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에 대하여

글/시 2015. 11. 6. 03:09 |

고통에 대하여



1.

어둠 속에 성상이던 것들은

햇빛 아래서 늘 벽돌더미거나

깨진 바위거나 망가진 고철들이다.

그늘이 만드는 것은 환각이나 유령이 아니라

차라리 본질이다 성스러움에 대한

경외에 대한.


우리는 도시에 산다 고로

우리는 달빛조차 필요 없다.

삼백육십오 일 우리는 금화가 짤랑이고

네온사인이 영혼의 빛깔을 대신하는

우리가 새로이 만든 모더니즘적 지옥에서

기꺼이 알코올이 섞인 하수를 들이킨다.


나는 딱히 화를 내려는 것이 아니다 나는

심지어 화를 낼 수조차 없다.

절망이 일상이 된 이 도시에 알레르기를 일으킨

나의 몸에서는 피가 자글자글 끓고

이곳의 공기가 폐에 맞지 않아 호흡기를 달 듯이

새벽담배를 피운다.


나는 강가로 내려가 담배연기만을 숨쉬며

물로 된 근육들이 서로 부딪히며 흘러가는 소리를 듣고

울었다. 한참을 앉아 울었다.

사람들은 동정과 은화를 던져주었다.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나는 숲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이곳에는 숲의 침묵과는 다른 새로운 위대함이 있다.

그 위대함은 모두의 머리를 무겁게 짓누르고

절망에 둔해지게 만들며 눈물을 마르게 하고

결과적으로 빌딩 꼭대기에서 몸을 날리게 하는

악의로 입술이 뒤틀린 신이다.


사람들은 이제 고통과 허무를 섬긴다.

사람들은 지옥에 가는 것이 너무나 무서워서

직접 지옥을 만들고 즐거이 그곳에서 산다.

가끔 내가 어디에 있는 것인지

잘 알 수가 없다.


밤에 나는 항상 성상이 눈을 감은 자리에 가서

담배를 피우며 구원에 대해 생각해본다.

아침 해가 뜨면 저 성상은

다시 벽돌더미로 화할 것이고

구원은 어디에도 없다. 사실은

돌아갈 숲조차 이미 없다.

어디를 가든 나는 죽은 것에 그림자가 드리우면

거기서 우상을 볼 것이고

울고 있는 내게 아무도

왜 우느냐고 묻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실로 감사할 일이다.



2.

독자들이여! 내가 그대들에게 보여줄 것들은 그대들의 삶에 하등 쓸모가 없는 것들뿐이다. 나는 주로 죽음과 무의 안식을 노래하며, 증오로 바싹 날이 선 혀로 저주를 뿌리고, 그대들의 존재와 정신이 얼마나 경멸 받을만한 것인지를 논증한다. 나의 천성적으로 광폭한 성질에 말미암아 말 하건데 나는 이 노래를 쓰지 않았다면 구름조차 달을 가린 새까만 밤, 잘 벼린 단도를 하나 들고 직접 그대들의 침실로 숨어들어갔을 것이다. 예술과 중범죄가 한끝 차이라는 사실을 내가 말할 때마다 사람들은 질겁한다! 오! 그러나 독자들이여, 세계를 증오하지 않는다면 무슨 이유로 새로운 세계를 종이 위에 만들기 위해 영혼까지 팔아넘길 것인가? 내 삶에서 단 한 번도 갈증이 풀어진 일이 없다. 그것은 그대들이 서로를 죽이고 잡아먹으며 인간의 처절한 본성을 나타낼 때에만 풀어질 것이다. 나는 너무 오랫동안 참아왔다. 독충들이 드글거리는 것 같은 그대들의 세상에서 나는 양심이라는 한 올의 거미줄만도 못한 끈을 잡고 지금까지 참아왔다. 여러 번 나는 나의 눈물에 대해 논했다. 그러나 사실은, 나는 슬픔에 의한 눈물을 흘린 역사가 단 한 번도 없음이라. 나의 눈물은 항상 분노, 증오와 함께 삐그덕삐그덕하는 소리를 내며 흘러나왔다. 그대들은 모두 나의 원수여라! 삽으로 흉부를 후벼 파는 듯한 통증을 수반하는 나의 지병도, 그대들의 훌륭한 작품이다. 나는 그대들의 얼굴만 보아도 안구의 실핏줄이 터져버린다. 그 경멸, 조소, 비겁함, 악의, 기회주의, 자신이 죄인임을 모르는 그 떳떳함, 무지, 에고이즘이라니! 만일 내가 왕이었다면 내가 가장 먼저 내릴 명령은 전 국민에게 가스실로 모이라는 것이었을 터, 그러나 나는 왕이 아니다. 나는 이 사회라는 집단에서 가장 약하고 무가치한 글쟁이다. 보름의 금주로 나는 새로이 깨달았다. 나는 그대들을 한 없이 증오하지만, 그대들의 손가락질 한 번으로도 나는 죽어버린다. 껍질을, 더 단단한 등껍질을! 내가 숨은 채로 펜만 놀릴 수 있는 좁고 어두운 껍질을! 사실은 끝까지 숨어있어야 한다. 몇 번의 자살시도로도 이루지 못했던 죽음을 그대들에 의해 맞이하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지금 지껄이고 있다. 내가 얼마나 그대들을, 그리고 그대들의 세상을 경멸하는지를 지껄이고 있다. 왜 그대들이 밤의 대양에 빠져 죽어야만 하는지, 숲속을 활보하는 오래된 신에게 잡아먹혀야 하는지, 곡식과 석유가 떨어질 때 서로의 넓적다리 살을 찢어 먹어야 하는지! 선포하건데 나는 지쳤노라! 아름다운 문장과 시적인 메타포로 나의 증오를 가리는 일에 지쳤노라! 나는 증오한다. 나는 분노하고 저주하고 고통스럽다! 독자들이여, 나는 그대들이 정말로 싫다. 내 글을 읽어줄, 그리고 읽어주지 않을 인간들이 너무나도 저주스럽다. 부디 오늘 밤에는 눈물로 담뱃불을 꺼트리지 않기를. 나는 아직도 온 세상이 불타는 광경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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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이라는 공포에

글/시 2015. 7. 24. 23:44 |

영원이라는 공포에

 

 

이 행성이 고함지르고 몸부림치던 것은

대양에 물을 풀고 초목에 발자국을 내기 위해서다.

우리는 단어를 사용하는 법을 잘못 배웠다.

위험은 지상의 본질이다.

 

세 그루만 넘어가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차라리 새까만 녹색의 어둠 속에는

아직도 마물이 살고 있다.

월계수 나무 아래

발굽을 디디고서.

 

인간이 손에 쥔 칼과 톱은

공포에 대한 무기다.

그러나 고작 한 그루의 나무와

그 나무껍질의 거칠거리는 촉감과

둥치를 뒤덮은 키 큰 이끼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분명히 종말을 연상케 한다.

 

바위와 돌 사이를 위협적으로 굽이치는

산과 산 사이의 계곡물은

그 힘줄과 근육의 꿈틀거림은

화가들을 미치게 만들고 틀림없이 그 연식이란

바다의 나이와 같다.

 

우리가 왜 숲의 왕을 모시고 그 목을 잘라

나뭇가지로 만든 왕관을 새로운 숲의 왕에게

계승시켰는지는

오로지 풀과 나무와 지구의 혈액으로 포화된

원시의 숲에 가야지만 동의할 수 있다.

우리는 수풀에 발자국을 찍는 신을 경외했고

그만큼 그를 증오해야만 했다.

 

애니미즘은 분명히 우리의 심장에 새겨져있다.

어떠한 정신의 시대에도

우리는 원시 앞에서 졸도하게 된다.

인간에게 살해당할 권리를 가진

피와 털가죽을 가진 신들은

모더니즘과 사상개혁 밑에서도 죽지 아니하였다.

 

우리는 인류의 종말을 마주하고 살 수 있다…….

 

소금 기둥으로 만들어진 우상들의

태양과 모래의 땅과

무한을 현상으로 만드는

영겁의 파도소리로 으르렁거리는 대양과

캄캄한 신이 어슬렁거리는

덮쳐오는 녹색의 숲은

언제까지고 위협이고 공포이며

반드시 경외해야할

영원이자 종말―언어철학마저 분쇄하는―이다.

 

우리는 사시나무 떨 듯이 떨고

성냥개비처럼 쉬이 부러지고

불붙은 짚더미처럼 사라지며

사원에서 무릎을 꿇고

오로지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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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해(苦海)

글/시 2015. 7. 13. 07:41 |

고해(苦海)

 

 

평생에 한 번 뿐인 여인의 살갗을 지나고 나자 고해(苦海)였다.

시간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감각이 새겨진 온몸의 혈액을 빼내야만 한다고

나는 반쯤 미쳐 헌혈소의 의사에게 광란했다.

광란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당신의 피는 마시기만 해도

취할 정도로 약물과 알코올로 포화 되어있습니다.>

나는 이를 악 물고 헌혈소를 빠져나왔다.

스스로 동맥을 끊을 수도 있었지만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자살

이 아닌 혈액의 교체였다 이미 모든 감각과 망각하여야만 할

기억이 살아 흐르는 혈액의 교체.

 

여인이 영원히 떠났던 날의 깊은 밤

나는 지독한 술에 지독히 취했었고

그 이후로 단 한 번도 그 술과 눈물에서 깨어난 일이

없다. 그 이후로 단 한 번도 눈물을 보인 일이

없다.

기억이라는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날카롭고 노골적으로 자라나

나의 영혼에 뿌리를 내리고 가시를 박아

아아.

 

아직도 찾아오는 밤의 어둠 밑에서

담배의 역한 연기를 빨아 마실 때.

장마철의 축축한 습기와 비가

내 피부 위에서 동동 떠오르며 부유할 때.

함께 진탕 술을 마신 벗이

택시를 타고 돌아갈 때.

사실은 그런 순간들을

심지어 나열할 수도 없다.

 

여인과 함께 살던 녹음이 우거진 산에서 도망쳐 나와

이 더러운 콘크리트와 아스팔트의 한복판에서 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웃고 지낸다.> 나는 의사에게 말했다.

나의 친구에게도, 가족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고통의 대양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이 당연했을

때에 나는 고통스러운 만큼만 고통스러웠다.

이 우주가 맹목적이고 무의미하며

무자비하고 무작위하다는 것은

굳이 타인으로부터 설명을 듣거나

증명을 할 필요도 없는 자명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짧은 환희와 희열의 순간이!

 

최초의 상실. 그래, 그것은 최초의 상실이라고 불리어져야 한다.

왜냐하면 그 <상실한 것>을 제외하면

나는 평생 죽음의 암시 밖에 가진 것이 없었으니까.

