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이 지은 도시
이 도시에서 벌어지는 모든 비극은
평범한 비극이 아닌
멍청한 비극이다.
산사에서 도시로 내려온 지 삼 일만에
나는 산에서 얻었던 모든 덕성을 송두리째 잃어버렸다
내가 이해했던 삶의 순환고리는
이곳에서 처참하게 부서져 내렸다.
도시 설계사들의 사명은 아마도 인간을 망가트리는 것
이곳에는 일견 모든 것이 있지만
실상은 아무것도 없다.
눈물이 날 것 같다, 그러나 눈물은 흐르지 않는다.
이 도회지에서 행해지는 모든 바쁜 몸짓들은
아무것도 아닌 권태와 영혼의 둔화
즉 멍청함만을 길어 올릴 뿐
사방에서 오물처럼 피와 죽음만이
유령처럼 활보하는 존재의 껍질들에서 뚝뚝 흘러내린다.
도시가 가장 조용해야할 시간에
나는 일부러 밖으로 나가보았다, 술도 담배도 없이
내 귀를 틀어막던 절규도 없이 나는 거의 나신의 영혼으로 거리로 나섰으나
이곳엔 침묵조차 없었다.
거듭거듭 겹쳐지는 멍청한 비극들만 있을 뿐.
가슴을 죄이는 아침
나는 나도 모르게 더러운 거리의 한복판에서
죽고 싶다며 되뇌었다…… 옳아,
신념도 철학도 가장 값싼 좌절이 되는 땅.
눈을 뜨기 무서운 땅. 인간을 빨아들이는 분쇄기 같은 마천루들의 숲.
누군가에게든 나는 절실하게 말하고 싶다, 도망치라고
그러나 시멘트로 포장된 이 거리를 걷는 이들은 모두가
이미 도시의 부속품처럼 보인다. 그들은 도망치지 않는다.
아아, 그들은 유령이다. 이미 죽은 흔적이다…….
나는 이제껏 나의 자기파괴에의 욕망이
나의 본성이리라고 짐작해왔건만, 아니었다
나는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자랐다
그것이 답이었다.
나의 고향은 비좁고 장마철이면 물이 차는 회색조의 지하실
가난도 빛이 바래버리는 내륙지방의 빈방.
정말이지 누군가를 만나 토로하고 싶건만
사람으로 바글거리는 개미굴 같은 이 도시엔
아무도 없다
가장 비참하고 저차원적인 고독이
모든 이들의 간격을 응결시켜버린다.
스승이시여, 그러나 저는 또 익숙해져버리겠지요
이 고독에 절망에 좌절에 비참에 천박함에…….
그렇게 되면 나는 필시 당신을 잊어버릴 것 같다는
무거운 공포를 안고 자리에 눕는다.
내 가슴에선
다시 광적인 증오가 일렁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