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에 해당되는 글 308건

  1. 2021.10.15 역전에서
  2. 2021.09.17 일몰
  3. 2021.09.09 길 위의 피
  4. 2021.07.30 부취(腐臭)
  5. 2021.07.15 시인의 피
  6. 2021.07.08 복도의 눈
  7. 2021.02.04 자판기
  8. 2021.02.03 (2020.12.31)주인공을 만드는 방법
  9. 2021.01.28 문명과 귀향
  10. 2021.01.21 미림
  11. 2021.01.07 빈 집 1, 2
  12. 2021.01.03 닫힌 문
  13. 2020.12.06 두개골 한 겹 안팎에서
  14. 2020.11.21 그곳에선 하수구 냄새가 났다
  15. 2020.11.12 새벽 2시, 도봉로 130길
  16. 2020.04.16 봄의 조각들
  17. 2020.02.04 동생의 기억
  18. 2020.01.29 과거를 생각하며
  19. 2020.01.02 슬퍼하는 나는 슬픔 자체가 슬픈 존재인가 1
  20. 2020.01.02 나의 작은 마음은 어디에 있나
  21. 2019.12.28 태양이 얼어붙어서 1
  22. 2019.12.25 겨울안개
  23. 2019.12.20 암막 같은 희망
  24. 2019.12.17 꽃봉오리 속의 지혜
  25. 2019.12.14
  26. 2019.12.11 질식의 땅
  27. 2019.12.10 불야성
  28. 2019.12.09 無名 1
  29. 2019.12.07 펜을 문 짐승
  30. 2019.12.06 부정否定의 시 1

역전에서

글/시 2021. 10. 15. 22:28 |

역전에서



창동역 1번 출구의 겨울은 줄곧 붉은색이었다

사내가 소주병을 기울이고
포차 천막은 꺾인 날개처럼 퍼덕이는데
석유 히터는 가끔씩
쓸쓸하게 자갈 튀는 소리를 내곤 했다
불콰한 얼굴들은 표정 없이 번들거렸다

붉은 플라스틱 테이블
끄트머리에서 엎어지려는 소주잔을 쥐자
느닷없는 경광봉에 휩쓸려 포차 지붕들은
모조리 도시의 먼 곳으로 밀려났다

창동역 1번 출구 포장마차가 전부 사라진
가로등 불 밝은 멀끔한 광장

미처 취하지 못한 사람들 전철 구르는 소리 아래
공원이 된 폐허를 헤맨다

역사도 되지 못한 사람들이 그리워 나는
한 잔, 한 잔, 더 어두운 길로만 걸어나가고

테이블 끝의 소주잔
젊은 술꾼의 깡마른 손가락에 붙잡히는데

술로 가득 채운 내 몸뚱어리
다시는 역전할 수 없는 가장자리
무채색의 추위
끝에 서서
붙잡아줄 손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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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몰

글/시 2021. 9. 17. 02:06 |

일몰


반투명한 창문 너머
가을날의 태양은
천천히
깊은 한숨 쉬며 멀어져가고
겹겹이 그늘진 건물 안
나는 우두커니 살아있다

깡통처럼 발끝에 채이는 생활
긁히고, 점점 구겨지고
주워갈 사람도, 신도 없어
믿음도 알미늄처럼 색이 바랬다

생활, 생활, 하며 되뇌는
머리는 진흙 뻘 같아
담배나 빼어물며 나
어제 떠난 누군가의 자리에
서서
한 모금, 한 모금
살고

오늘 저녁에도

제 주인 잃은 그림자들
술렁술렁 어두운 골목으로 떠날 테고……

나는 어리둥절, 백치처럼 남아
어디 이정표는 없을까
우뚝 서 있는 철인은
없을까,
그러나 없겠지

천쪼가리 버리듯 하루는 또 하늘하늘 날아가고
나는 전날 눈 뜨고 죽었을 누군가의 묘석
영정에 남은 적막한 그리움
따위를 생각하고 
또 생활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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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피

글/에세이 2021. 9. 9. 23:05 |

길 위의 피


 나는 손안에서 담뱃갑을 돌리며 시멘트 위의 핏자국을 보고 있었다. 약속 시간에는 이미 늦었다. 그러나 방금 내가 보았던 일은 그저 지나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만나기로 한 친구들에게 이 이야기를 해준다면 지각쯤은 간단히 용서해줄 것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내가 서 있는 자리는 방금까지만 해도 여자 둘의 새된 비명과 울음소리, 경찰과 구경꾼들의 웅성거리는 소리로 소란스러웠다.
 30분 전, 나는 역을 향해 걷고 있었고 중간에 아파트 단지로 들어섰다. 단지를 질러가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기 때문이었다. 20미터 정도 앞에 개를 데리고 아파트 단지를 산책하는 사람이 각각 둘 있었다. 나와 같은 방향으로 걷는 한 명, 반대 방향에서 오는 한 명이 막 마주치기 직전이었다. 내 쪽에서 뒷모습만 보이는 여자는 애견용 목줄을 쥐고 있었다. 줄 끝에는 작고 하얀 소형견이 있었다. 반대쪽에서 오는 사람은 이제 30대나 되었을까 싶은 젊은 여자였다. 그녀가 쥔 줄은 털이 누런빛이고 주둥이가 길쭉한, 커다란 개의 목에 걸려있었다.
 추위가 막 물러가기 시작하는 3월의 쾌적한 오후였다. 하늘은 맑았고 아직 기울지 않은 태양이 얼굴과 외투 위로 따사로운 빛을 뿌리고 있었다. 나는 곧 친구들과 식사를 하며 술도 한잔 마실 예정으로, 들뜬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때 앞에 가던 작은 개가 날카롭게 짖기 시작했다. 그 새되고 히스테릭한 짖는 소리는 자신의 눈앞에 있는 대형견을 향한 것이었다. 개들의 심리 같은 것은 알지 못하지만, 보아하니 자기보다 몇 배나 큰 동족을 보고 겁을 집어먹은 것 같았다. 깡깡댄다고 해야 할지 깽깽댄다고 해야 할지, 여하간 어지간히도 귀에 거슬리는 소리를 내며 짖었다. 개 주인은 목줄을 잡아당기며 개에게 그만두라고, 사람 말로 어르고 있었다. 커다란 놈은 가던 걸음을 멈추고 짖는 녀석을 쳐다볼 뿐, 짖지도 으르렁거리지도 않았다. 그러니 나는 그 직후 일어난 일에 대해,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일이었으니 누군가에게 책임을 묻는 것도 딱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계속 성가시게 짖어대는 작은 놈에게 느닷없이 커다란 놈이 덤벼든 것이다. 10살짜리 사내아이만 한 몸집이 용수철처럼 튀어나가는 바람에 개 주인은 목줄을 놓쳐버렸다. 그 커다랗고 누런 개는 순식간에 작은 개의 배를 힘껏 물더니 도리질을 치며 양옆으로 마구 흔들어댔다. 개 주인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달려들어 멈출 생각은 없는 듯했다. 하기야 10초도 되지 않아 벌써 사방에 선혈이 튀고, 하얗고 작던 개는 새빨갛게 물들어버렸으니, 아무리 자신의 개라고 해도 선뜻 손을 대기 힘든 광경이기는 했다. 나는 10미터 정도 간격을 두고서 그 모습을 전부 지켜보고 있었다. 자신이 키우던 개에게 겁을 집어먹은 주인들이 우스꽝스럽다는 생각도 들었으나 도무지 우스운 상황은 아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비명을 들은 아파트 경비원이 달려오고, 사람들이 모여들고, 이젠 구경꾼들까지 함께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60대 중반의 나이로 보이는 경비원은 어떻게든 개들을 떼어놓으려고―사실 개들끼리 맞붙은 상황도 아니고 일방적인 도살이었지만― 애를 쓰고 있었으나, 이미 피를 본 누런 개는 아주 끝장을 낼 기세였다.
 누군가의 신고로 경찰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커다란 녀석이 붉은 덩어리를 한쪽에 뱉어놓고도 한참이 지난 뒤였다. 시멘트 위에 피가 흥건하게 고였고 개 주인들의 울음소리, 비명, 넋이 나간듯한 흐느낌까지 난장판이 따로 없었다. 거기다가 구경꾼들까지 한몫하여 집단으로 알아듣기 힘든 고성을 내고 있었다. 커다란 개 쪽의 주인을 책망하는 욕설, 어떡해, 어떡해, 하며 상황을 더욱 어수선하게 만드는 황망한 목소리들…….
 결국 순찰차가 주인 둘과 주둥이가 피투성이가 된 개,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가늠이 되지 않는 작은 개를 데리고 현장을 떠났다. 그러자 구경꾼들은 한동안 서로 의견을 말하고, 대화를 나누며 수런수런하다가 약속이라도 한 듯 제 갈 길을 갔다. 순찰차가 떠나고 5분도 되지 않아 자리에는 피 웅덩이를 치우는 경비원만 남아있을 뿐이었다.
 경비원마저 청소를 마치고 자리를 뜨자 마침내 나는 일이 벌어졌던 자리에 가까이 다가갔다. 여태껏 나는 멀찍이서 상황을 관망하고만 있었던 것이다. 벌써 스며들어버린 핏자국이 시멘트 바닥에 얼룩처럼 들러붙어 있었다. 몹시 담배가 피우고 싶었으나 남의 아파트 단지에서 그럴 수는 없어, 공연히 손으로 담뱃갑만 돌려댔다. 5분 가량, 머릿속의 난잡한 생각들을 정리하며 나는 넋이 나간 듯 서 있었다. ‘짐승’과 ‘동물’이라는 단어가 서로 위치를 바꿔가며 온갖 문장들 속에 배치되었다가 사라지곤 했다.
 시계를 확인하자 슬슬 출발하지 않으면 친구들에게 정말로 호되게 욕을 들을 시간이었다. 나는 친구 중 한 명에게 전화를 걸어, 조금 늦겠다고 전하면서 바쁘게 역으로 향했다. 25분 즈음 후에 나는 의정부 시내의 호프집에서 친구들과 만나고 있었다.
 서로 얼큰히 술이 들어갔을 무렵 나는 오늘 보았던 끔찍하고 흥미로운 광경을 친구들에게 이야기했다. 일이 일어난 순서에 따라 이해하기 쉽도록, 그리고 이야기를 흥미롭게 들을 수 있도록 간략하면서도 완급을 주어 설명했다. 친구들의 반응은 미간을 찌푸리거나 이입하여 화를 내는 등 다양했으나, 의견은 전부 비슷했다. 그 여자는 왜 목줄을 놓쳤느냐, 왜 곧바로 달려들어 멈추지 않았느냐, 그러게 큰 개들은 입마개를 채워야 한다, 등등.
 아니, 그게 아니야, 우리 곁의 짐승들 이야기를 한 거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정정하려 했으나 대화는 이미 다른 주제로 넘어가 있었다. 용훈이는 공무원 시험 벌써 두 번째 아니냐, 승호는 요즘 주식 한다더라, 종인이는 대기업까지 들어가더니 도대체 왜 그만두고 나왔냐, 이러쿵저러쿵……. 이런 대화가 되어버리면 그다지 할 말이 없다. 나는 이빨을 상대의 배에 깊숙이 박아넣고 양옆으로 흔들어대던, 그 커다랗고 누런 개에 대해 가만히 생각했다. 순식간에 피투성이 헝겊처럼 되어버린 작은 개에 대해서도 말이다. 그러나 친구들에게는 나는 웃는 얼굴로 저들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만 보였을 것이다.
 그 누런 개는 상대에게 덤벼들기 전까지 아무런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대형견들이 으레 그러하듯 늠름하면서도 온순한 표정으로 서 있었을 뿐이다. 나는 다시 한번 짐승과 동물이라는 단어에 대해, 집착하듯이 생각에 빠져들었다. 어쩐지 그것들은 그래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길들여있더라도 이따금 마구잡이여도 괜찮다. 동물이니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아니, 그래야만 동물이다. 누군가 건배를 외치기에 나도 맥주잔을 들었다.
 술에 취한 친구들의 표정을 돌아보았다. 새삼 술에 취해도 우리는 동물처럼 될 수 없다는 사실이 이상스럽게 느껴졌다. 이곳은 참 안전하구나, 술집마저도 안전하구나, 다행이고 당연하고 조금은 슬프다.
 그날 밤 전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며, 술기운 속에서 잡스러운 생각만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깨었을 때, 털 없는 짐승이 아니라 진짜 짐승이 되어있으면 좋겠다, 송곳니도 있고 발톱도 있으며 마구잡이로 죽을 수도 있는 짐승,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되나, 카프카에게 기도하면 되는 일인가. 그러면서 집까지 돌아와 이불 위에 쓰러져 잠들었다.
 한주 뒤 비가 올 때까지 검은 핏자국은 지워지지 않고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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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취(腐臭)

글/시 2021. 7. 30. 01:37 |

부취(腐臭)


매미가 울면 마을은 가난해서
들척지근하게 썩는다

담쟁이넝쿨 까맣게 붙은 벽
도둑고양이는 다 삼키지 못한 계절을
왁왁 뱉어놓고

계단참에 엎질러진 거실
생활의 내장에서 왱왱거리는
아스파탐, 소주 냄새

매미가 울면 온갖 산 것들이
대기에 포자며 정충을 풀어놓아
허파는 차라리 익사를 꿈꾸며 헐떡이는 것이다

그러나 분명 새날이 밝으면
먼 데서 날짐승들이
부취를 모조리 쪼아먹으러 올 것이다

그러니 매미가 울어도 가난해도
나는 이끼 짙은 그림자 밑에 자욱한 연기로 서서
백 번의 새벽만 날갯짓으로 오고 갈 것을
생명이 송두리째 썩어 다시 하얗게 탈취될 것을

밤마다 기도하며 하늘로 분향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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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피

글/시 2021. 7. 15. 23:03 |

시인의 피


꽃나무가 어떤 꽃을 피우는가는
주로 육신에 도는 수액에 달려있다

개나리는 저대로 개나리꽃을 피우고
장미나무는 싫어도 장미꽃을 피우고
양귀비는 저가 양귀비인 줄 몰라도
눈 따가운 빨간 꽃봉오리를 피운다

제복들이 곳곳의 둔덕을 드나들었다
정원사처럼 무장하고 제초제를 들었다
개천은 제 갈 길만 몇 번이나 겹쳐 흘렀고
하늘은 파랗게 무심하여 가끔 흰구름이나 지어주었다