고통을 감추기 위한 흉터, 밤의

창밖을 기어 다니는 환영, 갈색으로 빛나는 여러 개의

달과 지하철에 탄 노인의 눈동자에서 보이는

형언할 수 없는 공허의 구렁텅이. 그 마스크.

내 손에 잡힌 펜의 차가운 감촉. 어둠 속의

금화를 뿌려놓은 것 같은 천박한 네온사인의 빛.

 

무엇보다도 절망은 내게 당연했고 나는 당연히 절망해왔다.

태양을 싫어했기 때문에 내 피부는 회색이었다.(정확히는

이 땅에서 보는 태양은 내게 태양이 아니었다. 나는 항상 열사의 땅으로 가고 싶었다.)

그런데 그 순간은 잊을 것이 못 된다.

나는 나의 고통만큼 희열했다. 결국 잃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에 떠는 것과

현실의 달콤한 꿈에 취하는 것이 동시에 벌어졌다.

나는 그녀와 함께 살던 산의 어느 절벽으로 올라가

떨어져버릴 생각을 하면서도 행복했었다.

 

미친 감정이여…….

 

그날 나는 결국 나의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타성과 광기가 덩어리져 침묵하며 들어앉아있는 나의 집으로

그 집으로 가면 나의 끔찍한 상실이 더 높은 목소리로 고함칠 것 같아

그날 밤 나는 가로등도 없는 메마른 골목에서

벽돌담에 기대앉아 잠들었다. 아무런, 아무런 꿈도 없이.

깨어보니 사방이 고해였다. 새벽녘의 분홍빛 태양광선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더러웠다.

 

여인의 이름은 너무 길었기 때문에

나는 그녀의 본명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유난히도 뚜렷한 윤곽으로 추억하는

초록색 나뭇잎들과, 그 위를 방울져 흐르던 빛살과는 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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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선포한다

글/시 2015. 7. 1. 05:26 |

나는 선포한다

 


몇 번이나 자살을 기도했던 바
나는 죽음을 맞이하지 아니할 것이다.
내 자멸의 순간들에 부디 비극의 색깔을 칠하지 말라.
희망을 짓밟은 토양에서 자라는 깨달음처럼
내 몸에는 끓는 듯한 피가
혈관의 벽들을 태우며 흐르고 있다.
감상이 사멸한 불행의 인생에서
나는 내가 죽지 않을 것이라는 노골적인 암시를 보았다.
사형수들이 목 매달리고
소녀들이 손목을 절개하는 유쾌한 시대에
길게 빼 물린 혀와 교복의 스커트를 결합하여
혈액이 방울져 뚝뚝 흐르는 에로스를 모두에게 선고하라.
이것은 너무나도 진지한 농담이다.
이것은 프로이트가 선포한 농담이다.
그 이후로 모두가 뇌수를 달구며 매달려왔던 농담이다.
자기(그는 분열되었고)
자신의(그는 왜곡되었고)
판단력도(그는 이성理性의 범위를 측정할 수 없게 되었고)
신뢰할 수(그는 가상이 뜻하는 바를 잊어버렸고)
없게(그는 실재와 비실재의 경계를 잃어버렸고)
되었나니(그는 다원주의 속에서 영원히 방황하게 되었다.)
내 묘비는 어디에도 세워지지 않을 것이고
내가 보는 여름의 환영들은 감히 환영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아아, 아아! 나는 노래 부르고 싶다. 나는 비명
지르고 싶다. 더 깊은 땅굴 속으로.
신과 악마는 필요성을 상실했다. 그것들은 이제
신비주의자들의 노스탤지어에만 존재한다―사실은 신비주의자들이야말로
노스탤지어의 파편에 지나지 않는다.
샹그릴라도 유토피아도 지상낙원도 무릉도원도 천국도
결국은 생물학의 위장 속에 있었고
우리는 이제 물리학의 이름으로 공허를 관측한다.
곧, 나는 죽지 아니하니 나의 묘비를 깎지 말라.
실상은 그 누구도 죽지 아니하고―죽음이라는 개념조차 죽지 아니한다.
그 미스터리, 모든 지독한 농담의 수원지로 말미암아
최선은 항상 광기의 지팡이를 들고 휘두르며
불행을 불행이 아닌 불행으로
절망을 절망이 아닌 절망으로
오로지 삶에 들러붙어 노래를-노래를-노래를---
인류 역사상 최고의 발명품으로 인해
인류는 모조리 미치광이가 되게 생겼다.
지구가 칠십억의 분열증 환자로 가득 차게 될 것이라는 말에
반론하지 말라. 이것은 가장 낙관적인 예측이다.
언어철학이라니…….
여인이여, 그대가 낳은 것들은
생도 사도 아닌 광기의 부품이라오.
그러니 부디
내가 살아있었다는 생각조차 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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꼽추의 노래

글/시 2015. 6. 22. 08:22 |

꼽추의 노래



1.

당신의 맨 밑바닥에 분노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나면 어떻게 행복해질 것인가?


2.

경멸과 조롱의 팡파르가 울리오.

추한 곱사등이의 몸뚱이로 거리를 맴돌면

날아오는 돌멩이와 욕설이 차라리 즐겁다고 내 굽은 등은 웃으오.

아! 그런데 나 하나 모호한 것이 있오.

언제부터 내가 곱사등이의 몸이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으오.


나 어느 밤 사람들 몰래 어린아이 하나를

마대자루에 잡아넣고 내 소굴로 달렸오.

굴속에서 나는 아이를 꺼내

<이것보아. 이것이 행복해지는 약이야.>하며

알약 하나를 먹였오.

고독과 오래 살다보면 자연히 약학과 친해지고

어둔 굴속은 정신의 연금술이 태어나는 곳이오.


나 램프로 밝힌 굴속구석에서

손톱이나 물어뜯으며 아이의 눈동자를 보았오.

눈에 황금색 고리가 돌았고

속에서는 이죽거리는 멸시가 보였오.

낙타 혹 같은 내 등이 키들거렸고

당췌 내게 뭘 바라겠오?


여기가 반대편이오. 와서 무엇이든 좋으니

붙잡고 찬미하시오.

병신 몸뚱이밖에 가진 것 없는 내가

당신들 눈동자와 지저분하게 흘러내린 입꼬리를 볼 때

무슨 생각을 하든지 그것이 무어 중요하오?

나는 진흙으로 여러 번 사람도 빚어보았오.

그 뒤에 전부 짓이겨버렸오.


이제 나 햇빛 찬란한 날 거리에 나가면

아이 잡아먹는 꼽추라고 매질을 당하오.

나는 수그리고 엎드려 돌팔매질을 당하며

저쪽에서 돌 던지는 아이를 보며 웃으오.

매질이 끝날 때까지 나는 남들 몰래

행복의 알약만 두알 서알 삼켰오.


나는 늘 웃소. 와서 같이 웃으시오.

나 아무도 찬미하지 않고

나 아무도 손잡지 않고 웃으오.

나 가지가 모두 잘린 나무를 보았오.

푸른 풀밭에서도 그것만이 살아있는 것처럼 보였오.

불구에 상처 받은 것들만이 생명을 노래하오.

흑사병에 걸린 환자가 더욱 빛을 찾듯이.


부디 모두 행복해지시오. 그럼 나는

당신들 행복한 이들의 사회를 어두운 밤에만

골목골목을 전전하며 곁눈질로 찾겠오.

내 주머니에 수북한 행복의 알약은

당신들이 삼킬 때에만 내게 의미가 있오.

나 길게 기른 손톱과 굽은 등으로

그림자 진 가로등 뒤에서,

웃는 채로 굳어버린 내 혐오스런 얼굴을

태초의 표정으로 돌려놓을 신선한 물줄기를

공허하게 기다리고만 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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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것들

글/시 2015. 5. 23. 05:48 |

불타는 것들

 


보헤미안의 모습으로 도시 뒷골목을 거닐 때
하늘에는 태양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반쪽짜리 달이 뭔가를 외쳤고
나는 알아듣지 못하여 더 가까이
더 가까이 건물들의 잔해를 헤치며
하늘로 올라가는 계단을 찾아 헤맸다.

 

자유를 추구하거나 자유밖에 알지 못하거나
거추장스러운 것은
손목과 발목에 채워진, 굳은 피로 만든
두꺼운 사슬이었다.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은
이미 사형수의 피로 채워진 늪에
빠져버려
그들의 완전한 사회를 노래했다.

 

달이 또 한 번 무언가를 외쳤고
내륙의 도시에서 자란 나는 아프리카의
뜨거운 열기가 마시고 싶어
가본 적도 없는 고향의 노스텔지어를 울부짖었으나
아, 눈물은 다 말라있었다.
내 심장의 피조차 말라있었다.

 

이 건조한 도시에서 도대체 무엇을 만들 수 있담?
나는 의문하면서도, 커다란 캔버스에
불타는 숲을 그렸고
뛰쳐나오는 짐승들과 가죽이 타버린 갈색 여인들을 향해
손을 뻗고, 옳아, 그때서야 나는 울었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에서
낡은 술병에 담긴 독주를 꿀꺽꿀꺽 삼켰다.
왜냐하면 나에게도 평화가 필요하지 않았겠는가?

 

아니야! 그렇지 않다. 결코
평화는 필요하지 않았다. 나는 더 많은
더 독한 광기를 향해 혀를 뻗었다!
의사들의 알약과 불이 붙는 술잔들 그리고
감금 되어 등이 굽은 자들의 희열, 그런 것들이
나를 썩히고 있었고, 나를 썩히는 것은 희망과 평화였다.
<네가 앙드레 지드의 단말마를 잊을 리가 없다.> 존경해 마지않는 사탄이여.

 

달이 또 한 번 소리 질렀다.
그때 나는 그것을 이해했다. 달은 도망치라고 외치고 있었다!
그것은 계시였다. 또 한 번의 엑소더스가 필요했다.
그러나 오로지 한 명 만을 위한, 하나의 영혼만을 위한
바다로, 바다로! 지구는 둥글기 때문에
나의 항해는 끝이 없어야할 것이다.
바다가 뒤집어지는 파도와 해일을 마주할 때
불타는 물과 익사자들의 시체가 나의 작은 나룻배 안으로
쏟아져 들어올 때
나는 나의 죽은 형제들을 위해 환희의 비명을 지를 것이고
적그리스도라는 거창한 이름을
기뻐하며 내 몸에 낙인을 찍겠노라.

 

세계의 폭력과 미친 남자가 존재하는 한
세상은 아름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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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의 환각

글/시 2015. 4. 17. 09:20 |

지중해의 환각



그리스의 바위를 씹어 삼킬 때

나는 신이 필요 없었던 신화를 보았고―그 황금빛 하늘은 엄격하지 않았다!―

나는 바다로 쳐들어가

필시 이길 수 없었던 대양에게 익사를 거부하는

추한 인간의 표현을 하였다. 그러나 환희, 즉 고결한 절망은

내 입에서 뿜어 나오며 노을 걸린 하늘의 화주가 되었다.


