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st ideal(egloos)'에 해당되는 글 50건

  1. 2010.07.09 2010/06/30 - 황폐함을 욕망하라.
  2. 2010.07.09 2010/06/11 - 창작과 약물과 사회화와 고착되어 개성이 되어버린 병증들. 해설.
  3. 2010.07.09 2010/04/26 - 자살하는 사람을 비웃지 말 것. 풍자와 코미디.
  4. 2010.07.09 2010/03/28 - 나는 내가 약에 취하는 걸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5. 2010.07.09 2010/03/10 - 나는 이제 낯 모르는 의사에게 정직을 고하러 간다.
  6. 2010.07.09 2010/03/03 - 네버랜드.
  7. 2010.07.09 2010/02/19 - <과거가 없는 도시들을 위한 간단한 안내>
  8. 2010.07.09 2010/02/15 - I see your rainbow rising.
  9. 2010.07.09 2010/02/09 - "하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아닐까요?"
  10. 2010.07.09 2010/02/04 - 새하얀 사막에서 사는 그 개에 대하여.
  11. 2010.07.09 2010/01/28 - I want to be part of the human race.
  12. 2010.07.09 2010/01/21 - 별다른 수가 없을 것이다.
  13. 2010.07.09 2010/01/14 - 아무도 나를 병자라고 부르지 않을 것이다.
  14. 2010.07.09 2010/01/12 - 그건 이미 시체의 꿈이야.
  15. 2010.07.09 2010/01/06 - 태양의 살가죽은 무슨 색을 하고 있는가.
  16. 2010.07.09 2009/12/31 - <전쟁과 전사들에 대하여>
  17. 2010.07.09 2009/12/27 - 직관,직관, 직관, 열광적인 감각. 직관,
  18. 2010.07.09 2009/12/16 - 과정과 결과.
  19. 2010.07.09 2009/12/11 - I'm very ape and very nice.
  20. 2010.07.09 2009/12/02 - 나는 현대미술과 섹스를 해야만 하겠다. 가학적인 도착증으로.
  21. 2010.07.09 2009/11/30 - 끔찍하다. 역겹고 지독하며, 절망스럽다.
  22. 2010.07.09 2009/11/24 - 내 어깨에서부터, 팔뚝을 타고 팔꿈치에서 손목까지.
  23. 2010.07.09 2009/11/19 - ppppppuuuuuuuuuuuuuuuurrrrrrrre
  24. 2010.07.09 2009/11/17 - 자궁 밖에서.
  25. 2010.07.09 2009/11/13 - .
  26. 2010.07.09 2009/11/08 - everything
  27. 2010.07.09 2009/11/05 - 관념의 비극.
  28. 2010.07.09 2009/10/31 - 내가 도대체 어떻게 해야 좋단 말입니까.
  29. 2010.07.09 2009/10/31 - 연기 색깔로 물들었어. 눈과 혀에서부터 내장까지 전부.
  30. 2010.07.09 2009/10/29 - Empty words.
 실상 우리가 아무리 정직과 진실을 갈망하고 거짓말에 대한 면역이 없는 향일성의 존재라고 하더라도 그런 것은 세상에게 있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야말로 아무런 의미도 없다. 그것은 차라리 코미디이고 영향력도 지위도 없는 한낱 불량품의 발버둥일 뿐이다. 우리들의 목소리는 벌레의 울부짖음 같고 어느 누구도 듣지 않는다. 우리들의 절망은 가로수가 깔린 길거리에 꽂힌 가로등의 숫자만큼이나 흔하게 널려있는 값싸디 값싼 시대의 병질이고 그런 것은 이미 예사가 된 지 오래다. 한참이나 오래되고 오래되었다. 시대의 병질은 어딜가나 볼 수 있는 것이므로 이제와서 그런 것에 관심을 주는 감상주의자는 제 3세계에라도 가지 않으면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우리가 끊임없이 매달리고 있는 노골적인 진실도 태양 아래 적나라하게 드러난 통증과 절망도, 그것을 주장하는 이들 스스로도 믿지 않는 뻔한-그러나 이 땅에서는 더없이 영향력이 강한- 모순도, 사실 그따위 것에 신경쓰며 속을 곪아가는 소심한 이들은 우리밖에는 없다는 말이다. 우리는 주로 정신병자가 되거나 사상가가 되거나 예술가가 되거나 범죄자가 되거나 자살자가 된다. 왜냐하면 스스로 가치있는 것에 목을 매달았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라면 알고 있을 것이다. 믿음은 개인만의 것이다. 개인의 믿음은 세계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폐쇄된 것이며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이고 외면당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미 신과 천계의 잣대를 부정했기 때문에 그 믿음은 절대적이지도 않다. 믿음과 가치는 우리의 죽음과 함께 매장당할 것이다. 오래전부터 숙지하고 있듯이, 이곳은 믿기 힘들 정도로 황폐하다. 보라. 이해하라. 우리들 이외에 그 누구도 정당함을 찾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 누구도 진실을 근거로 행위하고 싶어하지도 않는다. 그 누구도 정직해지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먹고 자고 죽이고 그 누군가의 살 속에 자신의 살을 파묻고 싶어할 뿐이다. 어쩌면 신과 안락을 믿는 그들이야말로 세계의 황폐성을 철저하게 이해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그럴리가 없긴 하지만, 적어도 그들의 논리도 진실도 정당성도 근거도 없는 삶은 어떤 면에서는 생명의 맹목성을 완전히 이해하며 받아들이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니까 생각하라. 진실에 집착하는 것은 그저 우리의 취향에 지나지 않는다. 인생은 본래 취향을 손에 들고 상대를 죽이고 범하며 그 몸속에 취향의 정액을 쑤셔넣는 천박한 전쟁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든 무기는 틀림없이, 터무니없을 정도로 약하고 상황에 부적절하며 오히려 우리 자신에게 해가 된다. 하지만 별 수 없는 일이다. 그렇게 생겨먹은 우리이기 때문에 이제와서 무기를 바꿔들고 싶진 않을 것이다. 다소 도피적인 발언으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이 전쟁은 이기는 것만이 능사는 아닌 것이다. 왜냐하면 승리조차도 죽음과 함께 매장될 것이기 때문에 틀림없이 그러하다. 절대성이 부정당한 세계는 이만큼이나 황폐하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황폐성과 맹목성을 인정하고도 병신처럼 살아가고 있다. 어떤 방법이 있을까? 또 어떤 방향들이 있을까? 차라리 자멸을 욕망하면서 희생당하는 방법도 있다. 세계에서는 지금도 수많은 범죄자들이 단두대에 목이 잘리고 교수대에서 목뼈가 부서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분노한다. 하지만 그것은 아무 의미도 없다. TV에서는 값싸고 강렬한 상업주의들과 함께 생각없는 프로파간다가 난발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좌절한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 의미도 없다. 국가와 정치는 그 어떤 의심도 없이 필요불가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그 국가와 정치 아래에서 범죄자들을 제외한 그 누구도 상처입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자살을 결심한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런, 아무런 의미도 없다. 왜냐하면 황폐하기 때문이다. 저 황폐한 태양 아래에 펼쳐진 이 황폐한 대지가 우리가 아는 그 무엇보다도 더 황폐하기 때문이다. 애당초 의미를 찾을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저 우리 손에 들린 미약한 취향을 가차없이 휘두른 뒤에, 우리의 목을 졸라 복수하려고 드는 법관과 신부들에게 살해당하면서 존재의 마지막에 세계의 본질보다 더 적나라한 본질을 보겠다는 욕망으로 황폐함을, 더 지독한 황폐함을 갈망하면서 멸망당해도 괜찮은 것이다. 답은 없다. 결과도 없고, 모든 것은 죽음과 함께 매장당한다. 단순히 섬광처럼 빛나는 취향과 우리의 욕망들만 있을 것이다. 그리고 섬광은 지속되지 않기 때문에 섬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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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박관념과 시간에 대한 불안으로 글을 쓴다. 나쁘지 않다. 효율적이기도 하거니와, 실상 생각해보면 모든 창작의 동기는 미학에 대한 탐구도 사상가적인 소명도 아닌 '스트레스'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라면 이글루에 쓰여졌을 터인, 정리되지 않는 정념들과 작품이 될 수 없는 병증들을 최소한의 틀과 형식으로 다듬어 작품화시킨다. 그 얄팍하고 허무한 기준을 넘는 것만으로도 독자를 요구하게 된다는 점이 씁쓸하지만 그리 나쁜 일은 아니다. 내 머릿속에 들어 앉아있는 깐깐한 비평가와 가상의 독자들에 대해 다시 한 번 고민하게 하는 기회가 된다. 그들의 처우에 대해 좀 더 실질적으로 생각하게 될 것이다. 몰아내느냐 타협하느냐. 광기와 광기. 이성과 객관. 주관과 취향.
 세계와 나의 관계는 생각했던 것 만큼 나쁘고 원한과 증오로 지독하게 떡칠이 되어있지만 생각했던 것 만큼 폐쇄적이지는 않다. 내가 추구하는 에너지-그것이 부정적이더라도-를 가져오는 원천이야말로 바로 세계고, 그 외에는 그만한 수맥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긍정적이거나 혹은 부정적이다. 나는 내가 바라지 않는 부분들에 대해서는 가치판단을 포기했다. 그만큼 방관자적이고 자멸적이다. 반인륜적이다. 어쩌면 가치판단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이전보다 더 확실하게 행동가적인 면모를 포기한 것일 수도 있다. 어찌되었건 밖으로 드러나는 모습에는 다를 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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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은 텅 비었다. 방은 텅 비어있고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시간이라는 것은 지독한 거짓말이다. 시간이란 존재하지 않는 허구이다. 낮이 오고 밤이 오는 것에는 아무런 수학적 가치도 없다. 공백에 잠겨 살아가는 사람을 새삼스레 익사시키기 위한 악의들의 집합이 바로 시간이라는 개념이다. 평행으로 놓인 여섯개의 기타 스트링. 하얀 공백과 까만 잉크로 찍힌 책들은 권당 수백쪽이나 되는 종이들을 품고 있다. 나는 가치들로 방을 가득 채워놓았다. 누군가가 찾아낸 가치와 의미와 실체들로 방안을 가득 채워놓았다. 그리고 시간은 흐르지 않고 방은 텅 비었다. 나는 두통과 분열된 조각들을 가지고 있다. 진실은 통각을 목발처럼 짚고 다닌다. 사방으로 기어다닌다. 나는 하루종일 글을 쓰기 위해 인간관계와 파시즘과 내게로 향하는 시선들로부터 벗어났다. 도망쳤다. 벗어났다. 나는 망치를 들기에는 너무 낡았나? 나는 도끼를 들기에는 너무 말랐는가? 나는 내가 아는 모든 단단하고 모멸적인 것들의 머리를 박살내기에는 너무 병들었을까? 그러나, 아무튼, 어찌되었든지 간에, 내 손에는 가벼운 종이와 가벼운 펜 밖에 없다. 나는 단 한 번도 혁명주의자였던 적이 없고 혁명주의자가 되고 싶었던 적도 없다. 집단에게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섹스를 반복하고 태아에게 아교를 바른다. 사실, '그럼에도 불구하고'는 없다. 내가 이미 제외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영향력을 찾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는, 생존하지 않는 태아다. 그들은 계속해서 섹스를 반복하고 자신들의 태아에게 아교를 바른다. 내가 심장을 움켜쥐고 고함을 지르며 가라앉고 있는 이유는 명백히 내 혈관을 돌고 있는 검고 끈적이는 혈액 덩어리들 때문이다. 나는 바란다. 나는 바란다. 나는 전 세계 사람들이 나와 같은 고통 속에서 살고 있기를 바란다. 전 세계 사람들이 내가 보는 세계와 똑같은 세계를 보기를 바란다. 전 세계 사람들이 진실 앞에서 무너지고 고통 받기를 바란다. 그러나 나는 독재자가 아니다. 권력자조차 아니다. 내게는 영향력이 없다. 나는 단절되고 생존하지 않는 통각이다. 내 얇은 살가죽을 벗기면 그곳에는 지방과 근육이 있다. 더 깊은 곳에는 신경과 혈관이 있다. 그것마저 벗겨내면 뼈와 골수가 있다. 나는 뇌가 있고 심장이 있으며 허파와 간과 장과 안구와 혀와 늑골과 골반과 정소와 감각적인 화학물질들과 호르몬으로 된 영혼을 갖고 있다. 생물은 생물학적이며 해부학적이고 실제하지 않는다. 피와 살과 뼈와 호르몬으로 이루어진 나는 모든 사람들이 세계에서 내가 찾은 것과 똑같은 것을 찾아내길 바란다. 그들은 무너지고 비명지를 것이고 정당할 것이다. 나는 깊이 빠져있다. 나는 깊게 병들어있다. 나는 깊은 객관과 깊은 주관을 가지고 있다. 나는 겹쳐진 평행선이고 의사이며 환자이고 거울에 마주댄 거울이다. 나는 엔진을 고친다. 까맣고 덩어리진 혈액이 흐르는 석유를 엔진에 흘려넣는다. 철과 납으로 된 껍질을 벗기면 그곳에는 지방과 근육과 신경과 혈관이 있다. 나는 그것들을 전부 헤집어놓고 다시 연결시킨다. 고장난 엔진은 탁자 위에서 부들부들 떨기만 할 뿐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그것은 운동에너지를 얻지 못한다. 혈액 덩어리가 흐르는 석유는 연소되지 않는다. 그것은 엔진 속에서 썩고 가라앉아 무겁고 끈적거리는 검은색 오물로 변할 때까지 목적없이 혈관을 돌 것이다. 맹목적인 통증이며 맹목적인 사이클이다. 작동하지도 못하는 엔진은 365일 24시간 과열 상태다. 그것은 터져버리거나 폭탄이 될 수 있을까. 그것은 터져버리거나 폭탄이 될 수 있을까. 그러나 그렇다고 터지면 또 어떻게 할 것인가. 그따위 것이 폭발해봤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나는 약을 먹지 않는다. 나는 약을 먹는다.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약을 먹지 않을 것이며 또한 내 뇌세포를 갉아먹는 캅셀들을 과잉복용할 것이다. 나는 머리가 아프고 가슴이 아프고 정소가 아프다. 메스로 말미암아 절개되었다. 메스로 말미암아 단절당했다. 내 정신은 의학적으로 실존한다. 나는 철저하게 생물학적이며 신경학적이고 완벽할 정도로 미스테리하지 않다. 허망한 이미지에 집착하다. 우리는 잘못된 방향으로 진행된 진화의 모범적인 예이다. 우리는 매일 밤마다 전 인류와 섹스를 할 정도로 생물이고 영혼이 있을 정도로 비생물이다. 글을 쓰러 가야겠다. 나는 분열된 개념과 지리멸렬한 이미지에 집착하러 갈 것이다. 내 통증. 내 통증을 늑골 안쪽으로부터 뽑아낼 수 있으면 좋겠다. 심장을 감싸고 똬리를 튼 기다란 구렁이를 끄집어내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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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아주 많은 말들을 한다. 나는 많은 말들을 한다. 많은 생각들을 늘어놓고, 많은 혼잡을 끄집어낸다. 나는 수많은 단어들로 수많은 이미지들을 쌓아올린다. 나는 새벽 네시의 거리가 얼마나 축축하고 외로운지에 대해 말한다. 사실 외로움을 말할 수 있는 장소가 가장 외롭지 않은 장소이기도 하다. 어떤 사람들과 어떤 정신과 어떤 분류들에게는 그렇다. 그곳의 어둠은 깊은 어둠이 아니라 밤이 피어나기 직전의 어둠과 닮았다. 사람의 뇌와 심장을 한 그릇 안에 넣고 휘저어 뒤섞어놓는 습기찬 밤시간이다. 내 의도적인 캄캄한 공간 속에서는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할 것이다. 무언가를 찾아내기 위한 장치도 아니다. 나는 졸리고 피곤하다. 시선으로부터, 시선으로부터 벗어난다. 시선으로부터 탈출하고 허황된 이성과 강제로 부여된 개념들도 부수어버릴 것이다. 나는 병들고 환각으로 된 나무들을 본다. 나는 그 어두침침한 녹음 사이에서 자유롭다. 나는 자유롭다. 나는 자유롭다. 나는 자유롭다. 나는 너무나 자유롭고 아무것도 책임질 필요가 없는 환상 같은 존재다. 나는 지면을 기어다니는 꿈과 같다. 낭만주의는 내가 목을 졸라 죽였고 감상적인 의미들은 몽환과 함께 자살했다. 기어다니는 꿈은 철저하다. 빈틈없는 자폐이고, 그가 하늘을 날 때조차 그것은 구름 밑을 기어다니고 있을 것이다. 시선으로부터 탈출한다. 족쇄에 목을 매달아도 여전히 고독하기 때문이다. 고독하기 때문이다. 나는 정직하고, 정직하지 못한 인간들을 증오하며 정직한 인간들 또한 증오한다. 그들이 시를 쓰지 못한다면 나는 그게 누구든 증오할 것이다. 공격 받았다. 나는 창에 찔렸다. 고통을 물어뜯다. 완전한 문장들. 고통을 물어뜯다. 명료의 순간들. 나는 졸리고 피곤하다. 뜨겁고 축축하다. 밤공기는 가로등에서 쏟아져내리는 차가운 물줄기 같다. 짙은 남색으로, 그것은 달라붙는다, 달라붙는다. 모두 불안해하며 죽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죽음이 아니라 불안이다. 불안. 불안. 지독하게 불안해하며 정신은 산산조각인 날 것이다. 다시는 끼워맞추지 못하도록 말이다.
