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를 위한 감정. 안식에 대한 욕망. 어서 모든 일을 끝내버리고 싶다. 나는 늘 언제까지 살아야하느냐고 누군가에게 묻는다. 조금만 더 하면 될 것이다. 단 하나라도 좋으니 네 삶을 완결지어라. 사고에 마침표를 찍어라. 만약 내가 아주 잠깐이라도 위대함의 정상에 다다를 수 있다면, 그 뒤에는 그저 영원히 깊어지기만 하는 계곡 사이로 굴러떨어져도 좋다. 그러니까 어서 정상에 올라 울고 소리쳐야한다. 결말을 위하여. 나는 끝을 원한다. 그러나 늘 남는 것은 미련 뿐이다. 복수심과 미련. 나의 가장 지저분하고 추잡한 인간성. 누군가 나를 도와주었으면. 진심으로 내 심장에 체온을 나누어준다면. 만일 내가 행복하다면. 사실 나는 내가 감상을 갖는 것도 혐오스럽다. 달리 어쩔 도리도 없으면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자살하듯이 잠드는 것 뿐이다. 왜? 죽지 않겠다고 말해버렸으니까. 어떤 시기까지는. 세계와 자주 마주칠수록 발밑에 도사리고 있는 허무주의가 점점 더 뚜렷한 윤곽을 갖는다. 의사는 그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내가 통제권을 손에 넣어야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한발짝만 더 나서면 허무주의에게 갈기갈기 찢겨 죽어버리지는 않을까, 그것이 두렵다. 내가 더 이상 의지조차 가지지 못하게 되고, 아무것도 만들지 못하고, 패배주의적인 울부짖음 속에서 서서히 흐려지다가 결국에 가서는 완전히 지워져버린다면?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내가 무언가를 바래야한다는 것은 또 무슨 법칙인가. 이제는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다. 나는 무언가를 잃어버렸다. 그것이 내게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기도 전에. 나는 무언가를 잃어버렸다. 나는 그만두고 싶다. 전부 다. 뭐 하나 만족스럽지가 못하다. 무엇을 기대해야하는지? 아무것도 모른다. 그냥 굴러 떨어졌을 뿐. 죄악이 무엇이라고? 웃기지도 않는 소리다. 죄 같은 것은 없다. 그 어떤 법칙도 기준도 좌우도 상하도 없다. 그것들은 그저 이 모든 엿 같은 것들이 지속되기를 바라는 음흉하고 배부른 돼지들의 공작으로 만들어진 허구다. 우리는 맨몸뚱이고 벌거벗었으며 가진 것이라고는 피와 고기밖에 없다. 그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를 가진단 말인가.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한다. 그저 무작위하고 가차없는 우연에 의해 여기에 서있을 뿐. 마치 필연적인 것처럼. 우리는 뭐든지 할 수 있다. 아무것도 가지지 못했으니까. 우리는 세계를 송두리째 거부할 수도 있다. 애당초 그것이 우리의 것이 아니었으니까. 우리는 죽을 수도 있다. 그것만이 자의로 움직일 수 있는 유일한 스위치니까. 존재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 오직 그뿐. 위대함은? 글쎄, 너무도 멀고 막연하다. 그것에 목매어있는 만큼, 그것은 동시에 공허하고 가끔은 증오스럽다. 나의 인생을 유지시키는 단 하나의 것. 그것만 없었더라도 나는 일찌감치 그만 둘 수 있었을 텐데.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허무의 한복판으로 뛰어들어 순식간에 사라질 수도 있었을 텐데. 단 하나의 빛줄기. 나는 그것을 갈망하고 사랑하고 찾아헤매고 증오하고 원망하며 포기하지 못한다. 사실은 그것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는데. 도대체 언제쯤에야 나의 영혼이 자유를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죽을 수 있다. 죽음만은 내가 내 의지로 선택할 수 있다.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에 대한 갈망. 안식. 영원한 휴식. 영원한 잠. 깨어날 필요가 없는 꿈. 그러나 나는 아직도, 무언가를 찾고 싶어한다. 햇빛은 손에 쥘 수도 먹어치울 수도 없는데. 섬광은 간직할 수도 끌어안을 수도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그것에 목이 매어있고, 자살하지 못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