나는 그것을 모조리 삼켜버렸다. 내 식도와 위장이 지글거리며

이제 나는 사람의 영혼 밖에 먹지 못하리라고

나는 오만하고 충동적으로 입을 쩍 벌려보였다.

나는 꿈을 꾸었다! 가죽부대를 나이프로 쭉 찢으면 포도주가

콸콸 쏟아져 나왔고 해변에는 내 손에 그을린 여자들이

내가 완전히 버림받음으로서 깔깔 웃고 뛰어다녔다.


흔들리는 배를 타고 대양으로 나갈 때 나는 심하게 앓았다.

독을 탄 악몽이 잠든 내 뇌수를 조금씩 괴사시켰고

나는 바다를 향해 토하고 눈물도 토했다-태양이 흐려지는 것을 보았다.

그 악몽은 절대 떠올리고 싶지 않은 것이었다!

내륙에서의 침잠, 전날 밤의 비바람에 온통 지저분하게 떨어져 죽은

꽃잎, 노란색의 좁은 방에 빈틈없이 들어찬 담배연기, 그리고 최악의 술……

거의 죽어가는 듯 누렇게 뜬 달. 그녀는 지금쯤 죽었음이 분명하다.


내 삶은 나를 믿지 않았다.

현실은 틀림없이 방해가 된다. 그러나 유일하게 마주 싸워야할 것은

현실뿐이다. 칼과 망치를 들고, 나는 칵테일 잔 위에 앉은 요정들을

짓이겨 죽이고, 눈동자에 딜레탕트의 시가 담긴 젊은이들을, 그들의

목을 칼로 무자비하게 찔렀노라. 나는 아름다움을 꿈만 꾸었던 것이다!

나는 피투성이의 시체조각들을 품에 안고 짐승처럼 울부짖었다.


오오, 그만. 그 끔찍한 도시에서의 잠들, 양식화된 석양, 죽은 마스크들……

그만! 나는 꽃핀 것들을 증오했고 질척거리는 늪의 주민들도 증오했다!

나는 괴물 위에서 살고 있었다. 절대 모습이 보이지 않기에

그 무엇보다도 두렵고 사악한 괴물 위에서. 나는 공포를 모르고

하여 한껏 취해 활개치고 다녔지만, 옳아, 이상한 방탕이었고 영혼의 사멸이었다.


나는 사막에 도착해 배에서 내렸다.

나는 사생아였다가 아내 없는 남편이 되었고

내 반쪽짜리 자식을 증오하다가 아비 없는 아들로 돌아갔다.


태양, 태양! 그 불의 구(球)를 찬양하라! 그것이 오로지 신과 닮았다!

태양은 이곳에서만 진실한 열기를 보였다. 그것은 미친 남자를 재로 만들었다.

모든 것이 명백해지는 소리가 들리는가? 그것은 당신의 귀가 아닌

눈과 코로 들릴 것이다. 한 잔의 독한 술로 담긴 태양의 진액과

열로 말미암아 쩍쩍 갈라지는 소리가 나는 사막의 모래를

나는 기필코 집어삼키고야 말았다.


새까만 대양과 흰색 태양과 소금의 사막이 한자리에 모였다.

나는 아버지의 시체를 한복판에서 태웠다. 불길은 나에게까지 번졌다.

온몸의 가죽이 타들어가고 나서야 나는 진짜 비밀을 알아차렸다!

그것은 공허였다! 그것은 인간으로부터의 탈피였다! 그것은 파열(破裂)이었다!

그것은 창조된 파괴였다! 그것은 야수의 삶이었다! 그것은,

그것은 인간이었고, 인생이었고, 죽음이었고, 우상의 시체로 만들어진 건축물들이었으며

그것은 불의 신이었고 그것은, 그것은.

아아, 너 언어여! 네 뒤틀린 유한성이여! 염병할! 나는 침을 뱉는다.


고통이 네 죄를 씻어 내릴지니! 지고의 숨결이 나를 꿰뚫었고

지옥이란 사실 시인들의 세계라는 것을 나는 깨달았다.

그리하여 내 눈동자는 유황색으로 타올랐다……


그러나 모조리 환각이야. 욕설을 씹으며 머리를 뒤흔들자

나의 두개골 안에서는 딸깍거리는 이상한 소리가 났고

연기 가득한 회색 방에서 나는 곰팡이 핀 이불을 덮고

손에는 나이프와 알약 한 줌이 쥐여있었다.

방 한 구석에 구르는 담배 파이프를 보고

나는 그만 웃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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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색의 갈증

글/시 2015. 4. 5. 05:49 |

갈색의 갈증

 


염세주의를 피하려고
두 눈을 지웠다
젊은 쾌락의 아이들이
놀고 간 자리 같은 세상에 앉아
시베리아의 밤을 꿈꿨다.

 

낮에도 어둠이 손에 잡히는
도시의 변방에서
밤은 어느 나라에나 공평하게 내리지만
태양을 못 본지가 너무 오래되었다
내 몸은 균사와 게으름으로 뒤덮여
습기 찬 바닥 위를 기고

 

태양이 내 병을 낫게 해줄 것이다.
이 땅의 푸르죽죽한 태양보다
훨씬 뜨겁게 훨씬 강렬하게 작열하는
지옥의 유황불보다도 오히려 흰색의
고통과 정화의 창이 내 영혼을 꿰뚫어야만
아, 이 축축한 콘크리트의 행성에서

 

내 환상은 사막을 굴러다니고 있다
갈라진 땅의 틈새로 호흡하는 열기와
지평선이 시작되려는 곳에 파도치는
공포스러운 대양이 날 기다리리라고
백일몽을 보는
해골 한 구가

 

어머니, 비명을 질러주세요, 어머니
새벽 공기로 가득 찬 내 가슴에서는
유독성의 연기만 피어오릅니다.
술도 담배도 여자도 가로등 밑에 버리고
오로지 태양 하나만 삼키고 싶다는
그런 갈증에
나는
너무 오래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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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백함에 대하여

글/시 2015. 4. 2. 08:37 |

명백함에 대하여


 내 애절함은 닳고 닳아 불경한 집착이 되었다. 애당초 사랑이란 없었노라. 모든 성애(性愛)가 성욕(性慾)으로 변모하면서 나는 태어났다. 피를 가득 담은 가죽주머니라면 무엇이든 상관없었다. 이 나라에서 네온사인이 가장 밝게 빛나는 곳에는, 자신의 등에 일종의 날개가 달려있다고 상상하는―누구의 깃털이든 밟기 위해 혈안이 된 소년들이 담배연기로 자신의 메마른 몸을 감추며 걸어 다닌다. 나는 그늘에 숨어 술병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마셔버렸다. 바다 건너의 일 따위 나는 모르오! 나는 외쳤다. 변명거리가 필요했고 입안에 머금은 것은 온통 핑계뿐이었으므로. 정직을 추구하기 위해 흰 것들에게는 모조리 잉크를 부어주었다. 비단 바다 건너뿐만이 아니라 오만 지평선들의 너머에 있는 것들은 송두리째 모른다고 욕설을 퍼부었다. 돌아오라. 부디 돌아오라. 그대의 죄악이 모두, 죄악이라고 부르고 싶은 것들은 모두 죄악이 되어 끈적거리는 선혈로 웅덩이 진 곳에. 여인들은 잉태하고, 여인들은 손톱을 세우고 잉태한다. 나는 당신의 아내를 사랑하지 않는다. 누구의 아내도 사랑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값싼 단어들은 새로이 만들어져야한다. 그러나 우선은 내리쳐 산산이 박살내어야한다. 나의 잔혹한 욕망들을 말로 만들어내기만 해도 너무 많은 눈물들이 쏟아져 내린다. 오, 부디 나를 동정해주시기를! 너무 많은, 너무 많은 언어들에 잠겨 나의 언어는 목이 졸렸다. 봄 햇살 밑에서 가볍고 얇은 옷을 입고 활보하는 여인들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혀를 깨문다. 흉기를 품고 사는 것이 나 자신인지 당신들인지, 광기는 투명해질수록 그 밑으로는 혼돈과 모순을 뚝뚝 흘려댄다. 마침내 모순이 더 이상 모순이 아니게 될 때까지 광기는 깨끗해진다. 발작하는 방법을 모르는 간질 환자처럼 잉크를 퍼부어주었다. 내 병에는 다시 잉크가 차올랐고 나는 마셔버렸다. 나는 시학에 대해 말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미학에 대해서도 말하고 싶지 않았다. 내 수첩 페이지를 먹은 염소는 죽어버렸다. 그래서 나도 남은 조각을 집어삼켰다. 갈증을 참을 수 없어 술집으로 도망쳤다. 생각해보니 매일같이 반복하고 있는 일이었다. 나는 내가 지상의 인간의 손을 붙잡고 있다고 믿고 있었는데! 그는 눈부시지 않은 황혼과 같아 위대했고 그 황혼에서는 가끔 날벼락이 쳤다. 그러나 매일 찾아오는 침묵의 새벽이여. 너는 광란이었고 미치광이들의 어머니―차라리 어머니의 치맛자락이다. 나는 그 손을 붙잡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오로지 그 이글거리는 것을 경외하는 추한 범죄자였다. 시꺼멓게 중독된 내 심장을 나는 꺼내 바친다. 그 독의 이름은 시(詩)다. 그 중독은 타인의 영혼을 머리 째 집어삼키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이 땅에서, 나는 불유쾌하게 부유하거나 늪 위를 걷듯 천천히 침수되거나 하였다. 그리하여 나는 왕이 되었다…….
 짐이 선포하노니 이 땅에 더 이상의 자비나, 혹은 자비라고 착각되는 것은 없을 지어다! 가신들이여, 짐은 왕정을 부정하노라. 왕정뿐만이 아니라 신정을, 공화제를, 민주제를, 모든 정부를 부정하노라! 오로지 야만만을 행하라고 짐은 명령할 것이다. 폭력과 테러와 반달리즘이 법이며, 또한 아무것도 법이 아닐 지어다! 유일한 지침인 아름다움은 피와 살점과 뼛조각 속에 있으며, 그것을 찾아내 내게 바치는 자는 칭송받을 것이다. 갓 태어난 자신의 새끼를 베개로 눌러 질식시켜 죽이는 어미에게는 짐이 눈물로 키스할 것이다. 약자를 구타해 죽이고 그 살점을 모닥불로 구워먹는 잡배들이 더 많은 식인을 행하도록 보조하라. 아버지를 죽이고 선생을 죽이고 짐에게마저 송곳니를 드러내는 소년에게, 짐은 기꺼이 목을 내어줄 것이다. 부디 모든 것을 원시의 혼돈으로 돌아가게 하도록 하라……. 그것은 그리도 아름다웠노라. 심지어 내가 왕이 아닐 때에도 그랬노라. 내가 거지에게 주머니를 털어 가진 것을 모두 내어주었을 때, 나는 미치도록 나 자신이 혐오스러웠다. 왜인지는 몰랐다. 영원히 모를 것이다. 나는 영원히 부랑하는 왕일 것이다. 종말은 오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나는 무언가에게 패배했으나 절대로 패배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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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비참

글/시 2015. 2. 18. 03:11 |

삶과 비참



세상은 잠들어있고 나는 내 살들을 물어뜯고 있다.

