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그곳에 서있어. 흰색의 램프를 들고, 밤새 도시의 어두운 길목에서. 밤의 도시만큼 빛의 대비가 뚜렷한 곳은 달리 없지. 그러니 넌 그곳에 서있어. 나의 미친 발은 시각소자를 가진 기계처럼 마구잡이로 훨훨 날지. 나는 가장 눈부신 곳에서 가장 어두운 곳까지 몇 번이고 걸음을 반복해. 그 램프의 기름도 도시의 금화로 산 거야. 그러나 너는 부디 아무것도 느끼지 말아줘. 그저 그곳에서, 가장 어두운 길목에서 신성을 잃은 우상처럼 서 있어줘. 깊은 새벽에도 사람들은 가끔 칠흑의 골목 속으로 사라져. 너는 그들을 비춰줘. 그들이 어둠 속에서 머뭇거릴 때, 그들이 담뱃불이나마 제대로 붙일 수 있도록 빛을 비추어줘. 그들이 자본주의자건, 공산주의자건, 개인주의자건, 사회주의자건, 낡은 거죽 걸친 빈민이건, 유망한 경제가건. 누구든 호주머니의 담뱃갑을 제대로 꺼낼 빛 정도는 필요하니까. 나는 저쪽으로 갈게. 지친 야생마처럼 목적 잃은 걸음으로 사방을 쏘다닐게. 밤의 도시에서 밝은 곳은 너무 추워. 네온사인에서 흘러나오는 욕망들은 얼음처럼 나를 쪼아. 24시간 영업하는 편의점 안쪽에서 치고 들어오는 눈빛은 까마귀가 되어 내 살을 쪼아. 소위 야간생활자들이라는 족속들은 밤에도 모자를 눌러쓰고, 내 손가락을 관찰해. 그 손가락의 형태가 무슨 말을 하는지, 그들은 알아야만 해. 그러나 너는 아무 걱정도 말고 그곳에 서 있어줘, 동이 트고 램프의 기름이 다 떨어질 때까지, 타고 남은 담배필터로 하얀 반점이 점점이 찍힌 검은 도로를 밝게 비춰. 내 살은 이미 다 파먹혀 백골이 드러났지만, 내 인생에서도 이 넓은 욕계에서도 그리 대수로운 일은 아니야. 램프를 들고서, 지나가는 행인들의 얼굴을 가끔씩이라도 보도록 해. 무어 굳이 감상을 묻지는 않을게. 그저 그 낯과 낯들을 봐주었으면 해. 조금 뒤면 나는 <사람>들이 떨어트린 금화를 주우러 갈 거야. 운이 좋다면 내일도, 그 금화로 네 텅 비어있을 램프에 기름을 채울 수 있겠지.
내가, 랭보를 다시 읽기에는 너무 늙어버렸을 때, 그녀는 다시금 죽었다. 그였던가 그녀였던가. 사실 그것도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한여름인데도 공기가 차가울 정도로 공원은 고요했다. 아, 그 당장이라도 산산조각이 나 유리파편처럼 쏟아질 것 같던 고요! 이걸 들고 있으렴. 아버지가 건네준 것은 내 상반신만한 액자였다. 난 어리둥절해 액자를 들고 있었고 유령 같은 검은 발걸음들이 나를 인도했다. 그때 나는 그것이 꿈이라고 생각했다……. 나에게 주어진 임무가 완수되자 나는 액자를 놓고 아버지에게로 달려갔다. 나는 무언가를 물어봐야했건만 도무지 무엇을 물어봐야할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그의 얼굴을 보니 나는 순간 사람들이 어떻게 비극을 계산하는지 알 수 있었다.
엄마는요? 엄마가 보이지 않아요. 네 엄마는 차 안에 있어. 아마 나오지 않을 거야. 그때 아버지의 얼굴은 자애롭지 않았다. 나는 입안에서 이상한 맛을 느꼈다. 나는 내일이면 아버지의 얼굴이 원래의 그 도무지 설명할 수 없는, <아버지>의 얼굴로 돌아가기나 하는 것인가 불안하였다. 어디선가 검은 소매 끝에 달린 친숙한 손이 내게로 뻗어져 내 손을 잡았다. 사금파리를 뿌려놓은 것 같은 따끔따끔한 땅이 날 춥게 만들었다. 그때 대기에 금이 가듯 새된 소리가 어디선가 찢어지듯이 울렸다. 척수에 전기라도 통한 듯 나는 몸서리쳤고, 나의 어린 호기심으로 그 소리를 찾아 뛰었다.