어찌 되었건 유월에는 각혈만큼 새빨간 꽃잎에
햇빛이 방울져 떨어졌다

북인도의 고속도로 위에서 사흘을 지내고
흙먼지뿐인 휴게소에는 멀대 같은 양귀비
찢어지게 웃고 있었고
나는 그 입술 하나를 씹었다

덜컹대며 뼈마디 부딪는 버스 의자에서
아픔도 권태도 죄도 없이
나는 어린 날의 시인들에 대해
내가 삼켜온 핏빛 위안에 대해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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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도의 눈

글/에세이 2021. 7. 8. 22:59 |

복도의 눈


 얼마 전, 아래층 복도에 방범 카메라가 설치되었다. 올봄에 이사 온 젊은 부부가 자비로 들여놓은 것이다. 솔직히 말해 그들이 303호로 이사 올 때부터, 결국에는 이런 상황이 되리라고 어느 정도 예상한 바였다. 방범 카메라 등 세세한 부분까지 생각하지는 못했지만, 비슷한 종류의 사건이 어떤 방식으로든 일어날 것은 그들이 이사 온 봄날부터 확실했다.
 애당초 303호의 전 세입자가 도망치듯 빌라를 나갔을 때도 그랬다. 그에 대해 입주민들이 서로 대화를 나눈 일은 없었지만, 나는 모두가 같은 생각이었으리라고 확신한다. 문제는 현관을 마주하고 있는 304호에 거주하는 술주정뱅이인 것이다. 우리 가족이 처음 이 빌라로 이사 왔던 것이 약 6년 전이다. 그때부터 그는 매일매일, 꾸준하게 건물의 모든 세입자를 괴롭혀왔다. 그의 주정에는 나름의 규칙이 있다. 매일 오후 10시가 되면 취해서 소리를 지르며 동거인―어쩌면 아내일지도 모르겠다―에게 욕지거리를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11시 30분 즈음 되면 빌라의 1층부터 4층 사이 현관 하나를 목표로 삼는다. 그리고는 문을 두들겨대며 ‘도무지 시끄러워서 못 살겠다’라고 말도 안 되는 적반하장의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이 지독한 주정은 새벽 2시경까지 계속되다가, 결국 너무 취해서 기력이 다 떨어진 그가 동거인에게 힘없이 욕설을 하며 곯아떨어지는 것으로 끝난다. 일련의 일들이 이 알코올중독자의 찢어지는 목소리와 방음설비가 전혀 되지 않은 건물 덕분에 끊임없이 빌라 사람들을 괴롭혀왔다.
 불행히도 내가 사는 곳이 4층이기 때문에 그의 ‘주정 시간’이 되면 나는 담배를 피우러 나가지 못했다. 건물의 계단 사이에 있는 복도는 사실 복도라기보다 계단참이라고 불러야 할만한 넓이라서, 그 시간에 건물 밖으로 나가려면 반드시 주정뱅이와 마주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사소한 불편은 그렇다 치고, 이런 일이 내가 알기에만도 6년은 지속되었는데 아무도 그를 제지하지 않은 것에는 이유가 있다. 그 이유를 간단하게 얘기하자면, 이곳이 도봉구의 후미진 주택가이기 때문이다.
 경험에 따르면 인천이든 의정부든 도봉구든, 오래되고 여름이 찾아오기만 하면 온 동네에서 음식물쓰레기 썩는 냄새가 나는 주택가 사람들은 모두 비슷한 역사를 갖고 있다. 그들에게 3층의 술주정뱅이는 전혀 새로운 인물이 아니다. 사실은 그가 건물에 살든 살지 않든 별반 달라지는 것도 없다. 이 동네에서는 계단과 복도를 서너 차례 거쳐 건물 밖으로 나가기만 하면 더욱 정신을 혼미하게 하는 사건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대낮부터 술에 취해 자신의 개한테 욕을 하다가 지나가는 사람에게 시비를 거는 도봉구 살라마노 영감이라든가, 길에서 소주를 마시며 보행자들에게 트집을 잡는 연배를 분간하기 힘든 꼽추, 주말 새벽마다 큰 소리로 발라드 가요를 열창하는 건너편 건물의 남자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니까 이곳은 현관문을 열고 나서기만 하면, 동네가 하나로 연결된 정신병동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이런 환경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무엇하러 성가신 일을 감수하며 경찰을 부르거나―우리는 경찰이 이런 상황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다― 민원을 제출하겠느냔 말이다.
 그러나 올해 초에 이사 온 젊은 부부는 조금 다른 사람들이었다. 초봄, 그들이 타고 왔던 원색의 빨간 오픈카를 보았을 때부터 정확히 설명하기 힘든 이질감이 느껴졌다. 나는 그들이 약 3주에 걸쳐 303호를 개조하고, 새하얀 벽지와 페인트를 바르고, 인테리어 업자에게 연락하는 모습을 보았다. 솔직히 불길한 예감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그들은 이 동네와 어울리지 않는 사람처럼 보였다. 어쩌면 부동산 업자에게 속았을지도 모른다. 이 마을의 현관은 각각이 병실 문이고, 마을 전체가 병동의 홀Hall이거나 통로라는 것을 젊은 부부는 모르는 것이 분명했다.
 이사 온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부부는 304호 주정뱅이와 부딪쳤다. 사실 부딪쳤다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 그들은 직접 문제를 해결하는 대신 경찰서에 전화한 모양이었다. 차를 타고서 경찰 둘이 왔고, 한밤중에 304호 현관문을 사이에 두고 경찰과 주정뱅이는 1시간이 넘게 서로 버티고 서서 언쟁했다. 다음 날 밤에도 경찰이 왔다. 그다음 날에는 머리끝까지 취기가 오른 주정뱅이가 303호 문을 쾅쾅 두들기며 조롱 섞인 사죄와 차마 말하기 힘든 상욕을 목청 높여 반복했다. 이제 밤 10시가 지나면 빌라의 3층 복도는 도무지 지나갈 수도 없는 공간이 되어있었다.
 나는 정말로 피로에 찌들어있었다. 안 그래도 불면증으로 고생을 하는데, 이런 바보 같은 짓거리가 두세 달 넘게 반복되자 문자 그대로 죽을 맛이었다. 밤이 되면 담배는 아주 포기해야만 했다. 그때쯤 나는 누굴 원망해야 하는지도 명확하게 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사람들에게 지칠 줄 모르고 폐를 끼치는 저 알코올중독자인지, 괜히 말벌집을 들쑤셔놓은 젊은 부부인지, 우유부단하게 행동하며 상황을 깨끗이 해결하지도 못하는 경찰인지. 온갖 생각이 머릿속에서 혼탁하게 흐르다 보니 ‘모두가 강남에 살 필요는 없다’고 말한 정치인에게까지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바로 2주 전, 303호의 젊은 부부가 3층 복도에 방범 카메라를 설치했다. 첫날에는 고정을 잘못시켜 놓았는지, 벽에서 떨어져 전선에 매달린 채로 허공에서 흔들거리고 있었다. 어쩌면 나보다 먼저 발견한 304호의 주정뱅이가 주먹으로 쳤을지도 모르는 일이고. 아무튼, 다음 날에는 콘크리트 나사로 벽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날 밤에는 약간 다른 일이 일어났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밤 10시가 지나자 혀가 꼬인 주정뱅이가 아래층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런데 이번에는 상대하는 목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다. 30분 넘게 혼자서 욕하고 고함을 쳐대기에 도대체 무슨 일인가 계단참까지 내려가 보았다. 주정뱅이는 앞집의 문을 두들기며 욕을 하는 대신 방범 카메라의 렌즈를 쳐다보며 큰 소리로 욕설을 내뱉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거리낄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듯, 마치 카메라 앞에 선 배우처럼 당당하게, 그리고 이상할 정도로 연극적인 태도로 추태를 부리고 있었다.
 뭐지, 무슨 상황이지. 이전과는 다른 뜻에서 정신이 어지러웠다. 이 사태가 앞으로, 얼마나 더 말도 안 되는 방향으로 진행될지 전혀 실마리조차 잡을 수 없었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서 수면제를 삼키고, 소음 속에서 어렵게 잠이 들었다.
 그러나 젊은 부부는 영리한 사람들이었다. 그날부터 이틀 정도, 304호에서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낮에 작게 나곤 하던 생활소음조차 들리지 않았다. 아예 사람이 없는 듯했다. 알고 보니 3층의 부부는 카메라에 녹화된 영상을 경찰에게 제출한 모양이었다. 이 이야기는 1층의 철도공무원에게 전해 들었는데, 철도공무원 아저씨와 나는 평소 건물 앞에서 함께 담배를 피우며 친해진 사이였다.
 사흘이 지나고 문제의 술주정뱅이는 돌아왔다. 이전에 비하면 훨씬 조용해진 것이 몹시 놀라웠다. 아직도 밤 10시가 되면 고래고래 소리 지를 때가 있긴 하지만, 현관 밖까지 나와 엄한 사람들에게 시비를 걸며 조용히 해달라는 이상한 요구를 하지는 않게 되었다. 젊은 부부가 달아놓은 그 기계의 효과가 감탄스러운 것이 사실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기분이 찜찜한 것은 왜일까. 일이 해결되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계단을 내려갈 때마다 나는 3층 복도 벽에 붙은 카메라를 쳐다보며 잠시 멈춰선다.
 그 까만 렌즈가 비추고 있는, 계단참처럼 비좁은 복도에서 해결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내가 해결방안이라거나 답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언젠가 도봉구가 모조리 방범 카메라로 뒤덮일지도 모르겠다. 조금은 안전해진 3층 복도를 지나가면서 나는 매번 머리가 복잡하고, 어서 건물을 빠져나가 담배나 태우게 되는데, 거리는 여전히 바뀐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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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판기

글/시 2021. 2. 4. 22:35 |

자판기


무심하게 흘러가는 자리에는 반드시 자판기가 서 있다

종로 막걸리집 뒷문과 늙은 보쌈가게 사이 골목
버스가 서지 않는 흙투성이 정류장
대관령 산자락, 염소농장 철책 앞
낡고 정체 모를 자판기들

그들은 사람의 발걸음이 딛지 않는 곳에만
자연스레 피어나는 버섯인 양
먼지와 빛살을 뒤집어쓰고
동전을 먹여도 아무것도 뱉지 않으면서
가끔 하얀 불빛을 깜빡거리기도 한다

상품을 채우던 손들은 어디로 갔는지
매상을 담아가던 장지갑들은 어떻게 됐는지
우뚝 솟아 빈혈에 걸린 그들의 옆통수에는
누군가의 이름과 번호가
날카롭게 긁혀 지워져 있다

그러면 나는 꿈같은 열에 들떠 생각한다
숲속에서 자라나는 고고한 자판기를,
그들에게 엉기듯 둘러싼 담쟁이덩굴을
곧 그것들이 피워낼 황록색 사사로운 꽃을,

숲속마다 산맥마다 황량한 언덕마다
솟아나 수액이 도는 자판기들이 매일 밤
그 꽃들을 위해 달무리 같은 파란 빛을 비출 것을,

그렇게 되면 마침내 나는
그들에게로 걸어갈 다리도 동전을 쥘 손도 없어진
활자가 되어버린 인류를
흐뭇한 마음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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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31)주인공을 만드는 방법

 

 

먹물을 쏟아버린 과거는
수백만, 혹은 하나도 없어
잠들지 못하는 낮과 밤에
나는 숟가락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예를 들면, 열 살 때
앞자리에 앉은 소녀의 땋은 머리는
어린애의 솜씨가 아니었으니까, 나는 소녀의
본 적 없는 가족에 대해 한 명 한 명 슬퍼했지

예를 들면, 열일곱 살 때
전셋집 옮기기 전 박살 난 문짝들 바꿔 달며
이렇게 화가 날 일이었나, 기억이 선명치 않아
머릿속에 그럴싸한 극본이나 새겨두었지

예를 들면, 스무 살 때
이태원 술집에서 두들겨 맞고, 출구에 내던져져
럼주와 흙의 냄새 풍기며 야간버스 타고 돌아올 때
나는 쇳내 나는 혀로 웃었고, 그날의 일을 짜 맞추었지

그러니까 예를 들면,
지난주는 사흘간 잠들지 못하고
날씨는 더럽게 추워 가로수는 빈사의 모습
쓰레빠 고무마저 얼어붙어 맨발을 할퀴고

공기 찢어지는 소리를 내는 바람은
담배 끄고 들어가서 자빠져 자라고 한다
그러나 잠드는 방법도 까먹었고, 눈만 감아도
수 없는 예시들이 얼굴 가죽 벗기러 찾아오는데

먹칠 된 과거들은
먹칠 되기 전엔 어떤 색깔이었나
아니, 그런 건 생각지도 말아야지

숟가락, 젓가락, 포크, 버터나이프 따위가
얼마나 날카로울 수 있는지
나는 그런 안전한 생각이나 하며 창문이 또 파랗게 되는 것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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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과 귀향

글/에세이 2021. 1. 28. 21:21 |

문명과 귀향


 노르웨이의 바르그 비케르네스(Varg Vikernes)라는 음악가는 교회를 세 채 불사르고 사람을 죽였다. 그를 소개할 때 음악가라고 해야 할지 범죄자라고 해야 할지 조금 망설였으나, 결국 음악으로 생계를 해결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음악가라고 했다.
 바르그의 본명은 크리스티안이었지만 그는 자신이 기독교식 이름을 가진 사실이 혐오스러웠다. 그는 전통적인 북유럽식으로 이름을 바꿨다. 첫 음반을 낸 1992년 전후에 바르그는 적어도 세 채의 교회에 불을 질렀다. 그중 하나는 노르웨이의 문화유산이었다.
 음악가로서 여러 밴드에서 활동했는데, 모든 밴드가 북유럽의 악마주의 서클에 관련되어있었다. 바르그는 이미 이너서클(Inner-circle)의 간부였다. 그때 그는 같은 간부였던, 유로니무스라는 기타리스트를 칼로 수차례 찔러 죽였다.
 심문 때 바르그는 자신의 범행동기를 "유로니무스가 악마의 일을 하지 않고 명령만 내리는 가짜 악마주의자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방화나 살인 등 자신의 범죄에 대해 단 한 번도 뉘우치는 기색이 없었다.