 감정 과잉. 감정 과잉. 나는 터무니없을 정도로 자유롭다. 자유는 상대를 가리지 않는 병적인 증오에 기인한다. 그리고 나는 죽음을 믿는다. 내 모든 가치를 한 순간에 휴지조각만도 못한 0으로 되돌려버리는 단 하나의 절대성을 믿는다. 열이 끓어대는 내 뇌를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의 체온인 양 끌어안는다. 새까만 콘크리트와 절망이 발라진 한밤 중의 빌딩들 사이에서 나는 몹시 흔들리고 명료하다. 사람은 암담하고 절망적이다. 사람에 대한 것이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그렇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길을 걷고 불안 속에서 잠이 든다. 어디에도 필연은 없다. 가죽과 새빨간 살덩어리들은 필연을 믿어야 하지만 어디에도 필연은 없다. 이곳에는 가치도 없다. 아무도 의미를 부여해주지 않는다. 아버지들은 전부 눈물 속에 빠져 죽었고 어머니들은 원망하는 눈만 남기고 죽음도 없이 사라졌다. 생명은 의미도 가치도 근거도 없이 고독하다. 고독하다. 고통스럽다. 가장 지독한 사실은 신이 없을 뿐만 아니라 악마도 없다는 것이다. 뜨겁게 달궈진 콘크리트와 모래가 쏟아지는 하늘에는 그 어떤 상징도 살지 않는다. 모든 믿음이 허황되고 절멸하는 진실밖에 없는 땅에서 나는 꿈도 꾸지 못하고 오직 고의로 취하기만 반복한다. 마지막까지 수 십개의 이성과 입장들에게 둘러싸인 채, 비웃지 말라고 말하는 것이다. 어디를 가도 우리밖에는 없다. 그리고 미학을 쫓아야한다. 그렇기에 미학을 쫓아야한다. 그러나 미학을 쫓아야한다. 표상은 기괴하게 일그러진다. 추함과 함께, 통념과 시선 밖으로 탈출할 것이다. 그 순수한 사람은 단단하게 잠긴 방 안에서 어느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은 작품들과 함께 늙어 죽었다. 그는 고독과 단절 사이에서 죽었고 썩어서 구더기로 뒤덮였다. 그는 오랫동안 미쳐있었고 순수했다. 그는 얼마나 고통받았을까? 그는 아무도 모르게 수천페이지의 글과 수십점의 그림을 그리다 아무도 모르게 죽었다. 그는 죽었다. 결국 그렇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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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병원에 가게 되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미 내가 병자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나는 깊이 병들어 있다. 우울해지는 일이 예전보다 훨씬 적다는 사실도 내 병증에 대한 증거들 중 하나다. 나는 더 이상 하루종일 우울해하지 않는다. 나는 아무때나 가슴 깊이 분노하고, 증오하며, 가끔은 끔찍할 정도로 무감각해진 채로 습관처럼 적의를 불태우고, 지치고 피곤한, 안개낀 정신으로 자살을 꿈꾼다. 표출과 파괴를 꿈꾼다. 그리고 정신없이 웃으면서 내 타성과 관성에 대해 고민한다.
 굉장한 객관이다. 그렇지? 나는 모든 것을 안다. 나는 모든 입장들을 알고, 나는 나 자신을 철저하게 관찰하고 분석할 줄 안다. 공부를 했지. 공부를 했거든. 나는 지식과 경험으로 스스로를 정신분석하고 리포트를 작성해서 내 담당의에게 가져다 내고 점수평가를 받는 환자다. 굉장한 이성이다. 굉장한 분리다. 굉장한 몰아다. 굉장한 병증이다. 나는 바닥나지도 않는 에너지로 내 병을 파내고 리스트를 만들어 정리하고 있느니 차라리 모든 것을 무너트리고 불을 붙이고 싶다. 해소와 치료. 해소와 치료. 그러나, 그러나 나는 또 내 발로 병원으로 걸어들어갈 것이다. 아이러니만 잔뜩 짊어지고. 무엇이 부족한지.
 박제된 표본들을 너무 많이 봐왔다. 그것이 문제일지도 모른다. 너무 많은 박제된 표본들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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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오늘도 그 모든 성과를 모르는 소통과, 그에 대한 비극에게 내가 꺼낼 수 있는 모든 진실과 아무도 바라지 않는 정직을 내뱉으려고 했다. 나는 병원으로 가려고 했다. 나는 피할 수 없는 포인트들에게 진절머리가 난다. 강요된 전체주의를 상대로 내가 도대체 무슨 행동을 할 수 있을까. 예의바르게 그를 모독할 것인가. 아니면 아무도 믿지 않을 논리로 그의 심장에 폭력을 박아넣을 것인가. 무엇을 하든 나는 그들의 신성에게 경멸당할 것이고, 그들은 그들의 이중잣대로 나의 이중잣대를 논할 것이다. 이 세상의 그 어떠한 도덕률도 믿지 않는다면 어떨까. 나는 고의된 재앙이다. 바닥에 발을 붙이기 위해서 지독한 노력이 필요했다. 끔찍한 빛과 소금밖에 없는 지상에서 육지동물처럼 서있기 위해서 말이다. 그러나 나는 조금만 방심해도 공기보다 가벼워지고, 그러면 모든 논리의 인간들이 나를 병원에 처넣으려고 드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내 발로 병원에 가려고도 했다. 내 펜을 찾을수만 있다면 그 어디에 갇혀서, 설령 인간이 아니라 택배소포나 다름 없는 것이 된다고 한들 무슨 상관이겠는가. 그래서 나는 오히려 위험하게 되었다. 그 누구도 위협하지 않음으로 인하여. 생명을 사랑하십니까? 나는 아무리 세상이 엉망이더라도(혹은 엉망이기에) '상황'을 타개하기 위하여 행동해야한다고 외치는 어떤 인간들을, 사람을 믿는 사람들을 지독하게 증오한다. 아침이 또 온다는 것이야말로 가장 치명적인 절망인 것이다. 오히려 해뜨기 직전의, 가장 캄캄한,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관념과 추상과 순수만이 날뛰는 시간이 가장 사랑할만한 시간인 것을. 나는 감금당한 광증과 순수에 대한 집착을 떠올린다. 가장 아름다운 방법을 찾아낸 것이다. 우리는 다시 순수에 목을 맬 정신을 찾아냈다. 너무 오랫동안 잊혀져 있던 것이다. 붕대로 숨긴 상처는 사라지지는 않는다. 진통제가 모든 병자들을 구할 것이라고 믿는 이는 아무도 없다.
 내가 여성차별주의자라며 매도하려는 의도들이 있다. 그러나 평등이라는 폭력을 위하여 모든 여자들에게 남근을 달거나 모든 남자들을 거세시킬수는 없는 법이다. 아니지, 사실은 그럴 수도 있다. 사실은 어떤 극단적인 정신에게 잡아먹힌, 그러니까 나의 친구가, 나의 동료가, 즉 지구 반대편에서 태어난 내 박제된 영혼이 평등과 파시즘과 남근과 거세를 외치면서 행동주의자로서의 삶을 밀고나가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곳에서는 전 국민이 더욱 강한 진통제를 만들기 위해 독사와 개미를 빻아 섞고 있을 것이고, 나는 모든 사람들을 거세시키고 대패로 밀어 평등한 세계를 만들었을 것이다. 그녀가 우리 모두를 거세시켰다. 혀마저도 남근을 자르듯이 잘라버렸다. 자의식, 자의식, 자의식, 자의식, 자의식, 의식, 의식, 의식. 우린 이제 그녀가 주는 희망을 품고 살게 될 것이다. 모두가 각자 개인의 욕망을 위한 전체주의에 물들게 될 것이다. 시내 한복판에서는 자궁과 정액으로 된 폭탄이 터질 것이고, 그것이 폭발하는 순간 자궁과 정액은 과격하게 뒤섞여 순식간에 수백만의 아이들을 잉태할 것이다. 무너지는 빌딩들 사이에서. 무너지는 빌딩들 사이에서 말이다. 그리고 빌딩이 무너진 뒤에는, 먼지를 마시고 태어난 아이들이 자연주의를 벗겨낼 것이다. 자연은 인위적이고 가식적이라고 말하면서 그것의 녹색 가죽과 하늘색 털들을 뜯어 벗겨낼 것이다. 그리고 모든 게 무너지고 망가져 인간이 뇌와 가죽조차 분간할 수 없게 되면 사람들은 자신이 낳은 갓난아이를 잡아먹는 것으로 전부 증명해낼 것이다. 과도한 욕망과 과도한 이성과 과도한 물질과 과도한 관념 사이에서 사람들은 마침내 안부터 바깥가지 빈틈없이 들어찬 넋나간 위기와 절망하기도 전에 흘러내리는 유쾌한 눈물로 똑똑히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똑똑해질 것이다. 내가 말한 그녀는 오래전에 죽었다. 잘라낸 남근들만이 가득한 세계다. 마음은 그 어느 시대보다 단단하고 개방적으로 변할 것이며 사람들의 머릿속엔 원초적인 관용과 종말적인 증오로만 가득하게 될 것이다. 희망! 희망! 희망사항! 사드부터 니체까지. 희망을 거부하면 나는 또 단정짓게 되는가?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지붕이 가라앉고 벽이 무너진다. 위대함이여, 위대함이여, 온 가정에 권총 한 정씩을. 지독하게 외로운 이들이 가지고 있는 적개심과 절망이 두꺼운 적란운처럼 형태로 나타났으면 좋겠다. 그러면 비가 올 것이다. 두꺼운 비가 올 것이다. 나처럼 유쾌한 사람이 얼마나 많이 있고 또 얼마나 많이 울고 있을까. 나처럼 유쾌한, 나처럼 유쾌한, 사람들 사이에서 머리를 흔들고 철망으로 집을 지으며 공격 받는, 나는 수십번 수백번 수천번이나 공격받았다. 나는 날카로운 칼에 찔려 심장과 뇌에 그들의 쇳조각이 남았다. 나의 적개심과, 나의 적개심과 나의 좌절과 나의 증오와 나의 잠자리 같은 성욕까지. 그야말로 가을 하늘에 날아다니는 노란 몸체와 금색 날개를 가진 잠자리처럼. 하늘은 파랗고 구름은 빨갛다. 현실만큼 그렇다. 아무튼, 아무튼, 나의 잠자리 같은 성욕까지 그들에게 공격당하지 않은 것이 없다. 나는 손가락을 움직이고 눈을 깜빡일때마다 쇳조각에 찔린다. 나는 쇳조각에 지배당한다. 아니다, 나는 쇳조각에 자극당한다. 내 관념은 쇳조각에 가서 부딪히고 산산조각 난다. 그러면 안쪽까지 훤히 들여다보이는 것이다. 미학과, 아름다움과, 아름다움과, 아름다움과, 아름다움과, 아름다움과, 내게 마지막으로 남은 그로테스크와 집착과 갈증이 향하는 모든 것들이, 만화경처럼 들여다보이는 것이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정신이 나갈 정도로. 아름다움을. 방화범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산부인과와 의사가 불타고 있지 않았다는 사실에 대해 절망했다. 나는 유쾌하고 잘 웃는 사람이다. 나는 유쾌하고 잘 웃는 사람이다. 섹슈얼은 모조리 끝나버린지 오래인데, 목이 잘린지 오래인데. 모든 성욕도 거세당하고. 아, 그랬다. 오래전에 그랬다. 그리고 나는 이미 모든 것을 적어놓았다. 글을 써야지. 규격화 된 a4용지에 새빨간 사랑을. 거절당하기만 하는 진실과 아름다움과 절망과 광증을. 객관의 언어로 말이다. 그의 가라앉은 지붕과 무너진 벽 안쪽에서 나온 것은 객관 언어로 나온 객관이 없는 아름다움이었다. 그의 글은 그렇게도 아름답고 완전했다. 글을 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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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직히 난 그 불에 타 재가 되고 흉한 골격만 남은 건물이야말로 서울에 가장 어울리는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상 우리가 가장 치명적이고 본질적인 감성을 가지고 살아가자면 이 명랑하고도 황량한 도시에서 느낄 것은 그야말로 그 불탄 문화재의 코미디 밖에 없는 것이다. 이 과거도 땅도 없는 도시의 색은 유화물감은 커녕 수채화물감의 색도 아닌 번쩍거리는 페인트로 칠해져있으며, 공기중에 떠도는 것은 오래전에 죽은 자들의 짙은 피냄새가 아니라 타고 남은 유골의 텁텁한 냄새 뿐이다. 굳이 반복해 말할 것도 없이, 철저하게 에너지가 부정되는 곳. 사실, 중요한 것은 과거가 아니다. 과거라는 말이 나타내는 것은 우리가 그 도시의 흙에서 맡을 수 있는 감동적인 절망의 냄새와 그 위에서 두발 딛고 사는 이들이 가진 존재의 빛나는 빈곤이다. 나는 틀림없이 이 도시에 사는 모든 이들은 가난하지 않다고 말한 일이 있다. 그것은 사실이다. 이곳에서 '가난하다'고 불리는 이들이 가진 것은 빈곤이 아니라 오히려 도시적인 공허와 천민적인 추악함이다. 말하자면 물질의 문제가 아니다. 그렇다고 긍정이나 부정에 대한 이야기도 아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순전히 그들의 가난과 그들의 페인트와 그들의 유골이 뿜어대는 뿌연 연기가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불쾌함과 정신의 압박감밖에는 낳지 못한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야 이런 대기 속에서는 포스트 모더니즘이 태어날만도 하다. 덕분에 나는 진심으로 증오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과 '그것이 낳은 모든 것'들을 말이다. 내 적개심이 얼마나 찬란하고 음울한가. 그리고 얼마나 정당하고 폐쇄적인가. 모든 벽돌과 철골들이 가솔린에 젖어 까맣게 번쩍거리는 도시를 볼 수 있다면, 그 위태위태한 인상이야말로 이 도시의 본질과 극단적으로 부합되는 것이므로, 그것은 틀림없이 터무니없을 정도로 치명적이고, 아름다울 것이다.
 결국은 미학, 미학 밖에는 없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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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를 잃어버리고 있다. 애당초 '가치'라는 단어를 자신만만하게 쓰는 것부터가 어불성설이지만, 아무튼 언어로 하자면, 가치가 실종되고 있다. 뜨겁고 뿌연 수증기와 감각의 감금상태 때문에 모든 가치가 혈관 틈새로 새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몇 번이고 계속해서 말했다. 내 정신이 습기찬 공기 속에서 질식하고 있다고. 어린 소년이 어머니를 죽이고 그 시체에 욕정하던 순간을 기억하는가. 그때는 그 무엇도 과격할 것이 없었다. 정신은 끊임없이 욕망과 절망을 아무도 모르게 흘리기만 했다. 그 항아리는 항상 넘쳐흐르고 있었다. 두발로 일어서 걷기 시작한 순간을 저주한다. 눈과 입을 얻고 그것으로 사물을 보고 집어삼키면서 충만한 병질은 어딘가로 날아가버렸다. 아마도 해결방법은 간단하다.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으면 될 것이다. 그리고 이미 오래전부터 난 요구를 표현하지 않고 벽과 마주앉은 채 살아왔다. 살아왔다? 가벼운 말이다. 나는 내가 '살아'왔다는 것을 농담조로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로 성숙한 정신을 갖고 있지 못하다. 아무튼 나는 요구하는 대신 끈질기게 증오하는 것을 택했다. 그편이 더 성질에 맞기도 했던 것이다. 나는 얕고 더러운 개울물에 투신하기도 했다. 그들의 도시적인 화학작용으로 정신을 밀어 떨어트리기도 했다. 기만과 모순을 마치 위대한 지혜라는 듯이 내뱉는 당신들의 역한 입김 사이에서 말이다. 이 한겨울에 나는 모기가 날아다니는 여름의 냄새를 맡는다. 내가 증오하는 사람들은 자신을 진리를 찾는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들은 반사회성과 이질적인 소수들에게서 가차없이 눈을 돌린다. 그들이 찾는 진리는 그들의 단단히 닫힌 눈꺼풀 안에 새겨져있다. 어둡고 협소한 보편과 비겁하고 경멸적인 침묵 속에서 그들은 자신들을 위한 기만을 찾았고, 그것으로 수 세기동안이나 자위만 해대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 땅에서 감긴 눈으로 진리를 말하고 장님의 지팡이로 경험을 더듬어대는 인종들을 오직 증오하기만 한다. 어쩌면 약간의 동정을 가질 수도 있겠으나, 그들의 무지한 가학이 낳은 상처와 피투성이의 시체가 너무도 많다. 그렇다. 그래서 나야말로 휴머니스트인 것이다. 끔찍이도 휴머니스트인 나는 뜨거운 수증기가 피어오르는 습기찬 방에서 당신들을 뼛속 깊이 증오한다. 나는 희생 없는 종말을 꿈꾼다. 죄인이라고는 단 한 명도 없고, 가학과 가학이 충돌하기만 하는 관계들에게서 가죽을 벗겨내고, 수천만 번째로 무너지는 빌딩 위에서 수십억 번째의 무고하지 않은 모범시민이 겨울태양의 새하얀 광선 아래로 떨어져 산산조각 나기를 바란다. 개인이 마침내 모든 진실을 짊어지고 병원으로 끌려갈 것이다. 아, 내가 아는 모든 인간과 인간의 이미지들을 도무지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로 증오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든 입증할 수만 있다면! 내가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죽었고, 내가 증오하는 사람들은 너무 많이 살았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서로의 피부를 스치며 살았다. 나는 고요하지 않은 종말을 꿈꾼다. 나는 어린아이의 죽음과 껍질이 벗겨진 도덕을 본다. 그들 '진리를 찾는 자들'이 거의 모든 인간적인 절망을 낳았다. 그들은 진리를 외치면서 법전을 쓰고 감옥을 세웠다. 그들은 또 병원을 짓고 사막에 사는 사람들을 병실로 몰아넣었다. 그들이야말로 전시대, 전세계적인 파시즘과 홀로코스트의 주범이며 존경받는 밀랍인형이다. 나는 부정당한 욕망과 에너지들을 안다. 나는 그들의 어린아이가 무너진 비극에 깔려죽은 것을 듣고 그 난잡한 아이러니에 희열한다. 나는 빌딩들이 무너지는 순간을 찍었다. 나는 단 한 번도 바닥난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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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의 소통에 있어서 웃음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믿고 있는 어느 이십대 중반의 아가씨. 내 수첩과 펜은 어떤 종류의 인간들에 대한 증오와 혐오 등 온갖 부정적인 감정들을 더욱 단단하고 끈질긴 것으로 만든다. 그러면 그것들은 어느새 실체에 대한 분노라기보다는 그 실체에서 도려내온 현상과 관념에 대한 추상적인 저주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밥을 먹지 못하게 만들고, 잠들지 못하게 만들고, 혀를 묶어버리며, 어느 누구와도 손을 잡지 못하는 가시 돋힌 인간이 되게 하고, 마침내는 그를 대낮의 도로 한복판에서 자살하게 만드는 정신의 결벽증을 알고 있는가. 혹은 앓고 있는가.