너무 많은 문. 모든 문들이 유리로 되어있었다. 이 공원은 이상한 공원이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아. 그런데 그 새된 소리는 땅 밑에서 지진처럼 솟아났다. 검은 옷을 입은 젊은 여인이 쓰러져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고통과 눈물로 흠뻑 젖어있었다. 새까만 유령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러나 침묵 속에서. 한 유령이 여인의 입에 종이봉투를 가져다댔다. 종이봉투는 여인의 숨으로 히스테릭하게 부풀었다 꺼졌다를 반복했다. 여인은 눈을 뜨고 있었지만 검은자위가 보이지 않았다. 그 이상한 장면은 나를 순식간에 지루하게 만들었다. 심지어 나는 우리 학교의 문제아들이 하듯 그 장면에게 혀를 내밀고 침을 뱉고 싶다고 생각했다. 타박타박 아버지에게로 돌아가는 길, 태양은 너무 하얬고 너무 사납고 고요해서 그 공원의 모든 것을 일렁이는 환각처럼 만들고 있었다. 어쩌면 그 모든 것이 환각이었던 걸지도 모르는 일이다.
아버지는 아버지와 닮은 어느 늙은 남자와 말을 주고받고 있었다. 그러나 어떠한 말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나는 태양 아래 소금기둥처럼 우두커니 서서, 내가 이 공원과, 이 공원의 검은 유령들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어있다는 이상한 감각에 빠져있었다. 나는 집시였다. 나는 이방인이었다.
오늘 변덕스럽게 랭보를 펴보니, 순간 어떤 여인이 다시금 죽었다. 분명 나는 늙어있었다. 나는 이제 랭보를 읽을 수 없다. 그런데 나는 전혀 늙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집시였다. 나는 이방인이었다. 그 여름날의 지글거리고 눈을 멀게 만드는 태양은 여름이 오면 다시 떠오른다. 똑같은 지루함과 악의와, 어리둥절한 꼬마는 아직도 그 공원에 서있다.
내가 무얼 하고 있었더라. 아, 그렇지, 삶을 살고 있었지. 질리지도 않는 자기발견의 영원순환. 그게 내가 하고 있는 일이었지. 이걸 봐, 네 유년기에서 조르바가 웃고 있어.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난 삶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니었어. 난 삶을 써내고 있었지. 난 인간가죽으로 표지를 입힌 일종의 서적이 되었고, 지식과 서술과 연구가 내 영혼을 대체했어. 몇 해 전인가 스승께서는, 그런 것들은 근대에 멸종해버렸다고 하셨지. 그러나 아니었어. 나를 봐, 이건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생생한 종이가 서로 마찰하는 소리가 나는 실감나는 환영이야. 현대에게 아무것도 빚진 것이 없는 돌연한 근대의 사생아야. 많은 젊음들이 나와 첫 악수를 나누고 항상 하는 말은: <당신은 어쩌면 그렇게 자유롭습니까?> 아하! 세상에 아무런 진리도 없다지만 난 한 가지 진실을 알지. 세상에게 아무것도 빚진 것이 없는 진정한 자유란 살아있는 것만으로 몸이 타들어가는 고통이야. 만일 자유의 진실 된 얼굴을 그들이 본다면 그 누구도 자유로운 영혼이나 삶 따위는 바라지도 않을 걸. 그런데
매끈하게 압착된 질 좋은 종이를 나는 몇 번이나 쓰다듬는다. 책상 위에는 잉크가 거의 다 닳은 볼펜, 그리고 그 뒤에는 수정액이 필요가 없는 오피스 문서 프로그램이 스크린에 떠있다. 왜 볼펜을 쥐고 종잇장을 난도질 할 때는 나의 영혼이 하얗게 터질까. 푸른곰팡이가 핀 타자기를 두드릴 때 나는 공허한 망상에 빠진다. 빗소리 나지만 비는 오지 않는다. 축축한 여름밤, 새까만 창문은 사고의 방벽이다. 바깥으로부터 오는 것을 막는 것이 아니라 내 방 가득히 찬 분열과 모순의 사고들을 흙으로 만든 방패처럼 지키고 있다. 나의 필기는 폭력이다. 