 나는 야성을 말하기 위해 문명에게 공포를 느끼는 사람에 대해 쓰기로 했다. 그래서 '문명'이 주는 공포에 대해 몇 가지 생각을 해보았다. 주변 환경에 공포와 경계를 내비치는 것이야말로 야성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미 길이 난 듯이 곧장 반대 방향으로 달리는 생각이 있었다. 그르니에의 『섬』 서평에서 언급된, 하늘이 먹구름으로 덮이지 않고, 대지가 뜨거운 사막과 파도로 넘쳐흐르는 곳에서 태어난 사람들에게 생각이 미친 것이다. 서평의 문장대로라면 <태양과 바다와 밤들이 바로 우리의 신>인 지중해 기슭에 사는 사람들. 어쩌면 내가 모르는 태초의 야성이 깃들어있을 사람들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들에 대해 쓸 것이 없다. 그래서 그 생각을 길게 설명하지 않으려 한다. 나는 어려서부터 계속하여 그들에게 배워왔다. 그리고 죽을 때까지 그들에게 배우기만 해야 한다. 그런 입장에 놓여있다. 내가 온전히 알 수 있을 가능성은 전혀 없더라도 반드시 알아야만 하는 것을 그들은 갖고 있기 때문이다. <살인하기 위해 흥분한 진리들>이나 문명 따위는 기피하며 냉소하는, 그런 황금빛 태양의 자손들에 대해 나는 쓸 줄 아는 것이 없다.
 벌써 문장이 현학적이고 시대착오적이 된 것을 느낄 수 있다. 이 사실이야말로 내가 '그들'에 대해 쓸 수 없다는 증거일 것이다. 그들의 영혼에 대해 공감하지도 구체적으로 이해하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내게 있어 신기루와 같은 것을 설명하려고 하니 문장도 환영이나 마찬가지가 되고 있다.
 그렇기에 내가 써야 할 것은 좀 더 간단한 것이다. 지중해의 빛나는 야성은 모르겠다. 그러나 문명에 대한 공포가 어느새 깊은 증오와 하나가 되어버리면 어떻게 되는지, 나는 그럭저럭 잘 알고 있다. 나 역시 먹구름과 높은 빌딩들이 툭하면 머리 위로 쏟아지는 도시에서 자란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의 진리가 '살인적'이라고 느낄 수밖에 없는 지성 속에서 자랐다. 그래서 나는 그런 이들의 이야기는 쓸 수 있다.
 맨 앞에서 설명한 바르그 비케르네스라는 남자를 나는 단순한 악마숭배자 미치광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째서인가 하면 유럽에서는 오래전부터 기독교라는 것이 사회의 근간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좋든 싫든, 근엄하고 수염이 덥수룩한 심판자의 모습은 그들의 마음 가장 밑바닥에 깔려있다. 기독교기반 사회에서 크리스티안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난 사람이, 선조들처럼 이름을 바꾸고 ‘악마적’ 범죄를 저질렀다는 것은 그저 선과 악의 문제로만 보이지는 않는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는 귀향하고 싶었던 것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는 자신의 오래된 야성―이라고 믿어지는 것―으로 귀향하고 싶었다. 개들의 이야기지만, 개들은 마음이 공포에 사로잡히면 짖는다. 그래서 작은 개일수록 더 잘 짖는 것이다. 늑대처럼 커다란 개들은 웬만해서는 짖지 않는다. 싫어할 만한 짓을 해도 표정근육조차 없는 그 얼굴로 불쾌한 눈매를 하더니 발을 쑥 빼고 저쪽으로 터벅터벅 가버린다. 자신만만한 것이다. 온몸이 근육으로 단단하고 자신의 이빨이 얼마든지 상대를 물어뜯어 죽일 만큼 날카롭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개란 놈들은 인간을 닮아서인지 강할수록 예의 바른 모습을 보인다.
 그런데 느닷없이 우리라는 말을 써서 미안하지만, 우리는 작은 개다. 그것도 인간이 애완용으로 쓰기 위해 교접작업을 반복해 만들어낸 기형 소형견이다. 사방팔방이 자신을 쉽게 죽일 수 있는 괴물과 위협으로 가득하다. 심지어 하늘의 법칙조차 치명적인 학대로만 느껴진다. 미친 듯이 짖어대며 자신을 속이고 적을 위협하려 하지만 우리의 이빨과 근육은 너무 나약하다.
 이 작고 연약한 마음으로는 세상이 온통 폭력과 무차별의 구렁텅이로 보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신이 완벽하고 아름답게 만들었다는 이 세계가 바르그에게는, 덩치가 산이나 구릉 같은 거대한 늑대들이 수도 없이 어슬렁거리는 가운데 자신만이 새끼손가락 크기의 살덩어리인 공포의 세계로 느껴졌을 것이다.
 그것이 세상에서는 하느님이 만들어놓은 세계라고 하고, 올바른 것이라고 한다. 어떤 이들은 시련이나 원죄라는 단어를 떠올릴 법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그러면 이제 남는 것은 보복, 오로지 자기 자신을 포함한 모든 것에 대한 보복밖에 없다. 그리고 분명히 그가 세상 사람들에게서 배운 가장 모독적이고 야만적인 존재는 악마이고 사탄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범죄자를 위한 변명 같은 말을 하면서 나는 궁금한 것이 있다. 길을 가다 보면 갑자기 건물 위에서 누가 벽돌을 던질 것 같은 공포. 지하철을 타고 있으면 낯모르는 사람이 날붙이를 들고 덤벼들 것 같은 공포. 골목에서 담배를 피울 때 술꾼이 달려들어 주먹을 휘두를 것 같은 공포. 물건을 사러 마트에 갔더니 느닷없이 경찰이 넘어트려 뭐가 뭔지도 알 수 없는 법의 집행을 당하리라는 공포. 길가는 사람들의 눈동자에서 보이는 명백한 증오와 경멸…….
 철저한 아스팔트와 규범의 도시에서 살고 있는 문명화되었다는 사람들은 이런 것들을 느끼지 않는 것일까. 내가 알기로 야만과 야성은 단 한 번도 사라진 적이 없다. 그저 더 교묘하게 숨겨져 우리 작은 의식들을 위협할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귀향하고 싶은 것이다. 차라리 태초의 야성으로 돌아가고 싶다.
 그러니까 바르그는 늑대가 되고 싶었다. 인간에게 개종 당해 나약한 개가 되기 이전의, 산 같이 크고 농장의 암소를 물어 죽이는 늑대 말이다. 틀림없다. 찾아본 바에 의하면 Varg는 스칸디나비아어 시절부터 ‘늑대’라는 뜻이었다니까 말이다.

 

 

 어떤가, 자네. 세상에 있었던 적도 없는 사람의 범행은 예술이지만, 이렇게 되면 자네도 나도 위험하지 않겠나. 응, 담배라도 피우고 가게. 혼자 있으면 무섭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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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림

글/에세이 2021. 1. 21. 22:07 |

미림


 사람은 살다 보면 어떤 불특정한, 어리석거나 미치광이 같은 충동에 빠질 때가 있다. 그것은 무자비하게 잡아당기는 심연과 같은 것이라서 조건을 충족시키지 않으면 개인의 힘으로는 도저히 빠져나올 수가 없다. 그리고 그 심연은 대단한 것일 때도, 겉보기에 그야말로 바보 같은 것일 때도 있다.
 처음 큰댁에 맡겨졌던 14살 때, 내 생활은 그럭저럭 괜찮은 것이었다. 굉장히 애매한 설명이지만 이렇게밖에는 말할 수가 없다. 유감이거나 불쾌한 일은 찾고자 하면 끝도 없이 나온다. 그렇기에 모든 생활은 부정적 의도를 가지지만 않는다면 그럭저럭 괜찮은 것이다. 지금부터 설명할 사건도 이제 생각해보면 처량해서 웃음이 나올 정도지만 당시에는 정말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때는 분명 가을이었을 것이다. 다락방에서 빠져나가지 않는 더위와 습기 때문에 산송장이 되어있지도 않았고, 추워서 모자를 뒤집어쓰고 침낭 안에 들어가 있지도 않았으니 말이다. 봄이었으면 계절 때문에 몸에서 수액처럼 도는 활력으로 도둑질이라도 저질렀을 테니 봄도 아니다. 그날 큰댁은 아주 조용하고 사람은 나밖에 없는 대낮이었다.
 어쩐지 나는 뜬금없이 단것이 먹고 싶었다. 원래 나는 어릴 때부터 단 음식을 그리 즐기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맥락 없는 식욕, 차라리 충동 같은 그것은 몇 년에 한 번씩 일어나는 일이다. 비슷한 일로는 18살 때 평소엔 입에도 대지 않던 포도 주스가 먹고 싶어 새벽에 옆 동네 편의점까지 간 일이 있다.
 아무튼, 나는 정말로 단 음식이 먹고 싶었다. 그러나 당시 아파트 경비 일을 하시던 큰아버지는 원체 먹는 일에 관심이 없는 남자였다. 반찬거리를 사느니 소주를 한 병 사오는 사람으로, 사실 친가 남자들이 전부 이런 식이다. 식사하실 때도 밥상에 밥과 김치, 그리고 통째로 올라온 옥수수 통조림밖에 없다. 큰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엔 어땠을지 모르겠으나 그건 너무 오래된 과거라 전혀 기억이 없다.
 나는 뭐라도 있지 않을까 싶어 다락방에서 내려왔다. 먼저 큰아버지가 쓰시는 찬장을 뒤졌으나 웬 정체불명의 한약재와 라면밖에 발견할 수 없었다. 당수(唐手)와 관련된 책이 몇 권 나왔지만 내가 찾던 것과는 전혀 다른 물건이었다. 그래서 사촌 형이 쓰는 테이블로 향했다. 분명 같이 살았으나 도저히 얼굴을 보기가 힘들었던 사촌 형은 한술 더 뜨는 성격이었다. IT 엔지니어링을 전공하고 취직을 준비하던 형의 테이블엔 음식은커녕 식사 보조제와 영양제만 수북이 쌓여있었다. 사촌 형이란 인간은 지금도 그렇다. 밥 대신 벽돌만 먹어도 영양섭취가 만족 된다면 정말로 벽돌만 씹어먹을 사람이다. 물론 캐나다산 브랜디니 하는 것을 책장에 벽돌과 함께 서너 개 세워두긴 하겠지만 말이다.
 그때 왜 그렇게 단 음식에 미쳐있었을까? 당시의 행동을 생각해보면 금단증상이 온 마약중독자의 행태나 다름없다. 예전에 돈 떨어지고 담배 떨어졌을 때 비슷한 모습을 스스로 발견한 적이 있다. 어떻게든 담뱃값 2천 원을 마련하겠다고 장롱 밑을 30cm 자로 훑고 서랍을 뒤져 쓸모도 없는 달러 지폐를 찾아내고…….
 여하간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냉장고가 있는 부엌이었다. 냉동고부터 뒤지기 시작했다. 얼음조차 없었다. 도대체 몇 년 전부터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얼린 건어물 몇 개가 있었을 뿐이다. 냉장고에는 케첩이니 마요네즈니 하는 것을 제외하면 역시 반찬들, 즉 배추김치와 열무김치, 그리고 빌어먹을 놈의 옥수수 통조림밖에 없었다. 망할 그린 자이언트 옥수수 통조림.
 이쯤 되어 내 머릿속은 발광 비슷한 상태가 되어갔다.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단것을 먹어야겠는데, 도무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내겐 나가서 초콜릿 하나 사 올 돈도 없다. 애당초 그런 돈을 부탁할 아버지와 연락이 되지 않는 상태다. 나는 점점 거칠어지는 손길로 부엌의 찬장, 조미료 선반 따위를 미친 듯이 뒤지기 시작했다. 이런, 이 집구석엔 심지어 설탕조차 없다.
 그때 내 눈에 들어온 것이 미림이었다. 아무도 요리를 하지 않는 집에 미림이나 간장이 왜 있는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러한 의문을 가질 새도 없이 내 정신은 모조리 미림에 빨려 들어갔다. 미림. 맛술. 요리용으로 만들기 위해 당분을 거의 발효시키지 않고 빚은 술. 다음 순간 나는 그것을 병째로 들이키고 있었다.
 그걸로 만족했나 보다. 나는 병의 절반 정도를 해치우고 금단증상이 멎은 뽕쟁이마냥 미약한 절정 같은 것을 느끼며 비척비척 다락방으로 돌아갔다. 방에 깔린 이불 위에 앉아 책상 대신 쓰던 종이상자에서 책을 좀 읽었다. 어쩐지 몸 안에서 은근한 열기와 안정감이 돌았다. 아마 2%도 안 되는 알코올 때문일 것이다. 나는 책을 덮고 이불 위에 엎어졌다. 무슨 책이었는지 확실한 기억은 없지만, 당시의 여러 가지 상황을 조합해보면 모옴의 『달과 6펜스』 아니면 헷세의 『지와 사랑』이었을 것이다. 지난여름 습기 때문에 노란색이 된 상자와 똑같은 색깔을 가진 책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그때 읽던 책이 무엇인지는 전혀 중요한 얘기가 아니고, 나는 그대로 잠들었다. 그 뒤로 누구도 미림이 절반이나 사라졌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애초에 요리를 하는 사람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15년이 지난 지금까지 단것이 먹고 싶어서 발작을 일으키는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미림으로 충분했던 것일까. 아마 그럴 것이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처량하기가 한없어서 스스로 한심스럽다. 왜 그렇게 단 음식이 먹고 싶어서 난리를 피웠던 것일까. 그러나 그런 일도 있는 법이라고 납득하는 수밖에 없다. 달리 무슨 생각을 하겠는가. 지금은 돈이 있어도 단 것을 사 먹는 일이 없지만, 그때는 정말로 그것이 필요했던 것뿐이리라.
 그렇다. 정말로 필요했던 것이리라. 아버지와는 연락할 수 없고 어머니와는 같이 살지 않았던 내 존재가 광기처럼 열망했던 그 무엇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왜 하필 ‘단 음식’이라는 생각지도 않던 엉뚱한 것으로 튀어나왔는지는 모르겠다. 아마 심리학이나 정신역동학 어쩌고 하는 학문은 단서를 찾아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일에 의미가 있을까?
 아마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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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집 1, 2

글/시 2021. 1. 7. 22:11 |

빈 집 1

 

 

눈 오면 밤이 밝아지듯

빈 방은 춥고 고독한 만큼 선명하다

 

아버지의 붉은 얼굴이 소주잔에

체온을 남기는 것이 그리워

14평 광야 헤맬 때는

언제나 모두가 잠든 시간

 

신이 없으면 모독도 못하듯

법이 없으면 흉악해지지 못하듯

 

나의 집은 항상 빈 집.