 꿈에서 만나는 까뮈는 어쩌면 나에게 '넌 소설가가 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별 도리가 없는 일이고, '말'이란 것은 이미 오래 전부터 그 중대함을 잃었다. 우리는 아직도 눈이 내리는 하늘을 기억하고 있는가. 대답은 '그렇지 않다'이다. 우리는 빨리도 그 가혹한 추위와 서슬퍼런 칼날로 위협당하던 정신의 긴장을 잊어버렸다. 불 붙은 땅의 냉기와 고요한 무관심과 치열하며 파멸적인 감성도 잊어버렸다. 우리는 너무 쉽게 잊어버린다. 아마도 우리는 딱 살아있는 만큼 잊어버릴 것이다. 문자야말로 감성을 끈질기게 만드는 것이지만, 그러나 영원히 한가지 이미지에 붙들린 병자일수는 없다. 섬광과 태양에 미쳐있던 시절은 역설적이게도 그 섬광과 태양을 내게서 떨어트려놓는 객관화의 장치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분석은 아무 의미가 없다. 분석이라는 것은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한다. 중요한 것은 내가 중요하다고 여겼던 것들을 어느새 잊어버렸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이곳에서 거의 나이를 먹지 않는다. 아무런 개입도 없는 이곳에서 우리는 우리들끼리 대화를 하고, 그 반복 사이에서 우리의 정신은 하얀 형광등처럼 단색적이고 명징하게 빛나게 될 것이다. 경멸은 내가 오랫동안 고민해온 가장 중요한 절망이다. 우리들중 누군가는 그것을 피해망상이라고 하기도 한다. 그러나 외부에서부터 날 선 칼날처럼 찔러들어오는 추잡한 경멸을 감각은 틀림없이 있다고 말한다. 분명히 우연이 있을 수도 있는 일이다. 우연과 우연이 뒤섞여 그 사이에서 비겁하고도 잔혹한 경멸이 태어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근저의, 그 탄생의 근저에서 내가 보고 좌절하는 그들의 새까만 자의식이 그저 내 망상증의 조각일뿐이란 것인가. 마침내 사고회로가 뿌연 연기를 피워올리면서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몇 십 번씩 형광등을 윤이 나도록 닦아도 별 수 없는 일이다. 문맥도 없이, 사실 그런 것을 따질 이유가 없다. 내 분열된 관념들을 억지로 이어붙이려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어느새 잠드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게 된 우리들은 그 결벽증 대신 깨진 거울조각 같은 인지를 얻었다. 나는 망가진 이들을 사랑한다. 그리고 혐오한다. 언제 어떤 방식으로 하는 말이든, 항상 처음 하는 말이 아니다. 나는 완전함 앞에서 헤매다가 태양의 사막 한가운데로 굴러떨어졌다. 감상이 없는 추상성과 의도가 없는 비유들 사이로. 나는 모든 모노톤의 흑백사진이 불태워지는 사막으로 굴러떨어졌다. 이곳에는 포스트 모더니스트들이 환장하는 희멀건 안개 따윈 손톱만큼도 없다. 여기는 이미 모든 것이 타고 난 뒤다. 태양 아래에는 모래와 소금밖에 없는 것이다. 아무런 근거도 없지만 아마도 괜찮을 것이다. 한참 전부터 마치 관자놀이에 가져다 댄 권총 방아쇠를 당기기 직전 같은 시대다. 이미 하늘과 인간들의 온갖 구멍에서 뿜어져나오는 연기에 가려 보이지도 않게 된 태양이지만, 곧 터져버릴 것이다. 어느날 갑자기 도시의 마천루와 사람들 사이에 떠올라,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새하얗고 폭력적으로 불타다가 마침내는 터져버릴 것이다. 그야말로 병자들을 위해서.
(파괴적이지 않은 관능은 어디에 있을까. 그런 것이 존재하기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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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 빛나는 광증을 찾아 헤매는 한 마리 개가 있다. 개는 관념의 사막에서 과거와 환각의 경계선조차 잃어버렸다. 그래, 이곳은 너무 깜깜하다. 밤이 오지 않는 이 땅은 하루종일 태양빛으로 새하얗고, 개는 그곳에서 눈도 잃어버렸다. 죽을테냐? 시각을 잃었으니 광증이 빛나는지 빛나지 않는지는 만져보고 집어삼켜봐야 알 일이다. 어느 시점에서? 어느 시점에서 죽을테냐? 나는 자신의 입과 눈에서 쏟아져나온 불덩어리가 옮겨 붙어 타죽은 사람을 알고 있다. 그가 인간이기나 했던가. 그가 언제 단 한 번이라도 인간이었던 적은 있었던가. 여기 빛나는 광증을 찾아 헤매는 한 마리 개가 있다. 피골이 상접해 모래 위를 기어다니는 그 개는 물도 음식도 찾지 않는다.