―그런데 누가 세상을 세상이라고 불렀는가?

잠든 이들이 가득한 영안실이나

서랍 속에 죽어있는 개미떼들이나

<세상>이라는 개념을 다르게 이해하는 데에는

언제나 죽음이 필요하다.


비참. 구토하고 싶어도 구토할 수 없는

나는 카페인을 왼쪽 팔에

모르핀을 오른쪽 팔에 주사하면서

입으로는 흰색의 중추신경억제제를

한줌씩 삼키고 있다. 비참함을 위하여.

내일도 내 눈에 어둠은 없을 것을

새벽이 가면 나는 비명 지르고 아파할 것이다.

도대체 왜 태양이 떠야하는지 소리치며 저주할 것이다.


모든 무게들이 타들어가고

남은 재로 만든 새벽 두 시의 밤공기는 참으로 좋았지!

그대로 나는 별나라로 걸어 올라갈 수도 있었겠다.

화학과 신경약리학이 만들어낸 몸뚱이는

검은 나무 밑에 눕혀두고.


거울을 보면 눈이 붉은 포식성의

늙은 야수가 보인다. 담배를 문, 포기의 낯을 한.

심지어 내 영혼은 아직까지도 하늘만을 보고 있다.

<살아가고 싶지 않다>와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다>가

다른 의미를 가지는지 아닌지

오로지 폐에 니코틴만을 꾸역꾸역 밀어 넣다보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문제가 되어버린다.

세상은 한때 아름다웠는데


자살하는 자를 비웃고 살아가는 자를 경멸하고

냉소주의는 나에게도 칼을 들이댄다.

아무도 특별할 수 없다. 아무도.

때가 되어 안구출혈이 일어나면 나는 성당으로 향해

해머로 하얀 성모상을 때려 부수고

사랑을 설파했던 어느 가엾은 남자의 손과 발에서 못을 뽑아

십자가에서 내려 껴안고 울어줄 것이다.

우리는 모두 버림받은 뒤부터 살아가는 것이라고

목수의 아들에게 눈물로 속삭일 것이다.


아프다. 모든 것이 정말로

더럽게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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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어디까지 포용하는지



별이

뜰 리가 없는 곳에

별이 뜬다.

당신은 믿겠는가

그곳에 별이 뜬다는 것을.


나는 믿는다

나는 한없이 믿는다

단 한 번도 별이 뜬 적이 없는 곳에

별이 뜬 것을.

나의 새빨간 심장을 흔드는

뒤흔드는 그 인공적이고

믿을 수 없는 섬광을.


나는 한껏 취해

내 혈관을 도는 알코올과 환희와

누구도 비춘 적이 없는 어둠에

고고하게 빛나는 신성을

비명 지르며 맞이한다.


소리쳐라! 비명질러라!

마치 당신에게

아직은 오지 않겠다고 약조한

죽음이 찾아온 것처럼.

노래해라, 백마가 밤하늘을 달려와

당신에게 노래하듯이.


우리는 하늘을 바라보며 산다.

우리는 하늘에 맺힌 이슬을

빨아 마시며 산다. 저 하늘의

인간의 짧디 짧은 인생을 웃으며 내려 보는 듯한

혈액이 흐르지 않는 불가해의 얼굴을

손에 거머쥐기 위해 빌딩 꼭대기에서 발을 구르며

뛰어내리면서.


언제 내일이 찾아올지

부디 셈하지 마십시오.

우리의 피는 삶만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고

현자가 되지 못해

산꼭대기에 영혼들을 심어놓은

그리고 세상의 모든 색깔들을 빨아 마신

그들이 이야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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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 人, 人

글/시 2014. 12. 27. 19:45 |

人, 人, 人



매일을 패배를 마시며

살아가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모르는 이들은

땅 끝 저편에나 잠겨있겠지. 고로 나는 말한다.


우리처럼

몸에 털이 많지 않은 종족은

생존에 적합하지 않아

죽어 마땅하다.

빙하기는 언제나 올 것이며 오고 있고

그저 숨죽이고 있을 뿐이다.


음악이 절망의 고성이기를 그만두고

달콤한 쾌락의 유사품이 되도록 만든 이들이

인간을 인간처럼 만들어버렸다……우리는 모두 불임을 유전 받았다.

우리의 정자는 포르노 회사의 작은 기계장치가 되고

결코 자궁이 아닌 곳을 향해

헤엄친다. 익사자처럼.


시대에 대한 분노는 그만! 제발

오로지 야만이어야만 하는데.

나는 몇 번이나 내 머리를

절개하고 나의 뇌를 끄집어낸 뒤 살아가는 것에 대해

상상하다가 좌절해버려 손가락을 잃었다.

오로지 야만이어야만 하는데.


나는 타인에게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지시할 배짱이 없다.

다만 지금도 손톱과 송곳니를 기르고 있다. 그것은 손가락보다

훨씬 명확하며 언어의 바깥에 있으니까.


가난하고 비참하게 산다는 것은

결국 내 영혼을 비대하게 만드는 결과밖에 낳지 못했다.

나는 더 이상 가난하지 않다. 나는 비루한 건물 앞에 서있는

흉측하도록 커다랗고 위압적인 석상이다.


황혼에 나는 소시민의 껍질을 뜯어내며

계속 계단을 오른다 한 걸음씩. 내가 어떤

시간에 눈을 뜨고 비명을 뱉으려다가

입을 틀어막는지 나에게 세어보라고 하며.

차라리 현실은 꿈이다.


내 삶에 필요한 것은

로맨스가 아니라 짐승의 살결이며

나는 오늘도 라면냄비를 씻으며

눈물에 대해 생각해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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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로르와 말도로르가 아닌 모든 이들에게


시린 날씨가 돌아왔습니다 나는 전처럼 내가 길거리로 나가 돌을 베고 잠들기를 원합니다.
다음 날 깨어났을 때 내 육체가 얼어버렸다는 것을 알고 하늘로 떠나는 상상을 말입니다.
그러나 나는 떠나는 사람이 아닙니다.
나는 언제나 머물러 떠나보내는 사람이었습니다.

내 영혼의 한 조각을 채워준 사람들을 떠나보낼 때마다
나는 그들이 떠나는 것이 슬픈 것이 아니라
그들이 나를 사랑했다는 것에 슬퍼합니다.
감정이란 손끝과 눈동자의 마주침 사이에서
쏟아져 내리며
언뜻 보기엔 불공평한 비율로 교환되는 것이기에.

나를 사랑하지 마십시오―나는 사랑하지 않습니다.
내가 언제나 골몰했던 것은
상처입지 않기 위해 포식자가 되는
목덜미를 물어뜯기지 않기 위해 송곳니를 기르는
고독 속에서 신성을 얻은 나의 친구가 말하듯이
길게 기른 손톱을 순진무구한 신생아의 심장에 찔러 넣는
괴물이 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마차는 도망>칩니다! 마차는 도망칩니다!
하늘에서 번개같이 떨어져 내린 것이든
사람들의 악수 사이에서 뻗어 나온 끔찍한 손아귀든
왕들의 외침 속에서 생명을 얻게 된 글귀들이든
그것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하여!

마차에서 굴러 떨어진 아이를 짓밟고
그의 머리를 망치로 터트리십시오. 그것이 내가
내가 당신들에 대해 알고 있는 그리고 당신들에게 기대하는
모두에게 승인받은 잔혹성임을 증명하는 일이기에!
내 갑옷을 벗어던지지 않을 최후의 보루기에!
내 튀어나온 뼈들의―그 날카로운 골격을
숨죽이게 하지 않을, 내가 믿는 진실이기에.

언젠가 내가 얼굴을 잃는 일을 기대하십시오.
만일 내가 나의 모든 마스크들을 불태운다면
그것은 분명 당신들을 위해서일 테니.
승리 없는 전쟁에게
건배.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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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정신

글/시 2014. 11. 25. 21:18 |
시대정신


현실은 병신이다.
그것도 그냥 병신이 아니라
다리 세 개는 잘려나가고
나머지 하나는 삐걱거리는 테이블만큼
병신이다 우리는
그 테이블에서 식사를 해야 한다.

어른이 되면 자유로워질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내 유년의 최후였다.
자유라니, 도대체 얼마나 왜곡된 개념인지.
지금 내가 자유라고 생각하는 것은
자신도 잃어버릴 만큼 술에 취해서
고꾸라지는 순간의 망각뿐이다.
아무런 공포도 없는, 죽음과 가장 가까운
여름날 거리 곳곳에 너부러져있는
초록색 술병과 움직이지 않는 몸뚱이들.

사랑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그것은 떠나야만 했던
떠나지 않으면 안 될
생명의 한계와 같은 것이었다. 참으로
그래서 내 영혼은 내 인생 전부를 합해
단 세 달만을 살아있었고
아무도 개골창을 흐르는 하숫물을
생수(生水)라고 부르지 않는다.
나는 주로 시체들과 섹스를 한다.
사랑이 떠난
회색 욕망들.

나 자신을 죽이는 것은 유쾌하지 않다
그래서 이따금 칼을 들어보았다.
세상에는 도덕과 윤리를 초월하는 살인이 있다고
어느 법대 학생처럼 생각해보려고 했다.
모든 핏자국이 잉크와 활자로 뒤덮이는 시대에
초월적 정의 같은 것이 굳이 무슨 위용이 있어야 할까.
우리는 침수되고 있고 썩어 가라앉는다.
초원의 사자 같은 이빨이 갖고 싶었다.

우리는 잘못된 방향에 있다.
이것은 변환기가 아닌 침체로 향하는
마지막 골목이다. 바람은 차가워지고 사람들은 옷깃을 여미고
나는 어제 꽃도 피지 않은 나무를 쓰다듬다가
가시에 찔려 몇 방울의 피를 흘렸다.
이제는 슬픔이나 절망이라는 말조차
싸구려가 되어버려 함부로 발음할 수 없다.

마지막 계절
광기조차 파괴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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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 속의 폭도

글/시 2014. 11. 23. 15:35 |
밤 속의 폭도


가끔씩 가슴이 난장을 깝니다.

그럴 때면 가슴이 울렁거리고
어째서인지 슬프고
어째서인지
이젠 고장이 나 바싹 마른 눈물샘이
울고 싶다고 발악한다.
그러나 아무 일도 없는데
그러나 누구도 없는데.