 

-

 

빈 집 2

 

 

여름 내내 계속되던 배기가스 같은 기침이 멈추고

의사는 마침내 그것이 폐결핵이었다고 설명했다

펜으로 차트를 두들기는 안개 같은 눈은

결핵에 걸리실 나이가 아닌데요, 사소한 의문을 표하며

내게 가족들의 건강을 물었다

아니요, 누구도 재채기 한 번 하지 않습니다

나는 지난 계절 동안 피웠던 담배의 숫자를 셌다

사람들이 하지 말라는 건

다 이유가 있어서 하지 말라는 걸 텐데

 

가을 초입이면 이 거리는 나를 뱉어낸다

사방에 켜켜이 쌓이는 먼지와 재 같은 햇살

병원 앞을 달리던 자동차들은 언덕길 너머

상체가 끊어지고 머플러 소리만 남는다

병원 뒷골목에서 또 한 개비의

담배꽁초와 결별할 때

환자복의 노인들은 휠체어에 실려

빈 통조림 캔에 높은 체념을 쌓고 있다

행인들의 걸음은 병자를 피하고…… 아아,

생물학이여! 나는 들떠 뛰다가

다리가 풀려 세 번 거꾸러질 뻔한다

 

동네 곳곳이 이상하고 무뚝뚝한 모습이라고

지난달, 가족들에게 설명하려고 할 때

젖은 솜이 폐에서 터져 나오는 것 같은 기침에

혀가 치어 주저앉아 버렸다 나는

병에게 감사할 일이었다고, 대로 건너의

상가지구를 보며 다행스러운 마음으로 걷는다

 

등에는 땀방울이 맺히고 오후 4

필터를 씹는 습관은 사람을 신경질적으로 만들기에

스무 살이 되기 전에 버릇을 고쳤다

4층짜리 붉은 벽돌 건물 앞에서 나는

이 건물이 올라가는 계단밖에 없다는 사실을 안다

날개가 찢어진 새들과 광병 걸린 눈동자의

쥐들만 한없이 뛰어 올라가는 꼭대기에

담배 연기에 눌은 노란 벽지도 아버지의 코롱 냄새도 없다

 

그 집에 곰팡이라도 만발해있으면

이토록 내 가슴뼈 속의 무엇이 거치적거리지 않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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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힌 문

글/시 2021. 1. 3. 18:33 |

닫힌 문


빈 방에서 너는 울고 있고
닫힌 문은 이쪽을 보는 일 없고
내 마음에선 알코올 냄새
함께 눈물 흘릴 방법을 찾고 있다

진눈깨비라도 내려라, 술기운이나 돋게, 했더니
더러운 눈이 내려 거리가 꽝꽝 잠겼다

안주머니에 넣은 손에
영수증 다발 잡혀 나오고, 지폐는 한 장
문 앞에서 신발을 신으며 나는
괴물을 만나러 가련다
네 문 앞에서 문을 닫으며, 웃으러 간다

겨울 밤거리
눈 내리는 하늘은 밝게 비웃고
더 많이 취하려고 내 입에선
이빨이 돋고

네 어깨가 슬픔에 무너지던 순간을
이해하고, 비통해하고 싶어
발밑에선 유리 깨지는 소리
단골 술집은 불이 꺼져 있다

그야 세종대왕 한 장으로는
그놈이 내 앞에 앉아주지도 않았겠지만

아아, 사랑하는 네가 여기 있다면
이빨은 소리 내며 웃고
깜깜한 유리문에 이마를 박으며
널 두고 나온 거리는 지옥보다 시려라
심장이 농담한다

술김에 쳐들어갈 친구네 현관도 없고
사랑스러운 네게 마음이 없었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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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개골 한 겹 안팎에서


너는 고함을 지르고 있다
너는 그와 드잡이질을 한다
그리고 너는 앉아서
천공에 모독의 함성을 지른다
저쪽의 너는
얼굴을 부여잡고 공포에 웅크린다
구석에서 너는
아무도 듣지 않는 말을 읊조린다
너는 드러누워
자신의 심장을 겨냥 중이다
그리고 장님인 너는
어디에도 없는 것을 찾아 헤맨다

너희들의 땅에서는
만개한 꽃에 서리가 내리고
담뱃잎과 버섯을 태운 연기가 앞을 가리니

나는 하얀 알약
너희들의 영혼을 빼앗으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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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선 하수구 냄새가 났다


피 대신 치기가 혈관에 흐를 때는
네온사인만 켜지면 달려나갔지
빨간 십자가 지상에 우글대면 달려나갔지
중랑천이 빛나는 걸 보려고 뛰었지

징검다리에 말뚝처럼 서서
물의 근육이 뒤틀리는 소리와
가로등 빛이 반짝이는 수면에 홀려있노라면
세상의 얼굴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지

바보 같아…… 하천은
함성을 지르는 일도 없고
대답해줄 것 같은 반투명한 입술은
조롱하고 비웃는 짓뿐

핏줄에선 치기와 함께
혈액도 빠져나간 듯
하천 한복판 물빛이 비추는 얼굴은
분명 빈혈 환자 같을 터다

사람들은 세련된 스포츠웨어에
이어폰을 꽂고 기계로 심박수를 세고
물이야 흐르든지 말든지

얼굴 찾는 일도 이제는 그저
이끼를 씹는 맛이라
시내 쪽이 빛으로 불타는 도시의 야경에

흐르는 물에 쓴 침을 뱉고,
지갑에 든 돈으로는 담배 아니면 막걸리구나
기적은 없다,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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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2시, 도봉로 130길

글/시 2020. 11. 12. 22:51 |

새벽 2시, 도봉로 130길


불 꺼진 간판 아래
나는 장대처럼 서 있는 거다
목욕탕 굴뚝처럼 연기 뿜으며
네가 있을 자리를 더듬어보는 거다
그러면 구름에 가린 달처럼
머리 위 불 켜진 창문에서
너는 늙은 목소리로 흐느끼는 거다
그리고 너는 캄캄한 연립주택 사이
놀이터 저편에서 비명 지르는 거다
아직도 흐느끼는 너는
골목 너머 다투고 있는 젊은 연인인 거다
맹렬하게 타오르며
네 남자친구에게 따지고 있는 거다
내가 네 여자친구가 아니라 그냥 친구로 보이냐고
가스버너 불꽃같이 쏘아붙이는 거다
그러면 나는 몰래 한 개비를 더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이는 거다

머리 위에서 너는 왜 울지, 하고
희희낙락 연기에 잠기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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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조각들

글/소설 2020. 4. 16. 23:24 |

2020/04/16

 

1. 이것은 픽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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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조각들


 아름다운 음악을 틀어놓으면 되지 않을까? 바보 같긴, 바로 그 아름다운 음악을 못 견뎌서 방금 전 카페에서 일행을 놔두고 도망 나왔잖아. 사내는 방 안에서 장롱에 기대앉은 채 중얼거렸다. 책상 위에 로라제팜이 30알이 넘게 있지만 그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가 쓰고 싶다. 생각해보니 단 한 번도 그런 것을 쓴 일이 없다. 더욱이 모두가 행복한 결말이라면. 그렇게 생각하자 사내의 얼굴이 유리로 만든 가면처럼 굳었다. 갈비뼈가 온통 피부를 뚫고 튀어나와, 장미꽃마냥 활짝 필 것 같은 흉통을 느꼈다. 그럼 더할 나위 없지. 실패한 원고만 가득한 삶이라도 끝나는 것이 삶이다. 시체라도 꽃처럼 핀다면, 사람들은 아름답다고 하겠지.

 벌써 4월인데 말라비틀어진 잎사귀를 잔뜩 움켜쥐고 있는 나무를 보았다. 낙엽을 떨어트리기도 전에 죽었나, 하고 생각했다. 죽기 전에 낙엽을 놔줄 생각은 있었는지 궁금했다. 궁금증이 다른 생각으로 연계되기 전에 얼른 자리를 떴다.

 그래서 도대체 어쩔 것이냐, 라고 친구가 대뜸 물었다. 그런 난폭하게 걱정하는 말투는 생각지도 않던 중이라 사내는 흠칫 놀랐다. 뭐가 말이야, 하고 사내는 평정을 가장하면서 되물었다. 해가 넘어갈 무렵의 전집이었다. 친구가 막걸리와 안주를 샀다.
 “널 나쁘게 말하는 게 아니야. 다만 K도 너에게 돈을 빌려줬다던데.” 친구는 막걸리가 담긴 사발을 들고 마치 교무실의 선생님처럼 말했다. 사내는 친구의 눈을 바로 보면서도 손톱으로 숟가락 손잡이를 마구 긁더니, 그 돈은 A에게 빌렸던 돈을 갚는 데 썼어, 라고 말했다. 친구는 아무 말도 않더니 사발에 든 것을 마셨다. 친구의 눈은 질책을 담고 있지 않았다. 이놈의 혀를 잘라버릴까, 사내는 생각했다. 진실은 말을 하든 안 하든 변하는 것이 없다. 언제나 추하고 가학적이다.
 “네 빚, 얼마 안 되면 그냥 내가 갚아줄까.” 사발을 비우더니 친구가 한 말은 그것이었다. 그 뒤에 <나중에 편집부가 네 글을 사면>이라던가 <예전에 네가 냈던 책이 재판되기라도 하면> 같은 문장들이 따라왔지만, 사내한테는 들리지도 않았다. 손 좀 씻고 오겠다고 갑자기 일어나고선, 사내는 비틀비틀 밖으로 나갔다. 봄이었고 어두웠고 어디선가 윙윙거리는 소리가 났다. 어서 죽어야겠다, 그렇게 생각했다.

 인간의 책무.

 유서를 쓰려고 종이를 꺼냈는데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한 시간인가 두 시간을 백지만 쳐다보았다. 결국 사내는 펜을 들어 이렇게 썼다. 일평생이 수치였는데, 수치스럽지 않게 죽을 방법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습니다. 방도를 모색해보겠습니다. 그리고 그대로 서랍에 넣어버렸다.

 무가치한 원고작업에 시달리다가 밤을 새버린 어느 날, 흔치 않게 아침에 밖으로 나갔다. 산책을 할 요량이었다. 걷다보니 동네 중학교 앞까지 왔다. 적지만 교복을 입고 등교하는 학생들이 있었다. 사내는 선 채로 그들을 멀리서 쳐다보았다. 그들 한 명 한 명의 가족과 친척과 친구들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과거와 미래에 대해서도. 그 뒤에 주머니에 넣어뒀던 신경안정제를 꺼내먹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도둑고양이가 앞을 가로질렀다.

 밥은 잘 먹고 있냐고 어머니가 전화로 물어왔다. 거짓말을 했다. 사실 삼일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냉장고에 음식은 있지만 요새는 물만 마셔도 구역질이 난다. 어머니가 약은 잘 챙겨먹고 있냐고 물어왔다. 이번에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마치 차에 기름을 넣듯이 철저하게 먹고 있다. 병원비가 모자라지는 않냐고 물어왔다. 또 거짓말을 했다. 이젠 도대체 어디서 병원비를 충당해야할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사내는 자신이 왜 가족에게 돈이 더 필요하다는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인지 스스로도 모른다. 어머니가 잘 지내라며 인사를 했다. 전화를 끊고 사내는 한동안 소리 없이 울었다. 아니, 눈물이 나오지 않았으니 운 게 아닐지도 모른다.
 운건지 그냥 고개를 숙이고 있던 건지, 아무튼 그러고 나니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어차피 봄이다. 겨울옷 중 멀쩡해 보이는 것은 전부 전당포에 넘겨버리자. 사내는 집에서 10분 거리에 있던 전당포 간판을 기억해냈다. 그는 장롱에서 그나마 깨끗하고, 값이 나갔던 코트 같은 것들을 꺼냈다. 대부분 오래 전에 가족이 사준 것이었다. 일주일치 약값은 벌 수 있겠지. 혹은 빚의 일부라도 좀 갚을 수 있겠지. 그러면 스스로를 비참하게 여기는 일도 좀 덜해지겠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옷더미를 짊어 매고 전당포로 걸었다.
 전당포에서는 브랜드도 없는 코트 같은 건 받지 않았다.