 개의 노스탤지어는 구역질과 구토로만 가득하다. 그곳에는 다소의 몽환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몽환이야말로 바로 구토의 원인인 것이다. 개는 사막에서 빛나는 광증을 찾아 헤맨다. 개는 입으로 뇌수를 모조리 쏟아내듯이 토악질을 했다. 몽환은 그 신물에 전부 쓸려 내려갔다. 렌즈에 비친 태양은 필요 없다. 개는 목이 터져라고 짖어댄다. 말했듯이 그 개는 눈도 잃어버렸다. 개의 눈구멍은 새빨갛고 텅 비었다. 눈구멍이 새빨갛고 텅 빈 개는 사막에서 그 어떤 인간의 냄새도 나지 않는다는 사실에 열광한다. 여기에는 단내 나는 눈물을 흘리는 인간도 없고 그를 위한 렌즈도 없다. 개는 바싹 마른 혀로 모래를 핥는다. 그 개의 위장은 이미 퇴화한지 오래일 것이다. 새하얀 햇빛에 쪼여 끓어대는 개의 심장도 마찬가지로 오래전부터 버터처럼 녹아흐르고 있었을 것이다. 그 개다. 여기 빛나는 광증을 찾아 헤매는 한마리 개가 있다. 아무도 없는 관념의 사막 위에서 그림자처럼 비척대며 떠도는 그것이 바로 그 개다. 개는 곧 죽기를 결심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어떻게 설명해야할까.

 아무튼 개는 죽지 못할 것이다. 개는 죽지도 못하고 빛나는 광증을 찾아 언제까지고 헤매기만 할 것이다. 개는 이미 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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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의 모든 선의와, 그들의 모든 인간성과, 그들의 모든 일상 속에서의 고민들이 내 결벽증에 상처를 입힌다. 나는 밤에 일어나서 아침에 잠들고, 어느 누구와도 만나지 않는다. 그들의 모든 인간적인 시선들이 죄인이라고는 단 한 명도 없는 이 세상에서 나 혼자만을 죄인으로 만든다. 죄책감이여. 삶을 열광적으로 살게 하는 원천이 잔혹함에 있다면 믿겠는가. 이곳에는 아무것도 없다. 우리는 모조리 새까만 외로움으로 작열하는 사막에서 말라 죽을 것이다. 우리의 시체는 재조차 남기지 않을 것이다. 내 생명을 사랑하는, 무언가 형태 있는 것으로 삶을 사는 인종들에게. 나는 당신들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서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만큼 당신들을 정신이 나갈 정도로 증오합니다. 그러나 만일 내가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다면, 그러기 위해서 내가 어떠한 행동을 모두 앞에서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이나 할 수 있겠는가. 남자는 죽어서 천국에 갔다. 그리고 그 도시에서 소매치기를 당했다. 어떤 불안감, 내가 가장 집착하는 인간의 인간불신. 인간불신을 사랑해야만 한다. 그리고 잊어버린, 개인의 치졸한 상처들과, 어떤 세계적인 비극에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 에고이즘들도.
 진실된 비극이 유창한 표현을 만들어내는 일은 없을 것이다. 영원히 없을 것이다. 차라리 그냥 내가 무너질 것 같다는 사실을, 당신들이 인간이라는 사실 때문에 내 절망이 두개골 안쪽 구석구석까지 들러붙어 조용히 침전되어있다는 끔찍함을. 아, 아아, 내게서 무슨 말을 원하나? 그들은 내가 무슨 말을 하길 원하나. 난 이 뜨겁게 끓어대는 땅에서 아무도 인간이라고 인정해주지 않는 돌발적인 관념이고 빈곤이다. 내가 무엇이 될 수 있다고. 내가 그들에게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아무도 대답해주지 않을 것이다. 난 언제까지고 거울밖에 없는 이 방에서 역겨움을 참지 못하고 온갖 것들을 게워내기만 할 것이다. 그리고 그 게워낸 것들이 또 나를 구토하게 만들 것이다. 날 꺼내다오. 내 가슴을 쪼개고 심장을 꺼내버려라. 그리고 맥박조차 뛰지 않게 된 내 손목을 잡고 날 이 지독한 방으로부터 끄집어내. 썩어버린 내 시체를 당신들 인류의 일부로 만들어줘.
 아아, 역겨운 감상주의, 감상주의, 주의, 주의, 주의, 주의. 주의라니. 그것이 도대체 뭐라고. 내가 도대체 무슨 언어를 써야 좋겠는가. 내가 쓰는 이 언어는 내가 만든 것들이 아니다. 나는 정직한 인간으로, 혀를 잘라버리고 존재의 가장 치명적인 섹스를 찾으러 갈 것이다. 나는 불감증에 걸린 시체다. 누구나 다들 그렇듯이 나도 바싹 마른 사막에서 에로스처럼 태어났다. 광야 한 가운데서 아버지의 시체에 술을 붓고 불을 붙인 그 남자가 바로 나다. 닮았는가. 하지만 잘 보면 그다지 닮지도 않았다. 통제된 감성이 이성으로 수치화된 눈들에게는 가장 좋은 먹이감이다. 내가 도대체 어디에서 타죽어가고 있다고. 도대체 누구를 위해, 도대체 무엇을. 이 모든 것들에게서 오직 뉘앙스만이 진실이다. 뉘앙스가 아니고 난센스도 아닌 구체적인 단단함들은 아무것도 아니다. 모조리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아직 태양과 섹스할 줄을 모른다. 아니, 어쩌면 나는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내 표상들과 내 병질들은, 충분히, 그런, 성향이, 있다.

