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1/17 - 자궁 밖에서.
Last ideal(egloos) 2010. 7. 9. 13:56 |포스트모더니즘, 글쎄.
그것이 낳은 책들은 충만함보다 결핍이 훨씬 크다. 결핍이 낳은 미학이 아닌, 그저 결핍이 낳은 허무들만이 너무
크다.
사상을 손가락질 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러나 사상만으로 이루어지는 사상이란 없기에, 우리는 사상을 손가락질 할 수
있다.
아무것도 아닌,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은 회색조의 공갈. 그들의 문장이 그렇다.
누군가 이 책들을 전부 반값에 사갔으면
좋겠다.
당신들이 부르짖는 모던한 정신은 아무래도 허무주의로 돌아가는 악순환의 길 같다. 무언가 이상한 것을 보고 있다.
그러니까,
다른 허무주의가 아니라 종교적 허무주의 말이다. 그것에는 어떤 영감도 섬광도 없다.
환각과 함께 떨어져나가는 게 더 이상적이지 않을까.
약과 환각, 나는 내가 무얼 바라고 그런 짓을 했는지 알고 있다.
틀림없는 길이다. 방향없는 길. 누군가가 태어났을 때부터
쏟아진.
아니다. 아니다. 아니다. 아니다. 아니다. 아니다. 아니다. 약국에서는 신경안정제를 팔아야한다.
길, 길,
길. 길. 여기에 어떤 길이 있다고. 어떤 빌어먹을 모랄리스트들이. 아. 아아.
난 그냥, 난 그저 아무도 내 방문을 두드리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다. 아니면 적어도, 적어도, 적어도 날 밖으로 끌어내고 내게 이상한 말들을 지껄이고 싶으면 내가 버틸 수 있게 약을 내 손에
쥐어줬으면 하는 것 뿐이다. 아무도 병자가 아니다. 아무도 내게 병자라고 할 수 없다. 삼주분을 한번에 들이삼켜도 멀쩡한 약을 탐하는 남자를
누가 병자라고 부를 수 있겠느냔 말이다. 병자는, 병자는 병자는 병자는 병자는 깨끗한 농산물을 원하는 사람들이지. 병자는 영웅주의에 찌든 눈빛이
맑은 아나키스트들이지. 병자는 시체성욕자를 병원에 처넣는 손아귀들이지. 병자는 병자는, 병자는. 아니다. 나는 그저 아무도 내 방문을 두드리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다. 적어도 그들이 내게 말을 하고 싶다면 내가 버틸 수 있도록, 내가 사물들 사이로 가라앉아서, 당신들의 괴상한 언어를 수면
아래에서 걸러 들을 수 있도록.
자궁이 없는 곳에서 태어난.
자궁이 없는 곳에서 태어난.
자궁이 없는 곳에서
태어난.
자궁이 없는 곳에서 태어난. 진통제는 단 한번도 내 통증을 가라앉혀준 적이 없습니다. 알고 있습니까? 진통제는 단 한번도 내
통증을 가라앉혀준 적이 없습니다. 알고 있습니까? 진통제는
단.한.번.도.내.통.증.을.가.라.앉.혀.준.적.이.없.습.니.다.
나는 내가 멀쩡하다고 생각하는 만큼 멀쩡하고, 사람들은 탄생에
입다물고 부정하면 안된다. 그들은 지저분한 커튼으로 생존을 가리면 안된다. 틀림없이 '그들'이 태어나서 자라고 행동하며 사고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 세계 모든 눈꺼풀들에게 새겨넣어야한다.
어쩌면 정욕이 없는 생명은 망가진 것일지도 모르지, 어쩌면 소설가는 이야기를 만들어야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는 금속으로 만들어졌을지도 모르고, 어쩌면 열쇠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어쩌면. 그러나, 그러나 분명히 나는 살아서
입을 놀리는 열등감으로 된 자부심들을 증오한다. 대단히 즐겁지 않다. 대단히, 도망쳐야할 근거가 대단히 많다. 눈, 눈, 눈, 그들의 눈 안에
담긴 지독함.
역겨운 모양으로 비뚤어진 입술.
뭉개진 입꼬리.
찌그러진 눈살.
대단한 인격.
그래, 존경받는 형태.
대단히도. 대단히. 만약에 어떤 절대가 있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사람처럼 웃지는 않을 것이다.
입이 없을지도 모른다. 아니 아마도 입이나
얼굴근육은 없을 것이다. 얼굴에서 피부와 근육을 전부 떼어내고 실리콘을 발랐을지도 모른다. 눈은 있을 것이다. 다만 움직이지 않는
눈이다.
그것도 자궁이 없겠지. 자궁 없는 태아. 자궁 없는 태아.
그 태아는 착상됬을 때부터 어미가 없었다.
실은 착상되지도
않았다. 자궁은 커녕 어미조차 없는데 도대체 어디에 들러붙을 것이란 말인가.
다만 그는 있다. 틀림없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가려버리면
안된다.
누가 그걸 뒤집고 싶어 했을까. 캄캄한 허공. 길의 끝에, 도주로와 연결되어있는.
그곳엔 위선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