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 오브 워 (Lord Of War, 2005)
기록/영화 2011. 4. 30. 02:13 |
<전세계적으로 5억 5천만정 이상의 화기가 유통되고 있다. 12명 당 한명 꼴이다.
문제는, 나머지 11명을 어떻게 무장시키냐는 것이다.>
문제는, 나머지 11명을 어떻게 무장시키냐는 것이다.>
영화는 작품의 주인공인 무기밀매상 '유리'의 한마디로 시작한다.
이것은 얼핏 '그들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진행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을 주기도 하지만,
실제로 영화는 어느 누구의 입장도 취하지 않는다.
이 시점에서 영화는 이미 자신이 논하고자 하는 것에 대해 어떠한 결론을 내릴지 비밀스레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나는 내 인생에서 지금까지 늘 폭력으로부터 도망치기만 했지만
실은 폭력에 다가갔어야 했던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본성이다.>
그리하여 '유리'는 본성에 거스르지 않는 방향을 선택한다.
우리의 DNA에 내재되어있는 폭력에 대한 욕구와, 그것을 바탕으로하여 발전한 폭력을 이용하려하는 욕구.
본성에 거스르지 않는다면 인간은 고민할 필요가 없다.
본성은 인간에게 가장 신선한 고기만을 가져다줄 것이기 때문이다.
<내 안에 있는 개를 조심하려고.
이것은 얼핏 '그들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진행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을 주기도 하지만,
실제로 영화는 어느 누구의 입장도 취하지 않는다.
이 시점에서 영화는 이미 자신이 논하고자 하는 것에 대해 어떠한 결론을 내릴지 비밀스레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실은 폭력에 다가갔어야 했던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본성이다.>
그리하여 '유리'는 본성에 거스르지 않는 방향을 선택한다.
우리의 DNA에 내재되어있는 폭력에 대한 욕구와, 그것을 바탕으로하여 발전한 폭력을 이용하려하는 욕구.
본성에 거스르지 않는다면 인간은 고민할 필요가 없다.
본성은 인간에게 가장 신선한 고기만을 가져다줄 것이기 때문이다.
움직이는건 전부 망쳐버리고 약한 개는 싸워서 죽여버리는 개 말야.
좀 더 사람다워지려는 거지.>
유리의 동생 '비탈리'.
지금보면 이 영화는 시작부부터 모든 대사에 복선과 암시를 깔아두었다.
요리를 하고 화주를 마시며 등장하는 비탈리는 자신의 '개'를 억압하고 더 사람다워지겠다고 말한다.
영화 전반에 걸쳐서 유리에 비해 훨씬 퇴폐주의적이고 욕망에 끌려다니는 것처럼 보이는 비탈리가,
실은 빈민가에서 코카인을 흡입하면서도 양복을 입고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무기들을 팔아치우는 유리보다 인간에 가깝다는 것이다.
혹은 인간에 가까우려고 노력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본성을 억압하려는 한줄기의 의식이 그의 결말이 어떠한 형태일지를 말없이 가리킨다.
<심지어 내 동족 소비에트와 싸우는 아프가니스탄에도 납품했다.
코카인 1Kg과 함께 비탈리가 사라졌을때, 유리는 비탈리가 '무엇인가로부터 도망'쳤다고 표현한다.
첫 등장때부터 짐승보다는 인간이 되고 싶다고 말했던 그였기에, 어쩌면 그는 약기운에 힘입어 그의 양심'으로' 도망친 것은 아니었을까?
고뇌할 것이 너무 많을때, 퇴폐는 무엇보다도 매력적인 도주로다.
나는 비탈리라는 캐릭터가 마음에 든다.
그는 약한 인간이다. 약한 정신을 가졌고 또 동시에 희미하지만 양심도 가졌다.
약한 인간이 자신의 심장 밑바닥에서부터 흘러나오는 양심과 마주쳤을때 어떻게 행동하는가?
그는 도망친다. 필사적으로. 알코올, 약물, 섹스, 기타등등.