 “무슨 일이야, 대체.” 사내가 병상에 누워있는 젊은 여자에게 물었다. 대학교 동창으로 그나마 최근까지 연락을 주고받던 여자다. 실의에 빠진 얼굴로 환자복을 입고, 왼쪽 손목에 부자연스러운 붕대를 감고 있다. 사실 무슨 일인지는 이미 알고 있다. 그저 자살시도가 도중에 발각된 정도의 사건인 것이다.
 “이상하지. 아픈 곳도 없는데 병원침대에 눕혀놓다니.” 여자가 자조적으로 말했다. 목소리가 갈라져있다. 이 갈라진 목소리가 함의하는 감정이 어떤 것인지 사내는 잘 파악할 수 없었다.
 “이 이상한 상황은 유희인 거야.” 건조하게 말했다.
 “유희였던 것 같은데. 하다 보니 진심이 됐어.” 여자가 웃는다.
 대답을 듣고 보니 지루하다. 낱낱이 듣지 않아도 낱낱이 추정할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정말로 쉬운 일이구나, 하고 사내는 생각했다. 어쩐지 저 붕대에서 인텔리 냄새가 난다.
 “왼손은 쓸 수 있대?” 이미 살아난 이상 질문은 한정되어있다.
 “아직 몰라. 인대가 다시 붙는다면.”
 유서에 써놨듯이 수치스럽지 않게 죽는 방법을 모색 중이다. 그런데 이 방법은 이미 오래전부터 지양하는 것이다. 처음 정신병원을 들락거렸을 때부터, 대기실에는 항상 왼쪽 손목에 붕대를 감은 젊고 바싹 마른 여자들이 어슬렁거렸다. 어렸던 그는 그녀들이 인간이 아니라 인간모양 얼음세공 같다고 생각했다. 그녀들에게서 살아있는 인간의 느낌을 받을 수 없었다. 굳이 자살하거나 하지 않아도 곧 형체도 없이 녹아 사라질 것 같았다. 사내는 그 얼음세공들에 대한 모든 가치판단을 영원히 보류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마음은 불유쾌했다. 버스에서 자신의 경동맥이 어디 있는지 목과 손목을 더듬어보았다.

 김밥을 한 줄 사서 돌아오는 중이었다. 여전히 뱃속이 들끓고 아무것도 소화시키지 못할 것 같았지만, 이러다가 정말 아사하는 게 아닌가 불안했다. 빌라 앞에서 늙은이 셋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누군가가 주차를 이상하게 했다는 것이었다. 사내와는 아무 상관없는 일이었다. 조금 주춤거리며 그들을 지나쳤다. 오후 세 시에 사지 멀쩡한 청년이 슬리퍼를 끌고 다니는 걸 이상하게 보지는 않을까. 아무 가치도, 의미도 없는 걱정을 했다. 집에서 김밥을 이빨로 씹는데 어쩐지 울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달리지도 않을 열차에 석탄을 채우는 건 낭비고, 또한 슬픈 일이다.
 삼킨 김밥은 전부 토했다.

 근처 공원에 가니 개를 데리고 산책 나온 사람들이 많았다. 저 개들은 주인과 함께여서 기뻐 보이는구나.

 결국 죽게 된다. 봄 햇살이 따사로웠고, 이것이 사내의 책이 아무도 모르게 출간되었다가 아무도 모르게 잊혀 진 뒤 몇 번째 봄이던가. 봄 햇살처럼 아름다운 것을 쓰고 싶다. 태양 같은 것은 싫다. 배경에 비춰지는 옅고 반투명한 햇살 같은 것이 쓰고 싶다. 반짝이고 따스하지만 정말로 그 어떤 질량도 가지지 않는, 사람들이 스스로 가슴을 열어 읽고 난 뒤 조금도 기억하지 못할 책. 나중에서야, 어라, 그런 책이 있었던가, 하고는 굳이 떠올리려 하지도 않을 책.
 유산도 묘비도, 그런 것을 남기기에는 평생을 철지난 날벌레의 심정으로 살아왔다. 날씨가 추워진 것을 느끼고 하수구에서 잠들며, 이제 죽는가, 하지만 다음날 아침 눈을 뜨고, 힘없이 날아다니고 행인들의 방해를 하다가 저녁에 다시 하수구에서, 이번에야말로 죽겠지, 그런데 또 눈을 뜨고, 그것을 반복하다가 어느새 겨울이 되어 동료들은 모두 죽었는데, 죽은 동료들을 시기하며 혼자 비척비척 날아다닌다.
 그래도 결국에는 죽겠지. 그러니 아름다운 사랑이야기가 쓰고 싶은 것이다. 통속 소설이라도 괜찮아. 오히려 사내는 통속 소설가들을 존경하고 싶다.

 할 말 있으면 해. 아니, 아무것도, 할 수 있는 말은 없어.

 자주 지나가는 골목에 어느 목수의 사무실이 있다. 사내가 지나갈 때마다 자신의 사무실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다. 체구가 그렇게 크진 않지만 그을린 피부와 단단한 몸집 때문에 강인하게 보이는 목수다. 서로 전혀 아는 사이는 아니지만, 몇 개월이나 비슷한 시간에 사내는 그 앞을 지나가고, 목수는 그 시간에 담배를 피운다. 그러다보니 왠지는 모르겠으나 마주칠 때마다 가볍게 목례하게 되었고, 나중에는 목수가 인사를 걸어왔다.
 안녕하세요, 이 동네 사시는 모양이죠. 처음으로 인사를 받고 당황하여 입을 뻐끔거렸다. 안녕하세요, 하고 말했으나 즉시 목소리가 너무 작았던 것은 아닐까, 후회했다.
 “매일 이 시간에 지나가시더라고요.” 불붙은 담배를 입에 물더니, 담뱃갑 뚜껑을 열어 내밀면서 말했다. “피우세요?” 사내는 담배를 한 개비 뽑으면서 대답했다. “피우지만, 형편이 안 됩니다.” 그러자 목수는 끄덕거리면서 입술과 이빨로 뭐라 형언하기 힘든 소리를 냈다. 공감인지, 동정인지, 아무튼 그런 것이었다. 목수에게 라이터를 빌려 불을 붙이고 깊게 빨았다. 얼마만인지 기억도 없다. “좋네요.” 혼잣말인지 목수에게 하는 말인지 애매한 말투로 그렇게 말했다.
 “예술 하는 분이시죠?” 목수가 대뜸 그렇게 물었다. 놀랐다. “마주칠 때마다 분명히 그렇다고 생각했어요.” 사내는 당황하고 있었지만 겉보기에는 그저 멍하니 서서 담배를 피우는 것으로만 보였다. 한 박자 늦은 대답을 어렵게 꺼냈다. “아니, 아니요. 예술 같은 것은, 그다지…….” 말꼬리를 흐리며 땅을 본 채, 자신이 나누고 있는 대화가 무슨 의미인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어쩐지 창피스럽고, 아니, 예술가라니, 그것은 사회에서 가장 쓸모없는 사람들의 총칭이라고 생각한다. 인간구실도 못하면서 끊임없이 사람들한테 기생할 명분을 만드는, 그런 것이 예술가라고, 아, 그렇다면 나는 예술가다. 사내는 갑자기 목이 잠기는 것을 느꼈다.
 “담배, 고맙습니다.” 꽁초를 쥔 손을 올리며 힘겹게 말했다. 그 말을 하는 동안은 목수의 눈동자를 쳐다보고자 노력했다. 그리고 사내는 일방적으로 목례를 하고 자리를 벗어났다. 작은 삼거리를 돌아 집으로 가는 골목을 걸으며, 온갖 처참이라고 부를만한 감정들을 애써 무시하고, 그저 담배를 피울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한모금의 연기를 삼킬 때마다 심장이 딱딱하게 닫혀가는 기분이 들어서, 용케 주저앉지 않고 걸을 수 있었다.

 그 선생은 흰 당나귀도 나타샤도 있었잖아. 그러면 됐지. 나타샤가 그 선생을 사랑했잖아. 그러면 더 이상 쓰지 않아도 되는 거야. 아름다운 나타샤가 널 사랑하면, 그러면 넌 펜이고 원고지고, 그런 것은 더러운 것이라고 버릴 수도 있겠지.

 “휴양 온 거라고 생각하고 느긋이 지내.” 버스정류장에서 기다리던 매형은 그렇게 말했다. “아니요. 그렇게 오래 있을 생각은 없습니다.” 사내는 음색도 없이 대답했다. 기분이 언짢은 것은 아니었다. 다만 스스로도 지금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었다. 지저분한 방안에서, 완성한들 동전 한 푼도 되지 않을 원고에 병적으로 집착하던 여느 날, 그저 한없이 고독하고 서러웠던 것이다. 누가 인간의 체온을 갖고 있을까, 누가 나에 대해 보편적인 애정을 갖고 있지? 하고 생각했던 것이다. 사내는 결국 뒤돌아보지도 않고 서서히 멀어졌던 가족에게 생각이 미쳤다. 그러나 부모님은 안 된다. 그들에게 가서 당신들의 아들이 이렇게나 망가졌다는 것을 자랑스레 내보일 수는 없다. 누이와의 사이는 어땠더라. 우리가 좋은 남매였는지 전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사내는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누이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떠올릴 수가 없었다. 그러나 조카가 태어나던 날, 매형이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자신에게 감동스러운 호의를 보인 것은 기억하고 있었다. 그날 사내는 병원에서 나는 소독제 냄새가 왜 이렇게 익숙한 것인지 혼자 혼란스러워하고만 있었는데, 매형은 와줘서 고맙다면서 크게 웃는 얼굴로 어깨를 탕탕 두드려주었다. 아마 5년 전이다. 그 뒤로 누이도 매형도 만난 일이 없다. 그러나 사내는 고장 난 기계가 돌발행동을 하는 것처럼 누이가 아니라 매형에게 전화를 걸었던 것이다. 얼굴 좀 보러가도 될까요, 라고.
 그런데 휴양 온 거라고 생각하라니, 사내가 집안의 문젯거리라는 사실은 진즉 모두가 알고 있는 것이다. 아아, 그렇구나. 오랜만에 만나서 정말로 반갑다고 웃으며 말하는 매형의 이 친절어린 태도에 스스로의 존재가 진절머리 난다. “그러고 보니, 조카가 이제.” “5살이지. 말도 잘 해.” 그렇군요, 하며 중얼거린다. 그것을 잊고 있었다. 조카가, 어린아이가 있다는 것. 그러나 생각을 정리하기도 전에 매형이 아파트 현관문을 열고 있었다. “오늘 저녁은 외식을 하자. 다 같이 맛있는 거라도 먹자고.” 그런 얘기를 하면서.
 두 사람이 현관으로 들어가고, 어린아이가 아빠, 하며 달려 나오고, 그 어린아이가 생면부지의 친척을 보고 경계하고, 아버지가 딸에게 네 외삼촌이야, 하고 소개하고, 외삼촌은 어떤 표정을 지어야할지 몰라서 입꼬리가 뒤틀려있고. 그 일련의 사건들 사이에서 외삼촌은 대체로 자기가 왜 여기에 왔는지 후회하고 있었다.
 간신히 소파에 둘러앉아, 사내는 매형이 건넨 캔맥주를 들고 있다. 병든 위장이 이걸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하고 있다. 조카는 지금 외삼촌에게 굉장히 흥미가 있다. 약간 경계를 하면서도 옆에 앉아 사내를 구석구석 관찰한다. “정말 우리 외삼촌이에요?” “그렇지. 그럴 거야.” 얼버무리듯이 대답하면서 매형에게 누이는 집에 없는지 묻는다. 곧 올 거라고 한다. 이제야 조카를 쳐다보니 과연 예쁘게 생긴 여자아이다. 성장하면서 어떻게 변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미인이 될 것이다. 사내는 이 아이가 가엾다고 생각한다. 아니 물론, 추녀인 것보다야 편한 삶이겠지만, 그런 이야기가 아니다. “머리 예쁘게 묶었네.” 마음에도 없는 소리지만 이런 말을 던지면 아이들이 알아서 떠들기 시작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건요, 엄마가요, 아빠가 별님 머리끈을 사왔는데요, 기타 등등. 사내는 이미 듣지도 않고 절망적인 문장들을 곱씹고 있다. 5년을 살았고, 광야처럼 끝이 안 보이고 난폭한 미래가 있다. 아하, 광야처럼, 이라니. 어리면 급사하지 않는다는 법칙 같은 것도 없지 않은가. 왜인지는 모르지만 사람들은 대처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해서는 상정하지 않는 습성이 있다. 모두 죽는다. 모두들 하나같이 정당한 이유도 없이 죽는다. 이런 젠장. 사내는 자신이 신이 나서 떠드는 5살짜리 조카를 눈앞에 두고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남의 죽음이 문제가 아니다. 자신이 죽어야 한다. 영혼에 독액이 퍼진 상태로 너무 오래 살았다. 진작 죽어야했을 인간이 억지로 살고 있으니 모든 것에서 죽음이 보이는 것이다. 발정난 개가 아무것에나 허리를 흔들 듯이, 보이는 모든 것이 죽음으로 가는 길을 가리킨다.
 기가 죽고 눈물이 날 것 같아서 사내는 괜히 맥주 캔을 땄다. 기포가 좁은 틈새로 뿜어져 나오는 소리가 났다. “아빠도 이거 좋아하는데, 너무 마시면 엄마한테 혼나요.” 아이가 동그란 눈을 하고 말했다. 매형이 소리 내 웃었다. 사내는 따라 웃으려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얼마 뒤 집에 들어온 누이는 남동생의 얼굴을 보자마자 이런 말을 했다. “너, 더 안 좋아졌네.” 사내는 과연 가족뿐이다, 생각하고 웃으며 대꾸했다. “뭘, 언제나 비슷해.”
 호화로운 외식. 거의 먹지 못했다. 매형이 걱정했다. 누이는 남편에게 걱정할 필요 없다고 말했다. 생각보다 조카가 먹성이 좋았다. 위장이 안 좋은 탓인지 몇 잔 만에 술에 취했다. 마음이 우수수 무너질 것 같은 죄책감으로 미소를 유지했다.
 새벽에 슬그머니 일어나 아무도 깨우지 않고 집으로 돌아갔다. 심야 버스 안에는 온통 검은색 연기가 들어찬 것 같았다.

 왜 죽지 않는 거지? 왜?

