신들이었다
 나도

 그렇게 수도 없이 좌절에 몸을 담그고 병아리처럼 삐약삐약 죽음을 노래하다
 실제로 몇몇이 죽었다.

 예전에, 아마 서너 해 전
 서해안에 텐트 치고 시꺼먼 갯벌 너머 암자색 수평선
 줄곧 바라보다
 바라만 보다가
 어느새 골반까지 뻘 속에 묻혀있었다
 생각도 없이 따라간 듯한데,
 놀라지 않고
 당황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고
 살고자 하지 않고
 미적미적 다리
 며 발을 움직이다
 빠져나왔다.

 철버덕거리며 텐트로 돌아가
 가족들은
 또 무슨 짓을 하다 왔느냐고
 점토처럼 되어버린 하얀 운동화는
 아버지 것이었다.

 하반신이 썩어
 흘러내리고 있었다.

 나는 수백 차례 멸종되었다.

 멸종당했다 믿으며
 오색찬란 알약들을 생명, 으로
 활자에의 갈구를 인생
 으로
 삼으며
 죽음이어느길목에서있을지찾고헤매고그그림자보다가벼운것을등짝에짊어멘채

 나는 수백 차례 멸종되었다.

그런데
 그런 때가 온다.

 사람들의 안구에서 나타나는 빛나고 맑고 흐리고 탁한
 그 색채만이 기억을 온통 뒤덮어 기억
 속이, 그야말로,
 야밤에 전광판 네온사인 술병조각 담배꽁초 카드긁는소리 손흔드는추운여자 욕망으로 부스러져 켜켜이 쌓이는 창동역 1번 출구도 저리 가라 할
 빛깔과 색채의 광란만으로 모든 진실이 가려진
 장소가 되어있음을
 당신들의 표정에 비춰보며

 아, 멸종
 될 만도 하네
 빙신. 하고,

 석유처럼 녹아내리는 몸을 뽑아
 굴러 나와 돌아보고
 수 없는 모든 뻘에
 셀 수 없는 사람들 잠겨
 휘적휘적 죽어 춤추는 모습이
 과연 잘도 보이는
 때가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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