그러나 아무 일도 없어서
그러나 누구도 없어서 슬픈 것이다.
오늘도 내가 매일 담배 피우는
그 자리에서 보이는 창문은
열한 시면 불이 꺼지고
비둘기들은 건물 옥상 옆
녹슨 굴뚝 위에서 잠들고.

매일 똑같은
똑같이 슬픈 밤이 오면
나는 그림자 속에 앉아서 연기를 뱉고
매일 이맘때면 나는 이미
눈동자가 녹아내릴 만큼 술에 취해있고
내일이 오리라.
내일도 태양이 뜨리라.

담배 때문인지 점점 숨쉬기가 힘든
가깝고 가까운 미래로 향할수록
나는 잠들 때마다 내일
영원히 눈 뜨지 않을 내일을 상상하고
어둠은 건조한 공기 속에
후두둑 후두둑 떨어져 내린다.

내일도 여전히, 내 흔들리는 척추를
받쳐줄 꿈속의 사랑은 없을 것이며
월요일의 해가 뜨면
나는 나의 술과 담배를 사기 위해
일을 하러 나갈 것입니다.
Posted by Lim_
:

결코 완성되지 않는

글/시 2014. 11. 18. 20:59 |
결코 완성되지 않는


당신에게 한 마디만 남기고 싶었다.
언어로 추락하지 않는 한 마디만 남기고 싶었다.
우리는 같은 시대를 살았지만
서로 다른 시대로
죽어간다.

내 손 끝에 한 방울의 미지근한 물방울이
닿았을 때 나는 그것이 벌써 추억이 되었음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이미 정적뿐인 추억. 나는 지금도 그 때를 기억하고
기억할 때마다 나의 우주에서는 소리가 사라지고
희고 담배연기 색깔을 띠는 뼈로 된 창살 속에서
괴물 하나가 운다.
너무 울어서 이제는 울음소리 대신
폐에서 올라오는 붉은 피가 번져나가는 잉크처럼
비에 맞아 무너지는 찰흙인형처럼
모노톤의 영혼. 괴물은 운다.

연극무대 위에서 과거-현재-미래는 계속 뒤집히고
아니요 나는 사랑하지 않아요.
내가 아는 것은 그것뿐이다.
아니요 나는 살아가지 않아요.
몇 번이나 밤이 오고 유리창에는 달이 비추고
어젯밤 자살을 실패한 사람에게
오늘 또 해가 떠버리고 만다.
고독의 끝자락에 온기가 닿았던 시절 때문에.

누군가의 눈동자에서 빛을 발견했다면
그녀의 눈꺼풀을 닫아 꺼뜨려라.

괴물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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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국금지령

글/시 2014. 11. 11. 18:16 |
출국금지령


나는 노래하지 않는다 낮에는
수십 개의 알약이 목구멍을 넘어가고
새벽 중 울음소리에 깬 짐승처럼
초점 없는 눈동자가 광야를 돌아도
나는 노래하지 않으련다 꼬깃꼬깃 접한
오천 원짜리 지폐를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저 가난이 주름이 되고 눈동자가 허옇게
뜬 늙은이들이 혀를 늘어뜨리고 걷는
시간에는.

어머니는 주로 나를 미워하고 아들을 사랑하니까
내 방에 놓고 온 나의 심장도
그녀가 쓸어 담아 집 앞에 내놓겠지.
아아! 집으로 가는 길은 어디입니까 나는
낯모르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흰색 벽지에 양귀비를 그려놓은 붉은
붉은 방을 찾아 헤매고
여기는 생활이 있는 사람들의 땅이야 고로
여기서 마시는 생수에서는 이국의
냄새가 난다 바다가 없고 태양이 없고
달궈진 모래는커녕 유황불 같은 리큐어도

파란 나팔꽃의 작은 씨앗이 어떻게 광증이 된다지
나는 손을 내밀며 묻곤 하는데
나는 사람을 만들지 못한다 나에게는
신을 만들 기술 밖에는 없다.
내 호주머니에 담긴 열쇠는 잠그기만 하는 열쇠
외출할 때 문을 잠궈버리면
들어갈 수가 없다.

너무 많은 고통을 배설했다
아귀가 맞지 않는, 모든 땅과 바다 속에서 끌어 모은
한 사람의 인간이 이런 것들을
단숨에 가지고 있어도 되는 겁니까
그러나 걱정할 필요는 없어 너는 와이셔츠도
입지 않고 심지어 아무도 네 갈비뼈를
마주 잡지 않으니. 모래와 태양의
모래와 태양의 땅으로 가야겠어요 한 척의
낡고 거대한 배를 타고 멀미와 병에 구토하면서.

다 타고 남은 것들만 있는 땅에는
고통도 녹아 기화하고 슬픔은 훤히 드러나
그림자를 잃겠지요 노인들은 나무 장승처럼
잘 타는 땔감이 될 것입니다……
불의 냄새가 나는 벽돌들로 집을 짓겠습니다
그러면 나는.

젠장, 젠장! 도시에서 사는 바람에
도시에서 너무 많은 담배를 피워서
내 폐는 계속 연기를 뱉습니다
저녁에는 영혼의 외침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몇 잔의 술을 마실 것이고요.
그리고 밤에는 기침을 앓으면서
빈 방에서 잠들어야만.
Posted by Lim_
:
사람들은 정육점에 갈 때 울지 않는다


슬픈 냄새들은 언제나 슬프다.
왜 슬픈지도
모르겠다. 그 냄새가 어디에서 왔고
나는 무엇을 추억하고
누가 슬퍼하는 것인지
나는 모르겠다 젠장할 담배연기와
추운 가을 밤.

눈물을 잃어버렸을 때 슬픔은 더 슬프다
배설되지 못한 감정은
막힌 눈물샘으로부터 30cm 정도 밑에 있는
인간성 어딘가에 쌓이다가 결석이 되어
결국에는 아무도 진단
하지 못하는 질환이 된다……감상주의자들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들은 심장이 없으니까.

그 슬픔이라는 것은 어디서 풍기는 냄새인지
가끔은 내 손목뼈 부근에서 피처럼 솟고
가끔은 식당에 들어갈 때 날 멈추게 만들고
가끔은 곰팡이 속에 핀 곰팡이처럼 이불 속에
내린다. 그러나 지하(地下)에서 살 때에는
항상 영혼이 깎여나가 있었기 때문에 눈치 채지 못했다.

그 냄새는 심지어 술에 취해 있을 때조차도
어딘가에서 날 쫓아와 내 술을 죄 도로 가져가버린다. 지랄
같은 것들……그럴 때면 열 살 무렵 내 이마에
성유를 찍었던 신부님에게 찾아가 따지고 싶다.
도망자들이 왜 성당으로 숨어드는지 압니까? 그것은
하느님의 옷자락에는 추억할만한 것이
아무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시발.

생각해보니 난 세례명도 없다.

그런데 너무 오랫동안 괴로워하면
슬픔도 발작을 합니다. 라고 내가 검지와
중지를 들어 올리면서, 거울 앞에 서서 설명했다.
눈물을 기억할 때에는 울고 싶어지고 그리고
운 좋은 사람들은 울게 되지만
슬픔에서 고통으로 직통 열차가 달리게 되면
그리고 너무 오래 달려서
철로마저 습관이 되어 버릇이 되어 반질반질하게
알루미늄 같은 광택을 내면.

우리는 광란한다.
광란한다 우리는. 슬픔이 원래 어떤 색이었는지
점점 기억나지 않고 손목에서는 신선한
샘물처럼 신선한 피가 퐁퐁 솟아나고 상처는 닫히고
손에는 망치와 톱. 당신이 코뮤니스트이든 아니든
우리에게는 상관할 바가 못 된다.
괴로움이 광기의 춤이 되고 외로움이
콘크리트 사이를 메아리치는 웃음소리가 되고

<숲의 화재는 광기다>라고 말한
내 첫 번째 시인, 그 사람이
불붙은 사방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는 암소고기>를
내밀 것이다.

이제는 슬픔을 맡으면
슬픔이 목에 턱 막혀
미처 슬퍼하기도 전에 피 냄새가 난다.
Posted by Lim_
:

도시살이

글/시 2014. 10. 24. 01:41 |
도시살이


나뭇잎이 떨어지고 거리에서는 은행 냄새가 납니다 나는 가끔 친구를 얻고 자주 친구를 잃는 와중에 술을 마시고 담배를 마시고 밤에는 어둠이 긴 것을 슬퍼하고 아침에는 태양으로부터 도망치고 빛이 내리는 모든 광경들을 향해 족히 몇 주는 깎지 않은 나의 길고 슬피 앓는 손톱을 박아 넣습니다 커피로는 성이 차지 않아 카페인과 발광하는 잠들지 못하는 눈 감지 못하는 광증을 심장 깊이 주사합니다 나는 점점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잃어버리는 만큼 새로운 것들을 얻고 있습니다 과거로부터 기어 올라오는 상처의 웃음소리를 오물에서 발견하는 아름다움을 높이 치솟은 건물에서 들려오는 굉음과 지진의 전조들을 밤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종말의 암시들을 나는 제정신을 잃고 있습니다 반쯤은 나의 고의입니다 새벽 중의 강가에서 별과 달을 향해 세계의 법칙을 부르짖었던 것이 언제였나요 모든 것에 천천히 녹이 슬고 있습니다 나의 영혼은 육체를 지겨워하고 있습니다.

내 통장에 참으로 오랜만에 많은 돈들이 웅크리고 있습니다.
나는 가난에만 익숙해진 탓에
차라리 그것이 습관이 된 탓에
다시 가난해지기 위해 지폐들을 개골창에 빠뜨립니다.
가끔 허리가 굽은 사람들이
스스로 작아지며 떠내려 옵니다.

내게 많은 종이돈들이 생겼으니 이제
나는 나의 친구들을 만날 때 아침에도 취한 채로
거리를 걷습니다 그들을 만나러 가는
아침 햇살 번쩍이는 지긋지긋한 도시를
취객의 발걸음으로 관통합니다.
올곧게 걷는 사람들이 모두 나의 적이라고
나는 분노도 없이 말합니다.

인간이 하늘을 날기 시작하면서부터
떠나는 것이 퍽 쉬워졌습니다.
그저 떠나고자 하는, 돌아가고자 하는
그런 사람들을 우리는 묶어두지 못합니다.
나는 최소한의 예의와 존중을 위하여
만취해 고개도 가누지 못하는 몸으로
떠날 이들에게 웃음과 인사를 건넵니다.

나에게 호의를 가진 사람과 만난다는 것은
아직도 내게 가장 큰 미스터리입니다.
내가 누군가를 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은
참으로 생소하고, 나는 아직도
그들이 한 병의 소주도 남겨두지 않고
떠날 것을 대비하여 눈동자로 두 병의 소주를 마시고
놀이공원의 거울에 비친 감정들만을 씹어
후두둑 후두둑 떨어트리며 웃는데.