잉크로 그어놓은 나의 문장들을 보면, 그것들은 당장이라도 종이로부터 뛰쳐나갈 듯 들썩거리며 고통이 담긴 조소로 입술을 찢는다. 내 방에는 공간이 없다. 죽은 이들의 시체와 그에 대한 존경으로, 내 방은 빽빽이 들어차 고대의 피들이 무릎까지 차오른 듯하다. 단 하루라도 해가 뜨지 않는다면 좋을 것을. 창밖에는 아무도 없다. 나는 약에 몹시 취해 나의 손가락은 취객처럼 비틀거린다. 이것 봐, 자네 자신조차도 자네의 미학을 개념화하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어느 날 할아버지는 술집에서 배갈인줄로만 알고 빙초산을 한 병 들이마셨다. 고통스럽고 취해있는 할아버지를, 아버지는 업고 달렸다. 아버지, 매일 같이 당신을 찾으러 대폿집을 돌아다니는 것은 즐거운 일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선한 아버지, 당신이 영혼의 자유에 목을 매고 미소와 함께 무너져버리는 것을, 나는 먼 미래에서 보았습니다. 더러는 그것이 영혼의 자유가 아닌 영혼의 부유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낯선 사내는 닫힌 방문 안에서 타자기를 두들기고 눈물을 삼키다가 흉터처럼 깊은 선을 잉크로 종이에 새긴다. 시간은 기억에 맡겨졌다. 그리고 기억은 사생아의 출신에 의해 꿈틀거리는 진흙탕이 되었다. 광기의 문! 모든 애매모호한 과거들이 그 뒤에 갇혔다.
내가 태어난 혈액은 짐승과 소시민의 피였다. 그러나 나는 돌연변이였다. 나는 아무런 근거도 없이 돌연히 태어나고 말았다. 나는 도덕과 윤리를 이해하지 못했고 사회 통념과 법률은 나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내게 빠져버린 조각이 있다면 그것은 인간의 조각이었으리라. 어머니, 당신의 손을 잡아도 될 까요. 너무나 약하고 작아져버린 당신은 이제 두렵지도 않고 안쓰러울 뿐입니다. 내가 증오했던 사랑하는 어머니. 더 이상 당신을 탓하는 것은 아무 의미도 없겠지요. 그러나 밖은 바람도 불지 않는다. 나는 줄곧 사생아의 기분을 느끼며 살았고 줄곧 사생아였다. 삶을 앞에 두고도 웃는 사람들 사이에 낯선 사내는 아름다움이 무엇이었냐며 자문한다. 허나 사내는 펜을 쥐거나 타자기를 두드리기만 할 뿐, 별을 보지 못한 지도 오래 되었다. 사방 가득하던 밤 벚꽃들은 모두 하늘로 날아가 버려, 벚나무는 까맣고 깡마른 노파의 손처럼, 그저 그림자를 움켜쥐고 정적 속에 침묵한다. 안녕, 삶들이여. 안녕, 떨어져버린 꽃잎들이여. 안녕, 너무 빠르게 늙어버린 내 영혼이여. 안녕. 그래도 나는 휴머니스트였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말하자면 이제 경찰과 검사들은 이 세상 모든 이들의 정신병원 진료기록을 체크할 것이다 그리고 유전형질에서부터 스스로 고통스럽다 못해 증오를 품게 될 이들을 찾아낼 것이다 그리고 개방병동에서 격리병동으로 격리병동에서 독방으로 독방에서 형무소로 형무소에서 교수대로 교수대에서 이 세상 밖으로 그들을 이동시켜 마침내 완전무결한 사회를 만들었노라고 청결한 가위로 테이프를 끊고 서로 악수하며 웃고 카메라 앞에 설 것이다 그런데 그러면 그 뒤 우리는? 내가 품고 있는 것은 미래지향적인 것이다. 철저하게. 철저하게 미래지향적인 감정이다.
떨어지는 목들, 뭉개진 눈알, 크게 찢은 복부에 삽입되는 남근,
손톱 끝에서부터 어깨까지 잘게 썰린 고기와 뼈들, 정소를 절개해 꺼낸 정액들,
난소를 절개해 꺼낸 난자, 슬럿지 해머로 다져진 날고기, 혀가 제거된 남자들,
유방이 제거된 여자들, 창으로 벽에 꽂아놓은 고기인형들,
나이프로 벗겨 무두질도 하지 않고 창고에 처박아 놓은 가죽 컬렉션들,
뇌수가 있던 자리에 맴도는 윙윙거리는 날벌레 소리와 부화되는 알들,
자본주의가 들어찬 옆구리 살을 불에 굽는 냄새, 사회주의가 들어찬
두개골이 박살나는 소리, 자신이 인간이라고 믿었던 가죽주머니들이
좍좍 찢어져 안에 담고 있던 잡고기와 내장들을 쏟아내는 소리, 그 냄새,
드디어 나는 생살을 씹을 것이다. 내 치아들은 웃을 것이다.
