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념, 관념, 관념. 그는 관념의 덩어리다. 관념에 관념을 더하여 관념으로만 만든 그야말로 관념의 덩어리다. 그는 산책을 하고 싶다. 그는 밖에 나가고 싶다. 그러나 그는 낮이 무섭다고 한다. 그는-낮이-무섭다고-한다. 낮과 그 밑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무섭다고 한다. 그는 주로 밤에 산책을 한다. 관념의 덩어리처럼 부유하며, 관념의 덩어리처럼 부유하며, 밤거리를 둥둥 떠다닌다. 쏜살같이 떠다닌다. 마치 광란하는 것처럼 이곳저곳을 헤매고 다니며 온갖 두려움에 흠칫거린다. 그는 자신의 심장을 증오하는 것 같다. 아무래도 그렇게 보인다. 그는 가끔 심장밖에 없는 인간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 심장과, 펄떡이는 혈관들조차 관념으로 가득 차 있음을 나는 안다. 뚜렷하게, 알고, 있다. 보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아무튼, 아무튼 간에 말이다. 그 가련한 관념의 덩어리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두려워하고, 끊임없이 확실한 것들을 증오한다. 밤거리를 산책하면서. 아니, 아니, 산책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부유하면서. 쫓기듯이 다급하게 사방을 걸어다니면서. 그렇게 말이다. 그는 아침해가 뜰 때까지 걷는다. 옆 동네로, 옆 동네로, 더 먼 도시로 미치광이처럼 걷다가 아침해가 뜨기 시작하면 울상이 되어 급히 발길을 돌린다. 그러나 걸어온 길이 너무도 멀다. 그가 절반 정도 되돌아가면 이미 해는 크게 떴고, 주변에는 출근하는 사람들과 등교하는 학생들로 가득하다. 그는 더욱 겁에 질린다. 그는 자신의 무방비의 육체 속에 숨어 울상으로 걷는다. 그에게는 숨을 곳이 없다. 그의 몸에는 숨을 곳이 없다. 그는 너무 말랐다. 그 가련한 남자는 너무도 말랐다. 새파란 아침의, 잔혹한 태양 밑에서, 그 마른 남자는 옷자락을 움켜쥐고 걷는다. 자신의 춥고 좁은 다락방으로 도망가기 위하여. 아아, 관념. 모든 여행을 금지하는, 모든 행위와, 모든 핏빛의 따스한 감정들을 금지하는. 남자는 관념에게 먹혔다. 아니, 어쩌면 남자가 관념을 먹어치운건지도 모른다. 너무 많이 먹은 건지도 모른다. 그가 마른 만큼이나 과하게 관념을 먹어치운 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비극이다. 그래, 비극이다. 나는 남자가 더는 겁에 질리지 않았으면 한다. 그러나 남자는 또 한 번 자신의 춥고 비좁은 다락방에 기어드는 것이다.
 아아. 비극이다.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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