내가 독백을 하지 않게 되는 때가
마지막일 것이라고 말하겠습니다.
너무 많은 술을 위장과 뇌와 혈관에
부어넣어 기억을 거부하고
절대적인 피로에 짓눌려 바닥에 쓰러질 때
나는 울지도 않고 웃지도 않습니다.
광기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은 고의로 망가지는 것
뿐입니다.

새롭고 동시에 오래된 생활을 시작하면서
나는 내가 고통을 두려워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내가 수 년 동안이나
방 밖으로 나가지 않은 이유였습니다.
나는 내가 충분히 마모되었다고 생각했으나
나는 광석 나부랭이가 아닌 펄떡이는
그러나 한없이 취약하게 펄떡이는
진액과 혈액을 뿜어대는 살덩어리였습니다.

아편이 아니면 권총을, 나는
아직도 꽃이 피고 지는
찰나의 계절에서 살고 있고
한 페이지 한 페이지마다 과잉되어있는
죽은 작가들의 발광과 포효를 견디지 못해
더는 책을 읽을 수가 없습니다.
Posted by Lim_
:

일단은

글/시 2014. 10. 16. 01:38 |
일단은


일단은 살아보고 있다.
가로등이 어둡게 깜빡이는
밤에만 살아있기는 하지만
일단은
살아보고 있다.

자주 꽃과 하루살이들에게 질투한다.
단 며칠만 생명과 생존을 노래하다가
당연하다는 듯이 깊은 충족감과 함께
콘크리트 바닥에 떨어져 썩어가는
그들에게.

오늘은 깨어난 지 다섯 시간이 되었다.
그늘진 거리를 곁눈질하면서 걷다가
몇 개비의 담배를 다 태워 떨어트리고
벌써 피곤해하는 눈동자를 끌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먹을 것이 라면밖에 남지 않았기에
나는 아무것도 먹지 않고 바닥에 엎드려 울었다.
창문 밖에는 벌써 찬바람이 웅웅거리며 울고
내 컴퓨터 스피커에서는
항상 익숙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생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친구는 여자를 만나보라고 거친 조언을 해주었다.
나는 일주일 만에 면도를 하고 거울을 보았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이 아니었다.
정말이지 그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과거에 낯선 침대에서 함께 누웠던
눈빛이 파리하고 몸 곳곳에 문신이 있는
초췌한 위악으로 분장한 여자들을 생각했다.

밤거리에서 손을 잡고 걸어가는 연인들을 보았다.
나는 이름 모를 구역질과 분노를 삼키며
내가 왜 그것을 삼켜야하는 지도 모르며
그들의 웃는 얼굴을 힐끗 보았다.
날고기가 먹고 싶었다.
야만의 세계에서는 가장 먼저 살해당할 내가
지금 이 행성의 어떤 인간보다도
야만의 감각을 갈망하고 있다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주로 환상을 배고 잔다. 그것이 환상인 줄
빤히 알면서도, 나는 아무도 찾지 않는 환상을
내 폐허가 된 가슴에 주사한다.
언젠가 그것이 누워있을 때뿐만이 아니라
도로 위에 불안하게 서있을 때까지 날 끌어안으면
그때는 패배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미치광이가 되는 일도 그리 쉽지는 않다.
나는 꿈꾼다.

꽃이 떨어지고 있다.
낙엽들이 쌓일 것이다.
창문들이 닫히고
이윽고 눈이 내리리라.
일단은 살아보고 있다.
Posted by Lim_
:
우리는 신을 잃어도 꿈을 꾼다


가을이 가까워지면 여름 내내 뛰놀던 남국의 혼령들이 자신의 동굴을 찾아 기어들어간다.
나는 낡아가고 있다.

깜빡거리는 도시의 주황색 불빛이
내 동공과 망령을 끌고 다니면
나는 잃어버린 사람들에 대한 생각을 한다.
내가 찾기도 전에 잃어버린
사람들 그들은 다른 행성에서
사막과 태양이 충만한 저쪽 지평선에서
모두에게서 잊혀지는 시간만을
축복으로 알고 휘적휘적 걷고 있다.

항상 밤이다. 도대체 무엇이
나를 밤에만 살아있게 만드는지, 이제
내 위장은 카페인이나 알코올이 아닌 것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내 영혼은
악마처럼 순진하고 잔혹한 피부를
육체 속에 감추어 둔다. 내가 잃어버린 사람들도
분명 무어라고 잔뜩 휘갈겨 쓴 종이와
사랑하는 사람의 온기를 느낄 때의 눈물 사이에서
방황하다가 실종되어 버렸다
고 나는 생각한다.

책을 읽지 말아야만 한다. 반드시
특히 근대 유럽과 소련에서 살던
겨울만을 숨 쉬던 작가들이 써놓은 유품은
너의 생존에 불리하다. 당신은 스스로
낡아 폐물이 되어가면서 점점 높아지는 것을
마침내 한때 짜라투스트라가 살았던 산에서
그 동굴에서 두 눈을 도려내고
혀를 자르고 세상이 끝나는 안식을 얻을 때까지
소리도 나오지 않는 비명으로 느낄 때,
이 지구에서 실종 되어버릴 것이다.

사막에서 태양빛을 마시며 죽어가는 것에 경외를
낡은 장기에 끝없이 너에게 가장 슬픈 독액을 부어넣는 것에
잃어버린 사람들이 잊혀지는 것을 갈망하며
어느 산맥에서도 찾을 수 없는 망자로 화해가는 것에
경외를.
Posted by Lim_
:

밤의 광란과 두 사람

글/시 2014. 10. 8. 04:23 |
밤의 광란과 두 사람


괴로운 과거를 돌이키는 것은
그만 둬, 네 현재를 더 괴롭게 만들 뿐이야, 라고
늙은 어른이 말했다. 그는 아내와 함께
몇 명의 아이들을 갖고 있고, 직장에서 빠짐없이
일하는 것은 아버지가 되어버린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고 당연한 것이라고 중얼거렸다.
늙은 소년은 그의 말을 듣고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과거고
언제부터가 현재이며 미래는 어느 방향에서 오는지
잊어버린 지가 너무 오래됐어요. 생각해보니
전에 만났던 심리치료사가 우리는 당신을
결코 고칠 수 없으니 다른 병원을 찾아보라고
친절한 혀로 말했던 기억이 나는군요. 하지만 나는
머리가 좋습니다. 주로 늙은 어른들과 만나면서
그들의 표정과 낡은 치아 사이로 흘러내리는 타액을
한참이나 연구했었죠.

현대 약학의 노예가 되지 않으려면 네 정신을 개조해야해
너는 슬픔을 떨칠 때 어떤 방법을 쓰지? 늙은 어른이 물었다.
주로 신경안정제와 항우울제, 그리고 알코올입니다.
그때 늙은 소년은 사무실 벽을 재빠르게 기어가는
한 마리의 바퀴벌레를 주시하고 있었다. 십 년 전에는
달랐어요. 그때는 약이나 술을 먹지 않았죠. 그때 저는
우는 방법도 모르는 멍청한 아이였기 때문에
슬픔을 해소하는 방법이 실재하리라는 상상조차도 하지 못했답니다.
사실 슬픔이나 고통이 무엇인지도 몰랐어요. 왜냐하면
그들은 제가 기억하는 가장 깊은 기억 속에서조차도
내 살점과 내장의 일부인 듯 친근하고 항상 당연하게도 뼈를 아프게
만들었거든요. 정말이지 뼈가 썩어 들어가는 것처럼 아팠어요.

네가 기억하는 가장 행복했던 시절을 떠올려봐. 늙은 어른은
마치 늙은 어른처럼 말했다.
늙은 소년은 입을 벌린 채 한동안 멍하니 허공을 쳐다
보았다. 그의 손은 향정신성 약물의 금단증상 때문에
폭발하기 직전의 자동차 엔진처럼 자꾸만 벌컥벌컥 쏟아졌다.
사랑이라고 부를 수 없는 사랑을 했었어요. 늙은 소년이
머뭇거리면서 내뱉었다. 왜냐하면 망가지고 부서진 인간은
망가지고 부서진 인간밖에 사랑할 수 없거든요. 아십니까?
그러므로 제가 겪었던 절망과 희열들은 사랑
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그것은 슬픈 경외였죠. 그는 유난히 형용사를 좋아한다.

시인이라고 해서 꼭 시인처럼 말할 필요는 없어.
물론입니다. 늙은 소년이 고개를 끄덕였다. 밖에서는
창문 밖에서는, 어둠이 엎어지고 구르며
상처 입은 무릎을 이끌고 절뚝절뚝 걷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런 대화를 하고 있죠? 늙은
소년이 갸우뚱거리며 물었다.
글쎄, 사실 난 네 행복에 별 관심이 없어. 넌
나보다 먼저 사라질 테고, 난 너보다 먼저 죽을 거야.
아마도.
사실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굳이 악수를 해야 할 이유
따위는 어디에도 없어요. 다만 나는 당신이
인간이라는 점이 다소 기쁘군요. 나는 혼자 있을
때면 주로 내가 만들어낸 신들을 찬양하는 기도를
중얼거립니다. 그들은 대부분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고
결정적으로 광기로부터 자유롭지 못합니다.

신이 광기에게 휘둘리는 장면을 상상해보세요.
그것이 가능하다면 우리들의 인생은
보다 쉬울 것이고 보다 안심할 수 있는,
지진으로 땅이 갈라지고 하늘에서 불붙은 메뚜기 떼
가 떨어져도 공포를 느끼지 않는,
공포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것이 될 것입니다. 늙은 소년이
꿈을 꾸듯이 말했다. 늙은 어른은 생각했다.
이 소년이 병들어있다고 생각하는 어른들은
몇 명이나 될까?

늙은 소년. 지상낙원이라는 단어는 퍽 멋져요.
늙은 어른. 그래, 많은 학생들이 그 단어 때문에 미쳤었지.
열차가 달리기 시작하는군요.
맞아, 새벽이 끝나가니까.

늙은 소년은 계속 새파랗게 쏟아지는 자신의 한쪽 손을
다른 한쪽 손으로 부여잡으면서 작게 외쳤다.
그럼 이제 잠을 잘 수 있겠군요.

날씨는 점점 추워진다.
Posted by Lim_
:

월석(月石)

글/시 2014. 10. 4. 05:12 |
월석(月石)


바닥을 바라보면 어둠뿐이다.
이 땅에는 달이 내리지 않는다.
사내는 불행으로 기운 구두를 신고 걸었다. 달이 지지 않고
뜨는 땅을 찾아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붉은 건물들의 벽으로 빗방울이 떨어져 터져댔고
조각조각 난 시체들은 바닥에서 검게 번들거렸다.
그는 활과 화살을 가진 몇 명의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은 자신들을 기다리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무얼 기다리고 있습니까? 사내는 모자를 벗으며
정중하게 물었다. 우리는 태양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화살촉을 흔들어보였다.