세상의 온갖 상황과, 그 상황들의 한가운데에서 눈을 뜨고 서있는 일은 정말이지 힘든 일이다.
나는 비탈리라는 약한 인간이 마음에 든다.
그의 수동성과 양심과 도주와 감정과 전락이 마음에 든다.
<왜 항상 망가져 있는거야?>
<망가졌으니까.>
전쟁의 제왕이 저지르는 첫번째 '직접' 살인.
사실 이것마저도 그는 스스로 방아쇠를 당기지 않는다.
양심 때문에? 글쎄, 그는 그저 두려웠던 것일 뿐일지도 모른다.
두려워서 짐승이 되기 위해 필사적으로 눈을 돌려온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그는 여전히 신선한 고기의 맛을 알고 있다. 그리고 탐한다.
<기억하게 유리.
편을 붙어.>
신념도 사상도 없는 전쟁의 제왕. 돈만 낸다면 어디든 무기를 팔아치우는 짐승.
유리는 무엇에도 거리낄 것이 없기 위해 짐승이 되기를 바랐지만,
사실 인간이 짐승이 된다는 것만큼이나 지독한 도덕적 난제는 없을 것이다.
그는 아무것도 믿지 않기 때문에 어느 무엇에도 기댈 수 없고 눈을 가릴수도 없다.
모든 문제와 자기 자신의 비합리성, 그리고 모순이 가장 노골적이고 선명한 형태로 달려드는 것이다.
<저주를 받은 느낌이 들었다.
투명해지는 저주.>
자기모순과 기댈 곳 없는 양심.
저주, 그리고 이어지는 아내의 간청과 설득.
그러나, 그래도 그는 그만두지 않는다.
생각하기 이전에, 무기를 판다는 행위 자체가 '유리'가 되어버린 것이다.
결말로.
그들은 마침내 눈에 빤히 보이는 '인과관계' 앞에 놓여지게 된다.
총을 팔고 돈을 받으면, 사람이 죽는다. 눈 앞에 놓여진 수백명의 사람들이.
지금까지 양복과 돈, 코카인과 '대표자'들에 의해 가려져있던 무기거래의 진실이 드러나는 것이다.
그것을 비탈리는 견디지 못한다. 그가 '개'를 억제하기로 결심했던 그때부터 결말은 정해져있었다.
<뭘 하는거지?>
<유리를 위한 일.>
초자아에 대하여. 그것이 선험적인 것인지 후천적으로 생겨나는 것인지를 확언할 방도는 없지만,
확실한 것은 그것이 본성만큼이나 끈질기고, 또 감각적인 것이라는 사실이다.
감각은 지울 수 없다.
그리고 이어지는 유리의 담담한 이야기.
<학살은 비탈리가 예견한 대로 진행되었다.
그러나 그 주에 시에라리온에서는 여섯번의 또다른 학살이 발생했다.
그들을 다 막을 순 없다.
경험상 한 명도 막을 수 없다.>
<"선한자가 행하지 않을때 악이 활개친다"고들 하지만,
사실은 이렇게 말해야한다:
"악은 활개친다.">
분명 이 사회에 있는 어떤 정치적이고 또 결백함을 믿는 누군가는 '비겁'을 말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도대체 무슨 중요성을 가진단 말인가?
사건과 상황은 항상 일어난다. 개인의 의지와는 상관 없이.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동시에 어느 누구도 죄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지옥에나 가라고 하고 싶지만
이미 거기에 계시는군.>
처음에, 나는 이 영화가 누구의 입장도 취하지 않음으로써 이미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우리는 개인의 시각에서 벗어날때 비로소 개인이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지 알게 된다.
그리고 세상은 개인들로 이루어지지만, 동시에 거기에는 그 어떤 개인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씁쓸한 회의주의와 함께 알아차리게 되는 것이다.
<지구를 상속받게 될 자가 누구일지 알고 있는가?
