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집 1, 2

글/시 2021. 1. 7. 22:11 |

빈 집 1

 

 

눈 오면 밤이 밝아지듯

빈 방은 춥고 고독한 만큼 선명하다

 

아버지의 붉은 얼굴이 소주잔에

체온을 남기는 것이 그리워

14평 광야 헤맬 때는

언제나 모두가 잠든 시간

 

신이 없으면 모독도 못하듯

법이 없으면 흉악해지지 못하듯

 

나의 집은 항상 빈 집.

 

-

 

빈 집 2

 

 

여름 내내 계속되던 배기가스 같은 기침이 멈추고

의사는 마침내 그것이 폐결핵이었다고 설명했다

펜으로 차트를 두들기는 안개 같은 눈은

결핵에 걸리실 나이가 아닌데요, 사소한 의문을 표하며

내게 가족들의 건강을 물었다

아니요, 누구도 재채기 한 번 하지 않습니다

나는 지난 계절 동안 피웠던 담배의 숫자를 셌다

사람들이 하지 말라는 건

다 이유가 있어서 하지 말라는 걸 텐데

 

가을 초입이면 이 거리는 나를 뱉어낸다

사방에 켜켜이 쌓이는 먼지와 재 같은 햇살

병원 앞을 달리던 자동차들은 언덕길 너머

상체가 끊어지고 머플러 소리만 남는다

병원 뒷골목에서 또 한 개비의

담배꽁초와 결별할 때

환자복의 노인들은 휠체어에 실려

빈 통조림 캔에 높은 체념을 쌓고 있다

행인들의 걸음은 병자를 피하고…… 아아,

생물학이여! 나는 들떠 뛰다가

다리가 풀려 세 번 거꾸러질 뻔한다

 

동네 곳곳이 이상하고 무뚝뚝한 모습이라고

지난달, 가족들에게 설명하려고 할 때

젖은 솜이 폐에서 터져 나오는 것 같은 기침에

혀가 치어 주저앉아 버렸다 나는

병에게 감사할 일이었다고, 대로 건너의

상가지구를 보며 다행스러운 마음으로 걷는다

 

등에는 땀방울이 맺히고 오후 4

필터를 씹는 습관은 사람을 신경질적으로 만들기에

스무 살이 되기 전에 버릇을 고쳤다

4층짜리 붉은 벽돌 건물 앞에서 나는

이 건물이 올라가는 계단밖에 없다는 사실을 안다

날개가 찢어진 새들과 광병 걸린 눈동자의

쥐들만 한없이 뛰어 올라가는 꼭대기에

담배 연기에 눌은 노란 벽지도 아버지의 코롱 냄새도 없다

 

그 집에 곰팡이라도 만발해있으면

이토록 내 가슴뼈 속의 무엇이 거치적거리지 않을 텐데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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