사내는 그들의 얼굴이 희고 핏기가 없다는 사실에
몇 가지 의문과 수긍을 떠올리며 길을 걸었다.
도둑고양이들이 비를 피해 자동차 밑이나
담을 등진 곳에서 웅크리고 있었다. 그들 중 하나는
얼마 전에 음식물 쓰레기봉투에 담겨진 채 버려진
동족의 시체를 보았다. 그것은 이 행성 곳곳에서
항상 벌어지는 일의 일부분에 불과했으므로
야행성의 노란 눈들은 침묵하며 껌뻑거릴 뿐이었다.
분명 달이 뜨는 곳에서는 비극도 달빛을 받겠지.
사내가 젖은 손으로 젖은 돌들을 주웠다.

더 이상 지구의 냄새가 나지 않았다.
사내는 파란 핏줄이 하얗게 보이는 어둠 속에 서서
호주머니에 넣어뒀던 돌들의 냄새를 맡았다.
그것에서는 스무 살이 되자마자 잠들어버린 채
아직도 깨지 않는 이들이 짓밟아왔던 것들의 냄새가
값비싼 종이로 만들어진 책처럼 읽혀졌다. 희극. 희망.
그는 그것을 산과 계곡을 향해 던져댔다.
자연이 무슨 일을 하는지 나는 모르겠다. 원리라는 것은
사람들이 눈동자에 개편된 영혼을 빛낼 때부터
희미하고 물컹거리며 자주 흩어지는 것으로 변했다.
사내는 아직도 비가 내리는 땅 어딘가에서
모래를 그러쥐며, 허구의 존재들이 입김을 불어대는
대기의 아래 바닥에서 실체를 잃은 숫자들을 센다.

지평선 너머에서는 달이 뜨겠지.
Posted by Lim_
:


불치병에 걸린 자를 동정하는 것은 그만


<착한 사람>처럼 행동하는 병에 걸렸다.
난 더 이상 지나가는 노파의
지팡이를 빼앗아 그녀를 두들겨 패지 못한다.
그것이 순수라고 말했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제
순수라는 단어를 나 자신에게 사용할 만큼
순진하지 못하다. 어린 시절에 나는
학교 창고에서 발견한
새끼 생쥐들이 바글거리는 둥지에
불을 질렀었다. 아이들은 비명을 질렀다.
나는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였고
그것들은 털도 나지 않은 한갓 생쥐였다.
어머니가 나를 도취시켰다. 야생의.

착한 사람처럼 행동하는 병에 걸렸다.
내 청바지는 무릎 부분이
갈기갈기 찢겨있다. 몇 년 전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술을 처먹고
갑자기 친구의 얼굴이 보고 싶어서
그가 일하는 구멍가게로 냅다 달렸다.
나는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 얼굴부터 떨어졌다.
얼굴 오른쪽이 전부 찢겨나갔고
바지도 찢어져있었다. 나는 얼굴에서 피를
뚝뚝 흘리며 웃으면서 구멍가게로 들어갔다.
친구가 날 쳐다보았다. 마침 물건을 사던 손님이
내게 반창고를 주었다. 나는 눈에서
소주를 흘렸다.
반창고는 상처의 십분의 일도 가리지 못했다.

착한 사람처럼 행동하는 병에 걸렸다.
나는 이를 뽑고 머리카락을 잘랐다.
위장에서부터 올라오는 악취는
무슨 짓을 해도 사라지지 않지만
나는 잇몸에 피가 날 정도로 이를 닦는다.
사람들 앞에서는 입을 닫는다.
온갖 장기와 뇌와 영혼에서 스미어 나오는 악취를
그들에게 들킬까봐. 나는 이를 닦는다.
사람들에게 인사를 한다. 처음 보는 노파에게도
시답지 않은 잡담을 건넨다.
그러나 멀찍이서 할뿐이다. 나는
착한 사람처럼 행동하는 병에 걸렸으니까.
가까운 곳에서는
나의 악취를 들키고 만다.

착한 사람처럼 행동하는 병에 걸렸다.
나는 자주 웃는다. 과거에 어머니는
날더러 웃는 연습을 하라면서
입에 볼펜을 물려주었다.
나는 며칠 만에 그 짓을 포기했지만
덕분에 지금 나는 잘 웃는다.
내 흉부에는 수십 개의 흉터가 있지만
옷을 입으면 보이지 않는다. 나는 잘 웃는다.
나는 옷을 세탁하고 머리를 감는다.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담배를 피운다.
술을 마셔도 길가에 주차된 자동차들의
창문을 깨지 않는다.

착한 사람처럼 행동하는 병에 걸리는 것은
생각보다 쉽고
생각보다 아프고
생각보다 쓸쓸하다.
버스가 도로를 달리고 전동차가
사람들을 싣고 철로를 달려도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부서져가고 있다.

Posted by Lim_
:

도망자

글/시 2014. 9. 26. 07:26 |

도망자


아침마다 도망치는 사람들을 마주친다.
그들이 무슨 생활을 하는지
내 과거에 비추어본다.
사실 그것은 생활이라고
할 만한 것이 아니다.
그들에게 生은 이미 없다.
새벽마다 병의 이름을 가진 상념과
어둠과 밤과 달의 속삭임과
별들의 혼잣말과 영원히 잠들지 않는
도시의 빛살과 가로막힌 벽들과
근대의 유물이 된 사상과 지껄이는 밤요정들과
너무 무거워진 존재 때문에
빈 집에서 도망쳐 나온 사람들이
그들이다. 그들은 어둠 속에서
구멍 뚫린 흉부에 채워 넣을 무언가라도 찾으려고
밤거리를 배회하다가―그들의 실패는 자명한 것이다―
마침내 아무것도 찾지 못하면 떠오르는
태양의 귀퉁이를 두려워하며
이제는 햇살을 피해 다시 빈 집으로
도망치는 것이다.
이따금 그들은 서로 마주쳐
동류의 냄새를 맡고서 주춤거리지만
서로 말을 섞거나 새침하게 악수를 하는 일은 없다.
서로가 서로에게 얻을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에게 돌아오는 동정과 자괴감과
도무지 불이 붙지 않는 분노와 방향을 잃은 증오와
종말에 대한 허망한 기원뿐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미 알고 있다.
나는 빈 집으로 도망치는 그들을
천박한 언어로 바라본다.
내가 낮에 술을 마시는 이유도 태양이 두렵기 때문이다.
내가 그들에게 말을 걸지 않는 것은
나는 그나마 야간 生活者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사실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과 더불어
원하는 것이 없는 이를 구하는 방법이란 없으며
내가 찾은 구원의 찌꺼기라는 것도 결국
술과 담배와 약물과 詩임을
알고 있음이다.

Posted by Lim_
:
모든 밤에는 잠들지 말자


어둠 속에 앉아있으면
담배연기 뿜는 내 숨소리조차 방해다.
사방이 밤으로 가려진 좁은 내 돌의자 위에서
나는 공간이 무한히 늘어나는 것을
느낀다. 나는 담뱃불을 끄고
해왕성 너머 가본 적도 없는 심연에
내 가죽 하나를 걸치고
종말의 소리를 기다린다.

시간이 멈추는 곳은 도시의 밤이다.
나는 이곳에서 영원히
깨어있는 채로 잠들어있기를 원하지만
또 태양이 뜰 것이다.
아무도 바라지 않는
또 하나의 아침이 시작될 것이다.

빛이여, 빛이여
너는 누구에게도 안식이 아닐 것이다.
너는 숨죽이던 사물들 위에
빛의 가시를 박아 넣고
꿈꾸던 시인들을 깨워
백주의 폐인으로 만들어 놓는다.
풀벌레 우는 적막을
구두 소리로 된 디스토피아로
추락시켜버린다.

새까만 어둠으로 만든 내 요람을
뒤집어 흔들어 깨워
멀리 꿈속의 고향으로 미뤄놓고
근대의 야수들과
욕망과 천한 상념 속으로
날 떨어트리고 빛으로 비추는
너.

차라리 사막의 백야로 보내다오.
리큐어와 눈과 흔들리는 눈동자로
빛을 가리고 혼돈의 춤을 추는
태양의 시체가 사방에 내려앉는
그 사막으로.

얼어붙은 지중해 위를 나는 끝없이 걷고
별들이 가리키는 방위를 나는 찬탄한다.
모든 이들이 목적이라는 것을 잊고
새하얗게 말라버린 채 방황하고
나 홀로 얼음에 죄업을 묻는
그런 밤에.
Posted by Lim_
:

아침은 너무 밝고

글/시 2014. 9. 23. 12:52 |
아침은 너무 밝고


오늘은 또 세상이 왜 이리 또렷한가.
구름을 통과해 비추는 햇살은
왜 이리 맑고 투명하여 도시의 온갖
그늘진 거리와 몰락한 집들을
번쩍번쩍하게 비추는가 말이다.

술을 마시지 않으면 카페인을 과량 섭취하는
내 나쁜 버릇은 도대체 뭘 믿고
탄생한 것인가.
왜 일터에서 돌아와 쓰러져 누워야할 때
하필이면 동두천에서 선생질 하는 친구가 보고 싶고
마누라한테 용돈 타다 사는 백수 친구도 보고 싶고
대머리 벗겨진 기타 치는 친구도 보고 싶고
애인과 함께 툭탁거리며 살고 있을
피라미드 사업하는 친구가 보고 싶어서
결국엔 아무나 불러내서
오전 10시부터 맥주 한 잔 걸치고
아침부터 술 마시고 비틀대기에는 태양에게 다소 죄송하여
그리 저렴하지는 않은 카페에 가서 몇 시간이고 썰 풀며
커피에다 맥주를 말아먹는 기행을 벌이냔 말이다.

자기 손으로 커피콩 볶아 마시는 친구가 말하길
카페에서 파는 커피들 순 가격 뻥튀기라더라
그러나 어쩌겠는가
나는 모든 것의 가격이 천천히 끈질기게
올라가기만 하는 경제대국에 살고 있는 것을.
그래서 이곳에 살면서 가끔
내 가격도 언젠가 조금은 오르지 않을까
그런 기대도 품곤 하는 것이다.

카페인으로 인하여 유리구슬처럼
어릴 때 주워다 상자에 모으곤 했던 유리구슬처럼
맑고 흠집투성이가 된 정신으로 생각해보니
어젯밤 내가 뭘 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질 않는다.
해가 질 때쯤에 출근했던 것은 기억나는데
퇴근할 때까지 15시간 동안 뭘 했는지
정말로 모르겠다. 맨 정신에 필름이 끊겼나.

그나마 육신이 기억하는 것은
담배를 좆나게 피웠다는 것이다.
너무 피워서 폐가 진액을 토할 정도로
담배 피우다 죽을 놈처럼 피워댔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곧 담배 값이
별다방 커피 값이랑 비등비등할 정도로 오른다고 하는데
내가 그 거금을 내가면서 담배를 피울
배짱이 있을지 모르겠다.