 영화에서, 어느 백인 배우가 상대 배우에게 데미지드 굿즈(Damaged goods)라고 소리를 질렀다. 상대 배우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 아가씨가 알고 보니 아주 무섭더라고, 까맣고 세련된 가죽 핸드백에 항상 마르크스를 넣고 다니고, 내가 능청스럽게 술이라도 한 잔 할까, 하면 그 하얗고 예쁜 얼굴이 순식간에 살인범을 추궁하는 고결한 검사나리 같아지는 거야, 아무 말도 않지만, 칼날처럼 시퍼런 눈동자가 마치, 당신은 그 술 마시면서 무산계급의 혁명을 위해 무어라도 했나? 라고 쏘아붙이는 것 같다니까.” 친구가 한 손에 맥주잔을 들고 낄낄거리면서 떠들고 있다. 사내는 멍하니 듣고 있다가 묻는다. “잠깐, 그 여자, 전에 말했던 그 여대생이야?” “그래, 아주 인텔리한 아가씨야, 그렇지?” 지금 저급하게 웃으며 자기 엽색 얘기나 하고 있는 이 친구는 놀랍게도 전에 사내의 빚을 대신 갚아주겠다고 말한 그 사람이다. 만날 때마다 자기가 마시고 싶으니 술을 사주곤 하는데, 매번 컨디션에 따라 완전히 다른 성격이 되는 것이 감탄스럽다고 사내는 생각한다. “우리들, 곧 30대 후반이 되는 거 아니었나.” 사내가 중얼중얼 말한다. 사실 말하면서도 별로 지탄할 생각도 없다. 어차피 이 친구는 일주일 뒤면 다른 여자 얘기를 할 것이다. “나이가 무슨 상관이야, 지금 세상에 마르크스주의 여대생이라고. 신기해서라도 손을 댈 수밖에 없지.” “그렇기도 하겠지.” 맥주를 홀짝이면서 무성의하게 대답한다. “이미 뒹굴었지?” 역전에서 만났을 때 친구가 비열한 미소를 띠고 있는 것을 보고 이미 눈치 채고 있었다. “도대체가 무슨 수집취미라도 있는 거야.” 신기한 것을 보면 자기 위장 속에 집어넣어야하는 사람들이 있기도 하다.
 그래도 네가 즐거워 보여 다행이다. 30대가 남자의 전성기라고 어디서 들었던 것 같다. 사내의 전성기도 오는가. 그런데 도대체 무슨 전성기냔 말이다. 방안에서 원고 파지나 구겨 발로 차고, 밤에 삼킬 약이나 한줌 달그락거리는 그런 전성기인가. 그러고 보니 최근 체중이 성인이 된 뒤 최저점을 찍긴 했다. 화장실에서 거울을 보고 이것 봐, 시체가 웃고 있군, 하며 실실거리기도 했다. 여러모로 절정에 다다르긴 했구나, 사내는 혀를 차며 생각했다. 아아, 최소한 40대가 되기 전엔 꼭, 꼭 죽고 말테다. 기도하듯이 읊조렸다. “로맨스는 말이야, 역시 한쪽이 죽어야 해. 함께 죽는다면 더할 나위 없지…….” 사내가 맥주잔을 들여다보며 느릿느릿 말했다. “죽기는. 이 몸으로 즐길 게 얼마나 많은데. 셰익스피어 때부터 작가들은 나쁜 버릇이 있어.” “그 몸이 썩어버리고 만단 말이다……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라면, 반드시 등장인물들이 아름다울 때 끝이 나버려야 하는 거라고…….” 취했나? 위장병을 앓고서부터 주량에 대중이 없어져버렸다. 그러면서도 위악적으로 들이킨다.
 어찌됐건 친구는 사내의 말을 주의 깊게 듣지 않을 것이다. 그를 아는 모든 사람들이 그의 말을 주의 깊게 듣지 않는다. 멸망할 것 같은 어조로 가끔씩 입을 열어 헛소리를 하는 사람, 그렇게 역할이 정해져 있다. 사내의 말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사람은, 기껏해야 병원 의사 정도겠지.
 봄이 가기 전에 끝을 낼까. 청산가리는 어쩐지 야생화의 이름 같다.

 술이다, 술. 취하면 중요한 말이라고는 한 마디도 못하게 되니 좋다. 취중에는 진담이 아니라 허담만 오가는 것이다. 그편이 마음을 다치지 않는다.

 A에게서 전화가 왔다. 대학 동창이다. 얼마 전 사내는 K에게 돈을 빌려 그에게 빌렸던 돈을 갚았다. 아무튼 전화기 너머에서 그가 짤막하게 내뱉었다. “죽었어.” 사내는 조용히 있다가 퍼뜩 되물었다. “뭐? 무슨 말이야?” “그러니까 죽었다고. 간호사가 옮기던 카트를 덮쳐서 주사기를 닥치는 대로 자기 몸에 찔렀대.” 사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할 말이 없었다. 전화기를 들고 막힌 창문만 멍하니 보고 있었다. 그 녀석이 그런 행동력이 있었다니, 놀라운 일이다, 이런 생각이나 하고 있었다. “갈 거냐?” A가 무덤덤하게 물었다. “어딜?” 사내는 계속 되묻기만 하는 자신이 멍청하게 느껴졌다. “장례식 말이야. 듣자하니 부모는 슬프기보다 열이 머리에 뻗쳐서, 그런 불효자식은 딸도 아니라고 장례를 안 연다는 얘기도 있었다는 모양이다만.” “아, 모르겠는데, 몰라.” 이상한 대화에 계속 침묵이 낀다. “……나중에 정해지면 장례식 일정이랑 주소는 보내 놓을게.” 혹시 A는 사내가 슬퍼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그냥 두어도 별 상관은 없다. 전화가 끊겼다.
 사건을 진지하게 생각하기가 쉽지 않다. 도무지 그 녀석이 인생에 엄청난 비애가 있어, 마지막 결단을 내린 것이라고는 생각이 되질 않는 것이다. 이것도 그저 대학시절부터 계속 반복되어왔던 퍼포먼스의 일환인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래서 사내는 전화를 끊고도 여전히 어리둥절한 상태였다.
 A는 사내가 대학재학 당시 함께 몰려다니던 무리의 중심 같은 인물이었다. 다른 학과였지만 동아리인지 뭔지 기억도 나지 않는 경로를 통해 자연스럽게 어울렸고, 어느새 무슨 술자리라도 생기면 가장 많이 전화를 걸어대는 사람이 되었다. 아마 그래서 이번에도 제일 먼저 정보를 접했고 무슨 의무감으로 전화를 돌려대는 것이겠지. 여하간 사내는 무표정으로 전화기 겉면을 쓰다듬고 있었다. 간호사가 끌고 다니는 카트에 약물이 든 주사기가 있을 리가 없을 텐데. 혈관에 공기라도 주사했나. 괴상한 일이다. 그런데 괴상하지 않을 이유도 없다. 죽으려고 하면 무슨 방법으로든 죽겠지. 시간만 있다면 카테터로도 목을 매달았을 것이다.
 “꽃이라도 사둘까.” 사내가 마치 자기가 들어야만 한다는 듯이 말했다. 그러나 즉시 부정한다. “아니야, 바보 같은 짓이다.” 결국 흉측하게 시들고 말 것을 왜 돈 주고 산단 말인가. 받는 입장에서도 처치곤란이다.
 이로써 사내의 생활에서 잡담이나마 나눌 수 있는 여자의 수는 제로가 되었다.
 그러고 보니 A는 재작년엔가 결혼을 했지.

 완성이다. 내 평생의 역작이다. 한 30번째 평생의 역작인 것 같다. 가슴이 기쁘고 들떠서 지금이라면 옥상에서 소리 내 웃으며 뛰어내릴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그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는 언제 쓸 수 있게 될까. 그걸 쓰지 못하고 죽으면 영 멋이 없는데. 아니, 어찌되든 멋은 없겠지. 멋은 계속 살아가는 사람들만 쓰는 말이다.

 “재미가 없어요.” 편집장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 사람은 처음 사내가 소설책을 낼 때 일반 편집자로 담당되었었는데, 어느새 부서 편집장이 되었다. “재미가 없고, 너무 난해하고 음습해요. 아무도 이런 건 돈 내고 보지 않아요.” 사내는 표정도 변하지 않고 편집장을 쳐다보고 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기 이전에, 사실 아무 생각도 없다. “애당초 이거 소설입니까, 아니면 수필입니까, 그도 아니면 무슨 언어유희 같은 겁니까.” 분명히 악의가 담겨서 하는 말은 아니다. 그 정도는 분간할 수 있다. 그런데 사내는 대답할 수가 없는 것이다. 할 말도 없고, 하도록 된 말도 없다. “저기.” 사내가 가까스로 입을 뗀다.
 “오천 원만 빌려주시겠습니까. 돌아갈 차비가 없습니다.”

 외로움. 외로움. 외로움. 그러나 더 외로워할 기력도 없다.

 사내가 방에 틀어박혀 뭔가를 쓴다. 가끔씩 만취한 사람처럼 혀를 내밀며 헛구역질을 한다. 난폭하게 잉크를 새기고 있는 종이는 다름 아닌, 예전에 썼던 유서의 뒷면이다. 책상과 마주보고 있는 면에는 여전히 수치가 어쩌고, 방도를 모색해보겠다는 문장이 변명처럼 적혀있다. 깨끗한 면에 뭔가를 마구 쓰고 있다.
 옛 시절에는 여인들이 낙태를 하기 위해 간장을 통째로 퍼마시곤 했다는 기록을 보았습니다. 무서운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그 짠맛에 몸부림치며 태아는 차라리 게으른 노인처럼 안도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아무래도 어머니의 품에서 나오게 되면 자, 이것이 네 이름이고, 이것은 네 책임이고, 이것은 네 운명이다, 하며 짊어질 십자가가 너무 많은 것입니다. 너는 인간이니까, 라는 말에서 벗어날 수가 없게 되어버립니다. 인간이니까, 인간이니까 인간이 되려고 발버둥치는 수밖에 없습니다. 중략. 아름다운 사랑이야기가 쓰고 싶었다는 꿈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 동경이었을까요. 극본이 될 만큼 아름다운 연인은 필시 손을 마주잡고 죽어야한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습니다만, 솔직히 다른 결말이더라도 그 극본의 위대함에 손상이 가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작가가 연인을 죽이든, 연인에게 모든 시선을 집중시키고 그 세상 자체를 페이드아웃 하든, 그다지 다를 것도 없습니다. 사랑이라는 꽃이 활짝 피었을 때, 나중에 반드시 시들어 추악하게 되리라는 운명을 가위로 잘라낸다는 점에서 동일합니다. 역시 온 세상이 황금이 된 것 같은 아름다운 순간만을 고정시키고 싶은 것입니다. 이런, 셰익스피어 이후로 늘 작가들은 나쁜 버릇이 있다는 친구의 말이 옳은 것 같기도 합니다.
 구구절절…….
 이건 유서인가? 도대체가 유서인지, 수기인지, 그냥 언어유희인지. 사내는 새로운 종이를 세 장이나 더 꺼내어 정체불명의 희론 같은 것을 완성했다. 그리고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다는 불쾌한 기분을 느꼈다. 아무도 읽지 말기를, 기도하며 그 종이뭉치를 원래 있던 서랍에 넣었다.

 만일 늑대였다면 초원을 달리는 게 억울했을 것이고, 만일 새였다면 하늘을 나는 것이 서러웠을 것이다. 그런 기분으로 생명을 얻었다.

 4월. 아직 봄이다. 창문을 막고 있는 신문지를 다 뜯어내고 활짝 열었다. 이제 차갑지는 않지만 조금 서늘한 바람이 분다. 사내는 장롱을 기어 올라가 높은 곳에 있는 벽장을 열었다. 곰팡이냄새가 자욱한 안쪽에서 설탕이 담긴 병 같은 것을 꺼냈다. 다시 장롱을 기어 내려가 부엌으로 갔다. 유리컵에 수돗물을 담았다. 그리고 설탕 같은 것을 병에서 듬뿍 퍼내어 물에 넣고, 숟가락으로 계속 저으며 녹였다. 잘 녹지 않았다. 아무리 저어도 알갱이가 남아서 사내는 쓸쓸한 기분이 되었다. 시간은 밤이다.
 담배가 피우고 싶었다.
 담배가 있다면 좋을 텐데.

 자, 집에 가자.


끝.

Posted by Lim_
:

동생의 기억

글/소설 2020. 2. 4. 19:53 |

동생의 기억


 형 주변에 항상 신기한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을 기억한다. 늘 악기 케이스를 등에 매고 다니는 사람무리라든가, 볼 때 마다 줄담배를 물고 있는 더벅머리를 한 남자들이라든가 말이다. 형과 나는 십년을 훌쩍 넘기는 나이차가 있어서, 형은 동생이라기보다 조카쯤 되는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기분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 형이 나를 같은 핏줄로서 아낀다는 것은 당시의 어렸던 나도 느낄 수 있었다. 당시 형의 직업이 도대체 무엇이었는지는 지금도 알 수 없다. 일정하게 출퇴근을 하는 것도 아니었고 한량처럼 부모님에게 돈을 꾸지도 않았다. 다만 일주일에 몇 번인가 집에 돌아오지 않는 밤이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으레 대낮에 집 앞의 평상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당시 여덟 살이나 됐을까 싶은 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뒷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낸다. 지폐 몇 장을 내밀면서, 담배 하나랑 너 먹을 과자 사와라, 하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내 어린 시절의 군것질 값은 전부 아버지나 어머니가 아닌 형이 내주었다.
 이따금, 주로 여름이었던 것 같은데, 산보하기 좋은 저녁이면 형은 나를 데리고 신정동에서 크게 원을 그리며 돌아다녔다. 노을 때문에 벽돌담들의 그림자가 길어진 골목에서 왼손은 호주머니에 넣고, 언제나처럼 담배를 피우며 형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지 알 수 없는 그 얼굴로 느릿느릿 걸었다. 너무 느려서 내가 답답할 지경이었다. 그러나 골목을 걷다보면 꼭 어느 집의 지하실로 들어가는데, 지하실에는 조악한 드럼세트나 낡은 앰프 같은 것들 주변에 때가 탄 매트리스가 깔려있다. 형의 친구들 중 몇몇은 저녁마다 그곳에 둘러앉아, 도대체 연주하는 걸 본 적도 없는 통기타들을 벽에 세워두고 막사발에 소주를 마시며 늘 뭔가에 대한 논쟁을 펼치는 것이다. 나와 형이 지하실에 들어가면 다들 반기곤 했다. 그들은 내 친척이라도 된 것처럼 나를 예뻐했는데, 내가 그 아저씨뻘의 형들과 장난을 치는 사이 형은 술자리에 끼어 꼭 두어 잔씩만 마시면서 친구들과 무슨 얘기인가를 했다. 무슨 얘기였는지는 들은 바가 없다. 그저 어린 마음에 우리 형이니까 뭐든 간에 중요한 얘기겠지, 했을 뿐이다.
 그 뒤에는 지하실을 나와 또 걷고, 공원이나 공터에서 다른 친구무리들과 비슷한 일을 반복한다. 형은 신정동 어딜 가도 항상 친구가 있었다. 어딜 가나 친구들이 형을 반기고, 나는 그런 형의 어린 동생이라는 이유만으로 귀여움을 샀다. 산보는 언제나 집근처의 대포집에서 끝났다. 마지막으로 들르는 그 대포집에는 형의 친구가 아니라 아버지가 있었고, 얼큰히 취한 아버지가, 막내가 왔구나, 이제 집으로 갈까, 하면 나는 아버지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며 아버지가 마신 것을 계산하는 형을 뒤돌아봤다.
 출근도 하지 않고 매일 평상 위에서 담배만 피우며 앉아있던 형이 도대체 무슨 수로 항상 푼돈이나마 있었는지, 어렴풋이 짐작이 가는 바가 있다. 그러나 직장을 짐작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형이 무얼 하던 사람이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당시에도 여기저기 떨어져있던 힌트들을, 이제 어른이 되어서야 짜맞춰보는 것이다. 내가 열 살이 되던 날, 헌병이 들이닥쳐 형을 데려갔고, 그 뒤로 동네에서 형뿐만이 아니라 형의 친구 몇 명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 전날 밤에는 드물게 형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거실의 수화기 너머에서 뭐라고 하는지는 알 방도가 없으나, 잠결에 열린 문틈으로 나는 형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 사상전파라고, 편집 담당이 가장 죄가 크니까, 나만 도망가지 않으면 되겠지.
 그 뒤로 형을 본 일은 없다. 형을 잡아간 헌병들은 그런 사람이 있었다는 것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니 무슨 죄목으로 잡아갔는지도 알 수가 없다.
 그리고 수년 뒤에 뭣 때문에 언론이 통제되니 신문이 검열되었다느니 큰일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형은 여전히 존재한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 사람은 나의 짧았던 10년 속에만, 말이 없고 발걸음이 조용하던, 나이 많은 형으로 기억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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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생각하며

