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상(我相)
어떻게 했어야 좋았던 것인가
나의 축제는 시작되기도 전에 끝나버렸다
아직도 초원에서는 장작불이 불타고
모여앉아 향쑥을 씹고 독주를 마시는 그들을
나는 곁눈질조차 하지 못하고 지나쳤다.
그래 나는 신들과만 만났다.
사람들은 내 오만과 어리석음의 거울인가 싶어
그들의 얼굴을 들여다보지도 못했다
아시는가, 신들에게는 표정이 없다.
그래서 나는 그들의 머리를 모조리 잘라버렸다.
마침 추수 때였다. 가을은 기별도 없이 다가와
사람들의 머리 위에 다리를 꼬고 앉았다.
나는 기막히게 웃음을 터트리며 울었다
목 잘린 신들의 머리끄덩이를 부여잡고
아무것도 아닌 것들의 한복판에서 울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가을걷이란 그 정도였음에
나는 <아무것도 아닌 것들의 한복판>에 풀썩
주저앉아버렸다.
지독하게 담배가 피우고 싶었다.
그런데 그 욕망은 나약함이었다.
그러나 용서할 것도 없었고 용서받을 것도 없었다.
나는 더 이상 술도 마시지 않는다.
도무지 구원을 바랄 수도 없기에 그렇다.
왜냐하면 어느 누구의 존재도
근거가 없기에.
이유도 없기에.
슬퍼하지 말아야할 것이다, 기뻐하지도
말아야할 것이다. 혈관에 피 대신 오일이 돌아도
천상도 천하도 한낱 백일몽이어
사실 나란 것이 발목이 잘린 채 둥둥 떠 있는 풍선이라 해도
내 생명에 아무런 근거도 없다고 해도
영속하지 않는 영혼을 나는 믿는다.
사멸하는 영혼
필멸하는 감각의 근원에는 필멸하는 영혼이 있다.
새벽마다 달을 세며 골목을 걷는 것도
꿈꾸다 일어나 가슴을 절개하는 것도
더러운 굴속으로 도망쳐
기절하듯이 잠들 수 있는 것도,
내가 죽기에 허락된 일이다.
내가 사랑하지 않으려 무진 애를 썼기에
이 세상 그 무엇보다 사랑스러워진 모든 이들에게 굳바이
굳바이, 나보다 먼저 죽어버릴 이들에게
굳바이, 나의 장례식에 참여할 수 없는 나에게
굳바이, 내가 죽여 버린 자연의 제신들에게
언젠가 이 고독한 골방생활이
마침내 나를 눈물 흘리게 만든다면
그때는 술을 마시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