마침내 나는 아침에도 웃을 것이다. 낮에도 슬퍼하지 않을 것이다.
더는 술에 취해 울지도 않고 담배도 끊을 것이다.
더는 어머니를 미워하지도 아버지를 애닳아 하지도 않을 것이다.
물론 그들도 날 이해하고 창고에 여기저기 흩어져있겠지.
내 유일한 피붙이 동생도, 내게 친절했던 사촌도, 내가 사랑했던 친가 가족들도,
내가 혐오했던 외가 가족들도, 내 몇 안 되는 사랑스런 친구들도,
매일 저녁 출근할 때마다 나에게 웃으며 인사했던 버스기사님도,
매일 술을 사러 가면 먼저 인사를 걸어왔던 마트 점장님도,
길가에서 스쳐지나갔던 모던하게 차려입은 아가씨들도,
멋지게 몸을 키워 자신만만하게 걷던 청년들도, 구청의 공무원들도,
길거리에 누운 노숙자와 거렁뱅이들도,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던 아주머니들도,
내게 한 없이 자상했던 스님들도, 어렸을 때 만났던 신부님들도,
예수님도, 하나님도, 부처님도, 알라도, 무함마드도, 성경도, 불경도, 쿠란도,
이제 막 태어난 신생아도, 죽음이 눈앞에 놓인 노인들도,
잘 생긴 이들도, 못 생긴 이들도, 젊은이들도, 중늙은이들도,
성자도 탕아도 부자도 빈민도 호모섹슈얼도 헤테로섹슈얼도 권력자도 피지배층도
전부 철저하게 분해되어 나의 세계에 피와 면도날을 증명할 것이다.
나는 손을 뻗는 수밖에 없었다. 정말이다 나는 손을 뻗을 수밖에 없었다.
팀 버튼 감독의 가위손처럼, 손가락이 나이프로 되어있다는 것은 죄가 아니다.
물론 그것이 죄라고 말할 사람들은 널려있지만, 곧 그렇지 않게 될 것이다.
나는 더 이상 아스피린을 한통씩 삼키지도 않을 것이다. 쿠에티아핀푸마르, 바이코딘, 바르비투르산, 발리움, 디펜히드라민, 알프라졸람, 클로미프라민, 그 외 내가 알지도 못하는 수 많은 이름의 약들. 그것들을 나는 내다버리고도 멀쩡할 것이다.
구역질이 나. 내 아빠, 엄마는 섹스를 하지 않았지만, 내 아버지, 어머니는 섹스를 했지.
사실 난 차라리 교미라는 단어가 더 어울린다고 생각하지. 그 단어에는
이유 모를 역겨움이 묻어있거든. 나는 잘못 착상되었어.
어린 시절 과학 시간에, 사마귀 암컷은 교미 직후 수컷을 잡아먹는다는 사실을 배우고
많이 울었지. 수컷은 왜 반격조차 안 했을까? 왜 자신의 정자로 들어찬
암컷의 배를 찢어버리지 않았을까?
아, 그냥 신경 꺼! 네 혈관에 헤로인이라도 주사하도록 해.
정말로 눈을 뜨고 세계를 본다면 도무지 말도 안 되는 것들 투성이니까,
그냥 네 현금카드로 코카인 가루나 곱게 다지도록 해. 그것도 일종의 수음행위지.
혼돈 속에서 혼자 제정신을 차리고 있으니까 괴로운 거야. 하늘을 봐, 하늘을 봐,
운명이라는 카오스가 아무렇게나 광기를 던져대고 있어.
<네 뇌를 설득시켜. 세상만사가 켜졌다 꺼지는 불꽃이라는 걸 알고 나면, 비극도 비극으로 보이지 않을 거야. 살인마들은 살인을 하는 게 일이고, 강간마들은 강간을 하는 게 일이고, 지금도 바깥사람들이 울고 외치고 지랄하며 바닥에 뒹구는 이유가, 애들 소꿉장난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될 거야.> 점화! 그런데 내 양심은 어딜 간 거야?