글/시 2020. 1. 29. 02:49 |

과거를 생각하며


밤거리 그림자로 웅성거리고
생명의 기척은 없다, 나는
앙상한 몸을 비척대며
위악스럽게 걷고

그러니까 종말을 망상하는 것이다
가로수의 그림자에도 놀라며
내가 인간에게 저질렀던, 저지를 수
있었던 수치들에 놀라는 것이다

사람답게 살지 못했던
죄스럽기만 했던
패악뿐인 삶이었던
그런 것들을 너무 일찍 알아차린 것이다

연신 줄담배를 물어도 풀릴 리 없는
죄악의 실타래는 내 숨까지 옭아매
앞으로 한 발짝 떼는 일조차
더 깊은 죄악일 듯 싶어 공포스러운 것이다

그래서, 이 멸망한 밤에
종말이 오지는 않으려나, 어린아이 같은
죄를 뒤집어쓴 어린아이 같은
꿈꿀 수도 없는 꿈을 꾸는 것이다

그러나 또 해가 뜨고
그때까지는, 그림자들에게 사죄하고
또 수레바퀴는 돌아가고
갇힌 나는 창문을 두려워하며

햇빛 찬란한 겨울에 죽음을 그려보고
거기에 꽃이나 피지는 않을까 생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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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퍼하는 나는 슬픔 자체가 슬픈 존재인가


 최씨는 쉽게 슬퍼한다. 오늘 아침에는 교복 차림의 소년소녀들을 보고 슬퍼했다. 그들이 발랄했기 때문에, 그리고 곧 그들의 젊음이 탁하게 흩어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젊음이라는 것의 덧없음에 대해 사유해보기도 전에 가로수를 보고 슬퍼했다. 그것이 도시계획에 의해 규칙적인 거리를 두고 일정하게 서있기 때문이었다. 인위성과 무위자연에 대해 저울질을 해보기도 전에 하늘에 구름이 너무 많아서 슬퍼했다. 이쯤 되니 최씨는 자신이 왜 슬퍼하는지도 알 수가 없어서 슬펐다. 그러나 딱히 논증할 것도 없었다. 슬픔은 기억나지도 않는 아주 오래 전부터 최씨의 뇌에 총알파편처럼 박혀있었고, 딱히 해결된 일도 없었다.
 그러나 최씨는 누군가에게 자신의 슬픔에 대해 말한 일이 없다. 애당초 서술이 불가능하다. 운명이려니 싶어서 괴로운 것이었다. 자신의 운명을 타인에게 해설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세상과 존재에 대한 엄청난 통찰이 있으면 모를까, 애초에 그런 통찰력이 있다면 슬프지도 않지 않을까. 이런 슬픔은 일종의 장애가 아닌가 싶었다. 도무지 해결되지 않는 정신의 장애 같은 것 말이다.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날씨가 추웠다. 바람이 칼날처럼 매섭게 불었다. 물론 어쩐지 슬픈 심상이 되었다. 겨울의 초입은 세계의 냄새 자체가 슬픈 뉘앙스를 풍긴다. 생명이 절멸한 것 같은 냄새가 난다. 그런데 최씨는 그런 발상으로 들어가자마자, 그렇다면 여름의 냄새는 슬프지 않은가, 단연 슬프다. 그 생명이 부풀어 터져 오르다가 부패하는 냄새도 슬프다. 하지만 겨울의 이 무기물로 공기가 가득 찬 것 같은 냄새도 슬프다. 그렇게 중얼거리며 슬퍼했다. 행성 자체가 슬픔으로 가득 찬 것 같다고 조용히 슬퍼했다.
 골목으로 들어서 최씨는 담배를 물었다. 담배를 피울 때는 슬픔이 조금 옅어지는 것 같았다. 폐에 독을 밀어 넣을 때는 슬프지 않다니, 그렇다면 생존자체가 슬픈 것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자 자신의 삶의 구조가 슬픈 것 같았다. 그러나 별 도리가 없었고, 너무나 오래된, 망각되지 않는 심상이고, 최씨는 결국 담배를 피우며 어두운 골목으로 터덜터덜 들어갔다.
 그런데 그날은 어쩐지 담배가 오래 타는 날이었다. 집의 현관 밖에 서서 여전히 남은 담배를 태우고 있자니 온갖 쓰잘데 없는 망상이 피어올랐다. 생각해보면 내 연배의 동료들은 이미 다들 결혼을 하고 아이도 있거나 하다. 나는 평생을 혼자 살아왔구나. 그것도 늘상 슬퍼하기만 하면서. 빨갛게 타는 불똥이 시야에서, 숨을 들이쉴 때마다 더욱 빨갛게 탔다. 집에 들어가도 물론 혼자다. 혼자 살기에 최적화된 공간에서 나는 혼자 슬퍼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벽지가 하얗다면 흰색에 대해 슬퍼하면서. 왜 흰색 벽지가 만들어지고, 사람들은 그것을 소비하는가에 대해 슬퍼하면서 말이다. 최씨는 담배를 뻐끔대며 시야가 어그러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눈물이 난 것도 뭣도 아니었고, 분명한 것은 최씨의 정신 자체가 슬픔으로 구부러지는 것이었다. 최씨는 가족이라는 개념에 대한 생각을 멈추지 않았다. 아버지는 얼마 전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늙은 채로 홀로 살고 있다. 그런데 그때 깨달은 것은,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느꼈던 슬픔이 하늘이 파란색이어서 느꼈던 슬픔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었다. 어머니가 노인이 된 채 혼자 사는 현실도, 들고양이가 새벽에 울어서 느꼈던 슬픔과 다를 것 없었다. 담배는 이미 다 탔다. 최씨는 교묘한 어지러움을 느꼈다. 평생 슬퍼하기만 하면서 살아왔으나, 어쩌면 말이다, 나는 사실 살며 단 한 번도 제대로 슬퍼한 적이 없는 것은 아닐까. 그럼 나의 삶을 이토록 지배해왔던 심상은 무엇이었을까.
 다 탄 꽁초를 입에 멍하니 문 채 최씨는 한참을 현관 앞에 서있었다. 집으로 들어갈 마음도 어딘가로 뒷걸음질 칠 마음도 없었다. 어느 방향으로 몸을 움직여야할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최씨는 한참을 서있었다.
 계절은 여전히 겨울의 초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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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작은 마음은 어디에 있나


 준영은 바닥에 누워 있었다. 그는 계속 반복해서 네팔에서 사온 보리수 염주의 알을 세고 있었다. 몇 번을 세어도 107개나 109개가 될 뿐 도무지 108개라는 답이 나오질 않았다. 그 잡상인이 만들 때 108개를 정확히 넣지 않은 것은 아닐까, 그런 의문이 들면서도, 달리 할 일도 없어서 계속 세고 있었다. 보일러를 틀어놓은 방바닥은 따뜻했다.
 이대로 죽게 되는가, 그런 생각을 했다. 백수로 지낸 지 5년 째.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살아온 지 5년 째. 5년 내내 되풀이한 문장은 다자이 오사무의 그 유명한 <수치스러운 삶을 살아왔습니다>였다. 무엇이 그리 수치스러웠는지 명확하게 기억나는 바는 없지만, 여하간 수치스러웠다. 단 한 푼도 벌지 않고 살면서도 겨울엔 바닥에 보일러가 돌아간다는 것이 수치스러웠다. 가끔 친구들이 부르면 무상으로 술을 얻어 마시는 것이 수치스러웠고, 취하면 기분이 드높아져 다음날 아침이면 후회할 짓을 저지르는 것도 수치스러웠다. 준영은 방바닥에서 공연히 발을 까딱거리며 48개째의 염주 알을 세고 있었다. 5년 전 네팔여행에서 사온 물건이다. 그때는 혼자가 아니었지, 그런 생각이 들었는데, 그것 또한 곧바로 고통이 될 생각이라 후회스러웠다.
 지금은 어떻게든 이름을 기억하지 않으려 애를 쓰는 대상이 있다. 5년 전에 준영의 인생에서 떨어져나간 사람이다. 그녀가 준영의 마지막 연인이었다. 짧은 듯 길었던 2년간의 연애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논하는 것도 지금에 와서는 쓸모도 없는 일이다. 다만 그때의 일은 수치스러울 일이 없었고 준영은 항상 헛헛했던 28년간의 삶도 그녀를 만나려고 있었던 삶이었거니 했다. 헛헛했던 삶. 참으로 얻을 것도 없는 세상에서의 삶이었지. 애당초 이 세상에서 얻긴 뭘 얻는단 말인가.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말이다, 금강석을 찾겠다고 바다를 체로 뜨는 일 같은 것이 세상살이다. 그런데 이런 생각은 좀 제쳐두고, 그 2년간은 정말로 세상이 온통 황금이 되어 빛나는 것 같았지. 수치나 후회도 전부 철폐되어 부서지곤 했지.
 네팔에 갔던 일을 지금까지도 도무지 가치판단 할 도리가 없다. 애당초 그녀를 만났던 것이 사찰에서였고, 28세의 준영은 출판사에서 도서 디자인을 하는 일을 하고 있었더랬다. 그녀는 미대를 나와 탱화 공부를 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무어 눈이 맞은 거야 온갖 이유나 인연이 있었겠지. 만날만 했으니 만난 것이었을 터다. 그런데 사랑이란 것에 빠졌던 일은, 그것이 도대체가 그럴듯한 일이었는지 알 수가 없다. 여하간 보석의 반짝임 같은 2년이기는 했다만은. 결론은 말이다, 그녀는 네팔의 산사들을 함께 돌아다니다가 불연이 닿았는지 법과 사랑에 빠졌는지, 준영은 한국으로 돌아올 때는 오롯이 혼자였다.
 연인이 사찰에서 바리깡으로 머리를 미는 것은 도무지 보지 못하겠고, 준영은 혼자 돌아왔다. 그리고 잃을 것은 전부 잃는 것이다. 애당초 잃지 않을 수 있는 것이 어디에 있겠는가. 세상이 황금빛으로 빛나는 것을 멈추자 회색과 잿빛의 먹먹한 광경이 되돌아왔다. 도시의 구석에서 그 광경을 마음에 새기는 와중에 직업도 잃고 무엇이고 잃어버렸다. 정확히 무얼 잃어버렸는지, 언어로 나열하기는 힘든 일인데 무엇이고 다 잃어버렸다. 흘러온 삶은 그야말로 수치가 되어 비수처럼 꽂히는 것이다. 그러나 절벽에서 몸을 날릴 만큼 대단한 좌절까지도 아니었다. 그저 의문스러운 것은, 5년 전인지 35년 전인지 어디론가 가버린 것 같은, 나의 작은 마음은 어디에 있나.
 그걸 찾으면 남은 삶에 거리낌이 없을 터인데.
 몇 백번을 더 세어야 이 염주 알은 108개가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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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이 얼어붙어서

글/시 2019. 12. 28. 14:13 |

태양이 얼어붙어서

 

 

사람이 불행에 잡아먹혀서

     존재는 슬픔밖에 피우지 못하고

겨울하늘이 연탄재 색깔이어서

     폐부는 잿빛으로 썩어가고

 

믿었던 사랑이 기만이어서

     절벽 끝에서 다리를 내밀기도 하고

여지도 없이 희망이 죽어가서

     실링 째 떨어지는 올가미를 바라보고

 

그러니 가만히 앉아있는 것이다

생각하자면, 얼마나 많은 불행인지

행성 구석구석 들어찬 불행인지

담배를 뻐끔대며 사람을 생각하는 것이다

 

혈액이 분노로 들끓던 시기도 가고

단도로 자기 심장 파내던 시기도 가는 것이다

단지 조용히 앉아 생각하노라면

배신하고 배신당하고, 존재의 무서운 굴레인 것이다

 

아무 정도 없이 피었다 말라가는

그런 나무처럼 되고 싶다고 되뇌일 때

나 혼자 나무가 되어 피었다 말라도

스쳐지나가는 사람들 슬픔은 보이는 것이다

 

사람들, 사람들……

고통의 바다에서 솟아올라 허우적대다

결국엔 익사해가는 사람들을 보다가

스스로 사랑도 없었던 일에 자책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앉아 있다가

구원은 어디서 오나, 그러나 결코 밖에서 오진

않는 것이다, 밖에서 올 리가 없는 것이다

분명히 그런 것이다

 

태양이 얼어붙어서

     빙하기에 불을 때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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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안개

글/시 2019. 12. 25. 14:31 |

겨울안개


밤이 겨울안개로 가득 차면
나는 희희낙락하여 오로지
해가 결코 뜨지 않을 줄로만 안다

시각은 쓸모가 없고, 더욱이
내딛는 발도 절벽 끄트머리를 걷는 듯
내 오감은 불확실의 포로가 된다

그런데 왜 이리도 기쁜 것인지
어디선가 위협적으로 산짐승 울고
이런 밤에, 나는 밟혀 죽은 독사를 기억한다

어둠과 안개가 먹어치운 다리를
쭉쭉 내뻗고, 한 발짝만 잘못 딛었다간
그래, 그 독사처럼 길을 잃고
단숨에 죽어버릴 것이다

보이는 것은 없고, 안개 위엔 먹구름
나는 무슨 이유에선지 희희낙락한다
소리도 모조리 죽었어, 나는 이제
혼돈과 비실재 속에서 방황한다

내가 볼 수 없을 때 세계가 어떻게
요동치고 진동하며 천변만화하는지
보이지 않기 때문에 결코 알 도리는 없다
그러므로 나는 멍청한 다리를 쭉 뻗고!