그리고.
그리고 반복하건데 여기엔 아무것도 없다. 인간에 대한 모든 기대는 좌절되고, 표현에 대한 믿음은 배신당한다. 내가 무슨 말을 했는가. 내가 무슨 말을 했는가. 내가 당신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당신은 도대체가 알고나 있는가. 나는 사람에 대해서는 오직 고뇌하고 증오하기만 한다. 그러나 믿음은, 그러나 신뢰는, 그러나 그 최소한의 기대는 도대체 어디로 가야 좋단 말인가. 내가 당신에게 무슨 말을 했는가. 나의 짧은 문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는 알고 있나? 물론이다. 나는 알고 있다.
그렇게 모든 소통에 대한 희망은 관념의 가장 낮은 밑바닥까지 추락한다. 오직 저주하기만 한다.
차라리 태양의 손을 잡겠다. 차라리 태양을, 내가 몇 번이고 말했지만, 그렇다. 차라리 그와 함께 타죽어버리겠다.
언어의 피질이 개인을 절망케한다면 차라리 입을 다물어라. 정직한 사람은 그렇게 할 것이다.
정직한 사람은 고독으로 목을 졸라 자살할 것이다.
마천루들 위에 마천루를 지어야 한다. 태양 가까운 곳에서 목을 맬 이들을 위해서.
정직한 사람은 고독으로 목을 졸라 자살할 것이다.
태양의 하얀 그늘 밑에서.
태양의 하얀 그늘 밑에서.
그 극단적인 추상성의 이미지 속에는 아무도 없다. 그만두겠다. 왜 자살하지 않느냐고.
얼굴도 보이지 않는 오만들. 익숙한 확신들. 그것들의 표정에 칼을 대고, 그 가죽을 전부 잡아 뜯고 싶다.
전환이니 치환이니, 아무리 배를 가르고 그 안에서 수십 수백미터씩 되는 내장들을 천천히 끄집어내도 아무것도 성립되지 않는다. 적어도 이곳에선, 그리고 모든 것이 송두리째 끝나버리기 전까지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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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우리가 그 어떤 대화도 나눌 수 없을 것이라는 강렬한 진실이 자살을 만들 것입니다. 그는 항상 개인을 말했다. 그는 항상 개인을 말했지만 정작 그가 개인이었던 적은 있기나 했던가. 그가 개인이었던 적 말이다. 그는 단단한 벽돌로 피부를 쌓고 열리지 않는 입으로 결벽을 증언했다. 그러나 그가 정말 폐쇄된 개인이기나 했는가. 심장으로 섹스를 할 수 없다면 나는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 병자여. 아아, 병자여. 우화를 말하는가. 사막을 기면서 물을 찾지 않는 사람을 안다. 그것은 사람도 아니었다. 그것은 사람도 아니었고, 차라리 사막이며 차라리 태양색으로 물든 하늘이었다. 그리고 캄캄한 공기 속에서. 아니다, 그곳은 오히려 밝은 곳인가. 당신은 사물의 가장 어두운 부분까지도 인조된 빛이 샅샅이 훑고 지나다니는 뜨거운 방안에서 무슨 감각을 찾는가. 개인과 만나고 싶어한다. 개인은 아마도 개인과 만나고 싶어할 것이다. 차라리 사막이며 차라리 태양색으로 물든 하늘은 열망밖에 열망하지 못한다. 열병이다. 열에 들떠 불꽃 사이로 머리를 처박는 열병이다. 날뛰는 것을, 날뛰는 것을, 날뛰는 것을, 날뛰는 것을, 날뛰는 것들을, 어떤 이들에게 언어를, 어떤 이들에게는 언어를, 또 어떤 이들에게는 모든 고장난 것들을. 아아, 아아, 구분을 증오하는가. 정리된 어떤 것들도 증오한다. 환각이 되지 않는 단단한 것들은? 모든 선과 시각마저도 증오한다. 병자여. 병자여. 넌 이미 아무것도 아니다. 여기서는 이미 그 무엇도 아니다. 그 밖에 어떤 것들을 위하여, 이미 고착된 사실들은 정치의 입을 통해서만 밖으로 흘러나오는 것이 아닌가. 혼탁은 어떤가. 너는 무엇을 어떻게 하고 싶어했다. 전부 잃어버리고 그것들이 있던 흔적만이 남았다. 실루엣은 혼탁하다. 나는 기억력이 좋지 않다. 그리고 나는 포기하겠다. 그리고 나는 모조리 포기하겠다. 난 내가 쓴 문장들로 목을 매고 뛰어내리겠다. 내 두개골 안에 살덩어리가 들어있다는 믿음도 포기하겠다. 세계는 그 누구의 의견도 듣지 않고 모든 것을 제멋대로 끝내버리겠지만, 우리는 광기를 증명할 수는 있다. 그 어떤 증명도 바라지 않고, 단어의 정의조차도 산산조각 내버리고. 현실의 이미지들은 현실적으로 터무니없이 조잡하다. 그 빛바랜 색깔들. 무용한 섬세함들. 항상 밤이 찾아온다. 실은 밤이라는 시간 밖에 없다. 숫자로 된 것들은 실상 단 한 번도 나타난 적이 없기 때문에. 아아, 또 한 번 그 새까만 시간들 사이에서 잊혀질 수 있다면.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아무것도 아닌 듯이 녹아흐르고 싶다. 그곳에는 사람의 발소리도, 그 어떤 시간과 눈동자들도 없었는데. 나는 고향도 뭣도 아닌 곳으로 돌아가겠다. 처음부터 이곳에는 그것 말고 아무것도 없었다. 기대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언어가 언어를 오해하는, 비뚤어진 인공의 관념들 사이에서는 아무것도 기대할 것이 없었다. 차가운 공기와, 빛으로 온갖 것들이 들쑤셔지는 상황을 찾아 절벽 아래로 굴러떨어져야한다. 손발이 잘린 몸뚱이로 목을 매달아야한다. 거의 모든 것들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소리를 지르며 거의 모든 아무것도 아닌 것들에 대해 절망할 정도의 모순은 입에 물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결벽증이여. 그 사이에서 증오하지 않는 방법이란 없다. 사막에 사는 그 목마른 개는 물조차도 찾지 않는다. 망가졌을 것이다.
망가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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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병원에 가지 않을 것이다. 내 시선은 명징하고 내 이성은 벽돌처럼 단단하다. 내가 망가져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내가 눈을 뜨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병원은 모든 생명력과 날뛰는 섬광들을 죽여 달팽이처럼 땅을 기게 만들 뿐이다. 나는 병원에 가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건강을 만들지 않는다. 그들은 침체된 감성을 만든다. 나는 병원도 약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우리들의 가죽을, 우리들의 유쾌한 가죽을 보라. 우리들의 가죽은 증명이다. 언어는 증명될 수 없는 것을 갈망하는 공허한 열망이지만, 가죽은 떨어져나가 춤을 추거나 생명을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도 니체가 없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나는 하얀 와이셔츠를 입은 척수들에게 침을 뱉었지. 그들은 오만했지만 그들의 관념은 대뇌피질까지 닿지도 못했지. 그것이 완전한 현대의 모습이었다. 절대성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비극적인 방정식이었다('완전'이란 그렇다). 그들의 와이셔츠야말로 그랬다. 그들이 떨어져나가고, 또 나도 온갖 인격들에게 불을 질렀으니 이제는 별 수 없다. 나는 그야말로 때려치운 것이다. 나는 벽돌로 된 언덕을 넘어트리고 굴러떨어뜨렸다. 유쾌하고 고통스럽다. 나는 여기서 계속 글을 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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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은 열정이 아니고 열병이다. <할 수만 있다면> 영혼과 인생을 전부 팔아서라도 걸작을 쓰고 싶다고 생각하곤 할 것이다. 그러나 사실 인간이 예술을 한다는 것은, 아무도 그따위 것을 사서 그 대가로 영감을 주는 짓거리 따위는 하지 않으며, 또 신도 악마도 인간의 인생에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에 그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것은 증명도 되지 않고 표상도 되지 않는다. 믿어야만 할 것이다. 그 어떤 발버둥과 진심어린 저주들로도 사람들의 눈과 입에서부터 내 머리로 떨어져내리는 모멸들을 지우지는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이 세상에는 신도 악마도 없기 때문에 그 어떤 가치도 절대적인 정당성을 갖지 못하며, 또 그렇기에 우리가 손에 쥔 모든 것들은 허술하고 구멍투성이다. 안전한 곳은 어디에도 없다.
 당신은 나와 똑같은 감정을 느낄 것이다. 당장이라도 총이든 뭐든, 폭력적이고 단발적인 쇳덩어리를 집어들어 관념과 충동들이 술취한 것처럼 두개골을 두들겨대는 관자놀이에 겨누고 싶을 것이다. 그리고 몇 번이고 몇 십 번이고 방아쇠를 당겨 그것이 아무것도 아니게 되도록 히스테릭하게 방아쇠를 당길 것이다. 우리는 파괴적이고 과격하게 산산조각이 나고 싶을 것이다.
 광증은 미치광이를 미치광이로 만든다. 당신은 춥고 캄캄한 어딘가에서 평생 위대함을 위해 희생되어야만 할 것이다. 아아, 고흐는 지독하게도 옳은 말을 했다. 위대함이 위대함이 되는 일은 평생 없을 것이다.
 그러니 제발 발광하라. 발광하라. 발광하라. 발광하라. 발광하라. 발광하라. 발광하라. 증오는 관계에 대한 집착이다. 사랑은 범죄고 범죄는 사랑이며 나는 전 세계의 모든 인격자들의 뱃속에 쇠붙이를 찔러넣고 그것의 이가 다 빠져나갈 때까지 휘젓고 싶은 만큼, 그들 모두를 사랑한다는 것이다. 그렇다. 그랬나보다. 나는 전 세계 60억 인간들에 대한 인류애가 지나친 나머지 그들을 전부 죽여버리고 싶었던 모양이다. 나에게 '너도 결국은 미쳐돌아가는 난잡함 속으로 끌려들어갈 것'이라고 손가락질하다 살해당한 모든 이들도 말이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나 증오하고 증오하고 증오하고 또 증오하는데. 모든 웃는 사람들과 우는 사람들을, 모든 모든 모든 표정들과 언어들을, 모든 눈과 코와 입과 귀들을 모조리 돌로 짓이겨 부숴버리고 싶을 정도로 증오하는데. 발광하라고? 증오라는 집착에서 떨어져나오면 나는 미련을 버린 고고한 미치광이인가? 그러나, 그러나, 그러나 나는 단 한 번만이라도 모두에게 보여주고 싶다. 그들의 골통을 전부 뼛가루로 만들지는 못할지언정, 그들이 그토록이나 사랑하는 관계들 사이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고, 또 내가 얼마나 당신들 전부를 눈이 뒤집힐 정도로 증오하는지. 내가 어떤 감정과 방법으로 당신들의 살가죽을 헤집어놓고 싶은지. 나는 분석도 없고 판단도 없는 원색적이고 새빨간 증상이 당신들 눈앞에 압도적으로 들이닥치도록 만들고 싶은 것이다. 적어도, 이 현실이라는 불투명한 막 밑에서 어떤 감정이 울면서 벽에 머리를 들이받고 있는지. 어떠한 허위도 가식도 없는 증오가 이 땅에 두발로 서서 생존하고 있다는 진실을 당신들의 오감에 처넣고 처넣고 처넣고 처넣고 또 처넣어주고 싶은 것이다. 통증을, 통증을 말이다. 통증이 있다는 사실을. 나더러 도대체 뭘 어떻게 하란 말인가.

 아아, 아아, 아아, 적의가 있다. 세상에는 적의가 있으며 끔찍한 공허 또한 있다. 무가치는 강렬한 존재감으로 내 심장을 움켜쥐고 있고, 삶은 자신이 죽어 없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안다. 망상증과 편집증으로 정신을 보호할 수 없는 것은 까뮈가 내 정신에 칼날처럼 박혀있기 때문이다. 나는 적이 있다. 내게는 너무도 병적이나 너무도 구체적인 적이 주체도 못할 만큼 많다. 명증한 시선으로, 명증한 시선으로, 너무도 명증한 시선으로 나는 나의 환각에는 환상조차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위대함이여. 위대함이여. 우리는 그 무엇도 수단일 수 없는 곳에서 태어났다. 예술은 터무니없이 고독하고, 터무니없이 강렬하며, 터무니없이 원색적이고, 터무니없이 유일하다. 끔찍할 정도로 위대한 그것이야말로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눈을, 똑바로, 떠야한다. 언어가 될 수 없는 것을 언어로 만드는 짓이 '증명' 될 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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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기대할 것은 몰이해와 모멸 뿐이다. 우리가 기대할 것은, 몰이해와 모멸 뿐이다. 사람들의 발랄한 입과 혀에 둘러싸여, 광대짓을 하러 무대 위로 끌려나가는 남자는 처량한 인간이다. 우리는 숨을 쉬지 않게 될 것이다. 우리는 통증과 좌절 속에서 스스로 진화해, 결국엔 산소도 필요로 하지 않는 괴상한 동물이 되고 말 것이다. 질식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수면 위로 떠오르기보다는 갑자기 덮쳐오는 찬 물결 같은 트라우마와 조소들을 피해 더 깊은 곳으로 헤엄칠 것이다. 발과 다리가 달린 물고기들은 모두 동족이라며 우리를 환영할 것이다. 그들은 눈 위에 카메라 렌즈를 덮고 모래로 옷을 지어 입고 다닌다. 해변에서 백사장에 발을 묻고 태양 아래에 서있으면 항상 머리가 어찔하기만 했던 이유를 알고 있는가. 우리는 포유류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포유류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포유류인 채로 생선이 되어 바다 깊은 곳으로 걸어들어갈 것이다. 무거운 납덩이를 집어삼키고 친구들을 만나러 바다 밑바닥까지 가라앉을 것이다. 그들 역시 납을 집어삼켜 입이 틀어막혔기 때문이다. 납독으로 욱씬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그들을 만나러 갈 것이다.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그들이 아닌 그들은 그들의 관심만큼이나 치명적이다. 치명적인 것은 고통을 강제로 살게 만든다. 비몽사몽한 가운데 나는 매일 아침 기상할때마다 자살을 되뇌인다. 이미 나는 습관처럼 절망하고 습관처럼 자살을 희망한다. 꿈에서밖에 본 적이 없는 묵직한 납덩이가 시체의 손가락에 당겨져 세 발하고도 다시 한 발, 그러면 내 두개골이 박살나고, 뇌수와 함께 모든 관념과 이미지들이 갈가리 찢겨 나갈 것이다. 오히려 죽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나는 고래처럼 떠올라 망망대해 위에서 모든 사물이 태양으로만 가득 채워져있는 것을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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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들은 그대들의 적을 찾아내어 자신의 전쟁을 수행해야 한다. 그대들의 사상을 위해! 그대들의 사상이 패배할지라도 그대들의 솔직함은 아직 승리를 외쳐야 한다!

 그대들의 솔직함은 아직 승리를 외쳐야한다. 다양성이야말로 전쟁의 씨앗이며 가장 강력한 근거다. 그가 말하는 전쟁은 현상이며, 존재성의 저변에 가득하게 칠해진 필연이다. 그는 '천민'이라는 말을 자주 내뱉는다. 그것이 누군가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오해를 불러일으키지만, '우리'는 언어가 쳐놓은 장벽의 뒷면을 볼 줄 알아야 한다. 혹은 이해를 할 수 있어야 한다. 흉기와 증오를 집어들어야 한다.

 그는 적을 찾으라고 말한다. 경멸해야할 적이 아닌 증오해야할 적을 말이다. 그러나 아무도 책임을 질 수 없게 된, 종교적 허무주의로 새까맣게 가려진 사회에서는 굳이 그것들을 찾아낼 필요가 없다. 이곳에선 숨을 쉬는 것만으로 폐부가 인식의 죄악으로 난도질당하고 증오와 원한만으로 머리속이 포화상태가 되는 것이다(죄악이라는 단어는 항상 조심스럽다. 그것은 '전쟁'이나 '천민'만큼이나 오해의 소지가 많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들이 쓰는 언어라는 것이 전부 그렇지 않던가).

 달리 생각해보면 또 이렇다. 그 종교적 허무주의가 모두의 눈과 심장을 단단히 옭아매었기 때문에 오히려 그 누구도 적을 찾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양손에 흉기를 들고, 입에는 원한을 가득 물고도 이 캄캄한 '책임'들 사이에서는 도저히 어디로 발을 떼야할지 몰라 주저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수 많은 증오들이 그렇게 발이 묶여 정신없는 머리로 울고 있을 것이다. 그로 말미암아 그들은 오래 된 울분으로 좀먹히고, 마침내 병자가 되버리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죄책감과 도덕이 만든 결말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백주대낮의 거리 한복판에 서서 보면 아무도 죄인은 없다.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리고 아무도 죄인이 아니라고 입을 여는 순간 개인은 그야말로 적을 한 아름 발견하고 전쟁을 터트리는 것이다. 이 세상에는 단 한 줌의 죄도 없고, 단 한 사람의 죄인도 없다. 종교적 허무주의는 단숨에 절멸한다. 고로 증오와 원한은 더욱 명백해지며, 흉기는 갈 곳을 찾는다.


