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두려운 것은 내가 소설가가 아닌 사상가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불행한 삶을 산 사람은 자신이 타인의 인생에서 무언가를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시간을 과신한다. 그것도 자신의 경험이라는 단면에만 한정지어서 말이다. 칠이 벗겨진 자주색 하늘에 구멍이 뚫린 것 같다. 원래 색깔이라는 것이 어디에 있었던가. 이 짓거리를 하는 데에는 얼마만큼의 규정된 정신이 필요한 것일까. 전신에 있는 관절의 갯수 정도 될까. 뇌수를 감싼 것이 하필 단단한 골격이라는 사실이 비극이다. 비극이야 사실 가져다 붙이기만 하면 무엇이든 비극이다. 화가나, 아니면 오히려 칠장이가 되려나? 그 의식을 내버린 동공과 유일하게 사랑할 수 있을 나사 풀린 정신을 위하여? 그러나 그런 관념이 있기는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 어떤 문장에서, 저 하늘에 빛나는 별들 사이에 머리를 박고 살아가는 느낌이라고. 너는 나에게 잠을 자면 안된다고 명령했던 일까지 있지 않았던가. 잠을 자지 말라고, 그것을 칼로 자르듯이 언어로 만들어 놓을 수 있는 것 또한 붙여진 대로의 비극이 아니겠느냔 말이다. 재와 톱밥은 어디에 있는가? 어디에 쌓였나? 머리가 별들 사이에 처박혔을지언정 발은 진창에 뿌리까지 내리고 있는 모양이다. 나무가 양분을 빨아 들이듯이, 발목에서 무릎관절과 허벅지를 지나 갈빗대 안쪽까지 스멀스멀 올라오는 공포가 있다. 공포를 빨아들인다. 진창 속에서 잘도 그런 것을 찾아내 집어삼킨다. 명도가 높은, 번쩍거리고 눈이 부신 자주색으로 빌딩을 쌓았으면. 한가운데에. 섹스피스톨즈 같은 장난스러움은 중요하다. 의식을 버린 눈동자와, 뒤엉킨 피부만큼이나 혼탁한 색깔을 갈망하는 것과 같다. 중요하지 않기 위해 중요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곳의 이 뜨거운 공기야말로 진창이다. 위협하고, 위험하지 않게 위협하고, 공포심을, 가장 무서운 것. 피로해하지 않는 남자를 찔러죽여야 마땅하다. 울어라 울어라. 눈알이 녹아내릴 정도로 울어라. 슬퍼서 우는 것이 아닌 만큼, 값싼 감상주의자들을 찾아내서 그 잘 다듬어진 살덩어리들을 물어뜯을 생각만 해라. 말로 할 수 없을 만큼 증오하고 혐오한다고 한다. 살인자와 강간범을 보고 치를 떠는 이들의, 사람 냄새를 풀풀 풍기는 기만들을 몹시도 증오한다고 한다. 그는 사회에서 자랐다.
 중요하다.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들만 같은 줄거리 안에 밀어 넣는다. 그래, 누군가는 자신의 글에 밑줄을 친다. 아무튼 눈동자를. 망가진 병자의 냄새를 미치도록 갈망한다. 망가진 병자의 냄새를, 내게 주어진 인간성처럼 말이다. 목이 마르다. 그 병증에게 목이 마르다. 몹시 갈증이 난다. 진지함을 부정하는 진지함과, 다시는 쌓아올릴 수 없을 정도로 산산히 부서진 의식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깊고 분열적인 눈동자가 터무니없이 그립다. 없었던가.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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