아아, 그러나 시바, 담배를 피워야만
시를 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생각해보면
담배를 배우기 전에도 시는 미친 듯 썼었고
담배를 처음 배운 열아홉 살 때부터 지금까지
남들 평생 피울 담배를 다 몰아서 피웠고
허파가 더는 못해 처먹겠다고
붉은 머리띠 매고 파업 들어갈 정도로
흡사 자살시도 하듯이 피워댔으니
이제 그만 피워도 되지 않을까?

그렇다고는 해도 괜히 군인들이 걱정이다
이젠 피엑스에서 담배 면세도 안 해준다는데
죈 종일 흙탕물에서 구르고 담배 살 돈도 없으면
그네들은 어떻게 사나? 이거 또 보나마나
군대 자살률 급상승하게 생겼다.
대통령 각하, 우리 대한건아들은
자기 돈 내고 기관지에 독극물 쏟아 넣을 자유도
없는 것이지 말입니까.

독극물 하니까 말인데
오래 전에 키우다 시골 보낸 우리 개새끼
친동생보다 이쁜 우리 개새끼 
시골집에서 어디 쥐약 주워 먹고 죽은 것 아닐까
그것이 걱정이다.
쥐약 먹고 죽은 개로는
개장탕도 못 끓이는데.
Posted by Lim_
:

썩은 몸과 썩지 않는 눈동자와 마비된 사상


존재의 과잉 때문에 삶이라는 것이 더럽게 퍽퍽합니다. 사실 나는 어릴 때부터 닭 가슴살을 싫어하지 않았던가요. 그런데 어른이 되어 담배를 물고 술병을 물고 약통을 물다보니 어느새 내 영혼부터가 닭 가슴살보다도 수분이 하등해진 것입니다. 이놈의 인생을 매끄럽게 굴리려면 기름이라도 쳐야할 텐데, 기름을 치기 이전에 나사들은 사이즈가 안 맞고 엔진은 이십사 시간 과열상태입니다. 어려서부터 길가에 버려진 고철들을 보면 모조리 주워서 내 가슴에 담아둔 탓입니다. 나는 도무지 길가에 버려진 작고 커다란 고철들을 내버려둘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들도 누군가에게 버려진 것이 아니었겠습니까. 그리고 그 고철들을 내버린 사람들이 보기에 나는 살아 움직이는 고철 그 자체였을 것입니다. 버려진 것이 버려진 것들을 어떻게 또 버릴 수 있겠습니까. 쓰레기와 녹의 냄새가 나는 팔에라도 담아 끌어안아야지요.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있습니다. 항상 고철들과만 피와 고기로 교감을 나누다보니 살아있는 것들에 대해서는 이상하리만치 냉담해진 것입니다. 이것도 패배주의가 낳은 부작용일까요? 나는 항상 손가락이 서너 개 잘리고 흉터를 가진 손들과만 악수를 한다는 것입니다. 하얗고 깨끗하게 다듬어진, 대리석으로 만든 것 같은 고귀한 손들은 가까이만 닿아도 소름이 끼칩니다. 그래서 내가 잡았던 소녀의 손에는 담뱃진이 눌어붙어 있었고, 눈동자에 젖과 꿀과 ―당연하게도―눈물이 흐르던 여인의 손은 오랜 절망과 신에 대한 고뇌로 깎여나가 있었습니다. 내 눈동자에는 술이 머금어져있었고 희망을 만나면 거의 반사적으로 경계부터 했었습니다. 내가 여인들의 손에 눈물을 떨구었던 것은 행복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고독을 부채질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생각됩니다. 그놈의 고독, 고독, 고독. 참 쉬운 말이고 쉬운 단어입니다. 그런데 고독의 뒷면에는 주체가 과잉되어 손가락마저 불어터져 아무 것도 잡을 수 없는 서러운 마스크가 있습니다. 고독은 우리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흘러들어오려고 오는 것입니다. 나는 과잉되어서, 술을 마시면 토하고 담배를 피우면 허파를 쥐어짜고 약을 먹으면 정신을 사방으로 뿌려대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내가 이용할 수도 없는 부풀어 오른 개념들은 여전히 나에게는 너무 많은 것입니다. 존재의 과잉이 나를 짓눌러 죽이고 있다고 외쳐왔습니다. 아니 그것은 나를 죽이지는 않지요. 사실은 죽이지도 살리지도 않고 영원한 경계선의 한복판에 거적처럼 걸쳐놓는 것이지요. 나는 행동주의자가 되기에는 너무 녹슬었고 이론 속에 파묻히기에는 너무 뜨겁습니다. 내 피는 쓸모없는 것들의 용광로처럼 되어버렸습니다. 현실에 배설 당했으나 공기보다 가벼운 두 발 때문에 항상 어설픈 고도에서 거꾸로 부유합니다. 음식을 먹으면 항상 토하고 싶은 것도 내가 거꾸로 떠다니기 때문일 테지요. 이박삼일을 자도 술이 깨지 않는 것은 뇌에 피가 몰렸기 때문일 테지요. 한때는 니체에 미쳐 칼을 쥐고 다니고, 카뮈에 미쳐 무감각의 마을에서 피를 찾아다니기도 했는데, 사상이라는 것도 오만가지 이유에 의하여 삭아버리는 것이었습니다. 배부른 기득권층도 분노하는 혁명가도 될 수 없도록 아주 애매하고 미묘하게 삭아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존재의 무게가 점점 과잉되도록 아주 적절하게 삭아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언젠가 존재의 무게가 아니라 존재의 쪽팔림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만, 다른 쪽으로 생각해보면 이 지랄 맞게 과잉된 상태가 최종국면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애매하고 어디로 향할 수도 없는, 철로에 덜컥 발이 끼어버린 상태가 내가 가고자 했던 길과 어쩔 수 없이 가야만 했던 길이 합쳐진 행로의 결말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나, 그래서 나는 철로에 덜컥 발이 낀 채로, 부디 철마 하나 달려와 주기를 뻔뻔하게 기원하는 것입니다.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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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가는 길

글/시 2014. 9. 20. 09:25 |
우리 집 가는 길


담배연기가 초승달을 쓰다듬는다.
저 달은 지금까지
새벽에 잠 못 이루고 니코틴과 타르로
쨍쨍 얼어붙은 가슴 녹이는 사람들의
체취와 연기 낀 한숨을
모조리 숨 쉬어 주었다.

달나라에는 폐암이 한창이겠지
사람들이 도시에 살기 시작한 이래로
네온사인과 가로등 불빛이
밤을 비추게 된 이래로
달나라에는 항상 폐암이 유행하겠지.

그러니 아픈 사람들아
그 아픈 피와 고기와 살거죽과
손톱과 발톱과 고드름 돋은
뇌수까지 전부 버리고 가자
그러나 뼈는 남겨두고 가자
평생 아파 본 일 없는 사람들이
그 쉽사리 부서지는 뼈를 보고
입 꼬리나마 일그러트릴 수 있도록.

아파 본 일 없는 사람들은
항상 병과 죽음 그것이 걱정이더라.
그런데 우리는 병이 자신인지
자신이 병인지 아니면 병이라는 것이
자궁 속에서도 함께하던 형제인지
알 수가 없지 않던가. 우리는 그저
아픔과 사는 것이 체질이라고
흉터 위에 흉터를 덧씌우지 않았던가.

바닥에서 위를 쳐다본다.
그리 깊지도 않은 바닥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보면
하늘에는 청록빛 파도가 출렁이고
발밑에선 구름들이 찢어진 채 흐르고
날개가 커다란 새들 몇몇은
뒤집어진 채 날고 있다. 사방에
초록색 불꽃이다.

창공의 어느 골목으로 들어가야
한 번도 문을 열어본 적 없는 우리 집일까?
이불 위에 잔디가 돋은
파랗고 어둡고 높은
아무도 문 두드리지 않는 내 집일까.
사다리 타고 내려가는 길에
너무 고독해서 헌혈하러 가는 사람들을 위한
막걸리 공장 하나 있는
그런 집이면 좋겠다.

달나라에 있는 오두막에
무화과나무 하나 심고
달이 한 번 돌 때마다 무화과 하나 먹으면
음식도 술도, 서러운 가슴에 채워 넣을
담배연기도 필요 없는
그런 집에서 살면
좋겠더라.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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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잔에 잠긴 조롱

글/시 2014. 9. 17. 22:20 |
술잔에 잠긴 조롱


밤이 딸그락 딸그락 소리를 내면서
허파에 들어차는 시간이면
나는 옛날 애인들을 생각하고
희극이란 것을 겪어본 일이 없는
내 연애사를 생각하고
삼류 통속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그런 꿈을 꾼다. 뜬 눈으로.

뜬 눈으로 나는
내가 자학하며 내쫓았던 그 소녀를 생각하고
사랑이 무엇인지도 몰라서
사랑하고자 해도 사랑할 수 없었던
어린 날의 유사연애를 조롱하고,
그러나 지금에야 조롱할 수 있는 것이다
과거의 나는
항상 현재의 나에게 비굴하니까.

뜬 눈으로 나는, 세상
어느 곳보다 추운 곳에서 자랐기에
오히려 내 추위를 가시게 만들었던 그녀에게
몇 편의 시와 엽서를 보내고
내 수첩에
생경한 희망의 구절들을 머뭇거리며 끄적이게 만든
그녀 앞에서 오로지 경계하는
들짐승이었던 나를 생각하고
파르르 떨리는 침묵에 잠기는 것이다.

뜬 눈으로 꿈을 꿀 때
나는 온갖 옛날 연인들이 뒤섞인 여자를
사랑하고 애원하였는데
유감스럽게도 그녀는 레즈비언이었다. 이제는 꿈마저
삼류 신파극이다. 나는 비극이
코미디가 되어가는 와중에 있나.

그 외에도 수많은
몇몇은 이름은 기억하고
몇몇은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흡사한 윤곽과 색깔을 지닌 소녀와 여인들이여

그래서 나는
한 달에 한 번은 이름마저 기억나지 않는
그녀들을 위하며 술을 마시고
또 한 달에 한 번은
이름은 기억나는 그녀들을 생각하며
술을 마시는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통속 연애 시로 바글거리던
머릿속을 알코올이 깨끗이 지우고
그 자리에 흰 공백과 휘발성의 향기를 남겨두면
나는 희희거리며
또 실패할, 차라리 실패하기 위해
연애라는 장난을 향해 손을 뻗고
다른 한 손에는, 사랑이라는 코미디를 위한
한 잔의 독한 술을 들고 있는 것이다. 건배.

아. 포도주가 왜 이렇게 단가.
아무래도 냉장고에 있던 것은
포도주 병이 아니었나보다.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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