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집 1
눈 오면 밤이 밝아지듯
빈 방은 춥고 고독한 만큼 선명하다
아버지의 붉은 얼굴이 소주잔에
체온을 남기는 것이 그리워
14평 광야 헤맬 때는
언제나 모두가 잠든 시간
신이 없으면 모독도 못하듯
법이 없으면 흉악해지지 못하듯
나의 집은 항상 빈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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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집 2
여름 내내 계속되던 배기가스 같은 기침이 멈추고
의사는 마침내 그것이 폐결핵이었다고 설명했다
펜으로 차트를 두들기는 안개 같은 눈은
결핵에 걸리실 나이가 아닌데요, 사소한 의문을 표하며
내게 가족들의 건강을 물었다
아니요, 누구도 재채기 한 번 하지 않습니다
나는 지난 계절 동안 피웠던 담배의 숫자를 셌다
사람들이 하지 말라는 건
다 이유가 있어서 하지 말라는 걸 텐데
가을 초입이면 이 거리는 나를 뱉어낸다
사방에 켜켜이 쌓이는 먼지와 재 같은 햇살
병원 앞을 달리던 자동차들은 언덕길 너머
상체가 끊어지고 머플러 소리만 남는다
병원 뒷골목에서 또 한 개비의
담배꽁초와 결별할 때
환자복의 노인들은 휠체어에 실려
빈 통조림 캔에 높은 체념을 쌓고 있다
행인들의 걸음은 병자를 피하고…… 아아,
생물학이여! 나는 들떠 뛰다가
다리가 풀려 세 번 거꾸러질 뻔한다
동네 곳곳이 이상하고 무뚝뚝한 모습이라고
지난달, 가족들에게 설명하려고 할 때
젖은 솜이 폐에서 터져 나오는 것 같은 기침에
혀가 치어 주저앉아 버렸다 나는
병에게 감사할 일이었다고, 대로 건너의
상가지구를 보며 다행스러운 마음으로 걷는다
등에는 땀방울이 맺히고 오후 4시
필터를 씹는 습관은 사람을 신경질적으로 만들기에
스무 살이 되기 전에 버릇을 고쳤다
4층짜리 붉은 벽돌 건물 앞에서 나는
이 건물이 올라가는 계단밖에 없다는 사실을 안다
날개가 찢어진 새들과 광병 걸린 눈동자의
쥐들만 한없이 뛰어 올라가는 꼭대기에
담배 연기에 눌은 노란 벽지도 아버지의 코롱 냄새도 없다
그 집에 곰팡이라도 만발해있으면
이토록 내 가슴뼈 속의 무엇이 거치적거리지 않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