바로 무기상들이다. 다른 사람들은 서로를 죽이느라 너무 바쁘다.
살아남는 비결은 뭘까?
전쟁을 하지 않는 것이다. 특히 자기자신과는 절대로.>
세계는 넓어진 만큼 난해해졌고, 복잡해진 만큼 누구도 손댈 수 없게 되었다.
모든 상황은 그저 내버려진다. 우리의 손을 벗어났기 때문이다.
그 상황을 제어할 수 있는 손은? 산수적으로 생각해보면 '우리들'의 손이다.
그러나 안심하지 말아야한다. 이미 말했듯이, '우리들' 속에는 '나'도 '우리'도 없기 때문이다.
유리의 동생 '비탈리'.
지금보면 이 영화는 시작부부터 모든 대사에 복선과 암시를 깔아두었다.
요리를 하고 화주를 마시며 등장하는 비탈리는 자신의 '개'를 억압하고 더 사람다워지겠다고 말한다.
영화 전반에 걸쳐서 유리에 비해 훨씬 퇴폐주의적이고 욕망에 끌려다니는 것처럼 보이는 비탈리가,
실은 빈민가에서 코카인을 흡입하면서도 양복을 입고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무기들을 팔아치우는 유리보다 인간에 가깝다는 것이다.
혹은 인간에 가까우려고 노력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본성을 억압하려는 한줄기의 의식이 그의 결말이 어떠한 형태일지를 말없이 가리킨다.
<우리 싸움이 아니야 비탈리. 어서, 가자.>
오사마 빈 라덴에겐 팔지 않았다.
도덕적인 기준 때문이 아니라, 그때는 놈이 늘 수표를 부도냈기 때문이다.>
어떠한 이념이나 사상도 없이 '신선한 고기'만을 쫓는 것만큼 간단하고 단순한 것이 또 있을까.
유리는 깔끔한 정장을 차려입고 누구보다 강렬하게 짐승의 영역으로 돌진-혹은 추락한다.
그리고 자신이 팔아치운 무기들로 벌어지는 전쟁과 살인에 대하여, 그는 '우리의 싸움이 아니다'라고 일축한다.
이것은 그의 양심을 위한 거짓말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사고의 종말과 같다.
자신의 일과 개인의 죽음이 가지는 인과관계에 대하여 완전히 관심을 끊음으로써 그는 상황의 내면을 바라보지 않아도 되었고,
그것은 장사를 성공적으로 가속시키기 위한 가장 좋은 조건이었던 것이다.
짐승은 고기를 향해 달린다. 멈춤없이.
코카인 1Kg과 함께 비탈리가 사라졌을때, 유리는 비탈리가 '무엇인가로부터 도망'쳤다고 표현한다.
첫 등장때부터 짐승보다는 인간이 되고 싶다고 말했던 그였기에, 어쩌면 그는 약기운에 힘입어 그의 양심'으로' 도망친 것은 아니었을까?
고뇌할 것이 너무 많을때, 퇴폐는 무엇보다도 매력적인 도주로다.
나는 비탈리라는 캐릭터가 마음에 든다.
그는 약한 인간이다. 약한 정신을 가졌고 또 동시에 희미하지만 양심도 가졌다.
약한 인간이 자신의 심장 밑바닥에서부터 흘러나오는 양심과 마주쳤을때 어떻게 행동하는가?
그는 도망친다. 필사적으로. 알코올, 약물, 섹스, 기타등등.
세상의 온갖 상황과, 그 상황들의 한가운데에서 눈을 뜨고 서있는 일은 정말이지 힘든 일이다.
나는 비탈리라는 약한 인간이 마음에 든다.
그의 수동성과 양심과 도주와 감정과 전락이 마음에 든다.
<I love you. I love you all.>
<망가졌으니까.>
전쟁의 제왕이 저지르는 첫번째 '직접' 살인.
사실 이것마저도 그는 스스로 방아쇠를 당기지 않는다.