땅 밑으로의 추락사를 바라는가?
아니면 차라리 내 영혼이 추락사할 것인가?
아니야, 물론 그렇기도 하지만
사실 나는 세계가 형체 없어지는 일에 기쁜 것이다

고로 나도 형체 따위는 없고
겨울안개 속에서 내 몸뚱어리는
안의비설신의도 안개에 두들겨 맞아 죽었다
그러므로, 그런 고로

축축한 어둠 속에서 비실재하는 다리만 쭉쭉 뻗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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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막 같은 희망

글/시 2019. 12. 20. 22:02 |

암막 같은 희망


새까만 하늘의 별들은
빛나는지 빛나지 않는지
고라니들은 모습 숨긴 채 뛰어다니고
인간의 힘은 언제나 불행이었다

자신의 불행이든 타인의 불행이든
사람은 비극에서야 어지러이
빛을 품는데
그러나 도대체 어째서?

저 멀리 도시에서는 분명
오늘밤도 그 비극에 취한 걸음들이
길가에 떨어진 동전을 줍듯
삶의 파편들을 주워 모으고 있겠지

그러나 그것은 몹시도 슬프고
나 역시 그 속에 있었고
어둠은 물러날 줄을 모르고
모두가 그 안에서 맴돌고

그러다가도 너의 창백한 팔을 보고
나는 산길을 올랐던 것이다
그러면 너는 온화한 웃음을 보이고
나는 아무도 모르게 담배를 피웠던 것이다

그러나 동전 줍듯이 모아 만든 빛들도
시간에 따라 흩어져버리고 마는 것이다
절벽 위에서 죽음을 결심했던 마음도
한낱 망념으로 화해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지금 나는 그때 그 산에 있지 않고
여전히 수풀 속에서 연기를 뿜지만
너와 함께 있지는 않은 것이다
너의 창백한 팔도 어디론가, 가버렸고

불행을 곱씹다가 홀연히
빛을 찾아 나서야겠다고
먹먹한 마음으로, 인간마저 떨치려고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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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봉오리 속의 지혜

글/시 2019. 12. 17. 22:37 |

꽃봉오리 속의 지혜


꽃봉오리 안에 쓰러지듯이
이 꽃의 색깔을 나는 모르는구나
이곳은 너무 어둡고 답답한 동시에
사실은 평생을 여기서 살아왔다

꽃봉오리 안에도 꽃들은 있어
가지각색으로 빛나는 욕망들
그것의 본질도 모르고
하나씩 따 내 입안에 넣는다

이런 것들은 모조리 후회로 밖에는
남지 않아……

한때 상습 자살미수자가
<부끄러운 생을 살아왔습니다>라고, 그렇게
그렇게 말했지, 그 자는 분명
자신이 수치에 발버둥 칠 것을 알고도 꽃을 먹었으리

필요한 것은 분명히 지혜다
꽃을 먹든, 먹지 않든……중요한 것은
후회하지 않는 지혜인 것이다
당연하게도 지금, 꽃을 먹기를 멈춘 나에게도

꽃의 본질을 알고, 먹거나 먹지 않고
그렇다면 그것은 위대함으로 이어지겠지
후회하거나 수치스러워하는 것은
실상 다 무지의 결과이니

그렇다면 그때, 어느 때가 됐든, 어떤 색깔로 피든
내가 쓰러져있는 꽃봉오리도 산산조각으로 피어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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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시 2019. 12. 14. 23:09 |




어리석단 말이다, 인간은, 나는……

평생을 희론으로 살아온 나는
어디로 가려고 했나, 어디로?
한 주먹의 이 알약들은
어디로 가느냔 말이다, 어디로

해가 뜨지도 않는 땅이다
그러나 태양도 달도 물리치고
패배하는 일 없이, 오로지 나는
영혼의 수액만을 찾아 마시려고 했다

오로지 온화하게 웃으며
화내지 않고 슬퍼하지 않고
내 가죽을 전부 벗기는 일이 있어도
결코 즐거워하는 일도 없이, 그러나

어리석단 말이다, 인간은, 나는

뇌수에 갇힌 내 무언가
나침반도 없이 절규하고, 통곡하고
무언가 날 마주하고 있어, 무언가
아주 새까만 장막 같은 것

빛은 어디에서 오는가? 이 모든
내 환영들을 송두리째 파괴할
그런 빛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리고
죽음조차 기만이 되었다

가지고, 탐하고, 사랑하고
그런 것은 이제 됐다, 이 겨울
아름다움조차 무언가를 방해하고
나는 비존재에의 열망에 허덕이고

空으로, 空으로, 무조건
마치 돌진하는 창병처럼, 단숨에!
그러나 무언가가 날카롭게 조소하고 있어
두개골 속에서, 감옥의 간수처럼

왜 감각하지?……

어리석단 말이다, 나는,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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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식의 땅

글/시 2019. 12. 11. 12:43 |

질식의 땅


대기에 스모그 끼어서
창밖은 하얗게 어둡습니다
어디선가 중기의 고함소리 들려오고
뻐끔뻐끔 담배연기만 두개골에 들어찹니다

창밖으로 보이는 것은
마찬가지로 창 닫힌 건물
여기는 어디인가 의문할 것도 없이
담뱃재 떨어지는 자리에 나 있습니다

세상이 스모그 먹어서
낮인지 밤인지, 아니 그런 것이
중요하기나 한 땅인가
달 대신 가로등 뜨는 골목에

눈도 내리지 않는 이상한 겨울
갈퀴 같은 바람은 하얀 먼지 긁어내고
나는 그것을 높이서 내려다보다가
창백한 하늘에 어찔하고, 난간에 스러집니다

―알제리, 알제리!……―
그만 둬, 나는,
가본 적도 없는 땅에 환상을 심지는 않을 터다

녹은 황금 같은 햇살도
드넓은 사막 파랗게 얼려버리는 달도
이미 내 머릿속에서 한 번의 생각으로 떴다가 졌다

난간을 기어오르며 입에는 담배 물고
뭐어야, 이미 죽은 생선과 같다
기름때 낀 창문 너머는 지독히 말세로다

그러나 그러나 멈출 수도 없지요
타는 담배는 끝까지 다 타야하고, 삶도
담뱃잎 싸놓은 육신처럼 다 타버려야 하고
세상이 어떤 꼴이든……

하하! 나는 위악으로 웃고는
해도 달도 없는 땅에서 깡통 찾으러 가는데

세상이 스모그 듬뿍 먹어서
행성이 도는 일조차 잊어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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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야성

글/시 2019. 12. 10. 20:09 |

불야성


산에서 내려온 도시의 밤은
그야말로 불야성, 밤이 찾아오질 않는구나

명성이니 자본이니 그런 것은
뒤집히는 낙엽 같아 논할 것도 없으나
명성에 대해서니 자본에 대해서니
더욱이 모습만 바꾸는 꿈이어 나는 슬픈 마음이다

전집에서 막걸리를 마시며
취중에 토하는 얘기는 불법에 대한 희론이다

세상이라는 착각에서 떠받들 것
가지게 될 것 버리게 될 것
모두 한번 생각하고 잊히게 되는 것이니
거품 덩어리 속에서 금강석을 찾는가

―나는 취하여 세상을 보았다
기쁨을 찾느라 발광하는 사람들은
어둠 내리지 않는 밤에서 바삐 달린다

그만, 그만! 그런 괴로움은
어리석음은 무지는 치워둬
불붙은 눈으로 뛰는 사람들을 보고 나는
감정도 없는 슬픔에 젖는다

이 도시는 도대체 누가 지었는지
빛은 사방에서, 그러나 깨끗할 것도 없는 빛
산에서 보았던 맑은 달은 파괴적이었다
사방팔방의 허상을 온통 부수었다

불야성의 도시에서, 나는 꿈도 꾸지 않고
그러나 꿈꾸는 자들로 가득한 도시에서
그들은 어디로 가려는지도 모르고
냅다 내달리며 어딘가로 추락한다

내 목소리는 너무 작아, 그들은 귀가 없어
절벽에서 팔을 뻗는 내 얘기도 듣지 못하는 구나
도대체 얼마나 내달리게 될지
57억 6천만년이나 허상을 달릴 셈이냐

그만, 그만! 세상을 바꾸려는 일은 그만두고
이 착각 벗어나는 일이나 하지 않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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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名

글/시 2019. 12. 9. 12:17 |

無名


초겨울의 냉기가 산을 뒤덮고 하늘을 뒤덮어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안개와 같다

하늘은 보이지 않고, 시내에서 사람들은
몸을 싸매고 바삐 어딘가로 걸어간다

한 몸 편할 곳을 찾아, 추위를 피해 달려
어딘가로 어딘가로 바삐 가려고 한다

세상은 거대한 착각이니, 여기서
세상에게 이름을 붙인 채 살면
괴로움이 끊어질 일이나 있을까요

몇 번이나 죽고자 하여, 나
실은 죽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완전무결한 비존재가 되려했습니다

바람 불면 일어나는 파도가
아아, 나는 파도로구나, 하는 순간
천둥치는 하늘과 고해에서 영겁을 뒤엉깁니다

그러니 나, 무한한 바다로 다시
파도에게서 이름을 지우고, 스러지는
심해의 밑바닥으로 형상도 없이 가고 싶었습니다

뇌 속에 갇힌 누군가를 꺼내려고
권총 한 정 꺼내 구멍을 낸다 하더라도
내가 空으로 돌아가지도 않겠지요, 죽음도 미신인걸!……

알고 보니, 흙탕물 튀기며 살려고 했던 발버둥도
죽고자 하여 약병과 밧줄 쥐던 발버둥과
별로 다를 일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결코 내가 이름도 없는 곳으로
저 멀리, 저 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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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을 문 짐승

글/시 2019. 12. 7. 09:26 |

펜을 문 짐승


딱히 겨울하늘이 파랗게 얼어붙었다 한들
그것에 대해 무어 감상이 있지도 않지

마른 숲속에서 도망치는 고라니와 마주쳤다 한들
내게 무어 놀란 가슴 따위가 있는 것도 아니지

세상은 얼어가고 나도 얼어가고
하얗게 질린 손가락 끝에 쥔
담배도 이제는 무슨 맛인지
녹슨 울타리 같은 마음으로 궁금해 하지

감성, 감성! 그렇게도 부르짖는
그것이 내게 있기나 했던가
지난여름 비 오는 철교 위에서
나 강물이 얼마나 차가울지 궁금했었지

―이제 그만 쉬어
문학도 예술도 인생의 끝에
그리 중요한 것은 되지 못할 거야
그런 말들에 나는 심장을 난도질당하고

옳은 말이야, 옳은 말이겠지만! 그러나
차가운 바람에 손가락 저릴 때마다
나는 비참한 심상으로
한 가지 싯구를 떠올리고야 말아

저 능선 위의 절벽은 어떤 죽음을
내 정신과 영혼에게 드러내줄까?
수세미를 씹듯이 담배를 물고
나는 이상하고 추운 탐미에 홀려있네

……이제 그만 쉬어
그 말에도, 고통만 읊조리며
펜을 찾아 돌아가는 슬픈 짐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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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否定의 시

글/시 2019. 12. 6. 15:20 |

부정否定의 시


내 삶은 사유가 폭풍우치는
끝나지 않는 밤 같았으나
누군가 내 껍질의 가느다란 실마리를
강하게 잡아당기고야 말았습니다

시인들의 노래가 어디로 가는지
나의 정신이 미치광이처럼 따라갔으나
끝에는 공동묘지, 더하여
도무지 죽을 줄을 모르는 시체들

그리하여 저의 껍질을 더듬어보고
도무지 알 수 없는 회의를 계속하고
죽어버릴까? 이런 육신으로는
영혼에서 퍼 올린 자아조차 가려지는데

그러나 누군가가 분명히
내 실타래 끝의 실마리를 잡아당겼고……
육신은 헐거워지기도 하는 법이지요
뇌수조차 묵직한 고기였던 것입니다

겨울이 되면 햇빛은 더욱 선명하기에
겨울에 골몰하여―아, 그러나
광풍 같던 사유와 사고는 이미 가라앉고
나는 적적히 뭔가를 회의하고 있습니다

어둠이 내리면 그만한 것도 없지요
옛날부터 깜깜했던 나의 시각은
떠올려진 망념들이 미친 말馬들처럼 지나가는 일로
그리도 깜깜했던 것입니다

어둠과 추위 속에서 팔짱을 끼고
증오와 광란만 허용하던 나의 삶은
죽음에 이를 때는 미풍도 그치려나요
밤에도 햇빛은 지평선 너머서 빛나니

그래요, 그런 아이가 있었습니다
폭풍우와 지진을 집으로 삼고
살갗이 전부 찢겨나가는 것을 기대하던, 어린아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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