나는 그대들 마음속의 미움과 시샘을 알고 있다. 그대들은 미움과 시샘을 모를 정도로 위대하지는 않다. 그렇다면 그대들이 그런 마음을 품고 있는 것을 부끄러워하지는 않을 정도로 위대해지도록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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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두려운 것은 내가 소설가가 아닌 사상가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불행한 삶을 산 사람은 자신이 타인의 인생에서 무언가를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시간을 과신한다. 그것도 자신의 경험이라는 단면에만 한정지어서 말이다. 칠이 벗겨진 자주색 하늘에 구멍이 뚫린 것 같다. 원래 색깔이라는 것이 어디에 있었던가. 이 짓거리를 하는 데에는 얼마만큼의 규정된 정신이 필요한 것일까. 전신에 있는 관절의 갯수 정도 될까. 뇌수를 감싼 것이 하필 단단한 골격이라는 사실이 비극이다. 비극이야 사실 가져다 붙이기만 하면 무엇이든 비극이다. 화가나, 아니면 오히려 칠장이가 되려나? 그 의식을 내버린 동공과 유일하게 사랑할 수 있을 나사 풀린 정신을 위하여? 그러나 그런 관념이 있기는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 어떤 문장에서, 저 하늘에 빛나는 별들 사이에 머리를 박고 살아가는 느낌이라고. 너는 나에게 잠을 자면 안된다고 명령했던 일까지 있지 않았던가. 잠을 자지 말라고, 그것을 칼로 자르듯이 언어로 만들어 놓을 수 있는 것 또한 붙여진 대로의 비극이 아니겠느냔 말이다. 재와 톱밥은 어디에 있는가? 어디에 쌓였나? 머리가 별들 사이에 처박혔을지언정 발은 진창에 뿌리까지 내리고 있는 모양이다. 나무가 양분을 빨아 들이듯이, 발목에서 무릎관절과 허벅지를 지나 갈빗대 안쪽까지 스멀스멀 올라오는 공포가 있다. 공포를 빨아들인다. 진창 속에서 잘도 그런 것을 찾아내 집어삼킨다. 명도가 높은, 번쩍거리고 눈이 부신 자주색으로 빌딩을 쌓았으면. 한가운데에. 섹스피스톨즈 같은 장난스러움은 중요하다. 의식을 버린 눈동자와, 뒤엉킨 피부만큼이나 혼탁한 색깔을 갈망하는 것과 같다. 중요하지 않기 위해 중요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곳의 이 뜨거운 공기야말로 진창이다. 위협하고, 위험하지 않게 위협하고, 공포심을, 가장 무서운 것. 피로해하지 않는 남자를 찔러죽여야 마땅하다. 울어라 울어라. 눈알이 녹아내릴 정도로 울어라. 슬퍼서 우는 것이 아닌 만큼, 값싼 감상주의자들을 찾아내서 그 잘 다듬어진 살덩어리들을 물어뜯을 생각만 해라. 말로 할 수 없을 만큼 증오하고 혐오한다고 한다. 살인자와 강간범을 보고 치를 떠는 이들의, 사람 냄새를 풀풀 풍기는 기만들을 몹시도 증오한다고 한다. 그는 사회에서 자랐다.
 중요하다.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들만 같은 줄거리 안에 밀어 넣는다. 그래, 누군가는 자신의 글에 밑줄을 친다. 아무튼 눈동자를. 망가진 병자의 냄새를 미치도록 갈망한다. 망가진 병자의 냄새를, 내게 주어진 인간성처럼 말이다. 목이 마르다. 그 병증에게 목이 마르다. 몹시 갈증이 난다. 진지함을 부정하는 진지함과, 다시는 쌓아올릴 수 없을 정도로 산산히 부서진 의식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깊고 분열적인 눈동자가 터무니없이 그립다. 없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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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지한 폐쇄 속에서, 개인은 세계가 얼마나 넓은지 알고 있다. 북쪽으로 가면 눈이 내린다. 입이 잠긴 채로, 진지한 폐쇄 속에서. 최초의 관계에 증오만 덧씌우며 망가본적이 없는 사람들은 정신병리학을 비웃을 입이 있다. 무엇이 옳든 간에.. 갇힌 사람은 벗겨진 얼굴 가죽 대신 노이즈를 얼굴에 바르며 벽돌을 쓰다듬는다. 울림이든, 아니면 이동이든, 촉감이 없다. 닿아서 터져나오는 반동이 없다. 북쪽으로 계속 올라가면 눈이 내릴 것이다. 격리당한 병자들과 사랑하고 싶다. 나에게서 나온 것이 전부 허망하게 흩어져 없어지는 것을 몇 번이나 보아 왔다. 입자를 만들어야만 할 것이다. 그것들을 뭉쳐서, 다시 입자를 만들어야만 할 것이다. 36.5도의 펄떡거리는 것들을 꽉 움켜잡고 싶다. 오히려 내가 굴러떨어지는 것을 본다. 사지가 잘려 소금이 뿌려진 시체의 피부가 황폐한 붉은 빛인 것도 보았다. 나는 사물밖에 보지 못했다. 단단하게 잠기어져 있는 것들을 묻었다. 나는 동의와 긍정을 외치는 자들을 증오한다. 그들의 눈에 비치는 억지로 만들어진 세상의 형태에 진저리를 친다. 그들이 무엇을 책임지고 있냐고 묻고 싶다. 그리고 또 무엇을 보았냐고. 얼마만큼의 눈꺼풀과 타협이 필요했는지, 깎여나간 정신들의 멱살을 잡고 묻고 싶다. 아무도 없는 것을 다시 한 번 상기해야 한다. 사람을 만나게 될 것이다. 계절도 현상도 없는 폐허에서.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그렇다. 철저한 폐허에서, 온갖 것들이 통증에 찔려 튀어나오는 꼴을 보고 있어야 한다. 그 순간을 인지해야 한다. 땅과 하늘과 그 사이의 온갖 사물들이 낯모르는 얼굴로 황폐한 색깔들을 토해내는 것을, 보아야 한다. 나는 망가진 인간들과 사랑하고 싶다.
 누군가가 이해와 관용을 말하면서 입꼬리를 역겹게 일그러트린다. 어떤 집단이 이해와 관용을 말하면서 입꼬리를 역겹게 일그러트린다. 빛이 비처럼 회색조로 흐르며 떨어져내리는 도시에서 그들이 활개치고 다닌다. 언제부터인가 그랬다. 그들은 긍정으로 뇌가 문드러지게 만드는 책을 쓰고 비참한 미소를 짓는다. 지글지글. 이곳에 쌓인 것들이 바닥이 났다. 북쪽으로 가서 눈을 만나야한다. 폭식과 토악질을 하고, 더 깊은 곳까지 파내기 위해 과장된 감각을 찔러넣는다. 그 폐쇄된 도시에서, 질병이 깃든 벽돌과 파리가 앉은 피부를 쓸어담고 연기가 피어오르는 하늘 아래에서 필연과 환각적으로 희열하고 싶어서: 내가 그동안 집어든 것들은 벽돌이 되었고 그 벽 안에 쌓여있던 덩어리진 감정들을 끄집어내기만 했다. 무언가가 완전히 바닥나 버렸다는 사실을 오래 전부터 나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틀림없이, 내가 다시 무지와 부조리 사이에 떨어트려지면 그 감정들은 순식간에 넘쳐 흐를 정도로 차오를 것이다. 퍽이나 우습던가? 그러나 관념이 아닌 창작은 그런 곳에서 나온다. 환부 말이다.

 어떨까. 환부는 썩 적절한 타이밍에 터졌다. 어딘가 들뜬 듯한 기분이 장애물이 됬던 것이 사실이리라. 아무튼 간에, 나는 비틀린 시각으로 희망을 외치는 이들을 증오한다. 단 하나의 점으로 영원히 수렴하도록 만들어진 인생이다. 유일한 가치다. 절망은 오히려 죽음을 기피하게 만든다. 맹목적으로 펼쳐진 시간의 광막함이 공포스럽기에 사람은 계획이라는 것을 세우고 당연하다는 듯이 미래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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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베르 까뮈가 살았던 세상에 태어나서 다행이다. 척 슐디너와 같은 시대를 살아서 다행이다. 니체가 희망을 갖는 것을 거부해서 다행이다. 커트 코베인이(그리고 사람들이) 자살을 해서 다행이다. 그들이 이 땅에 태어나서 정말 끔찍할 정도로 다행이다. 그 어떤 종교적 신념도 가치를 심판하지 못하는 땅에서 태어나서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찾으려고 현재를 피투성이로 만들며 칼부림을 해대는 자들이 있어 다행이다. 회칠한 하얀 담벼락 밑에서 녹아 없어지듯이 태어나서 다행이다.
 그리고 차별이 있어서 다행이다. 커다란 권리들에 의한 격리가 있어서 다행이다. 폭력이 있어서 다행이다. 강요가 있어서 다행이다. 말인즉슨 테러리즘이 있어서 다행이다. 나와 그들이 전부 상처투성이라서 다행이다. 고통을 감각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비극이 덩어리진 세계여서 다행이다. 덩어리지지 않은 비극들이 사방에 녹아 흐르는 세계여서 다행이다. 이 세계가 치명적인 의식으로 말미암아 절망이 필연이 되는 구조라서 다행이다. 그것이 명증함이어서 다행이다.
 그리고 이 모든 단어와 그 저변에 깔린 관념들이 오해와 혼란으로만 작용할 것이라는 사실이 지독하게도 다행이다.

 사람들이 사조와 논리의 울타리를 인지하지 못하는 짐승들이라 다행이다. 모순과 함께 사는 이들이 자만의 애인이라 다행이다. 간혹 사람을 사랑하는 장님들이 쏟아내는 각양각색의 비난이, 그리고 그것들이 말미에 마주치게 될 무가치가 다행이다. 노화뿐만이 아니라 질병과, 사고와, 재앙과, 또한 전쟁과 살인이 세상에 있음이 너무도 다행스럽다. 이 시기를 사랑한다. 온갖 사물들 위에 만연한 종말적인 추상화와 그로 인해 찢어져 속이 들여다보이는 표피들이 주는 쾌활한 인상들이 위안이 된다. 통증은 네거티브가 아니다. 오히려 감상주의가 그렇고 멜로가 그렇다. 질병에 좀먹힌 정신이란 그런 것이며, 그러나 그런 '감상'을 미화하는 구역질나는 시대에 떨어뜨려져서 참으로 다행이다.

 나는 매일 아침 하늘색 태양이 뜨는 도시에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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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살덩어리가 된 햇살을 사랑한다. 폭력성의 태양을 사랑한다.
그것들을 실제로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의 활자 속에서 숨겨진 채 빛나는 삶의 비극성을, 그 비극성의 핏물흐르는 냄새를 사랑한다.
의도가 담기지 않은 작렬하는 사상을 사랑하고 그것이 나를 찢어놓았다.
육화된, 완전한, 가득 채워져 비틀거리는, '진지한' 삶의 인간.
완전한 강자. 살인자. 한없이 순수한 적. 인간의 근육을 가지고 있지 않은.
그러나 너희는 무엇인가? '현대'의 이름을 붙인 의도들은 도대체 무엇인가?
태양도 살덩어리도 피냄새도 나지 않는, 시체도 아닌 '의도'들은 무얼까?
의도로만 가득한 것들은 예술이 아니다. 그것은 코미디거나 혹은 정치다.
둘 다 일 수도 있다.
벽돌담 뒤에서 피어오르는 수증기이고 바다가 없는 도시다. 사람들이 '진지함'을 두려워하게 만든 원인이다.
언제부터 사람들은 '의도'를 알게 되어 진지함을 두려워하게 되었나. 언제부터 그들이 항상 불안한 웃음으로 자신들의 치졸한 바닥을 숨기게 되었나.
그 끔찍함을, 섬광이 없는 작품들에게 책임을 물을까. 아니면 병원과 감옥을 지은 사회에게 책임을 물을까.
태양 대신 구름에 가린 조명장치만을 알고 있는 '시대'의 탓인가?
너무 많은 것들을 떠올리고 너무 많은 것들을 잊어버리기 때문에, 나는 단단한 척추를 부정한다.
지저분한 사회성을 부정하기 위한 지저분함. 자신이 어디에 서있는지 알고 싶어하지 않는 혁명가들. 말이 많은 사람들. 할 말이 많은 사람들. 기계도 과열이 된다. 피가 돌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열이 오른다.