―처음부터 없었어. 바보 같으니!
아! 노래를 하니 기분이 좀 낫군. 음악이라는 것도 지금에 와서는 오물투성이가 되었지.
빌어먹을,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 우리는 모두 혼자고, 누구와도 연결될 수 없어.
만일 네가 누군가와 연결된다면, 그건 네가 누군가에게 침입하거나, 혹은 침입 당했다는 얘기야. 무슨 소린고 하니, 즉 죽음에 이른다는 말이지.
세계는 그냥 세계야. 아무 의미도 없지.
우리가 기억해야할 단어는 세 가지 뿐이야.
무작위.
무자비.
무의미.
그거 세 가지면 너도 세계를 만들 수 있어. 개미굴에 물을 붓듯이.
저 소리가 들려? 대천사들이 나팔을 부는 소리야. 이천 년 전부터 계속 말야. 웃어! 웃어!
나는 공공연한 마약밀매상과 같았다. 나와 조금이라도 손끝이 닿았던 이들은 모두 내게서 값도 치루지 않고 비참을 사갔다. 그러나 나는 잃을 것이 없었노라. 그들이 사간 비참은 모두 나의 커다란 광기와 비참이 교미하여 만들어낸 복제품들이었으니. 내가 뱃속에서 키우는 벌레들이 남의 입으로 옮겨가는 것처럼, 비참은 나의 길고 음탕한 혀를 타고 돌아다녔다.
꿈과 현실이 겹쳐 보이고 밤마다 내 눈앞에 목이 잘린 나체의 여자가 나타날 때부터, 나는 나의 선조들에 대해 추측해보았다. 그들도 밤에 활개치고 다니는 끔찍한 환각을 보았을까? 아, 나는 일그러지고 무너진다. 도시의 한복판에 있다는 것은 온 도시가 내 머리를 짓누르는 것과 같다. 짤랑이는 죄악의 은화들과 온 거리를 핥고 다니는 네온의 빛들, 나는 저주한다! 세 번이고 네 번이고 저주한다. 그러나 저주한다고 해서 무얼? 나는 결국 걸쭉한 액체로 변해 하수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말 것이다. 어머니, 어머니. 나는 정말로 어머니가 갖고 싶었다. 그런데 어떤 어머니였지? 아 그래, 내가 갖고 싶었던 것은 어머니가 아니라 숲의 마녀였어. 아직도 애니미즘의 입김으로 나뭇잎들이 흔들리는 늙은 숲의 마녀. 내 지네 같은 혈액으로 말미암아 생각하건데 나의 선조들은 모두 두개골 속에 딱딱한 벌레들을 키우고 있었음에 틀림이 없다.
내가 고뇌에 빠지게 놔둬라! 내 삶은 이미 고뇌로 인해 구겨진 쓰레기 뭉치와 같다. 내 오만을 섣불리 판단하지 마시기를! 나의 시간은 압축되었다. 나는 끝에서 끝으로 끊임없이 오고 갔다. 물론 깨달은 것도 있었다. 이성이 사람의 목을 벤다는 것을 비롯한 독약 같은 진실들을. 나는 아무것도 그러쥐지 않았다-나는 내 손을 부정했다. 비대한 정신은 사회에게 부정당했다. 백석 시인은 지는 것이 아니라고 했지만, 아무려면 어떠리. 그냥 내버려 두어라! 내가 스스로 만든 고통에 왜곡되고 사리분별도 못하는 미치광이가 되어, 익사하도록 내버려 두어라! 나는 결단코 구원을 바라지 않으리라. 차라리 고통이 내게 편안한 것을. 세상에 산재하는 적들은 내가 나의 손으로 만든 적들보다 훨씬 약하며 머릿수도 적다. 그런데 왜 나의 부정당한 손은 바깥으로 뻗고야 마는지? 그리고 왜 사람들은 동정으로 나의 손을 움켜쥐었다가 재가 되어 내 아가리 안으로 떨어지고야 마는지?
날붙이들이 내 귀 안으로 쑤시고 들어올 때 나는 식인종이 되었다. 그것은 증오 없이도 사람을 잡아먹는다. 분노 같은 것은 내 몸과 함께 늙어버렸고, 나는 습관적으로 사람들의 살을 주워 먹었다. 이제 나는 그대들을 증오하고 싶어도 증오하지 못한다. 반복컨대, 나의 시간은 압축되었다! 분노의 함성과 붉은 깃발들이 나부끼는 거리를 보아도 내 눈동자는 피로의 핏발이 선 채로 공허만을 본다. 아아! 나는 당신들을 용서한 것도 아닌데……. 사회라는 이상한 개념은 내 속에서 범주를 잃어버렸다. 소리치지 말라! 아직 아물지 않았다. 아니, 아직이라니? 절대로 아물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아물지 않은 것들밖에는 없다.
