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전에서

글/시 2021. 10. 15. 22:28 |

역전에서



창동역 1번 출구의 겨울은 줄곧 붉은색이었다

사내가 소주병을 기울이고
포차 천막은 꺾인 날개처럼 퍼덕이는데
석유 히터는 가끔씩
쓸쓸하게 자갈 튀는 소리를 내곤 했다
불콰한 얼굴들은 표정 없이 번들거렸다

붉은 플라스틱 테이블
끄트머리에서 엎어지려는 소주잔을 쥐자
느닷없는 경광봉에 휩쓸려 포차 지붕들은
모조리 도시의 먼 곳으로 밀려났다

창동역 1번 출구 포장마차가 전부 사라진
가로등 불 밝은 멀끔한 광장

미처 취하지 못한 사람들 전철 구르는 소리 아래
공원이 된 폐허를 헤맨다

역사도 되지 못한 사람들이 그리워 나는
한 잔, 한 잔, 더 어두운 길로만 걸어나가고

테이블 끝의 소주잔
젊은 술꾼의 깡마른 손가락에 붙잡히는데

술로 가득 채운 내 몸뚱어리
다시는 역전할 수 없는 가장자리
무채색의 추위
끝에 서서
붙잡아줄 손도 없다.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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