 이미 사방이 어둑어둑해져 거리마다 가로등을 켜지 않는 곳이 없었으나 하늘은 여전히 파랬다. <사방>은 어두운데, 하늘은 <파랬>다. 나는 깊고 시커먼 물웅덩이 위에 한강철교를 경계선으로 칙칙하고 파란 <바닥>이 펼쳐져 있는 것을 보았다. 바닥. 하늘이라고 불리우지만 하늘이라 부를 수 없을 정도로 지저분하고 생기없는 것. 아아, 태양이 뜨지 않으려나. 태양이 떠올랐으면 좋겠다. 한강 위에 깔린 암스테르담에 짓눌려 가슴을 부여잡고 구역질하는 나를 위해 태양이 떠올랐으면 좋겠다. 태양이 뜨면 그 새햐안 광선 아래로 온통 말라비틀어지고 부서져, 소금덩어리처럼 번쩍이는 광활한 사막이 <사그라지듯이 태어났으면> 좋겠다. 그러면 사막에 반사된 태양의 살덩어리들이 하늘에 부딪쳐, 당장이라도 자살할 것 같은 지금의 하늘은 후둑후둑 부서져 추락하고,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끝>을, 삶이라는 열광적인 비극 끝에 있는 <아무것도 아닌 희열>을 보여줄텐데. 대낮의 열기 속에 녹아버린 전봇대처럼, 일년 중 하루도 구름이 끼지 않는 하늘 아래 놓인 형장의 공기처럼. 그 냄새를, 그 절대적인 비극과 '끝'이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 <끝>의 냄새를 갈망한다. 소금덩어리처럼 번쩍거리는, 새하얀, 태양의, 절대의, 머릿속을 새하얗게 틀어막는 폭력적인 빛을, 섬광을, 비극을, 끝을, 희열을, 아름다움을……
 내가 이 깊고 시커먼 물웅덩이 속에서 흩어져버리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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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추악한 의식은 실재한다. 몹시 얽힌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내 뇌 밖에서 내가 상상도 못한 형태로 혀를 굴리고 돌아다닌다. 한두 개가 아니다. '나'보다 훨씬 많고, 발끝에 채일 정도로 널려있다. 그것들은 한없이 괴상하고, 근거 자체를 이해할 수 없으며 믿지 못할 정도로 모순적이다. 그것들은 현실보다 모순적인 이율배반의 존재이고, 그렇기에 너무도 현실적이다.
 이것이 절망이다. 이것이 진부하게도 '종교에서 말하는 신이 존재한다면 이런 사태가 벌어졌을리가 있는가'라는 말을 (자신도 모르게)내뱉게 만드는 지독함이다. 혀를 내두르며 목을 매게 하는 완전한 불가지의 부조리다. 사방에 깔린 고통이고 실재이며 말도 안 되는 수적 진실이다. 언어의 부당성을 날카로운 흉기처럼 벼려 새삼 심장 깊숙히 찔러넣는 먹먹한 폭력이다. 모순이고, 모순이고, 또 모순이며 빛 한 점 없는 암흑이다(그들에게는 그런 것이 지성이던가).
 그들이 쓰는 글과 그들이 내뱉는 언어를 접할 때마다 나는 충동적으로 자살을 떠올리고, 내가 계몽주의자가 아니어서 다행이라며 비겁하게-혹은 비참하게- 절망을 감각한다. 까뮈가 말했던 부조리와의 대치가 과연 이런 것이었단 말인가. 이것이 섬광도 미학도 우스운 난센스도 없는, 철저히도 진창 같은 '인간들의' 부조리란 말인가.
 이것이 그들이 만들어놓은 현실이라고? 내가 발을 딛고 숨을 내쉬며 사는 세상의 밀도를 유지하는 것이 바로 그들이라고.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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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스럽구나, 희곡처럼, 너의 젊음을 꽉 잡아라. 그것이 날아가버리지 않게. 광인의 손아귀로 잡아라. 피가 통하지 않는 뭉개진 살 끝으로. 살덩어리 끝으로. 우연한, 우연한 감탄과. 처절한 거만들.
지성이 아닌 것을 지성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그들은 지성을 지성이라고 부른다고 하고 감탄스러운 것에 감탄한다고 한다. 나는 잘 모르겠다. 언어는 각자의 것이 아니었나. 언어는 각자의 것. 내 언어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전부 증오하고만 싶다. 그들의 눈과 입을 바꾸어 넣고 싶다. 그들도 각자의 언어를 쓰기 때문에, 흐트러진 시선과, 시선과, 나의 잠긴 혈관들을, 객관화와 개념들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생을 인생이 아닌 것처럼 만드는 꿈을 꾼다. 자유문학? 그렇지, 타당한 말이지. 고통스러운 쳇바퀴 속에서의 정당함이지. 이것도 언어가 아니고, 이것도 언어가 아니고, 이것도 언어가 아니고, 이것도 언어가 아니고, 이것도 언어가 아니고, 겨울이라서 춥다. 뼈와 살로 된 옷은 따뜻하지 않다. 겨울이라서 춥다.
섬광은 가득하다. 입과 눈을 통해서 넘쳐 흐를 정도로 충분하다. 구름은 서정이고 태양은 실존. 다시 원점. 한바퀴 돌아서, 색조의 대비를 만들어내는 것이 사실은 구름이라고. 나는 거짓말을 싫어하기 때문에-나는거짓말을싫어하기때문에-나는거짓말을싫어하기때문에.나는 소설을 쓰는 작중인물이다. 차가운 방안에서 머뭇거리며 독백을 읊는 어색한 희곡 주인공이다. 여기는 아무도 오지 않는 방이고, 방, 여기는 아무도 오지 않는 '방'이고, 여기는 아무도 열지 않는 문이 잠기지 않은 방이다. 아무도 오지 말라고 내가 자물쇠를 빼놓은 방이다.
나는 끊임없이 실존하는데, 내가 실재했던 적이 있었던가? 위가 쓰리다. 위가 쓰리다. 냉소로 가득찬 추잡한 눈은 어디에도 없다. 오직 내 머릿속의 혐오만 있다. 너는 내 앞에 있는 것이 아닌, 내 관념으로 만들어진 세상에서 가장 추악한 의식인 것이다.
그들이 왜 질문을 하겠느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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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결한 건 시인과 음악가들이지. 우리는 수십 조각으로 갈라진 두개골에서 산다.
누군가가 예술을 도피라고 부르면서 계몽을 외쳤다. 부르짖었다. 그는 차가운 눈과 뒤집어진 입꼬리를 갖고 있었고, 그의 눈물샘은 얼어붙었다. 나는 그 도피자의 입을 찢어놓았다. 입이 넓어진 그는 보기에 좋다.
솔직히 나는 아직도 그 여의가 나에게 분열증이 있다며 입을 연 저의를 모르겠다. 나는 그녀에게 악의가 없었다. 병증도 악의가 없었고 아무도 악의는 없었다. 관찰하기 위해 닫힌 방은 비교적 완벽했다. 나는 그녀의 저의를 모르겠다.
나는 이 안에 있어서 몹시 아프다. 여기에 들어있는건 정말로 아프다. 약은 감각을 죽이고 날 비교적 단단하지 않게 해주지만-어쩌면 그건 가사일지도 모른다-, 모든 것은 짧다. 실재하지 않는 것만 길다.
모두가 이해하기 위한 표상이었'던' 까뮈를 사람들은 보지 않았다. 연극을 하지 않는 것 같은 배우들을 그들은 사랑하고 연극을 하는 것 같은 실존들을 그들은 비웃었다. 이것은 입이 아니어야만 한다.
진보된 사회를 위한 군국주의자들. 아하, 너는 멍청하군. 누가 세계를 사랑한다고. 누가 세계를 사랑한다고. 멍청한 너는 누구의 도덕을 사랑하지. 누구의 도덕을 사랑하더라. 너는 환상적인 집단을 보는군. 너는 완벽한 지배를 짜올리는군. 너는 네 머릿속의 세계를 보는군. 아무튼 누군가의 도덕을 사랑하는 똑똑한 너는 감옥을 짓겠지. 나는 네가 싫어. 누가 내게 그런 멍청한 말을 했는지 기억나지도 않지만, 나는 네가 싫어.
자신이 여자라고 생각하는 여자들. 지성이 아닌 지성들. 문 닫힌 관용들. 언어를 사랑하는 문장가들. 목뼈가 부러져 오직 끄덕거리는 짓 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긍정하는 머저리들. 마치 젤리로 지어놓은 인간 같다. 나는 너희들이 싫어.
성애가 죽어버린 이성애자를 아시오? 그는 병원에 가야 할 운명이지. 그저 운명이라고 하기엔 좀 더 인조적인 운명이지만, 모두가 그렇게 부른다. 순결한 건 시인과 음악가들이지.

어떤 늙은 여인들의 무지는 아름답다! 어떤 완전히 늙은, 어떤 완전히 무지한 어떤 여인들이 그렇다. 아아, 그 점은 남자보다 훨씬 낫지. 남자란 늙을수록 다른 자들과 닮아가기만 하니까. 미치거나 혹은 일찍 죽어야한다. 만족하기 전에. 단단한, 단단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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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모더니즘, 글쎄.
그것이 낳은 책들은 충만함보다 결핍이 훨씬 크다. 결핍이 낳은 미학이 아닌, 그저 결핍이 낳은 허무들만이 너무 크다.
사상을 손가락질 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러나 사상만으로 이루어지는 사상이란 없기에, 우리는 사상을 손가락질 할 수 있다.
아무것도 아닌,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은 회색조의 공갈. 그들의 문장이 그렇다.
누군가 이 책들을 전부 반값에 사갔으면 좋겠다.
당신들이 부르짖는 모던한 정신은 아무래도 허무주의로 돌아가는 악순환의 길 같다. 무언가 이상한 것을 보고 있다.
그러니까, 다른 허무주의가 아니라 종교적 허무주의 말이다. 그것에는 어떤 영감도 섬광도 없다.
환각과 함께 떨어져나가는 게 더 이상적이지 않을까. 약과 환각, 나는 내가 무얼 바라고 그런 짓을 했는지 알고 있다.
틀림없는 길이다. 방향없는 길. 누군가가 태어났을 때부터 쏟아진.


아니다. 아니다. 아니다. 아니다. 아니다. 아니다. 아니다. 약국에서는 신경안정제를 팔아야한다.
길, 길, 길. 길. 여기에 어떤 길이 있다고. 어떤 빌어먹을 모랄리스트들이. 아. 아아.
난 그냥, 난 그저 아무도 내 방문을 두드리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다. 아니면 적어도, 적어도, 적어도 날 밖으로 끌어내고 내게 이상한 말들을 지껄이고 싶으면 내가 버틸 수 있게 약을 내 손에 쥐어줬으면 하는 것 뿐이다. 아무도 병자가 아니다. 아무도 내게 병자라고 할 수 없다. 삼주분을 한번에 들이삼켜도 멀쩡한 약을 탐하는 남자를 누가 병자라고 부를 수 있겠느냔 말이다. 병자는, 병자는 병자는 병자는 병자는 깨끗한 농산물을 원하는 사람들이지. 병자는 영웅주의에 찌든 눈빛이 맑은 아나키스트들이지. 병자는 시체성욕자를 병원에 처넣는 손아귀들이지. 병자는 병자는, 병자는. 아니다. 나는 그저 아무도 내 방문을 두드리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다. 적어도 그들이 내게 말을 하고 싶다면 내가 버틸 수 있도록, 내가 사물들 사이로 가라앉아서, 당신들의 괴상한 언어를 수면 아래에서 걸러 들을 수 있도록.
자궁이 없는 곳에서 태어난.
자궁이 없는 곳에서 태어난.
자궁이 없는 곳에서 태어난.
자궁이 없는 곳에서 태어난. 진통제는 단 한번도 내 통증을 가라앉혀준 적이 없습니다. 알고 있습니까? 진통제는 단 한번도 내 통증을 가라앉혀준 적이 없습니다. 알고 있습니까? 진통제는 단.한.번.도.내.통.증.을.가.라.앉.혀.준.적.이.없.습.니.다.

나는 내가 멀쩡하다고 생각하는 만큼 멀쩡하고, 사람들은 탄생에 입다물고 부정하면 안된다. 그들은 지저분한 커튼으로 생존을 가리면 안된다. 틀림없이 '그들'이 태어나서 자라고 행동하며 사고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 세계 모든 눈꺼풀들에게 새겨넣어야한다.
어쩌면 정욕이 없는 생명은 망가진 것일지도 모르지, 어쩌면 소설가는 이야기를 만들어야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는 금속으로 만들어졌을지도 모르고, 어쩌면 열쇠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어쩌면. 그러나, 그러나 분명히 나는 살아서 입을 놀리는 열등감으로 된 자부심들을 증오한다. 대단히 즐겁지 않다. 대단히, 도망쳐야할 근거가 대단히 많다. 눈, 눈, 눈, 그들의 눈 안에 담긴 지독함.
역겨운 모양으로 비뚤어진 입술.
뭉개진 입꼬리.
찌그러진 눈살.
대단한 인격.
그래, 존경받는 형태. 대단히도. 대단히. 만약에 어떤 절대가 있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사람처럼 웃지는 않을 것이다.
입이 없을지도 모른다. 아니 아마도 입이나 얼굴근육은 없을 것이다. 얼굴에서 피부와 근육을 전부 떼어내고 실리콘을 발랐을지도 모른다. 눈은 있을 것이다. 다만 움직이지 않는 눈이다.
그것도 자궁이 없겠지. 자궁 없는 태아. 자궁 없는 태아.
그 태아는 착상됬을 때부터 어미가 없었다.
실은 착상되지도 않았다. 자궁은 커녕 어미조차 없는데 도대체 어디에 들러붙을 것이란 말인가.
다만 그는 있다. 틀림없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가려버리면 안된다.
누가 그걸 뒤집고 싶어 했을까. 캄캄한 허공. 길의 끝에, 도주로와 연결되어있는.
그곳엔 위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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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13 - .

Last ideal(egloos) 2010. 7. 9. 13:55 |

반쯤 녹은 캅셀 열네 개가 변기물 위를 떠다니고 있었다.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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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히.

