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장과 문장들의 호흡이 매우 짧고 읽기에 편리하다. 내용 자체는 이렇다할 특이성이 없지만 사건들을 엮고 적절한 대목에 등장시켜 역겨운 불행과 끔찍한 고통들을 한낱 우스개소리로 만들어버리는 풍자 기술은 몹시 교묘하고 참고할만 하다. 본문이 진행되는 내내 활자들 속에서 끊임없이 벌어지는 추악하고 소름끼치는 사건들은 그것이 전혀 대수로운 일이 아니라는 듯이 늘어놓는 미니멀리즘한 문장에 의하여 희화화 되어버린다. 그것이 다소 과도한 경향이 없잖아 있기도 하지만, 과도한 미니멀리즘이라는 것부터가 이미 아이러니한 코미디와 다름 없는 것이다. <이야기>의 측면에서 보면 이것은 그저 삶에 대한 순진한 긍정을 갖고 있는 인간이 노골적인 경험주의로 말미암아 회의에 빠져버리는─그 회의마저도 마지막에는 맹목적인 노동으로 억지로 잊어야만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회의에 대한 회의'로 내버려지고 말지만 말이다─ 내용에 지나지 않지만, 이 책 자체가 이야기의 진행에 무게를 두고 있다고 말하는 것부터가 무리한 일일 것이다. 오히려 이것은 체념을 학습한 인간이 때때로 느끼는 의문과 흡사한 면이 있다. 그런 것을 나타내기 위하여 쓰여졌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처음부터 짐작 했듯이, 결국 결론은 나오지 않는다. 전 세계의 불행들을 일주한 캉디드와 그의 일행들은 더 이상 행복이라는 환상을 좇지도 않는다. 그들은 이제 지독한 불행에 빠지지 않는 대가로 권태를 얻었고, 권태를 잊기 위해 노동을 하며 존재의 목을 가까스로 축이기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캉디드의 머릿속에서는 그 치명적인 믿음과 기대의 이름인 '낙관주의'가 가끔씩 발작하는 의문처럼 고개를 들기도 하지만, 그는 설탕에 절인 레몬을 입에 넣고 밭을 갈러 나가야 한다.

<마르틴은 인간이란 원래 그런 것이라고, 걱정과 번민 속에서 허우적거리거나 그렇지 않으면 권태에 빠질 수밖에 없도록 생겨 먹었다고 한마디로 잘라 말했다. 캉디드의 생각은 달랐다. 그렇지만 잠자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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