양심 때문에? 글쎄, 그는 그저 두려웠던 것일 뿐일지도 모른다.
두려워서 짐승이 되기 위해 필사적으로 눈을 돌려온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그는 여전히 신선한 고기의 맛을 알고 있다. 그리고 탐한다.
편을 붙어.>
신념도 사상도 없는 전쟁의 제왕. 돈만 낸다면 어디든 무기를 팔아치우는 짐승.
유리는 무엇에도 거리낄 것이 없기 위해 짐승이 되기를 바랐지만,
사실 인간이 짐승이 된다는 것만큼이나 지독한 도덕적 난제는 없을 것이다.
그는 아무것도 믿지 않기 때문에 어느 무엇에도 기댈 수 없고 눈을 가릴수도 없다.
모든 문제와 자기 자신의 비합리성, 그리고 모순이 가장 노골적이고 선명한 형태로 달려드는 것이다.
투명해지는 저주.>
자기모순과 기댈 곳 없는 양심.
저주, 그리고 이어지는 아내의 간청과 설득.
그러나, 그래도 그는 그만두지 않는다.
생각하기 이전에, 무기를 판다는 행위 자체가 '유리'가 되어버린 것이다.
결말로.
그들은 마침내 눈에 빤히 보이는 '인과관계' 앞에 놓여지게 된다.
총을 팔고 돈을 받으면, 사람이 죽는다. 눈 앞에 놓여진 수백명의 사람들이.
지금까지 양복과 돈, 코카인과 '대표자'들에 의해 가려져있던 무기거래의 진실이 드러나는 것이다.
그것을 비탈리는 견디지 못한다. 그가 '개'를 억제하기로 결심했던 그때부터 결말은 정해져있었다.
<유리를 위한 일.>
초자아에 대하여. 그것이 선험적인 것인지 후천적으로 생겨나는 것인지를 확언할 방도는 없지만,
확실한 것은 그것이 본성만큼이나 끈질기고, 또 감각적인 것이라는 사실이다.
감각은 지울 수 없다.
그리고 이어지는 유리의 담담한 이야기.
그러나 그 주에 시에라리온에서는 여섯번의 또다른 학살이 발생했다.
그들을 다 막을 순 없다.
경험상 한 명도 막을 수 없다.>
사실은 이렇게 말해야한다:
"악은 활개친다.">
분명 이 사회에 있는 어떤 정치적이고 또 결백함을 믿는 누군가는 '비겁'을 말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도대체 무슨 중요성을 가진단 말인가?
사건과 상황은 항상 일어난다. 개인의 의지와는 상관 없이.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동시에 어느 누구도 죄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이미 거기에 계시는군.>
처음에, 나는 이 영화가 누구의 입장도 취하지 않음으로써 이미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우리는 개인의 시각에서 벗어날때 비로소 개인이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지 알게 된다.
그리고 세상은 개인들로 이루어지지만, 동시에 거기에는 그 어떤 개인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씁쓸한 회의주의와 함께 알아차리게 되는 것이다.
바로 무기상들이다. 다른 사람들은 서로를 죽이느라 너무 바쁘다.
살아남는 비결은 뭘까?
전쟁을 하지 않는 것이다. 특히 자기자신과는 절대로.>
세계는 넓어진 만큼 난해해졌고, 복잡해진 만큼 누구도 손댈 수 없게 되었다.
모든 상황은 그저 내버려진다. 우리의 손을 벗어났기 때문이다.
그 상황을 제어할 수 있는 손은? 산수적으로 생각해보면 '우리들'의 손이다.
그러나 안심하지 말아야한다. 이미 말했듯이, '우리들' 속에는 '나'도 '우리'도 없기 때문이다.
유리는 목적 없는 짐승이 되어 계속해서 무기를 판다.
설령 그가 하지 않더라도, 상황은 우리의 손을 벗어난 채 계속해서 진행될 것이다.
설령 그가 하지 않더라도, 상황은 우리의 손을 벗어난 채 계속해서 진행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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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m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