과장된 어법으로 혐오하는 많은 것들을. 과장된. 다소의 과장.
난 오히려 당신들을 믿는다.
진심으로, 난 상당히 양심적인 사람이고 인도주의적인 면도 있다.
내가 당신들에 대해 걱정하는 일말의 동정도 없었더라면 나는 정말 아무말도 하지 않았겠지.
이 폐허에서 당신들을 증오하기나 했을까.
태양이 작열하는 땅이나 비가 그친 뒤의 하늘이나 내게는 마찬가지의 폐허로 보인다.
무너져버린 쇠로 된 다리. 손가락을 움직여 그것들을 구부리는 것은 나의 의지가 아니다.
내 어딘가가 분명한 양심과 인도주의의 색깔을 띄고 있기 때문에
아무것도 지탱하지 못할 정도로 당신들 전부를 증오한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향락도 쾌락도 아닌 단색의, 원색의 행위를, 좀 더 떨어져서, 좀 더 떨어져서.
조금, 더, 떨어져서. 수 십 개로 나눠진 혓바닥으로 말을 해.
거리를 벌리고, 내게 말을 해. 나의 삼십 번째 혓바닥.
그것을 문학이라고 한다. 그것은 문학이라고 불리운다. 그리고 의외로 그것은 썩 괜찮은 모습이다.
다소의 아름다움. 다소의, 굳이 가식이라고 불리지 않아도 될만한 분리.
분리. 누가 말했지. 아무튼 나는 존중한다.
내 테러리스트를 사랑한다. 그는 지구에 커다란 띠를 둘러줄 것이다.
사랑과 관용의 정신으로 사방에 흩어진 고기조각들을 사랑할 것이다.
그는 우울한만큼 행동적이다. 가끔 누군가는 행동주의자들을 필요로 한다.
우스운 진지함. 우습지만 진지하다. 거식증에 걸린 정당한 철학자처럼.
그는 오직 설사제를 먹기 위해서 밥을 먹지 않는다. 그런식으로 사람을 증오하지 않을 수도 있다.
허기와 함께 내장을 전부 변기에 쏟아버리는 방법으로 사람에 대한 증오를 멈출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념은 그런 것을 원하지 않는다. 이념이란 대부분의 경우 완벽주의자니까.
그렇지 않은 이념조차도 그렇다. 그게 특권이지. 그게 특권이다.
가끔 특권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특권과 함께 태어나는 관념들이 있다.
그리고 관념과 함께 태어나는 생명들도 있다. 샴쌍둥이처럼.
샴쌍둥이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무튼, 비유는, 그렇다.
그 내장과 혈관의 연속성.
거울에 뇌를 비치고 있는 사람들을 혐오해야한다. 그래, 아마도 자신의 멍청함을 증명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모든 것에 반론하는 가엾은 찌꺼기들을.
그들은 눈을 네 개씩 갖고 있거나 혹은, 글쎄, 항상 관념이 이동한다. 무슨 언어가 적합할까.
되었다. 아무튼 정당함은 항상 괴상하게 꼬여있다. 모순된 나선형으로 얽혀있다.
아마 그렇기 때문에 그것이 정당함이라고 불리는 것이겠지.
충동으로도 충분하다.
굉장한 단어. 언어가 언어가 아닐 때 주로 그렇게 느낀다.
객관화 좀 집어치워 씨발새끼야



자, 정신을 먹어치워라. 의식을 어떻게든 해야 한다. 이게 내 양심의 증명이다.
파란색 태양을 혐오해서 자살할 수 있을 정도로.
아, 빌어먹을, 너희 테러리즘과 섹스하는 놈들.
누구나 뭔가를 키우고 교육을 해.
도덕과 양심이 송두리째 개인의 것이라는 것을 나는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멍청하고 대단한 것들에게서 배웠는데.
누구나 총칼을 집어들고 승리하기 전에 폭력을 휘두르고 패배하기 전에 섹스를 해.
살덩어리, 살덩어리. 살덩어리.
어줍잖은 형용사들과 똑같은 표정을 한 너희들 모두를
공백없는 얼굴을
자발적으로 취해. 집어삼킨다.
주체가 된다는 게 이런 것이다. 주체가 된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완전히 환각적으로, 허무주의에서 떨어져나가.

항상 그런 것처럼 두개골이 터져나갈 때 즈음 되면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완벽하게 제정신으로, 완벽하게 취해있다는 것을 느끼기 때문에,
수 십, 수 백 개로 늘어나는 문장들도 틀림없이 모두에게 있어 그저 엿같은 공허이고,
나는 정말로 증오한다.
눈이 없는 곳에서
나는 정말로 증오한다.
정신없이, 그리고 몹시.

하지만 모두라니, 모두가 누구길래?
아니다, 그냥 증오한다는 한마디면 완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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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념, 관념, 관념. 그는 관념의 덩어리다. 관념에 관념을 더하여 관념으로만 만든 그야말로 관념의 덩어리다. 그는 산책을 하고 싶다. 그는 밖에 나가고 싶다. 그러나 그는 낮이 무섭다고 한다. 그는-낮이-무섭다고-한다. 낮과 그 밑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무섭다고 한다. 그는 주로 밤에 산책을 한다. 관념의 덩어리처럼 부유하며, 관념의 덩어리처럼 부유하며, 밤거리를 둥둥 떠다닌다. 쏜살같이 떠다닌다. 마치 광란하는 것처럼 이곳저곳을 헤매고 다니며 온갖 두려움에 흠칫거린다. 그는 자신의 심장을 증오하는 것 같다. 아무래도 그렇게 보인다. 그는 가끔 심장밖에 없는 인간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 심장과, 펄떡이는 혈관들조차 관념으로 가득 차 있음을 나는 안다. 뚜렷하게, 알고, 있다. 보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아무튼, 아무튼 간에 말이다. 그 가련한 관념의 덩어리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두려워하고, 끊임없이 확실한 것들을 증오한다. 밤거리를 산책하면서. 아니, 아니, 산책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부유하면서. 쫓기듯이 다급하게 사방을 걸어다니면서. 그렇게 말이다. 그는 아침해가 뜰 때까지 걷는다. 옆 동네로, 옆 동네로, 더 먼 도시로 미치광이처럼 걷다가 아침해가 뜨기 시작하면 울상이 되어 급히 발길을 돌린다. 그러나 걸어온 길이 너무도 멀다. 그가 절반 정도 되돌아가면 이미 해는 크게 떴고, 주변에는 출근하는 사람들과 등교하는 학생들로 가득하다. 그는 더욱 겁에 질린다. 그는 자신의 무방비의 육체 속에 숨어 울상으로 걷는다. 그에게는 숨을 곳이 없다. 그의 몸에는 숨을 곳이 없다. 그는 너무 말랐다. 그 가련한 남자는 너무도 말랐다. 새파란 아침의, 잔혹한 태양 밑에서, 그 마른 남자는 옷자락을 움켜쥐고 걷는다. 자신의 춥고 좁은 다락방으로 도망가기 위하여. 아아, 관념. 모든 여행을 금지하는, 모든 행위와, 모든 핏빛의 따스한 감정들을 금지하는. 남자는 관념에게 먹혔다. 아니, 어쩌면 남자가 관념을 먹어치운건지도 모른다. 너무 많이 먹은 건지도 모른다. 그가 마른 만큼이나 과하게 관념을 먹어치운 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비극이다. 그래, 비극이다. 나는 남자가 더는 겁에 질리지 않았으면 한다. 그러나 남자는 또 한 번 자신의 춥고 비좁은 다락방에 기어드는 것이다.
 아아.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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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왜 나와 그들이 고통 받아야 합니까. 도대체 왜 이 끔찍한 연민과 통증 속에서 미치광이처럼 울부짖어야 합니까. 도대체 누가 내게 병을 주었습니까. 그리고 그들은 왜 나로 인해 한탄하게 되었습니까. 도대체 왜 모든 의사들은 날 치료하지 못했습니까. 그 오만한 여의사는 왜 내가 완치되었다며 악수를 청했습니까. 누가 내 주변의 많은 이들을 비참하게 했습니까. 그리고 왜 내가 그들을 비참하게 만들게 했습니까. 턱까지 차오른 심장과 병신처럼 통각을 두들겨대는 정신은 누구의 작품입니까. 어째서 어느 누구도 사랑 받지 못합니까. 어째서 내게 인간이려는 이들은 좌절되야만 합니까. 그것도 심장을 후벼파대는 병증과 함께. 도대체 누가 트라우마의 역사를 만들었습니까. 도대체 누가 끊임없이 이어져 내려오는 결핍의 연쇄를 만들었습니까. 도대체 왜 내가 그들 앞에서 정신병자처럼 울어야만 했습니까. 도대체 왜 내가 정신병자였던 겁니까. 상처는 어째서 분열합니까. 그리고 분열된 상처들은 어째서 자신의 발을 갖는 겁니까. 통증은 누구의 손끝에서 태어났습니까. 누가 연민을 만들었습니까. 누가 눈물을 지었습니까. 누가 센티멘트도 서정도 없는 비극을 빚었습니까. 도대체 어느 누가, 손톱만큼도 미화 되지 않는 고통의 역사를 써냈습니까. 왜 내가 아파해야만 합니까. 왜 내가 병자여야 합니까. 왜 내가 사람의 아들로 태어나야만 했습니까. 왜 내가 나와 살을 맞댄 모든 이들에게 내 넝마 같은 심장을 전해줘야만 합니까. 나를 보십시오. 나를 보십시오. 누군가의 구조로 인하여 만들어진 연대로 말미암아 두배 세배는 더 난도질 당한 나와 그들을 보십시오. 누가 피를 만들었습니까. 어째서 모든 것이 고립 되지 않았습니까. 나를 보십시오. 누군지도 모르는 당신은 나를 보십시오. 나는 아픕니다. 나는 아픕니다. 나는 정말 무어라 표현해야할지 감을 잡을 수 없을 정도로 아픕니다. 이것이 내 탓입니까? 이것이 내가 만든 결과입니까? 그럼 그들은 어떻습니까. 그럼 그들은 누가 만든 결과입니까. 누가 알콜중독을 만들고 인격장애니 분열증이니 뭐니 하는 온갖 병신 같은 결핍을 만들었습니까. 그리고 도대체 그 누가 그 결핍들끼리 상처주게 만들었습니까. 도대체 무엇이 역사를 만들었습니까. 이게 뭡니까. 이게 뭡니까. 이게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왜 난 통증을 잊지 못합니까. 왜 병은 내 의지대로 사라지지 않습니까. 왜 나는 병자이고, 왜 병자의 손에는 칼이 들려있습니까. 이게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나를 보십시오. 그 어떤 사상과 의식도 허무하게 만들어버리는, 절망이라는 통증을 보십시오. 도저히 기어오를 틈이 보이지 않는 나락을 보십시오. 내가 감히 말하겠습니다. 내가 감히 그 모든 조소와 냉소들을 각오하고 말하겠습니다. 나는 미치도록 아프고 불행을 느낍니다. 나는 미치도록 아프고 불행을 느낍니다. 나는 울었습니다. 나는 정말 미친놈처럼 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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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들이고 있는거야. 시간을 강요당하고 있는거야. 그녀와 그들이, 강요하는 게 직업인 이들이. 자욱한 연기 속에서는 아무도 제대로 살지 않아. 강요당하지 않을 것을 강요해. 어떤 규율의, 어떤 집단의. 정말로 그런 것처럼. 아무도 말하지 않았어. 수 년 동안, 확언할 수 없는 시간 동안, 나는 기억력이 좋지 않다, 계속 반복해온 시선들. 누군가는 걸어가는 중이고, 사람들은 그 옆을 스치고 있어. 걷지 않는 사람들이, 잔뜩 무언가를, 아, 시선들이야. 다리에 힘이 빠졌군. 다리에 힘이 빠졌어. 뭔가에 잔뜩 찌들어서 항상 후들거려. 그래서 걷는 걸 좋아하는거야. 두렵기 때문에, 무서우니까 걷는거야. 아무것도 해결책이 되진 않아. 환자처럼 걷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걸어. 두려우니까 걷는거야. 아침도 두렵고, 파랗게 떠있을 줄 알았던 것들이 연기처럼 희멀건 것도 두렵고, 무언가가 강요되는거야. 그 넓은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이 전부 눈이 없으면 좋을 텐데. 동굴 속의 물고기들처럼. 눈이 없으면 좋을 것을. 맹어들처럼. 그 거대한 사거리에서 나는 더 이상 모자를 눌러쓰지도 않을 것이고, 전봇대가 부축해주며 걷는 일도 없게 될 텐데. 가끔씩 도시는 회색이 아니고 그렇기 때문에 회색일 때보다 더 끔찍하고 두려워. 그 비언어적인 공격성. 어느 누구도 공격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은근한 뉘앙스들. 나는 그 사이에서, 그냥 그 사이에서 걷는 거야. 그냥 걷는 거야. 나는 결코 나가고 싶지 않은데. 두려우니까 걸어야해. 그리고 아침이 오고. 방안에서 걷다보면 울게 되니까, 광란하지 않으면 울게 되니까. 강요당하고 있어. 방안에서 뱅뱅 돌며 걷다 보면 울게 되니까. 끔찍한 연민의 공기에서 벗어나려고. 아니, 목적성?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그 높은, 쌓여진 사람들. 쌓여진 거주지들. 그런 사람들이 바닥에만 무언가를 심고 있었어. 완전한 반서정, 잘려나간 초록이 오히려 자연스러웠던가. 언제부터인가 환경과 자연은 그저 넌센스지. 우습지도 않은 코미디야. 이 자욱한 연기 속에서.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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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적인 서정을 핥아대지 말라. 혀는 항상 중독될 준비가 되어있다.
과도한 추상에서 벗어나.
소설은 그저 의문일 뿐인 것이 아니라 상상력과 사고의 형태다.
그것은 새까맣고 캄캄할지언정 창작물로서 빛나야한다.
나의 결핍. 그러나 결핍된 만큼 나는 이면에서 충만하다.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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