나, 나, 나! 제발 그만! 부디 철두철미한 정신을!
그렇다. 내가 경외한 것들은 그런 강철 같은 우상들이 아니었던가? 우습지도 않은 일! 나는 피가 줄줄 쏟아지는 가죽부대가 되고 말았다. 전염병이 되고 말았다. 독벌레가 되고 말았다. 대양의 무게에 무너져가는 심해어가 되고 말았다. 자기연민이 없을 때 자기 자신은 더욱 연민스러운 꼴을 보인다! 젠장, 아무도 없는 전방을 향하여 건배! 건배! 또 한 잔의 술을! 이글이글 불타오르는 독주를! 그러나 아무리 마셔도 나는 목이 말라 죽을 지경이고, 저주 받은 몸은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 않는다. 심지어 해머로 내 머리를 갈겨도 나는 또렷하게 사고하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왜곡과 분열에 대한 사고를, 그 끔찍한, 답이 없는 수식을 나는 이성으로 풀고 있을 것이다. 어라, 그렇다면 나는 미친 것이 아닌가. 그런데 나의 광기는 왜 이리도 명증한가? 모든 것에 그림자가 질 때 사물의 본질은 더욱 분명해진다. 내 시선은 분명하다. 나는 나의 광기 속에서 필사적인 이성으로 광기를 계산한다. 내 육신에는 이미 경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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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차가워진 바람이 내 옷깃을 스칠 때마다 나는 경련한다. 나는 갈대밭에 쓰러지는 환각을 느낀다. 태양을 품어 냉랭한 갈댓잎들은 내 손과 얼굴에 온화한 상처를 새긴다. 그러나 눈을 감았다 뜨고, 손을 짚어 일어나보면 시멘트와 콘크리트, 도시 사람들이 털어낸 담뱃재뿐. 나는 너무도 저주하다보니 이제 명확히 무엇을 저주하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저 죽은 나무 옆에 앉아 담배나 한 대 태우고 싶을 뿐인데, 이곳에서는 풀 냄새는커녕 피 냄새도 나지 않는다. 분명 이 도시 사람들은 벽돌과 철을 먹으며 살겠지. 나는 그들을 이해할 수 없다. 단 한 번도 이해해본 역사가 없다. 나는 눈의 자유를 뺏겼다. 태양이 보고 싶어 죽겠다. 이 땅의 동쪽에서 떠오르는 것은 기계장치로 된 발광패널이다. 나는 진실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것은 내가 왜 더 이상 교미할 수 없는가에 대한 훌륭한 근거이다. 리비도는 인간에게나 있는 것이다.
에로스를 잃으면 죽음의 환영이 펼쳐진다. 피부 위로 드러난 뼈, 연기 색깔 가죽, 벌린 입 속의 잘린 혀…… 기타 등등. 나는 아침에 눈을 뜨는 일이 없다. 나에겐 아침조차 없다. 쾌락은 색깔을 잃어버리고 퇴폐 속에 침잠한다. 모든 것이 흑백사진으로 보이는 방 안에서 나는 춤을 출 기력도 잃었다. 내 혈관 속에 진짜 피가 돌았던 시절을 기억하는데, 그 기억에도 희뿌옇게 안개가 끼고 말았다. 젊음이여. 젊음이여. 젊음이여. 나의 시간은 압축되었다.
여인들을 볼 때 내 손에는 항상 나이프가 쥐여있다. 나는 약리학의 법칙에 따라 가죽과 고기로 된 남근을 잃어버리고 강철 날붙이와 가죽이 둘러진 손잡이로 된 남근을 쥐고 있다.
진리는 병자들에게 있다!
오, 나는 진리를 이야기했다. 혼돈! 무목적의 아나키즘, 분열된 사고, 왜곡된 감각, 무슨 수를 써도 부정할 수 없는 궤변, ism을 철저히 짓밟아 죽이는 Anti-ism! 세계는 전진한다! 앞으로 갓! 아무런 근거도 없이-앞으로, 갓! 모든 모럴은 절멸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